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왔던~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무안하지만 2019년에 다시 찾아온 kbs2 드라마 스페셜에 걸맞는 주제곡은 이게 아닐까 싶다. 올해도, 다행히도 드라마 스페셜은 다시 찾아왔다. 금요일 밤 11시, 새롭게  '드라마 대전'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 자리 끼어들어 10편의 단막극이 돌아왔다. 

 

 

9월 27일부터 <집우집주>, <웬 아이가 보았네> 두 편의 단막극이 방영되었다. 문보현 드라마 센터장의 각오처럼 '경제 논리로는 매년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영 방송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단막극의 정신'을 수호하기 위해 올해도 찾아온 드라마 스페셜, 그 서막을 연 2편은 2019년의 현실을 담아내려 애쓴다. 

2019년의 현실
드라마 스페셜의 오프닝을 연 <집우 집주>는 2019년을 살아가는 젊은이라면 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집'의 문제를 다룬다. 중소 건축 사무소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수아(이주영 분)의 일은 '집을 꾸며주는 것'이다. 다 만들어진 집을 돋보이게 해줄 소품 선택에 있어 남다른 감각을 자랑하는 그녀지만 정작 그녀가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빈티지한 턴테이블을 들여놓고 싶은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나마 그녀만의 감각으로 구차하지 않게 지냈던 공간마저 인상된 전세금으로 인해 비워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렇게 드라마는 엄연한 직장인임에도 자신이 꿈꾸는 집을 마련하기는 커녕 가지고 있는 돈으로 마땅한 전셋집조차 마련하기 힘든 청춘에 주목한다. 더더욱 그녀를 초라하게 만드는 건 엘리베이터도 없이 서민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사는 부모들이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겨우 마련한 집에 아버지는 지금도 남들이 버린 가구를 주워와 고쳐 쓰고 어머니는 빠듯한 생활비에 보태느라 남의 집 파출부 일을 나가는 형편이다. 

 

 

그런가 하면, 두번 째 작품인 <웬 아이가 보았네>는 시골 마을에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름은 오동자(김수인 분), 하지만 친구들은 동자를 똥간이라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동자가 할아버지와 사는 집은 허구헌 날 술에 절어 사는 할아버지로 인해 술병이 나뒹구는 쓰레기장과도 같다. 그래도 동자는 술에 취해 쓰러지다시피 잠들어 버린 할아버지가 혹시나 숨이 끊어지는 건 아닐까 얼굴을 대본다. 냉장고 속에 굴러다니는 한 초코파이 한 입으로 끼니를 때운 채 학교로 향하는 동자, 국가에서 나눠주는 쌀을 굳이 돈으로 받겠다고 고집한 동자가 꼬깃꼬깃한 돈으로 하고 싶은 건, 최근 소식이 끊어진 엄마를 찾아가려 한 것이다. 

그런 동자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동자만의 아지트가 있다. 산 속 외딴 빈 집, 그곳에서 동자는 엄마에 대한 유일한 기억을 느끼게 해주는 라디오를 듣는다. 바로 그 동자의 아지트에 들이닥친 불청객, 아니 그 집의 주인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주인 아저씨'가 좀 이상하다. 분명 시커먼 옷에 커다란 덩치의 아저씨인데 집을 꾸민 '갬성'이 어쩐지 '여성스럽다', 심지어 동자을 보고 보이는 반응조차도. 이렇게 2화 <웬 아이가 보았네>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산속으로 숨어든 양순호(태항호 분)와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 오동자를 만나게 한다. 동화 <거인의 집>을 모티브로 했다는 드라마는 '거인'이 2019년의 트렌스젠더가 되고픈 남자가 되며, 그의 '모성성'을 불러 일으키며 '의사 가족'을 잠시나마 꾸려낸다. 

'동화'로 받은 현실
다시 집을 구해야 할 처지에 놓인 수아, 그런 그녀에게 그녀의 남자 친구는 이 기회에 아예 '살림을 합칠 것', 즉 청혼을 한다. 하지만 오갈 곳조차 없어뵈던 남자 친구 유찬((김진엽 분)이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라는 게 상견레 자리에서 드러나고 초라한 자신의 집에 대한 컴플렉스를 가진 수아는 자신의 집을 소개하는 대신 자신에게 인테리어를 부탁했던 친구의 멋진 아파트를 자신의 집이라 속이기에 이른다. 

하지만 수아의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 아버지, 그런 수아를 이해하지 못한 남자 친구 덕분에 역설적으로 수아는 자신이 가졌던 '집'에 대한 컴플렉스를 되돌아 보게 된다.  가정과 연인 관계조차 해체될 위기, 뜻밖에도 수아를 구제한 건 그녀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신혼집을 꾸미려 했던 친구, 경찰을 불러도 할 말이 없었던 친구 집을 빌려서 벌였던 남자 친구와의 상견례 자리, 하지만 친구는 수아에 대한 봉변 대신, 마치 <안나 까레리나>의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그 문구처럼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던 자신의 헛된 욕망, 그 실체를 고백한다. 그리고 으리으리한 집으로 그녀를 위축시켰던 남자 친구도 알고보니 그 '으리으리한 부'의 허울을 벗어던졌던 것.  

그렇게 <집우 집주>는 1019년에 '집'으로 인해 고통받는 젊은 세대의 현실을 차이나는 '집'따위는 무시할 수 있는 강단있는 젊음의 순박한 '동화' 버전 '로코'로 마무리짓는다. 

 

 

<웬 아이가 보았네>는 조금 더 '환타지'적이다. 수술을 통해 순호에서 순이가 될 날 만을 학수고대하던 남자로 잘못태어난 여자 순호 씨, 그는 자신의 집에 쳐들어와 자신의 '여성스러움'을 볼모로 삼고 엄마를 찾아달라는 동자와 잠시나마 '모녀'의 정을 나눈다. 엄마처럼 만두를 빚고, 동자에게 생선을 발라먹이고, 생리를 시작한 동자에게 파티를 열어주고 걸맞는 속옷을 준비해 주고자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속사정이야 영락없는 엄마와 딸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영락없는 아동 성추행, 결국 순호의 집에 들이닥친 이장과 동네 사람들 앞에서 순호의 비밀이 드러나고 만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런 비극적 상황을 '환타지적 동화'로 응답한다. 순호와 함께 엄마를 찾아갔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던 동자의 엄마, 그 엄마를 동자를 떠난 순호가 찾아간다. 그리고 여자가 될 날 만을 기다리며 모았던 돈으로 엄마의 빛을 갚아주고 순호는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추억을 기억하며 떠난다. 그리고 순호의 빈 자리에 순호가 갚아준 빛으로 자유로워진 엄마가 순호가 마련해준 하얀 원피를 입고 동자를 찾아온다. 

가택 침입인 줄 알았더니 자신과 다르지 않게 신분 상승의 에스컬레이터에서 스스로 내려온 친구, 계층 차이때문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결혼인가 싶었더니 스스로 뛰쳐나온 남자 친구, 엘리베이터도 없이 온수도 제대로 안나오는 아파트인가 싶었는데 그래도 화목한 가정, 그렇게 <집우 집주>는 예의 드라마적인 환타지로 2019년에 집없어 서러운 젊음에 화답한다.  수아는 드라마의 처음과 형편은 달라진 것 없지만 대신 '마음만은 부자'가 되었다. 

결손 조손 가정의 학대받는 아이 동자는 '엄마' 같은 아저씨를 만나 '성추행' 대신 처음으로 따스한 가정과 모성의 세례를 받는다. 심지어 그 아저씨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해서 동자에게 엄마도 찾아준다. 

<집우 집주>나, <웬 아이가 보았네>는 2019년의 현실에 감히 칼을 대지 않는다. 대신 그 현실을 살아가며 벼렸던 칼날을 칼집에 꼿아주고, 풍선을 들려준다.  그리고 잠시나마 풍선을 들고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로 함께 산책을 하자며 현실의 고통을 어루만져준다. 드라마다운 상투적인 해법, 하지만 어쩌면 지금까지  kbs2 드라마 스페셜이 가장 능숙하게 해왔던 방식이다. 

by meditator 2019. 10. 5. 2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