사극 사이의 현대극은 고전한다는 공식을 깨고 kbs2의 월화 드라마 <직장의 신>은 14.9%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상승세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간대 mbc의 월화 드라마 <구가의서> 역시 15.8%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역대 장희빈치고 시청률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없었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7.5%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런 결과가 나온데에는 이 시대 직장인들의 고뇌를 적절한 웃음과 함께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진 <직장의 신>이나, 최강치의 개인사와 역사를 절묘하게 버무려낸 <구가의 서>의 빼어난 만듬새에 있겠다. 반면, 아직까지 <장옥정>은 그 무엇을 해도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작년에 만듬새는 허술하다고 욕을 먹었음에도 40%를 넘는 시청률을 보였던 <해를 품은 달>, 그리고 눈에 보이게 그 드라마와 판박이같은 <장옥정> 입장에서는 만듬새를 들먹이는게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배우들의 연기로만 보는 월화 드라마는 어떨까?

 

(사진은 해럴드 경제)

 

폭풍 카리스마 김혜수

중학생 시절 이미 원숙한 분위기로 영화와 사극의 여주인공을 오갔던, 그리고 그로부터 십수년이 흐르도록 늘 최고의 여배우였던 김혜수에게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마는, <장옥정>의 논란을 보면, 김혜수 역시 장옥정이 되어, 논란의 자리에 섰던 시절이 있었음이 떠오른다. 왕의 비빈으로 간택되기엔 지나치게 당당하지 않냐던( 그 안에 왕에 비해 너무 장대하지 않냐는 속내까지) 여론을 뒤로 하고 그때도 김혜수은 장희빈을 궁중의 꽃이 아니라 권력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여성의 모습을 연기로 보여주었었다.

그런가 하면 높은 시청률을 보이진 않았지만 <즐거운 나의 집>에서남편의 외도와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정신적 방황을 겪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불안정한 모습 또한 자연스러웠었다.

그리고 이제 <직장의 신>, 과연 이 드라마의 미스 김이 김혜수가 아니었다면 <직장의 신>이 지금처럼 <직장의 신>다울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매회 시청을 할 때마다 든다. 저 멀리 한 벌로 쫙 빼입은 정장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오는 미스 김의 김혜수를 보는 순간, 아마도 시청자들은 우선 그녀의 기에 눌려 움찔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그녀이기에, 하다못해 사무실 잡무, 커피를 타거나, 스템플러를 찍거나 빼거나 해도, 그녀의 그런 일들이 하찮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남은 시간을 이용해 하는 화장실 청소를 할 때조차 그녀는 당당하다. 김혜수라는 배우의 아우라에서 빚어지는 당당함은 단지 역할 그 자체에서 머무는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일, 하지마 늘 대접받지 못했던 잡무나 허드렛일들이 덕분에 자기 존재감을 얻어가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직장의 신>의 미스 김, 김혜수는 슬랩스틱에 능하다.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는 그녀의 체조는 다른 사람이 하면 물을 뿜었을 우스광스런 모습이요, 그녀가 수당을 받고 임했던 홈쇼핑의 체조 동작이나, 마켓에서의 게장 만들기 호객 행위는 그 어느 개그보다도 개그스러웠다. 하지만, 개그맨 자신이 웃는 순간 개그는 망한다는 속설처럼 '빠마머리~'라고 웃기는 대사를 할 때 조차 무척이나 진지하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며 연기의 걱정없이 편안하게 실려 가면 된다는 믿음이 생긴다.

드세거나 웃기는 것만이 아니다. 진짜 <직장의 신>의 묘미는 매회 어찌보면 비슷한 직장인들의 애환, 혹은 인간적 갈들에 슬며시 반응하는 미스 김, 김혜수의 표정이다. 아주 순간 그녀를 스쳐가는 감정들이, 어마어마한 정주리의 수당을 월급턱이란 결과를 낳고, 빠마머리 장규직 과의 로맨스를 꿈꾸게 만든다. 물론 아직은 여지없이 '더럽다'며 그 손을 치우라는 호락호락하지 않는 그녀이기에, 그 로맨스는 더 간질간질하다.

<직장의 신> 비정규직 미스 김이란 캐릭터는 실상 현실에서 만나보기 힘든 무리수일 수도 있는 누군가의 연기로 인해 충분한 공감을 얻기 힘들 수 있는 캐릭터이지만, 우리 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배우같은 배우, 김혜수가 그 캐릭터에 김혜수를 입힘으로써, 멋진 미스 김으로 되살아 났다.

 

 

캐릭터와 이물감이 없는 배우 이승기, 배수지

<구가의서>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을 논하려면 그들이 등장하기에 앞서 1,2회를 이끌었던 이연희의 연기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연희 하면 2012년 주연으로 등장했던 <유령들>에서 시청자들에게 듣기 평가를 강요했던 배우로 논란이 되었었다. 그런 이연희였는데, 단 1년만에 <구가의서>를 통해 이연희의 재발견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물론 자세히 보다보면 그녀의 높낮이가 없는 단조로운 발성도 여전하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지만, 그것조차도 1,2회에 보여진 월령과의 비련의 사랑에 몰입을 방해할 요소는 아니었었다. 이렇듯, 당대의 발연기라 지적을 받던 연기자 조차, 재발견이란 소리를 듣게 할 만큼 <구가의서>는 환타지 사극으로서의 적절한 스토리와 그걸 업그레이드 시킬만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늘 김은숙 작가와 파트너가 되어 하지만 슬쩍 김은숙이란 작가의 이름에 비해 조명을 덜 받던, 하지만 사실은 김은숙 작가의 중반 이후의 뻔한 스토리를 연출력으로 뒷받침해오던 신우철 피디가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낸 것이다.

이것으로 올 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이어, <구가의서>의 성공까지, 드라마 스토리텔링의 뻔함을 연출력으로 보완을 넘어 재탄생시킴으로써 어쩌면 이젠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 아니라, 피디 장난이란 새로운 신조어가 탄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구가의서>에서, 주연으로 등장한 이승기와 수지의 연기는 전혀 새롭지 않다. 허허실실 동네 청년같은 이승기는 여전히 이승기처럼 나오고, 건축학 개론에서나 광고에서나 늘 빤히 쳐다보며 상대를 설레게 하던 수지는 여전히 그 수지이다. 하지만 그것이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그들이 연기 아니 그들의 모습과 이물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리한 드라마의 전략이다. 이승기나, 수지는, 엄밀하게 연기자라기 보다는 그들이 출연한 1박2일 등의 쇼프로와 광고 등을 통해 이미 굳어진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스타'들이다. 그리고 대중들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아직도 싫증내기보다는 그런 모스을 더 보여줄 것을 갈망하고 있는 조건이다. 그런 상황에서 배우로서 모험을 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캐릭터 내에서 변주를 해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더구나 군 입대를 앞둔 이승기의 입장에서는 굳히기 한 판 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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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osen에서)

 

연기는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구미호 외전'을 시작으로 해서, '싸움', '중천' 등 그간 김태희가 선택해온 작품들을 보면 과연 이 배우가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다녔다는 사실을 늘 코에 걸고 다닐만 한가를 의심해 보게 된다. 심지어 '아이리스'조차 이병헌의 연기가 있었으니 그만하게 넘어갔지. 스토리에는 헛점이 많아 보는 사람들이 그냥 접어두고 보게 만든 드라마 였었다. 이렇듯 '마이 프린세스'를 제외하고는 장르에 있어 파격적이거나, <장옥정>처럼 스토리에 있어서 파격적인 것들을 김태희는 선택해 왔다. 그런 파격적인 장르나 해석이 따른 작품을 선택할 때는 그것을 채워 갈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김태희는 역으로 그 파격적인 것이 자신의 부족한 연기력을 덮어주리라 기대했던 것이었을까?

물론 이런 혹평이 김태희 본인에겐 가혹한 것이, 지난 여러 작품을 하면서 김태희 본인의 연기력은 꾸준히 나아져 왔다. 냉정하게, 평행선상에 놓고, <구가의서>의 수지가 낫나? <장옥정>에 김태희가 낫나? 하면 김태희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욕은 김태희가 먹는다. 그것은, <장옥정>은 말 그대로 장옥정, 김태희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앞서 만들어 졌던 역대의 장옥정들은 흐드드한 연기력으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 자리에 올랐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장옥정>을 보면, 김태희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혹은 지금까지 그녀가 했던 선택들처럼, 패션 디자이너 라던가, 지고지순한 사랑의 화신이라던가와 같은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 혹은 <해를 품은 달>을 뽑아 놓은 듯한 그럴 듯한 구도로 그녀의 여전히 원톱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엔 미흡한 연기력이 덮어지리라 믿었던 것이 같아 아쉽다.

아이러니한 것은, <장옥정>에서 김태희의 파트너인 유아인조차 이번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김태희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유아인이나 이승기나 그저 기존에 자신이 해오던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인데, 유아인의 연기가 장옥정에 해는 끼치지는 않지만 도움이 된다고도 말할 수 없는 형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나, <패션왕>의 영걸이나, 영화 <완득이>의 완득이는, 늘 그 사회 속의 마이너한 소수자들이었다. 그리고 유아인은 그런 역할을 하기에 매우 최적화된 연기를 하는 배우이고. 이제 그런 그가 왕이 되어 나타나니, 그 스스로도 왕이 되고자 연기에 힘이 들어가고, 자기 연기 자체를 소화하는 것 조차 버겁다보니, 상대편 김태희의 연기까지는 받쳐줄 형편이 못되는 것이다. 파트너 조차 믿고 갈 수 없는 김태희에겐 불행의 한 수다.

by meditator 2013. 4. 24. 09:59

한 발 앞서 나간 <직장의 신>에 이어 나란히 시작한 두 편의 월화 드라마는 모두 공교롭게도 사극이다. 그 중 sbs의 사극 <장옥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조선시대 악녀의 전형인 장희빈의 그 장옥정이다. 그런데, 어라? <야왕>이 종영되기 한참전부터 그리고 시시때때로 방영되는 예고편 속의 장옥정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장희빈이 아니다.

 

<장옥정>의 예고편을 보는 내내 혼동을 느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숙종과 장희빈의 이야기야? 아니면 <해를 품은 달>의 배우만 다른 버전이야? <해를 품은 달>의 화사한 청사 초롱을 아름다운 꽃잎이 대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세자 김수현을 대신한 유아인이 첫 눈에 아름답고 당찬 연우, 아니 장옥정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가지고 있고, 덧붙여, 두 사람 사이에는 역시나 권력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정쟁 또한 빠지지 않는다.

 

예고편이니 그러려니 했다. 예고편이야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니. 그런데, 드디어 첫 방송, 어? 여전히 <해를 품은 달> 같은데?

물론 똑같지는 않다. 노비가 될 뻔한, 아버지를 비명횡사 죽음으로 몰고간 양반이 아닌 장옥정의 가족사는 더더욱 치명적이고 그리하여 장옥적이란 캐릭터를 극적으로 만든다. 게다가 다 자란 옥정이는 조선시대에 패션쇼를 열어 돈을 버는 전문직 여성이란다. 하지만, 마치 기본적인 옷에 장신구를 달아 그 옷을 돋보이게 만드는 저런 치장의 요소들을 걷어치우고 본 장옥정은 <해를 품은 달>의 구도랑 닮아도 너무 닮았다.

장래의 숙종이 될 왕은 등에 업은 권세가가 왕권을 좀먹어 가는 것에 분노한다. 그런 그의 곁에는 <해를 품은 달>의 양명처럼 벗과 같은 왕족 동평군이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역시나 사랑을 두고 이해가 엇갈릴 듯하다. 권세가와 이해를 같이 한 모후는 세자와 인현왕후와의 인연을 맺어주려 하지만 역시나 운명은 세자와 장옥정을 만나게 하고, 첫 눈에 설레이게 된 이 두사람은 알고보니 어릴 적 사연까지 있단다. 인현과의 만남이 엇갈린 것을 안 모후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분노는, 그리고 권력을 둘러싼 가문 간의 이해타산은 <해를 품은 달>에서 처럼 장옥정을 비극의 길로 인도 할 것이다. 아마도 추측컨대, 단지 다를 것이 있다면, <해를 품은 달>은 해피엔딩, <장옥정>은 새드 에딩이 분명할 수 밖에 없다는 거 정도?

 

<해를 품은 달>이 어떤 드라마인가, 시청률 40%를 넘봤던 2012년 최고의 히트 상품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드라마를 만드는 입장에서 히트 상품의 모작처럼 보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 들어고 싶은 마음이 왜 아니 들겠는가. 그런데, <해를 품은 달>은 훤과 연우의 권력의 피바람을 거스른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국 연우가 왕후가 되는 것으로 보상을 받았다. 언젠가 해피 엔딩이 예정되리란 기대가 있기에 그녀의 고통을 감내할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엔 장옥정, 아니 장희빈으로 알려진 이 여인에 대해 시청자들의 선입관이 너무 강하다. 그간 장옥정을 다뤘던 드라마를 봐왔던 재미는 욕하면서 마지막까지 주다해가 어떤 악행을 저지르다 망할까 하며 <야왕>을 봐왔던 기대와 다르지 않다. 그런 시청자들의 기대를 제 2의연우로 대신 할 수 있을까?

<장옥정> 제작진 측은 야심차게 장희빈으로 알려진 여인을 재해석하겠단 포부를 열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장옥정을 다뤘던 작품들의 불성실을 일갈하면서까지. 그리고 내세운 장옥정은 생뚱맞게도 조선시대의 패션디자이너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여인의 상징으로 21세기의 트렌디한 직업을 내세운 것이다. 화려한 조선시대 패션쇼를 보노라니 눈호강은 되지만, 얼마전 모 드라마의 웨딩 드레스 논란처럼, 과연 역사의 재해석이라지만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최정미 작가의 원작을 보면, 장옥정은 권력을 탐한 희대의 요부가 아니라, 지아비인 숙종을 사랑해 자신의 목숨조차도 아낌없이 내놓은 여인으로 그려져 있다. 오히려, 악역은 정략 결혼의 대상자 인현이요, 훗날 장희빈을 대신할 최귀인이다. 장옥정이란 인물을 순애보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역시 또 다른 여인들은 권력의 화신이 되어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글쎄, 권력을 탐하다 왕에게 미움을 받고 사약까지 받게 된 장희빈보다,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은 새로운 장희빈이 새로운 해석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21세기에 어울리는 해석인지에는 의문이 간다. 오히려, 진정 이쯤이라면, 여전히 왕실의 사랑 놀음이 아니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처첩을 마음대로 갈아치우고, 몇 번의 정난으로 신하들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진정한 권력의 화신 숙종을 그려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피비린내 나는 정쟁을 또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로 미화시키기엔 숙종 연간은 너무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과연 그 익숙함을 넘어서 사람들에게 사랑에 살다간 장옥정을 설득시켜낼 수 있을까?

by meditator 2013. 4. 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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