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찾아오는 단막극 시리즈 <드라마 스페셜>의 장점 중 하나라면 동시대 청년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구현해내고자 애쓴다는 점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드라마 스페셜>의 <렉카>, < 스카우팅 리포트>, <굿바이 비원>은 그런 동시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런데 유독 청년들의 아우성이 사회 이곳저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시대여서 일까. 드라마들은 그저 삶의 수레바퀴에서 신음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넘어 그 시련을 꿋꿋하게 넘어서는 '용기'와 '의지'에 집중한다. 아파서 청춘이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넘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짊어지고 나아가려는 모습을 '형상화'하고자 한 것이다. 

 

 

<렉카> - 실직 청년의 무모한 레이싱
태구(이태선 분)는 렉카를 몬다. 아니 이제 몰았다가 될 지도 모른다.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사건은 뻔한 형편, 렉카 운전사들은 그 뻔한 사고 현장을 향해 필사의 레이스를 벌인다. 하지만 어릴 적 사고로 다리를 절 뿐만 아니라 천성이 모질지 못한 태구는 늘 그 막무가내 레이스에서 밀린다. 결국 사장은 사고를 내서라도 실적을 올리지 않으면 태구를 자르겠다며 최후 통첩을 한다. 

결국 본의 아니게 도로에 엔진 오일을 뿌리고 사고를 기다리는 태구, 그의 앞에서 검은 색 승용차 한 대가 미끄러져 가로등을 박는다. 사고를 보고 달려온 척 렉카를 몰고간 태구, 그런데 사고 운전수를 견인을 극구 거부하며 태구에게 막말을 하며 사고 현장을 빠져나가려 한다. 그때 태구의 눈에 띈 열린 차 트렁크 속 여성으로 의심되는 무엇.

<렉카>는 실직 위기에 몰린 렉카 운전사 태구가 마주친 트렁크에 사람을 실은 수상한 차량과의 질주하는 '레이싱 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이다. '단막극'이라는 한계에 도전하는 듯한 규모의 카레이싱 장면 속에서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탄 차량 사고로 눈 앞에서 부모님과 여동생을 잃어야만 했던 청년 태구의 트라우마가 엇물린다. 

뻔히 태구가 사고를 낸 줄 알았다며 거침없이 막말을 하며 태구를 모욕하는 운전사와 자신을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고 심지어 그 사고로 인해 결국 렉카 일마저 빼앗긴 상황에서 주저앉는 대신 과거 사고 속 구해내지 못한 여동생 대신 트렁크 속 여성을 구해내기 위해 무모한 레이싱에 돌진한다. 실직의 위기, 모멸감을 넘어서 린치와 협박을 가하는 검은 자동차의 운전자와 그 조력자들, 하지만 세상에 그 누구 한 사람 자신의 편이 아닐 꺼 같던 위기의 태구가 세상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 늘 그에게 잔소리를 해대던 동료도, 렉카 사장도, 그리고 그를 외면했던 경찰도 그의 지원군이 된다. 결국 태구는 재벌 3세에 의해 죽을 운명에 빠진 한 여성은 물론, 하마터면 범죄자가 될 뻔한 그 자신의 위기를 스스로 돌파해 낸다. 

 

 

<스카우팅 리포트> - 2019년판 아버지와 아들 
우연히 만난 녀석,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쓰이는데, 알고 보니 내 아들이었다는 이야기는 일찌기 고전 <오이디푸스>에서 부터 시작해서 <메밀꽃 필 무렵>까지 서사의 익숙한 소재이다. 그 익숙한 소재의 이야기를 2019년 버전으로 변주한 이주영 작가의 <스카우팅 리포트>는 2018 단막극 공모전 수상작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뒷돈이나 받다 쫓겨날 위기에 처한 야구 선수 출신의 스카우터 윤경우(최원영 분)이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 동앗줄처럼 내려온 기회 고교 유망주 곽재원을 구단으로 스카우트해 오는 것이다. 

재원을 찾아가 내려간 지방 고교, 감독의 총애를 받고 메이저 리그 진출의 꿈을 꾸는 유망주라지만 그 역시 고교시절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한순간에 꿈을 접었던 트라우마를 가진 윤경우의 눈에는 어깨 통증을 참고 무리한 투구를 하는 모습이 들어온다. 스카우터를 넘어 동변상련의 측은한 마음에 조금 더 수월하게 투구를 할 수 있도록 재원에게 조언을 하고 고기도 사먹이며 은근히 자신의 구단으로 그를 끌어오려 애쓰는 와중에 홀어머니가 횟집을 한다는 재원의 집을 방문하게 된 경우는 생각지도 못한 '운명적 관계'를 맞닦뜨린다. 

탕아로 돌아온 아버지, 그 아버지와 같은 위기를 겪게 된 아들, 이런 전통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운명적인 딜레마에서 많은 이야기들은 자신의 시대적 풍경을 배경으로 풀어내 왔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출생을 모른 채 아버지를 죽였고, 늙어 발을 헛디딘 <메밀 꽃 필 무렵>의 허생원은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인 동이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렇다면 2019년의 아버지와 아들은 어떨까?

경우가 조언하려 했던 재원의 통증은 알고보니 경우의 아들이기에 운명적으로 봉착하게 된 기형적 신체 구조로 인한 것. 경우 역시 그로 인한 통증을 참고 던지다 무리가 왔고, 그런 경우에게 아버지는 설득한답시고 모진 언사로 인해 부자의 관계는 지금도 서먹서먹하게 된 것, 그리고 바로 그 날 그런 상황으로 인해 재원의 모친과도 이별을 초래하게 된 엎친데 덮친 운명의 순간에 이제 다시 재원이 서게 된다. 

재원은 경우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리그는 커녕 당장 이 경기를 완투하면 선수 생명 자체가 위험한 상황에도 팀의 에이스로 경기를 책임지려 한다. 갖은 방법으로 설득하던 아버지 경우, 과거 경우의 아버지처럼 모진 말로 부자의 관계를 끊는 대신, 아들의 무모한 도전에 어깨를 두드려 준다. 때로는 그럴 때가 있는 것이라며, 과거 자신이 그랬듯이, 어쩌면 이게 마지막 일 수도 있는 '영광'의 시간을 아들이 기꺼이 감수할 있도록, 그래서 같은 실패라도 다른 도전의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패를 하느냐에 함께 '배팅'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 2019년 드라마 스페셜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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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비원> - 과거와 이별하는 방식에 대하여 
공시생의 이야기는 그간 드라마 스페셜이 즐겨 다뤄왔던 소재이다. 2019년 드라마 스페셜로 찾아온 <굿바이 비원>은 그런 공시생의 이야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서본다. 

드디어 붙었다. 스물 세살에서 부터 서른 한 살까지 무려 8년이란 시간을 반 지하 방에 살며 버텨냈던 공시생 생활이 7급 공무원 합격이란 팡파레를 울리며 막을 내렸다. 출근해야 할 곳은 지금 사는 곳에서 무려 두 시간이나 떨어진 경기도의 한 시청, 기념삼아 온 근무지에서 친구의 부추김으로 그만 새 오피스텔을 계약해 버렸다. 

하지만 막상 공시생의 생활을 함께 한 비원, B1 지하방을 떠나려니 어쩐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헤어졌다지만 소개팅을 했다는 소식만으로 가슴이 철렁내려앉는 남자 친구와 함께 했던 기억이 이곳저곳을 채운 공간, 그래서 옷장 위에서 발견된 돈이 당연히 남자 친구의 것이라 생각한 것처럼 어쩐지 이곳을 떠나면 진짜 그와는 영영 이별이라는 생각에 다은(김가은 분)의 마음은 무겁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로 들어갈 오피스텔에 필요한 전세 자금 대출도 원하는 금액을 맞추기 어렵고 취객의 뇨상 방뇨가 지긋지긋했던 이곳이었는데 마치 '비원'이 아직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미적거리며 '과거'를 놓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벌어진 집을 보러왔다는 핑계로 들이닥친 치한, 비오는 날 자신의 집 앞에서 얼쩡거려 치한이라 오해해서 잡고 보니 자주 들르던 편의점 직원, 심지어 그 직원은 다은이 살던 집에 먼저 살던 사람이었으며 다은을 주변에서 챙겨왔었다는데, 반면 남겨진 물건을 핑계로 만난 남친은 자신이 다니는 보험 회사 상품을 권유하며 미련을 덜어버리니. 이렇게 얼키고 설킨 관계들 속에서 다은은 비로소 자신의 방에 돈을 두고간 '임자'를 찾아낸다. 

오랜 암투병으로 인해 가끔은 정신이 흐려지시던 엄마, 그 엄마는 자신의 미덥지 못한 기억 때문에 기억해야 할 물건들을 무조건 높은 곳에 두는 버릇이 생기셨단다. 그 엄마가 당시 공시생이었던 다은이 취업을 하면 사신으라고 마련해 두셨다던 신발 값, 바로 그 돈은 이제  '과거'와의 이별에 주저하던 다은의 등을 기꺼이 떠민다. 

병으로 인해 맛을 못느끼던 엄마가 만들어 차마 먹을 수 없었던 엄마의 김치, 그 김치를 먹고 배탈이 나듯, 8년간의 젊음을 함께 했던 취준 생활을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보낸다. 

by meditator 2019. 11. 2.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