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개과천선>이 종영되었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종영과 함께 상반기 드라마 계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던 이른바 '장르물'의 약진도 함께 마무리 된 듯하다. sbs는 5월 1일 <쓰리데이즈> 종영 이후 형사물 <너희들은 포위됐다>를 방영중이지만, 형사물의 외피를 쓴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경우는 장르물이기 보다는, 신참 형사들의 성장기와, 늘 그렇듯이 경찰서에서 연애하기에 촛점이 맞춰진 양상이다. kbs2의 월화 드라마<빅맨>의 후속극은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트로트의 연인>이고, 수목 드라마<빅맨>의 후속 <조선 총잡이>는 개화기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기반해 있긴 하지만, <공주의 남자>와 비슷한 무협복수극에 가깝다. mbc <개과천선>의 후속은 <운명처럼 널 사랑해>, tvn<갑동이>의 후속은 <연애말고 결혼>처럼 로맨스물로, 마치 그간 장르물로 찌푸려진 미간을 달달한 사랑이야기로 달래주겠다는 듯이 약속이나 한 듯 익숙한 사랑 이야기들이 포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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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로만 설명할 수 없는 성취
되돌아 보면 동시간대에 서로 시청률 경쟁까지 벌이며 장르물이 시청률 파이를 나눠가지던 2014년 상반기와 같은 때가 있었던가 싶다. 덕분에, 장르물에 목말라 했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축제'와도 같은 시간이었고, 반면, 겹치는 장르의 드라마가 동시에 반영되는 바람에, 갈리게 된 시청층은, 안그래도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던 장르물의 시청률을 깍아먹어, 장르물 자체의 대중성을 폄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표절도 불사하고, 개연성 따위는 제껴둔 채,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여, 한류붐에 편승하여, 막장의 전개조차도 마다하지 않던 우리나라 드라마 계에서, 2014년 상반기의 궤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고 공공 자산으로서의 방송의 책임을 다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장르물의 첫 포문은 3월 5일 <쓰리데이즈>가 열었다. 
<싸인>의 김은희 작가와, <뿌리깊은 나무>의 신경수 피디, <추적자>의 손현주, 그리고 20대의 대표적 배우인 박유천의 조합만으로도 관심을 이끌었던 <쓰리데이즈>는 걸고 넘어진 것은 도발적으로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재벌 기업의 컨설턴트라는 과거를 가진 대통령(손현주 분)은, 과거 자신이 공모자가 되었던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으로 인한 양진리 양민 학살의 진실을 한태경의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면서, 진실을 알리고자 나선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이미 지나간 과거이고, 당장의 먹고 사는 나라 경제에 일말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측근의 만류에도, 대통령은 '그래야 하는 거잖아요'라는 '당위성'을 내세우며 나라를 지키는 대통령으로써의 진실된 본문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밝히고자 하는 진실을 둘러싼 집단과, 직책에 따른 이해 관계가 엇갈린다. 대통령을 지켜야 하는 경호실장임에도, 양진리 학살 현장에서 동료들을 잃었던 함봉수(장현성 분)는 대통령의 저격에 나섰고, 대통령의 오랜 지기이자 최측근이던 신규진(윤제문 분) 그의 국가관에 따라 대통령에 맞서 김도진의(최원영 분) 편에 서지만, 결국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 그렇게, <쓰리데이즈>는 이제는 그 단어 조차도 생경한 '정의'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그리고 그 정의가 피상적인 글 속의 문구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대한민국, 그리고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직업, 일의 문제라는 것을 제기한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그저 밥을 벌어먹기 위한 호구지책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강변한다. 그래서, <쓰리데이즈>를 통해 돋보인 것은, 대한민국의 얼굴인 대통령의 강직한 모습뿐만 아니라, 주인공 한태경(한태경)을 비롯한 그저 대통령을 지키는 일개 경호관일 뿐이었던 '갑남을녀'들의 사명감넘치는 헌신이다. 

공교롭게도, <쓰리데이즈>가 드라마를 통해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직업적 사명감과 정의에 대해 논하던 시기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드라마가 제기한 문제들은 현실의 가장 절박한 문제 제기가 되었고, 드라마 이상의 공감을 자아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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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이 바라본 2014년의 대한민국
이렇게, 2014년 상반기의 장르물들은, 막연한 가상의 현실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얼마 전, 혹은 바로 지금 맞부닦치는 현실의 사건들을 길어올린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회자되는 수많은 음모론들이, <쓰리데이즈>의 그것과 낯설지 않다. <빅맨>에서 자신의 아들을 위해 애꿏은 젊은이의 생명을 엿보는 재벌가의 실상은, 그들이 자신의 상권을 위해 시장 바닥에 목숨을 건 상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골든 크로스>의 상위 1% 가 벌이는 은행 합병과 침탈, 그리고 <개과천선>을 통해 그려진 부실 환율 상품 사태, 재벌 그룹 경영권 싸움, 해외 비자금을 이용한 부당 파산 선고 등은 우리가 이미 사회면을 통해 익숙해진 사건들의 복기였다. 

이렇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을 드라마를 통해 불러들인 상반기 장르물이 바라본 대한민국 사회는 어땠을까? 그 이전의 장르물이나 사회물들이 드라마의 극적 모순 고리를, 억압적 사회, 국가 체제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2014년 상반기 장르물이 바라본 대한민국은 부도덕한 자본의 자기 증식 과정에 짓밟힌 사회이다. 
즉 8,90년대 고도 성장기의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이, 자본의 성장을 부추키는 억압적 체제의 국가, 즉, 국가 자본주의 형태였다면, 이제 2014년의 대한민국은, 국가조차도 자본에 복무하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된 사회라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적 문제 의식이다. 
그래서, 드라마의 절대 악은 자본(쓰리데이즈의 김도진, 빅맨의 강동석)이거나,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상위 !%의 화이트 칼라군(개과천선 차영우, 골든 크로스 서동하)이다. 

이들 장르물과는 약간의 궤를 달리하며 <갑동이>는 십여년 전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현재로 끌어온다. 하지만 과거의 연쇄 살인범과, 그를 흠모하는 현재의 카피캣을 '사이코 패스'로 설정하고, 그들의 심리를 그려내는데 천착했던 이 드라마의 사이코패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를 내뱉는 <쓰리데이즈>의 김도진과, '니가 감히 나를'를 되풀이 하는 <빅맨>의 강동석  등 여타 장르물의 악인들과 연결된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수습을 먼저 고려하는 차영우나,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 '멸사봉공'을 부르짖다가도 돌아서서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서동하의 성정도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즉, 2014년 상반기의 장르물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보이는 '사이코패스'들은 엄밀히 뇌의 이상에서 비롯된 정신병리학적 증상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의식이 결여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의 부재한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고도 성장기에 배태한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사회적 의식은 바로 이들 장르물의 악인들을 양산해 내었다는 것을, 이들 드라마들은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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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물의 주인공들이 선택한 삶
그래서 드라마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의 방향을 취한다. <쓰리데이즈>의 이동휘나, <개과천선>의 김석주처럼, 자본의 '개'가 되어 살아가던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이 했던 과오를 바로 잡으려 하거나, <쓰리데이즈>의 한태경, <빅맨>의 김지혁, <골든 크로스>의 강도윤, <갑동이>의 하무염처럼, 자신이나, 자기 가족들의 복수로 부터 행동의 동기를 가진다.
그렇게 자기 반성이나, '복수'에서 시작된 이들 주인공들의 소극적 동기는, 극이 진행되면서, 그들이 마주한 거대한 음모를 경험하며, 사회적 각성과 자각을 거치며 대승적 자아의 실현으로 귀결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해명하려 했던 한태경은 대통령을 지키는, 즉 진정으로 나라를 수호하는 일에 나서게 되었고, 동생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던 강도윤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던 상위 1%로의 경제 커넥션 골든 크로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일개 시장판 일용직에 불과했던 김지혁은 거대 기업의 오너가 되어 상생 경영의 새 장을 연다. 

보다 전문적으로 우리 사회 현실을 해부하기 위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피치 못하게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등장한다. 거대 로펌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개과천선>은 바로 그 핵심에 서서 비자금을 관리하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쓰리데이즈>는 상위 1%의 청와대 경호관을 등장시켰다. <골든 크로스> 역시 우리 나라를 주무르는 경제 커넥션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검사보와, 그 검사보가 변신한 외국계 펀드 매니저가 극을 이끈다. <빅맨>으로 가면 한 술 더 뜬다. 시장 바닥 양아치같던 주인공은 하루 아침에 대기업 회장의 숨겨진 아들로 둔갑하는가 싶더니, 유통 그룹의 오너를 거쳐 에너지 계열사까지 거느린 회장이 되어야 했다. <갑동이>에서 연쇄 살인 사건의 해결을 형사가 맡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향하는 해결책은 이상적이다. <쓰리데이즈>의 대통령은 스스로 과거사를 밝히고, 그 과거의 최종 책임자인 재벌, 외국 자본에 대항하며,  책임을 지고 하야를 결정한다. <빅맨>과 <개과천선>, <골든 크로스>에서 노동자들은 당당히 주인이 되어, 기업의 경영에 한 몫을 차지한다. 
물론 그런 이상만이 있는 건 아니다. <개과천선>의 마지막 여전히 거대 로펌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으며, 감옥을 나온, <골든 크로스>의 서동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한다. 
하지만, 2014년의 장르물들은 한태경, 김지혁, 김석주, 강도윤, 하무염 등순수한 정의의 인물들을 고지식하게 그려냄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된 우리 현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란 불굴의 진리로 귀결한다. 

때로는 키쓰신이 있기도 하고, 안타까운 밀땅도 있었지만, 대부분, 2014년의 핍박한 현실을 그려내기 위해, 이들 장르물은, 인기를 추구한 드라마들이 노린 웃음기와, 개인기와 사랑 놀음조차 마다한 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무뚝뚝하게 전달한다. 덕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이전 드라마들에 비해 낮은 시청률로 비교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살기 퍽퍽했던 2014년의 상반기에, 이들 드라마들이 전해주었던 진실의 공감과 위로는, 그 어떤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로 설명할 길이 없다. 덕분에, 드라마를 멀리했던 젊은 층조차, 새삼스레 드라마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쓰리데이즈>처럼, 뻔한 한류 드라마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이다. 
부디, 하반기, 그리고 2015년에도, 현실의 고통을 '망각'이나, 환타지'가 아닌 진실로 위로하는 장르물의 행보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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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6.27 18:34

결국, 서동하(정보석 분)는 감옥으로 갔다. 금융위원장은 한민 은행 불법 매각 사실을 시인했고, 마이클 장 역시 구속을 면치 못했다. 강도윤(김강우 분)이 밝혔던 대로, 서동하 뒤에서 그 모든 것들을 조정했던 경제 실세들의 모임, 골든 크로스도 사법의 칼날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한민은행은 복구되었고, 직원들에게 돌아간 주식은 강주완기금이 되었다. 


마지막 회, 다시 한번 강도윤과 서동하가 대치한다. 서동하는 일갈한다. 나는 네가 강도윤이던, 테리영이던 상관이 없었다고, 네가 강도윤을 버리고, 테리영이 되는 그 기간 동안 충분히 너는 '돈의 세계'를 맛보았을 테니 자신을 이해하고, 그 세계에 젖어들었을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리영으로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텐데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강도윤이 어리석다고 한다. 
그런 서동하의 지적을 강도윤은 거부하지 않는다. 서동하로 인해 총격을 입고 땅속에 묻혀 죽어가던 강도윤이 테리영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오로지 '돈'을 위해 자신을 버렸던 시간이었으며, 그만큼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부'의 유혹도 컸다고 시인한다. 하지만, 쾌락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누웠을 때 자신의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결코 테리영으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강도윤은 자신의 동생과 아버지를 죽인 서동하에 대한 복수를 완성했다. 검사보로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복수를 향해 치달렸고, 강도윤으로서 그를 도왔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 자신도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상황을 넘어, 자신을 버리고 테리영이란 금융계의 실세로 거듭나면서도 결국 복수를 포기 하지 않았다.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서동하를 땅에 묻어 버리려고도 했지만, 대신, 내 가족의 원수를 갚은 인적 복수를 넘어, 자신의 아버지와 동생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서동하라는 경제계의 실세와 그의 뒷배를 봐주던 골든 크로스를 붕괴시킴으로써, 보다 내 혈육에 대한 사적 복수는 물론, 대승적인 사회적 복수도 완수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홍사라까지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강도윤은 '정의'를 실현했다. 

물론 강도윤의 복수가 '찰지지'는 않았다. 검사보 강도윤으로서의 폭로가 골든 크로스라는 장벽에 갇혀 외로운 독백으로 사라졌다면, 이제 서동하의 인사 청문회에 불려 나올 만큼의 위치가 된 테리영의 폭로는 너무도 순탄했다. 물론 강도윤이던 시절에 비해 보다 풍성해진(동영상과 전 한민 은행장 등의 증인들) 그의 폭로 하나만으로, <개과천선>에서 차영우 펌의 농간에 놀아나던, 금융위원장은 한민은행 불법 매각을 시인했고, 법원은 순순히 서동하와 그의 조력자 박희서(김규철 분), 마이클 장, 골든 크로스에 대한 수사를 진행시켰다. 비슷한 상황인데, <개과천선>에서 벽에 부딪쳤던 그 장애가, <골든 크로스>는 마지막 회라는 이유만으로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런 명쾌한 혹은 환타지같은 결말이 <골든 크로스>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폄하하지는 않는다. 강도윤이게 굳이 살 생각이 없지 라며 총을 겨누던 마이클 장의 말처럼, 마치 이순신 장군의 명언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자신을 던진 강도윤의 복수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길은 있고, 언제라도 정의는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골든 크로스>는 20부의 시간을 걸려 어렵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자구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결국 박희서와 함께 밀항을 하려다 잡히고 만 서동하는, 강도윤에 의해 잡혀 가는 도중 끊임없이 박희서와 설전을 벌인다. 하지만 설전이라고 하기가 무색하게, 두 사람의 모습은 마치 세상 모르고 날뛰다 걸린 철부지 어린 아이들 같다. 한 나라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좌장과, 그의 조력자 최고 로펌의 대표, 그들이 보인 모습은, 한 마디로 유치하다. 애초에 마음에 두었던 젊은 여자 강도윤의 동생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분노에 차서 날뛰며 골프채를 휘두르던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가장 고상한 척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협잡을 마다하지 않고, 그러다 이익이 갈리면 서로 뒷통수를 치지 못해 안달하고, 서동하가 노출되자, 도마뱀꼬리처럼 그를 자르려고 했던 서동하의 장인이자, 골든 크로스의 대표 김재갑 전 부총리(이호재 분)의 모습도, 그리 어른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홍사라가 지적한 대로, 머리가 좀 똑똑해서 행시에 붙어 가죽 의자에 앉으니 세상이 다 자기 맘대로 돌아갈 것 같았던 서동하는 매번, '감히 니들이' 하며 강도윤과 그의 가족을 깔보다가, 막상 강도윤이 테리영이 되어 나타나자 답삭 꼬리를 내린다. 다시 강도윤으로 돌아온 테리영이 이제 자신을 그 예전 자신이 강도윤에게 했던 것처럼 죽이려고 하자, 무릎을 끓고 싹싹 빈다. 살려만 달라고, 그러면 나라를 위해 멸사봉공하겠다고. 

아마도 <골든 크로스>의 가장 큰 성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정의이기도 하지만, 20회 동안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은 서동하와 그 일족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에 있기도 하다. 말끝마다 '피플'을 들먹이는 박희서처럼, 상위 1%의 자신들을 제외한 다수를 그저, 보통 명사 피플로 퉁치며,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한 도구나 희생양으로만 쓸 줄 아는, 멸사봉공과 애국심을 논하지만, 사실 그런 마음따위는 한 톨도 없이, 어린 아이처럼, 내 것밖에 모르는 '얘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상위 1%라는 것을 <골든 크로스>는 명징하게 밝힌다. 그런 이기적인 욕심들에 의해, 한 나라의 경제 정책이 좌지우지되고, 다수의 사람들의 밥그릇이 들었다 놨다 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강도윤의 복수는 늘 벽에 부딪치고 좌절했지만,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통해 이 나라 상위 1%의 실상을 거듭 학습할 수 있었다. 

장르 드라마로서의 한계에 봉착하여 그리 높은 시청률의 성취를 보이지는 않았지만, '피플'을 유행어로 만들며, 골든 크로스 폐인을 양산했던 이 드라마는, 몇 %의 시청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 시대 장르물의 시금석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사회면에서 벌어졌던 실제 금융 사고의 이면을 유추해 낼 수 있었고, 이른바 '지도층'이라는 상위 1%의 실상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짓밟히지 않기 위해 포기하지 않아야 할 그 무엇에 대한 자각도 명료하게 해주었다. 

주인공 김강우는, 2009년 <남자 이야기> 이후 오랜만에 대표작을 리뉴얼 할 수 있게 되었고, 정보석은, 미운데 어쩐지 '웃픈' 근자에 보기 드문 절대악을 탁월하게 그려냄으로써, <자이언트>의 조필연을 잊게 만들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강도윤 역의 김강우와, 서동하 역의 정보석이 발군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가운데, 마이클 장 등 그외 주변 인물에 대한 캐릭터로서의 풀이 과정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특히나, 서이레나, 홍사라 등 여성 캐릭터는, 주체적 인물로 정립되기 보다는, 누구의 딸, 누구의 조력자 혹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만 설정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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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6.20 06:07

2014년에 들어서면서 <쓰리데이즈>, <신의 선물>을 시작으로, <골든 크로스>, <개과천선>, <빅맨> 그리고 케이블의 <갑동이>, <신의 퀴즈 4>까지 다양한 장르물의 드라마들이 선전하고 있는 중이다. 장르물이라는 특성상 시청률면에는 대중성을 타 장르 드라마만큼 확보하지는 못하지만, 뉴스에서도 제대로 알리지 못했던 사회적 시선을 견지하면서, 젊은 층에게는 수치로만 설명할 수 없는 화제성을 몰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위의 드라마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 장르물 드라마들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남자들이다. 그것도, <빅맨>의 김지혁을 예외로 하고, 대부분, 청와대 경호관, 전직 형사나 형사 혹은 검시관, 검사시보, 변호사 등의 전문직 남성들이다. 이들은 자기 가족, 혹은 자신이 하고 일의 과정에서 조우한 사회의 부도덕한 면에 맞서 진실을 수호하는 의지의 인물들이다. 

물론 이들 드라마에는 모두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경찰관으로 쫓기는 경호관을 돕고, 정신과 의사가 되어 범인의 심리를 파악하고, 피해자의 엄마가 되어 직접 유괴범을 쫓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여성 캐릭터들이, 올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장르물 드라마의 남성 캐릭터들처럼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라고 하면, 드라마마다 형편의 차이가 느껴진다. 때로는 신선한 독립적인 여성상을 구가하는가 하면, 여전히 수동적이며 보조적이며, 때로는 민폐에 가까운 '여성'으로서만 자리매김하는 경우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진; osen)

6월 13일 방영된 <갑동이> 17회는, 지금까지 방영되었던 그 어떤 회차보다도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오마리아(김민정 분)와,마지울(김지원 분)이 그들 앞의 사이코패스로 인해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갑동이가 바로 수사반장 차도혁(정인기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오마리아, 하지만 공소 시효 만료로 인해 더 이상 그를 벌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의붓 아버지 한상훈(강남길 분)이 희생을 하여 가까스로 갑동이 사건을 검찰 수사선상에 올려놓게 되는 과정에 무기력감을 느낀다. 더구나 48시간을 구금하고 심문을 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가 갑동이라는 알게 된 상황에서도 너무나 태연자약한 차도혁에게 좌절감까지 절망감까지 느끼던 오마리아는 그런 자기 자신의 무기력감의 돌파구를 차도혁의 다중인격에서 찾으려 한다. 즉, 다중인격이라 갑동이가 아닌 차도혁은 죄책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정신적 분석으로, 그가 자신에게 여전히 뻔뻔하게 대하는 그 상황을 설명하고, 피해자인 자신의 고통에서 빠져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마지울은 한 술 더 뜬다. 무려 여덟 명의 여성을 즐기듯 죽인 사이코패스 류태오의 인간성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명목하에, 류태오를 찾아든 마지울은 그가 가진 분노를 일깨우며, 그 속에 숨겨진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애쓴다. 

물론, 피해자로써 자신의 사건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싶어하는 오마리아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죄와 벌]의 쏘냐처럼, 범죄자의 구제에 연연해 하는 마지울이나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왜 하필, 그게, 그가 아니라, 그녀여야 하는가?

마지울은 그저 우연히 들른 커피숍에서 눈에 띤 류태오를 자신의 만화 속 범인 캐릭터로 그리려고 했고, 그로 인해 그와 면식을 튼 사이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17회를 오는 동안, 과연 마지울이, 그렇게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을 감수하며, 류태오와 빈번하게 접촉하는 상황에 개연성이 충분한가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류태오가 마지울을 자신을 구원해줄 여인으로 삼고 싶었다는 말 한 마디에 낚여, 죄책감을 느끼고, 이제 그의 인간성 회복에 앞장서는 마지울은 단면적이다. 그녀는 여전히 하무염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대뜸 연쇄 살인범 류태오를 따라 나서던 자기 중심적인 맹랑한 여고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류태오가 살해했던 여덟 명의 여자들은 마지울의 염두에 없다. 오로지, 자신을 바라보는 류태오와, 그에게 대단한 존재인 것 같은 자신만이 있다. 거기에, 모성성의 발로라 여겨지는 무한한 측은지심이라니!

오마리아는 한 술 더 뜬다. 갑동이를 잡기 위해 치료 감호소의 정신감정의가 되고, 류태오를 갑동이를 잡기 위한 제물로 쓰기 조차 마다치 않던 그녀가, 정작 갑동이 앞에서, 정신과 의사인 그녀의 직분을 망각한 채 흔들린다. 아니, 정신과 의사라는 그녀의 지식이, 그녀의 감정에 노예가 되어, 그녀의 눈을 막게 된다. 

17회에 이른 <갑동이>의 여성 캐릭터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눈 앞에 있는 상황에 대해, 이성보다는 '감성', 냉정한 판단, 보다는 충동적 감정에 휩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르물에서 이렇게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캐릭터의 몫은 대개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개과천선>에서 여주인공에 해당하는 이지윤(박민영 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의협심이 강한 법학 전문 대학원 출신의 로펌 인턴 사원이 된 이지윤은 늘 그녀의 정의감이 그녀를 앞선다. 대형 로펌의 인턴 사원이지만, 사사건건 대응은 감정적이기 일쑤고, 늘 사건을 앞에두고 그녀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건, 그녀의 감성이다. 결국, 청소년 범죄자를 두고 연민에 사로잡힌 그녀는 사건의 진실에  눈 감은 채, 그를 변호하다, 뒤늦게 진실을 알고 자책한다. 물론 이런 사건은 변호사로서 그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장르 드라마에서 유독 여성 캐릭터에게는 이렇게 감정으로 인해 사건을 망가뜨리는 상황이 주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화제를 안고 시작했던 <신의 선물>에서 납치된 딸 샛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엄마 김수현(이보영 분)은 번번히 민폐적 상황을 만든다. 딸을 찾기 위한 맹목적인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앞뒤 안 가리고 상황을 위험하게 만들고, 정작 그 상황을 해결해 주는 건, 남자 주인공이나, 주변 남자들의 몫이라, 욕을 먹게 되었다. 심지어, 그토록 사랑하는 딸임에도 불구하고, 딸의 납치범을 찾겠다고, 정작 딸을 방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골든 크로스>에서도 다르지 않다. 정의감이 투철한 검사 서이레(이시영 분)와 아버지 기업을 망가뜨린 골든 크로스 멤버들에게 복수를 하고자 골든 크로스 대표가 된 홍사라(한은정 분)이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녀들이 주로 하는 일은 사랑에 눈물 흘리고, 가슴아파하는 역할이다. 그녀들이 하는 일은 복수이거나, 정의 실현이지만, 사실 그 핵심은 '사랑'이다. 

즉, 2014년의 장르물은, 시스템을 갖춰 진 미드를 뺨칠 정도는 아니지만, 2014년의 한국 사회를 냉정하게 재단하는 사회 비평의 몫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중이지만, 정작 그 드라마 속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수동적이고, 정적이며, 전근대적인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꼭 여성을 섹스어필한 존재로만 쓰는 것이 소모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오로지 감성이나, 모성, 혹은 연민이라는 특정한 감정적 기제로서만 여성을 소비하는 것 역시, 편견에 사로잡힌 방식에 다름아니다. 

(사진; 뉴스엔)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다. 웃음기 하나 없니, 사랑 타령도 없이, 건조하게 묵묵히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론을 다룬 <쓰리데이즈>는, 여성 캐릭터에 있어서도 예외가 없었다. <쓰리데이즈> 속 여성들은 감정적이지도 충동적이지도, 사랑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경찰이면, 경찰, 청와대 경호관이면 경호관으로서의 사회적 삶에 충실하다. 여성이기에 앞서, 사람이다. 위기에 빠져도 거의 누가 도와주지 않고, 스스로 빠져나온다. 온 몸이 묶인 채 갇힌 이차영(소이현 분)은 스스로 악을 쓰며 묶인 것을 풀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공중회전을 하며 차에 치일 뻔하고서도, 동료 경호관 한태경(박유천 분)에게 나 자신의 직무에 충실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 뿐이며, 내가 나의 일을 하듯, 너는 너의 길을 가라고 말한다. 또 다른 여성 캐릭터 윤보원 순경(박하선 분)은 한 술 더 뜬다. emp 탄을 맞고, 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져도 끄덕없고, 남자 세 명 정도는 거뜬히 쓰러뜨린다. 남자 주인공의 도움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적극적인 조력자로,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준다. <쓰리데이즈>의 여성 캐릭터들을 보면, 얼마든지, 작가의 의지만 있다면 여성 캐릭터들도, 보다 진일보한 이성적인 인물로써 드라마 내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까지 2014년의 대부분의 장르물은, 여성을 '여성'으로 소비하고, 소모하는데 진력하는 편이다. 덕분에, 늘 여성들은 문제를 만들고, 헤매고, 흔들리며, 그녀를 그렇게 만든 남성들의 잿밥이 되거나, 그녀들을 잡아주고, 이끌어 주는 멋진 남성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데 봉사한다.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사회적 시선의 성취만큼,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성취가 아쉽다. 여성을 여성이기에 앞서, 사람으로서의 보편적 존재로서,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객관적으로 조명해 주는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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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6.14 18:29

ebs에서 방영되어 화제가 되었던 <자본주의> 5부작, 이 다큐는 자본주의는 빚이라고 정의 내린다. 즉 실물과 실물의 교환에서 시작된 거래는, 그것의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물물교환대신 그 상징물인 '돈'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경제는 실물이 아닌, 허상의 세계의 '운명적인 장난' 속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그 운명적인 장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은행, 그 은행이 발전의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고도화된 형태인 금융자본주의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더 이상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의 구분이란 의미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 크리스티안 마라찌는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을 통해 이제 금융 경제는 실물 경제에 기생하거나, 비생산적인 위치를 넘어선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슈퍼에서 장을 보고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그 순간부터, 금융은 바로 우리 곁에서 숨쉬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거대 산업까지 신용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금융 시장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게 움직인다는데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그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시스템의 희생자는 언제나 약자라는 사실이 더 심각한 것이다. ebs의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을 의자 놀이에 빗댄다. 노래하고 춤추며 의자를 빙빙 도는 동안, 함께 즐기는 듯 하지만, 노래가 멈춘 순간, 누군가는 탈락해야 하며, 그 탈락자는 대부분, 가진 것이 적거나 없는 사람들이다. 

(사진; OSEN)

하지만 일상의 삶 속에 매몰된 우리들이 자본주의라거나, 금융 자본주의의 폐해를 자각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개과천선>에서 보여지듯이 은행에서 적금보다 이윤이 높다하여 CP를 샀는데, 그게 종이쪼가리보다 못하게 되는 바람에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처럼, 내가 직접적으로 희생자가 되어야, 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라고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1985년부터 거의 2년 주기로 금융 위기를 되풀이하며, 그 위기를 발판삼아 자신을 키워 온 금융 자본주의는 우리가 잊고 사는 동안, 신문 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우리 경제를 잠식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가 몰랐거나, 무지했던 금융 위기의 민낯을 이제 드라마가 친절하게 '학습'시켜 주는 중이다. 

이제 마지막 2회만을 남김 <골든 크로스>, 강도윤(김강우 분)이 테리영이 되어 나타나는 동안, 대한민국 상위 1%로, 대한민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해왔던 골든크로스 멤버들은, 이제 각자 자신의 이익으로 인해 자가분열 중이다. 한민 은행 재매각과 관련된 펀드 조성 과정에서, 각자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고자, 김재갑 전 부총리(이호재 분), 서동하(정보석 분) 경제부총리 내정자, 마이클 장(엄기준 분)은 각자 자신이 새롭게 조성될 펀드의 주재자가 되기를 원한다. 말로는 금융 허브를 지향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펀드를 조성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 이면에 숨겨진 것은, 자신이 불법적으로 돈을 끌어모아, 그것을 좌지우지하며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욕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도덕한 사건으로 사표를 냈던 서동하가 경제 부총리 청문회를 앞두고 자신있어 하는 것도, 바로 자신이 그 펀드의 주최자가 될 것이라는 야심이다. 

그에 앞서, 강도윤의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서 보여지듯이, 이미 골든 크로스 멤버들은, 강도윤의 아버지같은 직원들을 무작정 해고해 가면서, 충분히 회생 가능성 있었던 한민 은행을 수치를 조작하면서 부실로 만들어 외국계 사모 펀드인 마이클 장의 손에 안겨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동하와, 김재갑 등 골든 크로스 멤버들은 개인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이렇게, 정, 재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은행 하나쯤은 거뜬히 들었다 놨다하면서, 거기에 속한 애먼 직원과 고객들을 희생시키는 과정을 <골든 크로스>는 강도윤 가족의 비극사와 복수를 통해 착실히 설명한다. 

<개과천선>은 좀 더 전문적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변호법인 모처를 연상케 하는 ,차영우(김상중 분) 펌의 김석주(김명민 분) 변호사의 기억 상실과 그로 인한 개과 천선의 과정을 다룬, 이 드라마는, 기억을 잃은 김석주가 얽혀진 사건을 풀어나가며, 현재 대한민국을 난맥상으로 만든 금융 자본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다. 

김석주의 약혼자라는 유정선이 법정 구속 당한다. 그리고 김석주는 유정선이 법정 구속까지 당하는 과정에, 과거의 김석주가 설계자로서 개입했다는 것을 알게되고, 유정선을 돕기 위해 법원을 드나들면서, 자신의 설계에 따라 유림이 발행한 불법적인 CP를 사들이는 바람에 애꿏은 피해자가 된 수많은 시민을 목격하게 된다. 여기서 연상되는 것은 바로 얼마전 신문 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모 그룹의 사태다. CP를 샀던 애먼 시민들이 떼로 몰려들어 통곡을 하고, 그것을 정확히 모른 채 팔았던 담당자가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던 경제 사회면 기사를 통해 얻어 들었던 모 그룹의 사태가,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착실히 복습된다. 즉, 드라마 속 유림 기업은,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도, 자기 기업의 부실을 막기 위해, 불법적으로 대량으로 CP를 팔았고, 그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드라마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는 신문 지상을 통해 망해버린 줄 알고 있는 이 기업이, 사실은 외국계 은행이라는 자금 도피처를 통해, 그리고 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에 대한 순진한 사람들의 탄원서 등으로 인한 구제로 인해, 결국은 자신의 피해는 최소화한 채, 모든 피해를 아무 것도 모른채, CP를 샀던 사람들에게 돌린 채, 자신들의 기업은 온전히 지켜내는 과정을, 김석주의 약혼자가 구속되는 유림 사건을 통해 알게 해준다. 즉, 신문이 보도해 준 기사 이면의 진실을 김석주가 과거의 김석주와 대면하고, 대결하는 과정을 통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학습시켜 주는 것이다. 



<개과천선>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들었다 놨다 했던, 파생 금융 상품 사건에 대한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김석주 아버지에게 찾아온 중소기업 대표들의 억울한 사정을 끌고 들어온다. 즉, 중소기업들의 환투기 사건으로 시작된 이 사건이, 사실은 은행 측에서, 순진한 중소 기업을 상대로 한 환율 변동과 관련된 사기 사건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설명하는 중이다. 즉, 환율의 등락에 시달리던 기업들이, 은행의 말만 믿고, 결국은 자신들에게 절대 불린한 금융 파생 상품을, 자신들에게 유리해 보이던 환율이 낮은 시기에 샀다가, 결국은 환율이 오르면서, 중소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떠안게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덕분에, <골든 크로스>이든, <개과천선>이든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현학적으로 등장하는 경제 관련 용어들과, 전문적 대사들에 다보고 난 후에도, 내가 과연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그간 신문 지상에서 조차, 다 알 수 없었던 경제 관련 사건들의 진실을 어렴풋하게나마라도 이해 할 수 있게 해준다. <개과천선>의 김석주 말대로 얼마나 사람들이, 그리고 내가 순진한 것인지를 절감하게 해준다. 
드라마로 공부하는 경제라, 뭐 그렇게 드라마에서 조차 골치 아프게 경제 어쩌고 해야 하게냐고 하지만, 드라마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멀쩡한 은행이 수치 조작 몇 개로 넘어가고 애먼 직원들과 돈을 맡긴 사람들만 희생이 되는 세상, 은행 말만 믿고 샀던 증권이 하루 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는 세상, 안정적으로 기업을 유지하려다가, 오히려 덤태기를 쓰는 세상에서, 오죽 갑갑했으면, 드라마까지 나서서 진실은 이렇다고 설명해 내고 있겠는가 말이다. 드라마라도 나서서 진실을 '학습'시켜줘야 하는 세상,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래도, 개과천선한 김석주처럼, 진실을 알리고자 애쓰는 드라마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전국민을 상대로 한 무차별적 학습(물론 시청률의 장벽은 있지만), 이보다 더 좋은 무료 동영상 강의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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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6.13 10:22

함께 한민은행 불법 매각을 둘러싼 서동하와 마이클 장의 비리를 폭로하기로 했던 임경재(박원상 분)의원이 의문의 엘리베이터 사고로 죽음을 당한 후, 강도윤(김강우 분)은 홀홀단신 나서서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여의치 않다. 그의 입은 막아지고, 그는 그의 동생이 맞았던 서동하(정보석 분)의 골프채 앞에 던져지게 될 뿐이다. 결국 마이클 장 대신 쏜 알렉스(김재헌 분)의 총을 맞고 쓰러진 강도윤은 생매장이다시피 흙구덩이에 던져지고, 그의 몸 위에 솔선수범하여 흙을 덮은 후, 서동하는 빛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3년 후 경제 부총리 내정자가 된, 이제는 경제계의 거물로 장인인 김재갑(이호재 분)마저 어쩌지 못할 사람이 된 서동하는 야심차게 토종 펀드를 조성하려 하고, 그런 그의 앞에 세계 투자은행들의 VVIP들만 상대하는 모네타 펀드의 매니저 테리영이 나타난다. 강도윤과 똑같이 생긴.

검사보로서 동생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했던 강도윤은 결국 골든 크로스의 카르텔 앞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도, 복수를 하는 것도,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도 실패했다. 그리고 그가 맨 몸으로 부딪친 장벽은 너무 높았고, 그와 힘을 합친 사람들은 하나씩 무너져갔다. <빅맨>에서 김지혁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했지만, 강도윤에게 희망이 되주던 양심적인 국회의원도, 의협심이 가득했던 기자도 가랑잎처럼 스러져 간다. 그리고 강도윤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장의 변호사가 되어 나름 가면을 뒤짚어 쓰는 듯했지만, 여전히 강도윤은 아버지와 동생의 죽음에 울분을 감추지 못하는 젊은이였다.

골든 크로스 16회
(사진; TV데일리)

그리고 이제 3년이 흐른 후 나타난 테리영은 얼굴만 강도윤일뿐, 그 어느 곳에서도 검사보 강도윤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술이 거나해진 서동하와 박희서(김규철 분)가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그의 동생을 죽였던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테리영이 된 강도윤은 유쾌하게 웃어제낄 뿐이다. 애증의 서이레(이시영 분)가 찾아와 읍소를 해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다. 그 무엇을 해도 '을'이었던 그가 이제 서동하와 마이클 장의 목줄을 틀어쥔, 모네타 펀드의 매니저인 '갑'이 되어 그들을 좌지우지 하고자 한다. 그런 그의 변신에, 서동하는 말한다. 그가 강도윤이건 아니건 그게 중요치 않다고, 지금 중요한 건, 그가 자신에게 필요한 펀드의 매니저라는 사실뿐이라는 사실이라고. 

서동하와 박희서가 테리 영 앞에서 굽신거리고, 마이클 장이 그를 만나기 위해 노심초사 하는 존재가 되어 나타난 테리영, 이제 그들의 목줄을 죈  또 다른 '갑'이 되어, 그들을 휘몰아쳐 몰락시킬 일만 남은 존재가 되어 나타난 강도윤으로 인해, 그토록 몰리기만 했던 복수는 이제 마지막 화려한 피날레만이 남았다. 
그런데 어쩐지 허전하다. 결국 16회까지 이른 드라마는 평범한 서민의 아들 강도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고 말하는 듯해서 말이다. 
사실 점만 찍지 않았을 뿐, 결국 돌고 돌아, <골든 크로스>가 도달한 '복수'는 여느 복수 드라마의 클리셰와 다르지 않다. 약자였던 주인공은 그를 핍박하던 상대에게 한없이 빼앗기고 당하기만 하고, 그러다 사라져버리고, 한참 후에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이 아닌, 즉 신분 세탁을 거친 존재로, 이전에는 그들에게 당하는 위치였다면, 이젠 그들의 목을 죌 위치가 되어 나타나 지금까지 당한 것들을 하나하나 복수해 나간다. 결국 <골든 크로스>도 이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장서희 분)을 비롯하여, <상어>의 한이수(김남길 분)가, <적도의 남자>의 김선우(엄태웅 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간 <골든 크로스>가 우리 사회 상위 1%의 전횡을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실감나게 그려왔기 때문에, 오히려 강도윤으로서의 복수의 실패는 더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티없이 맑았던 배우 지망생이었던 강도윤의 동생, 성실하고 양심적이었던 은행원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그 두사람의 복수를 하기 위해 검사보였던 강도윤이 나섰을 때, 함께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서동하의 딸 서이레, 국회의원 임경재, 기자 갈상준의 패배나 몰락은, 이제 의문의 펀드 매니저가 되어 나타난 테리영의 복수에서 하나의 통과 의례처럼 씌여졌다. 드라마에서 현실에서 있을 법한 싸움은 철저히 패배가 되어 강도윤과 함께 흙에 묻혀 버리고, 이제 복수극의 전형적인 클리셰로서, 오로지 환타지로서 드라마는 '복수'를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런 성공이, 현실의 패배를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만다. 점을 찍고 누군가 실력자의 도움을 얻어, 그들의 위에 설 수 있는 갑이 되지 않는 한, 우리 사회 상위 1%를 대항한 싸움은 불가항력이라고 드라마는 말하는 것같아 아쉽다.

16회 땅에 묻히기 까지 강도윤은, 자신의 식당을 가지고 싶은 평생을 남의 식당에서 일하던 엄마의 평범한 아들이었지만, 이제 테리영은 클럽 골든 크로스의 대표 홍사라가 뒷배를 봐주는 어둠의 실력자가 되었다. 결국 누군가 또 다른 힘있는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가진 것 없는 사람의 싸움은 무기력한 패배라는 걸 16회에 이른 <골든 크로스>가 스스로 확인한 셈이 되었다. 제 아무리 이제 부터 벌어지는 강도윤, 아니 테리영의 복수가 칼바람이 분다 한들, 어딘가 씁쓰레해지는 지점이다. 여전히 '복수'에 방점이 찍힌 드라마들은, 복수를 당할 자들의 전횡에 골몰하다, 전세를 역전시켜 그들에게 당한 만큼 몰아부치는 '복수'의 '양'에 몰두한다. 하지만, 점을 찍고 나타나, 또 다른 갑이 되어 댓가를 치뤄주는 복수는 환타지일뿐, 진정 우리 사회의 '을'들에게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평범한 누군가의 아들 강도윤의 실종과, 테리영의 대두가 결국 '을'들의 무기력을 증명한 셈이 되었다. '환타지'로서의 복수는 그저 '환타지'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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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6.06 10:17

제 67회 칸 영화제 감독 주간 공식 초청작 <끝까지 간다>와 미드나잇 스크리닝 공식 초청작 <표적>에는 칸 영화제 초청작이라는 공통점 외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영화 초장부터 긴박하게 쫓고 쫓기는 액션의 진수를 보이는 이들 두 영화에서 중반에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하는 형사 두 명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표적>의 송반장 역의 유준상과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 형사 역의 조진웅이다.


광역 수사대의 송반장으로 등장하는 유준상은 그가 인터뷰에서 말하듯이, 표적이란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심지어 영화 속 그가 등장해서, 정영주(김성령 분)가 수사하는 백여훈 사건을 가져갈 때까지, 그저 일련의 수사적 관행처럼 보여질 뿐이다. 유준상이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었던 숱한 선량한 캐릭터들처럼 영화 속 송반장도 어떤 컬러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경찰처럼 보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태훈의 눈 앞에서 그들을 쫓던 킬러들이 사실은 형사였다는 게 알려진 순간 송반장의 총구는 당겨지고, 지금까지 그 어떤 영화에서도 쉽게 만나지 못했던 기상천외한 악인의 등장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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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간다>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시작부터 주인공 고건수의 사고부터 보여준다. 경찰서를 덮친 감찰반, 자신의 책상 속에 숨겨진 비밀 장부, 그 열쇠를 가지고 어머니 장례식장으로부터 경찰서를 향해 빗길 속을 달려가던 고건수, 길 한 가운데 있는 강아지를 피하며 가족과 통화를 하며 잠시 잠깐 한 눈을 팔던 그는 그만 사람을 치고 만다. 당황한 끝에 고건수는 사망자를 차에 숨기고, 다시 감찰관의 눈을 피해 그를 어머니와 함께 장례치뤄 버린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서 부터 시작이다. 그에게 걸려온 의문의 전화, 상대방은 그가 저지른 모든 범죄를 줄줄이 다  꿰고 있다. 심지어 죽은 자를 어디에 묻어버린 것까지. 고건수 역시 자신에게 전화를 걸던 사람을 쫓아가려고 하지만, 놓치고 장면이 바뀌어, 고건수에게 전화를 걸던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등장한다. 하얀 경찰복을 입은 우람한 체격의 박창민. <끝까지 간다> 역시 중반 부 이후 재미를 견인하는 주된 장치 중 하나는, 바로 박창민이 그저 고건수의 목격자가 아니라, 고건수가 재수없이 걸려든 거대한 악의 음모의 주최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영화 <표적>과 <끝까지 간다>의 악의 축은 형사들이다. 그들은 직업만 형사일 뿐, 아니 오히려 형사라는 직책은 그들이 저지르는 비리의 배경의 한 요소로, 그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폭력조직 우두머리 못지 않는 절대적 악의 권능을 뿜어낸다. 
광역 수사대의 반장으로 백여훈 사건을 맡지만, 실제 그의 목적은 백여훈을 없애고, 자신이 결탁한 아니 실제 자신과 자신의 팀이 저지른 사건을 덮으려는 것이 목적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광역 수사대와 그들을 대표하는 반장이지만, 실제 그들이 하는 일은 청부 살해를 비롯한 돈이 되는 그 모든 일이다. 영화는 오히려 법과 정의를 실현하는 광역수사대 반장 백여훈을 상대로, 범인으로 몰리고 있는 정체모를 백여훈의 대결로 귀결된다. 
<끝까지 간다>의 박창민 역시 마찬가지다. 마약업자와 결탁한 그는 압수한 마약을 빼돌려 자신만의 마약 제국을 건설한다. 자신의 뜻을 거스른 자는 심장에 총구가 새겨진 교통사고 사망자로부터 고건수까지 그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영화는 덜 나쁜 형사대 더 나쁜 형사의 대결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은 그 누구도 영화 속 형사가 절대 악으로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영화만이 아니다. 드라마 속 형사들도 만만치 않다. <갑동이>에서 갑동이를  십 여년을 그토록 찾아도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형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골든 크로스>에서 강도윤의 아버지가 대책없이 자기 딸의 살인범이 되어버린 과정에는 바로 권력의 손을 잡은 강력계 형사 곽대수가 있다. 그들은 정의의 편인양 등장해서, 법의 수호자인양 거들먹거리면서, 자신이 모시는 사람들을 위해,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 그리고 그런 봉사의 핵심에는 바로 '돈'이 있다. 법률로 보장된직업적 소명은 아랑곳없이, 허울이 되고, 그들은 자신이 지닌 알량한 '권력'에 의지해 타인을 억압하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고,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반문하지 않는다. 오히려 갑동이가 형사가 된 것이 기막힌 반전이라며 무릎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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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 업자와 손을 잡고, 마약을 빼돌리며, 업자들에게 돈을 상납받는 형사들 캐릭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다수의 사건 사고를 통해 그런 비리를 익히 알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로 상징되는 법과 정의를 지키는 권력의 비리와 부도덕에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어쩌면, 우리 사회 법과 정의가, 약자들이 아니라,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실을 무기력하게 인정한 우리들은, 그런 사실이 극단적으로 캐릭터화되어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속 형사들이 익숙하다. 우리 사회 관권의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속성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갑동이> 속 연쇄 살인범 갑동이가 형사 반장이 되는 과정은, 결국 이 사회의 많은 범죄들이 가진 권력적 성격을 상징하는 것처럼. 

그래서, 영화 <표적>과 <끝까지 간다>는 액션이 중심이된 오락적 성격의 영화임에도, 그들이 영화 마지막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관객에게 제공한다. 법망을 피해 악을 저지르던 조폭을 무찌르는 액션 쾌감과는 또 다른, 타락한 권력이 정죄되는 '정의'의 심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표적>의 백여훈이 바란 것은, 이역만리 외국에서 자신의 목숨을 팔아 번 돈으로 동생과 함께 치킨 집이나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런 그의 소박한 소망을 손반장은 자신의 편의에 의해 짓밟는다. 비록 고건수는 비리나 저지르고 자신이 친 시체를 숨기는 찌질한 형사이지만, 딸과 함께 살아보려는 소시민의 표상처럼 영화에서 그려진다. 그래서 그렇게 소박한 소망을 가진 보통 사람과, 소시민에의해, 그들보다 부도덕하며 그들보다 권력을 잘 이용해 먹는 악의 축들이 무너졌을 때 묘하게도 관객들은 억눌렸던 감정의 해소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적>과 <끝까지 간다> 속 악인들은 개인일 뿐이다. 그들의 비리는, 영화 속 이들 개인의 비리처럼만 표상화된다. 그래서 그들의 제거로 어떤 여운도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신문에서 만나는 다수의 사건에서, 말단의 그 누군가를 제거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부도덕이 끊어진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도마뱀의 꼬리처럼 바라볼 뿐이다. <골든 크로스> 곽대수는 거대 로펌 변호사 박희수의 하수인일 뿐이다. 그리고 박희수의 뒤에는 경제 정책 국장 서동하와,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우리나라 상위 1% 골든 크로스가 있다. 하지만 액션 오락 영화로서, <표적>과 <끝까지 간다>는 명쾌한 영화 미학을 위해, 감히 그것을 언급하지 조차 않는다. 어찌보면 하수인과 애먼 보통 사람과의 대리전이다. 죽도록 싸우는 강도윤과 곽대수의 결론을 골든 크로스의 지령을 받은 어깨들이 기다리고 있듯이, 본 게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채 한바탕 한풀이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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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6.03 15:07

5월 29일에 방영된 <썰전>에서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졌다.

늘 어떤 화두가 등장할 때마다 무지막지한 자료를 들이대며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느라 열심이던 강용석이 kbs 파업이라는 주제에 대해 시쿤둥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보는 신문에서는 그걸 다루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말했다. 김구라가 무슨 신문을 보냐고 물어보니, 조선일보란다. 이철희 소장이 따끔하게 묻는다. 그럼 <썰전>이 방영되는 jtbc뉴스도 안보냐고, 그러자 강용석은 동업자 정신에 입각하여 시청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어떻게 kbs 파업을 이끌어 가는 노조 위원장이 직접 출연하기까지 했는데 모를 수가 있냐는 힐난에 강용석은 답을 피한다. 하지만 김구라와 이철희가 꺼내는 파업과 관련된 이야기마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피력하는 걸로 봐서 강용석은 kbs 파업 사태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모르고 싶었을뿐. kbs가 파업을 하게 된 계기처럼, 세월호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를 사장이 나서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것을 지시한 것처럼, 강용석의 세계에서, 그런 민감한 사회적 이슈들은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싶은 거였다. 심지어, 그는 변호사의 법리적 근거를 들이대며, 길환영 사장의 보도권 개입을 적법한 처사였다며 우기면서 정부 측 입장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 강용석은 다른 때와 달리 김구라나 이철희 소장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한 채 시선을 돌린다. 

<썰전>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 저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출연자 이철희 소장은 [한겨레 신문]에 개재한 자신의 칼럼에서, 임진왜란을 앞두고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의 예를 든다. 실제 김성일은 그 자신이 일본에 갔을 때 일본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분명하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당시 집권당이었던 동인이었기에, 그 사실을 인정하면 전쟁을 준비하지 못한 책임을 지게 될까 두려워 사실을 은폐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비단 조선시대의 일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신의 정략적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을 개진하는 것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바로 그 사례를 29일의 <썰전>에서 강용석은 직접 증명하고 있다. 상대방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굳굳하게 kbs파업의 정당성을 폄하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치부하느라 애쓴다.

그래도 눈이라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면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까. 드라마로 오면 그들은 보다 뻔뻔해 진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신문 지상을 통해 어디선가 접했던 경제계, 법조계 인물들의 잔향을 그대로 드리운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그들을 연기하는 극중 배우들의 입을 통해 등장하는 논리는 바로 우리 사회 그들이 사는 세상의 논리이다. 

(사진; osen)

자신의 딸 서이레(이시영 분)가 강도윤의 동생과 아버지를 죽이셨냐고 물었을 때, 서동하(정보석 분)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아왔다고. 계속되는 추궁에, 기껏 서동하가 인정한 건, 강도윤의 동생을 사랑했었다는 사실만이다. 자신이 이런 일을 겪게 된 건, 마이클 장(엄기준 분)이 한민 은행을 집어 삼키려는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곤 마이클을 찾아가 당신이 한민 은행을 무리하게 집어 삼키려 해서 이런 사단이 난 거라며 추궁을 하며 내가 죽으면 당신도 함께 무너질 것이라고 협박을 한다. 딸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듯 고백도 해보고, 마이클을 협박도 해보고, 심지어 무릎을 끓고 강도윤에게 애걸복걸도 하지만 딱히 시원한 결론을 얻지 못했던 서동하는 마지막 카드로 장인을 찾아간다. 그리곤 서동하가 모아놓은 골든 크로스 멤버들 앞에서 한민 은행 매각은 그 어떤 법적 하자가 없었다며 얼굴빛 하나 바뀌지 않고 당당하게 말한다. 
강도윤에게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하다 그가 돌아서 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냉정한 미소까지 지어보이는 경지에 이르른 서동하는 카멜레온보다 오히려 한 수 위인듯하다. 
강도윤 앞에서까지 자신은 결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오히려 니 동생을 사랑했을 뿐이라며 읍소하는 서동하에게 강도윤은 사람이 아니라고, 사람이면 그럴 수 없단 말로 그를 정의내린다. 
하지만, 서동하는 한 치의 후회도 없다. 반성은 커녕 감히 자신을 건드렸다고 호시탐탐 강도윤을 없앨 궁리만 한다. 오히려 그의 측근인 박희서(김규철 분)는 아버지를 기소하려는 서이레를 다그친다. 온실 속에서 자란 네가 아버지의 세상을 아냐고, 자식을 버린 어미가 자식이 싫어서였겠냐고, 자신이 데리고 있으면 굶어 죽일 거 같으니 눈물을 머금고 유기한 것이라며, 자신과 서동하의 행보를 대변한다. 사실을 밝혀서 무얼 할 거냐고, 무엇이 달라질 거냐고 당당하게 다그친다. 

<골든 크로스>속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국가나, 그 속에 사는 개인들 따위는 아랑곳않고, 그들이 벌이는 온갖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행각들이 우리가 조우한 사회적 사건들의 데쟈뷰라서 더 섬뜩하다. 한민 은행이란 낯선 드라마 속 은행이 매각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경제 관료와 외국 기업의 앞잡이가 벌이는 행각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사건들을 복기하게 해준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악을 덮기 위해 다시 악을 되풀이하는 서동하와, 그것을 돕는 사람들의 모습들 속에서 우리가 소름끼치는 것은, 그들이 가진 사고방식들이다. 여전히 자신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저지르는 짓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 가장 합리적이며 유의미한 해결 방식이라고 논리적으로 무장한 그들의 생각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박변의 논리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협잡이,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미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버렸다는 논리처럼, 그들만의 논리로 주변을 설득하려 드는 것이다.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 성심성의를 다해 진실처럼 되풀이하는 서동하의 입장을 듣노라면, 순진한 누군가는 그의 말에 감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치 눈물만으로 악어를 오해하듯이 말이다. 지역과 시장을 돌며 친근한 미소를 띠며 노동에 휘어지고 갈라진 손을 덥석  잡아주는 정치인들에게 감동하는 순진한 서민들처럼 말이다. 요즘 드라마들의 악의 축은 종종 타인에게 공감을 느끼지 못하며 오로지 자신의 이기적 감정에만 충실한 '소시오패스'라는 사회 병리학적 증상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골든 크로스> 속 그들을 보면, 그건 개인의 심리학적 증상이 아니라, 이 사회의 집단적 정신적 증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적 소시오패스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사는 세상의 정신심리학적 진단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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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5.30 09:24

공교롭게도 공영방송 kbs2의 월화 수목 드라마는 복수를 꿈꾸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5월 20일 방영된 <빅맨> 8회, 서로 다른 내용을 지닌 두 장의 유전자 검사서를 손에 쥔 강지혁(사실은 김지혁, 강지환 분)은 소미라에게 달려간다. 세상 그 누구도 믿지 못해도 당신만을 믿을 만하다고 했던 소미라가 김지혁에게 전해준 말은 '미안하다'였다. 달려온 김지혁에게 강동석(최다니엘 분)은 말한다. 원래 가진 것이 없었던 당신은 그저 잠시 가졌다가 다시 빼앗겼을 뿐, 원래 잃은 건 없지 않냐고. 하지만, 김지혁은 포효한다. 절대 잃어서는 안될 걸 잃어버렸다고. 왜 나에게 가족이라고 속였냐고. 당신들에게 꼭 되갚아 줄 거라고. 

<골든 크로스>의  강도윤(김강우 분)도 마찬가지다. 은행을 다니는 아버지에게 어머니 가게 할 돈 좀 융통할 능력도 없냐며 다그치던 그가 서동하로 인한 동생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좌절하고 분노한다.

(사진; 뉴스엔)

<빅맨>의 김지혁과 <골든 크로스>의 강도윤은 그저 평범한 사내들이었다. 비록 가진 건 건강한 몸 밖에 없는 김지혁이지만, 한때 몸 담았는 어둠의 세계를 벗어나 시장 사람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열심히 살아가려던 사람이었다. 강도윤 역시 마찬가지다. 얼른 검사가 되어 고생하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꿈에 부풀었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자기 가족의 안위만을 챙기는 재벌가의 이기심이, 상위 1%의 커넥션 안에서 재미 좀 보려던 경제계 관료의 삐뚫어진 행태가 그를, 그의 가족을 희생으로 삼는다. 
누군가 건드리지 않았으면 그저 평범하게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이나 챙기며 살았을 그들이 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이기적 행위로 말미암아 개인과 가족의 미래를 빼앗기고 만다. 우리 사회에서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개인과, 화목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여실히 증명해 낸다. 

<위험 사회>에서 올리히 벡은 오늘날의 정치는 오늘날의 사회 제도들이 양산해 내는 항시적 위험으로 인한 공포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근자에 우리 사회를 좌절과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세월호에서 부터, 잊을만하면 우리 사회 전체를 혼돈에 빠뜨리고 마는 각종 전염병, 핵 등으로 인한 재해 등이 단지 우연히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근거로 한 근대적 체계의 불가피한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위험 요소들에 무방비하게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됨으로써, 그런 공포가 사람들을 자각하게 만들고, 21세기의 정치적 시민으로 거듭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그렇게 <위험 사회>의 정치적 시민의 자각 과정은 <빅맨>과 <골든 크로스>의 분노와 유사하다. 원자화된 개인이나, 전근대적인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온하게 살 수 있을거라는 개인들이, 자신들에게 닥쳐 온 자신들의 힘으로써는 어쩌지 못할 구조화된 제도를 등에 업은 기득권 세력의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위험에 빠지게 된다. 당장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또 다른 개인들의 이기주의처럼 보이지만, 진실에 다가갈 수록 그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자신들을 '소외'시키고 '희생'시키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형태이다. 희생자였던 김지혁이 오히려 재벌 아들 강동석을 대신하여 검찰에 체포되고, 사기범으로 몰리며, 그 과정에서 철저히 검찰과 변호사는 현성 그룹의 편에 서서 진실을 왜곡하는 그 과정이나, 희생된 것은 강도윤의 동생인데 서동하의 측근 들을 통해 오히려 강도윤의 아버지가 범인으로 몰리게 되는 상황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저 '개인'이고, '가족의 일원'이었던 그들은 분노하고, 깨달으면서, 사회적 존재로 자각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사진; 뉴스엔)

개인의 분노에서 출발한 <빅맨>과 <골든 크로스>는 그 개인적 분노가 그저 한 개인의 일이 아님을 드라마를 통해 착실히 밝힌다. 재벌 회장가의 자기 아들 심장을 탐하는 이기심이,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 국장의 탐욕이 상위 1%의 전횡과 부도덕의 항시적 산물임을 드러내기 위해 드라마는 골몰한다.  드라마는 많은 회차를 할애해 주인공들의 복수 이전의, 그들을 파멸로 이끈 저들의 부도덕과 전횡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우리 사회의 불균등한 부가 그저 더 가진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덜 가진 사람들의 일상적 행복조차 짓밟을 수 있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김지혁과 강도윤을 덮친 불운이 그저 그들에게 닥친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재해가 사회적 결과물이듯이, 그들에게 닥친 불행 역시 구조적 원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리하여, <위험 사회> 속 개인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공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정치적 개인'으로 떨쳐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드라마는 분노로 시작된 주인공들이 그들을 그런 위험에 빠뜨리는 저들의 실체를 알고, 그들을 정죄하는 과정을 환타지로써 만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위한 각성의 교과서로 사용하고자 한다.모처럼 공영 방송으로서 수신료의 가치를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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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5.21 10:26

자, 문제 하나 풀어보시라.

얼마전 종영한 kbs2<태양은 가득히>, 현재 방영중인 sbs의 <쓰리데이즈>, 그리고 새로이 시작한 kbs2의 <골든 크로스> 의 공통점은?
바로 배우 이대연이다. 극 중 이대연은 <태양은 가득히>에서 정세로의 아버지, <쓰리데이즈>의 한태경의 아버지, 그리고 이제 <골든 크로스>에서 김강우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그것도 보통 아버지가 아니다. 남자 주인공의 인생의 궤도를 바꿔버리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사진; 리뷰스타)

<태양은 가득히>에서 배우 이대연이 분한 정도준(이대연 분)은 다이아몬드를 빼돌린 사기꾼으로 그로 인해 자신은 목숨을 잃고 고시에 합격한 아들 정세로(윤계상)마저 살인 누명을 쓰고 복수에 칼을 가는 인물로 변모시켜 버린다. 
<쓰리데이즈>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한태경의 아버지 한기준(이대연 분)은 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거대한 트럭에 부딪혀 비명횡사한다. 그리고 청와대 경호관이었던 그의 아들 한태경은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밝혀가면서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들게 된다. 
그리고 <골든 크로스>의 오프닝에서 강도윤(김강우 분)의 아버지 강주완(이대연 분)은 친딸의 살해범으로 체포되어 예비 검사인 아들의 삶을 180도 급전락시키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태양은 가득히>와 달리, <쓰리데이즈>와 <골든 크로스>에서 이대연의 역할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쓰리데이즈>의 한기준 수석과, <골든 크로스>의 강주완은 이 두 드라마가 딛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 현실의 모순을 그 자신이 고스란히 품어 안은 캐릭터라는 점에 있다.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시작된 <쓰리데이즈>는 이제 11회를 맞이하면서, 이야기의 폭과 깊이가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그저 대통령의 암살범을 찾으면 되는 줄 알았던 이야기는 과거 대통령이 개입된 양진리 주민 학살 사건이라는 과거사의 잔상이 드라마를 뒤덮고, 거기에 이어, 이제 다시 오늘에 다시 그 양진리 사건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제 2의 양진리 사건이 벌어질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극중 한태경의 아버지 한기준은 과거 양진리 사건 당시 의도치 않게 자금 전달책을 맡았던 인물로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16년 동안 줄기차게 매달린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던 그가 대통령의 특검 발표를 앞에 두고, 그간 작성한 조작되지 않은 진짜, '기밀 서류 98'을 특검에 전하려다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이제 11회 드라마는 그저 남북의 협잡으로 인한 양진리 사건이, 사실은 김도진이라는 재벌과 그와 결탁한 팔콘 등이 무지막지한 이익을 만들어 내기 위해 획책한 사건이라는 것을 밝힌다. 드라마는 밝힌다. 전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하며 나라를 구하려고 애썼던 IMF와 같은 경제 위기가 상위 1%의 가진 자들에게 무한 배팅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은 드라마에서처럼 다시 언제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울 한복판에서 폭발물을 터트리는 테러 정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밝힌다. 즉 한 나라의 위기가, 그 나라의 국민이지만, 그 나라를 그저 이용가치만으로 판단하는 소수의 누군가에겐 그저 굴려먹을 판돈 정도로 취급된다는 것을 우리는 <쓰리데이즈>를 통해 단순명쾌하게 학습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극중 잠시 스쳐지나갔지만, 재벌 개혁을 주창하던 청와대 경제 수석이던 한기준이 당연히 과거의 양진리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런 일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의 재연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 했을 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쓰리데이즈>가  IMF를 다루었다면, <골든 크로스>가 딛고 있는 현실은 그보다 조금 더 2014년에 가깝다. 
극 중 이대연이 분한 강주완은 과거 은행에 근무하다, 정부의 부실 은행 정리 과정에서 해고된 아버지다. 그로 인해 가족에게서는 무능력한 가장으로 대우받는다. 하지만, 상고 출신임에도 회계 전문가로 대접받는 그는 우직하게 자신의 삶에 대한 성실성으로 지금까지 버텨온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아들은 어머니의 가게를 위해 25억만 대출해 오라고 닥달하고, 은행에선 눈 한번 감아주면 50억짜리 집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골든 크로스> 역시 한 나라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바로 드라마 속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국장 서동하(정보석 분) 등 상위 1%의 그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들의 입맛에 따라멀쩡하던 은행도 하루 아침에 부실 은행이 되어 그 은행에 근무하던 직원들의 밥그릇이 날아가고, 또 다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서류를 조작하여 그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배경으로 삼는다. 
극중 이대연이 분한 강주완 캐릭터는 상징적이다. 허구헌 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며 성실한 삶을 살아왔으면서도,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가장 무능한 가장으로 대접받고, 심지어 아들에게 그깟 돈 하나 못구해 오냐며 대놓고 다그침을 당하는 처지다. 뿐만 아니라, 그의 호구지책이 누군가에게 가장 만만한 미끼로 여겨질 뿐이다. 그는 자신이 무단횡단 한번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았다 하나, 그에게 돌아오는 건 비웃음이요, 기만이다. 

(사진; 뉴스엔)

현실의 우리들을 규정하는 건 바로 우리들의 밥그릇, 먹고사는 문제이다. 그러나, <쓰리데이즈>와 <골든 크로스>는 말한다. 당신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골몰하는 동안, 저 위쪽의 누군가는 그런 당신들을 장기판의 졸로 여기며 당신들의 밥그릇을 가지고 투전판을 벌이고 있다고. 
<쓰리데이즈>에서 대통령의 암살 음모가 궁극적으로 귀결되는 것이 제2의 양진리 사건, 그리고 그로 인해 되풀이 되는 제 2의 IMF라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또한 <골든 크로스>의 악의 축으로 등장하는 서동하의 직책이 경제 기획부 금융 정책 국장이라는 것 역시 정경 유착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결국 우리가 골치 아파하는 정치가 귀결되는 곳은 나의 밥그릇이라고 드라마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려고 애쓴다. 
덕분에 <쓰리데이즈>는 딱딱한 정치적 설명과 그 배경이 되는 경제적 해석을 논하느라, 드라마가 건조하다. 상위 1%의 협잡에 놀아나는 꼭두각시 강주완 일가의 몰락을 그리는 <골든 크로스> 역시 어둡기 그지 없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봄날, 재벌가 자녀들의 사랑 놀음과, 외계에서 온 멋진 남자와 아름다운 여배우에 눈을 빼앗겼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쓰리데이즈>나 <골든 크로스>는 역부족이다. 덕분에 시청률은 낮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두 드라마의 의미를 단지 시청률로 설명해서는 안된다. 시청률이 좋기로 치자면야, 막장 오브 막장의 진수를 보여준 <왕가네 식구들>만한 드라마가 어디 있겠는가. 해외의 인기? 지금 중국에서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는 <쓰리데이즈>에 대해 한국에서 막장이나 로코가 아닌 이런 드라마가 나올 수 있느냐 라는 반응이 등장하고 있다. 그간 한국 드라마가 잘 먹히는 몇몇 장르에 한정된 뻔한 상품이었다면, <쓰리데이즈>를 통해 한국 드라마가 새롭게 재평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많이 보는, 잘 팔리는 것만 하다보면, 결국 매양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누구네집 쌈박질이요, 누구랑 누가 사귀는 이야기 밖에 없다. 그러는 동안, 또 세상은 IMF를 반복할 수도, 은행 부실이 재연되어 이번엔 내 밥 그릇이 날아갈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재미없다 하지말고, 못알아 먹겠다 하지 말고, 성의있게 드라마가 우리 현실에 대해 말을 할 때 좀 귀 기울여 보자. 그깟 결국 떨어지고 말 벚꽃에 미혹되지 말고. 

중국 정법 대학 교수는 <쓰리데이즈>가 만들어 지는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그것이 곧 한국적 정치 상황에 대한 자신감의 반영이라는 웨이보 멘션을 날렸다.  낯 부끄러운 자긍심이라도, 시청률에 휘돌리지 않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좋은 드라마가 자꾸 만들어 지길 바란다. 막장도 자꾸 보면 중독되듯이, 딱딱한 드라마도 자꾸 보다보면 친근해 진다, 더불어 정신도 번쩍 든다.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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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4.04.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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