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3일 첫 선을 보인 <장사의 신-객주 2015>는 김주영 작가의 대하 소설 <객주>를 2015년에 걸맞게 새로이 각색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구한말 격동기의 상인 사회를 중심으로 정의로운 상인 천봉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19세기말 조선 사회의 사회적 갈등과 새로운 계층의 대두를 실감나게 묘사했던 김주영의 <객주>가 2015년을 배경으로 하면 어떻게 변화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2015년의 대한민국에 돌아온 <객주>

<장사의 신-객주 2015(이하 장사의 신)>의 시작은 청나라와의 무역로인 책문이 열리고 포부를 가지고 길을 떠나는 천가 객주의 장정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길을 떠나기도 전에 천가 객주의 발목을 잡는 이가 있다. 그는 바로 개성 유수, 길을 떠나는 천가 객주 행렬을 붙잡고 느닷없이 술을 권한다. 객주에게 모처럼의 청나라 행은 엄숙하다 못해 신성하기까지한 과업이기에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한 맹세를 개성 유수는 자신의 권력을 내세워 술을 강권한다. 

그런가 하면 그렇게 만만한 천가 객주의 길목을 막아서던 개성 유수는 어느 틈에 바람같이 수도 한양으로 달려와 육의전 행수에게 아양을 떤다. 이 장면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정경유착, 그 중에서도 '재벌'처럼 보이는 경제 권력에 빌붙는 정치 권력의 두 얼굴이다. <장사의 신>이 진단하는 2015년의 대한민국, 그곳에서 진정한 장사의 도를 이야기 하기 위해 배경이 되는 것은, 이렇게 강력한 재벌에 아부하고, 힘없는 경제 세력들을 짓밟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비굴한 현실에서 <장사의 신>이 지향하고 있는 바는 어떤 것일까? 모처럼 열린 책문을 향한 길을 험란하다. 겨우 개성 유수의 협박을 아들 천봉상의 기지로 넘기로 길을 떠난 천가 객주의 길을 장마로 허물어진 길이 막아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천가 객주 천오수(김승수 분)는 목숨을 잃을 뻔한다. 그의 목숨을 구한 것은 송파 마방의 조성준(김명수 분)이다. 소가죽 밀거래를 하기 위해 책문으로 떠났던 조성준은 천오수의 목숨값으로 자신들과 함께 밀거래를 할 것을 제의한다. 그런 조성준의 제의에, 떠나기 전 환전 객주 김학준(김학철 분)에게 빌린 돈으로 인해 고통을 받던 천오수의 의형 길상문(이원종 분)은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길상문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천오수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 이유는, 자신도 밀거래로 인한 이익이 탐나지만, 그렇게 이익을 취하고 나면 더 이상 험난한 길을 걸어 다리품을 팔아 물건을 팔러 다니는 객주로서의 자신의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첫 회지만, <장사의 신>은 '정의'롭게 물건을 파는 장사의 도를 지키려는 천오수와, 그런 천오수의 맞은 편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조성준, 김학준 등을 대비시켜, <장사의 신>이 그저 천봉삼의 입신양명기를 넘어, '진짜 돈을 버는 법'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공홈의 소개에도 천봉삼을 '정경유착 재벌에 항거하는 700만 자영업자의 대표로 설정'하듯이, 2015년 버전으로 돌아온 <장사의 신>은 그저 돈을 버는 방법, 혹은 돈을 통해 입지전적 성공을 이루는 것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제대로 버는 법을 이야기하겠다고 첫 회부터 포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2015년에 유의미한 <장사의 신>의 의미라는 것이다. 





제대로 돈을 버는 경제 정의에 대한 이야기, <장사의 신>

하지만 자영업자의 대표로 그려진 객주의 길은 험란하다. 천봉삼의 아버지 천가 객주는 오늘날 금융권을 상징하는 환전 객주의 빛 독촉에 시달린다. 심지어, 환전 객주는 천가 객주의 흑충(말린 해삼)을 미리 사들여 청나라의 흑충 값을 떨어뜨려 천가 객주를 위기로 몬다. 흡사 오늘날 골목 상권을 차지한 재벌들의 행태와도 흡사하다. 심지어 돈을 위해 아편 밀매를 부추기는 부도덕은 물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는 것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마치 2015년의 대한민국의 재벌이 그러하듯, '돈'을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돈의 정의인 양 이야기한다. 그리고 <장사의 신>은 그렇게 부도덕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돈의 세상 속에서 아비를 잃은 천봉상을 통해 '진짜' 돈을 이야기 하겠다고 한다. 


이런 <장사의 신>의 야심찬 혹은 무모한, 그렇지만 2015년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은 의도는, 최근 kbs수목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적 코드이다. 비록 6%를 넘지 못한 채 종영했지만 그 강직한 울림으로 '참 정치'에 대한 갈망을 되살려 준 <어셈블리>는 정치 혐오 주의 세상에서, '진짜' 정치의 길을 어렵사리 밝혔다. 또한 그 전작 <복면 검사> 역시 권력과 돈의 시녀가 된 법의 세계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정의를 부르짖는 젊은 검사를 통해, 대한민국 법치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렇게 '법'과 , '정치'에 대한 '정의'를 꾸준히 부르짖던 kbs 수목 드라마가 이번에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경제'이다. 하지만, <장사의 신>이 이야기 하고자 할 경제 정의는 정치 혐오주의보다 더 험란하다. 돈 놓고 돈 먹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된 세상에서, 가진 자들에 대한 '막장식' 조롱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과연, '진짜' 돈 버는 법의 순수함에 관심을 기울여 줄런지, 그 누구 한 사람 열연이 없었던, 진실한 외침이 일관되었던 <어셈블리>에 대해 '순진하'고 '단순한다'는 평가를 내리는 세상에, 과연 <장사의 신>의 야심찬 의도는 올곧게 받아들여질런지, 지레 우려가 된다. 또한 과연 <복면 검사>가 애초의 주제 의식과 달리, 용두사미가 되었던 경험처럼, 과연, '진짜 돈벌기'의 야심찬 의도가 마지막 까지 순조롭게 진행될런지, <장사의 신> 제작진에게 화이팅을 먼저 외쳐본다. 부디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kbs 수목 드라마의 정의 시리즈가 <장사의 신>에서 빛을 발하길!

by meditator 2015. 9. 24. 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