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사정 쌀롱>이 21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패널인 장동민의 말대로,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피고 지는 것이 방송가의 예사로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폐지가 되는 것같은 <속사정 쌀롱>의 종영은 쉬이 수긍이 가지 않는다.
공감할 수 없는 종영
평균 시청률 1.743(닐슨 코리아 기준), 이것이 폐지의 이유였을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가 평균 시청률 4%의 고지를 넘었으니, 일요일 밤 11시대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1%대를 왔다갔다 하는 시청률이 영 흡족치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치자면, 스테디셀러인 <마녀 사냥>의 평균 1.94%의 시청률도 <속사정 쌀롱>에 비하면 그리 높다 말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아니, 시청률로 폐지 수순을 따지자면 <내 연애를 부탁해>의 평균 0.977%가 앞장을 서야 하는게 맞다. 솔직히 일요일 밤 11시대 자체가 그리 시청률이 높게 나올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공중파 프로그램들도 3,4%가 나오는, <개그 콘서트>가 끝나면 내일의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그 시간대인 것이다.
이제 와 새삼스레 진중권 등 비평적 논객의 출연이 문제가 되었을까? 마지막 회 윤종신이 밝혔던 대로 진중권을 패널 중 한 사람으로 모시기(?) 위해 제작진은 작전을 짜기도 했다지만, 당대 최고의 '키보드 워리어'로 평가받는 진중권은 초반 몇 번의 '설전'을 제외하고는 예의 '워리어'로서의 면모의 수위를 조절하는데 고심하는 듯했다. 오히려 '논객' 진중권보다는, 장동민이 말끝마다 걸고 넘어지듯, '논객'의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교수 진중권과, 그에 못지 않은 인간 진중권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실했다. 심지어 '구름빵' ost,를 직접 부를 정도로, 에니메이션에 푹 빠지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소박한 진중권에 이르면 '논객'이란 표현이 낯설을 정도이다. 오히려 '논객' 진중권으로서 그의 날선 분석이 초반에 비해 연성화된 <속사정 쌀롱>에서 빛을 발할 기회를 잃는게 아닌가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이제 와 새삼스레 '폐지'를 맞고 보니 더 뜬금없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속사정 쌀롱의 지난 노력
'심리'가 트렌드 이슈로 등장하면서 함께 등장한 신개념 예능 토크쇼 <속사정 쌀롱>, 초반 '이 중의 실험실'을 통해 각종 심리학 실험을 에피소드로 내보내면서 보다 아카데믹하게 접근하던 프로그램이 중반에 들어서면서, '도대체 저 사람은 왜 그러는 걸까'처럼 실제 사례등을 통해 일상의 심리에 천착하고자 했다. 또한 <썰전>의 포맷을 빌려와 그 주에 주목할 만한 심리적 한 장면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세태에 대한 심리적 해석을 나누고자 하였다.
공중파의 신변잡기식 예능과, 종편의 정치색 짙은 혹은 중장년층에 포맷을 맞춘 노골적인 지향의 각종 프로그램에 맞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웃고 떠드는 이상의 한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가지고 '심리'를 매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속사정 쌀롱>은 자주 들여다 보지 않더라도 늘 그곳에 있는 친근한 '상담실' 선생님같은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속사정 쌀롱>의 폐지는 그저 한 예능 프로그램의 폐지가 아니라, '심리' 등 아카데믹한 특정 포맷을 매개로 한, '긍정적이고도, 상식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극소수의 장 중 하나가 사라지는 안타까움을 앞세운다.
굳이 시청자 게시판을 가득 매운, '그래 다음에 어떤 프로그램을 할 지 두고보자'는 원성과 아쉬움이 아니더라도, 연애 코칭 프로그램과,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외국인 예능과, 먹거리 예능이 잔존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속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속사정쌀롱>만의 사멸은 <jtbc뉴스> 등을 통해 긍정적 여론 형성에 앞장서 왔던 jtbc의 결정이기에 더욱 아쉽다. 또한 트렌디하거나, 화제성있거나 자극적인 이슈를 생성하지 않고서는 스테디셀러가 될 수 없는 방송가의 생리가 일요일 밤 11시에도 관통하고 있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사 살다 상처입고 지진 마음을 먹방이나, 낯선 이방인들의 수다나, 가상 연애나 보며 달래라는 것인지.
단 첫 회를 함께 하고 세상을 달리한 신해철의 촌철살인을 들을 수 있어 늘 한 구석이 허전했지만, <속사정 쌀롱>을 함께 한 mc진들은 여느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들과는 다른 감회를 준다. 한창 잘 나간다는 장동민도, 강남도, <속사정 쌀롱>에서는 뜨는 연예인을 넘어섰다. 진중권과 자격지심을 운운하며 장난스레 설전을 벌이지만, 그의 속깊은 면모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그저 웃기는 외국인 아이돌을 넘어, 우리가 되어가는 진지한 청년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진중권과 허지웅의 날선 설전조차 무리없이 아울러내는 윤종신의 폭넓은 조율과, 그 품 안에서 각자 자신의 또 다른 면모를 내보이는데 주저치 않은 진중권과 허지웅의 솔직한 이야기들도 따뜻했다. 유일한 여자 mc라는 성적 테두리를 넘어서 소탈하게 자신을 보여준 이현이의 예능 첫 데뷔 역시 성공적이었다. 예능이나, 토크쇼라는 상식적인 선에서 <속사정 쌀롱>을 한정짓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mc진 각자는 진솔한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었고,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하며 공감할 수 있었다.
폐지 대신 시즌2를 기대하며
윤종신은 자신의 음악을 음악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영역 속에 늘 그곳에 있는 하나의 섬이라고 표현했다. 넓고 광활한 영토는 아니지만, 뜻이 맞는 사람들이 늘 찾아주는 작지만, 늘 거기에 있는. <속사정 쌀롱>이 그런 예능의 한 섬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제 그저 한낱 욕심이 되었다. 하지만, 아쉬움을 토로하는 출연자들 사이로, 시즌2를 바라는 윤종신의 긍정적인 마음에 기대어 본다. 언젠가, 그 멤버 그대로, 시즌2의 밝은 얼굴로 돌아와, 다시 세상사에 상처받고 지쳐가는 우리의 마음을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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