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럴 지도 모른다. 아직도 해? 라고. 2009년에 시작해 벌써 햇수로 8년 째,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금요일 밤, 아니 금요일이라고도 말하기 민망한 밤 12시하고도 한참 넘은 30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 유스케는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켜왔다. 마치 그 예전에는 <수요 예술 무대>를 비롯하여 '음악'이 목적이었던 무대들이 늦은 밤이라도 꾸준히 자리를 지켜왔었다. 


하지만 마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 앞 인디 뮤지션들의 무대가 사라지듯, '시청률'이라는 방송의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은 '음악'만이 목적이었던 프로그램들을 하나 둘씩 잠식하고 이젠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물론 '음악' 프로그램들이 없는 건 아니다. <뮤직 뱅크> 등도 건재하고, <복면 가왕>처럼 새롭게 인기를 끈느 프로그램들도 눈에 띤다. 하지만 아이돌도, 아이돌이 아닌 가수들이 온전히 자신의 노래만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프로그램은 이제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생존해 있다. 이제 '노래'도 예능이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마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상승한 임대로에도 불구하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는 홍대 앞 공연장과도 같다. 



10년 생존을 위한 야심찬 포석 
애국가 시청률보다도 낮은 1,2%의 시청률로 안간힘을 쓰던 <유희열의 스케치북>, 처음엔 프로그램의 '품격'을 위해 버티던 '아이돌' 등에게 무대를 공개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건 프로그램의 성격을 하향평준화시키며, '유스케'만의 고집에 애착을 가지던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아이돌 위주의 프로그램인 <뮤직 뱅크>등이 낮은 시청률을 고집하듯, 생각 외로 그들의 합류가 <유희열의 스케치북> 시청률엔 도움이 안됐다. 이제 노래도 '복면'을 쓰거나, 남의 노래를 새롭게 편곡하거나 해야 볼거리가 되는 세상에, 일찌기 그런 시도를 앞서서 했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늦은 밤 입지는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위기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이제 10주년이라는 원대한 꿈을 향한 새로운 포석을 둔다. 그 방식은 '음악'이 예능이어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원론적'인 방식의 접근이다. 바로 '월간 유스케'의 형식을 띤 한 가수의 온전한 콘서트로 꾸며진 한 시간이다. 



월간 유스케, 익숙한 용어의 조합이다. 그렇다. 일찌기 월간 윤종신이 있었다. 2010년 4월부터 시작하여 2016년 10월 50호가 된 윤종신의 디지털 싱글 앨범이다. 이는 기존의 앨범 단위로 신곡을 발표하는 것이 뉴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그 의미가 퇴화해 가자, 새로운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하고자 아티스트 윤종신이 마련한 플랫폼이다. 과연 예능인으로서 분주한 윤종신이 가능할까?라는 우려를 불식하고 이제 햇수로 6년째, 50에 이르렀다. 

이렇듯 월간 윤종신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유연한 적응이듯이, 10월 29일 첫 선을 보인 <월간 유스케> 역시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서의 새로운 모색이다. 우선 그간 애매했던 불금의 밤 대신, 조금 더 여유로운 토요일 밤으로 시간대를 옮겼다. 그리고 매달 한번씩 한 아티스트가 온전히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특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그간에도 신곡을 낸 뮤지션이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음악을 서너곡씩 불러주는 코너가 있었다. <월간 유스케>는 그런 코너의 확장판이다. 최근 내노라하는 가창력있는 가수들이 설 무대라는게 듀엣으로 부르거나, 타인의 곡을 재해석해서 부르거나, 일반인과 함께 해야만 가능한 상황에서, 월간 유스케는 오히려 그런 흐름에 역행하는 가장 본원적인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선택을 한다. 



창간호, 그 이름값에 걸맞았던 박효신 
그리고 그 첫 무대는, 야심찬 포석답게 최근 7집 앨범 <I am a dreamer>로 앨범 차트를 석권한 박효신이다. 무엇보다 박효신의 무대는 방송 출연이 흔하지 않은 그의 7년만의 방송 출연이라는 점, 거기에 199년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통해 방송을 데뷔했던 그의 기념비적인 복귀라는 점에서 '월간 유스케"의 창간호에 걸맞는 무대가 되었다.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밤을 뜨겁게 달군 그의 콘서트는 지난 야생화 앨범에 이어 다시 그와 작업을 한 정재일의 피아노 반주에 맞춘 그의 새 앨범의 '꿈',  '홈(home)' 등의 신곡과 이전 앨범의 야생화 그리고 군대 가기전 앨범의 히트곡들이 메들리로 불리워졌다. 이날 박효신의 방송은 이미 그의 콘서트가 거의 10분만에 매진되듯, 5만 여명의 신청자로 화제가 되었고, 바뀐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연만으로 이름이 검색어에 오르는 등 그간 아쉬웠던 유스케의 화제성을 단번에 회복시켰다. 음원이 아니고서는 그의 음악을 듣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그의 달라진 음색에 갑론을박하며 그의 복귀를 반겼고, 덕분에 창간호, 거기에 월간 유스케라는 야심찬 포석이 헛된 시도가 아니었음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증명했다. 그저 숙제는 이런 박효신의 화제성을 이을 다음 호, 그리고 특집이 아닌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의 입지를 예능으로서의 음악이 융성한 시대에 마련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6. 10. 30. 03:36

<유희열의 스케치북> 호청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불만은 바로 이 프로그램의 방영 시간이다. 불금 아니 불금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늦은 시간, 12시 하고도 20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시작된다. 아니 그것도 운이 좋으면이다. 요즘처럼 월드컵이라도 하면, 그야말로 함흥차사이다. 6월 27일 혹은 28일 <유희열의 스케치북> 5주년 방송이 방영될 수 있었던 것은 5주년이기 때문이 아니라, 브라질 월드컵이 16강전에 앞서 하루를 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호청자들의 불만, 방영 시간의 불리함을, 정작 mc인 유희열은, 그것이 바로 '가늘고 길게' 5주년까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저력(?) 중 하나라고 언급하고 있다. 유희열의 말을 듣고 보니, 밤 11시 대에 공중파, 케이블을 막론하고, 야심차게 편성되었던 모든 음악 프로그램들이,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을 보면, 어쩌면 정말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그 애매한 시간대는, 제약이 아니라, 정말 생존의 조건일 수도 있겠단 '웃픈'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어쩌면 방치된 듯한 시간대에 놓여, 한 1년이나 할랑가 하는 시간을 무려 5년이나 지속해 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5주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5주년은 맞이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야무지게도, 내친 김에, 유희열이 송해 할아버지 나이가 될 때까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해보겠단 포부를 펼친다.
그리고 그 포부의 '현현'으로, 5주년 특집으로 마련한 것이, 바로 장수 프로그램 특집이다. 덕분에, kbs의 이른바 장수 프로그램들이, 5주년 특집 기념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방문한다. 송해 할아버지의 <전국 노래자랑>, <뮤직 뱅크>, 그리고 <열린 음악회>이다.

<전국 노래 자랑>의 시그널이 울리고, 송해 할아버지의 우렁찬 '전국 노래 자랑~' 이라는 멘트가 울려 퍼지는 <유희열의 스케치북>, <전국 노래 자랑>의 단골 초청 가수 박구윤의 트로트 '뿐이고'가 화려한 무대를 펼친다. 오래도록 <열린 음악회>를 지켜왔던 황수경 아나운서가 나와, 그 내공의 한 자락을 펼치고, <열린 음악회> 하면  떠오르는 가수 인순이가, 그 무대에서 즐겨 불렀던 <거위의 꿈>을 수화와 함께 열창한다. 


5주년 특집으로, <전국 노래 자랑>과 <열린 음악회>의 무대를 고스란히 퍼 나른,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고 있노라면, 이것이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자부심과 정의를 확인하게 된다. 굳이 후반부에 '아이유', '십센치' 등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매의 눈'으로 발견해낸 가수들이 아니라도, 5주년 특집 그 자체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는 설명된다. 
일찌기, 이전 특집들에서도 그랬듯이, '고품격 음악 방송'으로써, 음악이 자리한 그곳의 모든 것을 눈여겨 보고, 그것의 가치와 존재를 제대로 확인시켜 주는, 우리 시대의 어쩌면 유일한 방송, 바로 그것으로써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존재론을, 5주년 특집으로 다시 한번 스스로 증명해 낸다.

덕분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가수들의 절창은 물론, 가수들의 절창을 가능케 해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음악인으로서의 연주자들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제 5주년을 맞이하여, 그 가수와, 음악인들에게 오래도록 무대를 제공해 왔던 '장수 무대'들의 존재를 새삼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은 쉬이 흐르고, 우리는 그 세월 속에 쉽사리 묻혀져 흘러 가지만, 이렇게 <유희열이 스케치북>과 더불어 가끔, 우리가 흘러온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우리가, 혹은 우리 가족들이, 함께 했던 음악 프로그램의 역사를 반추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어려서 <뮤직 뱅크>를 즐기다, 철들어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맛들이고, 나이가 지긋해져 가면서 <열린 음악회>가 편해지고, <전국 노래자랑>이 흥겨워지는, <시네마 천국>처럼, kbs의 음악 프로그램만으로, 마치 누군가의 일생을 조망하게 되는 듯한 시간이 되었다. 

물론, 그런,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가능한 특집만이 아니다. 아이유라는 가수를 일찌기 발견해 주고, 십센치의 붐을 선도했으며, 일찌기 '장미여관'을 발굴했던, 음악 프로그램 본연의 몫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5주년에 즈음하여, 스스로에게 개근상을 수여하듯, 되돌아 본다. 또 하나의 이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이다. 되돌아 보건대, 결국은 '인기 가수'가 되었던 많은 가수들이, 일찌기 유희열의 극찬을 받으며 떨리는 모습으로 이 무대에 섰던 가수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가기 전에, 일찌기 그들과 조우했던 '선견지명'의 맛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호청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몫이었다. 

그렇게,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할 수 있는 각종 특집들과,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의 매의 눈으로, 오늘의 5주년을 만들었다. 늦은 밤의 기다림도, 변심한 애인처럼 가물에 콩나듯 하는 만남도 마다치 않을 터이니, 부디 오래오래 해먹기 바란다. 


by meditator 2014. 6. 28. 12:20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즐겨보는 애청자라면 통하는 한 마디가 있다.

'무엇을 기대하던 그 이하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늘 특집 때마다 시작하기에 앞서 mc 유희열이 다짐하는 말이다. 썰렁한 크리스마스 특집이던, 화려한 고고장 특집이건, 언제나 유희열은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낮추라는 이 말을 빼먹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이 정말 그렇다고 믿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유희열이 그 말을 하는 순간, 관객과 시청자들의 기대치는 올라간다. 오늘은 또 어떤 '스케치북다운' 특집을 보여주려나 하고. 
하지만, 1월 3일 신년 특집으로 꾸민 '가요 톱텐'은, 유희열이 손범수를 코스프레하며 가요 톱텐 시절의 음악들로 주옥같이 꾸몄지만, '스케치북'답기는 했지만, 어쩐지 한 김 빠진 <불후의 명곡>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가요톱텐' 특집에 앞서, 유희열은 이 특집에서 절대 케이블의 모 드라마를 연상하지 말라고, 자신들은 이미 6년전(?)부터 이 특집을 기획해 왔다고 했다. 물론 특집이란게 정말 말 그대로 특집으로 제작진들이 기획하기 나름이고, 거기에 굳이 개연성을 요구할 필요는 없겠지만,  과연 2014년의 새해 특집으로 무려 20년의 과거를 거스른 '1994'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6년 전부터 기획해 왔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94>의 장면들이 오버랩되는 015B의 음악으로 시작하는 건 더더욱 그랬다. 

(사진; 세계일보)

015B에 이어, 김건모, 김동률, 룰라, 듀스, 마로니에를 거쳐, 김광진, 조관우로 순항한다. 때로는 그 시절의 가수 015B, 김광진, 조관우가 직접, 그게 아니면 허각, VIXX, 쥬니엘, 케이윌, 강민경에 새롭게 불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들 뒤에 있는 자막은 부지런히 이것이 '가요톱텐' 특집이라는 걸 복기하는 양, 그 시절의 영상을 보여준다. 물론 이제는 고풍스러운(?) 느낌조차 나는 1994년의 <가요톱텐>을 다시 보고, 그 시절에 유행했던 노래를 다시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향수에 젖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보면, '가요톱텐' 특집은 풍족하다.

하지만, 어쩐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일까? 그것만으로는 어쩐지 아쉽다. 선배 가수들을 제외하고, 출연했던 가수들의 면면을 보자, 허각, 강민경, 켘이윌, 어딘가 익숙한 조합이다. 그렇다. <불후의 명곡>에서 몇 승을 거머쥐고, 1등을 했던 가수들의 명단이다. 그리고, 이미 <불후의 명곡>을 통해, 1994년의 노래들을 숱하게 불려졌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이들 가수들이 <불후의 명곡>에서 했던 무대랑 비교하게 되어진다. 화려한 편곡, 그리고 그보다도 더 화려한 퍼포먼스, 그리고 거기에 뒤질세라 얹혀졌던 가수들의 절창, 거기에 비하면 어쩐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무대는 조촐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벤치에 쭈그리고 앉다 못해, 웅크리고 누워 부르는 케이윌의 '기억의 습작'이 '가요 톱텐' 특집의 묘미라면 어쩔수 없지만, 그래도 고품격 음악 방송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면 이젠 특집을 위한 특집, 그래봐야, 결국은 무대에 있어서는 <불후의 명곡>에 비할 바 못되는 무대를 꾸밀 바에야, 이젠 정말 고품격 음악 방송으로서의 본령으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 싶은 거다.

사실 015B의 음악은 좋지만, 어쩐지, 어색하게 그 시절의 015B를 코스프레 하는 나이든 015B의 키치스러운 무대보다는, <응답하라 1994>의 훈훈한 그 시절 장면 뒤로 흐르는 OST로서의 015B음악이 더 분위기 있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간극에서 느껴지는 유머와 페이소스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이끄는 주된 매력인 건 알겠지만, 거기에 고여있는 느낌은 그렇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응답하라 1994>의 붐에 더해 추억팔이를 하겠다면, 이제는 너무나 뻔해진 그 시절의 015B, 듀스, 김동률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 놓친 그 시절의 다른 음악을 소개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015B, 김동률이라도, 우리가 뻔히 기억하는 그들의 음악이 아니라, 우리에게 잊혀졌던 그들의 또 다른 음악이라면? 1월 3일 방송 말미, '마법의 성'을 부른 김광진에게 보여진 것은, 몇 주에 걸쳐 1위 후보곡이었음에도, 결국은 신승훈의 '그후로 오랫동안'에 밀려 결국은 1위 한번 못해본 과거 영상이었다. 그렇듯이, 이제는 우리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하지만, 그 시절에는 나름 인기 있었던 좋은 명곡들이 있었다. 

(사진; TV리포트)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이 물론 좋은 노래고, 인기있는 곡이었지만, 그 곡을 오늘에 길어 올린 건, 영화 <건축학 개론>이었다. <응답하라 1994>도 마찬가지다. 우리 기억의 책장 속에서 먼지 쌓인 채 묵혀가던 곡들을 되살려 낸 것이다. 하지만, 이제 '기억의 습작'이나, '어디선가 나의 노래를 듣고 있는 너에게'는 이미 길어올려져 회자되는 유행가가 되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고품격 음악 방송의 본령에 충실하려면, 이미 유행가가 다시 되어버린 곡들을 그럴 듯한 그 시절의 분위기를 재연하며 재탕하는 것이 아니라, 미처 우리가 길어올리지 못했던 곡들을 재발견 해주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너무나 대표적인 곡이 되어버린 015B의 음악 대신에 그와 함께 1위를 다투었던 최연제의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면'이 신선한 선택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가요 톱텐' 특집은 <유희열의 스케치북> 본연의 해학적 요소도 충분히 보여주었고, 여전히 좋은 그 시절의 음악을 다시 한번 들려주어서 흐뭇했다. 하지만, 금요일 늦은 밤,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눈비비며 기다리는 마음은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은 고품격 음악에의 갈증이 남아있다. 


by meditator 2014. 1. 4. 12:03

자신이 연출했던 <1박2일>과의 신선한 콜라보레이션을 크리스마스 특집을 통해 선보였다가 혹독한 신고식을 치뤘던 최재형 피디가, <유희열의 스케치북>본연의 맛을 살린 '솔로 특집'을 선보였다. 


그럼, 여기서 <유희열의 스케치북> 본연의 맛이란 무엇일까?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전통은 공개 음악 방송이란 점이다. 다수의 방청객을 불러놓고, 무대 위에서 양질의 음악을 들려주는 방식, 그것도 말 그대로 '고품격 음악 방송'으로서, 다른 무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양질의 '라이브'의 진수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좀 듣는(?)다 하는 사람이라면, 텔레비젼의 모드를 '음악'으로 해놓고 프로그램을 감상한다고 한다. 즉, 이 프로그램의 주연은 바로 '음악'이다. 거기에 덧붙여, 무대에서 한 발짝 내려오면 바로 객석인, 관객과의 교감, 그것이 음악을 우리가 기계음을 통해 듣는 그것을 넘어서는 시너지를 가미해 생동감 넘치는 그 무엇으로 전달해 주기에, 불타는 금요일 늦은 시간까지 인내하며 이 프로그램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사진; 스포츠 월드)

아마도 지난 시간 찾아가는 크리스마스 캐롤 특집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고정 독자들에게 탐탁치 않았던 이유는 바로, 어설픈 <1박2일>의 흔적에, 본연의 맛조차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기획에 있었을 것이다. 신선하고, 따스했으나, 그 시간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본연의 맛은 그것만이 아니다. 
이제는 전국민적(?)인 별칭이 되버린 '감성 변태' 유희열이 거기에 있다. '감성'과  '변태',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단어의 조합인가, 바로 이 감성적이지만, 결국은 그것에 침참하지 않고, 그것을 한번 비틀어 대는 넉넉한 위트가 <유희열의 스키치북>의 또 다른 본연의 맛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잘 발현된 특집이 바로 27일의 '솔로 특집', '오빠 한번 믿어봐'이다. 

출연한 유민상이 연병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는 말이 솔직한 감상이듯, 27일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관객석은 오로지 남성들로만, 그것도 이른바 자칭타칭 '솔로'라는 남성들로 가득찼다. 진짜 연병장에서만, 혹은 남고에서만 울려퍼질 듯한 우렁찬 목소리로 그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선사한 걸 그룹의 노래의 후렴을 불러제낀다. 

(사진; 리뷰스타)

크리스마스를 연인 없이 홀로 보내는 남성들을 위해, 걸그룹 천사들이 등장해 그들을 위로하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개그콘서트>의 '안생겨요' 팀은 화룡점정이다. 심지어, 솔로'왕'까지 뽑는다. 거기서 그치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아니다. 늘 그렇듯, 무엇을 상상하든, 그 상상을 뒤트는 출연자가 등장한다. 바로, 남자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가수, 성시경의 등장이다. 하지만 '우~'하는 원성을 기대했던 제작진의 야무진 기대와는 달리, 그간 <마녀 사냥>을 통해 이 시대 대표적 솔로남의 심정을 잘 대변했던 성시경은 또 다른 의미에서 솔로남들의 환영을 받는다. 유희열과 함께 막간 <마녀사냥>버전으로, 솔로남들의 고민을 들어주기까지 하며, 솔로 특집을 풍성하게 만든다. 

'솔로왕'으로 뽑혔던 24살의 남자가, 그 전날 다음 날 할 일이 없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다는 말처럼, 언제인가 부터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의 최대 명절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작년에 '솔로 대첩'이 실행되었던 것처럼, 연인들의 명절은, 곧 솔로들에게는 쓰디쓴 인고의 시간이 되어 버린 걸 의미한다. 한참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에 자의건, 타의건 누군가 함께 해줄 사람이 없이 연인들의 명절을 홀로 보낸다는 고통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역설적 제목, '오빠 한번 믿어봐'를 통해 승화시킨다. 걸그룹의 노래를 듣고, 성시경과 유희열의 연예 코치도 들으며, '안생겨요'의 고통을 나누고, '진짜 사나이'를 부르며 의지를 고양시키는 것으로. 그렇게 슬픔을 위로하고 나누고, 즐기다 보니, 슬픔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함께 웃으며 털어버릴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게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가진 본연의 맛이다. 


by meditator 2013. 12. 28. 10:20

<1박2일> 시즌3가 시작과 동시에 시청률 1위를 하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자, 상대적으로 비교를 당하는 건 시즌2이다. 겨우 그 정도 시청률은 시즌1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라거나, 시즌2가 잃어버린 시청률을 이만큼 찾아온 것이 어디냐는둥, 시즌2 초반에도 이 정도 시청률은 나왔다거나, 그게 어디 시즌2때문이냐, 시즌1 후광 때문이지. 하지만 그 어떤 논의가 반복되면 될 수록, <1박2일>의 역사에서 시즌2는 점점 시즌1의 영광을 말아먹은, 이제 막 시작한 시즌3보다도 못한 '흑역사'의 늪으로 한 발 한 발 빠져들어 가게 된다. 무엇이 어찌되었건 실패했다는 게 시청률을 담보로 한 냉혹한 평가의 기준이다. 


바로 그 실패했다는 시즌2의 최재형 피디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돌아왔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가 <1박2일> 시즌2의 피디로 들어가기 전 원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피디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다른 오락프로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음악 프로그램이나 하던 피디가 어찌 1박2을 감당하나 싶었더니, 역시나(?) '패전장군'이 되어 다시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복귀하였다. 어라,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던데, 오히려, 최재형 피디는 탱자가 회수를 건너서 귤이 된 듯, <유희열의 스케티치북>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1박2일판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랄까?!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는 이상한 크리스마스 특집을 해왔다. '무엇을 기대하던 그 이하'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며 '대반전 쇼'라 면서, 성시경이 시퍼런 외계인 분장을 하고, 루시드 폴이 치마를 입고 양 갈래 머리를 나풀거리며 춤을 추고, 정재형이 깃털을 잔뜩 단 무희들에 둘러 싸여 가슴에 X자 테이프 표시가 역력히 드러나는 시스루 와이셔츠를 입고 무대를 꾸민다. 야한 포즈의 가인과 함께 노래를 부르던 유희열의 코에서 코피가 나는 건 예사다. 당연히 올해도 크리스마스 특집을 한다니, 또 어떤 '썰렁한' 유머 코드가 등장할까 기대를 안한 건 아니다. 물론, 첫 회엔,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분장을 하고 유치한 모습을 선보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으로 재미가 있었다. 다음 해엔, 올해는 또 누가 그럴까 싶어 기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썰렁함' 만으로 몇 년을 더 이끌어 가기엔 무리다 싶었다. 그리고 더 기상천외한 새로운 모습을 보일 인맥이 있을까도 싶었고. 



	유희열의 스케치북/KBS제공
(사진; 조선닷컴)

그런데, <1박2일>이란 회수를 건너 온 최재형 피디는 실패했던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가져와 2013년판 크리스마스 특집을 꾸몄다. 1박2일판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시청자들의 소원을 받아, 그 중 몇몇을 추려, 그들에게 직접 캐롤을 배달한다는 이벤트이다. 음악 프로의 성격을 살리는 캐롤를 배달한다는 것만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1박2일에서 봤던 것들이다. 심지어 방문 지역을 추천하는 커다란 판도, 작은 판도 다 1박2일 재활용이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유희열의 스케치북~ 하며 단체 구호도 외친다. 손으로 스케치북에 뭔가를 쓰는 제스쳐도 해가며, 심지어 나중에 저녁을 먹는데,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은 남자' 스티커를 붙여 복불복 메뉴를 정한다. MC유희열을 비롯한 윤종신, 이적, 육중완 등은 대놓고 <1박2일>의 실패한 피디라고 조롱하며, 이렇게라도 재활용을 해야하냐며 비아냥거린다. 그때마다 화면은 피디의 난감한 표정을 잡는다. 철저한 '자기 디스'다.

'루저'가 된 피디에, 함께 '루저'가 되어버린 소품이지만, 그것으로 이루어진 크리스마스 특집은 이상하게 지금까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해온 이상한 크리스마스 특집의 연장인 양 이물감이 없다. 언제나 썰렁하고 이상해 왔기에, 이제 와 새삼 루저가 되어버린 그것들이 여기서 접목된다 한 들 하등 이상치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심지어, 1박2일의 영광을 깍아먹었다 욕을 먹던 것들이 이렇게라도 재활용되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다. 

그렇게 1박2일의 형식을 차용한 2013년판 크리스마스 특집이 내세운 건 시청자들이 원하는 사람을 찾아가 캐롤을 불러주는 것이다. 건물의 1층 로비 한 켠에서 공익 변호사로 열심히 생활하는 다섯 살 연상의 애인을 위한 '메리크리스마스 온리유'가 퍼지고, 이어서 몰려든 사람들의 '우우우우우~'라는 후렴 합창과 함께 '본능적으로'가 더해진다. 앰프도 없고, 제대로 된 세션도 없지만, 그래도 이건 공연에 가깝다. 다음에 찾아간 아파트 복도에서는 남편없이 홀로 아이도 낳고, 전문의 시험도 치뤄야 하는 아내를 위해 하지만 이웃에 불편을 줄까 조바심을 하며 소리 죽여 '고요한 밤'를 부른다. 이어진 장미 여관의 히트곡 '봉숙이'는 민망함에 몇 마디를 못 넘기고 결국 태교를 위해 중지되고 만다. 마지막 공연은 늦은 밤 어린이 놀이터이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놀이터에서 74번의 시험에서 떨어지고 마지막 한번의 결과를 앞둔 취직 준비생을 위해 '징글벨'과 '말하는 대로'가  하모니카 하나, 기타 반주 하나에 의지해 말 그대로 날 것으로 불리워진다. 

마지막에 이적이 평가하듯이, 음악 프로그램인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서는 모험에 가까운 방송이다. 집에서 텔레비젼을 통해 본 시청자들에게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음색의 노래를 전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적은 덧붙인다. 그러나 그 음악을 듣는 사람과의 교감으로만 따진다면 최고의 방송이었다고. 애인의 따스한 맘을 받은 공익 변호사 여자 친구도, 홀로 남겨진 아내를 걱정하는 군의관 남편의 노심초사를 받아든 만삭의 아내도 캐롤 선물을 받아들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결국 75번째의 입사 시험도 실패했다는 자막을 남긴 입시 준비생도, 어쩐지 마냥 주저앉아 있을 것만 같지는 않았다. 시간에 쫓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조심스레 날 것으로 전달된 캐롤 선물이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크리스마스의 따스함이 고스란히 전해진 선물같은 방송이었다. 

이제 와 하는 이야기지만, <1발2일> 시즌2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복불복 등의 미션을 하면서, 멤버들에게 마음이 약해 휘돌리고 마는 피디를 보면서, 독한 예능 <1박2일>의 앞날이 순탄치 않으리란 예감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오늘날의 시즌2의 평가에서 보여지듯이 냉혹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 독하지 못한 피디가, 다시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돌아와 보여준 1박2일의 잔향이 남은 크리스마스 특집은 성공적인 듯 싶다. 1빅2일 인듯 싶지만, 피디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 따스함이 묻어난다. 자신의 실패를 여유롭게 디스해 가며 만들어 낸 크리스마스 특집에서, 실패가 아닌 경험이 된 자산이 보여진다. 그리고 혹독한 경험 속에서도 잃지 않은 피디의 훈훈한 노선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러기에, 74번 떨어진 취업 준비생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생경하지 않다. 이렇게 실패조차 유머로 넘길 수 있는 여유, 그게 2013년 <유희열의 크리스마스 > 특집의 코드이자, 성과이다. 

그리고 덧붙여, 이렇게 생뚱맞은 모험을 한 크리스마스 특집이 이제는 유희열의 솔직뻔번한 입담에만 의지해 조금은 뻔해져 가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 이상한 크리스마스 특집을 계속 볼 수 있기를~


by meditator 2013. 12. 21. 10:24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를 보기에 앞서, sbs의 파일럿 프로그램 <슈퍼 매치>를 보았다. 

40년차 양희은에서, 겨우 2개월의 김예림까지, 세대를 막론하고 선, 후배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는 말로는 즐기겠다고 하지만, 수차례 바뀌는 편곡의 리듬에, 화려한 물량 공세를 쏟아부은 무대 장치에, 한 사람 만으로도 꽉 차는 무대를 무려 두 팀이 어우러져 혼신의 노력을 해댔으니, 때로는 그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낄 정도로 충분히 존재감있는 무대였다. 그걸 보면서, 조금 있다 보게 될,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떠올리며, 과연 이제 그 프로그램이 케이블의 사생결단 서바이벌과, 공중파의 다양한 대결 프로그램들 속에서 초라하지 않게 버틸 수 있을까란 회의가 불쑥 솟아 올랐다. 
그래도, 200회인데, <슈퍼 매치>의 우승자를 뒤로 하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채널을 돌렸다. 아, 그런데, 초라하지 않을까? 이제 더 이상 이 프로그램의 존재감이 없을까? 나의 오산이었다. 여전히 200회를 맞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MC 유희열이 부른 마지막 노래 '여름날'처럼 푸르르게 빛나고 있었다.

(사진; 뉴스24)

비록 이 지면은 아니었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특집을 감격해 하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거 같은 데,  200회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 특집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이 프로그램의 100회 특집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때도 그랬었다. 100회 특집의 이름은 'The Musician', 무대에서 화려하게 돋보이는 가수를 위해 무대 뒤에서 수십년 묵묵히 연주를 해왔던 연주자들에게 헌정하는 특집이었다. 기타의 대가 함춘호와, 하림과, 50여년을 아코디언을 연주한 심성락 선생의 연주 장면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 특집을 위해 인순이, 루시드 폴 등 가수들은 무대의 중심이 아닌, 그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며 흥겨이 그들의 백댄서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무대의 감상을 묻는 시간, 함춘호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기에, 그 프로그램이 100회 라는 시간을 건너왔기에 용기를 내어 마련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마련했었던, 루시드 폴과 함께 기존의 노래를 편곡하여 다시 부르던 포맷은 이제 <나는 가수다>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고, 아이유, 효린 등 신인 가수가 나와 선배의 노래를 다시 부르던 기획은 이제 <불후의 명곡>을 통해 전설을 노래하는 상시적 아이템이 되었다. 한때 반짝 인기를 끌다 사라진 mbc의 신인 발굴 프로그램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늘상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해오던 일상의 숙제이다. 이제는 스타가 된 아이유와, 알리와, 존박 등이 떨리는 모습으로 조심스레 무대에 서던 곳이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으니까. 금요일 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토요일 0시 반에 시작하여, 2시 정도가 되어야 끝나는 밤도깨비 같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화려하게 조명받지 않아도 꾸준히 우리의 음악을 다양한 시도로 시청자들에게 풍성하게 전해주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세간에 그들의 이름과 음악만으로 회자되는 언더 그라운드의 밴드와, 인디 뮤지션들이 처음으로 무대를 서는 기회를 얻는 곳이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12년만에 첫 무대라며 눈물을 적시며 떨던 '바스코'에게 기회를 준 곳이 바로 이 프로그램이다. 케이블에서도 조차 명멸해가는 고품격 음악 방송들 사이에서도, 늦은 시간이라도 감지덕지 꾸준히 자기 자리를 지켜왔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간이 흘러 200회가 되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 특집은 'The Fan'이다. 
이번 <슈퍼스타K>시즌 5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이 '한경일'이다. 200년대 꽃미남의 가수로 반짝 등장했다 사라졌던 가수로, 이제 다시 <슈퍼스타 k>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한경일이란 기존의 가수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도 나와야 하는 모습은 바로 우리나라 가수들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내 준다.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마치 선견지명이라도 있었다는 듯이, 가수들의 가수, 가수들이 팬이 되어 좋아하는 가수,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미처 그들의 진가가 발휘되지 않는 가수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파일럿 프로그램 <슈퍼 매치>에 출연자를 보면, 물론 이승환이나, 이현도처럼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가수들도 있지만, 그 중 김태우, 윤도현, 바비킴 등은 타방송의 대결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가수들이다. 심지어 그 중 바비킴은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에 이어 <슈퍼 매치>까지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이렇게 인기 가수들이 중복되어 몇몇 프로그램을 섭렵하는 것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해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200회 특집의 자리를 내주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다운 기획이고, 그러기에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빛나고, 아직도 이 프로그램이 존속해야 할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낸 시간이 되었다. 

(사진; osen)

이효리의 '콜'에도 '시간 나면 한번 생각해 볼게요'라며 시크하게 자신의 음악과의 어울림을 고민했다던 김태춘, 마이클 조던에게 농구를 배우는 기분이라며 감격해 마지 않지만, 그런 그들이 여전히 하드 롹을 고집해서 좋다는 윤도현과 로맨틱 펀치의 어울림, 장기하 보다 더 맛깔나게 가사를 음악에 맞춰 요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증명한 김대중, 지금까지 박정현과 함께 했던 임재범, 김범수 등에 견주어 결코 그 음색의 독특함이 뒤지지 않는 이이언, 그리고 까다로운 유희열이 듣고 깜짝 놀랐다고 극찬을 한 선우 정아까지, 마치 무림의 고수들이 등장해 각기 자신의 장기를 뽐내듯, 컨트리, 락, 발라드, r&b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실력자들이 있었어 라고 감탄하게 되는 특집의 시간이었다. 

마치, 당신들이 편식하는 음악 뒤에, 이런 또 다른 세상이 있어요. 우리는 이런 세상을 당신들에게 앞으로도 꾸준히 인도하고 싶어요 라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200회 '음악으로 전한 소감문'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남들은 거리를 싸돌아 다니며 불태우는 금요일 밤을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고 앉아 불침번을 서게 만드는 버거운 싸움을 계속하게 만드는 고단하지만 기대에 부푼 강요의 시간이다. 
Let's go 300회!


by meditator 2013. 8. 24. 10:03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란 프로그램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고품격 음악 방송'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말을 진행자 유희열 자신이 할 때마다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고품격 음악 방송'이란 접두어는 '라디오 스타'가 가져가 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니 이젠 방송 3사 아니 종편까지 포함해서 (케이블 엠넷에 윤도현의 MUST가 버티고 있긴 하다) 거의 유일한 고품격 음악 방송은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그런데 별일 없으면 방영되는(정말 별일 없으면이다. 명절이나 특집만 있으면 언제나 맡아놓고 결방한다), 열 두시에 한다고 좋아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제 아무리 불금이라지만 눈 비비고 기다려서 한 시나 되어서야 방영되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어느샌가 '은근'과 '끈기'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4주년을 맞이한 소감은 버텨줘서 고맙다!

 

그렇게 변함없이 4년을 버텨준 <유희열의 스케치북> 4주년의 특집은 릴레이 특집 ‘THE SONG – VOLUME 시리즈이다. 총 3주에 걸쳐 방송되는 이번 특집은 1탄부터 ‘러브레터’ ‘유&아이’ ‘라라라’로 각각 사랑, 이별, 그리고 위로의 노래들을 회당 10곡 씩, 총 30곡을 소개한다.

여기서 제법 음악 프로 좀 봤다 하는 사람들은 저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비록 유희열이 '절대 없어진 음악 프로그램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러브레터'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전신이던 윤도현이 진행하던 음악 프로그램이었고, '유&아이’ 는 이효리와 정재형이 진행하던 SBS의 음악 프로그램이었고, '라라라'는 윤종신 등 많은 MC들이 거쳐간 진짜 MBC의 고품격 음악 방송이었다. 그리고 이들 세 프로그램은 이젠 모두 방송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은 사라진 프로그램들이다. 그나마 이문세, 노염심, 이소라 등 쟁쟁한 MC들이 진행해왔던 음악 프로그램의 전통을 지닌 KBS2만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라는 명맥을 유지할 뿐, '유&아이'와 '라라라'가 사라짐으로써 MBC와 SBS는 그나마 이런 류의 음악 프로그램 존립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주말이 되면 연이어 드라마를 몇 개씩이나 방영하면서, 연신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신인 가수들을 배출해내면서, 정작 '프로'가 된 가수들이 자신의 음악을 소개할 프로그램들은 사라지거나, 밀려나 버린 것이다. 덕분에 신곡을 들고나온 가수들은 좀 연배가 어리다 싶으면 '음악 중심', '뮤직 뱅크' 등에서 어린 아이돌들 틈에 끼어 자신의 노래를 홍보할 기회를 얻거나, 그나마도 아니면, '세바퀴'나 '라디오 스타'를 방문해 개인기에 곁들인 홍보를 해야 하는 처지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평균 시청률이 2.7%란다. (물론 한때는 6%를 넘보던 때도 있었다)그런데 그 요즘 인기있다는 아이돌들이 주로 출연하는, 금요일이나 주말의 황금 시간대를 차지한 '뮤직 뱅크', 'SBS인기가요','쇼 음악 중심' 의 평균 시청률이 월등하게 좋은가 하면 그도 아니다. 2%~3% 대의 도토리 키재기이다. 아니다. 오히려 그 늦은 밤 눈비기고 찾아보는 열혈 시청층을 감안한다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저력은 오히려 대단한 것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한때 <나는 가수다> 그리고 이제 <불후의 명곡>을 통해 지나간 음악을 제 편곡하여 들려주는 시도를 처음 한 것도 바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요, 이제는 유명 가수가 된 십센치와 아이유와 알리를 좋은 가수라며 소개해 준 것도 바로 이 무대였었다.

 

그래서 이제는 모두 사라진 그 기억을 되살리는 4주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사라진 내 어린 날의 동네를 떠올리듯 애잔하지만, 추억만이 아니라, 당대의 치열한 음악 현장을 담아내는 '노고'의 시간이기도 하다. 특집으로 한 회당 열 곡의 노래를 채워넣기가 그리 버겁지 않을 만큼. 더구나 아이돌 음악이 정점을 지나고, 힙합, 인디 장르의 다양한 음악이 저변을 넓히고 있는 시점에서 더더구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존재 가치는 배가가 될 것이다.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아름다운 추억을 밀어내고 마구 부숴버리듯이, 시청률이라는 편의주의로 그나마 남은 이 추억마저 짓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통영 달동네가 한국의 몽마르트라 불리며 관광 명소가 되듯이, 오랜 전통을 지키며 버텨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1박2일의 정희섭 피디를 맞이하여, 새롭게 그리고 풍부하게 우리 음악의 본령을 전달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3. 4. 2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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