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첫 방송을 시작한 sbs의 수목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만취 작가의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이다. 

'냄새를 입자로 보는 소녀. 한 사건으로 만난 애송이 순경과 함께 일상의 소소한 사건에서 부터 강력 사건까지 함께 추리해서 해결해 가는 추리+로맨스 물'
위의 설명은 올레 마켓 웹툰에 게재된 <냄새를 보는 소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다.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초감각(超感覺) 여자와 무감각(無感覺) 남자가 벌이는 본격 냄새 추리극'을 내세운다. 
이 같은 듯 다른,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웹툰과 드라마의 설정, 두 둘의 간극은 첫 선을 보인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어떻게 드러났을까?


웹툰의 윤새아와 드라마의 오초림, 그 차이점은?
<냄새를 보는 제목>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웹툰의 이야기는 '냄새를 볼 수 있게 된 소녀 윤새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화학자였던 부모님을 둔 윤새아, 하지만 사고로 홀홀단신 살아남은 그녀는 원근감을 잃은 대신, 냄새 입자를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물론 웹툰의 첫 회, 극장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을 계기로 순경인 김평안과 윤새아는 만나게 되고,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지만 웹툰의 주 내용은 냄새를 보는 능력을 가진 윤새아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부모의 화재 사고 휴유증과도 같던 자신의 능력을 수용하고, 그것을 적극적인 능력으로 활용하는 '자기 성장' 드라마이자, 부모님을 죽게만든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 스릴러에 치중된다. 특히나, 첫 장면 극장에 가득 찬 냄새 입자에 '다 죽어버려!'라고 속으로 비명을 지르듯, 코로 냄새를 맡지 못하고, 원근감을 상실한 대신, 냄새를 보게 된 소녀는 부모를 잃은 채 혼자 살아남은 상실감과 남들과 다르다는 소외감에 상당히 어둡고, 거기에 사춘기 소녀의 신경질적이면서도 충동적인 분위기를 유지한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물을 내세운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의 소녀는 웹툰의 소녀와 천양지차다. 똑같이 부모를 잃고, 한 쪽 눈 색깔이 바뀐 후 냄새를 보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지만, 웹툰의 소녀가 부모의 죽음에 짖눌려진 대신, 드라마 속 소녀는 과거의 기억을 잃는다. 덕분에 과거의 상처를 잃고 자신을 보호한 형사를 아버지로 알고, 개그우먼을 지망하는 밝고 쾌활한 소녀로 성장한다. 처음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녀를 공격하듯 몰아닦친 냄새 입자에 기겁을 하지만, 그런 장애조차도 의학적 도움으로 완화시킨 채, 남들과 다른 '초감각'의 능력을 탑재한 능력자로 거듭난다. 그렇게 최은설이었던 과거의 트라우마를 벗어던진 능력만 가진 소녀 오초림의 분위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발랄함으로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로코가 된 냄새를 보는 소녀
무엇보다 드라마가 웹툰과 달라진 점은 웹툰이 냄새를 보는 소녀 윤새아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이웃집 오빠 노원을 비롯하여 의문의 여러 남자들 중, 남자 주인공인 김평안 순경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에, 드라마로 온 <냄새를 보는 소녀>는 잠시 <감각남녀>라는 제목을 채택하려 했던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냄새를 보는 소녀 오초림과, 동생을 잃고 무감각해진 남자 최무각의 활약과 러브 스토리가 주를 이룬다. '조증'처럼 시종일관 새처럼 지저귀듯 높고 밝은 톤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오초림의 한 편에서, 범인이건 동료 경찰이건 그 누구에게 맞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뜨거운 커피도 단번에 마셔버리는 무감각한 최무각의 존재가 극의 중심을 잡는다. 또한 웹툰이 부모를 잃은 기억에 사로 잡혀 그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위험을 불사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사건을 일으키는 계기를 만든다면, 드라마에서는 동생 최은설을 잃고 그 범인을 찾기 위해 강력계 형사가 되려는 최무각의 좌충우돌 모험이 사건의 현장에 두 사람을 불러 들인다. 

또한 웹툰에서 윤새아의 보호자로 등장하여 김평안 순경과 삼각 관계를 형성하던 노원은 이제 드라마에서는 늙수그레한 형사가 되어 오초림의 양아버지가 된다. 대신, 애인을 잃은 인기 쉐프로서 권재희(남궁민 분)가 등장하여 갈등의 한 축을 형성한다. 거기에 다크 호스처럼 첫 회에 피묻은 손으로 등장한 의사 송종호의 존재 또한 드라마적 흥미의 한 요소이다. 
또한 웹툰에서 휠체어를 탄채, 얼굴의 반을 긴 머리로 가리며 등장한 걸진 전라도 사투리의 프로파일러 염미는, '로코'에 걸맞게 젊고 아름다운 윤진서가 대신하여, 애정 전선의 한 축을 이룬다. 



부모를 잃는 사건의 와중에서 얻은 장애라고만 여겨졌던 냄새를 보는 능력을 김평안 순경을 만나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발견하고, 스스로 벽을 쳐버린 세상으로 그 능력을 이용하여 한 발, 한 발 나서는 윤새아의 이야기, 그리고 거기에 엇물려 들어가면서 등장하는 각양각색의 사건들, 그리고 내내 그림자를 드리운 부모님을 죽인 범인의 존재, 웹툰은 이렇게 세상과 벽을 쌓은 히키코모리 같은 여주인공이 세상에 맞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를 통해 부모님을 죽인 범인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에 반해, 역시나 부모님을 사건으로 잃었지만 부모님이 죽었는지 조차 모르는 꾀꼬리 같은 여주인공의 드라마는, 앞으로 그녀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증폭될 이야기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동생 바보로 살아가다, 감각조차 잃을 정도의 비극을겪은 그리고 그 비극의 실마리가 오초림에게 얽혀져 있는 최무각의 존재는 더더욱 드라마틱하다. 드라마는 웹툰의 '냄새를 보는 설정'과 친족을 잃은 사건을 도입하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전혀 다른 각도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제작 발표회에서 로맨스 8에, 추리 2의 비중을 강조했던 백수찬 pd의 발언처럼, 첫 선을 보인 <냄새를 보는 소녀>는 시작은 최은설 부모의 살해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곧 개그우면 지망생이 된 오초림의 이야기에 우연한 사건으로 함께 미용실 강도 사건을 해결해 가는 최무각와 오초림의 해프닝을 맛깔나게 풀어낸다. 원작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다크했던' 원작의 분위기를 찾을 길없는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가 생소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 봄 어쩐지 봄날에 어울리는 상큼한 드라마 한 편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남들과 다른 처지임에도 결코 주저앉지 않은 밝고 쾌활한 오초림에, 그가 들이키는 커피 한 잔마저 안쓰러운 무감각하기에 보호본능을 일게 만드는 최무각이 벌이는 로맨스 냄새 추리극이 더 끌릴 것이다. 
by meditator 2015. 4. 2. 08:41

3월 30일 <mbc다큐 스페셜>은 '갑을 소통 프로젝트 48'시간의 첫 회를 방영했다. 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땅콩 항공 회항 사건' 등 '갑을'간의 소통의 문제가 사회적 공감을 얻고 있는 시점 '갑을 소통 프로젝트'는 주목할 만하다. 특히 지난 연말 mbc 시상식에서 후배 백진희를 통해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며 '아직도 차가운 바닷 속에 갇혀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로 수상을 거부해 '개념 연예인'으로 인정받았던 최민수를 나레이터로 출연시켜, 이 프로그램의 공익적 취지를 한껏 배가시켰다. 하지만, 정작 1회에서 보여진 것은 '갑을 소통 프로젝트'라는 공익적 다큐라기 보다는, 예능적 성격이 강한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mbc를 통해 방영된 바 있는 미국 cbs의 <언더커버 보스>의 재판이었다. 




마트로 간 국회의원, 회사로 간 회장님 
<갑을 소통 프로젝트 48시간>에서 갑으로써 을의 체험에 나선 사람은 수십년의 굴곡진 정치 인생에서 오뚜기처럼(?) 생존하고 있는 국회의원 이인제와, 광고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ceo이자 인기 강사인 천호 식품의 김영식 회장이다. 

아직도 사람만 만나면 자연스레 먼저 말을 붙이고, 악수를 하고,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네는 것이 몸에 밴 이인제 의원은 정치인 생활 몇 십년 만에 처음으로 보좌관없이 홀로 마트 직원이 되어 을의 48시간을 체험한다. 천호 식품의 김영식 회장은 자신의 회사의 임시 사원으로 간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mbc 분장팀이 공을 들인 이인제에서 이충제, 김영식에서 박충천으로의 변신이다. 보형물을 끼고, 안경을 쓰고, 실리콘 가면까지 만들어 쓴 두 사람은 물론 '회장님과 닮았다'는 말은 듣지만 추호도 원래의 본인이란 의심을 받지 않고 각각 마트의 시니어 계산원과 천호 식품의 물류 직원으로 취직한다. 

당연히 자신의 얼굴조차 다르게 분장하고 을의 체험에 나선 국회의원과 회장님, 그 두 사람을 다루는 다큐는 그들이 하는 을의 체험, 즉, 그들이 고생스레 그 직종에 적응하는 과정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사회적으로 지긋한 나이의 그들은 대부분 그 나이의 사람들이 하지 않는 계산원과 물류 일에 적응을 하느라 고생한다. 하지만 적응을 하고 싶은 건 마음뿐, 젊은 사람 중에서도 빠릿빠릿한 사람을 세우는 계단대에서 이인제의 계산은 마트의 메뉴얼을 실행하기 어렵고, 김영식의 늦은 손과 자신만만했던 자기 회사 물류에 대한 둔한 실정으로 물류는 자꾸 적체된다. 물론 다큐는 그렇게 그들이 어설프게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을'로 살아가는 고달픔을 전하고 싶었겠지만, 정작 시청자들에게 다가온 것은 어설픈 귀족의 서민 체험이다. 말로는 시니어 직원의 체험이라지만 노골적으로 카메라가 따라붙은 을의 체험이 과연 진정 '을'의 체험이 될 수 있을지. 당장 바쁘게 돌아가야 하는 계산대에 자기 멋대로 계산을 마무리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쩔쩔 매는 나이많은 직원을 세울리 만무하며, 손이 늦어 물류을 정체시키는 초짜를 세울리 없을 터이니 말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갑의 을과의 소통 프로젝트라는 것을 염두에 둔 채, 같이 일하는 동료 직원들의 사정도 등장한다. 김영식 회장에게 군기를 잡겠다고 다짐하는 단호한 선배 사원은 뜻밖에도 비정규직이다. 동정을 묻는 회장의 질문에 비정규직 선배 사원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비정규직 생활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결혼을 엄두도 못낸다며 자신의 속사정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그런데 그런 비정규직의 현실적 고민에 대한 김영식 회장의 대응은 '복권!' 그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마치 선거 사례처럼 그가 돌리던 복권을 예외없이 꺼내어 비정규직 청년에게 건넨다. 심지어 그 복권이 당첨될 때 자신에게 어떤 사례를 할 것이냐며 딜까지 한다.
이인제 국회의원도 다르지 않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마트 직원들의 고충을 좀 듣는가 싶더니, 자기 같은 사원을 다루느라 고생한다며 덕담 한 마디를 하고는, 여전히 '마이 페이스'다. 비록 분장까지 하고, 사원 옷을 입고 마트에 가고, 회사에 갔지만 그들은 여전히 '갑'인 국회의원에, 회장님이다. 



셀프 홍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 날의 '갑을 소통 프로젝트'는 프로그램 마지막 최민수의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첫 회 두 사람의 체험 현장을 함께 본 최민수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결론을 내린다. 김영식 회장님이야 회사 홍보차 나오셨을 테고, 이인제 국회의원은 정치인이니까 한번이라도 더 카메라에 비추는 것이 좋아서 나왔을 것이라고. 내걸기는 갑을 소통 프로젝트라고 했지만, 정작 프로그램에서 보여진 것은 을이 된 갑의 어설픈 해프닝이었다. 미국 cbs를 통해 방영된 후 우리나라에서도 잠시 방영된 바 있던 <언더보스 커버>는 프로그램의 취지는 mbc다큐 스페셜이 내건 것처럼 갑을 소통이었지만, 그것을 그 누구도 갑을 소통의 공익적 다큐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보다는 갑의 을 체험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으로 받아들인다. 48시간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을의 체험 현장을 통해 을과 소통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경호원을 잔뜩 대동한 채 시장에 가서 시장 음식을 맛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이다. 

언제 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계급적 전선이 '갑을'이라는 유형의 전선으로 변화되어 등장했다. 그런 이유 중 하나는, 일찌기 마르크스가 제시했던 그 전선을 구성하던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들이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다양하게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의 발현, 발전과 함께 노동자 계급 중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을의 전선을 보다 복잡하고 다양해 졌다. 그런 과정에서, 땅콩 회항 사건'에서도 대표적으로 드러나듯이 갑을의 문제는 그 기본적 전성이 현실에서 감정적 갑질로 드러나면서, 갑대 을의 대면적 갈등으로 전화되어 등장한다.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계급 대 계급의 집단적 갈등은, 갑과 을의 인격적 혹은 개체적 갈등으로 전화된다. 더구나, 갑과 을의 정체성조차 모호하다. 정직원이 비정규직에게 갑질을 할 수 있듯이, 갑과 을의 전선은 끊임없이 다른 방식으로 전용되어, 사회적 갈등의 전선을 해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갑질의 폐해의 본원적 원인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계급적 갈등으로 부터 빚어진다. 비록 그 전선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다양해 지고 있다 하더라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국회의원 이인제와 천호 식품의 김영식 회장의 갑을 소통 프로젝트가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고충을 토로하는 비정규직 사원에게 복권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결혼을 꿈꿀 수 있는 정규직으로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이인제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고생한다 한 마디 덕담이 아니라, 그가 소속된 국회로 가서 비정규직에 대한 법안을 상정하고,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국 제 아무리 그들이 고통스럽게 비정규직을 체험한다 해도 최민수의 말대로 자사 홍보와, 카메라 좋아하는 국회의원의 방송 나들이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5. 3. 31. 12:29
우리나라의 최초의 아파트는 1932년 서대문구 충청로에 일본인 도요타가 세운 유림아파트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른바 대단위 단지로서의 아파트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 지난 1962년 한국 주택공사에 의해 서울 마포구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그때부터 대한민국에서 '아파트'의 역사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처음 지어진 아파트는 5층 건물에 연탄 보일러, 일일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연탄을 날라야 하는 불편한 구조의 아파트였다. 그로부터 50여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주거 형태에서 아파트는 과반수를 넘어 60%에 육박하고 있다. 10여년에서 길든 짧든 생애 전체를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모습들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 유독 대한민국은 아파트에 중독 되어 있는 것일까? <다큐 프라임-아파트 중독>은 3부에 걸쳐서 아파트에 빠져있는 대한민국을 해부한다. 

<1부-공간의 발견>아파트는 정말 당신을 만족시켜 주고 있는 것일까?
아파트란 공간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제작진은 한 단지 안에 동일한 평수의 몇 집을 골라 관찰 카메라를 설치했다.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사는 동일한 공간의 아파트, 하지만 남보매 그럴 듯한 외양과 달리, 규격화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공간에 자신을 껴맞추며 불편을 감수하며 산다. 4인 가족 구성원을 염두에 두고, 마당을 중심으로 꾸며진 조선의 한옥을 모델로 삼아, 거실을 중심으로 모든 방들이 중심을 향하도록 만들어진 아파트란 공간에서 사람들은 공간에 자신을 희생한다. 

이렇게 규격화된 공간에 자신을 꾸겨넣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문훈 건축가가 나서, 주어진 공간을 크게 변형하지 않은 선에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자 한다. 이른바 멋들어진 리모델링을 생각하던 사람들은 안그래도 좁은 아파트란 공간을 더 좁게 만들 수도 있는 각양각색의 짜맞춤 가구들에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오랜 토론을 거쳐, 기존의 공간을 세분화할 수 있는 짜맞춤 가구가 들어온 후, 가족들은 기존에 방치했던 아파트 공간을 새롭게 가족들의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만족도를 높인다. 
이를 통해 다큐는 문제를 제기한다. 규격화된 공간에 억지로 꿰어맞추며 살아가는 아파트에서의 삶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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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시간이 만든 집> 아파트의 타산지석-프랑스, 중국
아파트에 중독된 우리의 현재를 제대로 점검하기 위해 2부에서는 다른 나라의 주거 현실을 살펴본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된 것은 프랑스, 프랑스 아파트 단지를 살펴보면서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우리와 다른 그들의 아파트 단지에 대한 생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는 아파트 단지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모든 생활이 완결되는 삶의 완결체로서의 공간이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그 반대다. 프랑스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입고 먹고, 생활하는 것이 해결되는 공간을 계획적으로 만들었지만 프랑스 사람들의 외면으로 결국 재개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공간이, 외부로 열린 비록 개인적 공간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전통을 거스르지 않고, 사회적 교감을 할 수 있는 '흐름' 속에 놓인 공간을 선호한다. 이런 프랑스인의 공간에 걸맞에 프랑스의 아파트들은 대도시의 삶의 공간 속에 점점이 박혀 있다. 이런 프랑스의 개방적 공간으로서의 아파트들을 돌아보며, 대단지를 조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닫혀 있는 폐쇄적인 우리의 공간 아파트를 되짚어 보게 된다. 

다음은 정반대의 사례다. 우리의 뒤를 바짝 뒤쫒아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마구 지어대고 있는 중국의 상황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돌아본다. 
엄청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거대한 단지에, 엄청난 높이로 수도 없이 지어지고 있는 중국의 아파트, 심지어 지하의 공간조차 창문도 없이 나뉘어져 도시로, 도시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람들을 수용하기에 급급하다. 비록 내부 인테리어도 없이 획일적으로 분양되는 아파트지만, 보다 편리한 공간을 위해 그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중국인들의 선택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3부-우리는 왜 아파트에 사는가?>후회없는 선택? 하지만 행복한가요? 
실제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외국의 아파트들을 살펴본 다큐는 3부에 와서 비로소 본연의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왜 아파트에 사는 것일까? 그리고 질문을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100명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게 한다. 

아이와 어른들이 그린 100장의 살고싶은 집의 그림. 백철수 서울 시립대 건축학과 교수,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그리고 장영철, 노은주 건축가 등은 그 그림 속에 담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본심을 헤아려 본다. 

놀랍게도 100장의 그림들을 그렸지만 아이들이 창의적 생각을 선보인 것과 달리, 어른들은 여전히 초등학교 수준의 그림 실력을 보임으로써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간적 퇴행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00장의 그림들은 각자 서로 다른 생각들이 펼쳐져 있지만 묘하게도 공통의 생각들을 담고 있다. 하나같이 창문을 커다랗게 그린 사람들의 그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면을 향하는 전면창으로 뒤덮인 아파트 군에도 불구하고, 창문 너머로 앞집만을 바라보며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개방감의 절박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어른이든 아이든 1/4이상이 빼놓지 않은 초록 공간, 그리고 애완 동물에서 아파트에서는 쉽게 경험하지 못한 동물이나 자연과의 정서적 교류의 간절함도 엿볼 수 있다. 거기에 아버지나 아이들이 한껏 상상력을 발산시킨 개인적 공간에서는 함께 하면서 보호받지 못한 개인들의 아쉬움 또한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그림들을 통해 자신들의 닫혀진 소망을 호소함에도 막상 언제까지 아파트에 살 꺼냐는 질문에, 쉽게 아파트 밖으로 나서질 못한다. 편리함때문에, 교육 때문에, 친구들 때문에, 그림 속 이상적 공간은 먼 미래의 것이 된다. 심지어, cctv를 그림 속에 그려넣은 아이들에게 아파트 밖 사회는 위험한 공간이요, 그래도 아파트는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 어느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대답만으로도 그의 삶의 상태를 단박에 읽어 낼 수 있는 우리 사회, 사람들은 서로의 삶의 수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아파트에 살면서 서로를 비교하며 보다 나아보이는 삶을 위해 전쟁을 치루듯 살아간다는 것이, 100장의 그림은 분석한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또한 전세계인들과 비교해 유난히 높은 한국인들의 속성, '고립불안'에서도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아파트라는 닫혀진 거대 집단이 주는 동질적 느낌, 안심이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 대한민국 주거 형태 1위의 아파트, 그것은 대한민국의 모순과 갈망, 그리고 결핍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김경일 교수는 후회를 덜하게 만들어 주는 공간 아파트, 하지만 후회와 만족은 별개의 것이라며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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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 그리고 전상인씨의 <아파트에 미치다-아파트의 주거 사회학] 등 최근 출간되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책들은 아파트를 통해 한국인들의 욕망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데 공을 들인다. 그 책들 속에 아파트는 계급과 계층 모순의 첨병처럼 우리 사회에 우뚝 서있다. 물질적 욕망의 결집체요, 사회적 모순의 극단적 집약체이다. 그에 비해, <다큐프라임- 아파트 중독>은 중독된 현실을 점검하되, 보다 상징적이다. 한국인의 욕망은 분석하되, 언제나 그렇듯이, 그 계급적 욕구는 희석되어 전달된다. 그 보다는 심리적 정체와 욕망의 퇴행에 집중한다. 아파트를 통해 드러나는 숨길 수 없는 계층 상승의 욕구는 막연한 중산층의 집단적 욕구로 무마된다. 그리고 이미 한국 주거 형태의 과반수를 넘어간 그 집단 전체의 닫혀진 공간으로의 퇴행적 욕구가 담은 상징에 치중한다. 하지만 뭉뚱그려 등장한 아파트 공화국 현실은, 그럼에도 그 퇴행과 욕구의 적체가 적나라하다. 
by meditator 2015. 3. 29. 19:11

<나쁜 녀석들>이 종영한 토요일 밤 11시 OCN, 새로운 장르물이 한편 찾아왔다. 뱀파이어 형사에서, 법의학자, 그리고 범죄자들로 이루어진 범죄해결집단으로 이어진 장르물은 이제 '실종'이라는 소재를 내건 또 한 편의 특화된 장르물을 가지고 등장한다. 




실종의 서막
첫 회, 외딴 허름한 폐공장 경찰차 한 대가 그 앞에 선다. 앳된 경찰 한 명이 공장에 들어서고, 그의 눈길을 끈 핏자국이 군데군데 있는 비닐 장막, 그가 장막 속으로 들어서고, 마치 풍선더미처럼 공중을 가득 채운 링거를 온 몸 곳곳에 주입받은 시신이 있다. 시신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다가선 경찰, 문득 시신인듯한 사내의 눈이 경찰과 마주친다. 당연히 비명을 지르고 혼비백산하는 경찰, 카메라는 그 장면을 비닐 장막 바깥에서 냉정한 듯 비추고. 

마치 공포물의 한 장면처럼 시작된 이 드라마의 서막은 이제부터 펼쳐질 숱한 살인의 서막에 불과하다. 존속 살해 혐의로 살인죄로 복역중인 죄수 이정수(강하늘 분)가 퍼즐처럼 풀어내는 힌트에 전 FBI 길수현(김강우 분)과, 실종 전문 베테랑 형사 오대영이 사건을 쫓는다. 하지만 추적은 간발의 차이로 4분이 늦어 범인을 죽게 만들거나, 이미 자살을 한 사람이거나, 심지어 15년 전에 죽은 사람이다. 단 1회만에 네 명이 죽어나간, 하지만 감옥 안의 살인자는 말한다. 이제부터 본 게임이 시작된 거라고. 



<특수 사건 전담반 TEN>의 아쉬움을 
<실종 느와르 M>은 <조선 과학 수사대 별순검>에서 부터, <특수 사건 전담반 TEN>까지 수사 드라마를 만들어 온 이승영 PD의 새로운 작품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여지훈(주상욱 분) 팀장에 백독사(김상호 분) 형사, 그리고 프로파일러 남예리(조안 분)에, 톡톡튀는 감초 박민호(최우식 분)까지 서로 절절하면서도, 의심을 거둘 수 없었던 미묘한 팀웍과 엇박자의 이중주를 절묘하게 선사했던 시리즈 <TEN>의 세번 째 시리즈를 고대하는 팬들의 마음이 무색하게 이승영 PD의 새 작품은 실종을 다룬 <실종 느와르 M>이다. 
하지만 <TEN>의 애청자들이 아쉬울 것은 없다. 여지훈 팀장도, 백도식 형사도, 남예리 프로파일러도, 박민호 형사도 없지만, <TEN>을 가득 메웠던 기괴한듯, 사람을 빠려들게 만드는 사연깊은 사건들의 파노라마는 <실종 느와르 M>에서도 손색없이 펼쳐진다. 
천장을 가득 메운 링거 병으로 최소한의 수액을 공급하며 형사들이 현장을 들이 닥치기 전까지 생명을 보전하는 기괴한 연쇄 살인, 범인이 던져주는 정보에 목을 매달아야 하는 형사들의 절박한 심리, 그리고 그 근원을 추적하여 펼쳐지는 미처 경찰의 수사력이 미치지 못한 곳에서 벌어진 비인간적인 범죄들. 법의 행간에 숨겨진 인간사의 비극이 첫 회에도 불구하고 손색없이 펼쳐진다. 


물론 그래서 아쉽기도 하다. 이미 <나쁜 녀석들>에서도 등장한 바 있는 핏자국이 군데군데 드리워진 비닐 장막은 이제 OCN 수사물의 클리셰처럼 느껴진다. 사형 선고를 앞둔 범인이 던져준 정보를 찾아가는 설정 역시 어디선가 본 듯하다. 심지어, 범인이 던져준 과거의 인물 강순영을 찾아다니며 오대영 형사는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지만, OCN의 수사물을 좀 본 시청자라면 벌써 눈치빠르게 기괴하게 등장한 사건으로 숨진 인물들과, 강순영 사이에 어떤 악연의 고리가 존재함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15년만에 유골로 나타난 강순영과 링버병을 줄줄이 드리운 채 죽어간, 혹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장의 풋풋한 고등학교 시절 사진으로 등장한 피해자들의 인연으로 마무리된 서막은 역시나 흥미진진하다. 거기에 이제 시작이라는 이정수의 한 마디는, 알고서도 다시 한번 속아주고 싶은 수사물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아직은 첫 술
<실종 느와르 M>의 첫 회가 새로운 신선함보다, <TEN>의 잔향으로 그득한 것은, <TEN>이 첫 회부터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분명하게 제시하며 극을 시작한 것과 달리, 아직은 전직 FBI요원인 길수현도, 7년 실종 베테랑 형사 오대영도 그 캐릭터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인 탓도 크다. 물론, 그저 김강우, 박휘순 두 사람을 한 화면에 본다는 것만으로도 만족되는 지점은 있지만, 그런 배우가 주는 기본적인 행복감과 별개로, 시리즈로서 <실종 느와르 M>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길수현과 오대영이 기존 수사물의 캐릭터와 별개로 흡인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또한 프로파일러로서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 남예리의 매력을 진서준 역의 조보아와, 강주영 역의 박소현이 차별성을 갖고 넘어서야 하는 것 역시 과제다. 
첫 회 왜 현직도 아니고, 전직 FBI요원인 자신을 택했냐는 질문에 이정수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않았듯이, 그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남겨진 <실종 느와르 M>의 과제이자, 숨겨진 미션이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5. 3. 29. 15:02

jtbc의 금토 드라마 <하녀들>이 3월 28일 4.725(전국 유료가구 기준)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거두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첫 회가 방영된 이후 세트장 화재로 인해 사람이 죽는 화마를 겪는 등 순조롭지 않은 출발에 무색하게 잘 마무리된 것이다. 심지어 이 시청률은 동시간대 1~3%를 오가는 종편 시청률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편은 물론, 수치상으로만 놓고보면 공중파 sbs의 드라마와 kbs2의 시사 다큐보다도 높은 시청률이다.




어느 사극에서도 다루지 않은 이야기 
무엇보다 이처럼 <하녀들>이 종편이라는 제약을 넘어 대중적 인기를 거둔데에는 그간 어느 사극에서도 다루지 않은 '하녀'라는 소재를 도입하고, 그것을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풀어나간 점이 크다. 
그간 고려 말 조선 초를 다룬 사극은 많았다. 하지만 그 여말 선초를 다룬 사극들은 대부분, 역사적 격동기를 산 정치적 인물들에 촛점을 맞추어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풀어내는데 집중했다. 물론 <하녀들> 역시 여말선초의 정치적 격동기를 다룬다. 극중 배경이 된 시대는 아버지 이성계가 왕이 된 아들 이방원을 뒤로 하고 함흥으로 떠나버린 역사적 시점이다. 드라마는 이런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 뒤로 한 발 더 들어선다. 조선의 왕권조차도 채 정립되지 않은 시절, 당연히 고려 왕조의 잔당은 고려 왕조의 부흥을 꽤한다. 극중 그 부흥세력은 호판 김치권(김갑수 분)을 중심으로 한 '만월당'이라는 비밀 조직이다. 만월당은 미래의 반란을 도모하기 위해 이방원의 서자 무명(오지호 분)을 거둬 자기 아비의 목에 칼을 겨눌 수 있는 '살수'로 키웠고, 중앙 정계에서 유리한 위치에 놓인 호판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국인엽(정유미 분)의 아버지 국유를 '거열'형으로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이렇게 만월당이 고려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벌인 갖가지 정치적 책략 및 음모들로 인해 <하녀들>의 주인공 남녀들의 운명은 격동에 휘말리게 된다. 

이렇게 한편에서 여말 선초의 어수선한 정치적 상황을 드라마의 씨줄로 삼았다면 또 한편에서는 그런 시국과 상관없이, 신분제 사회를 살아가는 노비들의 삶을 날줄로 삼아 드라마는 풀려 나간다. 2011년 방영된 <공주의 남자>처럼 정치적 격변기에 신분적 격변을 겪는 정치적 인물들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소재로 이용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양반가의 안방과 대청마루를 넘어서지 못했었다. 그러던 것을 <하녀들>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노비' 신분으로 격하된 인엽의 삶을 중심에 놓으면서, 그녀를 둘러싼 하녀들, 노비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드라마의 중심으로 끌어온다. 그래서 드라마는 안방과 대청마루와 기생집을 넘어, 노비들의 삶의 공간인 부엌과, 침방, 창고격인 지하 동굴, 그리고 그네들이 오고가는 양반댁의 방과 방사이의 복도를 중요한 드라마가 풀어지는 장소로 등장시킨다. 공간만이 아니다. 이미 인엽이가 노비가 되기 이전부터 병판 댁 노비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무명을 중심으로 세도가 병판의 그 위세만큼이나 세를 보이는 수많은 하인들의 삶이 퍼레이드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희로애락은 노비가 된 인엽의 굴곡진 삶에 풍성함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가 외면한 역사 노비들의 삶에 함께 웃고 울게 만들었다. 이런 기존 사극이 다루지 않았던 소재적 신선함이야말로 <하녀들>이 이룬 가장 큰 성취다. 



로맨스 사극으로서의 아쉬움
하지만 이런 소재적 개발과 별개로, 로맨스 사극으로서 <하녀들>이 유종의 미를 거두었는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무남독녀 외동딸로서 아비의 억울한 죽음이후 노비로 전락되었고,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아비의 신원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체적 여성상 인엽을 드라마는 그려가고자 하였다. 또한 언제나 누군가의 손에 떠받들어지기만 했던 꽃같던 처자가 노비가 되어 미처 들여다 보지 않았던 주변인들의 삶에 공감하는 자아 확장의 서사 역시 <하녀들>의 미덕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적 의도는 원작 소설의 완성도와 별개로 사극치고는 그리 길지도 않은 20부의 시간동안 롤러코스터를 타며 주인공의 캐릭터를 변조시켰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꿋꿋하던 여주인공은, 하지만 '로맨스 사극'이 무색하게 마지막 회에 이르기까지 과연 아비의 신원 외에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는지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때로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옛 정인 은기를, 혹은 병판댁 노비장이자, 만월당의 살수, 그리고 왕의 서자이기도 한 무명을 이용하는 '어장 관리녀'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런 '어장 관리녀' 인엽의 손에 두 남자는 하염없이 놀아난다. 

여성이 주체적 인물로 그려지는 '로맨스 사극'의 가장 큰 병폐는 남자 주인공들이 객관적으로 입지를 가진 주요한 캐릭터임에도 언제나 그 캐릭터의 효용을 여자 주인공을 위해서만 써먹는다는 것이다. <하녀들> 역시 마찬가지다. 호판의 외아들 은기(김동욱 분)는 때론 애절하게, 때론 비겁하게, 심지어는 파렴치하게 변신하지만, 그것들이 여전한 고려의 충신 아비의 실체를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사랑하는 한 여인을 잃은 상실감을 넘어서지 못한다. 
무명으로 가면 더 아쉽다. 왕의 숨겨진 아들임에도 아비의 목에 칼을 겨누는 살수로 길러져 노비로 살아온 그는, 마지막 회 자신의 심정조차 '인엽'의 입을 빌어 말하게 되는 수모를 겪는다. 실제 후에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에게 조차 지적 감화를 준 인물로 알려진 경녕군이 무영의 실존 인물이지만, 드라마 속 무명은 마지막까지 여자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자를 찾아 떠도는 일면적 캐릭터로 마무리된다. 아니 그것조차도 로맨스 사극이니 순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은기나, 무명의 순정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정말 은엽이 사랑한 사람이 누군지 불분명하다는 것이 '로맨스 사극'으로서 <하녀들>의 치명적 단점이다. 자신때문에 칼을 맞은 은기를 부여잡고 울때는 은기를 여전히 못잊는 거 같다가, 무명때문에 사라질 때는 무명을 간절하게 사랑한 거 같은 인엽, 아비를 신원하겠다는 소망 외에 드라마에서 그녀의 심정이 간절하게 보여진 것은 희박하다. 


물론 로맨스 사극뿐 아니라, 애초에 미덕으로 꼽은 새로운 사극으로서의 <하녀들> 역시 로맨스 사극이라는 장르에 갇혀 여말 선초의 고려 부흥 운동도, 노비들의 삶도 단편적 양념으로만 쓰인 점 역시 <하녀들>의 또 다른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매주 혹시나 하다, 그럼 그렇지 하고 주저앉아 버리면서도, 다시 또 이 신선한 이야기에 채널을 고정하게 만든 <하녀들>의 신선함은 그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자체 최고 시청률로 마무리할 수 있었던 <하녀들>의 본연의 매력이다. 
by meditator 2015. 3. 29. 13:42

6,70년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노골적인 제목으로 찾아온 <불타는 청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은 진짜 청춘이 아니라, 젊음의 고개를 넘은 지 한참 되어보이는 쉰 안짝의 중년들이다. 그런데 웬걸, 막상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니, '청춘'이 뭐 별건가 싶다. 마흔 줄에서 오십 줄의 남녀들이 그 어떤 청춘들보다도 풋풋하게 젊음을 만끽하고 있다. 


<불타는 청춘>이라는 불량스러운 제목으로 부터 잡음으로 인해 폐지된 <짝>의 중년 버전인가 싶었다. 멤버의 구성원도 벌써 mc 김국진을 중심으로 남성 멤버 김동규, 이근희, 조정현, 김도균에, 여성 멤버 홍진희, 김혜선, 양금석, 강수지까지, 4:4 딱 짝짓기 프로그램의 구색을 맞췄다. 거기에 1박2일 합숙이라니, 딱 <짝>이지 않은가? 게다가 중년의 싱글, 언젠가 <짝>에서 선보인 돌싱 연예인 특집 버전인가 싶다. 비록 첫 선을 보인 <불타는 청춘>은 비록 첫 방송 4.4%(코리아 닐슨)로 동시간대 꼴찌를 면치 못했지만, 그간 여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보이지 못한 신선한 '썸'의 가능성을 선보였다. 

각자 여행 가방을 끌고 섬진강 가 외딴 집을 찾아드는 것은 예의 <짝>과 비슷했다. 이미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선보였던 프로그램에서 함께 했던 멤버들은 반가이 인사를 나누었고, 그렇지 못한 새로운 멤버들에게는 통성명과 함께 서열을 정하느라 실랑이를 벌이며 중년의 첫 인사는 마무리되었다. 이후의 여정은 길을 떠나 함께 하루를 보내는 모든 여행 예능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함께 밥을 해먹고, 장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거나, 함께 놀이를 즐기고. 이제는 레파토리처럼 된 여행 예능의 정석들을 <불타는 청춘> 역시 무난하게 따른다. 



<불타는 청춘>의 차별성은 개성강한 출연자들로 부터
그 무난한 여정에서 방점을 찍는 것은, 그리고 <불타는 청춘>이 여느 여행 프로그램이나, 중년 예능들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결국 등장인물들이다. 
한때 날리던 발라더로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여준 조정현은 그 얌전하던 첫 인상은 아랑곳없이, 네일 케어를 받고, 주름 관리를 위해 보톡스를 마다하지 않는 솔직함으로 좌중을 놀래키는가 싶더니, 여전히 '발라더'의 면모를 잃지 않은 친절한 매너로 그의 이미지를 이어간다. 
비록 네일 케어도 주름 관리도 하지 않지만 조정현보다 더 여성적인 면모를 보인 멤버는 그룹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이다. 가죽 바지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미륵의 미소를 잃지 않는 그는 이미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썸'을 타기 시작한 양금석바라기로 심지어 분홍 땡땡이 옷까지 감수하는 순수한 설레임을 보인다. 
그렇게 섬세한 감수성의 면모를 보인 남성 멤버의 반대편에 '남성성'을 강조하면 어필하는 다른 멤버들이 있다. 끝내 자신의 나이를 서른 여덟이라 우기던 김동규는 김국진과 장작 패기를 겨루며 그의 남성성을 과시한다. 김동규와 장작 패기에서 부터, 마른 장작같다는 제작진의 자막과 달리 전투의지를 불사르며 말타기에서 펄펄 나는 김국진의 면모는 새롭다.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이근희는 침을 튀겨 방향을 결정하려하며 여성 멤버들의 저격을 받지만, 그 소탈함에 따를 자는 없다. 
이런 각자 개성을 뚜렷하게 내보이며 자신을 어필해가는 남성 멤버들의 맞은 편에 아직은 수줍은 여성 멤버들이 있다. 하지만 수동적인 면모 속에서도 각자의 개성은 분명하다. 
'청담동의 마나님'으로 드라마에서는 기세가 등등하지만, <불타는 청춘>에서는 영락없는 부엌데기 콩쥐인 김혜선에, 벚꽃나무 아래서 봄기운의 취기를 한껏 돋우는 '매화가'를 불러제끼는 호탕한 양금석, 거기에 여전히 소녀같아 보이지만, 자동차 기름값을 뺄 정도로 쑥을 캐러 다닌다는 주부 강수지, 식사때마다 팩소주를 빼놓지 않은 반전 매력의 홍진희까지 각자의 개성이 분명하다. 

물론 <불타는 청춘>이라는 과격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남녀들이 '썸'을 목적으로 만남을 갖는 프로그램은 이미 jtbc <님과 함께>를 통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바 있다. 심지어 <님과 함께>에서는 가상 결혼 생활을 통해 '썸'의 경지를 넘어선 대리 만족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런 면에서 후발주자 <불타는 청춘>의 입지는 협소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불타는 청춘>은 전혀 다른 지점의 중년 청춘의 가능성을 선보이며 그 협소한 입지를 넓혀간다. 

통성명을 하고 함께 밥을 해먹을 때까지만 해도 여타의 변별력이 없던 프로그램은 뜻밖에도 새로울 것도 없는 말타기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전통 놀이를 통해 만개한다. 그 예전 함께 mt를 가서 어울리다 보면 풋풋한 로맨스가 피어나듯이, 함께 어울려 옛날에 해보던 놀이를 하는 과정에서, 마치 그들이 20대의 청춘들인 것처럼 미묘한 화학 작용이 피어오른다. 첫 번째 주자로 자신 앞에 탄 양금석이 상대편이든 상관없이 한껏 입이 찢어지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덥석 한번 안지도 못하는 김도균에, 자신도 모르게 편을 가르며 김국진을 '오빠'를 연발하며 응원하는 강수지는 <짝>과 <님과 함께>의 노골적 짝짓기에서는 맛볼 수 없는 청춘의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 이미 20대 시절 당대의 '청춘'스타였던 조정현을 보고 새삼 설레이며 함께 셀카를 찍고, 자전거를 타고 '하드'를 사러가는 김혜선은 영락없는 20대의 설레이는 청춘이다. 자신보다 몸무게가 더 나아갈 것 같은 김혜선을 태우고 벚꽃길을 질주하는 조정현에게서는 주름의 흔적대신 그저 풋풋한 청년이 느껴진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모르는 김도균을 변호하고, 그의 변신에 흐뭇해 하는 양금석에게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후배를 변호해 주는 선배 누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라디오 스타>에서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던 김국진은 그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활력을 선사하며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멋진 오빠'로 새롭게 변신한다. 



여전히 수줍게 '썸' 을 타는 중년의 청춘
<불타는 청춘>이 보인 청춘의 지점은 뜻밖에도 노골적으로 '썸'을 타기 위해 불타오르지 않는 중년의 '썸'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은근하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서며 함께 하는 지점들이, 흡사 그들이 20대이던 그 시절의 젊음을 연상케 한다. 이제는 인생의 반을 돌아온 사람들이, 인생의 반을 살아낸 노회함이나 익숙함이 아니라, 여전히 또 다른 이성 앞에서, 한없이 자신의 젊었던 그때처럼 설레이고, 감정을 어설프게 드러내는 그 지점들이, 묘하게도, 그들이 중후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느 지점에서는  '청춘'임을 공감하게 해주는 것이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평균 수명이 40세이던 인간이 이제 평균 수명 80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나이는 먹어도 나이가 들어서는 안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젊음'이 화두가 되어 가는 시대, '청춘'은 단순히 젊음이 아니라 '길고 오랜 젊음을 향한 시간의 역주행'을 대변하는 단어가 되었다. <불타는 청춘>의 가능성은 그저 중년의 싱글들을 모아 놓고 여느 프로그램에서 했던 짝짓기를 하고자 한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함께 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그들의 찬란했던 청춘 시절 못지 않은 풋풋한 청춘의 감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음을, 그래서 여전히 사랑하기에 충분한 나이임을 자연스레 증명한데 있다. 




by meditator 2015. 3. 28. 12:18

2012년 11월 28일, sm을 상대로 한 jyj의 길고 소송의 항해가 끝났다. 

2009년 7월 31일 sm의 지나친 장기 계약과 수익 분배의 불공정함을 제기하며 전속 계약 무효를 주장하며 시작되었던 jyj의 소송은 3년 4개월이라는 시간을 거쳐 양 측의 합으로 마무리되었다. 
스물 세살, 네살 때 시작된 소송이 jyj멤버들이 스물 여덟, 일곱 살이 되어서야 막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소송 중이라는 이유로 방송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멤버들은 소송이 종료된 이후에도 드라마 등 개별 활동 외에는 각종 음악 프로그램이나 예능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오죽하면 2014년 8월 7일 방영된 <썰전>에서 평론가 허지웅은 지상파 방송 출연 스케줄이 없는 jyj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소송 이후에도 암묵적으로 횡행하는 방송가의 출연 금지 카르텔에 대한 비난을 한 바 있다. 하지만 김구라 등이 언급했듯이, 각종 음악 방송과 예능 프로그램들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이른바 '방송가의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하는 한 불가피하다는 점은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한밤의 tv연예>의 박유천 그리고 김재중
하지만 2015년 봄, 꽃샘 추위를 물리치고 찾아보는 봄 볕처럼, 그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방송과 예능 프로그램에서 jyj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3월 25일 <한밤의 tv연예> 기존 8시 55분에서 새롭게 11시 15분으로 방송 시간대를 바꾸어 찾아온 <한밤의 tv연예>는 그저 달라진 시간대보다 더 달라진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바로 '한밤의 레드 카펫 코너'에서 다음 주 첫 선을 보일 <냄새를 보는 소녀>의 두 주인공 박유천, 신세경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새로 시작되는 자사의 주중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을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서 초대한 것이 무슨 놀라운일이라는 걸까?

허지웅이 sm을 볼드모트라 지칭했듯이, sm의 막강한 영향력은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서, jyj의 흔적을 지웠고, 박유천은 주중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벌써 몇 번째나 출연을 했어도,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서 제대로 된 조명을 받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출연했던 <쓰리데이즈>의 경우는 '레드 카펫'은 커녕 제작발표회에 대한 기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며, 프로그램 다음에 방영되는 <쓰리데이즈>에 대해 방송 말미 sm 소속 수영이 아닌, 윤도현의 멘트로, 다음에 <쓰리데이즈>가 방영된다는 마지못한 소개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 '블러'처리와도 같은 취급에 비하면, '레드 카펫'이라는 코너에서 단독으로 박유천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것은 장족의 발전이다. 거기에, 이날 방송 말미에는 31일 군 입대를 앞두고 마지막 콘서트를 하는 김재중의 셀프 홍보 영상까지 덧붙여 졌다. 격세지감이다. 



ebs<스페이스 공감>의 김준수
거기에 덧붙여 26일 오전 더 놀라운 기사가 등장했다. 그간 뮤지컬 무대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보이던 jyj김준수가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3월 20일 위기에 빠진 <나는 가수다>에 김준수가 제격이라는 마이데일리 이승록 기자의 제안에 이어, 텐아시아 권석정 기자의 <스페이스 공감> 무대라면 김준수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각종 제안들이 등장하고, 팬들의 눈물어린 청원이 이어진 가운데, ebs측은 김준수의 <ebs스페이스 공감> 출연을 확정지었다. 다른 두 멤버들이 방송이 막힌 드라마 등의 영역을 통해 그래도 꾸준히 팬들과 만날 기회를 얻은데 반해 오로지 음악적 영역에 집중해 왔던 김준수였기에 이번 출연은 더더욱 발전적 성과이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jyj의 방송 출연은 하지만 되돌아 보면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다음 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냄새를 보는 소녀> 박유천의 경우, 지난 해 <해무>로 각종 영화제 신인상 8관왕에 달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김재중 역시 최근 종영된 <스파이>를 통해 주연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뮤지컬계에서 김준수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매진 사태를 부르는 주연이며, 최근 솔로 앨범을 들고 일본과 아시아 각국을 순회 중이다. jyj 로서 세 사람의 입지는 한류가 주춤한 가운데도 여전히 일본은 물론,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 그 영향력을 확고하다. 이렇게, 스물 네살, 스물 세살 소송 이래로 개별적으로 혹은 그룹으로 충실하게 쌓아온 그들의 노력이 이제 서른, 스물 아홉이 된 이 봄에서야 싹을 틔우게 된 것이다. 

비록 아쉬운 첫 발자국이라도 
물론 아쉽다. <한밤의 tv 연예> 말미 셀프 홍보 동영상을 선보인 김재중의 콘서트는 31일 군입대를 앞둔 마지막 콘서트이다. 군대를 갈 즈음에야 짤막한 홍보 동영상을 내보내게 된 처지가 한편으론 안쓰럽기 까지 하다. 또한 박유천 역시 올해 군입대를 앞두고 있으며 김준수 역시 내년 입대를 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각자 개별 활동은 각자 2년 후에나, 그리고 완전체로서의 jyj의 활동은 3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야속하기까지한 새싹이기도 하다. 

또한 박유천의 <냄새를 보는 소녀>에 대한 홍보도 울며 겨자 먹기 식이기도 하다. 그 전작 <하이드 지킬, 나>가 워낙 낮은 시청률로 종영을 할 처지이니, <냄새를 보는 소녀>를 자체 제작하는 sbs측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처지이니, '침묵의 카르텔'을 무력화시킬 만 한 것이다. 또한 과연 이런 관심이 해프닝이 아닐지, 이후 제작발표회와 시청률 공약으로 언급한 10% 달성 이후의 다시 한번 레드카펫 출연이 성사될 지 여부도 지켜봐야 할 문제다. 김준수의 경우도 이제 겨우, 공중파가 아닌 교육 방송 출연이 성사된 정도이다. 과연 이승록 기자의 제언대로, 공중파 음악 무대에서 김준수의 공연이 성사된 이후 팡파레를 터트려도 늦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 세살, 네살의 앳된 청년들이 이제 서른 즈음의 원숙한 청년들이 되어가는 시간들을 끊임없는 노력으로 채워, 장막의 빛을 트이게 만드는 이 개화의 장면은 놓칠 수 없다. 감동의 박수를 보낸다. 
by meditator 2015. 3. 26. 13:00

tvn의 월화 드라마 <호구의 사랑>, 미혼모 도희(유이 분)와 사랑을 엮어가는 자기 자식 호구(최우식 분)에게 아빠(정원중 분)은 말한다. 

'그저 네가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랬는데....'

세상 모든 부모들의 소망을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바로 이 호구 아빠의 '평범'에 담겨있을 듯하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게 세상 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향한 '평범'한 소망이다. 
그 '평범'은 드라마 속 아버지의 말대로 그저 때되면 좋은 여자 만나서 이쁜 손주 낳아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것, 대부분은 그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평범'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드라마 <호구의 사랑>부터 증명한다. 뜬금없이 자취방으로 아기를 안은 여자를 끌어다니더니, 이제 그 여자의 아기를 자신이 기르겠다며 난리다. 그런데 그 사랑한다는 여자의 아기는 내 자식의 아이가 아니다. 또 다른 자식은 심지어 여자를 만나 결혼은 커녕,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까 어려서 부터 독선생 붙여 길러 놨더니, 이제 와서 '게이'란다. 
아니 드라마처럼 특수한 상황만이 아니다. 명절 때 왜 다수의 젊은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평범'이라는 그물에 걸려 때맞춰 진학하고, 때맞춰 결혼하고, 때맞춰 아이를 가지지 못해 그런 거 아닐까? 그러고 보면 '평범'은 그저 부모들의 '소박한 소망'이라기 보다는 '도그마'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구비구비를 겪어온 어른 입장에서 본다면 그저 살아보니 제 때 삶이 통과의례를 순조롭게 겪어 내는 것만큼 장땡인 것이 없다 싶은 것이다. 하지만, '평범'이란 말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세상 그 어느 자식도 사실 부모가 생각하는 '소박한 평범'에 맞출 수 있는 자식은 없다. 꼭 드라마라서가 아니라,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삐죽삐죽 개성있는 삶을 살아가느라, 부모들이 생각하는 '평범'이란 잣대를 늘 벗어나곤 한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서로 다른 대처 방식
그렇다면 이렇게 어른들이 만든 도그마 '평범'을 벗어나는 자식들에 대한 부모의 자세는 어떨까? 14회 <호구의 사랑>은 숨겨져 왔던 젊은이들의 사연이 드러나면서 그에 대한 어른들의 대처가 드러난다. 

우선 호구네 집, 호구가 데려 온 사랑한다는 여자의 아이가 호구의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호구의 아빠, 엄마 두 사람의 대응은 남다르다. 14회에서도 나왔듯이 만화책을 보며 아직도 아이처럼 낄낄 거리거나, 훌쩍거리는 소녀같은 아빠, 그에 반해 술을 마시며 대놓고 아들을 대상으로 음담패설을 하는 걸 즐겨하는 웬만한 남자 저리가라할 엄마, 그들은 각자의 캐릭터답게 그 사실을 알게된 후 엄마의 무릎에 파묻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호구를 만난 두 사람의 반응도 다르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온 호구를 만나 아빠, 호구 대신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며 아빠는 말한다. '평범하게 살기를 바랬지만, 네가 선택한 사랑이라면 네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옥상에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고 있다 호구를 만난 엄마 역시 다르지 않다. 네가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밀고나가라고 말한다. 담배를 다시 필 정도로 걱정이 많은 엄마에게 미안해하는 호구에게 엄마는 말한다. 그건 엄마 몫이라고. 



콩가루같던 호구네 집 어른들이 보인 반응과 다르게 '게이'라는 변강철(임슬옹 분)에 대한 어른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도희와 그 아기가 자기 아들의 아이라 생각하며 집으로 찾아온 엄마, 뜻밖에도 그 아이는 남의 아이이며, 심지어 자기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심리학 교수라는 공식적 직함이 무색하게 아들의 뺨을 때리며 내가 이러려고 너에게 돈을 퍼부으며 온갖 좋다는 교육을 다 시켰냐고 힐난한다. 병원 원장인 아버지도 다르지 않다. 다짜고짜 쳐들어 와 나머지 뺨을 때리며 니가 게이인 게 소문이라도 나면 남부끄러워서 어떻게 하냐고 난리를 친다. 그러니 아들의 반발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 아들은 대든다. 아버지는 아버지 입장이 곤란할 것만 생각하고, 지금 아들인 자기 자신이 얼마나 힘들어 할 것인지는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고. 

내리 사랑이라는 이름의 오만함에 대하여 
물론 변강철의 아버지와 엄마도 돌아가는 차 속에서 서로 다른 뺨을 때린 것을 위로하는 것을 보면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의 깊이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자식을 해온답시고 해왔던 온갖 교육이 아들 변강철을 동성의 친구 하나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그래서 자신을 '게이'로 까지 오해하는 사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변강철의 부모는 아들이 벌인 해프닝 앞에, 아들의 걱정 대신, 자신들의 난처함을 앞세운다. 특별한 아들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교육 프로젝트는 결국 '평범'하지도 못한 아들로 귀결되고, 그런 결과에서 당장 나온 부모의 즉자적 반응은 내 체면이요, 내 돈인, 가장 속물적인 자신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말로는 자식을 위한다 했지만, 결국 그 자식을 위하는 '속셈'은 그럴 듯한 '부모'의 연장이요 확장이었음을 변강철의 부모는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분리되지 않은 부모들의 왜곡된 사랑에, 변강철은 뒤늦게 '사춘기 청소년'처럼 반항한다. 

그에 반해 늘 철딱서니 없던 호구의 부모가 보인 모습은 감동적이다. 자신들은 뒤돌아 통곡하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필 망정, 독자적 삶으로서 아들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 애쓴다. 부모로써 받아야 할 고통은 자신들의 몫이요, 그것과 아들의 인생은 별게라는 평범하지만 엄정한 진리에 욕심부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부모들이 호구의 인생을 존중할 수록, 호구에게 부모의 무게는 무거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사랑을 어렵게라도 응원하고, 선택을 존중하는 부모의 '평범한 삶'에 대한 바램을 더 외면할 수 없다. 

14회 <호구의 사랑> 결국은 밝혀지고 마는 도희의 아들 금동이의 친부 사건 사이사이로, 자식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에 고뇌하는 부모들의 태도는 주목할 만 하다. 가진 것과 배운 것은 부모의 이기심과, 부모로서의 성숙에 무관함을 다시 한번 드라마는 증명해 주고 있다. 아니, 가진 것과 배운 것이 많으면 많을 수록, 자식과의 분리는 더 어려운 것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치 극과 극의 만남처럼 자식에 집착하면 할수록 자식은 변강철처럼 튕겨져 나가고, 자식을 존중해주면 호구처럼 알아서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리려 애쓴다. 자식은 그저 나의 '다시'가 아니라, 또 철이 있건 없건, 제 아무리 호구이건 한 사람의 살아가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극과 극의 부모들의 반응을 통해 <호구의 사랑>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평범한 삶'? 하루 아침에 자기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입장에선 그저 내 자식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여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다. '참척(慘慽)'의 슬픔이 어언 1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 <호구의 사랑>을 보며, 오만한 부모의 욕심을 되돌아 볼 일이다. 

by meditator 2015. 3. 25. 11:52

3월 23일 방영된 <힐링 캠프> 말미 김제동은 말한다. 

'말을 하는 것은 쉽지만, 말을 들어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말을 하기보다 말을 들어주는 mc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의 게스트는 바로 다름아닌 여러분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맘껏 풀어놓으셨나요?'
그리고 그런 김제동의 반문에, 그 자리를 꽉 매운 500명의 게스트들은 환한 얼굴로 입을 모아 '네!'라고 소리를 높인다. 
게시판에서 게스트가 와도 듣기만 한다고 '밥값 좀 하라'고 욕을 먹던 김제동, 봄맞이 특집을 맞이하여 그는 여전히 자신이 말을 하기보다는 500명 게스트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그의 방식대로 500명의 게스트들과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그에 앞서 3월23일 <jtbc뉴스> 지난 주말 일어난 강화도 캠핑장 실화 사건을 다룬 손석희 앵커는 사건이 나면 말뿐, 언제 그랬냐 싶게 후속조치가 없는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만이 아니다. 정부가 그렇게 전수 조사를 합네 라고 시끌벅적하게 여론을 타다 꼬리를 내리는게 가능한 것은, 갖가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들에 대해 이슈가 될 때마다 냄비처럼 한껏 비난의 소리를 높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는 '여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수록 쉽게 '망각의 늪'에 빠지게 되는 여론은, 바로 각자 자기 자신이 벼랑에 선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남의 문제'에 진지하게 오래 숙고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요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게 나 자신도 너무나 살기 힘든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을 게스트로 모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이 늘 누군가를 게스트로 모셔 그의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을 '힐링'하고자 했던 <힐림캠프>의 봄맞이 특집이었다. 



500명 게스트들의 이야기만으로도 '힐링'
그리고 이런 <힐링 캠프>의 봄잡이 특집은 시청률만 놓고 보았을 때도, 그 전회 3.9%에서 5.4%로 상승치(닐슨 코리아)를 보이듯이 성공적이었다. 
23일 방영 말미 엄마를 따라온 듯한 12살 꼬마에게 김제동은 묻는다. 기억에 남는 것이 있냐고. 그러자 꼬마는 '알타리 사건'을 말한다.  김제동의 말처럼 2시간 반 떠들은 김제동 대신에, 알타리 김치를 둔 부부의 신경전을 구구절절 읊은 중년의 여성의 이야기를 더 기억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이날의 김제동 표 봄맞이 특집을 가장 단적으로 잘 설명한 것이기도 하다. 
33년을 산 남편이 아직도 슈퍼 갑질을 한다는 주부, 하지만 주부는 일어서서 가장 단적인 예 '알타리 사건'을 설명해 가면서, 피식피식 웃기 시작한다. 김제동의 말대로 막상 말을 해보니, 남편 못지 않게 자신도 '갑'이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제동 식의 토크 콘서트는 거의 이런 식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렵다는 소녀, 하지만 김제동은 그런 소녀의 생각을 굳이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누구나 다 그렇다고 끄덕여 준다. 오히려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면서 살아남은 것인 '인류'였음을, 그것이 인간만의 타고난 생존 본능이었음을 덧붙여 설명해 줄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누구나 다 그렇다는 김제동의 덧붙임에, 그리고 그런 김제동의 말에 함께 고개를 끄덕여 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다른 499명의 게스트들 덕분에 그 말을 한 소녀의 두려움은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고 만다.

살기 힘들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다 공감할 취준생, 하지만 그래도 대학을 간 그는 고3 앞에 고개를 수그리고 만다. 하지만 고3 역시 고3 엄마 앞에서는 깨갱이다. 하지만 어디 웬걸 기세도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던 고3 엄마는 '나라를 구한다'는 중2 엄마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자신의 집을 찾아 '현피'를 뜨러 온 7명의 아이들을 맞딱뜨려야 했던 중2 엄마의 이야기를 웃으며 듣는 사람들, 거기서 도달한 것은 '나라를 구하는' 중2를 키우는 어려움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가장 살기 힘든 것이 아니라는, 따지고 보면 누구나 사는 것이 힘들다는 평범한 결론이다. 

23일 방영된 <힐링 캠프>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바로 길에만 나서면 사람들이 자신을 공격할 거 같아서 두렵다는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소년이 자신의 속사정을 담담하게 펼쳐보이는 그 순간 벌써 옆에 앉은 엄마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병원에 가도 딱히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소년을 얼러 그곳까지 와본 엄마의 심정이 짚어진다. 하지만 김제동은 담담하게 역시나 그럴 수 있다고 두둔해 준다. 그러고 반문한다. 여기에 나, 김제동, 그리고 함께 하는 499명의 사람들은 무섭지 않냐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무섭지 않다는 말에, 김제동은 499명의 관객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모두 목을 모아, 소년에게 말한다. 만나서 반갑다고. 소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미소를 본 엄마의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그런 소년과 엄마를 본 499명의 게스트의 얼굴에는 더 밝은 미소가 흐른다. 작은 기적의 순간이다. 

프로그램 시작에서 밝혔듯이 전회, 전석 매진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 이미 <jtbc 김제동의 톡투유, 걱정말이요 그대>에서 보여졌던 그 방식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방식은 다르지 않을 지언정, 달라진 게스트들의 다른 삶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공감'은 언제 들어도 함께 하는 시청자들조차, '진짜 힐링'이 되게 하는 시간이 된다. 얼굴이 못생겼다고 얼굴을 한껏 가리는 귀염성 있는 십대 소녀의 고민을 듣는 순간 벌써 삶의 고민으로 짖눌렸던 우리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자신만이 벼랑에 섰다고 좌절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함께 '봄소풍'을 나온 기분에 빠지게 되어, 옆의 사람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막상 나누고 보면 별거 아닌, 아닌 별 거라도 함께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작은 오솔길이라도 보이기 시작하는 그 시간이, 500명의 게스트가 아니더라도 '감동'이 되어 다가온다. 
by meditator 2015. 3. 24. 13:02

<속사정 쌀롱>이 21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패널인 장동민의 말대로,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피고 지는 것이 방송가의 예사로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폐지가 되는 것같은 <속사정 쌀롱>의 종영은 쉬이 수긍이 가지 않는다. 


공감할 수 없는 종영
평균 시청률 1.743(닐슨 코리아 기준), 이것이 폐지의 이유였을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가 평균 시청률 4%의 고지를 넘었으니, 일요일 밤 11시대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1%대를 왔다갔다 하는 시청률이 영 흡족치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치자면, 스테디셀러인 <마녀 사냥>의 평균 1.94%의 시청률도 <속사정 쌀롱>에 비하면 그리 높다 말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아니, 시청률로 폐지 수순을 따지자면 <내 연애를 부탁해>의 평균 0.977%가 앞장을 서야 하는게 맞다. 솔직히 일요일 밤 11시대 자체가 그리 시청률이 높게 나올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공중파 프로그램들도 3,4%가 나오는, <개그 콘서트>가 끝나면 내일의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그 시간대인 것이다. 

이제 와 새삼스레 진중권 등 비평적 논객의 출연이 문제가 되었을까? 마지막 회 윤종신이 밝혔던 대로 진중권을 패널 중 한 사람으로 모시기(?) 위해 제작진은 작전을 짜기도 했다지만, 당대 최고의 '키보드 워리어'로 평가받는 진중권은 초반 몇 번의 '설전'을 제외하고는 예의 '워리어'로서의 면모의 수위를 조절하는데 고심하는 듯했다. 오히려 '논객' 진중권보다는, 장동민이 말끝마다 걸고 넘어지듯, '논객'의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교수 진중권과, 그에 못지 않은 인간 진중권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실했다. 심지어 '구름빵' ost,를 직접 부를 정도로, 에니메이션에 푹 빠지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소박한 진중권에 이르면 '논객'이란 표현이 낯설을 정도이다. 오히려 '논객' 진중권으로서 그의 날선 분석이 초반에 비해 연성화된 <속사정 쌀롱>에서 빛을 발할 기회를 잃는게 아닌가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이제 와 새삼스레 '폐지'를 맞고 보니 더 뜬금없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속사정 쌀롱의 지난 노력
'심리'가 트렌드 이슈로 등장하면서 함께 등장한 신개념 예능 토크쇼 <속사정 쌀롱>, 초반 '이 중의 실험실'을 통해 각종 심리학 실험을 에피소드로 내보내면서 보다 아카데믹하게 접근하던 프로그램이 중반에 들어서면서, '도대체 저 사람은 왜 그러는 걸까'처럼 실제 사례등을 통해 일상의 심리에 천착하고자 했다. 또한 <썰전>의 포맷을 빌려와 그 주에 주목할 만한 심리적 한 장면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세태에 대한 심리적 해석을 나누고자 하였다. 

공중파의 신변잡기식 예능과, 종편의 정치색 짙은 혹은 중장년층에 포맷을 맞춘 노골적인 지향의 각종 프로그램에 맞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웃고 떠드는 이상의 한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가지고 '심리'를 매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속사정 쌀롱>은 자주 들여다 보지 않더라도 늘 그곳에 있는 친근한 '상담실' 선생님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속사정 쌀롱>의 폐지는 그저 한 예능 프로그램의 폐지가 아니라, '심리' 등 아카데믹한 특정 포맷을 매개로 한, '긍정적이고도, 상식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극소수의 장 중 하나가 사라지는 안타까움을 앞세운다. 

굳이 시청자 게시판을 가득 매운, '그래 다음에 어떤 프로그램을 할 지 두고보자'는 원성과 아쉬움이 아니더라도, 연애 코칭 프로그램과,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외국인 예능과, 먹거리 예능이 잔존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속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속사정쌀롱>만의 사멸은 <jtbc뉴스> 등을 통해 긍정적 여론 형성에 앞장서 왔던 jtbc의 결정이기에 더욱 아쉽다. 또한 트렌디하거나, 화제성있거나 자극적인 이슈를 생성하지 않고서는 스테디셀러가 될 수 없는 방송가의 생리가 일요일 밤 11시에도 관통하고 있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사 살다 상처입고 지진 마음을 먹방이나, 낯선 이방인들의 수다나, 가상 연애나 보며 달래라는 것인지. 

단 첫 회를 함께 하고 세상을 달리한 신해철의 촌철살인을 들을 수 있어 늘 한 구석이 허전했지만, <속사정 쌀롱>을 함께 한 mc진들은 여느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들과는 다른 감회를 준다. 한창 잘 나간다는 장동민도, 강남도, <속사정 쌀롱>에서는 뜨는 연예인을 넘어섰다. 진중권과 자격지심을 운운하며 장난스레 설전을 벌이지만, 그의 속깊은 면모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그저 웃기는 외국인 아이돌을 넘어, 우리가 되어가는 진지한 청년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진중권과 허지웅의 날선 설전조차 무리없이 아울러내는 윤종신의 폭넓은 조율과, 그 품 안에서 각자 자신의 또 다른 면모를 내보이는데 주저치 않은 진중권과 허지웅의 솔직한 이야기들도 따뜻했다. 유일한 여자 mc라는 성적 테두리를 넘어서 소탈하게 자신을 보여준 이현이의 예능 첫 데뷔 역시 성공적이었다. 예능이나, 토크쇼라는 상식적인 선에서 <속사정 쌀롱>을 한정짓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mc진 각자는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었고,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하며 공감할 수 있었다. 

폐지 대신 시즌2를 기대하며
윤종신은 자신의 음악을 음악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영역 속에 늘 그곳에 있는 하나의 섬이라고 표현했다. 넓고 광활한 영토는 아니지만, 뜻이 맞는 사람들이 늘 찾아주는 작지만, 늘 거기에 있는. <속사정 쌀롱>이 그런 예능의 한 섬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제 그저 한낱 욕심이 되었다. 하지만, 아쉬움을 토로하는 출연자들 사이로, 시즌2를 바라는 윤종신의 긍정적인 마음에 기대어 본다. 언젠가, 그 멤버 그대로, 시즌2의 밝은 얼굴로 돌아와, 다시 세상사에 상처받고 지쳐가는 우리의 마음을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by meditator 2015. 3. 23. 0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