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2일 종영한 <킬미힐미>에서 지성은 전무후무한 7개의 인격의 변주를 연기했다. 심지어 이 드라마의 서브남은 주인격인 차도현(지성 분)에게 대립하는 또 다른 인격인 신세기였으며, 배우 지성은 사투리를 팍팍 써대는 뱃사람에서 부터 '오빠'를 남발하는 여고생, 심지어 개까지 종횡무진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킬미힐미>는 전체적으로 심리적 상처를 다루는 미덕을 지녔지만상대적으로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 생각보다 단선적이어서 아쉬웠지만,  배우 지성의 폭발적인 연기의 변주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선택한 시청자들은 흡족했다. 이제 7개의 인격의 변주는 지나가고, 그 아쉬움을 또 다른 '롤로코스터'같은 연기들이 달랜다. 비록 여러 개의 인격들으리 변주는 아니지만, 그 못지 않은 극과 극을 달리는 연기의 향연들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빼앗는다. 




1. 순수와 위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위 1% 중의 1%-유준상
sbs의 월화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상류층의 위선과, 거기에 맞물려가는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연작처럼 풀어왔던 정성주 작가의 치밀한 대본과, 그 대본을 100% 이상 구현해 내는 안판석 pd의 연출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거기에 '화룡점정'처럼 찍힌 유준상의 연기가 대한민국 상류층의 위선을 보다 실감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tv에서는 생소하지만 이미 2014년 영화 <표적>을 통해 '순수한' 악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던 유준상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순진무구한' 상류층의 위악 자체가 된다. 
이미 극중 한정호로 분한 유준상과 그의 아내인 최연희로 분한 유호정의 광고가 tv를 통해 등장하듯이, 극 중 이들 부부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평생 상위!%의 물에서 살아온 그들은 그들과 다른 봄이네 가족들을 만나며 당황하고, 그럼에도 상류층의 품위를 지켜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삐져나오는 속물적인 근성에서비롯된 '인간적(?)'인 반응들은 또 다른 인간적인(?) 시청자들에게 친밀감을 자아낸다. 

하지만 유준상의 연기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손주를 보고 싶어 깨금발을 하며 돌아다니고, 머리가 빠질까 노심초사 하는 그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가장 무자비한 '갑'질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기획하고 지시한다. 그런 그의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당연시 하는 '갑질'을 통해 시청자들은 우리 사회 갑의 실체가 그저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체득된 계급적 본질이며, 그것은 그저 일개인의 반성이나 좋고 나쁨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된다. 바로 그런 깨달음에 가장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순수하다 못해 순진한 얼굴을 하고, 거침없이 '을'들을 요리하는 연기를 능청스럽게 해내는 배우 유준상의 자연서런 연기에서 비롯된다. 



2. 상실감과 개그를 오가는 무감각한 형사- 박유천
동생을 잃고 감각을 상실한 남자와, 역시나 부모를 잃은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고 대신 냄새를 보는 능력을 얻은 초감각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배우 박유천이 맡은 역할은 무감각한 순경이다. 
동생이 죽은 후 사건의 단서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경찰의 무능력함에 실망한 그는 스스로 경찰이 되어 동생 사건의 범인을 찾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냄새를 보는 소녀', 그런데 개그우먼 지망생인 그녀가 내걸은 '딜'의 조건은, '내가 너의 수사를 도울테니, 너는 나를 위해 만담 파트너가 되어달라'는 것이다. 

이 말도 안되는 개그와 수사의 만남을 설득시키는 것은 배우 박유천의 연기이다. 지난 해 해무로 둘러싸인 낡은 어선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져 신인상을 거머쥐었던 막내 선원은 그가 연기한 최무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분명 같은 배우 박유천인데, 그가 연기한 인물들 속 박유천은 다 다른 인물이 되어 보는 사람을 흔든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팔이 빠져도 아프지 않은 무감각한 남자, 하지만 동생을 잃은 허전함을 몇 그릇의 짜장면과 짬뽕과 탕수육을 쏟아부어도 달래지지 않는 남자의 상실감을 '최은설'이라는 동생의 이름을 듣는 순간 차오르는 그의 눈빛만으로 설득해 낸다. 하지만, 이 봄에 어울리는 '로맨틱 코미디'를 위해 배우 박유천은 그저 애틋한 상처입은 남자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자신을 도와주는 오초림을 위해 그는 망가지를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린라이트'의 만담을 오초림보다 더 '바보'스럽게 하고, 좀 더 확실한 눈도장을 위해, 대머리 가발을 쓰고 기괴한 표정과 뒤집어지는 목소리로 '췌~'를 연발한다. 하지만 보는 사람를 폭소케 만드는 개그 연기의 장면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으로 돌아오는 최무각의 무감각이야말로 진짜 이 만담 장면의 절정이다. 어디 그뿐인가, 무감각하던 그가,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오초림을 만나, 그녀를 얼르고 달래면서, 때론 자신도 모르게 삐지고, 미소를 지을락말락 하는 순간,  로맨틱코미디로 <냄새를 보는 소녀>는 완성된다. 




3, 중 2병과 순정남을 오가는 기업 사냥꾼- 정경호
타인에게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이 느껴진다는 심장 이식 러브 스토리는 새삼 스러울 것이 없는 진부한 소재이다. 더욱이 2014년 10월 <내 생애 봄 날>이 종영한 후 1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소재를 재탕한다는 것은 더욱 위험 부담이 크다. 하지만, 그런 진부함과 위험부담을 <순정에 반하다>는 배우들의 연기로 설득한다. 그리고 그 설득에서 방점을 찍는 것은 다른 이의 심장을 받아 혼란에 빠지는 강정호 역, 정경호의 연기다. 

잔뜩 웅크린 채 발톱만을 내세운 채 으르렁거리는 상처입은 짐승처럼 지난 주 첫 선을 보인 <순정에 반하다>의 강정호를 연기하는 정경호에게 공감을 느낄 여지는 부족했다. 부모님을 단번에 잃고, 가업마저 잃은 채 비열한 기업 사냥꾼으로 성장한 그의 비사는 비극적이지만, 그 비극을 '백정'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는 캐릭터로 변모한 그에게서 '연민'으로 전화시키는 건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일말의 정조차 느껴지지 않던 강정호란 캐릭터가, 절명의 순간 순정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했던 마동욱(진구 분)의 심장을 받고 나서 달라졌다. 

분명 하는 행동은 여전히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 사냥꾼인데, 지난 주 비열하던 그 모습은 어느 덧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 질주하는 '중2병' 같아진다. 거기에 자신도 모르게 '순정에 자꾸 반하는' 순정남의 감정에 얹혀 진다. 그녀를 보면 가슴이 뛰고, 자신의 차 문에 다친 그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터무니없는 상황을 설득해 내는 건 배우 정경호의 연기다. 
1,2회차의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도 숙원이었던 헤르미아 인수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비극적 인물 강정호와, 이제 새로운 심장을 받은 강정호가 하는 행동은 다르지 않은데, 미묘하게 빚어지는 온도차를 배우 정경호는 절묘하게 그려낸다. 거기에, 순간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심장이 사랑했던 순정에 대해 반응하는 그 불가항력적 상황마저도 개연성있게 그려낸다. 단 한 회만에, 심장을 받고 달라진 그 모습을, 비극에서, 중2병의 증상으로 완화시켜버리는 연기 톤과, 자신도 모르는 순정에 대한 쏠림에 당혹스러워하는 감정은, 극단이지만 묘하게 정경호를 통해 조화를 이룬다. 뻔한 심장 이식 스토리가 새로운 버전의 사랑 이야기로 둔갑하기 시작한 것은, 강정호란 독특한 캐릭터부터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의 유준상이나, <냄새를 보는 소녀>의 박유천, 그리고 <순정에 반하다>의 정경호 모두, 객관적으로는 화합할 수 없는 양 극단의 캐릭터를 스스로의 연기로 조화하고 설득해 낸다. 또한 그 극단의 캐릭터를 화합하는 물리적 결합을 넘어, 그 조화를 통해 자신이 구현하는 인물의 캐릭터를 성숙하게 한다. 그들 덕분에, 시청자들은 팔딱거리는 한 인물에 공감하고, 감동하고, 작가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저 대본에 씌여진 대사를 읊조리는 이상의 창조적 행위가 연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유준상, 박유천, 정경호, 이 세 사람의 연기를 보는 맛이 쏠쏠하다. 
by meditator 2015. 4. 12. 12:57

4월 10일 9시 30분 새로운 예능 한 편이 찾아왔다. kbs2의 <두근두근 인도>

제목에서도 단번에 알 수 있듯이, 이 프로그램은 인도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누가? 아이돌들이. 

tvn<꽃보다 할배>에서는 할배들이 그리스를 가고, jtbc<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는 외국인들이 그들의 고향을 찾아가고, sbs <정글의 법칙>에서는 세계의 오지를 휩쓴다. 그러니, 그 중 가지 않은 곳이 인도요, 그 중 동원되지 않은 인물들이 아이돌이란 생각이었을까? <두근두근 인도>는 슈퍼 주니어, 샤이니, 인피니트, 씨엔블루, 엑소 등 아이돌 각 그룹 중 한 명씩 선택된 멤버들(씨엔블루 종현을 제외하고는 모두 sm 소속이다) 6명이 인도로 떠난다. 

인도에서 한류 찾기
이미 기존에 있는 여행 프로그램을 의식한 듯, 초반 <두근두근 인도>는 차별성을 가지고자 애쓴다. 뻔히 예능 프로그램인 줄 아는데, kbs 보도국을 배경으로, kbs의 현지 특파원까지 동원하며 예능인데, 예능이 아닌 척, 9시 뉴스에 보도될 '탐사 보도' 프로그램인 양 코스프레를 한다. 하지만, 그래서 <두근두근 인도>가 취한 탐사의 방식이란? 다름아닌 한류다. 내로라 하는 한류 스타들을 동원하여, 과연 인도에 한류가 얼마나 자리잡고 있는가를 알아보고, 한류의 가능성을 짚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취한 방식은?
사람들이 밀집한 인도 광장에서, '한류를 아십니까?', 슈퍼 쥬니어를 아십니까? 샤이니, 엑소를 아십니까? '저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이러고 다닌다. 그도 안되니, 기타를 들고 씨엔블루의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이 몰라보니 자유롭다면서도 고개가 한뼘쯤 빠진다. 그나마 카메라를 좋아하는 인도인들이 카메라를 대동하고 나타난 이방인이 신기해 사진을 찍어주니 고무된다. 

해외 연예 스타들을 만나면 우리나라 리포터들이 하나같이 하는 뻔한 질문이 있다. 한류를 아십니까? 물론, 최근 우리의 한류가 세계 여러나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내한한 스타에게 한류를 아십니까 라고 물어보며, 우리의 김치를 어거지로 먹이는 식의 해프닝에서 보여지는 '문화적 자격지심'이 <두근두근 인도>에서도 이어진다. 애초에 출발하기 전부터, 그리고 이미 영사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시피 한 나라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심지어 한 언어로도 소통할 수 없는 대륙같은 인도에서 '한류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은 마치 연못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 마냥 공허하다. 

어렵사리 오랜 시간 비행을 하고 나서 인도에 도착한 출연자들은 인도의 문명을 보는 대신에, 거리에서 만난 도인들처럼 자신들을 아느냐며, '인지 구걸'을 한다. 솔직히 아이돌에 관심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조차도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되는 아이돌들이, 인도 한 복판에서, 한국을 아십니까? 샤이니를 아십니까? 슈퍼 쥬니어를 아십니까 라는 질문은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그들은 당연히 '스타'인데 그들을 몰라봐주는 인도인들이 안타까운 것이다. 다행히 겨우 인도까지 가서도 스타벅스에 들어가, 거기서 비로소 '팬'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지만, 그 한 시간 남짓의 여정은, 솔직히 '전파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던가, 보도를 하던가, 차라리 드라마 스페셜을 하던가 
여행 프로그램이라기엔 공감이 부족하고, 보도 프로그램이라기엔 어설픈 애초 프로그램 취지에는 술 친구 여섯 명의 신세계 개척기라던데, 차라리 소박하게 이십대 또래 여섯 명이, 스타인 그들의 존재에서 자유롭게 인도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그나마 소박한 미덕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 마저도 이제 써먹을 대로 써먹은 여행 리얼리티의 재탕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악조건을 뛰어넘기 위해, 기껏 내세운 수가, 탐사 보도로서의 '한류'라는 것인데, '한류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싶었다면 제대로 보도 프로그램으로서의 질을 답보하던가, 이건 보도 프로그램도 아니고, 예능도 아닌 인도 한 복판에서 나 스타인데 아세요? 라는 식의 방식은 안이함을 넘어 웃픈 지경에 이른다. 

술친구 여섯이라지만, 그 중 한 명 최강창민은 출발도 하기 전에 공연으로 빠지면서도 멤버의 일원으로 등장하고, 나머지 다섯 멤버들은 누가 누군지 캐릭터 구분이 되기도 전에, 그들은 슈퍼 쥬니어요, 샤이니요, 씨엔블루라는 자신의 이름표를 앞세운다. 여행 프로그램의 매력은 tvn의 꽃보다 시리즈의 성공에서 보여지듯이, 여행하는 사람과 여정에의 공감에 있다. 최근 새로이 시작한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최지우의 합류 이후 '할배들의 황혼녁 여행'이라는 컨셉이 희석되면서 불만이 등장하듯이, 무엇보다 시청자들과의 공감의 온도가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굳이 금요일 밤 9시라는 메인 시간대에, 굳이 아이돌 스타들의 외국 여행을 리모컨을 고정시켜가면서 봐야할 이유를 설득하고 있는지 <두근두근 인도>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아이돌 중심의 음악 방송이 2%대의 시청률로 대중적 시청자층에게서 외면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아이돌을 내세운 여행 프로그램의 컨셉이, 과연 공중파가 금요일 메인 시간대에 내세울 프로그램이었는지 대해서는 더더욱 고민해볼 여지가 크다. 

제 아무리 그들이 '한류 스타'라 하더라도 인도라는 이방을 여행하는 프로그램인데, 출연자들이 보이는 모습은 '인도'라는 이방의 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 할 수 있는 학습이 부족하다. 마치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을 보이듯, 21세기를 사는 인도를 찾아가면서, 여전히 '손'으로 음식을 먹을테니 숟가락을 준비한다던가, 마치 아프리카 오지라도 가는 듯 물을 캐리어 몇 개씩 담아가는 식의 행태를 만약 인도인들이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인도의 최신 유행 음악을 들으며, '아, 제법인데' 하는 반응은 인도가 그들이 알아 주기를 바라기 전에, 인도에 대한 기본적 지식부터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 할배가 찾아가는 국가의 책을 달달 독파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최소한 현재 그곳의 실정 정도는 제대로 알고 관심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더더욱 아쉬운 것은, <두근두근 인도>의 출현으로, 그나마 가물에 콩나듯 찾아온 <드라마 스페셜> 시리즈가 종영되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오렌지 마말레이드>와 <프로듀사> 이전까지는 명맥을 보전할까 싶었는데, 그 자리를 대뜸 차지하고 나선 <두근두근 인도>가 과연, 그 아깝다는 <드라마 스페셜>의 제작비보다 덜 들었으며, <드라마 스페셜>보다 값진 프로그램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차별성도 없고, 개성도 없는, 한류에 편승한 어설픈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만드느니 차라리 신선한 기획 의도와 실험성 높은 단막극을 한 편 방영하는 것이 공영방송 kbs로서 바람직한 시도가 아니었는지 여러모로 아쉽다. 
by meditator 2015. 4. 11. 09:53
jtbc의 수요일 밤 11시는 '추리' 데이로 안착하는 듯하다. <선암여고 탐정단>을 통해 매회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의 추리를 거듭하더니, 종영한 이 드라마의 뒤를 잇는 것은 이미 시즌1에서 호평을 받은 <크라임씬> 시즌2이다. ㅖ능과 드라마라는 이분법적인 장르 홍수 속에서, '추리'라는 성격을 가지고 특정 요일을 드라마와 예능으로 변주해가는 jtbc의 선택은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다양한 시청자층을 tv앞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흥미있는 요소이다. 물론, '추리'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 생경하겠지만, 이미 <지니어스> 등을 통해 '순수한(?)' 두뇌 자극의 맛을 들인 시청자들에게는 수요일 밤 11시는  어느 듯 <라디오 스타>와 <크라임씬>을 고민하는 시간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미 4월 1일 '추리 전쟁의 서막'을 통해  새로운 등장인물들의 등장과 그들의 추리 능력만으로도 기대감을 높였던 크라임씬의 첫 번째 사건 해결은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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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의 등장
<크라임씬> 시즌2에 들어서서 시즌1과 가장 두드러진 차별점은 바로 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이란 존재를 선정하는 것이다. 1회에 제작진이 맡았던 역할을 출연자 중 한 명을 골라, 사건마다 탐정이 되어 사건 수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도록 하며, 1;1 면담 등의 기능을 통해 보다 유리한 사건 접근을 할 수 있게 하고, 그에 따른 마지막 선정 과정에서 2표를 행사하여, 범인 색출에 용이한 존재로 탐정을 설정한다. 

첫 번째 사건에서 탐정으로 활약한 사람은 장진이다. 그는 탐정이란 지위를 이용하여, 그 누구보다 먼저 범죄 수단이었던 칼을 발견하고서도 그것을 알리지 않은 채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1;1 면담에서, '당신은 범인이 아니야'를 반복하며, 심리적 접근을 하는 등, 탐정으로서의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장진의 탐정으로서의 활약이 돋보였는가 하면 대답은 '첫 술에 배부르겠는가'이다. 숨겨진 칼과 관련된 상황을 적절하게 범인 추적으로 집중해 이끌어 낸 듯 하지도 않고, '당신이 범인이 아니야'라는 잠언론적 대화 역시 그 이후를 이끌어 가는 이렇다 할 추리가 돋보이지도 않고 보니, 장진이 탐정이란 특혜가 마지막에 2표 이상의 의미를 전달해 주지 못했다. 심지어, 추리 과정 내내 의심하던 장딜러, 장동민을 마지막에 되바꾸는 비이성적 결론에 이르면, 더더구나 아쉽다. 이렇게 '탐정'이라는 시즌1과 달라진 설정은 결국 그것을 활용하는 출연자의 갠인적 능력에 따라 회에 따라 부침을 거듭할 듯 싶다. 

첫 술에 배부르랴 
무엇보다 <크라임씬>시즌1에서 산만했던 과정들을, 탐정과의 1;1 면담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장치없이, 각자 사건 추적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집중한 것은 나아진 점이다. 하지만, <크라임 씬> 특유의, 마치 닭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모이를 쪼듯, 어수선하게 몰려다니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어수선한 상황의 개선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한 장소에 의심가는 인물들의 방을 한데 모아놓고 이리저리 옮겨다닐 수 있게 만드는 세트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극중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용의자들의 방을 옮겨 다니며 열심히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그저 '찾는다'는 이상의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 더 성의를 들여, 차별성있는 세트를 마련한다면, 조금 더 집중해서 각 용의자들의 추적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크라임씬>의 묘미는 출연자들이 용의자인 동시에 사건을 해결하는 해결사의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는데 있다. 그 과정에서 용의자는 애써 자신의 혐의를 돌릴 수도 있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숨기고 싶은 혐의가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늘 이것은 <크라임 씬>의 부담이기도 하다. 사건 수사에 집중하다 보니, 극중 자신에게 맡겨진 캐릭터는 저기다 내팽겨쳐 두고 사건 수사에만 집중하는 묘한 상황도 연출된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사건이 등장해도, 늘 그 사람이 그 사람인 상황이 사건의 차별성을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늘 홍진호는 홍진호고, 박지윤은 박지윤인 것이다.  '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극중 자신에게 부여된 캐릭터에 대한 일관성이나 특성에 조금 더 출연자들이 열중해 준다면, 그들의 추리가, 보는 시청자들의 추리로 전이될 수 있는 공감의 확장이 이루어 지지 않을까, 매번 <크라임 씬>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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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임씬>의 경우 마지막 범인을 결정된 후 범인을 맞춘 출연자에게는 상금이 주어지고, 역시나 맞힌 시청자들에게도 상품이 주어진다. 하지만, 물론 추리 프로그램이기에 범인을 맞추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추리'의 과정에 있다. 시즌2에 들어서서 탐정이란 캐릭터가 생기는 대신, 단계별 주어지던 힌트 등이 사라지면서, 전체적으로 출연자들의 추리가 두서 없어진 점이 있는 듯하다. 그들이 마구 헤매면서도, 보다 집중적으로 추리에 가닥을 가지고 찾아갈 수 있는 단계 설정과 그에 맞는 힌트의 제공 등이, 사건 해결의 집중도를 높이고, 시청자들이 산만한 추리 과정에 집중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시즌2의 첫번째 사건 범인은 장동민, 장딜러 였다. 추리의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미 <지니어스> 등을 통해 남다른 활약을 선보였던 장동민이 첫 번째 사건 수사 과정에서 버럭버럭 몇 번 소리를 지르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사건 수사에 동참하지 않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비록 그걸 놓치긴 했지만 뜻밖의 히든 카드 김지훈은, 장진이 써먹은 '당신은 범인이 아니야"를 '청출어람'하여 장동민에 혐의를 두었다. 숱한 힌트들이 등장했고, 등장인물 모두가 의심가는 상황에서, 출연자들은 정작 중요한 정보를 놓친 채 이리저리 휨쓸려 다닌다. 심지어 하니는 심증에 얽매이고, 탐정은 자신의 논리를 스스로 뒤엎는다. 그런 비논리적인 상황조차도 어찌 보면 <크라임 씬>의 볼거리일 수 있다고 두둔하며 다음 회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5. 4. 9. 10:49

조선시대에서 세자빈을 잃은 왕자가 300년 후 옥탑방으로 떨어져 세자빈 살해 사건도 해결하고, 진정한 사랑도 얻는 이희명 작가의 2012년 작품 <옥탑방 왕세자>는 환타지 로코라는 독특한 복합 장르이다. 일찌기 <토마토>, <팝콘>, <명랑소녀 성공기> 등 90년대 최고의 로맨틱 멜로물을 써왔던 이희명 작가는 이후 오랜 칩거 기간을 겪은 후, 기존의 로코에 새로운 형식을 가미한 <옥탑방 왕세자>를 통해 전성기를 되찾았다. 그런 <옥탑방 왕세자>의 성공 이후, <야왕>을 통해 잠시 외도를 했던 이희명 작가가, 이제 새로이 시작한 <냄새를 보는 소녀>로 다시 돌아왔다. 역시나, <옥탑방 왕세자>와 같은 복합 장르를 통해서이다. 이번엔 스릴러이다.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의 원작을 기반으로, 원작의 스릴러를 도입한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로맨틱 스릴러물이다. 아마도 90년대의 로맨틱 물의 전성기 이후, 2000년대 초반 과도기를 겪은 이희명 작가는, 21세기의 급격하게 변화하는 대중들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로코'라는 단순 장르로만 승부해서는 무리란 판단을 내렸던 듯 하다. 




로코 + 스릴러의 절묘한 결합?
원작의 어두운 기운을 덜어내고, 심지어 여주인공이 개그 우먼 지망생이자, 남자 주인공의 사건 수사를 돕는 대신 만담 파트너를 제안하는 <냄새를 보는 소녀>는 로코 중에서도 '개그'가 얹힌 아주 밝은 로코이면서, 동시에, 남녀 주인공의 과거의 사건에 맞물려 '바코드 연쇄 살인'을 풀어가는 치명적인 스릴러이다. 로맨틱 코미디와, 그것도 웃음을 한껏 버무린 봄에 어울리는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와, 연쇄 살인범의 결합이라는 난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렇게 양 극단의 두 장르가 맞물리는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떠올려지는 미드가 한 편있다. 2009년 시즌 8로 종영한 <명탐정 몽크> 시리즈가 그것이다. 주인공 에드리안 몽크는 전직 경찰이었다. 하지만 3년전 자동차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그는 더 이상 경찰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휴유증에 빠진다. 그 결과 일상 생활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강박 관념이 심한데, 이 시리즈의 매력은 바로 이 일상적이지 않은 사나이 몽크가 벌이는 해프닝에서 빚어진다. 그는 심각하고 진지한데 보는 사람들은 그가 난감해 하는 상황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되는 정상적 상황에 비정상적인 사람이 맞물리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이 시리즈의 매력이다. 강박관념을 가진 몽크는 그런 장애(?)를 가지고 온갖 곳을 누비며, 갖은 모험을 하게 되고, 심지어 각종 살해 사건 들을 해결한다. 스릴러와 웃음의 절묘한 조합, 그것이 바로 몽크 시리즈의 절묘한 콜라보레이션이었다. 그리고 바로, <냄새를 보는 소녀>가 그렇게 몽크 시리즈처럼 웃음과 살인 사건의 해결, 묵은 해원의 해결이라는 복합적 과제를 들고 나선다. 

그저 동생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강력반 형사가 되고자 했던 최무각 순경, 하지만 파출소의 말단 순경인 그의 저돌적 의지는 번번히 가로막히고 만다. 하지만 냄새를 보는 오초림의 도움으로 주마리 실종 사건을 해결하고, 특별 수사반에 특채가 되면서, 주인공 남녀의 소개에 주력하던 1,2부를 지나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사건 수사, 스릴러 부분에 들어선다. 2회까지만 해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초림을 지켜보던 천백경 원장(송종호 분)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등장했고, 또 한 사람, 주마리의 애인이지만 어쩐지 의심쩍은 권재희(남궁민 분)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염미(윤진서 분)라는 프로파일러가 특별 수사반 반장으로 등장하면서 극에 개입하면서, 경찰 쪽 라인도 이야기가 펼쳐진다. 
덕분에 과거의 사연을 소개하고, 무감각한 최무각의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오초림, 최무각 두 사람에 집중하던 극이 흐트러진다. 2회에 두 주인공의 알콩달콩함에 홀려 3회에 시선을 둔 시청자들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아웅다웅하기까지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다. 대신 최무각과, 권재희, 그리고 천백경이라는 이 드라마를 이끄는 문제적 남자들의 알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냄새를 보는 소녀>가 이번에 선택한 미션은 꽤나 고난도이다. 주인공들의 과거가 얽힌 연쇄 살인을 해결하는 스릴러에, 그 정극단에, 웃음을 잔뜩 머금은 로맨틱 코미디에, 심지어 여주인공과 남자 주인공 최무각을 자연스레 얽히도록 만들기 위해 여주인공은 개그 극단의 막내, 개그우먼 지망생이다. 그래서 서로를 돕기 위해 그들은 함께 수사를 하고, 만담 파트너도 한다. 진지하게 취조실에서 범인에 대해 고뇌하는가 싶은 최무각 형사가 뜬금없이 '촬~!' 하며 개그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식이다. 그런 면에서 <냄새를 보는 소녀>의 시도는 모험적이다. '로코'라는 장르가 최근 트렌드에 역부족일 수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스릴러와의 결합, 그것도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개그스런 로코에 연쇄 살인범의 사건 수사는 마치 '적과의 동침'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로코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은 스릴러의 장면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스릴러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은 두 주인공이 개그에 얽히는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더구나, 빈번히 등장하는 개그 극단은 과연 이것이 드라마에 필요한 설정인가를 두고 설왕설래의 대상이 될 수있는 것이다. 아마도 3회가 2회에 비해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지금까지 입가심처럼 등장했던 사건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두 주인공 외의 등장인물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로코'와 '스릴러'라는 두 장르가 확연하게 대비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난제를 설득해 내는 건 이희명 작가와 박유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려운 난제를 <냄새를 보는 소녀>는 3회에 이르기까지 무난하게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1회 초반 상세하게 설명된 오초림의 사연과 달리, 사건을 수사하다 잠이 들고, 대식가의 수준을 넘어선 먹방을 보이며, 탈골이 되고서도 멀쩡한 최무각이란 인물에 대한 설명을, 오초림의 냄새를 보게 된 이상한 눈에 대한 공감으로 이끌어 내고, 사건 수사에 집중하는 최무각 순경을 통해 자연스레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과 프로파일러 염미를 극중으로 흡인시킨다. 또한 그런 한편에서 개그 극단의 품평회를 둘러싼 두 사람의 해프닝을 통해 만담과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달달함과 '썸'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며 3회 <냄새를 보는 소녀>는 개그와 로코, 그리고 스릴러를 오간다. 자칫하면 이질적인 이 요소들이, 때로는 생경한 듯 하면서도, 제법 잘 어울려 버무려지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런 장르적 이질감을 녹이는 결정적 수훈은 <옥탑방 왕세자>에 이어 기업물 <야왕>의 경험을 안고 돌아온 이희명 작가가 풀어가는 절묘한 이야기에 있다. 또한 그와 <옥탑방 왕세자>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춘 이제는 콤비라 부를만한 박유천이 있어서 가능하다. 이미 <옥탑방 왕세자>를 통해 개그 감각에 남다른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던 박유천이기에, 마치 이희명 작가가 믿고 쓰는 듯 남자 주인공으로서는 버거운 각종 상황이 등장하지만 번번히 그 어려운 미션을 박유천은 설득해 내고 만다. 어색한 '그린 라이트'도, 대머리 가발을 둘러 쓰고 '촬~'을 연발하는 상황도 진지하게 하지만 보는 사람은 데굴데굴 굴러가게 만들어 버린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그리고 동생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살아가는 그의 우직함이, 오초림이란 뜻밖의 인물을 만나 벌이는 해프닝에서도 전혀 이질감없이 버무려저 들어간다. 작가가 회마다 부여하는 기상천회의 미션을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박유천은 특유의 유연함과 자연스러움으로 그 어떤 개그맨보다도 웃기게, 그리고 그 어떤 사연많은 주인공보다 진지하게 풀어가면서, 로코와 스릴러의 두 장르를 오고간다. 또한 이렇게 밝고 건강한 여배우였는가 라는 
깨달음을 주는 신세경이 풀어내는 오초림의 캐릭터는 무감각한 최무각과의 호흡에서 최고다. 거기에 믿고 보는 남궁민에, 단 한 장면으로도 충분했던 <응답하라 1997>의 '윤제형' 송종호라니!

사실, 모든 사람들이 쉽게 보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백수찬 감독의 의지는 때로는 드라마를 조금은 헐겁게, 조금은 늘어지게도 만든다. 물론 덕분에 알기 쉽고 이해하기는 쉽지만, 쫀득한 긴장감을 원하는 드라마 애청자들 입장에서는 아쉬운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런 아쉬운 소리도, 두 주인공의 열연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틈에 나왔던 입이 들어가 버릴 만큼, 이제 3회에 불과한 <냄새를 보는 소녀>의 '케미'는 설득적이다. 
by meditator 2015. 4. 9. 09:46

12회부터 시작되었던 봄이(고아성 분)의 한송 집안 사람 만들기는 14회 스스로 자신의 집안을 조정하고, 그것을 위해 비서 이선숙(서정연 분)을 좌지우지하여 한정호(유준상 분)까지 움직이게 하는 경지에 이르러, 성공적으로 미션이 완료 되었다. 한정호- 최연희(유호정 분) 부부가 원하듯 우생학적 차원에서 봄이를 사돈댁으로 부터 완벽하게 분리시키지는 못했지만, 한송 집안의 사람답게 처신하며 자신의 친정 식구들마저 컨트롤할 줄 아는 인물로 거듭남으로써 한정호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을'들의 고군분투
언니 서누리가 한송 집안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는 서봄을 부러워하며 자신도 신분 상승의 동앗줄을 잡기 위해 재벌가의 자제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서누리의 희망과 달리, 그 일은 그저 해프닝으로 한송 주변 사람들은 물론, 서누리 방송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최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봄, 언니를 만나 단호하게 말한다. '욕심이 과했다'고. 하지만 봄이의 변화는 식탁에 멀찍이 떨어져 앉은 봄이와 언니의 거리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다음, 집으로 가는 차를 세워 이 비서를 다르쳐 한송 집안의 작은 사모님으로서 자신의 권위에 복속시키고, 그녀를 이용해 한정호를 움직여 언니의 치욕을 역전시키는 수완을 발휘하는데서 한정호가 흐뭇해 하는 한송인 서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한송인으로의 거듭남 뒤에는 그간 이 집안에서 수모를 겪으며 며느리로 인정받게 되어 가는 서봄의 입신양명(?)과 함께, 그런 서봄의 존재를 우습게 여기며 힘겨루기를 하려던 이비서의 몰락이 있다. 서봄의 말처럼 처음 한송 집안으로 찾아오던 날 부른 배를 안고 어쩔 줄 모르던 소녀, 한송이 보기에 그저 보잘 것없는 친정을 가진 아이였던 서봄은 어느새 당당한 한송 집안 사람으로 사람을 부릴 줄 알게 되었고, 그런 서봄의 권력 앞에, 결국 자신의 목줄을 매달 수 밖에 없는 '을'임을 자각한 이비서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서봄이 한송 집안에 부른 배를 하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아이가 백일이 되기 까지가 한송 집안 사람으로서 서봄과 서봄의 집안이 '을'로서의 서러움을 당하는 과정, 즉 한정호의 '갑질'이 유세를 떠는 과정이었다면, 이제 서봄의 영특함을 눈여겨 본 한정호가 적극적으로 그녀를 자신의 집안 사람 만들기에 나서고, 그에 부응하여 서봄이 한송인으로 거듭나는 이후의 과정은, '갑질'에 대응하는 다양한 '을'들의 또 다른 '블랙 코미디' 한 편이 펼쳐진다. 



갑을 관계 속에 무기력해진 을의 존재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봄과 봄이의 집안이다. 마치 양계장에 던져진 벌레처럼 이리저리 쪼이고, 온갖 수모를 당하던 서봄은, 이제 자신이 한송 집안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가련한 미혼모에서, '작은 사모님'으로 변신한다. 14회에 이른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철저하게 '을'에서 '갑'으로 변신한다. 한송이 벌이는 '갑질'을 영특한 머리로 습득하여, 바로 실천한다. 

미혼모가 된 딸에 좌절하고, 한송과 사돈을 맺게 되었다는 사실에 희희낙락하다, 그들의 갑질에 분노하던 서봄의 부모와 언니가, 전략을 바꾼 그들의 회유책에 1인 시위를 한다며 한송 앞까지 갔던 아버지가 피켓을 뒤로 숨기고 뒷걸음질 치듯, 적극적으로, 혹은 마지 못해하며 그들이 던진 떡고물에 두 손을 드는 모습은 이 '블랙 코미디'에 빠질 수 없는 한 장면이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벌인 '갑질'에 분노하던 사람들은, 편의적으로 대접해주며 던져준 떡고물에 어느덧 스스로 삼가며 길들여져 간다. 마치 조삼모사처럼, 돈으로 자신을 회유하냐며 분노하던 때가 언제인듯, 회유하듯 부드러운 말로 존중을 해주는 척하자, 한송이 내미는 카드를 덥석 받고, 사업 계획서를 들고 한송의 문턱을 넘는다. 

그런가 하면 애송이 사모님을 만만하게 보고, 거기에 갑질을 해볼까 해보다 큰 코를 다치는 이비서도 있다. 한송을 잘 안다는 이유 만으로 서봄을 만만하게 다루려 하지만, 결국 계급적 위계 질서 앞에, 이비서의 숙련된 노하우도 무기력하다. 

이렇게 서봄과, 그녀의 가족들, 그리고 이비서등이 '갑'질을 내재화시키며, 자기 안의 논리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묵인하는 과정이 벌어지는 한편에서, 한정호에 대항하려 했던 민주영(장소연 분), 봄이의 삼촌(서철식 분), 그리고 변호사 유신영(백지원 분)의 음모는 결국 투항으로 이어졌다. 그들이 어떤 일을 벌이기도 전에, 그들의 획책은 한송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고, 결국은 각개격파의 방식으로 저마다 백기를 들고 한송에 순응하고 만다. 

이렇게 각각의 '을'들이 '갑'들에 대항하여 저마다의 전략으로 싸우고, 동화되고, 무너지는 동안, 갑들의 행태는 여전하다. 서봄을 그 집안으로 부터 우생학적으로 분리하고자 하는 혹은 거리를 두고자 하는 한정호네의 노회한 술책은 착착 진행되고, 서봄의 언니를 둘러싼 갑들의 속물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갑들이 여전함에도, 그들에 맞서는 을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갑'질에 대한 자신의 존재 양태를 모색해 간다. 

계급적 사다리를 성공적으로 올라탄 서봄은 스스로 '갑'이 되었고, 그런 서봄에게 알량한 '갑질'을 하려던 이비서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무릎을 끓는다. 어떻게든 '갑'에 대항해 보려던 서봄네 식구들을 비롯한 민주영, 서철식, 유신영의 몸짓은 투항과 변절의 다양한 양태로 드러날 뿐이다. 

이렇게 한송가를 둘러싼 드라마 속 을들의 다양한 군상들의 고군분투를 보며 씁쓸해 지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여지는 갑을 관계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부터 '계급'이란 말대신 '갑을'이란 모호한 개념어가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 그것은, 분명하고 뚜렷한 적이 형성된 전선이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사람들은 원자화되고, 고립되어, 개별적 존재로서 각자 삶의 터전 속에서 갑에 대항한 을의 존재로 남기 때문이다. 이비서가 갓 들어온 며느리 서봄에게 '갑질'을 하려던 것처럼, '갑질'은 분명한 계급 대신 그것을 내재화한 사람들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사람들은 각자 삶의 현장에서 다양하게 변모된 갑과 마주한다. 서봄은 그런 논리를 영특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를 재빨리 깨달아 '갑'을 등극하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유신영이나, 민주영, 서철식은 무기력하게 투항한다. 그들은 함께 싸워보려 했지만, 갑들의 각개격파에 개별적으로 무너진다. 결국, <풍문으로 들었소> 속 수많은 을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삶의 조건에서 마주친 갑들에게 손을 든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의 해프닝은, 함께 싸우기가 만만치 않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작은 사모님 서봄의 작은 승리가 시청자들의 기쁨으로 이어질 수 없는 이유이다. 그저 서봄은 '을'을 잘 다루는 '갑'이 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by meditator 2015. 4. 8. 11:50

4월6일 <식샤를 합시다>가 시즌2로 돌아왔다.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문구가 딱 어울리게, 왠 먹방 드라마에서 그 스토리 보다도 다수의 사람들이 침 흘리며 이번 회에는 또 무엇을 먹을까 기대하게 만들었던 <식샤를 합시다>가 주인공 구대영(윤두준 분)을 제외하고 여타 등장인물들을 새롭게 포진하고 새로운 시즌으로 찾아왔다. 

드라마 속 설정은, 서울에서 온갖 궂은 일, 연애에서 부터, 하다못해 블로그에 실린 맛집에 대한 평가에까지 제대로 풀리지 않았던 일로 인해 심정적, 금전적 타격을 입은 구대영은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삶의 터전을 정부청사가 들어서는 세종시로 옮긴다. 
그의 이전 측근들이 그의 블로그를 보면서 그의 상실감을 그리워하는 사이 배멀미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배를 타는 모험을 감수하며 생 오징어 회를 즐기는 구대영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실의도 먹방으로 극복하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새삼 확인시켜 준다. 
그런 그가 그만의 노하우로 새로운 자췻집을 구하고, 아래 위층 식구들과 안면을 트고, 얽혀진 사연을 풀어내는 것이 시즌2의 서막이다. 

시즌 1이 1인 가구들의 서식처 오피스텔을 배경으로, 이제 새로운 1인 가구로 홀로 서기를 시작하는 이수경(이수경 분)과 윤진이(윤소희 분)를 등장시킴으로써 1인 가구들의 '홀로' 식사의 어려움을 드라마 속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서로를 경계하던 주인공들이 자연스레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면서 이웃 사촌으로, 혹은 '썸'을 타는 사이로 성장해 가는 과정들이 흥건한 먹방과 함께 풀어내어 졌다. 또한 그런 잔잔한 이야기들 뒤로, 매회 조금씩 풀어졌던 무시무시한 묻지마 폭행범의 미스터리와, 폭행범의 미스터리만큼이나 초반 의심을 불러 일으켰던 구대영의 정체에 대한 식욕만큼이나 묘하게 구미를 동하게 만들었던 시즌 1.

그렇다면 2013년 11월 28일 첫 선을 보인 먹방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시즌 1 이후로 어언 1년 여 만에 다시 찾아온 식샤를 합시다 시즌 2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홀로 서기의 두려움에 얹혀진 어두운 동네를 누비는 묻지마 폭행범의 존재로 무시무시하면서도 그 공포를 잊을 만큼의 침이 고이는 먹방 드라마는 구대영의 세종시 집 구하기와, 미스터리하기보다는 그저 이상한 아래 위층 이웃들의 등장으로 대신한다. 더욱이 멀쩡한 미모를 가지고 첫 대면부터 안면몰수를 하는가 싶더니 스토커처럼 사사건건 구대영을 물고 늘어지는가 싶더니 60만원이 넘는 집들이 바가지를 씌우고서는 결국 떡볶이 포장마차 앞에서 실체를 드러내고야 마는 이웃집 여자 백수지(서현진 분)가 첫 회를 채운다. 과거 초등학교 시절 비만아였던 그녀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여준 구대영을 남다르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구대영 엄마가 하던 떡볶이 집 홍보를 위한 의식적 선의였다는 설정은, 여전히 보험 설계사로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고 살아가는 현재의 구대영의 캐릭터와 겹치면서 묘하게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시즌1과 달라진 점은?
사실 식샤를 합시다 시즌 1의 매력은 윤두준을 비롯한 이수경, 윤소희 등 주인공들만이 아니었다. 이수경이 일하는 변호사 사무실의 김학문 변호사(심형탁 분), 오도연 변호사(이도연 분), 최규식 사무장(장원영 분) 등 이제는 나름 유명해지거나 익숙해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신선했던 조연진들의 합류가 식샤를 합시다를 독특한 분위기의 먹방 드라마로 인도했다. 시즌 2로 돌아온 <식샤를 합시다> 역시 아래층 할머니 김지영에, 집주인 황석정, 거기에 회사 선배 김희원까지 역시나 걸출한 조연진을 배치함으로써 주인공들의 후방을 든든하게 만든다. 또한 시즌 1에서 이수경을 사랑하는 짝사랑남으로써 심형탁이 등장하여 진지와 코믹을 오고갔다면, 이제 시즌2에서는 여주인공 백수지를 다이어트를 감수하며 오매불망 좋아하는 짝사랑남으로 5급 공무원 이상우(권율 분)가 등장하여 삼각관계를 예상하게 만든다. 거기에 우유 배달 창구로 등장한 누군가의 얼굴에서 보여지듯이 시즌1에 이어 미스터리한 사건이 역시나 이 드라마의 또 한 가지 볼거리임을 첫 회는 예고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즌1에 비해 달라진 것은 드라마 자체 보다도 드라마를 둘러싼 환경이다. <식샤를 합시다> 시즌 1이 처음 방영되던 2013년 말에서부터 2014년 초반, 아프리카 방송 등에서 비로서 조금씩 먹방이 등장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때만 해도 드라마 속 먹방은 그 자체로 신세계였으며 매회 주인공들과 주변 사람들이 함께 먹어대는 메뉴가 군침을 돌게 만들었고, 세간의 회자되었었다. 하지만 겨우 1년 남짓 지난 시간, 방송가에서 머방은 각종 다양한 예능을 통해 차고도 넘치는 상황이 되었다. 케이블을 비롯하여, 공중파, 종편까지 먹방의 홍수다. 과연 그런 먹방들의 향연에서 식샤를 합시다 시즌 2가 여전히 장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가 시즌2의 관건이 될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르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 첫 회는 여전힌 <식샤를 합시다>의 장점을 보여준 반면, 아쉬움도 남긴 회차였다. 시즌2의 첫 회, 이사을 온 구대영에 대해 이웃집 여자 백수지는 사사건건 까탈스럽게 대응한다. 심지어 이웃과의 첫 식사에서, 백수지는 자신이 식당과 메뉴를 정하겠다며, 비싼 중식당으로 데려가 60만원이 넘는 비싼 메뉴들을 즐비하게 시켜댄다. 물론 그 식당의 100번째 손님으로 무료로 먹게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지만, 아무리 어린 시절 구대영의 선의를 오해함으로써 벌어진 일이라지만 첫 회부터 여주인공을 안하무인으로 설정한 것은 시즌2를 이끌어 가는데 무리수가 아니었나 싶다. 조증과 울증을 오가듯, 기분이 자기 중심적으로 오락가락하는 여주인공을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으로 설득시켜 낼 수 있을지, 시즌2의 부담이 크다. 

그보다 더한 부담은 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인 먹방이다. 여주인공 백수지의 어거지로 시작된 중국집의 먹방, 먹방을 위한 무리한 설정이었으나, <식샤를 합시다>가 벌이는 음식과,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출연진들의 장면은 침을 고이게 만든다. 제작진은 시즌2의 차별성을, 그리고 흥건해진 다른 프로그램의 먹방을, 첫 회 탕수육을 둘러싼 부먹과 찍먹의 대결로 대신하려 한다. 세간에 우스개로 조선 시대 사색 탕파를 둘러싼 탕수육 부먹과 찍먹의 대결을 도표로 그려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난히도 탕수육을 먹는 방식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는 차이가 난다. 여주인공 백수지와 구대영의 갈등을 <식샤를 합시다> 시즌2는 부먹과 찍먹의 대결로 현실화 시킨다. 그런데 아쉽게도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제시하는 부먹과 찍먹의 이유가 익숙하다. 이미 <수요 미식회> 탕수육 편에서 등장했던 설명들이다. 드라마에 어울리는 그럴 듯한 해명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 <수요 미식회>의 인문학적 설명을 재연한 것은 어쩐지 아쉽다. 그렇게 이미 타 방송에서 전해진 사실들을 다시 한번 부연 설명하면서, 야심만만하게 부먹과 찍먹의 대결을 내세우려 했다면 안이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과연 이미 여러 방송을 통해 흥건해진 먹방들 속에서 차별성을 가지고 시즌2마저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을지, <식샤를 합시다> 시즌2의 첫 술은 어쩐지 허기를 때우기에는 너무 뻔한 맛이거나, 부족했다. 그래도 주인공들의 숟가락질에 따라 입안에 침이 고이고 고개가 움직거렸던 먹방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다. 다음의 먹방에의 기대가 크다. 
by meditator 2015. 4. 7. 12:08

4월 5일 방영된 <sbs스페셜>은 여성들의 가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가슴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하겠지만, 여성들 신체의 일부임에도, 가슴은 여성들의 것이라기 보다는 남성들 '음담패설'의 전용물인 양 여성들 자신의 이야기에서 소외되어 왔었다. 미국의 유명 전도사가 설교를 들으러 온 여성들에게 다리를 꼬고 앉으라고 하고는 '이제 비로소 지옥의 문이 닫혔다'라고 운을 띄웠다는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의 몸은 여성들의 것임에도 '성 문화의 상징'으로 터부시되거나, 음란한 상징의 대상으로만 전용되어 온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게 여성들 자신조차도 자기 신체의 일부임에도 가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노소를 불문하고 아직도 부끄러워하는 이 시대에, <sbs스페셜>은 과감하게 '가슴'에 대해 말문을 연다. 

과감하게 가슴에 대해 말문을 열다. 
< sbs스페셜>의 부제는 장윤주의 가슴 이야기이다. 나레이션을 맡은 장윤주는 그저 이야기 전달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자신의 가슴 이야기로 부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가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다큐을 풀어간다. 

장윤주가 머리를 하는 과정 주변 지인들과 자연스레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런데 마치 남성들이 자신들의 성기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레 그 크기와 성적 기능으로 이야기가 풀어져 가듯이 장윤주 동년배들의 가슴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성의 상징으로서 가슴, 그 사이즈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 들어간다. 

정신분석학자 수지 오바크의 증언대로 이 시대 우리의 몸은 이제 더 이상 타고난 본래의 몸이 별 의미기 지닐 수 없듯이 미디어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로서의 몸에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을 맞추고자 고민한다. 그래서 어느 덧 가슴 확대 수술이 동년배의 대화에 생소하지 않은 소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제대로 된 '브래지어' 착용법의 도움을 받아도 여전히 본연의 작은 사이즐로 인해 여성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현실적 고민을 거슬러 올라가 그렇다면 과연 가슴이란 무엇인가를 인문학적으로 들여다 본다.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가슴을 가지게 된 인간 여성, 과연 진화론적으로 그런 결과물(?)이 생겨난 이유가 무엇일까? 동물학자들은 그 이유를 원숭이의 엉덩이에서 찾는다. 발정기가 되면 부풀어 오르는 엉덩이, 수컷은 그것을 보고 암컷을 찾아드는데, 직립 보행을 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옷까지 입으면서 엉덩이를 가리기 시작한 인간은 더 이상 '발정'의 증거를 널리 알릴 수 없게 되었고, 그 증거물을 대신하기 위해 여성의 가슴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 진화학자들의 증언이다. 

성적인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 가슴
하지만 가슴의 진화론적인 결과가 어떻든, 동시대 여성들이 큰 가슴을 선호하든 어떻든, 가슴의 역할은 그저 성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창조주'의 심정을 경험하게 되는 '수유'의 행복이 가슴의 잊어서는 안되는 존재론임을 다큐는 짚는다. 하지만, 영국 호텔에서 가슴 노출이 심한 여성에게는 입장을 허용하면서,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에게는 그 모습을 가리라고 하듯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가슴을 대하는 인식은 여전히 차별적이라는 것을 가슴 이야기는 놓치지 않는다. 



또한 가장 숭고한 시간임에도 그러기에 가장 오염된 환경에 노출되기 쉬운 존재임을 다큐는 증명한다. 놀랍게도 미국, 유럽은 물론, 우리 나라 엄마들 모유에서 검출되는 각종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물질들에서, 그저 사명을 넘어선 건강한 모유 수유의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해 낸다. 

그러나 큰 가슴을 선호하는 사회 풍조든, 아이에게 젖을 주는 창조적 활동이든 그것도 가슴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무차별적인 '암'의 공격은 가슴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다른 암과 달리, 가슴을 도려 내어야 하는 유방암의 예후는, 그 암을 겪는 환자들에게 병으로 인한 고통 외에, 여성성의 상실과의 싸움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준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짚는다. 크건 작건 그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가슴으로의 귀결이다. 



가슴을 통해 여성을 생각해 보다
여성주의에 대한 여러 접근 중에,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그려보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다수의 여성들은 질색을 한다. 어떻게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들여다 보느냐는 것이다. 수없이 되풀이 되어 공연되는 여성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그래서 그저 여성들의 성기 담론이 아니다. 자신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직시하는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 된다. <sbs 스페셜-장윤주의 가슴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가슴을 통해 여성 자신을 말하고자 한다. 


비록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다루려다 보니, 우리 사회 여성들의 가슴에 대한 인식에서 부터, 모우 수유, 그리고 유방암까지, 마치 가슴의 '생로병사'라도 다루려는 듯이 다소 번잡스러워 졌지만, 가슴학 개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고민이 잘 전달된 시간이었다. 이렇게 개괄적으로 다루었던 여성의 가슴이 다음에 좀 더 각론적으로 접근된 깊이있는 각론의 다큐로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특히나, 미디어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에 노예가 된 이 시대의 가슴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내 것인데 내 것 같지 않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부인 가슴, 그 개론인 장윤주의 가슴이야기는 여성에 대해 말문을 여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5. 4. 6. 13:27

또 한 편의 '심장 이식 러브 스토리'가 온다!

'우리는 사랑일까?란 헤드 카피에서도 알 수 있듯이, 4월 3일 첫 선을 보인 jtbc <순정에 반하다>는 한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의 사랑을 이식한 다른 남자가 그녀와 다시 사랑을 이뤄가는 이야기이다. 
타인의 심장을 이식한 후 그의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다는 '심장 이식 러브스토리'는 이제 거의 멜로 드라마의 한 장르처럼 잊을 만 하면 한번씩 우리에게 찾아오는 스토리이다. 일찌기 2003년 <여름 향기>에서 부터, 2014년 <내 생애 봄 날>에 이르기 까지, 다수의 드라마들 속 주인공들이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심장을 이식한 타인에게서 '너의 심장 소리가 들려'라고 한다. <순정에 반하다> 역시 예외 없이 순정과 결혼을 약속한 마동욱(진구 분)이 죽고, 그의 심장을 이식한 강정호(정경호 분)가 예외없이 순정을 사랑하게 된다는 공식을 따른다. 마치 작년에 왔던 각설이처럼 변함없이 또 찾아온 뻔한 러브 스토리, 그 뻔한 숙명의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전달하기 위해, <순정에 반하다>는 치명적인 기업과 가족이 얽힌 복수극의 얼개를 가져온다. 


비열한 기업 사냥꾼으로 등장한 심장 이식자 
<여름 향기>에서도, <내 생애 봄 날>에서도 사랑하는 이의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은 여성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실의에 빠졌던 남자 주인공은 생전 처음 보는 그녀에게서 익숙함을 느끼고, 어느 덧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에 반해 <순정에 반하다>에서 심장을 이식 받을 대상은 남자 주인공, 그것도 여자 주인공이 일하는 기업을 잡아 먹으러 온 기업 사냥꾼이다. 

세계 최대 금융사 골드 파트너스의 투자 전문가 강정호,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1년에 평균 2개의 기업, 반 나절만에 평균 6명의 직장을 잃게 하는 그는 '백정'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 사냥꾼이다. 
하지만 그런 비인간적인 기업 사냥꾼 강정호에게는 숨겨진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25년전 헤르미아의 대주주인 아버지가 그와 똑같은 병인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세상을 떠나자 동생이었던 강현철(박영규 분)은 임원들과 짜고 회사를 뺏은 후 그와 어머니를 내쫓다시피 했다. 그런 수모를 겪는 과정에서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날 이후로 강정호는 헤르미아를 되찾고, 강현철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기업 사냥꾼이 되었다. 이제 헤르미아를 다시 손에 넣을 날이 눈 앞에 다가왔는데, 아버지를 죽인 그 병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순정에 빠지다>는 예정된 러브 스토리 대신, 헤르미아 라는 기업을 둘러싼 뺏고 빼앗기고, 그 속에서 서로 배신을 거듭하는 숨막히는 전쟁으로 포문을 연다. 사랑에 빠질 남자 주인공 강정호는 피도 눈물도 없는 기업 사냥꾼으로 등장하여, 앞으로 180도 달라질 캐릭터의 반전을 대비한다. 또한 대를 이어 헤르미아에 충성하는 헤르미아의 비서로 등장하는 김순정(김소연 분)은 심장의 주인공 마동욱을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사랑해 온 오랜 연인으로 그려진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헤르미아 매각를 둘러싼 양 극단의 입장, 그 정점에 놓인 두 사람,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 헤르미아에 온 강정호 일행을 가장 먼저 앞장서 발을 건 인물로 김순정을 설정함으로써 역시나 반전에 대비한 극적 장치를 강화한다. 또한 강정호가 헤르미아에 헌신적인 김순정을 선택하여, 그녀에게 헤르미아의 민낯을 드러내게 함으로써, 그저 헤르미아 좋은 편, 강정호 나쁜 편이라는 평이한 이분법적 구도를 전환시킴으로써, 그저 나쁜 기업 사냥꾼 강정호의 이미지에 해석의 여지를 넣는다. 



뻔한 듯 새로운 설정의 <순정에 반하다>의 관전 포인트는?
이렇게 적과 적으로써의 만남, 그리고 이어진 남자 친구의 도발로 인해 이어진 만남에서 김순정은 강정호와 엮이게 된다. 그렇게 남녀 두 주인공이 해프닝으로 엮이는 과정에, 다른 한편에서, 김순정의 오랜 연인 마동욱은 오랜 지기 이준희(윤현민 분)의 배신을 알게된다. 극중 처음부터 일관되게 정의로운 형사로 등장했던 마동욱은 친구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형사로서의 정의감에 앞서 친구의 비리를 폭로하고자 하여, 그의 죽음을 자초하고, 덕분에 그의 심장은 죽어가는 강정호를 구원한다. 이렇게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든 상황에서 순정의 애인은 가장 믿었던 사람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이제 심장 이식 러브 스토리에는 그 애인의 억울한 죽음을 해명해야 하는 미션이 하나 더 부가됨으로써, 이야기의 폭이 확장된다. 

익숙한 혹은 뻔한 심장 이식 러브 스토리, 거기에 주말 드라마에 자주 이용되는 기업을 둘러싼 비리와 가족의 묵은 해원, 거기에 다시 죽은 애인의 억울한 죽음이라는 미스터리 요소까지 가미한 <순정에 반하다> 이 익숙한 듯 새로운 변주가 과연, 과열되어 가고 있는 금토 방송 시간대에서 발군의 활약을 보일지, 아직은 미지수이다. 하지만 1,2회, 김소연, 진구, 정경호, 윤현민 등의 안정적 연기만으로도 <순정에 반하다>는 우선 가산 점수를 얻고 가는 건 분명한 듯 보인다. 



by meditator 2015. 4. 5. 12:52

꿈이 없다고 무시하고, 꿈이 있으면 허황하다고 빈정대고 날 보고 어쩌란 말이예요!'

<웃기는 여자> 극중 개그우먼을 꿈꾸는 고은희(문지인 분)가 자신의 개명을 받아주지 않는 판사 오정우(김지훈 분)를 향해 울부짖는다. 
그런데 왜 하필 개명일까? 오정우의 말대로 미모가 재능을 가려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재능이 미모를 가리는 것도 아닌, 데뷔 6년차 아직도 무대 '따까리'난 하는 개그우먼 고정희는, 자신의 평범함의 이유를 이름에서 찾는다. 그래서 고은희라는 아빠가 지어주신 평범한 이름대신 그 누가 봐도 웃겨서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고릴라'로 개명을 신청한다. 



이름을 바꿔 웃기려는 여자와, 머리를 심어 취직하려는 남자
<웃기는 여자>는 판사 오정우와 개그우먼 고은희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물이다. (4월 3일 방영) 하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건 데뷔 6년차 아직도 무대에 서지 못하는, 하지만 그럼에도 개그우먼이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하는 고은희의 유예된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직도 무대에 서지 못한 채 무대 뒷바라지나 하는 그녀를 보고 엄마는 기술을 배우라고 한다. 같은 개그맨 선배는 6년이나 된 똥차 주제에 후배 앞길이나 막는다며 막말을 서슴치 않는다. 개명 신청 과정에서 만난 판사는, 자신의 공정한 '판단 능력'을 내세우며, 개그우먼이 되기엔 재능이 없어보인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한다. 
하지만 고은희는 개그가 좋다. 자신의 좁은 고시원 방에 붙인 거울에 챨리 채플린의 반쪽 자리 모자를 붙이고, 콧수염을 그려 넣고 늘 거기에 자신의 얼굴을 맞춰 보며, 10년 무명 후에 성공한 찰리 채플린을 롤모델로 삼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꿈은 현실에서 무능하다. 뚱뚱하고 못생긴 동료들은 이미 뜨거나, 드디어 무대에 설 기회를 얻지만, 생긴 것도 평범한 그녀에게 그런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택한 방식은, 이름이라도 웃기게, 얼굴이라도 웃기게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머리 심는날>의 주인공 변임범(최태환 분) 역시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취업 준비생이다.(3월 27일 방영) 매번 시험을 볼 때마다 떨어지는 그는 그 이유를 하루가 다르게 빠지는 머리에서 찾는다. 여친을 만날 때에도 모자를 푹 눌러쓰는 변인범은 그래서, 머리만 풍성하다면 자신의 취직 운도 풀릴거라 여기며, 머리를 심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고시원 비도 밀린 채 여친네 고깃집에서 숯불 피우는 알바를 전전하는 그에겐 머리 심을 돈이 없다. 
변인범의 여친 역시 마찬가지다. 스튜어디스 시험을 볼 때마다 자꾸 떨어지는 그녀는 그 이유를 얼굴에서 찾는다. 그래서 이미 손을 댄 얼굴에 다시 한번 칼을 대려고 한다.  하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수술비, 돈이 없다. 
여친을 만날 때조차 모자를 벗지 못하는 변인범이 마땅치 않은 여친 봉화원(하은설 분)은 드디
어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별을 통보한다. 금속 알레르기가 있는 손에 자국을 남기는 변인범이 준 은반지를 뽑아 가차없이 변인범에게 전달한다. 변인범은 이제 와 이별을 통보하는 여친이 야속하기만 하지만, 지금 그에게 당장 급한 건, 아침에 발견한 전단지에 나온 머리 이식 세일이다. 그렇게 서운한 듯 하면서도 각자의 이해관계가 앞서 일사천리로 이별을 해결하는 오래된 언인들의 머리 위로 돈이 날린다. 하늘에서 오만원 권 돈더미가 뿌려진 것이다. 잠시 전 이별로 인해 아웅다웅한 게 언젠가 싶게 변인범과 봉화원은 있는 힘껏 돈을 챙겨 도주, 모텔에 든다. 하지만 연인이었던 기억이 무색하게, 모텔에서도 그들을 사로잡는 건, 머리를 심을 수 있게 해주고, 다시 한번 성형 수술을 가능케 해주는 돈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움켜 쥔 돈은 각자의 삶을 업그레이드 해주기엔 부족하다. 그 부족한 돈을, 그리고 그 부족한 돈마저 날리게 생기자, 변인범은 예상치 못하게 목격한 봉화원 아버지의 불륜 현장을 빌미로 삼아 협박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유예된 꿈을 향한 왜곡된 욕망을 풀어가는 서로 다른 방식
<웃기는 여자>의 고은희는 스물 여덟이다. 그리고 <머리 심는 날>의 변인범은 27살이다. 그들의 거주처는 모두 고시원이다. 창문도 없는 좁은 방, 그리고 고시원비 조차 밀려 쫓겨나게 생긴 그 좁은 공간이 그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그들의 벌이는 변변치 않다. 변인범은 여친 봉화원네 집에서 숯불 피우는 알바를 하지만 현실은 머리를 심기는 커녕, 고시원 비 조차 빠듯하다. 동료 개그우먼 무대 뒷바라지를 하다, 그 마저도 포기한 채, 엄마가 말했던 기술을 배우고자 알바를 하는 고은희가 선택한 일은 그녀가 원하던 '고릴라' 탈을 뒤집어 쓴채 아이들에게 고릴라에 대해 알려주는 동물원 알바이다. 

이십대 후반 원하는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비정규직 알바를 전전하는 고은희와 변인범, 88만원 세대의 전형이다. 취직을 하고 싶고, 개그우먼이 되고 싶은 그들이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변인범은 매번 취직 시험에 떨어지고, 고은희는 개그 심사에서 매번 고배를 마신다. 현실의 벽을 기어오르다 매번 미끌어 지고 마는 그들, 세상이 받아들여 주지 않는 자신들의 꿈, 그리고 노력에, 그들의 욕망은 왜곡되어져 간다. '노력을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그들, '솔까 대한민국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뭐 있어!''라면 냉정한 현실 인식을 하는 그들이 택한 선택은 결국 '신의 한수' '머리 이식'과 '개명'이다. 머리 이식과 개명을 둘러싼 <웃기는 여자>와 <머리 심는 날>의 해프닝이 웃픈 것은, 강고한 현실에서 정당한 노력을 통해 성취를 할 수 없는 88만원 세대의 왜곡된 욕망을 '해학'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객관적 판단력'을 지녔다는 판사의 판단처럼, 그리고 길을 막고 물어보았던 사람들의 반응에서 처럼 멀쩡한 이름을 고릴라로 바꾼다던가, 머리를 심는다면 취직이 되겠다는 엉뚱한 시도는 그들이 유예된 욕망을 해결할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고릴라로 바꾼다고 해서, 머리를 심는다고 해서 극중 주인공들의 삶이 달라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 보이니까. 하지만, 그 왜곡된 욕망을 위해 <웃기는 여자> 주인공 고은희는 개명을 해달라며 1인 시위를 하고, <머리 심는 날>의 변인범은 협박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에서 진짜 개그맨 시험장에 얼굴을 보여준 순간 '합격'을 하게 되었다는 후일담과, 실제 취직을 하기 위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성형 수술조차 마다하지 않는 취업 전쟁의 현장담들이, 드라마 속 이야기들을 그저 해프닝처럼만 여기지 않도록 만든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을 이해하게 만든다. 

하지만 왜곡된 욕망을 다룬 <웃기는 여자>와 <머리 심는 날>이 그 욕망의 발현을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판사와 개그 우먼 지망생, 계급이 다른 두 남녀의 해피 엔딩을 위하여 <웃기는 여자>의 고은희는 다시 한번 개그 우먼이 되어 보기로 한다. 그런 그녀에게 판사인 오정우는 현실의 법적 판단으로는 개명을 허락할 수 없지만, 대신 아름다운 한자 뜻을 가진 예명 '고릴라'를 선사하는 절충주의를 택한다. 그와 함께 계급이 다르지만 인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두 사람의 사랑도 결실을 맺는다. 

물론 오래된 연인 변인범과 봉화원도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상황은 전혀 다르다. 기호가 빼돌린 아버지의 도박 자금을 가지고 머리를 심은 변인범, 드디어 당당하게 취직 시험장에 들어선다. 하지만 정작 그를 '멘붕'에 빠뜨린 것은 시험관들의 질문, 면접을 망치고 나온 그는 그제서야 현실에 발을 딛는다. 봉화원 역시 마찬가지다. 역시나 원하던 수술을 하고 당당하게 면접에 응한 그녀, 정작 그녀를 좌절에 빠뜨린 것은,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키가 작다'는 면접관들의 한 마디이다. 게다가 남의 돈으로 심은 머리 조차도 구제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돈을 주어 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기호(장성범 분)를 구하는 바람에 애써 이식한 머리를 다시 잃게 만든고서야 변인범은 부질없는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난다. 

<웃기는 여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왜곡된 욕망조차, 꿈을 향한 소중한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끌어안는 반면에, 정작 현실은 당신들의 왜곡된 욕망과 다르다며 원칙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환타지로서 판사와의 사랑도, 꿈도 안고 다시 일어서는 <웃기는 여자>나, 머리를 심었지만 역시나 면접에서 실패하고, 머리를 잃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머리 심는 날>의 처절한 션실이나, 그 어느 것도 88만원 세대를 향한 정답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꿈이 없으면 없다고 무시되며, 꿈이 있으면 허황되다며 빈정거림을 당하는' 이래도 저래고 풀리기 힘든 현실에서 쉬이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이렇게 단막극 한편을 통해 그들의 자화상을 먹먹하게 공감하는 시간을 가질 뿐이다.  


by meditator 2015. 4. 4. 12:59

"야, 야, 내 말 좀 들어봐? 이거 그린라이트지?"

"뭔데, 뭔데?
"아이스크림 집에 갔는대, 여직원이 두배다 많이 퍼주는 거야?"
"응, 그거 원 플러스 원 행사 하는거야?"
개구리 개그 극단 대표 왕자방(정찬우 분) 앞에서 오초림과 최무각이 벌인 만담 개그의 한 토막이다. 진지한 두 사람과 달리, 극단 대표는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그런 식이라면 다가올 품평회에서 꼴찌를 하고 극단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런 대표의 으름장에 하지만 시종일관 진지한 오초림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개그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런가 하면 오초림의 만담 파트너로 본의아니게 무대에 오른 최무각은 1회에 이어, 2회에도 게걸스런 먹방을 선보인다. 무감각한 그가 커피 전문점에서 뜨거운 커피를 원샷하는 정도는 약과다. 1회 편의점 강도를 만나기 위해 불침번을 서며 그가 먹은 것은 새우탕 사발면 서너 개에, 커피 두 잔, 그리고 핫바 등이다. 2회에 그의 먹방은 업그레이드 된다. 짜장면 서너 그릇에, 볶음밥, 이어 짬뽕 두 그릇에, 마지막 입가심으로 탕수육을 더한다. 



개그에 빠진 오초림
만담 파트너가 없어서 개그 극단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오초림은, 지난 번 범인을 쫓아 간 찜질방에서 여자인 자신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능청스런 전라도 사투리로 위기를 모면했던 최무각 순경을 떠올린다. 처음 그가 부순 차값 대신 만담 콤비를 제안하지만, 최무각은 요동도 않는다. 대신 역시나 강력계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최무각의 아킬레스 건을 건들여, 어렵사리 파트너로서의 승락을 얻는다. 하지만 오로지 수사 생각만으로 가득찬 채 개그에 관심이라고는 1%도 없는 최무각에게 오초림은 다그치듯 말한다. '나에게 개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고.

1회가 시작하자마자 보여지듯이 최은설이었던 시절 오초림은 그녀의 눈 앞에서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른바 이 드라마의 중심 사건인 '바코드 살인 사건 해녀 부부 살해 사례'의 유일한 목격자이다. 하지만 범인으로 부터 도망을 치다 교통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그녀는 의식을 되찾은 후 최은설이었던 때의 기억이 없다. 대신 냄새를 보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집요하게 개그를 추구한다. 

극단 대표는 오히려 최무각에게는 '바보같지만 연기의 재능이 있다'라는 코멘트를 덧붙였지만 정작 선배들의 심부름조차 마다않고 열심인 오초림에게는 별 코멘트가 없다. 시청자가 보기에도, 애지중지하는 개그 아이디어 노트는 물론, 오초림의 개그조차 별 재능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에게 개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며 절박하게 말한다. 그것도, 2015년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장소팔, 고춘자'의 개그를. 혹시나, 그런 그녀의 개그에 대한 집착이, 극단적인 발랄함이 과거의 기억을 잃은 최은설의 트라우마의 변형이 아닐까? 그녀가 집착하는 그 지나간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은 혹시나 그녀가 잃어버린 해녀였던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편린은 아닐까? 원래의 성격도 밝았으며, 과거의 기억을 잃고 양아버지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밝은 성격을 유지하는 오초림, 그렇게 봐도, 개그에 대한 오초림의 열망은 그저 예사로 보아 넘겨지지가 않는다. 

극 중 오초림의 개그는, 오초림과 최무각을 이어주는 메신저로 등장한다. 파트너를 잃은 오초림이 자신의 만담 파트너를 얻기 위해 최무각의 수사 파트너를 자원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자연스레, 그들을 그 자리에 있게 만든 '바코드 살인 사건' 수사에 첫 발을 들인다. 



전의를 불태우는 무감각남 최무각의 먹방
오초림의 개그가 그녀의 전사와 삐긋하게 맛물린다면, 그에 반해 최무각은 2회에 이른 지금, 수사를 한답시고 다섯 날 밤을 새다 정작 범인 앞에서 잠이 들어 버리고, 무식하게 많은 음식을 먹어대는 무감각한 설정에 대한 이렇다할 설명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유일한 가족, 그래서 동생을 거침없이 '내 새끼'라 부르던 동생 바보, 그런 동생이 자기 눈 앞에서 피흘리며 죽어간 모습을 보며 절규했던 그 장면만으로도 그의 무감각이 이해가 된다. 극한의 고통이, 그리고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아 내 손으로 죽이고야 말겠다는 그의 저돌적 의지가 그로 하여금 '통각 상실증'에 이르게 했으며, 범인을 찾아내겠다는 전의가, 몇 그릇의 음식을 들이부어도 끄덕없는 무감각의 식욕을 만들어 냈을 것이라는 예측을 자연스레 하게 만든다. 거기에 덧붙여, 아쿠아리움에서 일했던 동생과 단란하게 보냈던 시절을 해파리만이 떠도는 수족관의 기억으로 남긴 채 홀로 남겨진 그의 채울길 없는 외로움이, 자꾸만 그의 허기를 충동하는 듯이 보여지기도 한다. 상식적 수준을 넘은 채 먹어도 먹어도 채워질 수 없는 그의 무감각한 허기는 묘하게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로움'으로 독해되어 짠함을 느끼게 만든다. 

결국 그의 이런 외로움, 혹은 그의 다른 표현인 범인에 대한 전의는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수사 과정에서, 그 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랑으로 풀어내어 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오초림의 개그에 대한 집착이나, 최무각의 채울 수 없는 허기는, 현재 그들이 처한 '트라우마'의 다른 표현이라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기억을 하건 못하건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고로 한 순간에 잃은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그 트라우마의 표현으로 과거의 기억을 잃고 정반대의 정서에 빠져들거나, 아예 감각 자체를 망각해 버린다. 최무각의 무감각과, 오초림의 초감각은 정반대의 양상으로 드러나지만, 결국 그들의 비정상적인 감각은 그들의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육친을 잃은 그들의 슬픔이, 그들을 '초감각'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건 후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 시절에서 놓여나지 못한 채 혹은 놓여난 듯 하지만, 결국은 거기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그저 선남 선녀의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 같은 <냄새를 보는 소녀>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것은 가족을 상실한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놓여날 수 없는 두 남녀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상처의 흔적을 초감각과 무감각으로 드러낸 두 남녀의 기묘한 캐릭터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신세경, 박유천 두 배우의 진솔한 연기이다. 한 장면에서도 이쁜 척, 멋진 척 하지 않고, 가장 최무각스럽게, 오초림답게 무감각한 순경과 초감각한 개그 우먼 지망생의 연기를 선보인다. 덕분에, 오초림의 밝음이 조증을 넘어, 선하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뻣뻣해 보이고 재미없을 무감각남이, 무감각해서 외려 더 재밌고, 보는 이의 짠한 감정조차 자아내는 풍성한 캐릭터로 재탄생된다. 심지어 2회 초반은 오초림의 냄새를 보는 설정을 설명하기 위해 30분에 걸쳐 두 남녀 주인공의 설왕설래로 드라마를 채워갔지만 전혀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온전히 두 배우의 합 만으로, 드라마의 매력을 만들어 가는 <냄새를 보는 소녀>.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과거의 상처를 정반대의 양상으로 그려내는 박유천, 신세경이 그려내는 무감각남과 초감각녀이다. 
by meditator 2015. 4. 3. 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