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 화요일 두 편의 스릴러물이 안방 극장을 찾아든다. kbs2의 <너를 기억해>와 tvn의 <신분을 숨겨라>가 바로 그 두 편의 스릴러물이다. 하지만, 스릴러물이라는 장르적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이 두 편의 색채는 다르다. '사랑하고 치유하는' 로맨틱 스릴러를 표방한 <너를 기억해>가 피비린내 나는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범죄심리학 교수 이현(서인국 분)과 경찰인 차지안(장나라 분)의 달달한 러브 스토리를 메인으러 내세운 반면, 도심 액션 스릴러를 표방한 <신분을 숨겨라>는 매회 유혈이 낭자한 현실감있는 액션을 중심으로 수사5과의 지능적 범죄 수사가 화면을 채운다.




절대 악을 향해 다가가는 여정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편의 스릴러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직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절대 악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어린 시절 이현이 우연히 아빠의 경찰서에서 만나게 된 연쇄 살인범 이준영, 그가 감옥에서 탈주를 하고 집으로 찾아온 날 이현의 아버지 이중민(전광렬 분)은 죽임을 당했고, 동생은 사라졌다. 아버지에 의해 사이코패스가 규정되어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의 일부분조차 사라진 이현은 차지안의 요청으로 고국에 돌아와 현재의 사건들 속에서 과거의 인연을 짚어가며 절대 악을 향한 여정에 나선다. 매회 벌어지는 단편적인 사건들은 프로파일러로써의 이현의 능력을 증명해가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이현의 숨은 기억 속 퍼즐을 맞춰가며 숨겨진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너를 기억해>가 '살인' 등의 범죄를 연속적으로 저지르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라면,<신분을 숨겨라>의 절대 악은 스케일이 크다. 민태인(김태훈 분)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 찾고 싶은, 그리고 8회 차건우가 상부의 명령까지 어겨가며 다가가고 싶은 존재 '고스트'는, 그 누구도 얼굴을 본적이 없는, 그리고 그 얼굴을 보는 순간이 죽는 순간이라는 무시무시한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이다. 하지만 그는 그저 범죄조직의 우두머리라는 수준을 넘어선다. 일찍이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국가정보원까지 국가 기관이 나서서 그를 잡기위해 혈안이 된 고스트는 위폐, 마약, 청부 살인은 물론 7월 7일 8회에서는 세균전까지 불사하려 한다. 그저 범죄 조직이 아니라 국가 안보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그런데, <너를 기억해>도, <신분을 숨겨라>도 모두 궁극적으로 찾아내야 할 절대악은 분명하지만, 정작 그가 누군인지는 모른다. <너를 기억해>에서 '생각보다 범인은 가까이에 있다'는 대사처럼,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 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의심을 살만한 정황을 가지며, 누가 범인인지 추측해 나가는 것이 이 두 드라마의 묘미다. 



그런데 절대 악은 누구?
<신분을 숨겨라>는 '저승'을 갈 때야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고스트, 중정 시절부터 국가로부터 범죄자로 낙인찍혔다는 그 연배의 출연자들은 모조리 의심스럽다. 가장 유력한 대상자로 눈빛부터가 모호한 국정원 최대현 국장(이경영 분)에서부터 수사5과를 진두 지휘하는 경찰청장, 심지어 수사5과의 최태평(이원종 분)까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의심하는 맛이 <신분을 숨겨라>의 묘미이다. 정작 드라마는 수사 5과의 신분 위장 수사를 매개로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에서 가장 절묘하게 신분을 숨긴 사람은 바로 그토록 찾아헤매는 범인이다. 

<신분을 숨겨라>가 단 한 명 고스트를 향한 여정이라면 <너를 기억해>의 술래잡기는 조금 더 미묘하다. 이현의 아버지가 죽던 날 사라진 이현의 동생, 그리고 함께인지, 따로인지 역시나 사라진 이준영, 그 또래로 보여지는 <너를 기억해>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수상하다. 7월 7일 6회묘하게 이현의 눈에 들어온 법의관 이준호(최원영 분)의 일거수 일투족은 수상하며, 그가 내뱉은 말은 그저 허투루 지날 수 없는 것들이다. 또한 이현 동생 또래로 등장하는 정선호(박보검 분)는 이현 못지 않게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면 늘 등장하여 시선을 끌 뿐만 아니라, 의심을 받기에 충분할 만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지만, 이렇게 드러내놓고 의심이 갈만한 인물들 뿐만 아니라, 스치듯 지나갔지만 사건 수사 현장에 제일 먼저 갔다는 최은복(손승원 분) 역시 그저 지나치기가 애매하다. 그저 웃기는 캐릭터 같은 강은혁(이천희 분)조차 의심스럽다. 



케이블과 공중파의 서로 다른 입지가 낳은 다른 처지 
<신분을 숨겨라>는 케이블 드라마 답게 제작 발표회에서 1%의 시청률 공약을 내걸었다. 초반 정선생으로 분하여 압도적 존재감을 선보인 김민준의 열연과 그와 엇물리는 김태훈, 수사 5과의 활약으로 <신분을 숨겨라>는 순탄하게 1%를 넘었을 뿐만 아니라, 2% 고지조차 거뜬히 해치워 출연자들이 커피를 대접하는 등 공약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정선생이 출연한 1,2회 이후 좀 맥이 빠진듯한 스토리가 잠시 지지부진한 듯 하지만, 새로운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을 중심으로 끌고가는 남인호(강성진 분)등 다른 고스트의 하수인이 저마다의 포스를 가지고 헤집으며, 그 새로운 악과의 대결을 위한 위장 작전과 액션이 매회 애청자들의 손에 땀이 식지 않게 만든다. 거기에 매회 끈끈해지는 듯하면서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수사 5과 캐릭터들의 매력도 <신분을 숨겨라>의 숨길 수 없는 매력이다. 또한 케이블이라는 존재적 특성을 살려 거친 액션과 국정원에 사과 문구를 내보일만큼 수위를 넘나드는 설정 등이 <신분을 숨겨라>를 기대하게 만든다. 

오늘 제작사 cje&m이 6월 4주 콘텐츠 지수에서 <너를 기억해>가 <무한 도전>, <복면 가왕>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고 기사를 냈지만,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콘텐츠 지수 1위가 무색하게, 시청률면에서 <너를 기억해>는 4%대를 넘지 못하며 동시간대 꼴찌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 초반 '표절'과 관련된 시비를 무난하게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너를 기억해>는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호오가 엇갈리는 평가를 받아서 더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이현이라는 셜록 홈즈 뺨치게 능력자인 주인공을 커버하기엔 아직 서인국의 내공이 딸려 보이는 면이 역력한데다, 드라마는 모든 출연진을 의심하게 만들 만큼 문어발식으로 이리저리 엮인 관계들로 어수선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초반 스릴러물로서 이야기의 틀이 잡기히도 전에 어설프게 풀기 시작한 이현과 차지안의 로맨틱한 분위기는 오히려 스릴러물로서의 <너를 기억해>의 정체성을 갉아먹었다. 
하지만 그런 초반 악수를 극복하고 이제 6회에 들어선 <너를 기억해>는 이현과 차지안 두 사람의 과거가 풀어지면서 그저 로맨틱물을 넘어선 스릴러물의 공조자로서의 주인공들의 위치를 공고히하고, 매회 등장하는 사건들과 과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본격적으로 스릴러물로써의 묘미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모든 연령대의 시청자들을 설득하기엔 여전히 난해한 스릴러 장르는 공중파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너를 기억해>의 결정적 장애물이 된다. 
by meditator 2015. 7. 8.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