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스페셜은 5월 10일과 17일 2회에 걸쳐 초할인 저수가에 의해 양심을 파고 있는 의사들이 범람하는 의료 현실의 민낯을 드러낸다. 특히, 얼굴에 하얀 마스크를 쓴 젊은 의사들의 토론을 통해 현재 의사들이 처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지 않아도 될 수술과, 치료가 횡행하게 되는지를 짚어본다. 



횡행하는 과잉진료 
5월 10일 방영된 <병원의 고백>을 연 것은 실제 사례들이다. 
여성의 상징과도 같은 자궁을 떼어 낸 여성들, 병원에서는 과도한 생리통으로 고통받는 여성에게, 아이를 낳고 난 후 쓸모없는 기관이니 떼어버리자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이후의 우울증과 후유증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2012년 조사에 따르면 10만명당 326.9건으로 당연 OECD 국가 중 1위다. 

자궁 적출 수술만이 아니다. 최근 과잉 진료 논란의 도망 위에 올라간 '갑상선암' 역시 마찬가지다. 병원 측에서는 '암'이라면 최소한의 부위라도 수술을 하는 게 맞다고 하지만, 일부 의사들의 의견은 다르다. '암' 중에서도 진행 속도도 느리고, 예후도 나쁘지 않은 갑상선 암을 굳이 초기에 발견해서 후유증이 큰 수술을 감행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심지어 떼어내고 나서 조사를 해보니 암이 아닌 경우도 빈번하다. 떼어낸다 하더라도, 평생을 요오드 제제를 먹으며 식이요법을 하며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한 고려는 없다. 

암 수술만이 아니다. 보험 수가가 아닌 '실비' 보험의 대상이 되는 각종 보험 외 치료들이 횡행한다. 그리고 보험 외의 아직 효과가 공인받지 않는 그 시술들은 숱은 휴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실제 디스크로 인한 고통으로 두 발로 병원을 찾았다 '고주파 열치료'를 받은 후 극심한 통증으로 침대 신세를 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속출한다. 멀쩡한 아말감이나, 금니를 벗기고 다시 때우고 입히는 치과의 치료는 거의 사기 수준이다. 심지어, 임플란트를 저가에 해준다 돈을 받고 날라버린 실제 사기도 있다. 



'사기'를 쳐야 먹고 사는 의사들
그렇다면 이런 의료계의 과잉 진료는 왜 횡행하는 것일까? 이렇게 과잉 진료하는 의사들 틈에서 '양심적 진료'를 고집하며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가는 길을 고독하고, 현실은 고달프다. 

아침부터 진료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줄은 선 치과 의사 강창룡, 그는 그를 찾은 환자들이 내민 진단서의 진실 여부를 판단해 준다. 때론 그의 손에서 몇 백만원 짜리 진단서가 단 몇 천원이면 되는 것으로 판별되기도 한다. 자신이 양심 의사가 아니라, 사기를 치는 동료들이 진정한 의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강창룡 원장, 그러나 그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사람을 고용할 수 없어,1인 치과를 운영한다. 현재 초저가 '의료 수가' 현실에서 '인건비'가 그의 수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선, '사기'에 가까운 과잉 진료를 벌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또 다른 양심적인 진료를 하는 산부인과, 하지만 나날이 줄어가는 출산율과 저수가의 현실에서 그가 하는 진료는 산부인과가 아니라, 피부과이다. 심지어, '양심적 진료'의 시간과 '빛'은 비례한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망하기 않기 위해', 시술 대신 수술을 유도한다. '실비' 보험이라는 '장땡'을 잡고자 마구잡이 검사를 하고, 필요없는 과잉 진료를 한다. 심지어, '먹튀'까지 한다. 환자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병원에만 들어서면 '을'이 되는 환자들은 의사의 처분만 바란다. 심지어 '실비'보험에 가입했다고, 과잉 진료를 역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의료 수가의 현실화'가 해법이 될 수있을까?
과잉진료의 사례로 시작하여, 결국 초할인 의료 수가 현실에서 의사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돈벌이에 눈이 뒤집한 의료계, 그리고 의사들을 지적하는가 싶더니, 결국 현실의 의료 수가 제도에서는 빛을 지지 않고, 망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과잉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결국 그런 과잉 진료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환자들의 주도적이고 자각적힌 의료 행위 참여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마지막에 환자들의 자각을 독촉했지만, 과잉진료로 시작한 양심 불량의 의료 행위의 사례가 초저수가의 의료 보험 현실 때문이라는 것으로 흘러갈 때,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암묵적으로 우리의 보험 수가가 의사들이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낮다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과연 의료 보험 수가가 현실화된다면 의사들의 과잉 진료가 나아질까? 그렇다면 실비 보험이라는 장막 속에서 벌어지는 과잉 진료의 또 다른 민낯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병원의 고백>은 또 다른 사례를 알아보기 위해 미국의 의료 현실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면서, 미국에서도 의사들의 과잉 진료 논란은 빈번하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미국이 어떤 곳인가? 왜 하필 미국인가? 미국은 국가가 아닌 민간 의료 보험 체계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이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 등을 비롯한 여러 다큐에서 고발하고 있다시피, 빈익빈 부익부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 미국이었다. 그래서 아파도 돈이 없어 집에서 치료를 받거나, 돈이 없으면 죽어가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그런 미국을 또 다른 사례로 들이민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민간 의료 보험제도가 시행되는 미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의료 체계에 대한 정보는 없다. 그렇다면 유럽은 어떨까?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의료 공영화 제도를 시행한다. 공립 병원이 전체 병원의 60% 이상이고, 80%에 육박하기도 한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각 나라별로 공공 비용의 감소로 인한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의료의 공영화'라는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지는 않고 있다. 즉, 최소한 아픈 것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이 유럽 시스템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런 유럽의, 즉, 국가가 책임지는 의료 현실의 또 다른 사례는 눈감고, 과잉 진료라는 현실적 부조리에서 의사의 '먹고사니즘'에 천착해 버리는 <병원의 고백>은 의료 현실의 민낯이라 하지만, 그 방향성에서 아쉽다. 기본적으로 '의료 행위' 자체가 누군가의 돈벌이가 되는 세상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의대'에 가는 현실은 또 어떨까? 지하철 역에서 앞에서 휴지를 나누어 주면서 환자 호객행위를 한다고 자조하지만, 너도 나도 돈벌이가 쉬운 치과로 몰리는 현실은 왜 짚어주지 않는 걸까? 궁극적으로 아픈 환자들이 과연 의사의 돈벌이 대상이 되어야 할까 라는 질문은? 과연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만으로, 혹은 보다 인상된 의료 수가 만으로 그들의 양심이 돌아올 수 있을까? 높은 점수를 받으면 돈벌이가 잘되는 의사가 되는 세상에서, 과연 '의료 수가'의 현실화가 이 부조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비' 보험이라는 결국 민간 의료의 도입 수순의 첫 발이 되는 제도 안에서 마음껏 '과잉 진료'를 펼치는 의사들은 또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지. 과연 환자 개인의 자각이 의료 행위의 과잉을 막을 해법이 될 수 있을지. 병원의 민낯을 드러내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그 해법의 과정이 개운치만은 않았던 <병원의 고백>이었다. 
by meditator 2015. 5. 18. 11:28

차태현, 공효진, 김수현, 아이유의 합류로 화제가 된 <프로듀사>, kbs의 작품답게, 프로그램의 시작은 야무지게 kbs의 <다큐3일>로 시작된다. 신입 피디들의 첫 출근 72시간을 다룬 <다큐 3일>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그 카메라 안으로 신입 피디 김수현 아니 백승찬이 들어온다. kbs 예능국의 신입 피디로서의 첫 출근이다. 그리고 이후의 상황은, 그가 예능국를 선택하게된 사연, 그리고 신입 피디로서의 OJT를 받는 과정이, 실제 KBS방송 프로그램 <1박2일>, <뮤직 뱅크>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물론, 실제 방송 프로그램은 <1박2일>이지만 그 피디는 차태현이 분하는 라준모요, <뮤뱅>의 피디 역시 공효진이 분한 탁예진이다. 이렇게 다큐의 시선으로 시작된 <프로듀사>는 현실이 아닌 배우들이,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피디들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그려냄으로써, 그간 보여지지 않았던 신선한 영역에 대한 도전장을 내민다. 



<삼시세끼>의 방어전은 스테디 셀러인 생명의 탄생

그런데 그 시각, 또 하나의 도전장이 들이밀어진다. <프로듀사>의 도전에 '프로듀사는 어벤져스급'이라며 상당히 쫄아있고, 부딛치면 망한다고 엄살을 부리던 나영석이 던진 새로운 도전장은 뜻밖에도 새로운 생명이다. 김수현이 신입 피디로서 문자 수신조차 받지 못한 채 쩔쩔 매는 그 시각, 정선의 옥순봉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탄생되었다. 서진바라기였던 잭슨이 몸을 풀어, 하얀, 그리고 까만 염소를 두 마리나 나았던 것이다. 이 별거 아닌 염소의 탄생, 하지만, 그저 아이들만 나오면 시청률이 오르는 최근 예능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삼시세끼>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낳자 마자 엄마 젖을 향대 달려드는 막무가내 염소 새끼들이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염소 새끼들로 시작된 별 것도 없는 옥순봉의 뻔한 일상이 여전히 또 재밌다는 것이다. 여전히 우직한 옥택연이나, 여전히 툴툴 거리는 이서진, 그리고 다짜고짜 '좀 누워있을게'라는 대놓고 민폐 신참 김광규까지, 진짜 별거 없는데, 그저 보는 재미가 또 생긴다. 심지어, 역변한 밍키가 보여주는 야생발랄함까지. 달라지지 않아서 재밌고, 새로운 식구가 등장해서 재밌고, 그 귀엽던 아이가 '너구리'가 된 상황이 재밌다. <삼시세끼>가 그래왔듯, 그저 하릴없이 삼시 세끼 밥만 줄창 해먹고, 그 밥을 위해 재료를 마련하고, 준비하느라 아웅다웅하고, 심지어 이서진이 <밍키와 잭슨네 집>이라 제목을 바꾸자고 하듯, 인간들보다도 동물들 노는 거 보는 재미가 더한 '심심한' 프로그램인데도, 그게 또 봄을 맞이하여 기지개를 켜니 재밌는 것이다. 심지어, 김수현보다도. 


별거 아닌 <삼시 세끼>가 여전히 재밌는데 반해, 신선한 시도로 야심차게 '어벤져스'급 출연진으로 출발한 <프로듀사>는 뜻밖에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다큐 3일>이라는 다큐적 시선으로 풀어가서 그런 것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다큐 3일> 얕볼 거 아니다. 평균 시청률 5%를 넘나드는 '다큐계의 스테디 셀러'가 바로 <다큐 3일>이다. 가장 대중적이고 친근한 소재로 공감을 얻어가는 <다큐 3일>인데, 문득, 첫 방 <프로듀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다큐 3일>이라면 저렇게 찍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차라리 <다큐 3일>이 진짜 카메라를 들이댄 신참 피디들의 진짜 모습이 더 흥미진진하지 않았을까? 하는.



신선하려 했지만 진부해져버린 <프로듀사>

무엇보다 <다큐 3일>이라는 설정을 도입하면서 <프로듀사>의 첫 회를 시작한 이유는, 프로듀서라는 직업 세계을 엿보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려내겠다는 야심찬 포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첫 회에서 보여준 <프로듀사> 내 피디들의 모습이 전혀 신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한 명의 김태호(박혁권 분)피디를 등장시켜 풀어낸 시청률표에 연연하는 예능국 피디의 모습, 음악만 들을 거 같지만 사실은 게임에 열중하는 예상 외의 음악 프로그램 피디의 모습, 거기에 방송 심의위원회를 들락거리고, 시청률이 낮아서 피디를 제외한 출연진들이 물갈이 되는 파리 목숨보다 못한 프로그램의 운명, 무엇보다, 첫 회의 관전 포인트였던 유명 여가수 신디(아이유 분)와 탁예진 피디의 힘겨루기는 이미 <그들이 사는 세상>, <온에어> 등의 드라마와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익숙한 상황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탁예진이 후배 신입 피디들 앞에서 한껏 '가오'를 잡을 때, 이미 이후의 상황이 그려진다. 이미 각종 미디어의 정보를 통해 가수들의 소속사의 권한이 늘어나고, 더 이상 피디들이 '갑'일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정보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프로듀사>가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양 선보인 첫 회의 각종 설정들이 '리얼'하게도 신선하게도 느껴지지 않는다는데 무엇보다 첫 선을 보인 프로듀사의 안타까운 점이다. 오히려, 첫 회의 익숙한 장치들보다, 마지막 장면, 따로 들어와 한 식탁에 앉아 버린 라준모와 탁예진의 조우에서, 드라마 <프로듀사>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시작된다. 


거기에 대해 핸드폰 문자 하나 확인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순간 찍히고 마는 신참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리는 김수현의 백승찬에게선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새로운 직장, 신참, 바로 얼마전 케이블에서 화재를 불러 일으킨 <미생>의 장그래의 모습이 그것이다. 고졸 출신에 낙하산으로 무역회사에 이질적으로 섞여들어가지 못해 쩔절매던 장그래의 모습에서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을'의 전형을 읽어내며 열광했다. 그리고 이제 새로이 시작하는 <프로듀사>에서 김수현은 프로듀서가 되었지만, 그저 학교 선배가 좋아 프로듀서가 된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또 한 사람의 미생으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끌고자 한다. 


하지만 방송 말미 에필로그에서 보여지듯이, 백승찬의 아버지는 프로듀서를 프로듀사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이 틀린 게 아닌게 현직 프로듀서의 시험은 이른바 sky 출신들만이 붙는다는, 언론 고시라 지칭된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에선 그런 직업의 현실적 환경은 배제된 채 막연한 학교 선배가 좋아서 프로듀서가 되었다는 '낭만적인' 설정만이 등장한다. 바로 이 지점이, 정작 '프로듀사'라고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가장 환타지적인 설정으로 첫 발을 뗀 이 지점이, 바로 <프로듀사>를 공감하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이, <프로듀사>가 <미생>의 아류가 아닌 그저 방송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로서의 <프로듀사>의 차별성을 만들어 가는 지점일 도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5. 16. 09:51

해마다 돌아오는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하지만, 이제 '스승'이란 말은 생경한 단어가 되어간다. '스승의 날'을 맞이한 각 학교의 모습은 어떨까? 대부분의 학교들은 '촌지 사건'이나 불미스러운 일을 막기 위해, 자체 휴업을 하거나, 수업을 하더라도 단축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막상 수업을 하더라도, 거창한 스승의 날 행사는 없다. 그저 수업 시간에 꽃을 달아주는 정도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여느 날처럼 지나치기가 십상이다. 교단의 선생님은 자조적으로 말한다.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는 스승의 의미는 퇴색되었고, 교사와 학생이란 직업적 관계만이 남았다'고. 


지난달 한국 갤럽이 19세 이상 성인 남녀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83%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존중받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2014년 교권 회복 및 교직 상담' 결과를 보면 10년 전에 비해 두배 이상 교권 침해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아이를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가르치는 직업인 '교사'가 처한 어려움,이에 대핸 교사들은 어떤 해결책을 모색할까? '스승'이 사라지고, '교사'조차도 위기에 처한 교실, <ebs다큐 프라임>은 그 해결책을 교실의 한 주체인 교사로 부터 찾고자 한다. 경기도 모당 초등학교 교사인 이경원 선생님이 1년 여의 시간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만난 '고수' 선생님들, 그분들의 수업과 철학에서, '스승' 상실 시대의 해법을 모색해 본다. 



백인백색의 선생님들

속초 청호 초등학교의 탁동철 선생님의 별명은 '외계인'이다. 만만해서 아이들이 놀리기에도 좋은 탁선생님 주변에는 아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있다. 그런데 탁선생님 곧잘 사고도 치신다. 교장 선생님께 허락도 받지 않고 창고에 아이들과 벽화를 그리는 식이다. 수업 시간이 아이가 가져온 나무 막대기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수업을 마치시고는 종례 후 나가는 아이에게 기껏 손이 다치니 테이프를 감고 가라신다. 아이들과 시 읽기를 하는 시간 오이의 두툴두툴한 면을 여드름 자국으로 표현한 부분에 징그럽다는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공감을 표명하신다. 탁선생님 앞에서는 말이 안되는 것이 없다. 


'반가워요, 사랑해요'라며 초등1학년 아이들을 맞아주시는 서울 이문 초등학교의 조성실 선생님의 별명은 곳감 선생님이다. 전래 동화 호랑이와 곳감의 그 곳감말이다.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시고, 그래서 모든 수업의 시작이 '이야기'를 통해 접근하시는 선생님의 수업 시간, '상상' 속 이야기에 아이들의 눈빛은 이야기를 들을 즐거움으로 빛이 난다.


군산 개정초등학교 김성효 선생님은 아침마다 와플을 굽는다.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의 아침밥이다. 선생님은 와플을 굽고, 대신 아이들은 학급 조례에서부터 수업까지 알아서 척척한다. 서로가 잘 하는 걸 가르쳐 주는 문화가 정착된 반, 아이들은 과학 수업은 물론, 종이접기에서 피아노까지 품앗이를 한다. 


수학 도사가 된 최혜경 선생님의 시작은, 수학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이제 수학 도사가 된 선생님의 수업 시간은 선생님이 그랬듯이 누구나 다 '수학'이라는 과목에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 보고, 서로 도와가며 문제를 푸는 시간이 되었다. 아침 청소를 선생님이 솔선수범하며 아이들의 학습 분위기를 만들었던 그 마음으로, 선생님의 눈높이는 아이들에게 맞춰져있다. 


바다 건너 제주도의 교실 스트라이터 최용수 선생님 교실의 하루는 게임으로 시작된다. 아침이 즐거워야 하루가 즐겁다는 모토 아래, 아이들의 학교 생활은 즐겁게 시작된다.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 대신 아이들이 바쁘다. 각자 알아온 걸 다른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나누는 과정, 그것이 수업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이 생소한 수업을 설득하기 위해 학부모들에게 편지까지 쓴다. 


이분들만이 아니다. 글쓰기 선생님으로 널리 알려지신 이호철 선생님의 교실에서는 '실패는 성공 이상의 배움'이 되고, 경기도 대정 초등학교 옥흠 선생님의 아이들은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숲으로 간다. 경북 장수 초등학교의 이혜경 선생님은 처지는 아이없이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1;1 수업을 하다시피 하신다. 


이렇게 1년 여의 교육 대동여지도를 발로 그려낸 이경원 선생님의 교실, 이경원 선생님은 새학기를 맞이한 아이들에게 교과서가 아닌 새로운 공부를 할 것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이 공부는 학원에서 선행학습 할 수 없는 공부이니, 그저 교실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교과 과목이 재편되는 수업,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아이들은 함께 배움을 나눈다. 또한 독서 모임을 통해 이 생소한 수업 방식을 학부모들에게 설득해 간다. 지난 1년여의 발품을 팔아 얻은 선생님의 도착점이다. 



스승 부재 시대에 마련한 스승의 길

교육대동 여지도가 찾아간 선생님들은 '군사부일체'의 그 엄격한 '스승'들이 아니다. 아이들은 선생님께 엉기고 선생님이랑 장난도 치고, 게임도 한다. 게임에 진 선생님께 우스꽝스런 모자를 씌우고 셀카를 찍게 만든다. 선생님이 만든 와플이 너무 달다고 타박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낯빛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선생님들의 목표는 아이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난 선생, 넌 학생이라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마음을 열고 '수업'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반자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면 수업 목표의 80%가 도달했다고 만족해 한다. 그것을 위해 게임을 하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기꺼이 아이들 장난의 재물이 된다. 슬쩍 와서 경기도에서 오셨냐는 아이의 말 한 마디에서 예전에 경기도에서 장사를 하던 아이의 아버지의 전력까지 끄집어 내는 탁동철 선생님, 그리고 지그시 아버님 요즘 뭐하시냐고 물어보는 배려과 관심의 한 마디에선, 그저 만만한 선생님이라 치부할 수 없는 '고수의 내공'을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매일 아침 '너희들은 책을 봐', 선생님이 청소는 할게'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솔선수범이 '교육 상실 시대'의 해법이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지 않으면 손해라고 하는 이 교육 대동 여지도 속 선생님들의 수업 시간의 또 다른 특징은 수업의 주체가 학생들이다. 아이들이 하자고 하면 교장 선생님 몰래 벽화도 그리고, 온갖 가지 상상 속 이야기들을 만들고, 편한 교과서 대신 새로운 통합별 교과 과정을 창출해 낸다. 수업 과정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남긴 일지는 정년이 다가온 선생님의 역사다. 수업 내용에 대한 세세한 감상이 들어가고, 모르는 점과, 새로 알게된 내용, 궁금한 내용이 빠짐없이 기록된 아이들의 학습 일지 역시, 아이들과 선생님이 만들어 간 '교감'의 현장이다. 그리고 그렇게 선생님들이 만들어 가는 수업 속에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아이대로, 못하는 아이는 아이대로 배움이 있다. 잘 해서 앞서나가는 것이 아니라,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함께 배워고 깨우쳐 가는 기쁨이 있다. 


선생님은 기꺼이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자신의 벽을 낮추고, 경계를 허물고, 함께 할 수 있는 온갖 가지 묘안을 짜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또 하나, 이 '고수' 선생님들의 수업에선, 아이들은 늘 함께 한다. 그들은 성적순 대신, 함께 하는 소중함을 배운다. 잘하든 못하든 서로가 함께 함으로써 성숙해 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지식'의 과잉 대신, 깊이를 배운다. 수준별 교육을 반대하는 최혜경 선생님은 물론, 이경원 선생님이 만난 모든 전국의 선생님들의 일관된 목표이기도 하다. 



이렇게 전국 방방 곡곡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선생님들에 대해 이경원 선생님은, 그걸 선생님의 폭으로 귀결시킨다. 선생님이 먼저 자신의 편견을 버리고, 자신의 폭을 넓혀갈 때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자유롭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탁동철 선생님의 삶을 지탱할 힘을 키우는 곳, 조성실 선생님의 공부의 즐거움, 평등을 실천하는 곳, 그리고 최혜경 선생님이 말하는  아이의 마음을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곳, 여러 선생님들이 바라보는 학교는 다 다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선생님들의 생각과 철학에 따라 수업은 달라지고, 그 수업이 아이들을 향해 열려있을 때, 아이들은 선생님과 소통하며 교실안에서, 수업 속에서 신뢰하는 인간으로 성장해 나간다. '스승이 없는 시대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ebs 다큐 프라임>이 모색한 해법, 그 시작은 선생님이다. 

by meditator 2015. 5. 14. 11:40

비서, 운전사, 집사 등의 파업에 봉착한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한정호는 그들을 '가신'이라 부른다. 집주인 한정호에게 그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아야 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선조 시절부터 대대로 집안 일을 봐주던 '종'들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래서 한정호와 그의 아내 최연희는 그런 그들의 반기에 이유를 살피기 전에 앞서 불쾌함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집안 사람'이라며 정작 그들의 노동자다운 요구에는 인색하다. 부릴 때는 '집안 사람', 댓가를 지불할 때는 '착취', 이것이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속 두 얼굴의 '갑' 한정호의 얼굴이다. 하지만, 이렇게 블랙코미디로 은유되는 '갑'과 '을'의 관계가 비단 드라마 속 뿐일까? 일을 할 때는 '종부리듯' 하며, 정당한 '노동'의 댓가에는 인색한 '갑'과 '을'의 관계를 5월 12일 <pd수첩>은 '점심이 있는 삶을 통해 들여다 본다. 




점심이 없는노동
'점심이 있는 삶'은 '저녁이 있는 삶'을 내걸었던 정치인 손학규의 슬로건의 변형이다. 손학규는 장시간 노동, 연장 근무에 시달리느라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내일의 재생산을 위한 휴식을 제대로 취할 수 없는 현재의 강도높은 노동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저녁이 있는 삶'을 내걸었다. 하지만, 현실은? '법적으로 보장된' 근로자의 법정 점심시간조차 그림의 떡인 것이다. 

8시간의 노동과 1시간의 점심 시간은 법률로 보장받은 노동의 조건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고객을 주인처럼 모신다는 백화점, 고객들이 다니지 않는 비상 계단, 거기에서 직원들은 쭈그려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잠시 발을 뻗어 휴식을 취한다. 백화점 꼭대기에 있는 직원용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기에 시간은 너무 빠듯하다. 차라리 이곳에서 편의점 삼각 김밥이나 도시락으로 밥을 때우고, 잠시라도 쉬는 것을 택한다.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녀야 하는 간호사, 그들에게 '점심'의 여유란 없다. 2,3교대의 빠듯한 인력풀에서, 따로 밥을 먹고 쉴 수 있는 여유를 찾기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듯 쉽지 않다. 겨우 시켜놓은 도시락은 식어빠지기 십상이고, 그 마저도 온전히 앉아 다 먹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간병인이 바쁜 간호사의 일을 자처할까.
최근 '파업' 등을 통해서 그나마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대학 청소 노동자들의 점심 시간은 열악하다. 화장실 한 구석, 혹은 계단 밑 고개조차 들 수 없는 공간에서, 비닐 봉지에 담겨 보온된 밥을 끌러, 각자 가져온 김치 반찬에 더해 한 끼를 때운다. 
포장재 업체에 다히는 노동자들은 점심 시간이 되자, 일을 하던 작업장에 간이 식탁을 펴고, 둥그렇게 둘러서서 가져온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운다. 이곳 작업장으로 오기 전에는 공장 바깥 아스팔트 주변 농가, 축사에서 바람에 날려온 잔유물과 함께 식사를 했고, 이곳 작업장으로 옮겨온 뒤에도, 사업장 내에서 음식 냄새를 풍기지 말라는 사장의 지시때문에 복도에 쪼그려 앉아 밥을 먹기도 한 상황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진 것이다. 


'서비스'가 임무의 핵심인 이들의 노동 과정 중에 '점심 시간'은 왜 사라지거나, 열악해진 것일까?
'법적으로 정해진 점심 시간이 있지만, 쉴 새없이 이어지는 이들의 노동 조건에서 자신의 정당한 '점심' 시간을 찾기가 힘들다. 엄청난 양을 배달해야 하는 우편 집배원은 따로 점심을 먹고 쉴 여유를 차릴 틈이 없다. 백화점 직원, 간호사 등의 업무 여건이 이와 비슷하다. 
거기에 더해 그들의 노동에 주어진 환경이 열악하다. 사례를 찾아보기 위해 간 미국의 대학 캠퍼스, 그곳의 청소 노동자들은 정규 직원이다. 그들은 점심 시간이 되면 당당하게 직원 식당에 가서 학교 직원, 교수, 학생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할 수 있으며, 이후 널찍한 직원용 휴게실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당한 권리를 누리는 미국의 직원들과 달리, 대부분 계약직이거나, 설사 정규직이라 해도 우리 나라의 노동자들은 그 권리를 누리기 힘들다. 심지어 백화점 직원들은 고객들이 타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걸린다'. 청소 노동자들은 직원 식당은 물론, 값싼 학생 식당을 이용할 수 없다. 무엇보다 한 달의 십만원의 점심값을 지불받는 포장업체 노동자들에게 값비싼 외식은 사치다. 계약직인 우편 배달 노동자에게 오천원이 넘는 점심은 울며 겨자 먹기다. 식당에서 삼삼오오 식사를 함께 하고,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뉴스 속 직장인의 점심 시간 풍경은 이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휴식도 보장되지 않는 노동
하물며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점심시간이 이럴진대, 휴식 시간은 오죽할까? '휴게실' 역시 우리의 근로 조건이 보장한 노동의 환경이다. 미국의 청소 노동자는 상사가 양질의 노동을 위해 오히려 휴식을 권고한다고 한다. '휴식'은 그냥 노는 시간이 아니라, 다음의 노동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물론 우리도 법적으로 '휴식'과 '휴게실'을 보장한다. 하지만, 정작 그 '휴게실'의 세부 사항은 존재하지 않기에 얼마든지 눈가리고 아웅하게 되는 것이다. 포장업체의 휴게실, 그곳은 겨우 의자 두어 개가 들어갈락 말락하는 구석진 공간에 자리한다. 심지어 하수관이 지나는 그곳에 코를 찌르는 냄새 때문에 들어갈 수 조차 없다. 하지만 '법적으론' 아무 하자가 없다. 병원 한 구석에, 학교 화장실 구석에 마련된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하지만 거기선 발을 뻗을 수 조차 없다. 이제 화장실에서 나는 용변의 냄새 쯤은 이골이 났다. 점심 시간도 빠듯한 간호사나, 우편 배달 직원에게 휴식은 사치다. 

이렇게 법적으로 점심 시간, 휴게 시간, 휴게 공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을 이어가는 청소 노동자 등의 현실을 짚어본 <pd수첩>은 그들의 노동 이력을 들여다 본다. 가발 공장의 노동으로 철이 든 시절, 먹지도 못할 시어빠진 김치로 만든 김칫국을 배가 고파 때우듯이 먹어야 했던 그 열악했던 노동은, 이제 식당 일의 거센 노동 강도를 피해 청소 노동자가 된 60줄의 노동자는 가끔 다리조차 뻗을 수 없는 화장실 옆 휴게 공간에서 남의 용변 냄새를 맡으며 한 끼를 때울 때면, 저절로 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다고 한다. 60줄의 노동자가 처음 가발 공장에서 일하던 그때로 부터 대한민국의 산업은 발전했고, 산업은 고도화되었고, 도시는 발달했다. 하지만, 그런 '선진화'된 대한민국에서, 60이 되도록 노동으로 한 평생을 보낸 노동자는, 자신의 열악한 노동 조건에 눈물 짓는다. 

산업화가 시작되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등장했을 때, 고전 경제학자들이 정의내린 임금은 그들이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다음 날 다시 일터로 돌아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이제 신자유부의 사회가 들어서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은, 그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을 보상해 줄 수 있는 댓가가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시간당 알바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일은, 하루 여덟 시간, 법적으로 정해진 점심 시간, 휴식 시간이 아니라, 시간당, 분당으로 쪼개어진 일의 참혹한 댓가로 계산되어진다. 그저 최소한의 법적 요건을 갖춘 휴게실로 눈가림을 하고, 그나마도, 윗분들, 고객들의 눈을 피해야 하는 '을'들에게 '점심이 있는 삶'은 사치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들을 <풍문으로 들었소> 속 '가신'처럼 취급할 뿐이다. 주인과 한 상에서 밥을 먹는 건 언감생심, 수틀리면 밥을 먹을 때 시립을 시키듯, 그들이 한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영양가 없는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건, 계단 참에서 발을 뻗건 배려하지 않는다. 그저 눈에 거슬리게 띄지 않으면 그뿐. 유산으로 아들의 사랑조차 현혹시키는 한정호이지만, 집사들의 파업을 불쾌해 하듯, '갑'들은 그저 '을'들의 '궁상'(?)이 드러나지 않으면 된다. 

OECD 국가 중 2위의 강고한 노동 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하지만, 수치상으로 보여지는 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만으론 지금의 노동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고 전문가는 주장한다. 점심이 있는 삶, 여유로운 휴식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인간다운 노동을 향한 개선으로 패러다임이 바뀔 때만이, 노동을 통한 행복은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동 조건인간화를 <pd수첩>은 '점심이 있는 삶'을 통해 주장한다. 

by meditator 2015. 5. 13. 11:36

아버지 선조와 그의 아들인 광해 사이의 불협화음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내용이 아니다. 2015년 2월 종영한 kbs2의수목 드라마 <왕의 얼굴>이 갈등의 주요 축을 아들을 믿지 못하는 선조와, 아버지의 의심으로 인해 고통받는 광해로 삼았고, 새로 시작한 mbc월화 드라마 역시 문제적 인간 광해를 설명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에게 양위을 하지 않으려고 갖은 수을 다쓰는 노회한 선조를 등장시켰다. 이렇게 자신의 아들임에도 그 아들을 미덥지 않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적으로 여기며, 그에게 양위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 선조, 그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이유는, 왕답지 않은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비해 왕다웠던 아들이라는 '시기'와 '질투'의 인간적 감정을 등장시켰다. 거기에 덧붙여 평생 적통이 아니라는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그래서 역시나 적통이 아닌 광해가 싫었던 '옹졸하고 편협한' 인간 선조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도 아닌 아들을 '정적'으로 삼은 아버지 '선조'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으로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이 빈 행간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선조'의 캐릭터를 부각시켜 설명한다. 그리고 26회까지 진행된 <징비록>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던 선조와 아들 광해의 갈등, 그 정치적 순간을 포착한다. 그들이 아버지와 아들이었음에도 서로를 정적으로 여길 수 밖에 없었던 그 역사적 이유를 설득한다. 그리고 거기엔 우리나라의 국토를 침탈한 왜의 도발, '임진왜란'이 있다. 


왜란으로 비롯된 아버지와 아들의 파열
1592년 조선의 국토를 침탈한 왜는 거침없는 행군을 거듭한다. 이미 그 이전부터 왜의 침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있었지만, 오랫동안 전쟁을 겪지 않은 '문(文)'의 국가 조선은 외적의 침입에 무력했다. 하루가 다르게 수도인 한양을 향해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오는 왜에 대항하여, 죽을 각오로 싸우자는 유성룡을 비롯한 일부 대신들의 뜻과 달리 무기력한 임금 자신의 안위에 급급한다.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을 야반도주하듯 수도 한양을 비우고 도망가는 것. 어가를 향한 백성들의 모욕을 견디며, 그는 북으로 북으로 길을 정하고, 여차하면 중국으로 건너 갈 양으로, 의주에 다다른다. 그렇게, 무주공산이 된 한양, 그리고 결국은 조선, 그 권력의 빈틈을 채운 건, 총알받이처럼 내세운 둘째 왕자로 세자가 된 광해였다.

또 하나의 조정, '분조'를 이끌게 된 광해는 정탁의 간언을 받아들여, 아직 왜적의 손이 닿지 않은 강원도 이천으로 들어가 '아직 조정이 살아있으니, 그대들은 충심을 다해 싸워라, 세자가 앞에 설 것이다'라는 격문을 통해 흩어진 관군과, 지방에서 봉기한 의병들을 규합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버지 선조에게 아들의 전술적 선택이, 항명으로만 비출 뿐이다. 자신은 무기력하게 도망을 가느라 바쁜데, 앞서 싸우겠다는 아들 광해의 행동이, 자신의 안위를 거스르다 못해 위협하는 행동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결국 선조가 내린 결정은, 광해를 겨눈 분조의 모든 신하들을 '파직'하겠다는 결정. 이에 광해는 억울하지만 석고대죄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달랜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일편단심 왕의 편에 섰던 윤두수와 정철 등의 세력까지, 아버지 선조 대신 아들 광해의 분조를 조정으로 심리적 승인을 하는 과정을 격게 된다. 이제 아버지 선조는 사사건건 '광해'의 편을 드는 신하들로 인해 아들에 대한 적개심을 쌓게된다. 오로지 그의 귀를 현혹시키는 건, 비빈의 달콤한 이간질뿐. 



거기에 불을 부은 것은 명이란 존재다. 명나라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을 향하던 조승훈이 왜에 전멸을 당하고, 명은 심유경이라는 후에 '국제 사기꾼'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 인물을 통해 왜와 협상을 하고자 한다. 심유경의 말처럼 왜와 싸워서 이겨 봐야, 바다 건너 왜란 나라를 명의 국토로 만들 수도 없고, 정작 전쟁은 조선의 국토에서 벌어졌는데, 명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명의 군사들을 잃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명의 처지 역시 많은 군사들을 동원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명과 왜의 협상 앞에 아버지와 아들의 다른 선택
하지만 단지 세 치 혀만을 가진 심유경에 선조는 납작 엎드린다. 26회에서 보여지듯이, 그가 명의 사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신하들을 물린 채 심유경과 독대를 하고, 그가 할 협상의 내용을 알아보지도 않은 채 전권을 위임한 것이다. 신하들조차도 이젠 자기 보다는 광해의 분조에 더 신뢰를 보내는 상황에서, 무력한 왕 선조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대국 명뿐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선조가 정체도 모를 심유경에게 전권을 위임한 시기는, 이제 조선이 일방적인 왜의 공격을 벗어나 반격을 도모할 여지가 마련된 시기이다. 이순신의 수군이 바다에서 적을 무찌르고, 같은 날 곽재우와 고경명의 부대가 각각 이치고개와 금산에게 왜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힘으로써, 전라도를 지키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곡창 지대 전라도를 수성함은 물론, 적의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에 적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반격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거기에 왜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비격진천뢰'가 완성되어갈 시점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왜의 입장에서는 심유경의 협상 카드를 외면할 이유가 없었다. 한양까지 치고 올라오기까지 왜 역시 병력의 타격이 극심했고, 전라도에서의 패배로 전열은 물로, 무엇보다 부족한 보급을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이 문제가 되는 선조에게 이런 정황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는 그저 조선을 침탈한 왜가 아니라, 그저 이 상황을 얼른 종식시키고, 예전과 같은 왕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나라를 명의 정체모를 사신의 손에 맡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와 달리, 아버지가 명 사신의 말을 듣고 50일간 휴전을 선택했을 때, 아들 광해는 왜적이 손을 놓고 있는 이 때야 말로 반격의 기화라 생각한다. '비격진천뢰'을 앞세워 경주성을 되찾았고, 왜장 우키타 히데이에 일행을 급습했다. 

안그래도 신하들의 충심을 행동을 통해 얻어가고 있는 광해, 그런 광해의 자신의 뜻과 다른 결정에 대해 오직 '권좌'만이 중요한 아버지 선조는 아들을 '정적'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거기엔, 나라를 강국 명의 처분에 맡길 지언정 자신의 권력만 유지되면 되는 왕 선조와, 그런 아버지와 달리 조선을 침탈한 왜적을 물리치고자 했던 전란을 통해 진정한 세자로 거듭한 광해의 서로 다른 선택이 있다. 그리고 그런 선조의 선택은 그저 '찌질이'라 치부할 수 없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자주 만났던 리더의 기시감이 들게 한다.  자신의 안위와, 백성의 안위,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리더, 그들의 다른 길이 '정적'으로서의 선조와, 비극의 주인공 광해를 낳게 된 것이다. 그리고 광해의 비극은 결국 세자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자그만치 7년이라는 길고 긴 전쟁과 많은 인명 손실, 국토의 피폐함을 낳은 역사적 통한을 결과한다. 
by meditator 2015. 5. 11. 12:16

가정과 학교로 부터 버림받은 '이동우'란 학생의 실종에서 시작된 7회 <실종 느와르 m>의 소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HOME'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이 드라마를 보고나면, 'HOME'이란 제목의 의미가 절실하게,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가슴아리게 다가온다. 

거기에 덧붙여, 'HOME'이란 제목에서 빚어지는 역설적인 의미, 상황을 통해, 진정한 'HOME'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듯이, 이제 중반을 넘어서 마지막 고비를 남긴 <실종 느와르 M>은 우리가 믿고 있는 '정의', 그것이 단어에 대한 것이든지, 혹은 개인적 신념에 대한 것이든지,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적 신념에 대한 것이든지, 그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위험한 존재로서의 길수현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
그 질문의 시작은 오대영(박휘순 분)의 길수현(김강우 분)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FBI 출신이지만, 거기서 일곱 차례의 총기 오발 사고, 즉 과도한 총기 사용으로 문제가 되었던 길수현, 그와 한 팀이 되어 네 차례의 사건을 겪으면서, 오대영은 차츰 길수현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한다. 더구나, 실종 전담반을 꾸려 미제 실종 사건을 다루며 성과를 내는 것과 달리, 비리를 저지른 회사가 날라가고, 법무장관이 사표를 써야하는 상황에 경찰 윗선은 '실종 전담반'의 효용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윗선의우려는 과도한 사건 개입의 혐의로 오대영에게 전달되고, 역시나 '제약 회사' 사건 과정 등에서 범죄를 방조하는 듯한 길수현의 행동으로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 오대영은 거부하는 듯하면서도 길수현에 대한 의혹의 눈길을 접지 못한다. 

이렇게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면서, 오히려 범죄를 방조하는 위험한 존재로서 길수현이 부각되는 가운데, 뜻밖에도 사건은 길수현을 통해 등장하게 된다. 그에게 다가온 희한한 복장의 가출 청소년, 그에게 자신이 가진 전재산인 똘똘 말은 돈 뭉치를 건네며, 한 소년의 행방을 부탁한 것이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한 자사고에 들어가게 된 소년, 이동우, 하지만 그는 학교 시험 답안지를 판 혐의로 학교에서 퇴학 당한 상태이다. 하지만 길수현이 추적해 들어간 사건은 또 다른 이면을 지닌다. 늘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소년 이동우, 그는 학교 기숙사에 머물기 위해, 기숙사비를 벌기 위해 시험 답안지를 팔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사배자'들이 그렇지 뭐 라는 선생님의 편견과, 학교에만 남아있게 해달라는 소년의 희망을 간단히 짓밟아버린 '퇴학'이라는 결정이다. 그리고 자식이 '퇴학'을 당했는지, 실종이 됐는지 조차 모르는, 아니 관심없는 가족. 거리의 피씨방으로 쫓겨난 소년은, 자신을 버린 세상에 대해 성공해서 복수하겠다고 마음을 다졌고, 새로운 가족을 찾아나선다. 



또 하나의 가족? 가족의 이름을 가장한 범죄집단?
하지만 소년 이동우의 실종 사건에서 만나게 된 것은, 청부살인이 분명해 보이는 두 건의 연쇄 살인, 그 현장의 CCTV에서 발견된 범죄 혐의자 이동우였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날이 선채 부딪치게 되는 길수현과 오대영, 애초에 이동우라는 소년의 실종을 길수현이 수사하자고 할 때부터 의심을 했던, 아니 그 이전부터 길수현의 의도를 의심했던 오대영은 이 사건을 '실종자' 이동우가 아니라, 살인용의자 이동우로 해야 하지 않겠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그런 오대영의 까칠한 의심에 길수현은, 과연 '실종자' 이동우일지, 살인혐의자 이동우일지는 수사를 해봐야 하지 않겠냐며 또 다른 문제 제기를 한다. 

그런 길수현의 애매모호한 질문이 던져진 후, 이동우 역시 시체로 발견되고, 이제 사건은 범죄 혐의자 이동우가 아닌, 역시나 피해자가 되어버린 이동우의 살인 사건 수사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드러나기 시작한 이동우가 선택한 'HOME', 그리고 그 'HOME'을 이끄는 'MOM'이란 존재. 수사를 해가던 실종 전담반은, 실종팀의 진수현(조보아 분)의 숨기고 싶은 곽거와 함께 MOM의 존재에 대한 혐의를 심화시킨다. 

진수현과 함께 가출팸을 꾸리며 인터넷에서 낚은 남자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매개로 돈을 갈취해내던 MOM, 당연히 실종전담반은 일련의 청부 살해가, 진수현과 함께 하던 그 시절의 범죄가 확산된 것으로 의심을 둔다. 그들의 아지트, 그리고 박사였다는 이동우와, 시인이라는 또 한 소년의 죽음을 수사하던 중, 수사반이 맞닦뜨린 것은 MOM이 만들어 가고자 했던 가짜이지만 진짜가 되고자 했던 HOME. 경찰이 된 진수현을 만나러 온 MOM, 진수현은 가출팸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들키고 싶지 않아 그녀를 외면했지만, MOM은 그런 진수현에 대해 섭섭해 하는 대신, 진짜 자신이 만들고 싶어하던 HOME을 꾸리고자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녀의 작은 소망을 짓밟아 버리는데.......

결국, '사배자'라 이동우를 멸시하던 학교 선생님과 다르지 않게, 길수현과 진수현 역시 그들이 가진 또 다른 편견으로, 이동우와 그가 만난 가족, 시인과 MOM을 재단하려 했던 것이다. 시인을 소년원에 보내지 않기 위해 무리를 했던 MOM, 그런 MOM의 경제적 무리를 도와주려 했던 시인과 박사 이동우, 결국 그들은 그들을 이용하려 했던 사채업자, 청부살해업자의 농간에 희생되고 만다. 



남겨진 질문
사채업자의 목에 칼을 겨누는 MOM,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사채업자가 손에 쥐려는 유리 조각을 발견한 길수현은 사채업자에게 총을 겨눈다. 그리고 그런 길수현을 발견한 오대영. 그 순간 그의 뇌리에는 길수현의 총기 오발 사고 기록과, 제약 회사 사건에서 범죄를 방조하는 듯한 행동, 그리고 윗선의 지시가 스쳐가고, 그는 총기를 겨누는 길수현을 밀치고 만다. 하지만 결과는, 칼을 겨누었지만 결국 행하지 못한 채 주저하던 MOM의 목을 사채업자의 유리조각이 강타하고, MOM은 피를 뿜으며 죽어간다. 

그리고 남겨진 질문, 언제나 그렇듯, <실종 느와르 M>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건들의 숨겨진 진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세상을 흔든다. '사배자'라는 편견어린 낙인, 가출 청소년들의 행로에 대한 또 다른 편견, 그리고 그들에게도 꿈이 있을 거라는 진실에 대한 외면, 그리고, 오대영의 행동에서 드러나듯, 사법적 진실이 과연 진정한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느냐는 근본적 질문. 길수현의 오발 사고를 막기 위한 행동이, 결국 MOM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만든 오대영의 판단, 행동, 그리고 그 결과 그에게 주어진 씻을 길 없는 죄책감은, 곧, <실종 느와르 M>과 함께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 다가가는 시청자들이 나눠져야 할 몫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5. 5. 10. 12:17

2014년 <왔다! 장보리>에서 연민정이란 전무후무한 악역 캐릭터로 mbc 연기 대상을 거머쥔 이유리의 차기작은 뜻밖에도 케이블인 tvn의 금토 드라마 <슈퍼대디 열>이었다. 5월2일 종영한 이 드라마에서 이유리가 맡은 역할은, 그녀에게 연기 대상을 쥐어 준 여주인공의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 고심하는 악녀가 아니라, 시한부의 삶를 살면서도 적극적을 자신의 아이에게 진정한 가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싱글모의 역할이었다. 왜 연기 대상을 쥐어 준 공중파의 작품을 마다하고 케이블의 드라마로 갔을까? 그건 연기대상을 받은 캐릭터와 <슈퍼 대디 열>의 캐릭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연으로서,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 악녀가 아니라, 다시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사랑스러운 여인으로서, 그건 이유리가 그간 해왔던 아침 드라마나, 주말 드라마에서의 '복수'의 당사자이건, '복수'의 대상이었던 범주를 벗어난 신선한 '수혜'였다. 

하지만, 그런 '신선한 수혜'가 어느 배우에게나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유리도 연기 대상을 받고 나서야, 케이블 tv를 통해서 새로운 선택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유리의 기회에서도 보여지듯이, 선택을 당하는 대상인 배우들에게 있어,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그간 이유리가 그래왔듯이, 마치 굴레처럼 익숙해진 캐릭터로 '소모'되기 십상이다. 그러던 배우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기회가 드라마가 아닌 예능이다. 



봇물터진 배우들의 예능 나들이 
딱히 누가 시작이랄 것도 없이 최근 너도 나도 배우들의 예능 나들이가 봇물을 이룬다. 굳이 그 시작을 따지자면, 역시나 나영석 pd를 들 수 있겠다. 일찌기 <1박2일> 시즌1을 통해 배우 이승기를 '국민 허당'이란 독보적 캐릭터로 승화시킨 바 있던 나영석 pd는 tvn으로 자리를 옮겨 런칭한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 세끼>를 통해 국민 할배, 미대생, 차줌마 등 배우들의 예능적 재탄생을 주도했다. 그렇게 나영석 pd의 예능을 통해 전국민적 관심의 대상으로 새롭게 각인된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던 배우들의 예능행 역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1박2일> 시즌에서 이승기의 게스트로 등장하여 '미대생'의 분위기를 뽐내던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시리즈에서 '짐꾼'으로 다양한 매력을 뿜어내더니 <삼시세끼>라는 독자적 프로그램을 꿰어찼다.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의 강동석 보다, 예능인 <꽃보다 할배>, <삼시 세끼>에서 투덜거리면서도 제 할 일은 똑뿌러지게 해내는 이서진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이제 이서진에 이어 <꽃보다 할배>에 합류한 최지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열연했던 2014년 <유혹>에서 유세영 캐릭터도 치명적이었지만, <삼시 세끼> 단 한번 출연으로 <꽃보다 할배> 그리스 편의 멤버를 꿰어찬 최지우의 나이를 잊게 만드는 톡톡 튀는 매력을 상쇄하긴 힘들다. '전국민의 아줌마가 되어버린, 그래서 심지어 이제, 그가 출연한 <화정>의 광해군 캐릭터에 집중하기 힘들게 만든, 차줌마 차승원의 매력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게 배우들은 드라마의 캐릭터를 통해서는 다 보여줄 수 없었던 자신의 숨은 매력을 예능을 통해 뽐낸다. 한번 갔다온 경험에서 부터, 이제는 아이부터 만들고 봐야 한다며 털털한 매력을 거침없이 뿜어내어 <썸남썸녀>의 정규 편성에 기여한 채정안, '도라에몽' 덕후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로 각종 예능을 섭렵하고 있는 심형탁에, 드라마의 캐릭터보다 솔직 담백한 입담이 더 돋보이는 이규한이나 김지훈 등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예능을 통해 자신의 또 다른 면모를 발휘한 효과가 역으로, 드라마의 캐스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심형탁의 경우, 예능에서 활발한 활약을 보인 이후, 드라마의 출연 빈도가 늘었으며, ,<브레인>에서 단역에 가까웠던 캐릭터에 비해 극중 비중도 늘어났다. 물론, 최근 <화정>의 차승원처럼, 그 예능적 캐릭터가 드라마 속 인물의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정사로 인한 구설 외에, 영화 <하이힐>의 조용한 종영 등, 침체기를 겪는 차승원에게 <삼시세끼>가 대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돌아오는데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기꺼이 예능을 택한 배우들
이렇게 양날의 검이 된 예능, 하지만 배우들은, 협소한 기회, 고정된 캐릭터를 벗어나기 위해 기꺼이 예능을 선택한다. 

5월 8일 방송된 <님과 함께 시즌2 최고의 사랑>은 안문숙, 장서희, 두 여배우를 내세운다. 안문숙은 이미 시즌 1을 통해 그간 예능을 통해 걸쭉한 입담을 보여줬던 것과 달리, 아나운서 김범수와 애틋한 러브 스토리를 구현해 내 주목받은 바 시즌2까지 그 활약을 이어간다. 장서희의 출연은 뜻밖이다. 하지만, 이유리처럼 '점을 찍고' 서야 인정을 받는 '복수극'에만 출연해왔던 장서희 역시, 로맨틱한 가수 윤건과의 러브 스토리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어 5월9일 첫 선을 보인, <레이디 액션>은 선택의 한계를 뛰어 넘은 또 다른 경지이다. 안문숙이나, 장서희가 세월에, 혹은 캐릭터의 한계로 주어지지 않은 여배우의 가능성을 예능의 러브 스토리'를 통해 풀어내고자 했다면, 여배우이기에 제한적이던 '액션'이라는 영역에, 조민수, 김현주, 손태영, 이시영, 최여진, 이미도 등의 여섯 배우가 도전한다. 

오십줄의 조민수부터, 삽십대의 이시영, 이미도, 심지어 애를 낳은 지 갓 백일을 넘긴 손태영까지, 다양한 연령, 조건의 여배우들이, 여배우로서는 버거운 영역인 '액션' 배우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다. 첫 회를 선보인 <레이디 액션>은 여섯 여배우들이 자신의 몸으로 온전히 끌어가는 한 시간 여로 인해 볼거리를 만들어 낸다. '아장거리던' 여배우들이, 그간 드라마를 통해 '여자'로 길들여진 몸짓을 털어내고, 꾀부리지 않고 액션에 어울리는 배우가 되기 위해 구슬 땀을 흘리는 '리얼'이 그대로 웃음과 감동의 포인트가 된다. 죽을 때까지 '도전'이라고 배우를 정의한 조민수가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허벅지의 통증을 참아가며 올라가지 않는 다리를 손으로 들어 올리며 액션을 만들어 갈 때, 어설픈 그들의 몸짓에서 시작된 웃음을 감동으로 마무리되고, 예능은 이렇게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배우들과 함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를 예능을 통해 구현해 낸다. 

by meditator 2015. 5. 9. 00:33
#하나

서재에 들어간 오초림(신세경 분), 쉐프 권재희가 가져오라는 책을 꺼내려다 책장의 다른 책들을 쏟는다. 그 중 하나의 책 사이에서 떨어져 나온 편지, 초림은 그 편지를 꺼내 읽는다. '지금은 오초림이 된 최은설 양에게'로 시작되는 천원장이 남긴 편지, 자신이 최은설이라는 편지 내용에 놀라 눈물을 흘리는 초림, 그 뒤로 권재희(남궁 민분)가 등장하고.


#둘
집에 온다는 아버지에게서 메시지, 그 내용은 모처에 있으니 데리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아버지가 걱정된 초림은 무작정 메시지의 그곳으로 가고, 초림이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쉐프 권의 집, 열려진 문 사이로 권재희의 집으로 들어가 애타게 아버지를 찾는 초림, 그런 초림을 권재희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 등장한다. 

#셋
지갑을 잃어 버렸다는 핑계를 대고 권재희 서재에 숨겨놓은 비밀 카메라를 찾으러 들어간 초림, 하지만 그 시간 이미 권재희는 흥신소 직원의 귀뜸을 받고 서재로 돌아와 경찰이 숨겨놓은 비밀 카메라를 찾은 후. 그것도 모르고 카메라가 있는 서재로 내려오는 초림, 서재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초림과 마주 선 권재희.



이 세 장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극중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인 권재희와, 권재희가 찾아 없애고자 하는 목격자 오초림이 마주서게 되는 장면이다. 첫 번째는 초림이 목격자라는 증거가 되는 편지를 사이에 두고, 두번 째는 최은설을 딸로 숨기고 있는 아버지를 볼모로, 그리고 마지막은 몰래 설치된 경찰 카메라를 들키고. 권재희가 마음먹기에 따라 다음 장면 오초림이 그의 숨겨진 하얀방으로 직행하기에 충분할 조건을 가진 장면이다. 

그런데 이 세 장면의 공통점이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냄새를 보는 소녀>10,11,12회의 엔딩 장면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 흡사한 스릴러적 긴장감, 거기에 유사한 위기, 이게 세 번 연속 드라마의 엔딩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뻔하고 어설픈 스릴러 
우선은 '무섭다'이겠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며 '만담'까지 해가며 흥미롭게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 <냄새를 보는 소녀>, 스릴러와 로코의 복합 장르를 추구했다지만, 이제 중후반에 들어 매회 이렇게 시청자의 가슴을 '스릴러'적으로 옭아매며 끝을 맺는 이런 엔딩은 최근 시청률 추세에서도 보여지듯이(10회 8.0, 11회 7.5. 12회 6.9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제작진의 기대와 달리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게다가, 첫 번째 장면에서 권재희 책에서 떨어진 편지를 무신경하게 꺼내 읽는 설정이라던가, 두번째 아버지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권재희의 집인줄 알면서도 역시나 무신경하게 아버지를 찾아헤맨다던가, 심지어 세번 째는 내둥 잘 가지고 다니던 핸드폰을 권재희 집에 들어가기에 앞서 굳이 레스토랑에 놓고, 경찰이 장착해준 이어폰도 착용하지 않은 채 용의자의 집에 들어가는 어설픈 설정에 이르면 무섭다기 보다는, 위기를 위한 위기의 웃픈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렇게 <냄새를 보는 소녀>가 연 3회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드라마의 절대 악인 권재희와, 그의 타겟인 오초림을 마주선 장면으로 드라마의 엔딩을 조성하며,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 끌려고 하지만, 정작 달달한 로코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무섭다'며 리모컨을 찾고, 어설픈 설정에 또 채널을 돌려버린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일찌감치 정체가 드러난 악인, 그에 비해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 주인공을 비롯한 경찰 측, 그런 경찰 측을 희롱하며, 12회에 이르기까지 <냄새를 보는 소녀>는 극적 갈등을 전적으로 권재희의 악행에 의존해 간다. 마침 아침 드라마의 악녀들처럼, 권재희는 갖가지 기기묘묘한 방식으로 주인공과 그 주변을 희롱하고,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은, 이래도 저래도 결국 당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점찍고' 돌아오는  클라이막스의 시점까지 말이다. 그리고 '바코드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부제에서도 보여지듯이, 단일한 사건을 16부작으로 끌고 가야하는 단선적 이야기 구조를 가진 <냄새를 보는 소녀>의 '근원적' 한계일 것이다. 악의 축은 극명하고, 그 악을 극복하는 16부에 이르기까지, 악은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르고, 반대 측은 연신 당하다 마지막에 카운터 펀치를 날려야 하는 단선적 이야기 구조의 숙명인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작 <냄새를 보는 소녀>가 권재희의 사이코패스적 악행으로 시청자의 시선을 끌려 엔딩을 장식하는 동안 정작 이 드라마가 애초에 추구하고자 했던 '힐링' 러브 스토리가 짖눌려 버리고 만다. 정작 하고자 하는 바는, 바코드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 최무각과 오초림의 상처 치유지만, 드라마는 '연쇄 살인'을 설명하느라 골몰하다 보니 '치유'가 하위 범주로 밀려나는 듯 보인다.  


최무각과 오초림의 '어른다운 사랑'
하지만 권재희의 사이코적 악행에 짖눌리기에는 <냄새를 보는 소녀>가 그려내는 사랑은 그간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그려왔던 사랑과 질적으로 다른 성취를 보인다. 

우선 늘 재벌이거나, 준 재벌가쯤 되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고소득 직종이 판을 치는 사랑 이야기에서, '순경' 최무각과, '개그맨 지망생' 오초림의 존재는 평범해서 특별하다. 그들은 그래서 늘 차도 없이 버스를 타고 다니거나,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거나 헤어진다. 특별하게 경찰 관용차를 타거나, 택시를 탄는 보통 사람이다. 그래서 순경인 최무각(박유천 분)의 소원은 동생의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요즘은 경찰들도 기피한다는 강력반에 들어가고자 하고, 개그맨 지망생인 오초림은 개그 무대에 서는 것이 희망이다. 그래서 그들은, 강력반에 들어가기 위해 오초림의 냄새를 보는 능력이, 그리고 무대에 서기 위해 만담 파트너로서 최무각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연인의 러브 스토리의 전개 역시 그간 다른 드라마와 다르다. 누군가 제 3자가 끼어 질투도 하고, 삼각 관계를 일으키며 사랑의 전선을 구축해 가는 여느 사랑 이야기와 달리, 이 두 사람은 수사를 하고, 만담을 하며, 그 사이에 짬짬이 함께 '먹방'을 흐드러지게 선보이며 '썸'을 탄다. 수사와 만담 연습을 빼면 평범한 여느 연인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느 연인들같던 이들의 '썸'은 그저 '썸'에 그치지 않는다. 최무각이 오초림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은 자신으로 인해 무대에 설 수 없어 되어 슬퍼하는 동생 또래 여자에 대한 연민으로, 그리고 오초림은 '동생'을 잃은 오빠의 상실감에 대한 헤아림으로 '썸'이 사랑으로 깊어진다. 그래서 감각을 상실한 최무각의 진통제 비용을 아까워하던 가해자 오초림은, 동생을 잃고 마음을 아파하는 최무각을 생각하여 자신이 하고싶은 만담을 포기하고, 최무각은 '아는 동생' 오초림을 생각하여 '지금이 그럴 때가 아닌'데도 만담도 하고, 수사도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상대방을 생각하는 이들의 '이타적인 사랑'의 위기는 오초림인줄 알았던 최은설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냄새를 보는 소녀>가 표방한 '힐링 러브'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11,12회에 걸쳐, 두 사람은 상대방이 동생 대신 죽은 또 한 사람의 최은설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 대신 최무각의 동생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당연히 자신 때문에 최무각의 동생이 죽었다며 죄책감에 빠진 오초림은 최무각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하지만, 최무각은 다르다. 자신의 동생과 이름이 같았던 또 한 사람 최은설에 대해, 그가 주저한 시간은 단 하루, 자신을 기다리는 오초림을 멀찍이 바라보고 자리를 떠난 후 동생과 함께 했던 아쿠아리움을 홀로 찾던 그는, 의연하게 슬픈 눈을 하면서도, 다정한 연인의 모습으로 초림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동생에게 하듯 '이쁘다'고 얼굴을 쓰다듬고, '자신에게 시집오려면'이라고 은근슬쩍 '청혼'의 운도 띄운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듯, 자신의 원망을 '너때문에 내 동생이 죽었다'고 쏟아붓는 대신, '어른답게' 또 한 사람의 희생자인 최은설을 보다듬는다.

최무각의 동생이 자신때문에 죽었다며 이별을 선언하는 오초림의 손을 잡고, 너 때문이 아니라고, 니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어른 남자' 최무각인 것이다. 그리고, 이 다음에 모든 사건이 해결되면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자고 말한다. 역시나 제주도가 고향인 최은설에게. 

하지만 정작 드라마는 이런 최무각의 어른스런 사랑에 인색하다. 그의 동요는 짧고, 고민은 스쳐간다. 오초림의 고뇌도 마찬가지다. 최무각과, 오초림이 자신보다, 상대방을 더 배려하며 사랑을 키우고, 위기의 순간에조차 어른스럽게 처신하는 성숙한 사랑을 그려가지만, 언제나, 그 사랑의 빛깔은 연쇄살인마의 스릴러에 희석되어 버린다. 극은 결국은 허무한 해프닝으로 어설프게 당해버리는 연쇄살인마의 악행에 치중하는 동안, 두 사람의 연민에서 비롯된 사랑은, 몇몇 투닥거리는 장면으로 대체된다. 

그렇게 성의없이 끼워넣듯 등장한 장면을 채워가는 건, 온전히 배우들이다. 권재희 난을 되풀이하는, 그리고 어이없는 설정들이 난무하는 어설픈 스릴러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을 설득하고, 인내하게 만드는 건, 재미처럼 끼워넣은 최무각, 오초림의 장면에서, 일렁이는 눈빛을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슬픈 운명을 극복해 나가는 박유천, 신세경의 연기이다. 방향을 종종 놓치거나, 뻔해 보이는 드라마 속에서, 섬세한 결로 '어른 남자' 최무각의 진심과 자신을 던져서라도 사랑하는 이를 돕고 싶어하는 순수한 여자 오초림을 배우들의 연기로 그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래도 <냄새를 보는 소녀>가 뻔하고 어설픈 스릴러를 넘어  아직은 포기될 수 없는 미덕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5. 5. 8. 10:12

또 한 편의 신선한 tvn의 예능이 등장했다.

2015년 4월 29일 방영을 시작한 고교생들의 토크 프로그램 <고교 10대천왕>이 바로 그것이다. 수요일 밤 11시를 지켜왔던 <수요 미식회>를 밀어내며 야심차게 시작된 <고교 10대천왕>. 그 취지는 이른바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되는 10대들의 나라 걱정'이다.

 

'재미'는 보장하는 'mc'

그리고 그 취지에 걸맞게, <고교 10대천황>은 첫 회 우리나라의 젊은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s대를 나와도 취업을 못하면 도대체 취업은 누가 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취업 문제를 다루었다. 이어진 2회, '대한민국은 지금, 나홀로 집에'에서는 나날이 늘어가는 싱글족 문제를 다루었다.

 

그런데, 이미 미국 유수한 명문대에 입학 허가를 받은 엘리트에서 부터, 외고생, 그리고 토론 대회 수상자에, 다양한 분야와 성향을 가진 10명의 학생들을 모아 놓은 10대 천왕과 함께 하는 mc진들에 대해, 프로그램의 소개란에서는 '모자란 어른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모자란 어른들이란 다름아닌,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환상의 콤비로 탄생한 김성주, 정형돈 두 mc에, 서장훈의 합류이다. 이제는 발군의 조합이 된 김성주, 정형돈 두 mc의 예능감이야 바야흐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며, 거기에 합류한 서장훈은 단 2회만에 이른 평가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그가 출연했던 그 어떤 예능보다, 서장훈이 가진 잠재력을 가장 월등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장훈이란 캐릭터는 그의 남다른 체격, 혹은 우월한 신장을 통해 보여지는 '몸개그'보다는, 단 2회만에, 두 mc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10명의 고교생들과 입담을 겨루는 '두뇌 플레이 형'의 예능인으로서 더 제격이기 때문이다. 한번 갔다온 자신의 경험을 내세우며 허심탄회하게 자신을 희화화시키면서도 거침없이 상대방의 의중을 꿰뚫는 언변은 이런 토크 프로그램에서 서장훈이 남다른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 내고 있다.

 

 


 

 

'재미'는 있지만, 폭넓은 토론은요?

하지만, 이렇게 예능적으로 신선하고 재미있는  조합이, '나라 걱정'을 하는 토론 프로그램으로서 <고교 10대 천왕>에 있어서는 양날의 검이 된다.

 

우선 장점이라면, 토론 프로그램을 내세웠음에도 <고교 10대천왕>은 재밌다. 김성주와 정형돈이라는 '소박한' 웃음의 포인트를 아는 두 mc에, 이제는 어느 정도 '예능'의 내공이 생긴 서장훈의 합류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학생들의 소개에서 부터, 웃음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다. 잘 나면 잘 난대로, 평범하면 평범한대로, 각각 학생들의 개성을 찾아내는데, 이미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평범한 쉐프들을 예능인으로 탄생시킨 그 저력이 발휘된다.

 

하지만 그 점이 아쉽기도 하다. 예능으로서 재밌기는 하지만, '나라 걱정'이라는 거창한 취지로 보자면 제한적인 것이다. '싱글들의 증가'로 시작된 문제 의식이, 그렇게 싱글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원인을 짚어보고 고민해 보는 것이 아니라, '싱글이 늘어나면 문제다'라는 문제 제기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거나, 논술 문제 푸는 식의 풀이를 내세우거나, 생뚱맞게, 혼전 순결로 이어지는 토론의 연결 구조에서는 여러모로 토론을 이끌어 가는 mc들의 의식 수준의 한계가 드러난다. 이제는 종영된 <속사정 쌀롱> 정도의 폭넓은 의식의 개진은 아니더라도, '싱글이 늘어나서 아이를 낳지 않아 나라가 어려워진다'는 접근은 사회문제를 대하는 일면적인 태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웃음은 기발했지만, 상투적 인식을 넘어서지 못하는 <고교 10대천왕>은 '나라걱정'이라는 거창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럴 듯한 사회 문제 토론을 빙자한 '고교생 예능'이 되는 것이다.

 

남의 다리 긁기식의 '나라 걱정'보다는 내 몸에 맞는 '내 걱정'이 제격

그래서 <고교 10대천왕>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나라 걱정'이 아니라, 또래의 고민을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내 걱정'시간이다.

고 3의 연애 상담으로 시작된 고민은 2회에 이르러, 이혼한 엄마에게 온 문자로 봇물 터지듯 털어놓은 각자의 사연과, mc, 출연 학생 할 것없이 감정을 이입해 버리고 만, 내 엄마의 이야기, 내 아이의 마음에서 진솔한 공감을 낳는다.

 

3년 후의 내 이야기가 될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어딘가 '문제집'의 답을 컨닝한 듯 하거나, 생뚱맞은 남의 다리 긁는 식의 이야기로 '웃픈' 상황이었던 것들이, 부모의 이혼과 재혼, 그런 상홍에 맞닿은 내 처지가 되니, '내 이야기'들을 풀어놓게 되는 것이고, 그들의 해법도 '공감'의 온도를 높인다.

 

처음 소개를 받을 때만 해도 외국 유학 인증을 받은 학생에, 외고 학생, 언론 동아리 연합회장 등 쟁쟁한 학생들로 시작된 10대 천황의 출연진에, 역시나 여기도 성적순인가, 학교 서열순인가 하고 입맛이 써졌지만, 막상 한 회가 마무리될 즈음, 가장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한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역시 사람사는 세상은 '성적순'이나, '학교 서열순'은 아니구나 란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고등학생이지만, 그들이 살아왔던 10여년의 짧은 세월의 '공부'만이 아닌 내공이, '시험'이 아닌 '예능'인 <고교 10대천왕>의 묘미가 된다.

by meditator 2015. 5. 7. 09:53

비서 민주영(장소연 분)의 오빠를 폐인으로 만들고, 봄이의 삼촌 서철식(전석찬 분)을 다치게 만들고 좌절감에 빠뜨릴 정도로 노조를 와해시켰던 '한송'의 대표, 한정호(유준상 분), 결코 노조를 합법적으로 용인시키지 않았던 그가 뜻밖에도 비서, 운전사, 찬모, 집사 들의 파업에 봉착한다. 겉으로는 의연하게  '며칠 쉬세요. 아니 쭉 쉬어도 좋고'라고 하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안절부절 불안해하고, 자신들을 배은망덕하게 (?) 대한 그들에 분노한다. 결국 참지 못해 호텔행이다. 


불똥으로 튄 가솔들의 파업
22화 엔딩, 파업의 불꽃은 결국 집안 사람이 아닌, 봄이에게도 떨어졌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런 한정호 부부의 판단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들이 봄이를 생각하듯이, 이종 수혈이라 정당성을 부여받았던 봄이를 만나고, 봄이와 결혼을 하고, 봄이의 친정 식구들을 만나면서, 한정호 일가의 황태자 한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싫었지만, 그래서 아버지의 돈을 쓰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한인상, 하지만, 그의 세상에서 아버지를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지만, 아버지와 달리 사는 방법이란게 그가 자라왔던 세상에선 고작 방탕한 소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건 싫었던 한인상이 봄이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가진 것없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똑부러진 봄이, 역시나 가진 것 없지만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봄이의 가족을 만나면서, 때로는 그 가족들이 너무 순진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그들을 통해 다른 세상을 만나고, 봄이 삼촌 서철식과 민주영 오빠의 대산 노조 사건까지 도달하게 된다. 아버지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은 한인상, 그가 감지한 것은 더 이상 아버지의 방식으로는 운영되기 힘든 세상의 변화이다. 민주영이 기획하고, 서철식이 앞장서고, 거기에 윤제훈(김권 분) , 유신영(백지원 분) 변호사가 밀어주는 내부로 부터 튀어나온 '연대'의 힘이다. 그리고 그 모반을 '한인상'은 대산 노조 문건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법리적 정당성'을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불똥은 뜻밖의 곳으로 튄다. 일은 자기 자식이 벌렸는데 옆의 사람 뺨을 치는 식이다. 따지고 보면 한인상 자각의 도화선을 지핀 것은 '한정호의 부도덕한 일탈 행위'인데, 권위를 상실한 남편 대신 나선 최연희(유호정 분)가 내린 결론은 집안의 군기를 잡겠다는 것이다. 그 옛날 선대에 입혔던 메이드 복장을 다시 꺼내 입히고, 식사 시간에 시립하는 식으로 '과거 회귀'적 훈육 분위기를 만들고, 인상 부부와 손주에게 아침 문안을 받는 형식적 권위가 최연희가 내세운 해법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져 그 불똥이 튄 가솔들이 전과 같지 않다. '고생했어. 내가 신경 좀 쓸게'라면 고개를 조아리던 이비서(서정연 분)는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토를 단다. 되돌아간 예전 시절에 불만을 표명하던 사람들은, 급긱야, 자신들이 예전처럼 이 집의 가솔이 아니라, 한송 트러스트라는 인력 회사에 고용된 직원의 신분임을 깨닫고, 그 계약된 관계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다. 

최연희가 시도한 것은 리버럴했던 주인과 가솔의 관계를 그 예전의 전근대적 주종 관계로 되돌림으로써, 주종, 부자 간의 권력 구조를 공고히 하려 한 것이었으나, 오히려 그런 최연희의 시도는, 한씨 집안에 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존재가, 이제는 더 이상 이 집안의 '노예'가 아니라, 계약 관계이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최고의 법률 대리인인 한송이 정작 자신들과의 계약 과정에서 얼마나 불합리한 계약을 채결했는지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두가지 길의 기로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그 하나는 예전처럼 말 잘 듣는 '가솔'로 돌아가 주인이 던져주는 '떡고물'에 반길 것인가, 아니면 쥐꼬리만큼이라도 정당한 댓가를 받는 계약 관계를 정립할 것인가의 기로이다. 
거기서 이들의 결정은 추동한 것은, '사람다움'이었다. 자신들을 '노예'처럼 부리던 신분제도와 같았던 관계에서, 굴욕적인 복장과 치욕스런 행동을 요구하는 명령에서 벗어나 정당한 인간대 인간의 계약 관계를 정립할 것을 원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22회 에서 보여지듯이 파업으로 귀결되었다. 

떡고물대신 정당한 계약 관계를 바라다
한송의 대표와 대표 부인이 기꺼이 떡고물을 던져주겠다는 사람들의 반격, 이 해프닝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결국은 '떡고물'이 아니라, '쥐꼬리만해도' 인간다움의 보상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 하나요,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가솔들과, 박선생, 그리고 인상 부부의 결합으로 상징되는 '연대'가 또 하나이다. 역시나 서철식의 보상으로 대변되는 법정 투쟁의 시작 역시 마찬가지다. 드러나는 것은, '돈의 계약 관계, 혹은 보상이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것은 정당한 인간다움 삶의 투쟁이요,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여러 사람들의 '연대'라는 것을 <풍문으로 들었소>는 밝힌다. 

하지만 그런 '연대'와 '파업'이 녹록한 것은 아니다. 양비서(길해연 분)와 김비서(이화룡 분)의 모호한 태도에서도 보여지듯이 믿을 수 없는 연대 세력도 있고, 봄이 아버지와 언니의 불안한 태도에서 보여지듯이 '갑'을 내재화한 '을의 불안이나, 내 자식의 안위를 앞세우는 친족의 우려 역시 걸림돌이다. 파업에 나섰지만, 집안의 장 다리는 걱정이 자꾸 솟아오르는 어느새 '갑'이 가족이 되어버린 삶 역시 쉽지 않다. 

그런 '을'들의 복잡한 태도와 달리, 파업을 맞닦뜨린 한정호 부부의 태도는 일관적이다. 그들에게 '을'을 벌레만도 못한 존재요, 감히 자신들을 불편에 빠드린 괘씸하고, 배은망덕한 존재일 뿐이다. 말로는 그들의 정당한 투쟁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뒤돌아서 보이는 그들의 태도에, '자비'나 '이해'의 기색조차 없다. 




블랙코미디로서의 불편함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블랙 코미디'로서 <풍문으로 들었소>가 중반을 넘어서며 보이고 있는 것은 불안함과 불편함이다. 천진난만한 한정호 부부인가 싶더니, 가솔들과 자식의 반발에 '벌레보듯'한 반응을 보이는 그 부부에게서, 마음을 주었던 시청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난감해 진다. 아니,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최고의 갑인 한정호가 너무 우습다. 그의 인간성은 얕고, 그가 벌이는 일들은 유치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률 대리인이 그럴 수 있는가 싶은데, 아버지, 아니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 부터 이어져 온 '부'를 물려받은 '갑'중의 '갑'의 실체는 어쩌면 한정호에 가장 흡사할 지로 모를 일이다. 그들이 실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신분제처럼 얽어매어진 가솔들이 손발처럼 움직여, 또 기꺼이 그들의 편에 합류한 '엘리트'들이 '갑'중의 '갑' 한정호란 존재를 만들어 주고 있을 지로 모른다는 것을 드라마는 낱낱이 폭로한다. 이 불편함을, 주말 드라마에 나오는 '폭압적'인 '갑'과는 또 다른 이질적인 불편함인 것이다. 

그렇다고 '을'이 한결 같은 것도 아니다. 황태자 한인상의 모반도, 그런 한인상을 부추키는 듯한 똑똑한 봄이도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한정호네 집안에서 벌어진 파업에, 봄이의 미래를 두고 설왕설래 갈리는 봄이네 집안 식구들의 마음처럼, 시청자들의 마음도 이리저리 갈라진다. 바로 그런 불편함, 어정쩡함,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갑을관계'를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풍문으로 들었소>가 노리는 지점이다. 이 관계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당신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 보라! 지금 당신의 존재는,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어디를 가르키고 있냐고 말이다. 혹시나 당신은 그간 한정호 부부를 가족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가솔들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냐고 드라마는 슬며시 묻는다. 
by meditator 2015. 5. 6. 1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