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드라마 콘텐츠 지수(cj와 닐슨 코리아 공동 조사에서 케이블 드라마로 당당히 2위를 차지한 <미생>이 화제 속에 종영했다. 19,20회에 가면서 원작과의 괴리, 필요 이상의 캐릭터 구현으로 아쉬운 점을 남기긴 했지만, 고달픈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에서 길어낸 위로를 보낸 모처럼 따스한 드라마 한 편이었다는데, 이견을 달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미생>을 2014년 후반기 대표작으로 만든 곳엔, 김원석이란 pd가 있다. 작품 앞에, 누구의 작품인가가 들어가는 스타 pd의 시대이다. 특히, tvn의 적극적 후원 아래, 이적한 신원호, 나영석 등이, 각각, '응답하라' 시리즈와,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장인'으로 대접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생>을 통해, 김원석이란 이름 또한 그 대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낯설지 않다. 이미, 2010년, <성균관 스캔들>이란 청춘 신드롬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바로 김원석이기 때문이다.
<성균관 스캔들>을 통해 잘금(지나가기만 해도 여자들이 맥을 못출 정도로 잘 생긴 꽃미남)4인방 신드롬을 일으켰던 김원석은 예상과 달리 이 작품 이후 kbs를 퇴사하고 cj계열로 들어간다. 하지만, 김원석의 길이 바로 탄탄대로로 열린 것은 아니다. 아직 tvn이 채 정비되지 않고, m.net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cj미디어에서, <성균관 스캔들>과 같은 작품을 기대했던 그가 만든 후속작이래봐야, 슈스케 참가자들을 데리고 만든, 슈스케 뮤직 드라마 정도였다. 비록 이제는 스타가 된 김예림, 버스커 버스커, 그리고 고인이 된 울라라 세션의 임윤택 등이 함께 했던 드라마는 <슈퍼스타 시즌3>의 막간극으로 잠시 등장했지만, 여전히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김윤석 감독의 정서가 잘 반영된 뮤직 드라마였다.
슈퍼스타k 특집극이나 만들던 김원석 감독이, 드디어 2013년 5월 그의 작품을 들고 등장했다. 바로 tvn과 m.net을 통해 동시에 방영되었던 <몬스타>가 그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김원석 감독은, <미생>에서도 함께 할 정윤정 작가를 만나게 된다. 정윤정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만족감이 컸'으며, 케이블로서는 시청률도 잘 나왔다' 자부심과 달리, 제2의 박유천이 될 것인가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남자 주인공 역의 비스트의 용준형은 결국 부족한 연기력의 벽을 넘지 못했고, 음악을 통해 청춘을 논하고자 했던 드라마는 어설픈 시도로 평가 받게 되었다.
<성균관 스캔들>, <몬스타> 그리고 <미생>까지, 비록 뒤의 두 작품과 <성균관 스캔들>은 작가는 달랐지만, 거기에 구현되 '청춘'의 정신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그것을 김원석 월드의 주제의식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한. <미생>이 다음 시즌을 기약하고 마무리 된 이 시점, 세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드러나고 있는 김원석이 구현하고자 하는 '청춘'의 실체를 찾아보자.
우선, <성균관 스캔들>, <몬스타>, 그리고 <미생>까지, 주인공들은 당대의 녹슬지 않은 파릇파릇한 청춘들이다.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 4인방은 이제 막 새로이 학기가 시작된 성균관의 신례과 선진들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 놓인 건, 이선준의 아버지 '노론'으로 대표되는 기성권력이요, 그들에 합류한 성균관 장이와 그 수하들의 대리 권력들이다. 노론이지만, 노론으로서의 특권보다는 그가 책을 통해 채득한 원칙을 깐깐히 지키고자 하는 이선준과, 정권에서 소외당한 남인, 서인, 그리고 반쪽 자리 양반인 김윤희, 문재신, 구용하의 우정과 반항이, 정조의 개혁 정책과 맞물려 역사 속 이야기 이상의 불의한 시대에 맞선 청춘상을 구현해 낸다.
<성균관 스캔들>이 노론의 시대에 맞선 청춘들이라면, <몬스타>에서 청춘을 가로막는 것은, 기성 교육 제도이다. 성적으로 아이들을 재단하는 교육 체계, 공부만을 강요하는 학교, 집안과 성적에 따라 베풀어 지는 특혜, 이런 기성 교육 제도에 대해, 아이돌 출신의 윤설찬(용준형 분), 뉴질랜드에서 양치다 온 4차원 소녀 민세이(하연수 분) 등이 자신들만의 무기인, '음악'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이렇게, 역사 속, 그리고 교육 제도 속 기득권은, 이제 <미생>으로 오면, 대기업으로 대변되는, 우리 시대의 조직화된 경쟁 사회가 기득권 세력으로 등장한다. 자격증과 학력이 조선시대의 '노론'처럼 보증서가 되는 세계에서, 그 무엇도 가지지 못했던 남장 여자 남인 출신의 김윤희처럼, 대학조차도 나오지 못하고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장그래가 대기업 원인터내셔널에 던져진다. 그리고, 역시나 잘금 4인방처럼, 그의 곁엔, 때론 그의 적이 되고, 동지가 되고, 결국엔 우정이 될, 안영이(강소라 분), 장백기(강하늘 분), 한석률(변요한 분)이 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캐릭터를 지닌 듯하지만, 때론 문재신같이, 때론 이선준같이, 그리고 때론 구용하처럼, 각자 자신의 사연을 가지고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하고, 장그래와 우정을 엮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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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김원석 월드를 통해 구현된, 정조 시대, 기성 교육 제도, 그리고 이제 대기업 중심의 조직 사회에 던져진 청춘들의 이야기는, 결국, 그것이 역사 속 사실이든, 현실에서 길어진 사연이든, 당대 청춘들의 고민과 열정을 대변함으로써 그것을 시청하는 '청춘'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다. 특히나, <미생>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 같다'는 소감을 잊지 않는다. <몬스타>의 경우, 시대적 공감을 얻기에 시기를 놓친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유지하고 있는 문제 의식에서는 큰 궤리가 없다. 심지어, <성균관 스캔들>의 경우, 그것이 시대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케이블에서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고, 드라마 속 대사가, 곧, 내 청춘의 고민의 그것으로 대변될 만큼, 타협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내 이야기가 될 드라마가 되었다.
그렇게 청춘들의 이야기를 대변한 드라마였기에, 이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곧 청춘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성균관 스캔들>의 잘금 4인방이, 드라마상 주인공들로는 전무후무하게, 이제는 모두 당대의 대표적인 스타로 성장하게 되었듯이, 상대적으로 화제에 못미친 <몬스타>조차도 하연수라는 신성을 배출하고, <미생>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장그래 역의 임시완을 비롯하여, 주인공 4인방 모두가 주목받는 미래의 재목이 되었다.
하지만 김원석이 만든 드라마에는 '청춘'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항상, 그의 드라마에는, 그 당시 청춘들이 공감할 '멘토'상이 등장한다. 어쩌면, 진짜 김원석 표 드라마의 매력은, 열망하는 청춘이라기 보다는, 그런 청춘을 제대로 된 길로 인도하는 그 시대에 어울리는 '멘토'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그런 역할을 정약용 역의 안내상과, 정조 역의 조성하가 해내었다. 안내상이 갈등하면서도 김윤희를 보담고,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는 스승의 역할을 해내었다면, 정조는 불의한 시대에 타협하지 않는 정치적 스승으로 본보기가 되었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멘토'였던 안내상은 이어 <몬스타>에서도 한때 인기 작곡가였지만 이제는 실의에 빠진 과거의 스타로 등장,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꿈을 표현하고했던 '몬스타'들의 '멘토'로 등장한다. 그리고 <미생>에서는 심지어 주된 '러브라인'이라 칭해지는 오차장 이성민이 장그래 뿐만 아니라, 자기 보신에 급급한 이 시대에, '사람'을 책임지는 제대로 된 어른의 대명사가 된다.
이런 멋진 멘토들의 존재 덕분에, 사람들은, 청춘들의 고민에 동조하면서, 멘토들이 제시하는 길을 통해 위로와 희망을 얻어 더욱 드라마에 매료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김원석 드라마에는 멋진 주인공들과, 그들을 꿈으로 인도하는 멘토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주변에서 드라마를 풍성하게 이끌어 주는, 화려한 조연진의 군단이 존재한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잘금 4인방에 대적할 장이 하인수(전태수 분)와 그 수하들은 물론, 노론의 거두 이정무(김갑수 분)를 비롯한 쟁쟁한 권신들의 배후 역시 만만치 않았다. 또한 젊음이 넘치는 대학가를 연상케 하는 성균관의 다양한 캐릭터 들 또한 이 드라마의 빠질 수 없는 묘미였다.
<몬스타>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윤설찬, 하연수만이 아니라, 정선우(강하늘 분), 심은하(김은영 분), 차도남(박규선 분), 박규동(강의식 분) 등의 몬스타 멤버들이 보인 열연이 더 화려했다. 심지어 <몬스타>를 통해 화제가 되었던 것은, 박규동 역의 강의식의 애절한 노래요, 차도남의 랩이었다.
<미생>에 이르면 말하기가 입이 아플 정도이다. 영업 3팀은 물론, 실제 보다도 더 실제같은 대리 군단이라고 칭해질 원인터내셔널 각 부서의 대리들이, 젊은 신입 사원들과 치고 받으며, 드라마의 재미를 만들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대리군단 뿐인가, 과장, 부장, 간부사원까지, 너무도 실감나는 인물 하나하나가 만들어가는 '미생'의 이야기에, 드라마가 대변하는 현실의 이야기는 깊어져 갔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군상들의 합주로 오캐스트레이션되는 김원석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재미' 중 하나는, 묘하게도 '브로맨스'이다.
물론, 그의 드라마에 '멜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중심 줄거리 중 하나는 이선준과 남장 여자 김윤희의 사랑이요, <몬스타> 역시 하연수를 둘러싼 윤설찬과 정선우의 삼각 관계가 주된 이야기였다. <미생>도 주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원작에 비해 여성적 캐릭터로 등장한 안영이와 장백기, 그리고 장그래와 유치원 선생님의 풋풋한 로맨스가 양념처럼 등장한다.
<성균관 스캔들>부터, 이미 다른 드라마들이 그런 시도를 하기 전에 김원석 감독은, 이른바 '남남 캐미'에 주목한다.
<성균관 스캔들>에서 심지어 이선준과 김윤희의 로맨스의 미혹된 지점은, 김윤희가 남자인 줄 알면서도 거기에 끌리는 이선준의 갈등에 있다. 또한, 연말 시상식에서 베스트 커플상을 받을 정도였던, 구용하와 문재신의 캐미는 두 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다.
<몬스타> 역시, 이런 브로맨스를 빼놓지 않았다. 윤설찬과 정선우, 그리고 차도남과 박규동의, 친구인듯, 친구 이상인듯 사연있는 우정은, 실제 여주인공 하연수와의 멜로 라인보다 더 애절하게 드라마를 이끌었다.
<미생>은 심지어, 19회에 이르면 최전무가 장그래의 정규직을 놓고 오차장과 딜을 할 만큼, 장그래는 극중 여주인공이 해야 할 역할을 해내고 있다. 오차장은, 그저 후배 부하 직원을 아끼는 수준을 넘어서 장그래의 정규직에 자신의 직장 생활을 걸고 딜을 할 만큼, <미생>의 오차장과 장그래는, 명목상은 멘토와 멘티지만, 실제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것은, 멜로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하는 역할을 맡게 한다. 어디 오차장 뿐인가. 원작과 달리, 한석률 역시 일관되게 장그래에 엉겨붙는 일편단심 캐릭터로 설정한다. 장백기와 강대리의 미묘한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브로맨스'가 등장하기 전에 '브로맨스'에 주목하고, '멘토' 열풍이 불기도 전에 '멘토'에 주목하였으며, 다른 드라마들이 환타지적 사랑 놀음에 매달릴 때 '현실'의 이야기를 불어오며, 김원석 표 드라마들은, 당대의 대표작들이 되었다.
그러나, 늘 그의 드라마들에 장점만이 있는 건 아니다. 원작이 없었던 <몬스타>가 시대를 늦게 타고 났다는 평가를 받듯이, 원작이 없는 김원석표 드라마는 상상하기 힘들다. <성균관 스캔들> 역시 정조 사후의 살벌한 노론 치하의 세도 정치로 들어선 것과 달리, 드라마는 알콩달콩한 이선준과 김윤희의 결혼 생활과 환타지 같은 구용하와 문재신의 후기로 역사에 천착했던 애청자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미생>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 원작을 비껴간 순간, 언제나 드라마는 재미를 위해, '현실'의 정신에서 미끄러져 갔다. 심지어, 오차장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사건에서의 장그래의 역할의 민폐적 설정, 그리고 20회 장황한 요르담 로케를 하면서까지 강조한 오차장과 장그래의 '완생'담은, 위로는 커녕, 지금까지 무엇을 보았나 싶은 헛헛한 회의까지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과연, 지금까지 김원석이 구현한, <성균관 스캔들>과 <미생>의 젊은 군상들의 이야기가, 원작빨인지, 드라마빨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아마도 이것이 김원석 월드의 남겨진 과제이리라.
사족; 언제나 좋은 드라마에, 좋은 음악이 빠질 수 없듯이, 김원석 표 드라마에 좋은 음악들 역시 놓칠 수 없는 약방의 감초다. <성균관 스캔들> 당시 방송을 통해서는 만날 수 없었던 이선준 역의 박유천이 있는 그룹 jyj의 절창이 빼어났던 '찾았다'를 비롯하여, 아직도 각종 프로그램의 시그널로 등장하는 ost들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몬스타> 역시 허술한 스토리와 달리, 그 스토리를 메꾸어 주던, 마치 '응답하라'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그 시절의 음악들이, <몬스타>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미생>에 이승열의 '날아'와, 장미여관의 '로망', 볼빨간 사춘기의 '가리워진 길'이 없었다면, 그 정서가 제대로 살아났을 리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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