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늘 당신이 들른 가게에서 따로 돈을 받지 않고 물건을 비닐 봉투에 넣어주자, 괜히 기분이 좋아졌을 지도 모른다. 공짜로 챙긴 비닐 봉투라고. 지난 2013년에 편의점에서 비닐 봉투를 놓고 실랑이하다 아르바이트 생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비닐' 인심이 후하다. 마트에서 비닐 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비닐 포장 유료가 시행됐지만, 그게 얼마나 눈가리고 아웅인지는 아일랜드의 20배, 핀란드의 100배에 달하는 1년에 211억장의 비닐 봉투를 쓰는 우리 나라의 현실에 그대로 드러난다. 2015년 기준 연간 일인당 420개의 비닐을 사용하는 나라,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비닐의 여정에 대해 우리는 무지했다. 


지난 해 7월 중국이 갑작스레 폐비닐과 종이 쓰레기 수입 중단을 발표하고, 그 여파로 비닐 수거와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 파장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저 분리수거라도 제대로 해서 버리면 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우리가 무심코, 무한정 버렸던 비닐, 그 비닐의 여정을 다룬 한 편의 다큐가 있다. 그 다큐가 다룬 비닐의 여정은 나비의 날개짓처럼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버려왔던 비닐의 국가간 커넥션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 속살은 결국 중국 정부로 하여금 세계의 폐비닐과 종이 쓰레기 수입 금지라는 거대한 토네이도를 몰고왔다. 



플라스틱 비닐의 여정, 그 종착지 중국
우리나라에서 <플라스틱 차이나>로 번역된 왕구량 감독의 다큐 원제는 <소료 왕국(塑料王國)>이다. 여기서 소료는 중국어로 플라스틱을 뜻한다. 우리가 물건을 사고 쉽게 포장재로 사용하고 있는 비닐은 그 원료가 플라스틱이다. 석유로 부터 만들어지는 플라스틱은 가공 여부에 따라 여러가지로 만들어 진다. 그 중 비닐로 만들어 지는 건 열에 강한 고분자 화합물인 폴리에틸렌이다. 폴리 에틸렌은 땅에 매립해도 잘 썩지 않고, 소각할 경우 인체에 해로운 성분인 다이옥신이 발생한다. 재활용율도 26%에 불과하며, 처리 비용도 많이 든다. 

영화는 컨테이너가 적재된 배의 항해로 부터 시작된다. 여러 나라 들간의 수입과 수출, 그 물류의 상징인 컨테이너, 그 중 하나가 항구에서 내려져 중국 산둥성의 작은 마을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건, 거대한 산, 페플라스틱, 비닐로 이루어진 첩첩의 산이다. 그리고 그곳에 컨네이너 안에 들어있던 폐비닐이 산 하나를 더한다. 

중국은 세계 폐플라스틱 비닐의 56%를 수입하는 쓰레기 수입 국가였다. 2016년에만 중국은 730만톤(31억 달러)의 쓰레기를 수입했다. 영국의 폐지 55%, 플라스틱 25%, 미국의 전체 쓰레기 중 78%는 중국으로 갔다. 그리고 이런 중국의 폐기물 수입이 지난 30년간 중국의 '고도 성장'을 뒷받침해왔다. 중국은 이런 고체 폐기물을 수입하여 부족한 자원으로 활용했다. 미국에서 수입된 캔은 의류와 기계 제작용 금속이 되었고, 폐지는 포장재로 재활용되었다. 



영화는 바로 이런 쓰레기 수입 국가 중국의 현실을 그대로 지켜본다. 수입된 쓰레기가 도착한 산둥성의 쓰레기 산, 그곳은 쓰촨성에서 농사를 짓던 열 한 살 소녀 '이제'네의 집이다. 이제네 아버지는 그 쓰레기 수입 업자의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 일당 7500원을 받으며 이제네 가족을 책임진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고용된 건 아버지이지만, 아버지도, 엄마도, 그리고 이제 갓 열 살 남짓한 이제도, 이제의 동생도 모두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맨 손으로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관절염으로 힘든 농사일을 견디기 힘든 아버지가 선택한 쓰레기 재활용 업장의 일은, 아버지에겐 그저 농사일보다 조금 덜 몸이 고된 일로 여겨질 뿐이다. 병원 폐기물에서 부터, 온갖 오물이 범벅이 된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 더미는 이제네 가족의 터전이다. 그곳에서 이제네의 새 생명이 태어나고, 겨우 일당 7500원에, 때마다 술을 먹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느라 아이들 학교조차 보낼 혀편이 안되는 이제네 아이들은 보물창고 같은 쓰레기 더미에서 놀 거리를 찾고, 때론 배울 거리마저 찾으며 살아간다. 마치 농부가 자연에서 그 삶을 일궈내듯, 이제네 가족은 쓰레기 더미에서 가족의 삶을 일궈낸다. 그리고 그건 갑과 을의 처지라지만, 이제네 아빠를 고용한 사장 역시 마찬가지다. 

플라스틱 비닐의 터전에서 삶을 일구어 가는 사람들
보통의 사람들처럼 쓰레기 더미를 삶의 터전으로 알고, 그곳에서 삶을 꾸려가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고, 미래를 기약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 이들은 그들의 터전인 그 플라스틱 비닐 산이 가진 '함정'에 무지하다. '갑'인 사장은 해가 갈수록 시름시름 앓지만, 혹시라도 가장인 자신이 아파서 가족을 돌보지 못할까봐 병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제네 아버지의 고민은 하잘 것없는 월급으로 아이들 학교는 커녕, 고향조차 갈 수 없는 가난한 처지이지, 그들이 먹고 자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태울 때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어 버리고, 물고기가 배를 드러내고 죽어가는 폐비닐더미가 아니다. 

영화는 담담하게 비닐 더미가 밭이 되고, 논이 되기라도 하듯, 그곳에서 삶을 일구어 가는 이제네와 수입업자인 사장네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 본다. 어떻게 하면 그곳에서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가족의 안녕과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까 라는 소박한 소망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그 폐비닐 자체가 자신들의 삶을 보장하는 '환금성 작물'일 뿐, 그곳이 자신들의, 자기 자식들의 삶을, 미래를 갉아먹을 늪과 같은 대상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바로 그런 모습이 지난 30년간 환경에 무지했던 중국, 그리고 그 무지한 국민들을 이용하여 쓰레기 산업으로 성장을 이룩해 온 중국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왕구량 감독의 주제 의식은 영화의 개봉과 함께 중국 사회를 강타했고, 그 결과 중국은 2017년 세계 무역 기구에 '고체 폐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통보했다. 



여전히 관성적인 우리의 플라스틱 비닐 과소비에 대한 경각심을
시간과 장소를 바꿀 뿐, 쉬이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 비닐, 그 쓰레기를 용광로처럼 집어 삼키던 중국이 더는 그 역할을 하지 않겠다 선언하자, 그건 곧 세계의 문제가 되었다. 쓰레기를 외주했던 서구 및 우리나라에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이런 중국의 조처에 영국은 25개년 계획을 통해 쓰레기 감소 계획을 세우고, 유럽 연합은 2018년까지 비닐 봉투의 80%를 감소하고자 한다. 즉, 자원 구조에 대한 근본적 제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이 세계 최대의 쓰레기 수입 국가였다는 충격적 오명도 잠시, 그 쓰레기 대란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중국이 '소화'해 주지 않는 쓰레기는 각 지자체에서 소화 불량이 되어, 비닐 수거 거부로 나타났다. 난항 끝에 다시 재개된 비닐 분리 수거, 그저 가져가지 않던 비닐을 다시 가져갔으니 이젠 한숨을 쉴 뿐이다. 마트에서 비닐봉투를 주지 않는다지만, 코너마다 즐비하게 마련되어 있는 비닐 포장재 롤은 여전하다. 

<플라스틱 차이나>에 대한 감상은 쓰레기로 고도 성장을 이룬 중국의 이면에 대한 혀를 차는 것이서는 안된다. 여전히 우리가 '과소비'하고 있는 플라스틱 비닐 사용에 대한 경각심의 계기가 되어야 하며, 우리의 자원 재활용에 대한 구조적 고민을 해야 하는 근본적 질문이 되어야 한다.
by meditator 2018. 4. 20. 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