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랄하다'는 국어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터넷 용어이다. '괴상하다'란 뜻과, '지랄맞다'는 뜻이 결부된 인터넷 상에서 자생된 이 언어가 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뜻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랄맞은 세상'에 '괴상하다'란 단어로 설명할 길없는 감정의 기복을 설명해 내는데는 어쩔 수 없이 딱이다. 이렇게 사전에 없는 단어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듯이, 기존에 우리가 알던 문화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괴랄하다'란 단어가 이물감없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듯이, 거기엔 문화적 공감이란 것이 전제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제 2회를 마친 <밤을 걷는 선비>, 이 괴랄한 드라마가 과연 '괴랄하단' 단어만큼 대중적 공감력을 가진, 그래서 공중파 수목 10시대를 장악할 만한 것일까? '괴랄하다'란 단어에 딱 어울리는 <밤을 걷는 선비>지만, 안타깝게도 그 드라마가 가진 '괴랄한' 맛은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7.7%로 시작된 드라마의 시청률은 2회만에 6.8로 하락했다.(닐슨 코리아 기준)



2015년 상반기에만 흡혈귀물이 무려 세 편!
<밤을 걷는 선비>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2015년 올 한 해, 그것도 이제 7월에 불과한 상반기에만 공중파를 찾은 괴기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아야 할 듯하다. 

2015년 2월부터 5월까지 kbs2tv 월화 드라마로 <블러드>가 방영되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감염'되듯이 불의의 사고로 뱀파이어가 된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현재 역시나 kbs2tv 금토 드라마로 5월부터 방영중인 <오렌지 마말레이드> 역시 뱀파이어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뱀파이어와 인간간의 사랑을 다룬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이다. 그리고 이제 7월 8일 mbc에서 수목드라마로 <밤을 걷는 선비>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물론 <블러드>는 병원을 배경으로 뱀파이어가 된 외과 의사의 이야기요,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시대를 관통하는 순수한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요, <밤을 걷는 선비>는 뱀파이어가 되었지만 홍길도처럼 의적이 된 사내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지만, 결국 이러니 저러니해도 뱀파이어물의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피'를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신체적 딜레마를 가진, 하지만 대신 인간의 능력치를 훨씬 뛰어넘는 능력치를 갖게 된 슈퍼맨 뱀파이어가 주인공을 등장하여, 이종의 인간과 얽혀 사랑도 하고, 갈등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뱀파이어, 흡혈귀? 도대체 이 이종의 문화 콘텐츠가 한 해 동안 그것도 상반기에, 그것도 편성되기도 어렵다는 주중 미니시리즈의 시간대에 줄기차게, 심지어 겹쳐지며 편성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뱀파이어물이 tv로 유입되기 시작한 유래를 따지자면 2005년 시즌3까지 방영된 <안녕 프란체스카>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하다. 그러나 시트콤이지만 프란체스카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국적 불명의 뱀파이어물과는 다르다. 엄연히 체코 프라하에 그 시원을 가진 원조 뱀파이어들이다. 단지 재수없게 한국이란 나라에 불시착했을 뿐. 그렇다. 어린 시절 극장에서 만난 드라큐라 백작에서 알 수 있듯이, 드라큐라, 혹은 뱀파이어, 그리고 흡혈귀는 서양 중세 동유럽을 배경으로 한 설화에서 유래된다. 서양의 설화로 시작된 뱀파이어는 여인의 피를 먹어 영생을 유지하는 창백한 미남자로 인해 매력적인 소재로 각종 문화의 영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건 그저 외국의 이야기였을 뿐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상대적으로 역사적 고증 따위에서 자유로운 로맨스 소설들이 그 매력적인 소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트와일라잇>, <뱀파이어 다이어리> 등 미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청춘물의 소재로 뱀파이어를 등장시키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우리 드라마에서도 뱀파이어란 이종의 문화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부터 시즌2에 걸쳐 ocn에서 방영된 <뱀파이어 검사>가 최근 범람하고 있는 뱀파이어물의 원조격이 된다. 원치 않았던 이유로 인해 뱀파이어가 되고 만 착한 주인공, 그는 자신과 다르게 뱀파이어의 능력을 이용하여 인간 세상을 해치는 무리들을 상대로 하여, 자신이 가진 뱀파이어 능력을 앞세워 싸워나간다. <뱀파이어 검사>는 뱀파이어라는 인간 세상의 질서에 위배된 능력을 가진 자가, 검사가 되어 정의를 실현한다는 아이러니한 정황을 드라마적 재미로 내세워 열혈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뱀파이어 검사> 까지만 해도 엄밀하게 말도 되지 않은 뜬금없이 한국 땅에서 뱀파이어가 된다는 소재가 케이블이란 한계가 오히려 장점이 되어 극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저 매니아들을 위한 장르물이 여러 세대들을 아우르는 공중파로 진출한다는 것은 또 다른 생각해 볼 점이다. <블러드>에 이어 <오렌지 마말레이드>, 그리고 <밤을 걷는 선비>까지, 연속된 시도에도 불구하고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지극히 자의적이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뱀파이어란 소재가 로맨스 소설이나, <트와일라잇> 등에 젊은 층이 열광할 만큼 신선한 소재며, 매력적이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의 공중파 드라마로 모든 세대를 설득해 내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일련의 뱀파이어 드라마들은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조선 선비의 옷을 입고 뽀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덤비는 뱀파이어라니!

1979년부터 1989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방영되었던 <전설의 고향>은 우리나라 전국 방방 곡곡에 숨겨진 전설들을 이야기화했다. 어느 마을 어느 고개 이야기, 산 마루의 바위에 얽힌 사여 등, 드라마 말미 이 구체적인 지명을 등장시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설득시켜 내었다. 이렇듯 10년간의 스테디 설러가 가능했던 이유는 전국을 샅샅이 훑고 다닌 작가 임충씨와 제작진의 이야기를 찾기 위한 여정이다. 차라리 어설프게 외국의 콘텐츠인 뱀파이어를 가자 붙일 바에야 전설의 고향을 복습하며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어떨까.



뱀파이어 소재보다 더 심각한 것은 뻔하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 
하지만 어쩌면 진짜 문제는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이질적으로 차용한다 해도 그것을 설득력있게 잘 풀어내기만 한다면 시청자들은 볼 것이지만, 어쩌면 한결같이 뻔한 이야기 구조를 가져가는 것인지 아쉽다. 

뱀파이어을 다룬 드라마들은 인간의 피를 먹어야 사는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한편, 늘 그의 반대편에 그에 적대적인 나쁜 흡혈귀를 내세운다. <블러드>가 그랬고, <밤을 걷는 선비> 역시 다르지 않다. <오렌지 마말레이드>가 뱀파이어와 인간의 관계가 역전된 듯하지만, 갈등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지진희가 분한 <블러드>의 이재욱, 그리고 이수혁이 분한 <밤을 걷는 선비>의 귀, 이들 나쁜 흡혈귀를 상대로 한 착한 흡혈귀의 목숨을 내건 싸움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배경이 병원이건, 조선시대건 악귀는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르고 그를 수습하고 맞서 싸우다 보면 드라마는 끝나고 만다. 

심지어 <밤을 걷는 선비>는 이 드라마에 출연한 sm 소속의 최강창민과 같은 그룹인 유노윤호가 출연한 <야경꾼 일지>와 흡사한 극의 구조를 가진다. 임금조차도 그 생사를 좌지우지할 절대 악귀와, 거기에 맞서는 선한 이들, <야경꾼 일지>의 사담(김성오 분)이나, <밤을 걷는 선비>의 귀나 국적 불명의 의상을 입고 정체모를 헤어스타일을 하고, 기괴한 힘을 분출한다. 그의 힘에 왕조차도 그의 힘 아래 무기력하게 굴복하거나 죽임을 당하고, 그렇게 악귀의 힘에 농락당한 왕권을 지키기 위해 선한 이들이 뭉친다. 불과 1년의 간격을 두고 방영되는 드라마지만, 마치 같은 드라마를 보는 듯,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음산한 악의 기운을 전지전능하게 뿜어내는 세력이 장악한 묘하게도 역사의 어느 시점이 연상되는 정체 모를 조선의 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 사극' <밤을 걷는 선비>와 <야경꾼 일지>는 마치 이란성 쌍둥이와도 같다. 

거기에, 일찌기 <성균관 스탠들>에서 부터 시작하여 퓨전 사극에 단골이다 못해 이젠 우러날 것이 없는 사골이 되어버린 남장 여자의 등장은 이젠 지양해야 할 소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유비가 연기하는 조양선 캐릭터는 책괘라는 신선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연기하는 면면이 마치 <성균관 스캔들>에서 김윤식을 연기한 박민영의 모습을 본딴 듯이 닮았다. 

가난하지만 씩씩하게 남장을 하면서까지 가족을 부양하려고 나선 여인, 그 여인보다 아름다운 선비, 그의 말못할 비밀, 그리고 나라 전체를 집어 먹을 듯한 악귀, 마치 인스턴트 음식처럼 반복되어 등장하는 '퓨전 사극'속 이런 설정에 그 누가 질리지 않겠는가. 심지어 외국 수출을 염두에 두기라도 한듯 끼워넣은 아이돌까지. 안이하다 못해 지루한 문화 컨텐츠이다. 심지어 이 정도라면, 용두사미의  괴작이 되고만 이준기의 전작 <아랑 사또전>이 콘텐츠적으론 더 신선하단 생각이 들 정도다. 부디 이 뻔한 설정을 극복하고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by meditator 2015. 7. 10. 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