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느와르 M>이 10부의 막을 내렸다. 아니, 이제 보다 본격적으로 '정의'을 향한  싸움을 걸었다. 시즌2가 허락된다면. 1,2부 감옥에서 온 퍼즐, 3,4부 녹, 5부 살인의 재구성, 6부, 예고된 살인, 7부, HOME, 8,9부청순한 마음을 통해 <실종 느와르 M>은 공소시효, 정리해고, 내부 고발자, 등의 각종 사회제 문제를 다루었고, 그 과정에서 방치되는 사회적 약자,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리고 그를 통해, 결국 우리 사회 많은 사회적 범죄들의 이면에 '정의'롭지 않은 강자가 존재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게  추상적 명제인 '정의'의 문제를 1부에서부터 일관되게 추구해왔던 실종 느와르 M이 도달한 곳은 '법위에 존재하는 정의'를 향한 불가항력적인 '단죄'와 그럼에도 끝나지 않는 싸움이라는 정의를 향한 새로운 여정이다. 




오대영을 통해 도달한 '비틀거리는 정의'
<실종 느와르 M>은 프로듀서 이승영의 전작 <특수사건 전담반 TEN>과 달리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두 명의 사건 전담반 수사관으로 시작된다. 그 중 오대영 형사는 시리즈가 시작될 초반 그의 핸드폰 컬러링 '사랑의 배터리'보다도  '느낌적인 느낌'이 없는 존재였다. 그저 사건이 일어나면 열심히 현장으로 달려가고, 형사라는 직위에 걸맞은 '정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단선적인 캐릭터였다. 실제 배우 박휘순의 존재감을 밑돌았던 오대영 형사, 하지만 10화에서 결국 그가 도원건설 대표에서 방아쇠를 당기듯이 그의 캐릭터는 가장 큰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자신이 발로 뛰어 실종한 사람을 찾으면 된다고 믿었던 순진한 형사가, 실종된 사람만은 찾고 싶어하다, 실종된 사람을 찾아도 사건은 남는 '찝찝함'을 넘어, 정의가 왜곡된 세상, 불의가 살아남는 세상을 자각하고 고뇌한다. 그리고 그 고뇌는, 그가 과잉 총기 사용을 의심하던 길수현을 막아서는 바람에 피해자가 목숨을 잃게 되자 본격적이 되었고, 결국 자신이 늘 지니고 다니던 작은 법전을 태움으로써, '그가 믿었던 '법적 정의'를 넘어선다. 그리고 '법적 정의' 위에 존재하는 불가항력적인 불의를 향해 총구를 들이댄다. 그리고 가장 평범한 인물이었던 오대영 형사의 변화와 함께 시청자들도, 그가 맞닦뜨린 7개의 사건을 통해 <실종 느와르 M>이 제기하는 '정의'에 대한 질문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는 곧 <실종 느와르 M>이 드러내 보이는 '정의'가 부재한 우리 사회에 대한 공감이다. 

길수현을 통한 정의의 반추 
오대영이란 캐릭터가 평범함에서 정의를 향한 '단죄'의 주체가 되는 단선적이지만, 분명한 여정을 가진 캐릭터인 반면, 길수현이란 캐릭터는 10부에 이르러서야 그의 숨겨진 사연이 드러날 만큼 오리무중이었던 캐릭터이다. 
사건이 해결되고 실종된 피해자를 구하지 못하고, 정작 구조적인 불의는 생존하는 과정에서, 동료인 오대영이 그를 의심할 만큼 그는 때로는 사건의 해결보다, 사건 종결이 미처 해결하지 못한 '정의'의 문제를 상징한다. 그래서 때로는 피해자의 자살을 방조하기도 하고, 피의자의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어 죽음에 이르게도 만든다. 또한 사건 종결 이후에도 여전한 가해자의 사회적 복수에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자신이 아는 한, '법적인 종료' 이상, '정의'의 문제를 꼭 건드리고야 마는 길수현, 그는 그래서 의미심장하고,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 '정의'의 실체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시청자들에게 질문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7화 HOME에서 그의 총구가 오대영에 의해 빗겨가고, 10화에서 오대영의 총구를 막지 못한다. 10화 내내 길수현 식의 정의는 사적 단죄로 그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오대영과 긴장 관계를 형성하지만, 10화에서 과도한 총기 사용을 기꺼이 선택한 것은 오대영이다. 

하지만 과거 길수현은 그의 가족을 죽인 사람들을 죽이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조우한 뜻밖의 진실때문이다. 그는 눈 앞에서 목격한 살인자를 찾아 단죄하려고 했지만, 정작 그를 통해 발견한 것은 숨겨진 배후이다. 그리고, 그가 찾아낸 살인자처럼, 오대영은 그를 이용하려는 세력에 의해 또 다른 청부 살인자가 되어버린다. 길수현의 과거와 맞닿아버린 오대영의 살인, 거기엔, 선명한 듯 하지만 왜곡되기 쉬운 복잡한 '정의'의 실체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실종 느와르 M>은 범죄 시리즈로는 독특하게 추상적 명제 '정의'를 내세웠다. 그리고 이는 단어의 추상성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정의'가 '불의'에 의해 구조적으로 침식되어 가는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 시리즈의 7개의 사건은 우리 사회 곳곳에 드러나는 부조리한 범죄들이고, 그 범죄들 배후엔 언제나 권력과 부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리고 <실종 느와르 M>은 정의의 이름으로 그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10부에서 보여지듯이, 정의가 요원한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처럼, <실종 느와르 M>의 정의는 비틀거린다. '법'위에 존재하는 불의를 향해 '사적인 단죄'를 행한다. 그리고 뜻밖에 숨겨진 진실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길수현의 나레이션, 포기하지 않는다면 정의를 향한 여정도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실종 느와르 M>의 다음도 기대하게 된다. 




by meditator 2015. 5. 31. 17:14

5월 27일 첫 선을 보인 <가면>은 단 2회만에 1.7%나 시청률이 상승하며 순조롭게 수목드라마 대전에서 1위 자리를 굳혔다. 첫 회 드라마가 시작하자 마자 여주인공인 변지숙(수애 분)이 탄 차가 아기 사슴을 피해 벼랑으로 구르다 바다에 빠지려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 상황처럼 드라마 속 변지숙의 삶 역시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 시청자들의 이목을 끈 것이다. 

그런데 <가면>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는 이른바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을 끈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2013년 9월부터 kbs2에서 방영되어 화제를 모았던 <비밀>의 작가 최호철의 차기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작가 작품이라 그럴까? 단 2회에 불과하지만 <가면>은 어딘가 <비밀>같다. 하지만, 또 <비밀>을 함께 했던 유보라 작가나 이응복 피디의 부재때문일까? <비밀>같지는 않다. <비밀>인듯, <비밀>같지 않은 <가면>은 어땠을까?




<비밀> 인듯한 <가면>
무엇보다 비슷한 것은 어딘가 정상적이어 보이지 않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이다. 대기업 회장의 외아들, 하지만 그의 친모는 사연을 가진 채 죽었고, 아들은 그런 친모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해 정신적 아노미 상태를 보인다. 브리핑 조차도 제대로 못해내는 기업을 물려받기엔 한없이 부족한 업무적 능력에, 관심조차도 그다지 없다. 약속이 있어도, 우연히 스쳐가는 여자를 친모로 오해해 쫓아가듯 충동적으로 벌이는 일들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신임을 받기 힘든 위치에 놓여있다. 거기에 아버지는 사업적으로 무관심하며 무능력한 아들을 미더워하지 않고, 어머니는 말만 어머니지 자신이 낳지 않은 후계 구도 1순위의 그가 제거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이런 불안정함이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의 죽음 앞에서 죽인 강유정(황정음 분)에 대한 집착으로 자연스레 이어져 독보적인 <비밀>의 조민혁(지성 분)이 되었다. 또한, 병적이리만큼 결벽증에 빠진 최민우(주지훈 분) 캐릭터 역시 쉽게 설득이 된다. 

그렇게 성과도 같은 집에 살며, 화려한 백화점을 집무실로 삼는 재벌가의 하지만 불행한 남자 주인공이라면, 그와 조우하게 될 여주인공은 가난한 집의 딸이다. 그것도 공교롭게도 무능력해서 딸에게 빚과, 그 빚을 받기 위해 사채업자들의 가학적인 독촉만을 남겨준 아버지이다. 하지만 '부친'의 경제적 그늘 속에서도 삶의 의지를 잃지 않던 여주인공은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그녀의 인생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비밀>에서는 그녀가 순정을 다바쳤던 안도훈(배수빈 분)이 일으킨 교통 사고요, <가면>에서는 그녀와 똑같은 얼굴을 지닌 '도플 갱어' 서은하의 의식 불명에 이은 역시나 '교통사고'이다. 이렇게 두 건의 교통사고는 똑같이 <비밀>의 강유정, 그리고 <가면>의 변지숙의 삶을 극적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이렇게 극와 극의 삶의 조건인 두 남녀 주인공 사이에, 또 한 남자가 있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났지만 삶의 상승을 향항 야망만은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는, <비밀>의 안도훈과 <가면>의 민석훈(연정훈 분)이 그들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욕망을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합목적적' 야망형 인간형은, <비밀>과 <가면>의 두 주인공을 이끄는 사건의 또 다른 추동력이다. <비밀>의 조민혁을 집요한 복수의 화신으로 몰아간 것은 결국 따지고 보면 안도훈의 교통사고였고, 강유정을 비극적 운명으로 몰아넣은 것 역시 그것을 덮으려는 안도훈의 욕망이다. 마찬가지로 스치듯 지나갈 수 있는 <가면>의 최민우와 변지숙을 한 운명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민석훈의 야망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야망에 불을 지피는 주인공과 애증의 관계에 놓인 여자들 <비밀>의 신세연(이다희 분)과 <가면>의 최미연(유인영 분)이 있다. 

부조리한 재벌가. 하지만 그 '부'를 욕심내는 야망의 남자, 운명적으로 거기에 얽혀 들게 된 가난하지만 순수한 여자, 그렇게 <비밀>과 <가면>이 가진 드라마의 얼개는 유사하게 짜여져 있다. 



<비밀>이 아닌듯한 <가면>
이렇게 따지고 보니 매우 흡사한 극의 얼개를 가지고 있지만, 단 2회에 불과함에도 <가면>이 <비밀>의 작가가 썼던 작품이라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작품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안도훈의 교통 사고로 시작된 <비밀>은 사건의 진실을 밝혀가고자 하는 '스릴러'로 시작된다. 거기에 사랑하는 이를 죽인 강유정에 대한 조민혁의 집착에서 비롯된 치명적 멜로의 분위기로 이어진다. 그에 반해, <가면>은 오히려 이제 와 따지고 보니 <비밀> 역시 통속극의 얼개를 가지고 있었구나!란 뒤늦은 깨달음조차 줄 정도로, 통속극으로서의 분위기를 분명하게 드리운다. 거기에 뜬금없이 얹혀지는 최민우의 코믹 설정. 통속극으로서의 <가면>이 말 그대로 너무 통속적이고 진부하게 느껴진다는 제작진의 생각이었을까? 아니면 <비밀>의 조민혁과는 조금 다른 차별성을 두어야 한다는 강박이었을까? 주말 드라마나 아침 드라마에서 종종 조우하던 재벌 집안의 이전투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거기에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주인공을 등장시키면서 역시나 어디선가 본듯한 전형적 구도를 벗어나지 않는데, 그런 '통속극'의 얼개를 비틀어, 뜬금없이 최민우가 '코믹'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그가 가진 정신적 불안이, 그리고 그와 변지숙의 만남이 '웃음'의 포인트로서 드라마에 방점을 찍는다. 

<가면>의 전작 <냄새를 보는 소녀>가 80%의 로코와 20%의 스릴러를 표방했듯이, 마치 <가면>은 통속극 80%에 코믹 20%를 표방한달까? 하지만 2회에 불과하지만 아쉬운 것은, 장르적 진부함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자연스럽게 조화되었다기 보다는 그저 '낯설게 하기'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sbs 수목 드라마의 목표가 이질적 장르의 조합이라도 되는 것처럼 <냄새를 보는 소녀>도, <가면>도 이질적인 두 장르를 조합하려 하지만, 두 장르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서 비롯된 소화라기 보다는, 그저 '섞어 넣음' 수준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후의 전개가 뻔히 예상되는 통속극의 얼개, 그리고 아직은 어색한 코믹한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가면>은 다음 회가 기다려진다. 그것은 아마도, 스릴러이건, 멜로이건, 혹은 통속극이건, 코믹이건, 두 작품을 이끌어 가는 남녀 주인공들의 매력적인 캐릭터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리고, <비밀>이 조민혁에게 갖은 별명을 따라붙고, 조민혁-강유정 커플에 홀릭하는 시청자들을 양산했듯이, <가면> 역시 단 2회지만, 치명적이면서도 허당스런 최민우의 주지훈과, 삶에 애착을 놓지 않으면서도 당돌한 변지숙, 그리고 믿음직스러운며서도 야먕의 그림자가 짙은 민석훈, 그리고 집착하면서도 깨질 것 같은 최미연, 네 사람의 캐릭터와 연기의 질감만으로도 <가면>을 볼 기대가 생겨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5. 29. 10:02

5월 27일 방영된 <추적 60분>은 '월세 시대, 여러분의 집은 안녕하십니까?''에서는 최근 '월세'로 귀결되어가는 주택 시장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결국 '월세 시대'로 귀결되는 원인을 짚어본다. 


'전세 대란'으로 시작되는 월세 시대
'월세 시대', 하지만 그 시작은 전세 대란이다. 나날이 치솟는 전셋값, 하지만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전셋집, 그 과정에서 등장한 하나의 단어가 있다. 바로 '깡통 전세'가 그것이다. 치솟는 전셋값이 집값의 70를 넘어서면서 기한이 된 전셋값을 물어줄 수 없는 집주인이 속출하면서 등장한 단어이다. 과도한 부채를 얹은 집이 결국 경매 시장으로 넘겨졌을 때, 전세를 살던 임차인들은 은행의 선순위 대출금을 제외한 짜투리 금액만을 받을 수 있다. 지난 6년간 수도권 아파트 경매 통계를 보면, 세입자가 경매과정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가 391건에서 2481건으로 6년 동안 6배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치 속에 담겨진 의미는 누군가의 전재산이 고스란히 혹은 대부분 강탈당한 채 '하늘이 무너져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깡통 전세'로 내몰면서도 전셋값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애초에 나오는 것도 별로 없거니와, 나온다 해도 바로 소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애초에 전세 대란이 생겨난 것일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저금리'와 '오르지 않는 집값'에 있다. 더 이상 부동산 가격 상승이 보장되지 않는 주택 시장에서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받아 예금에 예치해두는 것만으로 '이득'이 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일확천금'을 노리고 과도한 대출금을 끼고 집을 샀던 집주인들이 집을 날리는 사태가 속출하고, 그 과정에서 애꿏은 전세 임차인들이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연속되는 것이다. 

그렇게 더 이상 '집'이 '황금알'을 낳지 않는 세상에서 집주인들의 전략은 바뀌어 간다. 원금 보전을 해주기 힘든 전세 대신, '월세'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매달 주거 비용으로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서민들의 목을 옭죈다. 4억 3천만원 전세 대신, 보증금 2억에 월세 200을 요구하는 시대, 뻔한 살림살이의 서민 생활에 '주거 비용'이 가중된다.

대출을 끼고 집을 사보니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다시 과도한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올 상반기 아파트 거래량은 2006년 이후 역대 최대치를 보인다. 하지만, 늘어나는 아파트 거래량에는 그늘이 있다. 실제 집값의 70까지도 대출로 충당하는 사람들 그들은 평생 월세 대신 대출금을 갚으며 살아야 한다. 2011년 이후 주택담보 대출은 꾸준히 늘어 445억원에 달했고, 이는 곧 상승하지 않는 주택 시장에, 개인의 금융적 위기, 나아가 국가 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시한 폭탄과도 같다. 



하지만 전셋집이 없다고 월세를 내고, 집을 사고 하는 것도 여의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해상을 떠도는 '보트 피플처럼, '전세 난민'이 되어 서울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다시 경기도로 이렇게 떠돌게 된다. 
게다가 월세 전환의 경우도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중산층이 대거 자리잡은 동네에서는 그래도 전세와 월세가 병존하는 반면, 서민층의 주 거주 지역인 다세대, 다가구 주택들의 경우 월세가 득세한다. 결국 최근 주택 시장의 변화와 결과를 서민층이 온몸으로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고스란히 '서민'에게 전가되는 
이렇게 전세 대란으로 시작하여, 깡통 전세, 울며 겨자먹기 식 주택 구입, 그리고 월세 시대로 이어진 현재의 주택 시장의 상황, 그걸 광범위하게 훑어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렇게 서민들에게 고통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만든 원인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전세 대란이 일어나자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주택 대출을 손쉽게 하여 집을 사도록 유도한 것이다. 말 그대로 집을 사면 전세 대란이 줄어들 것이라는 단선적 해결책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분석처럼, 정부의 '탁상공론'처럼 주택 시장은 따라주지 않았다. 오히려 전세 대란은 가중되었고, 늘어난 주택 담보 대출은 개인은 물론, 국가 경제의 큰 부담으로 남게 된 것이다. 매번 정부는 새로운 경제 정책을 내놓지만, 월세 시대로 나아가는 흐름을 막지 못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임차 보증금'을 보전하는 법률 등 서민들의 알량한 재산이나마 보전해 주는 법적 조치는 국회에서 거북이 걸음 중이다. 결국 서민은 전세를 구해도, 집을 사도, 월세를 살아도 국가 정책의 희생양이 될 뿐이다. 




결국 <월세 시대, 여러분의 집은 안녕하십니까?>가 장황하게 주택 시장의 악순환을 설명하며 귀결한 것은, 서민들의 삶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 실패다. 아니 애초에 '서민'코스프레만 했지, '서민'들은 염두에 두지 않은 정책의 뻔한 결과이다. '전세 난민'으로 떠도는 서민들의 삶 대신, 집 가진 자들의 이익을 보전하고자 '공공 임대 주택' 대신 '주택 담보 대출'을 늘이는 정책의 결과란 불을 보듯 뻔하다. oecd 국가들과의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낮은 공공임대 주택 비율, 하지만 20만호의 행복 주택 물량은 14만호로 줄었고, 심지어 '공공 임대 주택'을 짓기 위해 마련된 택지 조차 주변 아파트 집주인들의 열화와 같은 반대로 택지 조성의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공공 복지 시스템'은 마련조차 되어있지 않은 시대,  아니 과연 '공공'이란 개면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시대,서민들만 '월세시대'의 난민으로 흘러 떠내려 간다. 

by meditator 2015. 5. 28. 11:54

한 사람의 형사가 있다. 그는 늦은 밤  뜻하지 않는 사고를 겪고, 그로 인해 한 사람이 죽는다. 하지만 정작 '법'을 지켜야 하는 형사는 사건을 덮는다. 하지만 그의 뜻과 달리, 그가 죽인 사람이 그의 목을 조른다. 자신의 목을 옥죄어 오는 죽은 사람, 아니 사건을 덮기 위해 무리수를 범하기 시작하는 형사, 그러나 그가 맞닦뜨린 것은 예상 외의 또 다른 사건이다. 




형사가 저지른 범죄, 그로 부터 시작된 사건 
이 개략적인 설명에 어울리는 영화는?
그렇다. <어벤져스>. <매드 맥스> 등 외화의 압도적 선전 속에 200만 고지를 바라보며 순항하고 있는 <악의 연대기>의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 제목처럼 2014년 끝까지 가서 340만 관객을 동원하고, 5월 26일 백상 시상식에서 김성훈 감독에게 각본상을, 주연 배우 이선균, 조진웅에게 쟁쟁한 선배들을 물리치고 영화부문 최우수상을 안겨준 <끝까지 간다>의 내용이기도 하다. 

상복없는 배우 이선균과 늘 조연의 자리에만 머물던 조진웅에게 연기상을 안겨준 영화 <끝까지 간다>는 어머니의 빈소를 지키던 형사 고건수(이선균 분)가 우연찮게 저지르게 된 뺑소니 사건에서 시작된다. <악의 연대기> 역시 혁혁한 성과로 수상을 하고 본청 승진을 앞두고 회식을 한 후 홀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최창식(손현주 분)은 돌변하여 자신을 죽이려던 택시 운전사를 오히려 죽이고 만다. 물론, 고건수의 사건이 뺑소니이고, 최창식의 살인이 '정당방위'성을 띠지만, 이 두 형사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 혹은 미래의 야망으로 인해 사건을 은폐하고자 한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그들이 은폐한 사건은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고건수가 유기한 시신을 목격한 자가 고건수의 목을 죄어오고, 최창식이 버리고 온 시신은 그가 일하는 경찰서 앞에 매달려 있다. 이때부터 사건을 숨기려는 자와, 그 숨기려는 자을 옭죄어 오는 자,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주인공 형사가 몸담고 있는 경찰에서 벌어지는 주인공이 결부된 사건 수사가 진행되면서, 극의 갈등은 극대화되고, 쫓고 쫓기는 자, 쫓기지 않기 위해 다시 쫓는 자의 숨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이렇게 액션물, 혹은 스릴러 물의 전형적인 구도인 선과 악의 경계가 미묘해지면서,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과, 그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무마하기 위해 시간을 다투며 벌이는 씬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영화를 따라가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는 엄청난 물량 공세로 스크린을 장악하며 한국 시장에서 독식하고 있는 외화, 혹은 1000만을 노리는 기획된 흥행 영화들의 득세에도 불구하고, 이 두 영화의 선전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재미들이다. 그리고 이는, 이와는 다른 구도이지만, 류승룡 주연의 <표적>의 관전 포인트 역시 마찬가지다. 



<끝까지 간다>와 <악의 연대기>의 다른 지향
이런 스릴넘치는 액션, 거기에 거듭된 반전의 묘미를 지닌 <끝까지 간다>와 <악의 연대기>, 그러나 초반 사건을 펼치는 구도는 비슷하지만, 중반 이후 두 영화의 질감은 달라진다. 자신이 벌인 뺑소니 사건을 덮기 위해 어머니 관 속에 시신을 숨기는 해프닝을 벌인 고건수의 범죄는, 바로 그의 앞에 등장하는 그보다 더 나쁜 경찰 박창민(조진웅 분)의 존재로 인해,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싸움이 된다. 그래서 분명 시작은 나쁜 짓을 벌인 고건수로 인해 벌어졌지만, 고건수를 이용하여 더 큰 범죄를 덮으려는 박창민이 절대악처럼 그의 카리스마를 뿜어내기 시작하면서, <끝까지 간다>는 도덕적 가치의 경중을 따지기 전에 서부 영화와도 같은 오락적 흥미가 배가되는 영화로 전환된다.

그에 반해 묵직한 중량감을 지닌 연기자 손현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악의 연대기>의 지향은 다르다. 영화의 제목에 등장하는 '연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러 가지의 뜻 중 두 가지를 주목할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서로 뭉쳐 결속하다'의 연대와, 사건의 순서를 쫓아 사실들을 기록한 글을 의미하는 연대기가 그것이다. 영화는 과거의 한 사건,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고 홀로 남은 한 소년이 '나는 살인범의 아들이다'를 독백하며 시작하면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그 누군가의 연대기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을 죽이려던 택시 운전사를 죽이고 최창식이 자신을 옭죄어 오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역추적하며 등장하는 사건은, 과거 그가 결부되었던 형사들의 협잡, 즉 한 선량한 시민을 살인범을 몰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연대'이다. 마치 <살인의 추억> 속 해프닝처럼 그려졌던 만만한 장애인을 범인으로 몰았던 정황이, <악의 연대기>로 오면 한 부자의 몰락을 자초한다. 그리고  영화의 종반부, 결국 이 영화, 아니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 처음 보여준 빗속에서 나는 살인범의 아들이다'라고 되뇌였던 그 사건으로 귀결되면, '연대기'로서의 가치를 드러내며 제도 속에 숨겨진 폭력이 또 다른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지는 처절함에 방점을 찍는다. 

나쁜 놈이 더 나쁜 놈과 싸우는, 그런데 그 나쁜 놈이 절대 악의 포스를 풍기거나, 혹은 알고보니 피해자이거나, 진범이거나의 상황이 주는 다른 질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간다>, 그리고 <악의 연대기>가 기반한 공통의 정서는 부패한 경찰, 결국 시스템화된 권력의 오류이다. <끝까지 간다>에서 고건수가 뺑소니 사건을 벌였음에도 영화 종반 그를 응원하게 되는 묘한 감정의 근원은, 그를 이용하여 자신의 범죄를 덮으려는 박창민의 제도화된 부패이다. 결국 스스로 목숨을 거둔 진범에도 불구하고, <악의 연대기>영화 마지막 묘한 슬픔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는 것은 정의로웠던 경찰이 일상화된 부패에 젖어들기까지의 '악의 연대 세력'이 된 구조적 시스템에 대한 분노이다. 앞서 언급한 <표적>의 끝판 왕 역시 폭력 조직처럼 경찰에 기생하던 싸이코패스와도 같은 송기철(유준상 분)이다. 

결국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부패한 권력,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이 <끝까지 간다>와 <악의 연대기>를 추동하는 엔진이다. 그 엔진의 동력 위에 때론 좀 더 오락적으로, 때론 좀 더 묵직하게 변주되며 한국형 스릴러로 정착되어 가는 중이다. 


by meditator 2015. 5. 27. 13:57

5월 25일 첫 선을 보인 <촉촉한 오빠들>, 제목은 촉촉한 오빠들이라며 예능 늦둥이 김상경, 현주엽, 정상훈, 강균성을 내세웠지만, 사실 이 예능의 본질은 세상을 살아가는 평번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거기에 덧붙인 감동 이벤트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사연에 소박한 이벤트
1년 째 백혈병에 걸려 병원에서 생활해야 하는 정원이, 하지만 오랜 병원 생활에도 불구하고 겨우 다섯 살인 아이에게 주사를 맞는 것은 언제나 견디기 힘든 순간이다. 엄마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그 어려운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의지가 되는 친구가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뽀로로,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친구 뽀로로가 커다란 모습으로 등장하여, 정원이와 정말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주사 맞을 때마다 용기를 주는 선물 모자를 건넨다. 그리고 주사만 봐도 발작처럼 울음을 터트리던 아이는 기적같이 엄마가 없어도, 혼자 주사를 견딘다. 

다음 이벤트는 요즘 세상에 가장 고달픈 대상, 바로 취준생들이다. 면접을 보러 들어간 취준생들, 애써 웃음을 짓던 그들의 얼굴을 무너뜨리고 만 입사의 자격을 묻는 가혹한 질문들. 혼자 남은 방에서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파묻던 그들의 눈 앞에 켜진 텔레비젼 모니터, 그리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들의 영상 뒤로 이어지는 부모님들의 모습, 초라한 모습으로 자괴감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자식임을 강변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에 취준생들은 울음을 터트린다. 

마지막 순서는 '밥 한번 먹자', 거리에서, 공원에서, 씨름 연습을 하는 운동장 모래판에서, 그리고 거리의 버스 안에서, 의뢰인의 '밥 한번 먹자'라는 청원에 느닷없이 일군의 청년들이 등장하여 밥상을 차린다. 그러면 그 밥상 앞에서, 결혼을 앞둔 장인과 사위가, 오랜 연인이, 그리고 어머니와 딸이 마음을 나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사연들이 <촉촉한 오빠들>의 이야기이다. 아프고, 이제 세상 밖으로 떠밀려난 청춘들, 그리고 세상살이에 고달픈 엄마, 그리고 작은 이벤트, 물론 뽀로로가 노란 모자를 주었다고 정원이가 맞는 주사가 아프지 않을 건 아니지만, 부모님들이 대신 나서서 우리 자식들이 이렇게 자랑스럽다 말한들 그들의 취직 결과가 달라질 것은 아니지만, 딸이 차려준 한번의 밥상이 엄마가 느끼는 세상의 무게를 달리 해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작은 이벤트로 정원이도, 취준생들도, 엄마도 세상을 살 힘을 얻는다. 



사연과 이벤트에 더한 눈물 한 스푼
바로 그렇게 너의 힘듬을 조금은 나누어 가지는 나의 공감이 <촉촉한 오빠들>의 핵심이다. 비싸서 평소에 오리 한번 사먹기 힘든 가장 엄마와 그런 엄마가 안쓰러운 딸은 버스에 급작스럽게 차려진 오리 만찬에 서로 먹기를 권한다. 그 와중에도 이거 니가 산 거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는 이 모녀의 삶에 드리운 무게, 그 무게를 공감하는 딸의 '밥 한번 먹자'를 공감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촉촉한 오빠들'이 그들이다. 

텔레비젼 앞에서 시청자이 사연에 울고 웃고 공감하던 역할을 김상경, 현주엽, 정상훈, 강균성 등 '모냥 빠지고 싶지 않은 남자들'이 눈물 줄줄 흘리며 대신 해주면서, <촉촉한 오빠들>은 흔한 사연과 이벤트의 예능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공감'의 예능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공감' 조차도 새로운 예능의 한 형식으로 자리잡아간다. 
by meditator 2015. 5. 26. 11:42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며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시대에, '아날로그한' 인간성 회복을 주창하며 시작되었던 <인간의 조건>, 우리를 문명의 노예로 만들었던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는 3무생활로 시작하여, 쓰레기없이 살기, 물 소비 줄이기 등 갖가지 문명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주의'를 실천해 왔다. 그러나 회를 거듭하면서 멤버를 교체해 가며 여러가지 인간의 조건을 실천해 봤지만, 고갈된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채, 시즌2에 이르러서는 <인간의 조건>이란 고유한 아이덴티티마저 놓친 채 <삼시세끼> 등의 아류라는 오명조차 뒤집어 쓰게 되었다.그렇게 자중지난에 빠졌던 <인간의 조건>이 대세 쉐프들이 합류한 새로운 멤버, 그리고 '도시 농업'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들고 돌아왔다.




왜 하필이면 옥상에 텃밭을?
<인간의 조건3>가 새로이 시도한 '도시 농업' 그 중에서도 옥상 텃밭으로 인해 이미 한차례 홍역을 치른바 있다. 지난 4월 kbs 연구동 건물 옥상에 농사를 짓기 위한 흙 포대를 올리려다, 1층 어린이집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이에 kbs 연구동 옥상에서 찍은 분량을 전량 엎은 제작진은 영등포 구정 옥상으로 장소를 옮겨 혹시나 있을 반대를 우려에 사전에 하중 조사까지 완료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장소를 옮겨가면서 까지 옥상에 텃밭을 만들려고 할까? 사전 조사나, 주거인과의 합의가 미처 이루어 지지 않아 아쉬웠지만, 이미 '옥상 텃밭'은 자투리 텃밭, 상자 텃밭과 함께 친환경 도시 농업의 대세 아이템이다. 녹지 공간이 부족하기 이를데 없는 도시에서 도시 열섬화 방지 및 녹지 공간을 통한 기후 완화와, 정서 함양,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먹거리 공급'에 이르기 까지 다목적적 방향에서 민관 양쪽에서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는 '농업'인 것이다. 건물 옥상에 마련된 텃밭은 그 하중만 견뎌 준다면, 건물에 사는 사람들에게 '친환경적' 공간을 마련해 줌은 물론, 실질적으로 건물의 일조량을 견뎌주는 환경적 요인마저 더해준다. 거기에, <인간의 조건3>의 옥상 텃밭이 자리잡은 영등포 구청의 경우 주변에 '산'이 하나도 없은 온전히 도시만의 공간이기에, 녹지 공간의 조성은 절실하다. 그렇게 이미 '친환경 농업'의 대세로 자리잡은 '옥상 텃밭', 그것이 <인간의 조건3>가 야심차게 내건 화두가 된다. 



'옥상 텃밭'을 일굴 새로운 농부들
그렇다면 트렌드가 된 옥상 텃밭을 일굴 새로운 얼굴들은 누구일까? 트렌드에 걸맞게 대세 쉐프들이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다. <냄장고를 부탁해>에서 '톰과 제리'처럼 아웅다웅하며 이미 남다른 케미를 선보였던 최현석 쉐프와 정창욱 쉐프가 새로운 멤버로 합류한 것이다. 이들과 함께 미트틱 89의 대표이자 예능의 첫 포문을 열었던 음악인 윤종신과, 그의 음악 노예로 이름을 알리게 된 조정치가 시즌3의 새로운 얼굴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미 시즌 1을 통해 '엄마'같은 존재감을 드러내었던 정태호와, 역시나 <인간의 조건>에 합류하였던 박성광이 함께 했다. 익숙한 듯 하지만 이질적인 이 새로운 조합의 묘미는 아직 미지수다.

23일 첫 선을 보인 <인간의 조건3>는 옥상에 텃밭이 만들어 지기까지의 과정을 선보였다. 텃밭을 이룰 흙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 사전의 철저한 조사와, 물기를 견딜 방수포 작업에서 흙 깔기까지의 제반 과정이 보여졌다. 거기에, 새로이 만난 여섯 멤버들의 조금은 어색한듯, 하지만 어느새 어깨를 툭툭 치고 반말이 나오게 되는 친밀함의 과정도 그려졌다. 

최현석 쉐프는 예능 대세 답게 결코 한 순간도 포인트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를 들이밀었고, 그런 그의 여전한 '허세' 캐릭터는 <인간의 조건3>의 주요한 재밋거리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최현석 쉐프에 못지 않게 흥미를 유발한 것은 정창욱 쉐프이다. '서기'를 자처한 꼼꼼한 성격에 자기 돈 출현도 마다하지 않는 헌신성, 그리고 이미 농사의 유경험까지, 옥상 텃밭 프로젝트에 가장 적임자임을 첫 회에 이미 드러낸다. 거기에 사적으로 친밀한 최현석 쉐프와의 아웅다웅은 <인간의 조건3>의 쌍두 마차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그렇게 이미 대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삽질마저도 최현석답게 해버리는 최현석 쉐프와, 그에 못지 않게 차곡차곡 캐릭터를 쌓아가는 정창욱 쉐프에 비해, 다른 출연진들은 어쩐지 좀 너무 익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어느 자리에서 꾸준히 성실함을 보이는 정태호나 아직은 그 면모가 드러나지 않은 악동 박성광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윤종신과 조정치에 이르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심지어 첫 회부터, 몸을 쓰는 대신 '입농사'로 일관하는 윤종신의 경우, 과연 '예능적 캐릭터'로서의 진부함에 덧붙여, '옥상 농사'에 어울리는 인물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몸을 쓰는 리얼리티 예능에서 윤종신의 존재감은 진부하거나 미진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삽질에 지쳐버린 조정치 역시 <무한 도전>이 아닌 <인간의 조건>에서 그 존재 의미 여부가 의심스럽다. 들여다보면 입부터 나서는 캐릭터에서, 대뜸 나서고 부터 보는 캐릭터까지 다양한 캐릭터들의 군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라는 몸을 쓰는 예능에서의 진정성에, 과연 이 여섯 멤버들이 어느 만큼 진정성있는 결과물을 답보해 낼지, 그것이 결국 <인간의 조건3>가 받아들 성적표를 좌우할 것이다. 

<인간의 조건>을 처음 시작할 때 호평 일색이던 그 좋은 설정을 가지고도 결국은 <삼시 세끼> 아류로 전락했던 과정을 되돌아 보노라면, 결국은 이 새로운, 혹은 진부한 멤버들과 함께 그들이 흘린 땀을 예능으로 수확해낼 '제작진'의 능력에 새로운 <인간의 조건>의 운명이 달려있다. 하다못해 닭조차도 분량을 챙기는 대세 <삼시세끼>가 순항 중인 이때, 대세 쉐프들을 두 명이나 합류시킨 <인간의 조건>이 과연 새로운 대세가 될 수 있을지, 첫 술에 배부르지는 않았다. 
by meditator 2015. 5. 24. 04:18

윤성호 감독에서 표민수 감독으로 좌장을 교체하는 극단의 조처를 마다하지 않은 이 화제작<프로듀사>, 하지만 3회를 맞이한 이 새로운 시도의 작품은 여전히 미지수다. 신참 피디 백승찬(김수현 분)을 따라다니는 다큐 피디의 존재가 여전한 가운데 다큐인 듯하다가, 탁예진(공효진 분), 라준모(차태현 분), 신디(아이유 분)까지 네 사람이 서로 얽히고 설키는 지점에서는 '로코'인 듯하다가, 왁자지껄한 방송가 에피소드의 연속된 해프닝에서는 시트콤인 듯도 하다. 그런데, 이 다큐인듯, 로코인듯, 혹은 시트콤인 듯한 설정들이 3회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프로듀사>라는 드라마에 집중할 수있도록 만드는 매력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3회 마지막 부분, <프로듀사>에서도 희미한 서광이 비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서광은, <프로듀사>가 궤도를 튼 '로코'쪽은 아닌 듯하다. 


방송국, 그들이 사는 세상

3회까지 방영된 <프로듀사>를 보고 mbc의 이춘근 피디는 자신의 이야기같다는 평을 트윗에 남겼다. 어리버리 조연출 김수현의 연기와, 프로그램의 위기에 봉착하여 남은 소주를 집에 싸가는 차태현, 그리고 스탭을 물리고 아이유에게 아부하는 공효진까지. <불만 제로>가 강제 종료된 후 영업직이 된 이춘근 피디를 웃프게 만드는 내 얘기아닌 내 얘기는, 그의 평대로, 방송가의 '리얼'한 에피소드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굳이 피디라는 특수 직업이 아니더라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말을 바꾸는 상사와, 그런 상사를 비웃음으로 넘길 수 밖에 없는 부하 직원들, 그리고 당돌한 신입과, 면이 서지 않는 상사 등, 일반적인 직장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감대 또한 내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듀사>가 보이는 '리얼'과 '공감'은 어쩐지 허전하다. 

고지식한 서울대 출신 백승찬을 두고 '니마이, 쌈마이'론을 펼치는 지점은 어쩐지 2015년의 그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과연 2015년의 서울대 출신 조연출들도 '고지식'할까? 문득 그런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진다.즉, 이춘근 피디의 회고적 트윗처럼,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든 사람들이, 그들의 90년대를 회고하듯 마치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듯한 정서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방송국의 초짜로서 과자를 사다 바치고, 호떡을 하루 종일 들고 다니는 백승찬의 고된 '을'로서의 수난시대가 온전한 공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초반 자사 프로그램 <안녕하세요>까지 동원하며 '회사 가기 싫어요'를 외치지만, 그 외침은 벼랑 끝의 갑을 관계의 절박함이라기 보다는 '치기어린 발버둥'처럼 다가오는데 <프로듀사> 공감의 한계가 있다. 차태현의 위선적 말바꾸기에 욕이 나올 것을 꾹 참는 작가들의 반응에서 보여지듯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피디들은 방송가의 갑인 것이다. 아마도 2015년의 '리얼'한 방송국의 갑을 관계를 드러내려 했다면, 방송국에서 밉보여, 영업직으로 발령받은 이춘근 피디의 이야기 정도는 등장해야 하지 않을까? 고지식하고 순수한 첫사랑의 감성을 지닌 신참 조연출이 아니라, '일베'의 전력으로 목이 간당간당한 신입 직원은 어떨까?


거기에 덧붙여 김태호 피디가 벌이는 자기 자식 학원비를 아끼려 거대 소속사에 연습생으로 들이미는 해프닝에서부터,섭외를 둘러싼 실제 유희열, 신동엽, 윤종신, 그리고 박진영까지 동원한 해프닝들은 버전은 다르지만 역시나 어디선가 본듯한 해프닝의 연속이다. 줄곧 방송가의 '리얼'을 강조하기 위해 실존 인물들까지 동원하며 고된 방송가의 나날들을 나열하지만, 분명 그럴만한데, 지루하다. 그나마 '박진영의 '버퍼링' 정도가 웃음의 포인트가 되었달까. 하지만 그 정도로 '재미;를 유발한다면, 시트콤으로서 <프로듀사>는 썰렁한 축에 속한다.  


아직은 공감보다는 뻔한 로코의 설정들

방송가에 갓 들어온 신입 사원들은 '고지식'하고 순수할 거라는 전제에서 풀어내기 시작한 <프로듀사>의 갈등 구조는 백승찬의 '순수한' 첫사랑과, 그가 바라보는, 아니 그가 오해하는 라준모, 탁예진, 그리고 백승찬의 첫사랑녀 신혜주(조윤희 분)의 삼각 관계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걸 풀어가는 방식이 너무 뻔하다. 고지식한 백승찬, 그가 피디직을 도전할 만큼 순수하게 바라보았던 신혜주까지도 90년대에도 있을까 말까한 이야기인데, 거기에 알고보니 잘 생긴 장혁에, 스윗한 이천희까지 마다하고 일관되게 탁예진이 라준모 바라기였다니. 게다가, 해프닝으로 연결된 백승찬과 탁예진, 신디가 이제 또 다른 남녀의 관계로 전환될 예정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런 뻔한 사랑의 구도에 대한 공감이 어설프다는 것이다. 첫 회부터 내내 일관되게 짜증나는 선배 피디의 역할에 집중했던 탁예진도 그렇고, 작가들 앞에서 말바꾸기는 당연하며 자주 비겁하며, 비굴한 피디의 리얼리티를 실현해 가고 있는 라준모 피디 모두, 어쩐지 '로코' 버전에는 이질감을 주는 캐릭터가 된 것이다. 

그들은 방송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열연하기에, 그들이 이제 3회에 이르러 서로를 '남녀'의 관점으로 바라보려는데, 여전히 히스테릭한 탁피디, 비굴한 라피디의 면모가 그들의 캐릭터를 지배한다. 자고로 사랑 이야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레이는'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동생의 말처럼, 탁피디는 도무지 궁금해 지지 않는 뻔한 여자요, 라피디는 잘생긴 전 애인을 대체할 만한 매력이 보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잘 난척하는 왕싸가지 캐릭터의 신디 역시 다르지 않다. 당대의 대표 가수 아이유의 실제 매력에 한참 못미치는 신디의 당돌한 캐릭터 역시 아직은 전혀 사랑스럽지 않다. 


게다가 <프로듀사>에서 앞으로 러브 라인을 탈 두 여주인공의 캐릭터는 묘하게 동질감을 준다. 신입 피디에게 과자 심부름이나 시키는 철면피 탁피디나, 왕싸가지 신디나 다른 배우, 다른 직업의 두 사람임에도 자기 중심적인 여성 캐릭터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그런 면에서 멋지기 보다는 궁상맞고 어쩐지 불쌍해 보이는 지점에서 라피디와 백승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나이가 많고 적음, 잘 생기고 , 덜 생김 외에. 


그런 면에서 <프로듀사>가 앞으로 집중할 '로코'에 산적한 과제가 많다. '리얼리티'의 만연 속에서 이 네 사람의 주인공들이 '사랑할만한' 대상이 될 매력을 찾아내어야 하며, 서로 겹치는 캐릭터들 속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찾아내야 비로소 '로코'로서의 <프로듀사>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백승찬의 캐릭터가 보이는 가능성

그렇지만 <프로듀사>가 내내 암울한 것만은 아니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스펙에 걸맞게 김수현이 연기하는 백승찬의 캐릭터가 어리버리 신참 피디라는 뻔함을 넘어 조금씩 그만의 장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여전히 '꽃미남'처럼 보이는 김수현의 외모가 아니라, 오히려 '니마이'로서의 백승찬 캐릭터이다. 도대체 선배 누나를 좋아한 것 외에는 이렇다할 개성이 보이지 않던 그가, 조연출의 '사마천'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방송가의 역사를 두루 섭렵한 면모를 보이면서 피디로서의 능력을 드러내며 백승찬의 가능성도, <프로듀사>의 가능성도 열린다. 


방송가 프로그램의 주기를 차분하게 도표까지 보이며 설명하는 백승찬, 그리고 그저 자신을 추파를 던지는 남자나, 섭외만을 생각하는 또 한 사람의 피디로 바라보는 신디 앞에서 뻔한 캐릭터로 소비되지 않는 인간으로서의 연예인론을 펼칠 때 해프닝으로만 연속되었던 <프로듀사>의 '그사세'는 다른 질감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는 여태까지 이 드라마가 해프닝으로 점철하면서, 라준모, 탁예진을 희화화했을 뿐,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인'으로서의 피디로 그려내는데 실패앴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승찬을 피디를 할 만한 인물, 그리고 누군가을 진심으로 감동시킬 만한 인물로 가능성을 열듯이, 그를 제외한 다른 세 주인공 역시 백승찬처럼 '감동'과 '공감'의 지점을 열 인물로 설득해 낼 때, 비로소 드라마 <프로듀사> 역시 진정한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5. 5. 23. 07:18

이상하다. 분명16회 중반에 이르기까지 연쇄 살인범 권재희(남궁민 분)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기까지 허술하기가 이를데 없는 스릴러였다. 그런데 그가 죽고 최무각(박유천 분)이 흘린 회한의 눈물이 마르기 무섭게 결혼식을 했느니 마느니 하던 무림 커플(최무각-오초림)이 신혼 여행도 떠나지 못한 채 아웅다웅하며 예의 '냄새를 보는' 수사를 하는데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자기를 빼놓고 혼자 수사를 갔다고 삐지는 스물 아홉 남편, 그런 남편을 꽉 껴안으며 귀여우니 삐지지 말라는 스물 세살 어린 신부, 하지만 그들이 신혼 여행도 미룬 채 자전거를 달려 수사를 하러 가는 모습에선 더할 나위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치매도 아니고. 하지만 뭐 어떤가?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걸 뭐 이런 생각이 드는 걸. 그렇게 '바코드 살인 사건'이란 부제를 걸고, 스릴러의 구비구비마다 걸려 넘어지던 <냄새를 보는 소녀>는 이 드라마만이 가능했던 '로코'의 분위기를 한껏 뽐내며 마무리되었다. 각자의 트라우마에 짖눌려졌던 두 연인, 하지만 트라우마 따위 한 방울의 눈물로 날려버리고, 서로를 보듬어 안고 함께 해서 행복한 그 순간을 만끽하는 이 평범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그간 어설픈 스릴러에 시달린 마음조차 풀어져 버린다. 


이희명 표 로코로서의 냄새를 보는 소녀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원작이 가졌던 어두운 분위기를 일소하고 한껏 밝은 분위기의 '로코'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상처로 고통받던 여주인공은 '냄새를 보는 능력'을 유지하는 대신, 과거의 기억을 잃은 '개그우먼' 지망생의 밝은 캐릭터가 되었다. 자신도 몰랐던 과거의 사건을 알게 되며 때론 눈물짓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최무각을 만났던 그 미용실 강도 사건 해프닝에서 다짜고짜 사건에 뛰어들던 그 '씩씩함'에, 형사 최무각에게 만담 파트너를 해달라는 대담한 딜을 할 수 있는 '당참'까지, 굴곡진 16부작의 롤러코스터 동안 매력적인 오초림으로 <냄새를 보는 소녀>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았다. 



거기에 원작에서는 보일듯 말듯했던 캐릭터의 남자 주인공은 동생을 잃은 사연으로 인해 감각을 상실한 최무각이란 독보적인 캐릭터로 돌아왔다. 특히나 두 주인공의 알콜달콩 러브 스토리와 연쇄 살인 사건의 스릴러라는 양 극단의 분위기를 오초림의 만담 파트너와 형사라는 캐릭터를 오가며 복합 장르로서의 <냄새를 보는 소녀>를 가능케 했다. 

무엇보다 <냄새를 보는 소녀>의 장점은 그간 로맨틱 드라마의 대부분이 실장님, 혹은 그 이상의 남자 주인공과, 그로 인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하지만 대신 사랑을 줄 수 있는 여성의 '신데렐라'식의 스토리였다면, <냄새를 보는 소녀>는 말단 순경과, 개그우먼 지망생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연인들의 러브 스토리를 근간으로 삼음으로써, 그 어떤 드라마보다 '보통' 연애의 코스프레를 완벽하게 한다. 더구나, 일방적인 남성의 보호와, 여성의 사랑받음이 아니라,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두른 최무각 순경의 팔을 당차게 밀치고 자신이 그의 어깨를 겯는 장면에서 상징되듯이, 만담도 하고, 수사도 공조하는 '평등한 현실 연애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실제 이 커플이 극중 나이 차가 여섯 살 정도가 남에도 불구하고, 매번 여주인공이 '최순경님'이라고 부름에도 불구하고, 실제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 일방적인 방향의 환타지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연애를 하며 벌이는 갖가지 해프닝들이 극을 이끈다. 그래서 이 무림 커플들은 세상의 연인들처럼 늘 만나 무언가를 먹고, 길을 걸으며, 함께 버스를 타며 그들이 운명처럼 만난 극적인 사건을 겪어 나간다. 

평범한 연애, 하지만 비범한 연기 
하지만 이 지극히 평범한 연애의 일상은 정작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이 되면 매우 고난도의 능력을 요한다. 조금 어색하면 바로 '코스프레'의 티가 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매번 이희명 작가가 욕심내는 스릴러까지 덧붙여진다면, 연기를 하는 배우의 편에서 보자면 '하이 퀄리티한 연기력'을 요하는 장르가 된다. 이희명 표 로코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특히나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처럼 만담을 하다가, 사건을 수사하고, 알콩달콩 연애를 하다, 자신의 측근을 죽인 살인범을 만나 분노에 떠는 폭넓은 연기력이 아니고서는 <냄새를 보는 소녀> 자체가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 <옥탑방 왕세자>를 통해 300년의 시공을 가른 사랑을 때로는 절절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풀어냈던 박유천의 선택은 이미 한번의 검증을 끝낸 셈이다. 더구나, 박유천이 <냄새를 보는 소녀>를 하기 전까지 했던, <보고싶다>, <쓰리데이즈> 등의 멜로에서부터 스릴러를 오가는 장르적 경험과, 영화<해무>까지 더해지고 보면,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스릴러와 로코를 봉합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배우가 없을 듯싶다. 또한 역시나 <뿌리깊은 나무>, <아이언 맨>, 그리고 <타짜2>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연기를 보여주었던 신세경 역시 <냄새를 보는 소녀>를 통해 만개하였다. 이 두 배우의 내공과 시너지로, 중반 이후 흔들렸던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무림 커플은 굳건하게 <냄새를 보는 소녀>를 지켜낸다. 

그렇게 현실적인 두 연인을 연기한 박유천 신세경 외에, 늘 실장님의 인자한 모습으로 각인된 남궁민의 제 얼굴같았던 사이코패스 연기 역시 <냄새를 보는 소녀>의 한 축인 스릴러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침묵 속에 '염미 반장'으로 돌아온 윤진서의 스타일리쉬한 캐릭터 역시 원작의 염미 반장의 카리스마를 잊게 만든다. 그들과 함께, <옥탑방 왕세자>에서 신하 3인방이 개그 코드를 담당했듯, 강력반 형제님 3인방은, 믿고 보는 든든한 조연으로 극을 받쳐준다. 비록 드라마는 들뛰어도, 연기는 그런 들뜀조차 지그시 눌러가며 <냄새를 보는 소녀>를 볼 맛을 제대로 지켜낸다. 

현실적인 러브 스토리와 만난 스릴러 
아마도 <냄새를 보는 소녀>가 종영한 시점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아 보라면 분명 그것을 어설픈 스릴러일 것이다. '황금 물고기'는 운운하며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겼지만, 연쇄 살인마에게 목격자가 살아있다는 힌트를 주고만 천백경 원장의 죽음에서 부터, 드러나지 않은 바코드 0번의 죽음은 물론, 사이코패스가 희생시킨 아홉 사람의 죽음까지, 의문을 가지고 스릴러물로서 <냄새를 보는 소녀>를 보았던 시청자들의 입맛에 <냄새를 보는 소녀>는 도무지 충족되지가 않는다. 

하지만, 권재희의 처음 알리바이에서부터, 강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그리고 마지막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설명해 내지 않는 <냄새를 보는 소녀>의 스릴러 부분을 보면서, 애초에 이 드라마가 공약했던 로코 80%에 스릴러 20%의 그 20%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 스릴러적 스토리의 20%가 아니지 않은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이희명 작가가 생각한 스릴러는, 초반 무림 커플이 수사에 발을 들이면서, 냄새를 보는 설정을 이용해, '코난'처럼 좋게 말하면 '쾌도난마'식으로, 따지고 보자면 분위기만 잡다 입수사를 하게 되는 '만화적' 설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즉, 스릴러라면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추리를 하고, 실마리를 따라 사건을 풀어가고, 추적해 가는 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런 사건이 있다, 라는 상징적 스릴러적 분위기라는 것이다. 

오히려 패착이라면, 작가의 그런 설정에 대해, 연출진이 지나치게 방점을 부여하면서, 그의 분위기가 슬릴러에 집중되면서, 로코 80%의 전체적인 균형을 흐트러트린 데 <냄새를 보는 소녀>의 패착이 있는 듯하다. 물론 따지자면, 스릴러를 욕심내면서도 전혀 섬세하게 스릴러 장르의 묘미에 천착하지 않은 작가의 탓이 크겠지만, 16부의 완결 과정을 보노라면 애초에 작가는 무림 커플이 작은 사건 수사하듯, 바코드 살인 사건을 염두에 두었는데, 판이 너무 크게 벌어져 버린 탓이랄까. 물론, 케이블과 미드의 스릴러 물을 통해 높은 심미안을 가진 스릴러 팬들의 증가를 무시한 채 안이하게 극의 갈등이라는 양념 정도로만 스릴러를 써보겠다는 안이한 의도가 근본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어설픈 스릴러에도 불구하고, 이희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15회 비밀의 방 앞에서 죽은 사람들의 생을 기록한 책을 챙긴 채 도망가려던 권재희를 잡고도 최무각은 떨떠름하다. 엄마가 남긴 글을 읽으며 눈물짓는 초림을 보는 그의 심정은 더욱 무거워져만 간다. 죄를 지은 자가 사법적 심판을 받아도, 피해자들의 상처가 씻겨지지 않는다는데 최무각의 무거운 마음이 놓여져 있다. <냄새를 보는 소녀> 초반 최무각은 다짐한다. 내가 살인범을 잡아 죽일거라고. 그리고 결국 16회 권재희는 최무각의 손에 의해 생을 마친다. 물론, 권재희를 죽이고 싶었지만 최무각은 최후의 순간 그래도 법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그런 최무각의 결정이 무색하게, 권재희는 그가 경찰들을 죽이고 호송차에서 탈출하는 순간, 즉, 스스로 법의 경계를 벗어나고, 다시 최무각과의 대결에서 그를 죽이려 도발하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해 버린다. 법을 지키려던 피해자, 하지만 결국 가해자는 스스로 법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피해자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권재희로 인해 동생을 잃은 최무각, 그리고 권재희에게 부모님을 잃은 오초림, 이 사건 피해자 두 사람은 사건 관계자는 수사에 참여할 수 없는 원칙을 벗어나 사건에 참여하고, '냄새를 보는 능력'을 이용하여 범인을 밝혀내고 잡는다. 그리고 결국은, 피치못할 상황 속에서 스스로 범죄를 단죄한다. 

<옥탑방 왕세자>가 300년이라는 시공의 경계가 무색하게 '기억'이 있다면 그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라는 사랑의 영원성을 일관되게 주장했다면, 알콩달콩한 로코와 어설픈 스릴러의 경계를 넘어서며, <냄새를 보는 소녀>를 통해 이희명 작가가 어쩌면 말하고 싶은 것은, 고통받는 피해자들, 그리고 그런 피해자들이 무색하게 사과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고통받는 피해자들과, 그들의 사연 따위나, 세세한 알리바이 조차 궁금하지 않은 파렴치한 가해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어쩌면 이희명 작가가 무림 커플을 통해 한번쯤 질러보고 싶은 것은, 얄팍한 법의 보호가 아니라, 피치못하던 어쨌던, '심판'이 아니었을까? 어설펐던 스릴러, 그리고 그런 약점을 덮고도 남을 현실적 연애, 그런 모든 장치를 걷어낸 <냄새를 보는 소녀>의 속내다. 하지만, 그런 속내가 제대로 전해졌을지, 그건 스릴러에 분노하고, 로코에 매료된 시청자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by meditator 2015. 5. 22. 10:12

이제 마지막 회만을 남겨둔 <냄새를 보는 소녀>, 5월 20일 방영된 15회는 드라마에서 배우가 할 수 있는 맥시멈을 스스로 증명해 낸 한 회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맥시멈을 증명하기 위해, 그간 <냄새를 보는 소녀>에 대해 드라마적 흥미를 자아내게 했던 기대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스릴러적 상황과 트라우마의 어설픈 해결
조그만 공터에서 형사들이 스스로 연쇄 살인범 권재희의 도주로를 찾는 대신, 여주인공인 오초림(신세경 분)의 냄새를 보는 능력에만 의지하다, 비가 오니 그 마저도 관두고 목숨이 경각에 놓인 동료가 있는 상황에서 비를 피해 차를 마시러 가는 등, 개를 풀어도 그 보단 낫겠단 말이 나오는 상황을 어찌어찌 봉합하여 드디어 권재희의 비밀의 방을 찾아냈다. 그리고 최무각 형사(박유천 분)의 활약으로 총상을 입은 채 권재희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복수가 법률적 수순에 맞춰 성공했지만 반성할 기미조차 없는 권재희에 최무각은 주먹을 날리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그런 미진함과 달리, 최무각의 무감각은 돌아오고, 오초림의 기억도 되살려진다. 그리고 이것은 <냄새를 보는 소녀>가 애초에 설정했던 권재희의 악행으로 인해 두 주인공의 트라우마가 풀려진 결정적 장면이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 속 최무각의 감각 복귀는 그저 밥을 먹다 배부름을 느끼는 것으로 어이없게 설명된다. 봉인되었던 오초림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자다가 부모님의 꿈을 꾸다 기억이 돌아오는 것이다. 두 주인공의 무감각와 초감감에 흡인된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극적인 감동을 주기엔 한참 미흡한 극적 정점이다. 아마도 여전히 권재희에 대한 미진함을 떨치지 못한 무각의 감정처럼, 그저 흘러가듯 두 주인공들은 감각을 찾고, 기억을 찾아버린다. 

오히려 15회에서 공을 들인 것은 <냄새를 보는 소녀>가 그간 장점으로 부각시켜 왔던 두 주인공의 알콩달콩한 데이트씬. 기억을 찾는 오초림과 부모님,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을 찾은 최무각은 준비한 반지를 전해주려는 고백을 여러 버전으로 상상하는가 하면, 막상 이벤트를 준비하다 실패해 모래 속에 숨은 반지를 찾으려 애쓰는 등 해프닝을 벌인다. 물론, 그 상상의 마지막은 이전의 진부한 자동차 트렁크 풍선이나, 분수대 고백 등의 평범한 이벤트가 아닌, 오로지 <냄새를 보는 소녀>만이 가능한 향수를 이용한 '결혼해줘' 보이는 냄새 고백이었다.

하지만 이 환상적인 고백은 그 이전에 무각과 초림의 트라우마에 대한 회복이 급조한 듯한 모양새로 후딱 넘어가면서, 시청자들이 충분히 이 두 사람의 행복에 대한 심정적 대비를 하기도 전에 찾아와 버렸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좀 더 두 주인공들의 아픔에 대한 회복에 마음이 가있는 상황에, 제작진은 지레 그간 이걸 좋아하셨죠 하면서 하면서 예의 유머를 잔뜩 친 고백씬들을 남발해 버린다. 



드라마가 어설플수록 빛나는 박유천, 신세경의 연기
어설픈 트라우마에서의 복귀와, 장황한 결혼 고백 이벤트라는 어쩐지 균형을 상실한 15회, 그리고 물 속에서 경찰 세 명이 죽는 상황에서도 부활하여 결혼식장에서 오초림을 납치하는 전지전능함으로 마지막 회까지 존재감을 떨치는 사이코패스의 압도적인 하지만 지겨운 활약 속에서도 15회를 견디게 만드는 것은 두 주인공의 연기다. 

이미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친절하게 풀어내는 대신, 개그적 코드가 버무려진 데이트씬과, 사이코패스의 악행으로 점철된 양 극단을 불안하게 오고가던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흔들리는 극의 흐름 속에서 불친절한 감정씬마저도 연기도 봉합해 오던 것 역시 박유천, 신세경의 연기였다. 작가인지, 감독인지, 편집인지, 흔들리는 원죄의 발흥처가 심히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단 한 장면 스쳐가듯 주어진 장면에서도 두 주인공은 자신들의 절절한 눈빛만으로 풀어내지 못한 두 주인공의 상처와 고통을 설명해 냈다. 작가는 자신이 풀어낼 설정을 잊은 채 연쇄 살인범의 악행에 몰입하고, 감독은 중심을 흔들리고, 편집은 들뛰는데도, 여전히 드라마는 볼만하게 만드는 것은 두 배우의 연기이다. 

15회, 그 마저도 한 장면으로 퉁치고 넘어가 버린 이후의 상황에서, 어설퍼져 버린 극의 흐름과 상관없이 박유천은 고백의 하지 말아야 할 예로서 작가가 설정해 넣은 한껏 오글거리는 고백씬들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메꾸고 설득한다.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의 남자 주인공으로 멋짐과 폼남을 접어둔 채, 어설픈 극적 설정들의 빈틈을, 간이 진해진듯한 개그스런 설정들마저 마다하지 않은 채 자신을 던져 가면서 연기로 메꾸어 내는 박유천의 연기는, 그저 주인공이 아니라, 작가와 감독과 배우라는 삼각 편대에서, 뒤처진 나머지 두 동반자를 이끌어 가며 드라마를 책임지는 주연의 자리를 실감케 한다. 마차가지로 몸을 던져 열연하는 박유천의 개그 코드 앞에서 감동스런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해 내는 신세경은 이 한 컷만으로도 이쁨을 넘어선 성실한 연기의 자세를 가진 여배우의 자리를 증명해 낸다.

물론, 이런 <냄새를 보는 소녀>의 전략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실제 1회부터 <냄새를 보는 소녀>가 대중적으로 반응을 얻은 것이 바로 이런 '개그스럽게' 두 주인공이 맞부딪치는 장면들이었기에, 마지막까지, 반응을 얻었던 '촤~'를 남발하여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로서 극이 풀어가야 할 주인공의 감정적 부분조차 대충 넘어간 채 이런 부분에 치중하다보니, 두 주인공에 몰입하여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몰입을 깨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런 몰입을 깨는 요소를 더한 것은, 그간 복합 장르로서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했던 <냄새를 보는 소녀>가 풀어낸 어설픈 스릴러 코드들이 더한다. 초반 '추리'하는 재미를 더했던 모든 설정들마저, 시청자들은 기억하는데, 제작진은 '퉁'치고 넘어간다. 초반 두 주인공이 말로 사건을 해결하던 방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결국은 사이코패스의 도돌이표 악행으로 극적 긴장감을 이끌어 가는 자승자박하는 결과에 이른 것이다. 웃프게 비밀의 방을 찾는 상황에서, 복수의 딜레마에서 갈등하는 장면들조차, <냄새를 보는 소녀>는 드라마로서 그걸 푸는 대신 온전히 그의 무감각에는 불친절했던 최무각에 의존하고, 박유천은, 단 한 컷으로 그걸 설득해 낸다. 눈물어린 자책의 신세경 역시 극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들여다 보자면 한없이 어설퍼진 15회의 스토리를 두 주인공들이 극적인 감정을 오가며, 한껏 무너지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연기로 짊어진다. 그래서, 그저 그러려니 하고 허리 풀고 앉아서 허허롭게 웃으며 부담없이 즐기게 되는 드라마로 풀어낸다. 따지고 보면 따질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얼굴 근육을 한없이 일그러뜨리고, 목소리를 뒤집어 가며 자신을 던지며 웃기는 장면마저 열연하는 두 주인공으로 인해 팔짱낀 손이 풀어지는 것이다. 

초생방으로 진행되는 드라마의 환경 속에서 이른바 작가가 삽질을 하면, 연출도 같이 산을 타고, 편집은 칼 춤을 추고, 출연자의 연기 마저도 어색해져 버리는게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냄새를 보는 소녀>가 단순해져버린 갈등 구조, 친절하지 못한 감정선, 그리고 뜬금없는 개그 코드의 치중 속에서도 진지하게 중심을 잡고 시청자들에게 '볼 거리'를 선사해주는 박유천, 신세경 두 배우의 열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냄새를 보는 소녀>를 막방까지 '닥본사' 해야 할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배우가 스스로 개척한 신세계다. 
by meditator 2015. 5. 21. 11:20

2015년 5월 11일, 18일 양 일에 걸쳐 방영된 <휴먼 다큐 사랑>은 5년의 침체기를 뚫고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로 하나의 동메달과 네 개의 금메달을 딴 쇼트 트랙 선수 안현수와 그의 아내 우나리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러시아 선수촌의 유일한 부부 안현수-우나리
5월 11일 방영된 첫 편 <휴먼 다큐 사랑-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을 연 것은 빡빡한 러시아 선수촌에서의 안현수 부부의 일상이다. 선수촌에 부부라니! 하지만 러시아 선수촌에 유일한 부부 커플이 바로 안현수-우나리 부부이다. 

안현수 선수의 조그만 방, 거기서 아내 우나리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운동을 하는, 하지만 러시아라는 이방의 입맛과는 다른 한국인 안현수를 위해 음식을 만든다. 조그만 선수용 냉장고가 부족하여, 동토의 러시아 날씨 베란다에서 얼어버린 김치도 꺼내고, 두 세시간 걸려 음식을 만들고, 남편을 먹이고, 하지만 운동 선수 남편에게 '설겆이'를 바라는 건 사치다. 다시 아내는 남편이 비운 그릇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한번에 설겆이조차 할 수 없는 세면대, 그곳이 아내가 설겆이를 하는 장소다. 
아내 우나리의 일은 그걸로 끝이 아니다. 스케이트를 타지도 못하는 그녀가, 또 한 사람의 선수인 양, 남편의 훈련 길에 동행한다. 피곤한데 쉬어 라고 립 서비스를 하지만 훈련 중간 늘 아내를 눈길로 찾는 남편을 위해, 아내 우나리는 남편의 훈련 과정을 동영상으로 담는다. 남편만이 아니다. 러시아 팀 공식 매니저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그녀가 찍은 동영상은 또 다른 선수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선수들이 옷을 갈아입는 락카, 처음엔 들어오지도 못하다가, 들어와도 어디에 눈을 둬야 할 지 몰라 쭈볏거리다, 이젠 자연스레 선물까지 받는 처지가 되기까지, 안현수의 아내 우나리의 여정은 길었다. 아내이자, 공식 요리사이자, 개인 트레이너에서 마사지사까지, 일인 다역을 하며, 러시아에서 유일한 안현수의 '껌딱지'가 된 우나리, 이들의 사랑엔 한군 쇼트 트렉계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린 안현수의 비극이 숨어 있다. 



이방인 안현수에서 러시아 국민 영웅 빅토르 안이 되기까지.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부진한 성적과 달리,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났을 나이에, 화려한 재기에 성공한 안현수의 소식 이후로, 한국 쇼트 트랙계에 만연했던 '인맥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 세계 대회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우리나라의 대표적 쇼트트랙 선수가 된 안현수, 하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고질적인 쇼트 트랙계의 인맥 갈등에, 끊이지 않은 부상이었다. 결국, 그는 무릎 수술 등과 대표 선수 선발 비리 등으로 더 이상 한국에서 쇼트 트랙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여전히 선수로서 빙판에 서고 싶었던 안현수. 부상과, 외부의 압력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던 안현수는 무모하게도 '러시아 행'이라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러시아 행의 선택이 이후 소치 올림픽에서 보이듯 화려한 결과를 예정한 것은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추스리지 못한 채 오로지 쇼트 트랙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만을 가지고 떠났던 러시아, 하지만 중고등학생 수준의 러시아 대표팀에서조차 안현수는 슬럼프에 빠진 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지쳐가던 안현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계기가 된 것이 지금의 아내 우나리. 그녀는 홀홀 단신 러시아로 갔고, 안현수를 도와 그가 소치에서 다시 재기할 수 있기 까지 '껌딱지'같은 그의 동반자가 되었다. 



<휴먼 다큐 사랑- 두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은 이미 소치 올림픽 당시, 우리나라 선수를 제끼고 온 국민의 성원을 한 몸에 받았던 안현수, 하지만 조국을 버렸다는 오명을 뒤집어 썼던 안현수 선수의 그간 행적을 아내 우나리와의 사랑의 여정으로 설명한다. 

그가 쇼트 트랙계의 고질적인 인맥 싸움으로 한국 대신 러시아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하지만 러시아 행을 택하고도 5년만에 화려한 재기를 이루기 까지 결코 쉽지많은 않았던 여정들이, 안현수-우나리 커플의 애닮은 사랑의 시점으로 재탄생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천재 쇼트 트랙 선수 안현수가 아니라, '이방인'에서 '러시아 국민 영웅'이란 여정을 살아낸, 쇼트 트랙을 버릴 수 없었던 선수 안현수의 쇼트 트랙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다. 여러 번의 무릎 수술로 아직 채워지지 않은 근육으로 금메달을 따기 까지, 고된 훈련 후 말할 힘조차 없어, 새우등이 된 채 구부러져 잠이 드는, 그러면서도 다시 다음 날 빙판에 서는 선수 안현수의 기적을 목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열정어린 선수의 진심을 눈밝에 알아봐주고 지켜봐준 '진심어린 사랑', 그의 아내 우나리의 용기와 또 다른 도전 역시, '이방인' 안현수가 '영웅' 안현수가 되는 견인차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돈'이나, '국기의 색깔, 혹은 명예라는 속세의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순수한 사랑의 그것말이다. 
by meditator 2015. 5. 19. 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