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 해같은 기분이 들던 들지 않던 우리는 또 새로운 여정에 첫 발을 내딛고 있다. 다르지 않았던 일상에 그래도 떠밀려 시작한 새로운 시간에 '삶의 의지'를 불어넣을 만한 뭔가가 없을까 라고 고민하신다면, <포드 v 페라리>를 권하고 싶다. 멧 데이먼과 크리스찬 베일의 치열한 152분을 함께 하고 나면 어쩐지 나도 2020년을 멋지게 살아내야 할 거같은 '의무감'? '용기'같은 것이 북돋아 오르니 말이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래도 레이싱 영화라 하면 '스티브 맥퀸의 르망'은 명불허전이다. 실제로도 오토바이와 자동차 경주를 즐겼던 스티브 맥퀸이 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많은 씬에서 스스로 운전을 하며, 지옥의 레이스라 불리는 '르망 24' 대회의 장면을 다큐처럼 실감나게 치열하게 그려냈던 영화. 이 영화에서 극중 스티브 맥퀸이 분한 '마이클 딜레이니'는 레이싱에 대해, '인생의 모든 것이며 레이싱을 하지 않는 시간은 경주를 기다리는 시간일 뿐'이라는 명대사를 남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또 다른 마이클 딜레이니들이 등장했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이슬, 그들의 만남 
영화를 여는 건 가시 거리조차 확보되지 않는 르망 24 경주, 그 경주에 참가한 레이서는 캐롤 셸비(멧 데이먼 분)이다. 눈앞을 가로막는게 안개인지, 아니면 옆 트랙에서 사고난 자동찬의 검은 연기인지 모를 상황, 어둠은 깔리고 그 극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캐롤의 독백, ' 7000rpm에 다다르는 순간, 모든 것이 희미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이런 질문을 마주한다. 'who are you?'' 극한의 경지에서 마주하게 되는 순간, 마치 '물아일체'의 순간처럼, 경주라는 그 치열한 경쟁의 상황을 넘어 자기 자신에게 온전하게 집중하는 그 순간, 떠오르는 질문은 <포드 v 페라리>란 영화가 '레이싱'을 빙자해 '생'에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캐롤 셰빌와 그의 '소울메이트'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 분)가 답한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그 7000rpm의 극한을 넘나들고 싶었던 셸비는 더 이상 경주에 나설 수 없게 된다. 바로 그의 심장이 더 이상 그 극한의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레이서 대신 자동차 디자이너이자 스포츠카 판매상이 된 셸비, 그런 그를 '포드'가 호출한다. 

수제 고급차에 반발하여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통해 대량 양산하는 '싼 자동차'로 자동차 산업의 획기적 혁신을 물론, 미국의 대표적 자동차로 자리매김한 포드, 하지만 1960년에 이르자 자국 시장은 물론, 전세계 시장에서 판매에 고전을 겪게 된다. 활로를 찾기 위해 이탈리아 수제차 브랜드인 '페라리'와 '합병'을 추진하지만 그 조차도 수모만 겪으며 여의치 않게 된 상황이 되었다.

이에 포드 2세는 싼 대중차라는 포드의 이미지 혁신을 위해, 그리고 페라리에 겪은 수모를 되갚아주기 위해 레이싱 대회, 그 중에서도 매년 페라리가 우승을 해왔던 세계 3대 레이싱 대회 중 하나인 지옥의 레이스 르망 24시에서 포드의 우승을 주문한다. 그리고 그 '승리'의 견인차로 '르망'의 우승을 거머쥔 바 있던 셸비를 호출한다. 포드의 부름에 답한 셸비는 조건을 내건다. 그 우승에 있어 중요한 건 스포츠카로 혁신한 포드만으로 되지 않는다며 르망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레이서로 켄 마일스와 함께 할 것이라는.

 

 

셸비의 추천을 받은 켄 마일스, 하지만 그는 그 자신이 아내에게 고백하듯 '관계'라던가, '사업'이라던가에는 젬병인 오로지 레이싱만을 생각하는 외골수이다. 그가 모는 차에 대해 규정을 들이대는 대회 관계자 앞에서 차 트렁크를 두드려 대고, 유연한 대처를 요구하는 셸비에게 거침없이 스패너를 집어던지는 식이다. 오는 손님에게 '너님은 스포츠카를 몰 깜냥이 안된다'는 식의 응대를 하니 돌아오는 건 '국세청 체납'딱지로 압류된 자신의 사업장이다. 

하지만 그런 고집불통은 레이싱에 있어서 치열한 열정으로 환원된다. 그리고 그에게서 날라오는 스패너를 기꺼이 자신의 사무실에 전시할 만큼 마일스의 열정과 능력을 알아본 셸비는 그야말로 포드를 르망에서 우승시켜줄 유일한 사람이라 장담한다. 그러나 아무리 셸비가 알아본들 마일스의 직설 화법에 마음이 상한 포드의 이사진은 호시탐탐 마일스의 제거를 요청한다. 

who are you? 
멧 데이먼, 크리스찬 베일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를 앞세운 만큼, 흔히 레이싱 영화가 차를 운전하는 레이서에 집중하고 주목하는 것과 달리, 외골수 레이서 켄 마이슬와 함께 그를 르망 24시 경주대회에서 레이싱 카로 나선 포드의 승리를 거머쥐는 견인차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셸비의 고뇌를 깊게 다루며 '레이싱 영화' 그 이상의 이야기를 건넨다. 

그렇다면 왜 셸비는 마일스였을까? 레이싱 대회에서 앞서나가는 차를 추월하는 순간, 그 간발의 차이는 때론 사고로 이어지거나,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 영화는 이제는 운전할 수 없는 셸비가, 그러나 그 누구보다 그 '포인트'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자신이 아니라면 마일스일 수 밖에 없는.  그 '정신적 교감'을 마일스가 실현해 내는 명확하고도 구체적진 지점으로 셸비의 선택, 집착을 영화는 설득한다. 

 

 

그렇다면 마일스는 어떨까? 사업장조차 압류된 시점에 그를 기꺼이 르망에 출전하는 포드의 운전자로 '간택'해줘서? 집 앞에서 아이들처럼 엎치락뒤치락하며 한바탕해대는 그들에게는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견원지간처럼 으르렁거리면서도 서로를 믿게 된 역사가 있어서? 늘 튕겨져 나가려는 마일스를 셸비는 다독이고, 거기에 더하여 끊임없이 훼방을 놓으려는 포드 이사진에 맞서 마일스를 '수호'하는 셸비에 대해 어느덧 마일스는 단칼에 출전을 거절당하는 상황에서도 다시 그와 손을 잡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동반은 그저 '우정'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자신을 대신할 유일한 사람이라는 믿음, 그리고 세상 관계에 서툴기만한 자신을 기꺼이 믿어주는 사람이라는 추상적 명제가 포드의 르망 24출전이라는 상황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되며 셸비라는 인물과, 마일스라는 인물의 캐릭터와 함께 '관계'의 현실성이 영화적 감동의 수위를 더한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마일스는 안된다는 이사진의 결정에 앞서 담백하게 결과를 전달하는 셸비, 그렇게 낙담하는 셸비에게 담담하게 레이서이자 차량 제작진의 일원으로 '브레이크'를 주목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마일스, 그렇게 르망 24시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아니면 안된다는 마일스는 변화해 간다. 그리고 그 변화의 정점은 자신을 레이서로 나서게 하게 위해 기꺼이 자신이 가진 것을 '딜'하며,  그리고 마지막 구간에서 '포드'를 내세우기 위해 신기록을 세운 마일스에게 '포기'를 강요하는 이사진의 결정에 셸비가 기꺼이 '마일스'를 믿어주었을 때 그리고 그 '믿음'에 마일스가 너른 아량으로 화답하며 영화는 두 사람의 성장과 믿음에 정점을 찍는다. 진정한 영웅과 그 영웅을 만들어 가는 이의 '동반적 관계'에 주목하며 영화의 서사가 맛을 달리하는 순간이다. 

7000 rpm의 순간, 그 순간을 함께 공유한 두 사람, 두 사람은 자신이 도달하고자 했던 그 승리의 정점과 함께 각자 자기 삶의 화두에서 변화하고 성장한다. 물론 '레이싱' 자체만으로도 <포드 v 페라리>가 볼만한 값어치가 충분하지만, 거기에 얹혀진 '소울메이트' 셸비와 마일스의 선택과 관계는 영화 초반 던져진 독백, ' who are you?'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넉넉하다. 그리고 그 넉넉한 답은 영화를 본 관객들에 대한 또 다른 'who are you?'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4차 산업 혁명이다 뭐다 갈수록 인간의 존재 가치가 희박해져 가는 이즈음, 혁신적인 포드가 르망에서 승리하기 위해 결국 필요한 건 '사람'이라는 셸비의 혜안은 또 다른 의미에서 희망적 선언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20. 1. 2. 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