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김은숙이다. <태양의 후예>로 최근 미니시리즈로는 언감생심 38.8%의 기적같은 시청률과 신드롬을 만들어 내더니, 처음으로 간 tvn에서 <응답하라 1998>에 필적할 만한 성과와 신드롬을 기록했다. (16회 18.78%, 응답하라 1998 20회 18.8% 닐슨 코리아 기준) 더구나 김원석 작가의 스토리텔링을 빌렸음에도 예의 김은숙 작가 작품에 언제나 따라다니던 '부실한 서사'의 약점조차도 오랫동안 준비해왔다던 작가의 말처럼 자신을 뛰어넘는 경지를 선보이며, 김은숙에 대적할 자는 김은숙 밖에 없다는 명불허전의 경지를 이루어 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김은숙이 경지를 이뤘고, 이응복이 그 경지를 휘황찬란하게 했으며 공유가 개연성이 되었다 해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도깨비>를 통해 김은숙이 이뤄낸 성과와 아쉬운 점을 함께 짚어보자.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김은숙의 현세주의 
무엇보다 <도깨비>를 통해 도달한 것은 2004년 <파리의 연인> 이래 대한민국의 '사랑' 이야기를쥐락펴락해왔던 작가 김은숙의 세계관이다. 김은숙 작가가 오랫동안 고심해 왔다던 <도깨비>는우리의 전래 설화였던 '도깨비'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냄과 함께, 그간 여러 작품을 통해 피력해 왔던 작가의 세계관을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명약관화하게 정립해 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첫 회부터 몸을 관통하는 '검'을 꼿고 등장했던 비운의 도깨비(공유 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며 홀로 900여 년을 견뎌온 그의 오랜 숙원은 자신의 몸에 꼿힌 칼을 뽑고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깨비'에게 역시나 첫 회부터 꼿혀버린 시청자들 역시 그의 '안식'을 기원함과 동시에 그것이 곧 그와의 이별이 될 것이란 슬픈 예감으로 인한 아이러니한 감정으로 16회의 종주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바로 이런 집착과 별리의 감정이 여느 남성 캐릭터와 달리 '도깨비'를 곡진하게 생각토록 만드는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그토록 '검'에 집착하던, 아니 영원한 안식에 14회까지 천착하던 드라마는 13회 마지막 드디어 도깨비 신부의 손을 빌러 도깨비가 자신의 몸에 뽑힌 검을 뽑고, 산화되며 끝이 나는가 싶더니 아니었다. 회차로는 3회가 남았던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지난 주 산화되는 도깨비를 보고 통곡하다시피 토해낸 울음이 무색하게 바로 다음 회 , 물론 9년만이지만 케익의 촛불이 꺼지자 등장했다. 

아니 무색한 건 도깨비만이 아니다. 도깨비 덕분에 저승 명부에서 '기타누락'되었던 지은탁(김고은 분)도, 이루어 지지 못한 사랑과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던 저승사자(이동욱 분)와 김선(유인나 분) 역시 '환생'하였다. 저승사자가 내민 찾잔을 거부했던 지은탁의 기억이 명료한 것과 김선의 기억이 없는 것의 디테일한 설정 따위는 차치하고. 이들은 모두 우리가 사는 '이곳'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도깨비는 기꺼이 사랑하는 이가 늙어가고 죽어가는 그 '별리'를 감수하고 이곳의 '신'으로 남기를 결정했다. 

이렇게 김은숙이 그려낸 등장인물들의 삶은 속칭, 우리 속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란 식이다. 저곳에서의 안식 대신, 쓸쓸하고 때론 외롭고 힘들지만, 사랑하는 이와 현실적인 행복을 나눌 수 있는 현실의 삶이다. 서양의 내세관과는 정반대이다.  드라마 속 김신은 아마도 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볼 쓸쓸한 여운을 남겼지만, 설화 속 우리네 도깨비가 길 가는 사람과 씨름을 겨루었다는 친근한 캐릭터를 '사랑의 전설'로 승화시켜낸 것이다. 

지극히 현세주의적 행복관은 거기에 '주체성'이 더해지며 매력이 더해진다. 영원의 안식 대신 현실의 쓸쓸한 사랑을 택한 도깨비의 선택은, 드라마 속 신이 벌여놓은 운명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저승가는 길의 찾잔일 망정 자신이 선택하고야 마는 인간의 주도성을 확인한다. 그래서 기타누락자의 삶은 스스로 결정지어 마무리되고, 저승사자도, 김선도 신이 벌여놓은 운명 속에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의 주도성을 회복한다. 마치 작가 김은숙은 말하는 것과 같다.  판을 벌여놓은 것은 신이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건 당신들이라고. 

그리고 그 주체성의 회복은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자신감과, 여기서 행복을 얻을 것이라는 낙관성에 기초한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밤을 진압한 십자가에도 불구하고 그 십자가의 소망이 지극이 '현세 기복'적이란 우리네 현실적 신앙관, 즉 우리네 현실적 삶의 자세와 이어진다.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도 다 현실의 후손들이 잘 되기를 비는 지극히, 어찌보면 속물적인 세계관이다. 즉 김은숙 작가의 작품 속 인물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거침없이 ppl을 과용하지만 그래도 의식은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현실에서의 삶에 충실하고, 현실에 최선을 다하며, 그리하여 그런 자신의 노력에 따라 신이 벌여놓은 혹은 기존의 제도라는 그물망 안에서도 각자 나름의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소박한' 주체성이다. <도깨비> 속 지은탁은 김신의 부에 매혹되지만 마지만 유치원 아이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듯, 건강한 부르조아적 시민 의식의 현신이다. 그리고 그런 김은숙 작가의 세계관은 현재 자신들을 대한민국의 '건강한 중산층'이라 믿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현대사를 이끌어 온 자신감이자, 주체성이다. 아마도 중산층이라 믿는 그 신화가 붕괴되기까지는 지속될. 



역사의, 전설의 사유화
무엇보다 <도깨비>란 드라마를 김은숙 작가의 작품 중 수미일관의 완성도를 가진, 주제 의식이 돋보인 작품으로 만든 것은 '도깨비' 설화의 현대적 해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간 일본 오니 설화의 오염으로 인해 머리에 뿔 두 개가 달린 괴물같은 형상의 도깨비 그 이전에 서민들의 삶에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기복 신앙'의 대상이 되었던 풍요의 신으로써의 원형말이다. 

드라마는 그것을 위해 빗자루나 밥그릇 등의 변신이었던 도깨비를 무속 신앙에서 등장했던 장수신의 형태로 불러온다. 마치 백성들의 편에 서서 왜구와 오랑캐를 무찔런던 최영 장군이 무속의 신이 되듯, 고려 시대 오랑캐를 물리치던 김신을 21세기의 도깨비로 변신시킨다. 그는 여전히 메밀밭을 사랑하고, 부를 지니고 있으며 비등의 천재지변을 주재하지만, 조울증처럼 오락가락하는 감정의 변화를 가지며, 인간적인 면모를 지난 현대적 신으로 돌아왔다. 거기에 장수로써 다수의 사람들을 죽이며 피를 묻혔던 전과가 그의 검으로 '징죄'되는 과정과 영생으로 그는 신으로써의 권능과 불운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마치 신이 되지 못해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헤라클레스처럼. 

그런데 현대로 온 도깨비 설화가 만난 건, 예의 김은숙 특유의 로코다. <태양의 후예>에서도 그랬듯이 좀 더 전통적인 운명적 사랑은 서브 캐릭터의 서사로 양보하고, 그보다 트렌디한 서사를 주인공에서 부여하며 양수겹장으로 두둑하게 마련된 때론 운명적이지만, 때론 가장 현대적인 사랑 이야기는 고등학생과 아저씨의 만남조차 마비시켜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미성년과의 원조 교제 식 설정보다 애초에 마련된 역사로서의 서사이다. 그 옛날 이야기 속 빗자루나 요강 대신 김신은 백성들의 염원을 해결해주는 장수요, 왕의 신하였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는 적을 싸우던 전장이 아니라, 자신을 역적으로 몬 왕의 앞이었다.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있었지만, 동생을 왕비로 가진 왕의 앞에서 무기를 버린 채 신하로써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물론 드라마는 그의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왕의 아내로 만들어 왕과 신하인 그를 한 여자의 지아비이자, 오라비로써의 애증과 사랑의 관계로 치환한다. 또한 왕과 신하의 군신 관계를 인간대 인간의 시기와 용기로 치환한다. 즉 엄밀하게 김신과 왕여의 관계는 '사회적 제도적' 관계이지만, 그것은 왕비라는 존재가 개입하면서 개인적 감정적 관계로 해소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작 <도깨비>를 관통하는 것은 무기력한, 하지만 비겁한 왕이었던 왕여와, 그의 신하로써 기꺼이 죽음을 택했던 김신의 '역사적' 권력의 악연이지만, 정작 도깨비 신부가 등장하며 그 서사가 비껴가며 김신과 왕여의 관계는 그들이 한 집에 살면서 인간적 관계를 통해 이미 관계의 진실이 드러나기도 전에 누그러지며, 뭉그러지기 시작한다. 그러기에 김신와 왕여라는 역사적 제도적 문제는 김신과 왕여 각자에게 신이 부여한 '업보'로 작동한다. 그래서 그들 각자는 과거의 업을 이승에서 해소하기에 이른다. 이런 방식은 저마다의 업보를 업고, 풀고가는 불교식의 윤회론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그들의 역사적 사회적 관계를 '사적, 개인적인 관계'로 풀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아마도 <도깨비>를 다 보고 나서 허탈한 것은 오랫동안 쓸쓸한 삶을 이어나갈 김신에 대한 아련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벌여놓은 역사적 사회적 구도가, 결국 김신과 저승사자, 김선이라는 관계적 차원으로 축소화되는 데서 오는 허무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이런 <도깨비>를 감탄만 할 일인지. 뭔가 그럴듯하고, 아련하지만 어딘가 한편에서 껄쩍지근한, 그것이 <도깨비>를 보고 난 후의 글쓴이의 어정쩡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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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7.01.22 14:12

미자'라는 용어가 있다. 한국 가요 역사상 50년이 넘는 가수 활동을 하며 2000 곡이 넘는 곡을 발표하신 가수 이미자 씨의 그 '미자'가 아니다. 일제 시대의 잔재로 그 시대 흔했던 '자'자 돌림의 '미찌꼬'의 미자인 듯 보이는 이 용어는 '인터넷 공간'에서 미성년자의 줄임말이다. 지난 시대의 어느 여성의 이름같지만 실은 아직 '법적'으로 한 몫을 할 수 없는 한계적 인간형, 미자, 아니 미성년자. 하지만 공교롭게도 올 한 해 가장 화제가 되었던 케이블 tvn과 종편 jtbc가 한 해를 마감하며 방영하는 금토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바로 이 '미자'들이다.  




도깨비의 신부, 지은탁
성년이 되지 않은 여배우들의 활약 때문일까? 올 한 해 찾아보면 '미성년'이 여주인공으로 등장한 드라마들이 꽤 눈에 띤다. 김소현이 활약했던 tvn의 <싸우자 귀신아>, kbs2의 <페이지 터너>가 그랬고,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구르미 그린 달빛>의 김유정이 분했던 홍라온이 그랬다. <페이지 터너>야 일종의 '학교' 시리즈물로 그렇자 치고, <구르미 그린 달빛>은 시대극이라 그렇다 치지만, 어쨌든 돌아보면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미성년자' 주인공들이 꽤 많이, 그것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에 등장했던 것이다. 허긴 일찌기 김혜수는 15세의 나이에 <사모곡(1987)>의 여주인공이었으니 그걸 새삼스럽다 할 순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성년자 배우들의 활약과 따로 떼어놓을 순 없지만, <구르미 그린 달빛> 방영 중 불편하다는 반응이 등장했듯이 아직 미성년인 여주인공을 청소년물이 아닌 드라마의 여주인공으로 '설정'한 지점에 대해서는 분명 한번쯤은 짚어보아야 할 지점이다.

그런 가운데 그런 짚어보아야 할 지점에 대한 방점을 찍은 드라마가 있다. 바로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tvn의 <도깨비>이다. <도깨비>는 900년을 넘게 살아온 도깨비 김신(공유 분)과, 그 도깨비가 죽을 운명의 모녀를 구해주며 '신부'의 연을 맺게 된 도깨비 신부 18세 지은탁의 사랑을 주된 서사로 삼고 있다. 

드라마 속 고등학생 지은탁은 '사고무친'의 존재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이모네 집에 얹혀 살지만, 말이 얹혀사는 거지, 법적 보호라는 이유만으로 아니 사실은 엄마가 남긴 보험금의 볼모로 갖은 구박과 학대를 받았다. 그런 그녀에게 나타난 운명의 도깨비는 그런 억압적 조건의 그녀를 구해 안락한 생활 환경과 사랑을 준다. 

드라마는 900 살이 넘은 도깨비와 그의 신부로 점지된 지은탁을 삼십대 중반의 아저씨와 소녀의 관계로 드러낸다. 지은탁은 첫 만남부터 도깨비 김신을 그의 900살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라 호칭한다. 그리고 도깨비 역시 지은탁을 첫사랑 소녀로 대접한다. 드라마는 미성년이라는 지은탁의 존재론적 한계를 이미 성년인 배우 김고은을 통해 피해간다. 하지만, 이것 또한 김고은이 <은교>라는 영화를 통해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절묘한 피해가기 내지는 연상 작용의 포석처럼 보여진다. 

드라마는 '도깨비'를 둘러싼 설화적 설정과 삶과 죽음 사이에 선 도깨비 신부 지은탁을 둘러싼 전설적 서사를 배경으로 삼으며, 하지만 결국은 보호받아야 할 소녀 지은탁과 그녀를 보호하는 도깨비와 그의 측근 저승사자(이동욱 분), 집사 유덕화(육성재 분)의 보호와 사랑을 주된 스토리로 이어간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고무친'의 소녀는 '사랑'과 '운명'을 매개로 만난 아저씨에게 '보호'를 받는다는 이 '기막힌' 환타지. 

현실에서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한 소녀들은 거리의 아저씨들에게서 뜻하지 않은 보호라는 명목의 범죄에 빠져들지만, 드라마 속 '사랑'의 세계에서 아저씨들은 소녀를 가로막는 가난과 재난, 심지어 사고에서까지 '슈퍼맨'이 되어 그녀를 보호한다. 그들은 번연한 서른 중반의 아저씨들이지만 그녀가 첫사랑이듯이 돈으로 소녀들을 유혹하는 거리의 아저씨들과 달리, 사랑에 있어서는 고등학생보다도 더 순진하고 천진하되, 재력과 능력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신적 경계'에 있으니 그 어느 누가 감히 이 사고무친의 소녀를 돌보고 사랑하는 그에게 '미성년자 보호법'을 들어 '부적절한 관계'라 손가락질을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더욱이 대번에 500만 빌려주세요라거나, 사랑해요라고 서슴없이 고백하는 이 당돌한 소녀 앞에. 그렇게 드라마는 '전설'과 '설화' 그리고 사랑의 환타지를 빌어, 현실을 윤색한다. 



솔로몬을 자처한 소녀, 고서연
tvn이 소녀와 아저씨의 만남을 통해 '김은숙'이라는 스타 작가의 힘을 빌어 '사랑'으로 2016년의 연말을 덮히려고 할 때, 올 한 해 <뉴스룸>을 통해 공신력있는 언론으로 우뚝 선 jtbc가 선택한 것은 일본의 사회파 작가 미야베 마유키 원작의 학원 추리 소설 <솔로몬의 위증>이다. 하지만 일본 원작이 무색하게 무소불위의 사학, 그리고 거기에 '부역'하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의 '보호'아래 입시 교육에 내몰린 채 '학교 폭력'을 외면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친근하다. 

그 '친근한' 부조리한 교육 현실에서, 일본 원작의 드라마는 당돌하게도 학교에서 벌어진 한 학생의 죽음을 '교내 재판'이라는 해법을 통해 풀어가고자 한다. 하지만 재판에 도달하는 길은 쉽지 않음을 크리스마스를 앞둔 3,4회의 드라마는 그려낸다. 

생각지도 않은 한지훈(장동윤 분)의 등장으로 당혹스러워 한 것도 잠시 학생들 사이에서 남신으로 불리는 그의 인기에 힘입어 순탄하게 서명 작업을 마친 아이들은 교장 앞에 당당히 500부가 넘긴 교내 재판 동의서를 내보이며 재판을 허가받는다. 하지만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의 짧은 시간, 협조적이기는 커녕 적대적인 범인으로 추정되는 최우혁(백철민 분)과 그를 고발한 이주리(신세휘 분)의 태도로 재판은 그 시작부터 난항을 겪는다. 

하지만 드라마는 재판을 하게 되기 까지, 그리고 그 과정과정에서 보이는 고서연(김은수 분)의 태도에 주목한다. 처음에 그저 다른 학생들처럼 최우혁에 의한 이소우에 대한 학교 폭력에 눈을 질끈 감았던 서연, 하지만 그저 늘상 그랬듯이 지나갈 것 같던 그 외면한 폭력이 이소우의 죽음으로 이어지자 서연은 '너희는 공부만 하면 돼'라는 어른들의 말에 의문을 표하기 시작한다. 이제 겨울 방학이 지나면 고 3이라는 지상 최대의 엄정한 과제, 하지만 이소우의 죽음을 목격한 그 순간부터 서연은 공부에만 매진한다며 진실을 외면해 왔던 자신의 태도가 결국 죽음의 방조자가 된 것이 아닌가 반성한다. 그런 서연에게 또 하나의 계기가 되어준 것은 주리의 고발장, 교장 선생님에게 그리고 아빠가 형사인 서연에게 배달된 두 장의 고발장. 하지만 이제 곧 고 3이니 알아보겠다는 아빠의 말에 주춤했던 서연, 하지만 결국 초롱이가 교통 사고를 당하고, 주리가 실어증에 빠지자 자신의 방관에 깊게 반성을 한다. 

그래서 재판을 하겠다고 나서고, 고발장을 나 몰라라 했다는 친구들의 힐난에 솔직하게 자신의 외면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 학교 재판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최우혁 할머니의 사고 앞에 서연은 우혁도 주리도 모두가 서로의 탓을 할 때 물벼락까지 맞으며 사죄를 한다. 미성년자라는 존재로 3자로 밀어제친 어른들 앞에서 당장하게 미성년이라도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던 서연은, 나아가 문제의 주도적 해결만이 아니라, 사건을 방관했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자임하고 나섬으로써 '어른'을 앞선다. 


두 미성년자의 선택, 스스로 도깨비의 신부라 자청하고 사랑을 선언한 지은탁과 학내에서 벌어진 죽음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고서연. 같은 미성년자이지만 두 사람의 선택을 둘러싼 두 드라마의 서사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그 어떤 성인 여성보다 당돌하게 말도 잘하고 자신의 선택에 똑부러지지만, 안타깝게도 그 지은탁의 존재는 두 보호자연하는 '사랑'하는 아저씨들이 없다면 무색하다. 안타깝게도 드라마는 사회적 문제를 사랑으로 희석 혹은 희화화하고 있다. 진정성있는 혹은 운명적 사랑이라 주장하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그에 반해 때로는 자신들의 문제에 끼어드는 한지훈에게 자존심상해하고, 홀로 눈물짓지만 진실 앞에 물러서지 않으려 하고, 방관자의 부끄러움에 진솔한 고서연의 행보는 지은탁보다 어쩌면 훨씬 더 성숙할 수 있다. 

최근 이어지고 있는 촛불 집회에서 당당하게 그 목소리를 높이며 등장한 청소년들, 한편에서는 우리 사회의 투표 등을 통해 드러나는 민심의 보수성을 우려하며 정치적 연령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할 만큼 그들의 똑부러짐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다. 어느덧 드라마 속 청소년들은 사랑도 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재판'으로 풀어낼 만큼 당차졌다. 이 사랑과 이성의 두 청소년들의 행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12%가 넘는 <도깨비>와 0.97%의 <솔로몬의 위증>의 하늘과 땅같은 시청률의 차이가 의미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지 생각이 깊어지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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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6.12.25 19:44

드디어 신이 강림하셨다. tvn으로 간 김은숙 작가의 신작 <쓸쓸하고 찬란한 神-도깨비(이하 도깨비)>가 그렇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도깨비>는 그간 tvn금토 드라마의 고지였던 <응답하라> 시리즈의 첫 방 시청률(6.7% 평균,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을 너끈히 넘겼고(6.9%), 2회만에 수도권 10%를 넘기며(10.0234%)를 넘기며 신기록을 갱신했다. 역시 명불허전 김은숙이라는 성공 신화를 이어나갔다. 




김은숙과 이응복의 절묘한 콜라보 
물론 <도깨비>가 첫 방영부터 시선을 사로잡은 데 있어 역시 김은숙이라고만 한다면 아쉬울 사람이 있다. 바로 첫 회 여성은 물론 남성 시청자들의 눈마저 사로잡을 만한 블록버스터 급의 환타지 사극으로서의 면모를 가감없이 선보인 이응복 연출이 그 주인공이다. 2013년 <상속자들>은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최고 시청률 25%를 넘겼지만 작품 초반 동시간대 경쟁작이었던 이응복 피디 연출의 <비밀>에 작품면에서나 시청률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김은숙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바로 '적과의 동침'. 다음 작품에서 방영 채널을 kbs2로 옮긴 김은숙 작가는 이응복 피디를 연출자로 합류시키며 <태양의 후예>라는 2016년 최대의 히트작을 빚어낸다. <태양의 후예>는 <상속자들>에서 김은숙 작가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스토리 텔링의 부실함을 김원석 작가의 든든한 원작으로 채우고, 거기에 그리스를 배경으로 이른바 '응복내'라 속칭 칭해지는 이응복 피디의 예술적 미쟝센으로 작품을 업그레이드시킨다. 덕분에 결국은 의사와 군인이 연애하는 이야기였지만, 그리스의 풍광과 외국의 전장에서 피어나는 인류애라는 정서를 더한 <태양의 후예>는 그 평범한 이야기를 보편적 인간애의 고급함으로 전달한다. 

그렇듯 12월 2일 첫 선을 보인 <도깨비> 역시 김은숙이라는 이름보다는 이응복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올릴 오프닝을 선보인다. 어린 왕의 시샘으로 역적으로 몰려 죽음에 이른 장수의 서사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지만, 그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cg로 버무려져 환타지 사극으로 등장하는 순간, 신선하고도 웅장한 세계로 시청자를 흡인시켜 버린다. 

이 웅장한 환타지 사극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주인공이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 예전 만화에서 등장했던 오래된 빗자루나, 그릇들이 변신한 깨비깨비 도깨비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 옛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장수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신격화시켜 무속의 신으로 등극했던 최영 장군이나, 삼국지의 관우같은 '신'이다. 드라마는 현실의 억울함과 백성들의 숭배라는 역설적 조건을 '도깨비'의 필요 조건으로 등장시키고, 거기에 전장에서 수많은 피를 보았던 장수라는 존재론적인 한계를 몸에 칼을 꽂은 채 죽음을 향해 영생의 세계를 떠도는 원혼이라는 절묘한 운명론적인 장치로 더해 '도깨비 김신(공유 분)'라는 한국적 신을 완성시킨다. 오랫동안 도깨비라는 작품을 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작품답게 '도깨비'는 그 운명적 서사와 캐릭터에서 극 초반 단박에 시청자의 가슴을 울린다. 



그리고 그 영생의 저주를 풀 인물로서 그의 신부로 등장하는 '무명'이란 이름의 죽어야 했을 운명의 소녀 지은탁(김고은 분), 그녀의 슬픈 운명 역시 도깨비의 신부답게 시선을 잡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을 쫓을 저승 사자 (이동욱 분)와, 아직은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캐릭터만으로도 두드러진 써니(유인나 분), 이 현실과 비현실을 오고가는 캐릭터들의 존재만으로도 <도깨비>는 흥미를 자아낸다.  

하지만 신선한 서사, 그 서사를 압도하는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2회에서 분명해졌듯이<도깨비>의 본질은 바로 슬픈 운명의 신인 도깨비 김신과 그 운명적 상대자 지은탁의 사랑이 주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군인에서 신까지, 구원자들
여기서 한번쯤 주목해야 할 것은 2016 올 한 해 시청률 고공행진을 갱신한 작품들이 주인공들의 면면이다. 앞서 언급한 최고 시청률 38.8%의 <태양의 후예> 속 남자 주인공은 전 국민에게 졸지에 '말입니다'란 어색한 심지어 이제는 군대에서조차 쓰지 않는 군대 용어를 습관으로 만든 특전사 대위 유시진(송중기 분)이다. 그는 특전사 대위라는 사실상 군대에서 그리 높지 않은 직책이 무색하게 드라마 속에서 도대체 안되는 것이 없는, 심지어 총에 맞고도 다음 날 바로 실전에서 활약하는  능력자로 의사 강모연(송혜교 분)는 물론 대다수이 여성들을 매료시킨다.

유시진의 바톤을 이어받은 건, 최고 시청률 23.3%의 <구르미 그린 달빛>의 세자 이영(박보검 분)이다. 그 역시 여주인공을 위해서라면 세자의 신분으로 사신에게 칼을 겨눌 정도로 물불을 가리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제 <도깨비>와 졸지에 자웅을 겨루게 된 공중파 수목 드라마의 <푸른 바다의 전설>의 주인공은 셜록의 능력치에 최면술까지 구사하는 능력자 사기꾼이다. 



그리고 이제 도깨비, 그의 진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것은 2회 마지막 엔딩씬에서이다. 이모의 빛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납치당한 은탁은 간절히 김신을 원하고, 그에 응대하듯 납치 차량이 달리던 가로등이 하나씩 꺼져간다. 그리고 저 멀리서 등장하는 검은 실루엣, 그 씬만으로 이 드라마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다. 아마도 김신은 죽을 운명의 무명이었던 은탁이란 존재로 부여하듯 그녀의 삶을 구원할 것이다. 

이렇게 고공 시청률 행진을 보이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능력자다. 2016년만이 아니다. 일찌기 전설을 썼던 <푸른 바다의 전설> 박지은 작가의 전작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 주인공은 외계인, 그리고 그에 앞서 <구르미 그린 달빛>의 모태가 된 <해를 품은 달>은 조선의 가상 왕이었다. 이렇게 해를 거듭하면서 '로맨스'드라마들은 그 규모가 블록버스터급으로 향상되는 것과 더불어, 남자 주인공의 능력치도 업그레이드 되며,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듯 사랑을 수행한다. 시청자들은 외계에서, 해외의 전장으로, 과거로, 그리고 이제 신계까지 넘나들며 그 능력으로 여성을 구원하는 남자 주인공의 사랑으로 행복해진다. 현실이 암울할 수록,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더욱 능력치를 갱신하며 이 드라마를 보는 이들을 위무한다. 과연 이 '블록버스터급 위로의 사랑'이 어디까지 펼쳐질 지, 신 그 이상의 사랑은 무엇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물량과 스타로 대형화된 한국형 로코물의 진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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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6.12.0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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