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가 돌아왔다. 불경기가 뭐다 하지만 변함없이 흥청거리는 거리, 하지만, pd수첩의 시선은 이 흥청거리는 거리에서 그 흥겨움을 함께 나눌 수 없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갑도, 을도 될 수 없는, 진짜 '미생' 인턴 사원의 이야기이다.
<썰전>에서 우리 사회 인턴 사원의 현실태를 점검하며, 인턴 사원 중 실제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가 거의 미미함을 짚었었다. 시사 토크 프로그램에서 흘러가듯 짚어봤던 우리 사회 인턴의 현실, 하지만, 실제 카메라가 쫓아간 그 곳에서 한 청년의 죽음이 목격된다.
2013년 4월, 대기업의 인턴 사원이 되었다며 식구들과 주변 친지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았던 청년, 그러나 그는 인턴 사원으로 근무한 지 불과 4개월만에 자기 자취방에서 목을 맸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기 얼마전, 그는 누나에게 자신이 인생의 패배자이며, 사회의 낙오자라며 자책했다고 한다. 대기업의 인턴사원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그 누구보다 긍정적인 사고를 보였던 그가, 불과 4개월만에 '낙오자'라고 낙인찍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뉴스엔
자살을 한 청년이 근무했던 대기업은 '동부금융 네트워크'이다. 다수의 청년들을 기수별로 인턴사원으로 뽑는 이 대기업이 인턴사원들을 뽑아서 시키는 일은, 커피 심부름도, 복사도 아닌, 뜻밖에도 '보험 영업'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 성취한 보헙 영업의 결과를 '정규직' 전환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조건'을 성취하고 정규직 전환을 이룬 인턴 사원이 있었을까? 이 회사의 정규직 전환율은 0%, 단 한 명의 인턴 사원도 정규직이 될 수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 간부 직원은 당당하게 말한다. 그들이 내세운 조건에 도달한 인턴 사원이 없었다고. 하지만, 이 회사가 내건 '영업 조건'은 일반 전문 보험 모집인들의 평균 실적을 상회한 것이었으니,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인턴 사원들에게는 애초에 도달하기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불가능한 조건을 향해, '대기업의 정규직'에 볼모가 된 인턴 사원들은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영업의 스트레스로 위천공이 와서 수술까지 받았던 청년은 더욱 실적의 강박을 느꼈고, 결국 보험 모집을 위해 측근들에게 손을 벌려야 했던 상황이 대인 기피로 이어지며, 결국 자신을 '인생의 낙오자'로 낙인찍기로 귀결시켰다.
그렇다고, 청년들이 너도 나도 '대기업 정규직'이 되고자 찾아들었던 이 회사는, 기실, '대기업'이라고도 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동부 그룹 조직표 속에 존재하지도 않은, 한 지점 격에 불과한, 고갈된 보험 모집 자원을 충당하기 위한 별도의 조직이었다. 하지만, 취직이 절박한 청년들의 눈에는, 그런 조직 체계 외의 조직도, 그들이 내건, 보험 모집의 조건도, 모두, 정규직으로 가는 '관문'처럼 보일 뿐이었다.
금융계 쪽에서 인턴 사원들을 '이용해 먹는'건 비단 동부 그룹만이 아니다. 실제 시중 은행에 인턴 사원으로 취직한 다수의 젊은이들이, '통장 개설' 등 은행 영업의 일선에 몰린다. 하지만, 그들이 '잡아온' 영업 실적은 팀장의 실적으로 둔갑하기 일쑤이고, 주변 친지들을 동원한 실적이 무색하게, 인턴 기간이 끝난 그들에게, 정규직의 기회는 요원하다.
금융계 쪽만이 아니다. pd수첩은 '영업'의 일선으로 몰린 또 한 사례를 다룬다. 이번에는 우유 영업이다. 업계 후발 주자로 출발한 일동 후디스는, 다수의 인턴 사원을 뽑는다. 이들의 계약 기간은 11개월, 그 기간동안, 젊은이들은 발에 티눈이 박히고, 굳은 살이 밸 정도로 아침부터 언제 끝날 지모르는 우유 판촉 사업에 동원된다. 하루에 두 개, 할당을 달성하지 않으면 퇴근 할 수 없는.
하지만, '정규직'이 되고 싶은 젊은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더우나, 추우나, 회사에서 나누어 준 우유 가방을 들고, 밀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꾀를 부리지도 않는다. 잠시 앉아서 쉬어도, 팀장의 채근이 무섭다.
역시나, 이 '정규직'이 볼모가 된 인턴 사원들에게 진짜 정규직은 돌아오지 않는다. 11개월을 버텨 정규직이 된 케이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이전에 그들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우유 판촉 활동을 했으며, 오히려 정규직이란 이유로, 실적 수준이 높아져, 월급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다른 업무도 배우고 싶다는 인턴들의 말을 외면한 채 거리를 돌게 만들면서, 정작 회사에 필요한 인원은, '경력직 사원 모집'을 통해 충원했다.
이 회사의 인턴 사원 기간이 11개월인 이유는 절묘하다. 1년도 아니고, 2년도 아니고 11개월, 퇴직금 줄 필요 없이 책임 질일 없이 쓰고 버리기에 딱 좋은 기간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쓰고 버리기에 딱 좋은 11개월이 젊은이들에겐 금쪽같은 시간이다. 졸업 연도가 취직에 관건이 되는 사회, 졸업한 지 조금만 지나도 '퇴물' 취급을 받는 사회, 그래서 졸업 연도를 맞추기 위해, 휴학을 해야 하는 사회에서, '정규직'의 볼모로 잡힌 채 보낸 1년 여의 시간을 그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 아니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정규직'을 볼모로 이들이 내처진, 보험 영업과, 우유 판촉 사업이, 이들 젊은이들에게,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남긴다. 스스로 목숨을 거둔 젊은이 만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는 취업 전선에 다시 설 자신감을 잃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아이에게 그 회사 우유를 사먹이지 않을 만큼 증오의 흔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다수의 젊은이들이, '영업'의 시간으로 인해, 살벌한 취업 전선에서 한 발 밀려났다.
꿈을 볼모로 잡힌 젊은이들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창의적인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부푼 꿈에 부풀었던, 심지어 외국 유학의 스펙까지 가진 젊은이들이 내로라 하는 디자이너들이나, 디자인 회사의 인턴 사원이 되어, 젊음을 저당잡히고 있다. 참다못한 이들은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앞에서 '실밥만을 먹으며 살 순 없다'고 생존권을 외친다.
'꿈을 가지고 도전하라' 해놓고서는, 그 꿈을 담보로 사기치는 사회, 젊은이들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그런 의문에 대답은 커녕, 어떻게 이용해 먹을까만 궁리하는 기성 세대의 사회, 그들이 결국 등쳐먹는 것은, 자기 아들 세대라는 걸, 그들은 모를까? 그래놓고는 알량한 '인턴' 사원조차 취업율에 넣어, 우리 사회 실직율이 낮다고 떠드는 정부는 또 어떤지. 젊은이들이 가장 흥청망청해야 할 크리스마스 이브,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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