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tvn의 월화 드라마 <호구의 사랑>, 미혼모 도희(유이 분)와 사랑을 엮어가는 자기 자식 호구(최우식 분)에게 아빠(정원중 분)은 말한다.
'그저 네가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랬는데....'
세상 모든 부모들의 소망을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바로 이 호구 아빠의 '평범'에 담겨있을 듯하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게 세상 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향한 '평범'한 소망이다.
그 '평범'은 드라마 속 아버지의 말대로 그저 때되면 좋은 여자 만나서 이쁜 손주 낳아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것, 대부분은 그것을 말한다.
하지만 그 '평범'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드라마 <호구의 사랑>부터 증명한다. 뜬금없이 자취방으로 아기를 안은 여자를 끌어다니더니, 이제 그 여자의 아기를 자신이 기르겠다며 난리다. 그런데 그 사랑한다는 여자의 아기는 내 자식의 아이가 아니다. 또 다른 자식은 심지어 여자를 만나 결혼은 커녕,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까 어려서 부터 독선생 붙여 길러 놨더니, 이제 와서 '게이'란다.
아니 드라마처럼 특수한 상황만이 아니다. 명절 때 왜 다수의 젊은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까?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평범'이라는 그물에 걸려 때맞춰 진학하고, 때맞춰 결혼하고, 때맞춰 아이를 가지지 못해 그런 거 아닐까? 그러고 보면 '평범'은 그저 부모들의 '소박한 소망'이라기 보다는 '도그마'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구비구비를 겪어온 어른 입장에서 본다면 그저 살아보니 제 때 삶이 통과의례를 순조롭게 겪어 내는 것만큼 장땡인 것이 없다 싶은 것이다. 하지만, '평범'이란 말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세상 그 어느 자식도 사실 부모가 생각하는 '소박한 평범'에 맞출 수 있는 자식은 없다. 꼭 드라마라서가 아니라,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삐죽삐죽 개성있는 삶을 살아가느라, 부모들이 생각하는 '평범'이란 잣대를 늘 벗어나곤 한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서로 다른 대처 방식
그렇다면 이렇게 어른들이 만든 도그마 '평범'을 벗어나는 자식들에 대한 부모의 자세는 어떨까? 14회 <호구의 사랑>은 숨겨져 왔던 젊은이들의 사연이 드러나면서 그에 대한 어른들의 대처가 드러난다.
우선 호구네 집, 호구가 데려 온 사랑한다는 여자의 아이가 호구의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호구의 아빠, 엄마 두 사람의 대응은 남다르다. 14회에서도 나왔듯이 만화책을 보며 아직도 아이처럼 낄낄 거리거나, 훌쩍거리는 소녀같은 아빠, 그에 반해 술을 마시며 대놓고 아들을 대상으로 음담패설을 하는 걸 즐겨하는 웬만한 남자 저리가라할 엄마, 그들은 각자의 캐릭터답게 그 사실을 알게된 후 엄마의 무릎에 파묻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호구를 만난 두 사람의 반응도 다르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온 호구를 만나 아빠, 호구 대신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며 아빠는 말한다. '평범하게 살기를 바랬지만, 네가 선택한 사랑이라면 네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옥상에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고 있다 호구를 만난 엄마 역시 다르지 않다. 네가 선택했다면 그 선택을 밀고나가라고 말한다. 담배를 다시 필 정도로 걱정이 많은 엄마에게 미안해하는 호구에게 엄마는 말한다. 그건 엄마 몫이라고.
콩가루같던 호구네 집 어른들이 보인 반응과 다르게 '게이'라는 변강철(임슬옹 분)에 대한 어른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도희와 그 아기가 자기 아들의 아이라 생각하며 집으로 찾아온 엄마, 뜻밖에도 그 아이는 남의 아이이며, 심지어 자기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심리학 교수라는 공식적 직함이 무색하게 아들의 뺨을 때리며 내가 이러려고 너에게 돈을 퍼부으며 온갖 좋다는 교육을 다 시켰냐고 힐난한다. 병원 원장인 아버지도 다르지 않다. 다짜고짜 쳐들어 와 나머지 뺨을 때리며 니가 게이인 게 소문이라도 나면 남부끄러워서 어떻게 하냐고 난리를 친다. 그러니 아들의 반발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 아들은 대든다. 아버지는 아버지 입장이 곤란할 것만 생각하고, 지금 아들인 자기 자신이 얼마나 힘들어 할 것인지는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고.
내리 사랑이라는 이름의 오만함에 대하여
물론 변강철의 아버지와 엄마도 돌아가는 차 속에서 서로 다른 뺨을 때린 것을 위로하는 것을 보면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의 깊이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자식을 해온답시고 해왔던 온갖 교육이 아들 변강철을 동성의 친구 하나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그래서 자신을 '게이'로 까지 오해하는 사태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변강철의 부모는 아들이 벌인 해프닝 앞에, 아들의 걱정 대신, 자신들의 난처함을 앞세운다. 특별한 아들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교육 프로젝트는 결국 '평범'하지도 못한 아들로 귀결되고, 그런 결과에서 당장 나온 부모의 즉자적 반응은 내 체면이요, 내 돈인, 가장 속물적인 자신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말로는 자식을 위한다 했지만, 결국 그 자식을 위하는 '속셈'은 그럴 듯한 '부모'의 연장이요 확장이었음을 변강철의 부모는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분리되지 않은 부모들의 왜곡된 사랑에, 변강철은 뒤늦게 '사춘기 청소년'처럼 반항한다.
그에 반해 늘 철딱서니 없던 호구의 부모가 보인 모습은 감동적이다. 자신들은 뒤돌아 통곡하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필 망정, 독자적 삶으로서 아들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 애쓴다. 부모로써 받아야 할 고통은 자신들의 몫이요, 그것과 아들의 인생은 별게라는 평범하지만 엄정한 진리에 욕심부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부모들이 호구의 인생을 존중할 수록, 호구에게 부모의 무게는 무거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사랑을 어렵게라도 응원하고, 선택을 존중하는 부모의 '평범한 삶'에 대한 바램을 더 외면할 수 없다.
14회 <호구의 사랑> 결국은 밝혀지고 마는 도희의 아들 금동이의 친부 사건 사이사이로, 자식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에 고뇌하는 부모들의 태도는 주목할 만 하다. 가진 것과 배운 것은 부모의 이기심과, 부모로서의 성숙에 무관함을 다시 한번 드라마는 증명해 주고 있다. 아니, 가진 것과 배운 것이 많으면 많을 수록, 자식과의 분리는 더 어려운 것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치 극과 극의 만남처럼 자식에 집착하면 할수록 자식은 변강철처럼 튕겨져 나가고, 자식을 존중해주면 호구처럼 알아서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리려 애쓴다. 자식은 그저 나의 '다시'가 아니라, 또 철이 있건 없건, 제 아무리 호구이건 한 사람의 살아가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극과 극의 부모들의 반응을 통해 <호구의 사랑>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평범한 삶'? 하루 아침에 자기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입장에선 그저 내 자식이 눈 앞에서 살아 움직여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다. '참척(慘慽)'의 슬픔이 어언 1년이 되어가는 이 시점, <호구의 사랑>을 보며, 오만한 부모의 욕심을 되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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