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5부작으로 찾아온 <휴먼 다큐 사랑>이 마무리되었다. 지난 5월4일 고 신해철씨의 가족 이야기<단 하나의 가족>을 시작으로 <안현수,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헬로 대디>, <진실이 엄마2, 환희와 준희는 사춘기>까지 네 편의 이야기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났다.
그런데, 장애를 가졌건, 고난을 거쳤건, 탄생과 성장, 그리고 가족을 이야기하던 <휴먼 다큐 사랑> 하지만 2015년이 그려낸 대한민국의 사랑은 이전과 다르다. 네 편의 이야기에 사랑은 '상실의 시대' 속 사랑이다. '가족'을 이루어 사랑하고 싶으나, 그들의 사랑은 완결되지 않는다. 완결 될 수 없다. 시대가, 세월이 그 가족의 사랑을 방해하고 있으니까.
2014년 <휴먼 다큐 사랑>은 이역만리 캐나다까지 건너가 샴 쌍둥이 타티아나와 크리스타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머리가 붙은 채 태어난 샴 쌍둥이, 하지만 그들의 엄마 펠리시아는 낙태를 권유하는 의사들의 말을 거절하고 이 아이들을 낳았다. 생존율 20% 하루하루가 신체적 불편함을 넘어 샴 쌍둥이이기에 태생적으로 가져야 할 여러 휴유증과의 싸움이지만, 엄마, 아빠, 할아버지, 언니, 동생으로 이루어진 이 샴 쌍둥이의 대가족은, 그 어려움을 사랑으로 이겨내고, 이들을 티없이 밝은 아홉살 소녀들로 키워낸다. 2014년의 <휴먼 다큐 사랑>은 이런 식이다. 거기엔 뇌성마비에, 뇌종양이 걸린 여섯 살 듬직이와 연지가 있고, 희귀 백혈병으로 고통받는 수민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병은 쉬이 낫거나, 고쳐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지만,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 혹은 가족을 대체할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그 어려움을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상실의 시대 속 사랑
하지만 그로 부터 1년, <휴먼 다큐 사랑>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그 사랑은 신체적 고통과 달리, 지울 길 없는 마음의 상처다.
첫 회 고 신해철씨의 가족 이야기 <단 하나의 가족>, 병을 고치려고 들어간 병원에서 의료 사고로 하루 아침에 유명을 달리하게 된 가수 신해철, 그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였지만, 그 이전에 두 번의 암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씨의 사랑으로 버텨낸 아내 윤원희씨의 남편이자, 딸 지유, 그리고 아들 동원이의 아버지다. 그리고 이제 그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평생 피던 담배까지 끊은 집 밖 외출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늙으신 아버지와 그를 대신해 일하러 나간 그의 아내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돌보는 어머니의 아들이다. <휴먼 다큐 사랑>은 하루 아침에 가장을 잃은 이 가족의 이야기를 그의 49제로부터 다룬다. 가장의 부재, 아이들은 여전히 집에 돌아오면 거실에 걸린 아버지의 사진에 밝게 인사를 하고, 자신이 먹었던 맛난 군것질 거리를 나누어 주지만, 이제 아이들이 귀여워 물고 빨고 하던 아버지의 체온을 느낄 수 없다. 병마를 이겨낼 정도로 굳건한 사랑을 믿어주었던 남편 대신, 아내는 오랫동안 외국 출장을 다니며 가장의 자리를 채워야 한다. 아버지가 없는 자리,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 아이들을 보살피지만, 아이의 입학식 선생님에게 인도할 아버지가 없는 이 가족은 시시때때로 서럽다.
2회에 걸쳐 방영된 <안현수, 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은 그나마 훈훈한 러브 스토리이다. 러시아 선수촌에 유일한 부부 안현수, 우나리. 선수촌의 좁은 방안에서 한국 음식을 해먹이고, 좁은 화장실에서 몇 번에 걸쳐 설거지를 하는 생활을 하며 아내 우나리는 이제는 러시아 빅토르 안이 된 안현수의 내조를 한다. 하지만 그들이 러시아 선수촌의 유일한 부부가 되기 까지의 여정이 만만한 것만은 아니다.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쇼트 트랙 선수였지만, 한국 쇼트 트랙 빙상계의 파벌 싸움과 텃세에 밀려, 그리고 무릎의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안현수.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그가 오로지 쇼트트랙을 계속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다른 국적이다. 올림픽에서의 영광은 되찾았지만, 이제 안현수에겐 조국이 다르다. 그는 러시아 유니폼을 입고, 러시아 국가를 들으며 시상대 위에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혹사했던 안현수, 그를 재기시키기 위해 우나리의 헌신적인 사랑이 필요했다. 덕분에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러시아로부터 좋은 집까지 포상으로 얻고, 심지어 올림픽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환호까지 받았찌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빅토르 안이다.
네 번 째 소개된 이야기는 코피노 민재의 사연이다. 코피노,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아이를 지칭하는 말 코피노. 민재 역시 다르지 않다. 대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어려서 부터 일을 하던 엄마 크리스틴, 그러던 중 만났던 한국인 남성과의 사이에서 민재가 태어났다. 하지만, 민재의 존재를 안 아빠는 연락을 끊고 엄마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필리핀 아이, 하지만 얼굴은 할아버지가 말하듯 한국 사람의 태가 완연한 민재 코스텔로,. 아홉살이 되어서야 주변의 도움으로 어렵게 아버지의 나라에 와서, 아버지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할아버지, 그의 어릴적 사진을 보여주고, 잘 컸다고 안아주시지만, 민재는 결국 아빠를 만날 수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에게 '아빠 사랑해요'라고 할 밖에.
다섯 번째의 이야기는 <휴먼 다큐 사랑>에서 낯설지 않다. 고 최진실의 두 아이, 환희와 준희의 두 번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양 팔에 매달리던 아이들은 이제 훌쩍 자라 할머니를 웃돈다. 그리고 그 키만큼이나, 이제 마음도 훌쩍 자라, 사춘기이다. 할머니가 물어봐도 단답식으로 네, 아니오만 대답하는 환희는 할머니 원대로 제주도의 국제 학교를 다니지만 여전히 마음은 연예인이다. 그래도 환희는 낫다. 초등학교 6학년 준희는 천방지축이다. 할머니와 말싸움에서 지지않고, 과제를 내주는 선생님에게 '왜?"를 연발하는 열 세살 소녀의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 먼저 간 자식들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을, 그리고 그 자식들을 대신해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하려는 할머니의 욕심은 웬만한 강남 엄마 저리가라다. 하지만,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에게 할머니의 생각은 그저 잔소리요, 간섭처럼 다가간다. 엄마도, 아빠도, 삼촌도 없는 하늘 아래, 할머니와 아이들, 유일한 가족이지만, 생각만큼 그 가족의 관계는 만만치 않다.
우리 사회로 부터 기인한 상실
2014년의 가족이 신체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족의 이름 아래, 혹은 가족적 사랑으로 여전히 이 사회가 '사랑'으로 충만할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면, 2015년의 가족은 '상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버티고 견디어 보고자 한다. 아빠가 없고, 엄마가 없고, 조국이 없는, 이 다섯 편의 다큐 이야기는, '가족 해체 시대'의 한국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고, 의료 사고, 무책임한 한국인 아버지, 이제는 사회적 질병이 된 우울증 등을 이겨내지 못한 부모의 부재, 그리고 한국 사회의 왜곡된 시스템 속에서 조국을 버려야 하는 천재 선수처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2015년의 '상실'이 바로 세월호 사건을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가져온 상실 여파라는 걸, 네 편의 다큐를 보며 다시 확인 할 수 있다. 가족은 함께 모여 사랑하고 싶지만, 그것을 허락치 않는 사회, 그런 사회 속에서 가족들은 함께 하지 못한 가족 구성원들의 상실감을 견디며 2015년의 대한민국을 버티어 간다. 2015년이 그린 대한민국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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