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를 웃도는 시청률로 mbc주말 드라마의 성공 신화를 여지없이 확인시켜 주었던 <전설의 마녀>가 3월 8일 40부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심복녀(고두심 분) 남편의 회사를 빼앗기 위해 그 남편을 죽이고 그 죽음의 죄를 아내인 심복녀에게 덮어 씌웠던, 그리고 자기 자식이 죽자 며느리인 문수인 역시 억울한 누명을 씌워 감옥으로 보냈던 마태산(박근형 분)회장은 결국 '인과응보'로 감옥에서 종영을 맞이하였다. 방영되는 내내 아버지 못지 않게 파렴치한 '갑질'을 일삼았던 마태산 회장의 장녀 마주란(변정수 분) 역시 감옥행이었다. 그에 반해 남편을 죽였다는 이유로 30년을 복역한 심복녀는 잃어버린 아들도 찾고, 그녀를 사랑하는 박이문(박인환 분)과 노년의 결혼식을 올렸다. 문수인 역시 '마법의 빵집'의 주인이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을 복을 받는 '권선징악'의 주말 드라마의 전형적 구도을 다시 한번 되풀이 하였다. 



전설의 마녀들 대신, 전설의 '차앵란'
<전설의 마녀>가 극 중반부를 들어서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극 중 주인공으로 설정된 심복녀와 문수인이 언제 복수를 할 거냐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극 초반 신화 그룹의 며느리에서 하루 아침에 감옥에 가게 된 문수인의 처지나, 남편을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30년이 넘게 감옥살이를 한 심복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의 지상 최대의 과제는 마태산 회장의 복수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한 박이문 전직 보안 계장의 배려 덕분에 세탁소에 쉽게 안착한 심복녀 여사 주변에 문수인, 손풍금(오현경 분), 서미오(하연수 분) 등이 모여 들었고 그들은 함께 교도소에서 배운 베이커리 기술을 이용하여 생업을 마련하는데 고군분투하느라 정신이 없다. 더구나, 그녀들의 행보마다, 등장하며 발목을 거는 마태산 회장의 장녀 마주란이 있어, 안그래도 힘든 전직 재소자들의 사회 복귀는 하루 아침에 사라진 푸드 트럭처럼 '난망' 그 자체다. 

'마녀'라는 무시무시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정작 '복수'는 커녕 먹고 살기에 전전긍긍하는 그녀들과 달리, 30년을 하루 같이 복수를 위해 '와신상담'을 하다, 본격적으로 칼을 빼어들기 시작한 사람은 정작 마태산 회장의 후처 차앵란이다. 번연히 살아있는 전처를 밀어내고 당당히 신화 그룹의 안주인 자리를 차지한 그녀에겐 아들 도진의 출생의 비밀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을 마태산 회장 때문에 잃은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잃어버린 순정을 돌려받기 위해, 그리고 그 첫사랑의 아들인 도진을 그룹 회장에 올리기 위해 칼을 간다. 더구나 일찌기 마회장의 경리 출신으로 마태산 회장이 거북 제과를 통째로 집어 삼키는 과정을 낱낱이 목격한 당사자로 마태산 회장의 숨겨진 치부를 적재 적소에 활용해 복수를 시작한다. 
결국 심복녀 여사가 남편을 죽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녀의 아들을 구해 신화 그룹의 장학생으로 최고의 쉐프로 키워낸 것도 차앵란이요, 그 아들에게 출생의 비밀을 던져준 주어 심복녀와 모자 상봉을 유도한 것도 차앵란이었고, 본격적으로 신화 그룹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도 역시나 차앵란이었다. 이쯤되면, 전설의 마녀가 아니라, 전설의 차앵란란 말이 무리가 아닌 것이다. 

마녀들의 건강한 성공 스토리 
하지만 후처라 하지만 한 집에서 30년을 부부의 인연으로 살아왔으면서 결국은 자기 아들의 친부의 복수를 갚기 위해, 그리고 그룹을 자기 아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복수를 한다는 설정은 그간 아침 드라마를 비롯하여, 주말극에서 지겹도록 되풀이 되었던 '복수극'의 클리셰로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그것만이었다면 <전설의 마녀>가 그토록 주말 밤 중장년의 시청자들을 tv앞으로 끌어당기기에는 역부족이었들 것이다. 
주인공답니 답지 않니 해도 그러나 결국, <전설의 마녀>의 마녀들은 감옥 출신 네 명의 재소자들이었다. 한편에서 차앵란이 죽을 뻔한 마태산의 아들이자, 문수인의 남편을 몰래 숨겨 놓았다는 말도 안되는 설정을 통해 복수를 시도해도, 그 한편에서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이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녀들의 '긍정적 성공 스토리'가 없었다면 <전설의 마녀>의 묘미는 한층 줄어들었을 것이다. 
거기에 '로코' 못지 않은 박이문-심복녀, 손풍금-탁월한, 문수인-남우석, 서미오-마도진의 애절하면서도 간질간질한 러브 스토리 역시 <전설의 마녀>의 인기를 상승시키는 한 요소가 되었다. 



솔직히 일등공신은 김수미-변정수 콤비
그러나 마녀들이 감옥 속에서 만나 싸우고 정들어 가던 시점만 해도 <전설의 마녀>들이 다른 주말 드라마와 큰 변별력을 가지기 힘들었다. 거기에 <전설의 마녀> 특유의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뜻밖에도 카메로로 출연한 김수미의 발군의 코믹 연기였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식의 춤사위에 얹은 그녀의 주제가에, 일자무식인 주제에 외국어 까지 주워삼기며, 하지만 불리하다 싶으면 '배째라' 식의 막가파인 극중 김영옥으로 분한 김수미의 코믹 연기에 급속도로 반응이 오기 시작했고, 덕분에 그녀는 카메오에서 졸지에 극중 감초로 고정 배역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김수미가 고정 역할을 차지하면서, 그녀와 호흡을 맞춘 손풍금, 탁월한, 그리고 악역으로 대치한 마주란의 연기가 극의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뻔한 통속극과, 성공 스토리였던 <전설의 마녀>가 독특한 변주을 넣은 개성있는 드라마로 재탄생되게 된 것이다. 

<전설의 마녀>가 김수미 등의 호연에 힘입어 인기를 얻은 것과 달리, 40부작을 이끌어 가는 스토리는 버거워 보였다. 차앵란의 30년에 걸친 절치부심은 마태산 회장의 아들 마도현을 살려내는 무리수까지 이어졌고, 덕분에 그나마 남우석과 러브 라인을 이루며 빵집 쉐프로서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가던 문수인은 졸지에 어장 관리녀가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차앵란을 중심으로 한 복수극과, 심복녀와 문수인을 중심으로 한 성공 스토리가 좀처럼 맞무리지 못한 채 따로 놀았으며, 결국 주인공이었던 심복녀와 문수인이 차앵란 복수극을 거드는 '본말전도'의 사태가 끝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떻하랴, 언제 통속극 주말 드라마가 따지고 보면 말이 되는 스토리였던 적이 있었는가 하면 할 말은 없다. 그저 그 예전 흥부 놀부에서 부터 옛날 이야기들이 심뽀고약한 욕심많은 부자들은 망하고, 착하디 착한 가난한 사람들은 복을 받는다던 그 스토리텔링을 재연하면 그뿐! 거기에 신선한 설정과 극단적 수단이 더해지면 금상첨화인 것이다. 세상은 대기업이 날마다 동네 빵집을 먹고, 감옥에 간 대기업 회장 딸은 여전히 그곳에서 조차 '갑'이지만, 드라마 상에서 주인공들은 자그마한 동네 빵집으로 성공 스토리를 이룬다(그녀들이 이룬 성공 스토리의 빵집은 대기업 체인 빵집의 ppl이다). 또 대기업 회장과 그 딸은 초라한 감옥 생활에, 반성까지 하고, 그들이 빼앗은 기업은 전문 경영인에 의해 합리적으로 운영된다. 서민들이 현실 생활에서 이룰 수 없는 환타지를 충실히 구현시켜 주며, 그들의 서러움을 대신 잠시나마 tv 드라마를 통해 잊게 해주면 그 몫을 다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신기루같은 마녀들의 성공 스토리, 복수 스토리는 그렇게 40부의 뒤죽박죽 행보를 완주해 내었다. 

by meditator 2015. 3. 9. 10:09

이윤정 pd의 작품이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그들의 가슴을 그 어느 때보다도 설레이게 만드는 '로맨틱 코미디'의 묘미를 잘 살려 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tvn을 통해 돌아온 <하트 투 하트> 역시 천정명,최강희가 모처럼 제 옷을 입은 듯 고이석과 차홍도로 분해 동화같은 화면을 통해 가슴을 튕기는 선율을 넘어 가슴아프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내었다. 

하지만 이윤정 pd의 작품이 평가 받는 이유는 그저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아름다운 사랑으로 형상화된 스토리의 행간으로 스며든 당대 젊은이들의 고뇌를 섬세하게 다루었고, 어루만졌기 때문에 이윤정 pd의 작품은 늘 젊은이들의 선택 1호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하트 투 하트>에서도 역시나 이윤정 pd의 그 노력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고이석와 차홍도를 발목잡는 추악한 어른들의 진실
얼굴 홍조로 대인기피증에 시달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차홍도, 잘 나가던 정신과 의사였으나 알콜 의존증으로 하루 아침에 인기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 고이석, 두 사람은 환자와 의사로 만나, 연인이 되어 사랑을 키워 나간다. 하지만, 그 사랑의 인연이 그저 우연이 아니었음을 <하트 투 하트>의 후반부는 그려 나간다. 그리고 뒤늦게 15부 마지막에서야, 그들이 알게 된 드러난 과거의 사연 이면에 숨겨진 진실이 있었음을 밝힌다. 

사랑했던 두 사람이 가닿은 과거의 사연은 이렇다. 
실화로 죽은 고이석 형의 죽음, 그 현장에서 성냥을 들고 있던 다섯살 배기 차홍도는 실화의 범인으로 경찰서로 끌려가고, 할머니와 함께 저택을 떠나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원래 이름인 영지를 지워 버린 채 살아왔다. 결국 차홍도의 대인기피증의 이면엔 숨어 살아야 했던 영지의 범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이석도 그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평소 형이 미워 형이 들어간 드럼통 위를 무거운 것으로 눌러 버렸던 고이석은 자신으로 인해 어른들이 좋아하는 형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형 대신 착한 아들 노릇을 하기 위해, 형을 잃은 상실감에 고통받는 어른들을 어루만지기 위해 자신을 덮어왔다. 
그리고 대인기피증인 차홍도가 알콜 의존증 의사로 소문이 나 모든 것을 잃은 고이석을 찾아가면서 그들의 과거는 봉인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15부 마지막, 16부 초반에 걸쳐 드러난 진실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고이석 형의 죽음은 뜻밖에도 고이석 아버지(엄효섭 분)의 실화였던 것이다. 현장에서 찾아낸 라이터를 켠 사람이 아버지였고, 그 아버지는 화재 현장에서 겨우 어머니만 구해 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식의 범죄를 덮기 위해 홍도에게 그 죄를 뒤짚어 씌웠고, 아버지를 황급히 외국으로 피신시켰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후 20년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밖으로 떠돌아야 했고,  어머니도 죄책감을 잊으려 평생을 몸부림쳐 살아왔다. 

추악한 어름들의 세대와 그 자식인 젊은 세대
이 숨겨진 진실은 다양한 상징성을 띤다. 
어린 생명, 그것도 직계 존속을 죽게 만들었던 과거의 사건, 그 사건에 대해 가장 나이 많은 세대인 할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남의 손녀인 차홍도를 범인으로 모는데 앞장 선다. 심지어 그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여전히 뻔뻔하다. 다시 그 상황이 돌아온다면 자신은 똑같은 선택을 할 거라며, 심지어 그 당시 할머니와 차홍도에게 적절한 금전적 보상을 했다던가 라던가, 이제 또 다시 금전적 보상을 하겠다는 식이다. 찾아온 차홍도에게도 사과는 하되, 차홍도의 말처럼 전혀 진심이 담겨져 있지 않은 형식적 사과다. 
아버지는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였지만 20을 밖으로 떠돌면서, 오히려 식구들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서운해 한다. 심지어 다시 한번 몰래 또 도망가려고 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가장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종종 자살 소동까지 일으켰던 어머니가 가장 대반전이다. 알고보니 자신의 아들을 죽인 것이 남편인 것까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잊기 위해 범인을 차홍도라 믿으려 했고, 심지어 그렇게 믿게 되기까지 했던 것이다. 
과거의 추악한 진실에 대해 자신의 피붙이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데 앞장서며, 그 사실을 여전히 당당하게 주장하는 할아버지, 과거에 대해 비겁하게 도망치는 아버지, 그리고 과거를 왜곡시켜 기억하며 자신을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어머니, 이들 세 사람의 어른들의 모습은 그저 고이석 부모님들의 사례가 아니다. 한국 사회 젊은이들이 대면한 우리 사회 어른들의 상징적 모습, 그 자체이다. 

사건으로 고이석의 형이 죽어간 것처럼, 우리 사회 젊은이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과거사의 구비마다 우리 사회 어른들이라는 사람들은 외면하거나, 그것을 왜곡 인식하거나, 심지어 그 왜곡에 앞장섰던 것이다. 그리고 적반하장으로 엉뚱하게 피해자로 몰아넣은 사람들을 다시 한번 '족치거나', 금전적 보상을 했다며 큰소리를 친다고, <하트 투 하트>는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기적'이며 '파렴치한' 어른들로 인해 애꿏은 남의 자식 차홍도만이 아니라, 정작 자기 자식인 고이석 조차도 고통받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또한 말하고자 한다. 

이윤정 pd의 작품 속 젊은이들은 늘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이다. <하트 투 하트> 역시 마찬가지다. 형의 죽음에 눌린 고이석은 여전히 가족을 짊어진 채, 아니 가족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일에서 조차 영향을 받는다. 차홍도는 한 술 더 뜬다. 심지어 차홍도란 이름조차 지운 채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할머니의 이름을 빌어야먄 세상 속으로 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 만나게 된 것은, 우리 사회 젊은이들이 진정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자신을 왜곡시킨 어른들의 '파렴치'함을 직시하고 그것은 인정하고 반성하는데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15,16회에 걸쳐 뒤늦게 밝혀진 과거의 추악한 진실, 16부의 조급한 종영 때문인지, 아니면 그 해결 과정에 대한 개연성있는 천착에 대한 해명에 자신이 없어서인지, 결론은 마치 그저 차홍도의 '버전업'된 마무리로 끝을 맺었다. 비록 중간 과정이 없는 그 결론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하트 투 하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 사건을 알게 되고, 고이석은 그 사람들이 가족이란 이유로 과거를 덮지 않는다. 식구들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고이석을 붙잡지만, 그는 차홍도를 찾아가 진실을 밝힌다. 그 진실이 다시 한번 차홍도와 자신의 관계를 일그러 뜨릴 수 있을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며 어이없어 하고, 숨을 못쉴 정도로 억울해 하던 차홍도도 하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비록 그녀를 이십 여년 동안 집 안에 비끌어 매어 놓은 과거사을 일으킨 집안의 자식이었지만, 자신이 범인이었을 때나, 그리고 이제 아버지가 범인이 된 지금이나 한결같이 '미안하다;'고 진심을 전하는 고이석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과거'를 벗어난다. 
그들이 다시 한번 '사랑'을 이루는 것은 그저 '사랑'이 아니다. 과거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하지만, 그런 어른들의 추악한 역사에 발목잡히지 않고, 자신들의 선택으로 그들의 삶을 새로이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차홍도와 고이석은 과거에 짖눌린 영지가 아니라, 추악한 과거를 지닌 집안의 고이석이 아니라, 그저 차홍도, 고이석으로 서로 사랑하게 된다. 이제야 비로소 그들은 진짜 어른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진짜 어른이 되는 방법
물론 이런 좋은 주제 의식에도 불구하고 <하트 투 하트>의 전개는 아쉬웠다. 홍조증으로 고통받는 차홍도, 하지만 그럼에도 장두수(이재윤 분)을 사랑해서 자신의 병을 고치려 용기를 내었던 차홍도가 알콜 의존증으로 문제을 일으킨 정신과 의사 고이석을 찾아가면서 시작된 이들의 러브 스토리는 16부작의 상당 부분을 고이석과 차홍도, 장두수의 실랑이로 소모한다. 물론 '로코'의 매력이 '삼각관계'의 줄다리기 라지만, 15,6회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차홍도와 고이석의 진짜 과거사, 그리고 그에 대한 조급한 결론에 이르면 조금 더 이 문제에 대해 설득력있는 마무리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조리한' 어른 세대를 대하는 젊은이들의 자세에 대한 <하트 투 하트>의 의견은 귀기울일만 하다. 어른들이 벌여놓은 과거가, 그저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까지 그들의발목을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그들에게서 금전전 혜택을 입고 있는 고이석과 차홍도에게 까지 예외가 아니라고 드라마는 힘주어 말한다. 또한 그런 과거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자식이었던 고이석이며, 그런 고이석의 용기로 차홍도조차 비로소 과거로 부터 놓여 날 수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은, 말만 번드르한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진심으로 보다듬는 진심어린 사과라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해명과 사과의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과거에서 놓여날 수 있으며, 그때 진짜 어른으로 젊은이들을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강변한다. 또한 고이석과 차홍도의 결합에서 처럼, 어른들의 일은 어른들의 일, 그것에 얽매이지 말고 젊은이들은 젊은이들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것을 주문한다. 여전히 애어른같은 우리 세대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하트 투 하트>의 어른이 되는 길이었다. 
by meditator 2015. 3. 8. 13:03

월 6일 16부작 <스파이>가 마무리 되었다.

2012년 이스라엘에서 평균 시청률 26%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마이스>, 미국에 앞서 우리나라에서 <스파이>란 이름으로 방영되었다.

이스라엘의 인기 드라마이며, jyj 김재중의 출연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매주 금요일 1,2회를 연속 방영하는 모험을 시도하였다. 초반 2회의 경우 7.9%(닐슨)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 몰이에 성공하는가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미 동시간대 시청자들을 사로 잡은 <삼시세끼>나, 고정 시청자 층을 확보하고 있는 <나 혼자 산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전작 <하이스쿨 러브 온>과 비슷한 평균 3% 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을 맞이하였다.

 

 


 

 

부익부 빈익빈의 시청률 구도 속에 고전하다

무엇보다 <스파이>란 드라마가 다수의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데는, 이미 금요일 밤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 잡은 tvn의 <삼시 세끼>나, mbc의 <나혼자 산다> 등이 고정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스파이>의 낮은 시청률을 운운하기도 그런 것이, 동시간대 mbc<띠동갑내기 과외하기>가 평균 1.7%, sbs의 <용감한 가족>이 4.3%의 평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삼시 세끼>와 <나 혼자 산다>와, <스파이>, <용감한 가족>, <띠동갑내기 과외하기>가 부익부 빈익빈의 시청률 구도를 가지고 간 셈이다.

 

그 중 <스파이>가 안타까운 점은 상대적으로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탄탄함을 기반으로 우리 실정에 걸맞는 각색과, 스파이 물에 어울리는 박진감 넘치는 연출로 16부작에 이르기까지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이루어 내었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했던 <마이스>는 우리 나라에 와서 남과 북의 대치라는 분단 상황과, 그 상황 속에 비극을 잉태한 가족의 이야기로 충분히 개연성있는 설정을 품고 있었다.

특히 이데올로기에 앞서 남과 북이라는 분단의 상황 속에 놓인 '가족'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6.25 전쟁 통에 이산 가족이 된 어른들의 아픔을 넘어, 북의 스파이였던 엄마 박혜림과, 남의 스파이가 된 아들 김선우를 통해 여전히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고 있는 분단의 비극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가족을 위해 스파이가 된 이윤진(고성희 분), 조수연(채수빈 분)을 통해 그 비극의 공감대를 확산시킨다.

 

현실의 분단이 낳은 비극적 상황이 낯설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분단으로 인한 가족의 비극하면 '이산 가족'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뛰어 넘어서 현재에도 여전히 생성되고 있는 또 다른 비극이 씨앗을 '공감'으로 까지 이어가는데 역부족이었음을 <스파이>의 낮은 시청률은 증명하고 있는 셈이 되었다. 즉, 새터민들에 대한 무관심은 물론, 남한 사회에 진입하고자 하는 그들에 대한 차가운 우리 사회의 시선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에 비극을 낳을 수 있는 현재화된 분단 상황에, 오늘을 사는 다수의 사람들이 '무심'하다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스파이>의 낮은 시청률의 이유일 것이다.

 

1973년부터 1983년까지 매주 방영 되었던 간첩 수사극 <113 수사본부>가 <수사반장>에 필적할 만한 인기를 누리던 시절을 지나, 여전한 남과 북의 대치에도 불구하고, 냉전 종식 이후 그 시절만큼 '간첩'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 '리버럴한' 사회가 된 한국 사회에서, 사랑을 찾아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남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엄마 스파이 박혜림의 이야기가 매주 지켜볼 흥미를 지속시키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종북'이나, '좌빨'이 주요한 사상적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과 달리, 인도적 차원에서 그들에 대한 관심은 '이기적일 정도로' 무심하다는 것을 <스파이>가 반증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스파이 모자의 슬픈 운명은 우리의 이야기라기엔 너무 낯설었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작<스파이>의 존재 가치

더구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어느 편이 옳고 어느 편이 그르냐의 전통적인 남북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아니라, 북의 황기철(유오성 분)과, 남의 송중혁(김민재 분)나, 정규용(이대연 분)을 그리 다르지 않는 인물로 그려냄으로써, 이데올로기가 아닌, 그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사적 이해나, 정치적 이해에 이용하는 인물들을 극중 악역으로 설정함으로써 <스파이>는 남북 관계를 다룬 드라마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이해 관계에 얽힌 남과 북의 부패된 인물에 맞서 북의 스파이였던 엄마와, 남의 스파이인 아들은, 자신들의 가족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스파이물의 형식을 띠었지만, 결국은 우리 사회에 가장 기본단위이자, 절대적 가치인 '가족애'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스파이>는 다양한 연령대의 흥미를 만족시키고자 한다. 매회 박진감 넘치는 액션, 총격씬은 스파이물로써의 쾌감을 선사하고, 그런 장르물의 외연을 넘어, 엄마와 아들의 갈등, 그리고 남과 북의 스파이로써 맺어진 김선우와 이윤진의 비극적 사랑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나 주말극의 뻔한 엄마역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선택한 스파이 엄마를 그려낸 배종옥의 연기와 캐릭터는 신선했으며, 일명 '엄마 바보'와 이윤진을 향한 '순애보' 사이에 갈등한 김선우 역의 김재중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기를 선보였다. 거기에 초반 배종옥과 콤비를 이루며 부부 스파이로 울고 웃겼던 아버지 김우석 역의 정원중의 순애보와 가족애 역시 주인공 두 사람에 못지 않았으며, 이미 다수의 작품에서 '씬스틸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조달환과 김민재의 포스도 만만치 않았다.

 

비록 여러가지 요인으로 다수의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충분이 일어날만한 분단의 현재적 상황을 개연성있게 그려내고자 했던 <스파이>의 존재 가치와, 마지막 까지 주제 의식을 놓치지 않았던 완성도는 시청률로 설명할 수 없는 수작임을 증명한다. 부디 우리의 분단 상황을 새롭게 해석하며, 극중 박혜림이나, 이윤진, 그리고 조수연처럼 여전히 분단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5. 3. 7. 06:31

김혜자, 채시라, 도지원 등 출연진의 면모가 심상치 않다 했더니, 방영 2주만에 일곱 개의 인격의 변주에 충격적 과거사까지 밝혀진 <킬미 힐미>의 시청률을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넘었다.(목요일 기준 닐슨 전국 기준, <킬미 힐미> 9.8%, <착하지 않은 여자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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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하지 않은 여자들
ⓒ kbs2



주타깃층 공략에 성공한 <착하지 않은 여자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주인공들의 면면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tv 리모컨의 향배를 쥔 이른바 '아줌마'층을 노골적으로 공략한 드라마이다. 
주인공 김현숙(채시라 분) 도박장까지 넘나드는 독특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되는 일이 없으며 지금도 역시나 되는 일이 없다'며 억울해하는 전형적인 아줌마들의 억눌린 정서를 대변하는 말을 종종 내뱉음으로써 이 드라마가 특정인 김현숙이 아니라, 아줌마들 공통의 정서에 기반한 드라마임을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심지어, 과거에 되는 일이 없었던 사연으로는 독특하게도 입시 지옥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선생님에게 눈밖에 나는 바람에 학교 밖으로 내처지게 된 공감의 역사를 도입한다.
그런가하면 늘 잘난 언니가 되어 못난 동생의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김현정(도지원 분)은 여자들의 공공의 적, '나이'앞에 장사가 없음을 대번에 증명함으로써 또 다른 공감 코드를 획득한다. 
뿐만 아니라, 채시라의 엄마 역인 김혜자가 극중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로 과거 그녀의 남편을 빼앗은 장모란(장미희 분)을 등장시킴으로써 이른바 '조강지처'의 고뇌와 한을 극중 갈등의 축으로 끌어 들인다. 
물론 극중 채시라의 딸 정마리 역에 이하나가 등장하여 송재림, 김지석 등과 삼각관계를 펼칠 예정이지만, 실제 극중 정마리의 분량도 아직은 미미할 뿐더러, 방송작가로 엄마의 과거를 추적하는 일을 맡음으로써 주인공 채시라의 사연을 채워주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세대별 연령별로 아줌마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코드로 꼭꼭 채워넣은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채시라, 김혜자, 도지원 등의 호연에 힘입어, 거기에 김인영 작가의 내공있는 '스릴러' 방식의 스토리까지 곁들여져 단 2주 만에 화제의 드라마 <킬미힐미>을 제압한다. 

<킬미힐미>는 '차도현입니다'라는 대사가 복선이었음을, 승진가의 숨겨진 비밀을 통해 드러낸다. 결국 차도현과 오리진은 승진가의 비극 속 희생자로 만나야 할 운명이었음을, 만나서 그들의 억눌린 트라우마를 함께 풀어야 할 '동지'였음을 절정의 <킬미 힐미>는 밝혀낸다. 하지만 여전히 7개의 인격이 난무하는 드라마는 흥미진진하면서도 때로는 기괴하게 느껴지는 낯설음을 극복하기 힘든 면이 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기인한 두 주인공의 고통은 분명 그들이 함께 눈물을 흘릴 때마다 거기에 공감하는 누군가는 그로 인해 함께 치유받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진전이 없이 과거에 얽매여 '내내 징징 짠다'는 지겨움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시작부터 도박판을 전전하다 홀홀 단신 야반 도주에서 부터 검찰 난동에, 과거 선생님과 동창 들 앞에서 '무릎을 끓라'며 도발하는 여주인공의 다이내믹한 활약에 비하면 <킬미 힐미>가 동심원을 그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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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하지 않은 여자들
ⓒ kbs2



선전이라기보다는 세대별 tv시청 양극화 현상
하지만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선전이 단지 작품의 재미나, 우월함으로 설명되기 힘든 면이 있다. 젊은 층들이 즐겨 보는 '티빙' 등의 경우에는 실시간 점유율이 <킬미 힐미>가 40%가 넘는 반면,<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10%도 되지 않는다던가, vod 역시 압도적으로 <킬미 힐미>가 높은 점유율을 보이며 심지어 <하이드, 지킬 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점에 이르면,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재미가 더 있다기 보다, 마치 <국제 시장> 처럼 과거 정서에 기반한 tv타깃층 공략에 성공한 것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특히,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영화<세시봉>처럼,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끊임없이 과거 김현숙의 사연을 설명하기 위해, 김현숙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여고생들이 열광했던 레이프 가릿 열풍을 재연한다. 억압적 입시 지옥에 시달리던 김현숙에게 유일한 위안은 레이프 가릿을 흠모하며 그를 좋아했던 것이다. 마치 요즘 청소년들이 아이돌을 좋아하듯 아이돌 스타가 없던 그 시절 김현숙은 레이프 가릿을 통해 자신의 열정을 불사른다. 

하지만 여기서 맹점이 드러난다. 극중 중년이 된 김현숙이 자신의 지금까지의 일생에서 '젊음의 절정'을 레이프 가릿 공연 무대에 불려나가 그의 세레나데를 들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레이프 가릿 등이 아이돌 스타를 갈구하던 여고생들의 로망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레이프 가릿의 내한 공연은 상당한 가격으로 일반적 여고생들이 김현숙처럼 그렇게 쉽게 접근할 공연이 아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는 있었지만 막상 그 공연을 간 사람들은 그래도 부유한 층에 속하는 아이들 중 일부에 국한된 일이었다. 요즘 아이돌 공연 가듯이 그렇게 쉽게 레이프 가릿 공연에 접근할 수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치 <세시봉>이 이제 와 사는 게 넉넉해져서 그 시절 세시봉을 추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세시봉 공연을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젊은 시절에는 사느라 팍팍해져서 세시봉 근처에는 가볼 엄두도 나지 못했던 세대에게 <세시봉>을 그 시절 대표적 문화로 설명하려 하듯, <착하지 않은 여자들> 역시 레이프 가릿을 통해 김현숙의 고등학교 시절을 보편화시키는 일반화의 맹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레이프 가릿 열풍을 통한 당시 세대 문화를 일반화시키려 하듯이 말끝마다 '일찌기 어린 시절부터 되는 일이 없고, 지금도 되는 일이 없다'는 아줌마 일반의 공감을 끌어들이고자 하는 김현숙의 푸념 역시 마찬가지로 일반화의 우려를 지닌다. 하지만, <킬미 힐미>를 보자니 난해하고, <하이드, 지킬 나>를 보자니 재미가 없었던 아줌마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는 일단 성공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는, 미워했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사랑하는 남편의 존재라던가, 사십 평생 노처년 앞에 등장할 재벌 급의 출판사 사장 등은 이리저리 꼬아놨음에도 여전히 순애보적 환타지에 충실한 행보를 보일 것임을 예고한다. 

오히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역전으로 우려가 되는 것은 시청률표에서 보여지듯이, 중장년 층에 시선을 빼앗긴 공중파 tv 프로그램의 노후화이다. 시청률표의 상위 순위는 대다수 중장년층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들로 채워진다. 심지어 수요일 kbs1의 <생로병사>를 보던 사람들은 목요일이 되자 <착하지 않은 여자들>로 이동하듯이, 건강과, 그들이 공감하는 스토리로 리모컨은 옮겨다닌다. 반면, 젊은 층들이 주로 이용하는 '티빙' 등의 인기 프로그램은, 공중파의 시청률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드러낸다. 공중파 프로그램 시청률 표에서는 보이지 않는 케이블과 jtbc의 프로그램들이 대거 몰려있다. 그 나마 그 중에서 구색을 맞춘 것이 <킬미힐미>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선전은 '선전'이라 보기 민망한 지점이 있다. 오히려 양극화된 tv 시청 문화가 다시 한번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5. 3. 6. 10:21

3월 4일 오마이 뉴스 에는 < 남학생 절반이 일베, 강남 중학생들의 위험한 선택>이란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따르면 주 7일 직장인이라도 견디기 힘든 공부 스케줄에 시달린 강남의 고등학교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일베'를 한다고 한다. 부모의 뜻에 따라 '공부 인형'이 된 아이들은 자신들의 꿈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고, 그런 억압적인 상황을 일베 등을 통해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kbs에 공채된 신입 직원이 '일베' 회원이었던 것이 문제가 된 바 있듯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병적인' 코드를 통해 풀어나가고자 하고,  이른바 '일베'는 그 상징적 표현 수단으로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국사과목조차 입시 과정에서 선택 과목 중 하나가 되는 나라, 심지어 국사 교과서 선정 과정에서조차 왜곡된 교과서가 판을 치는 나라, 입시 교육에 헌신하느라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도덕적 규범 따위는 제껴버리는 나라에서, 어쩌면 '질풍노도'의 청소년들이 가장 극단적인 감정 표출 집단인 '일베'에 모여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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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미 힐미
ⓒ mbc

 


 

 

왜곡된 한국 사회를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드라마들

여기서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아이들을 재단하는 억압적 부모, 그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거부하지 못한 채 '억압적 기재'를 내재화한 채 '병적'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이런 우리 사회의 현실은, 드라마로 들어와, '정신병적 증후군'에 시달리는 남녀 주인공들로 형상화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최근 젊은 층에 화제가 되고 있는 mbc수목 드라마 <킬미 힐미>와 tvn의 <하트 투 하트>이다.

이제 중반부를 넘어서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고 있는 두 작품은 공교롭게도 남녀 주인공의 숨겨진 사연으로 애를 태운다.

 

7가지 인격을 가진, 스스로 '차도현입니다'라고 밝히기 전에는 도무지 누구일까 헷갈리는 남자 주인공, 그리고 졸지에 그의 개인 주치의가 되어버린 여주인공의 '썸'인 듯, 치유인듯 헷갈리는 <킬미 힐미>. 알고보니 그와 그녀가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늘 '차도현입니다'라며 자신을 밝혔던 차도현(지성 분)이었지만, 그의 그 선명한 자기 소개가 극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발목을 잡는다. 과거의 사연이 드러나고 보니, 정작 '차도현'은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오리진(황정음 분)이라는 이름으로 그와 조우하게 된 그의 개인 주치의였던 것이다. 하나의 '차도현'을 나누어 가지게 된 두 사람의 숨겨진 사연에는, 그들 두 사람을 둘러싼 부모, 조부모들의 탐욕이 숨겨져 있었다.

 

승진 그룹을 살리기 위해, 딴 사람의 자식을 낳아 홀로 키우려던 며느리(명세빈 분)를 아이를 승진가의 떳떳한 후손으로 만들어 주겠다며 꼬인 할아버지 (김용건 분). 그 할아버지의 유혹에 넘어가 남의 자식을 승진가의 핏줄이라 숨기며 다시 승진가로 돌아온 며느리, 그리고 뒤늦게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승진가로 돌아와 그 사실을 알고 분노한 아버지(안내상 분). 아버지는 배신당한 자신의 마음을, 아내가 데리고 들어 온 딸 아이의 학대로 푼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이 잘못을 해도, 딸 아이를 때리는 식의 학대를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했던 아들은, 결국 자신의 속에 숨겨져 있는 '파괴의 인격'을 불러 올려 불을 낸다.

아버지의 학대, 그리고 그 학대를 용인하는 다른 어른들에 분노한 아이는 다른 인격을 통해 현실의 자신에게서 도피한다. 그리고 학대의 당사자 딸 아이는, 겨우 불길 속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공포스러웠던 과거를 잊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

결국 왜곡된 어른들의 피해자였던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 7가지 인격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정신과 의사로 조우하게 되었고, 치료의 과정에서 그들의 봉인되었던 과거가 드러나면서, 극은 정점으로 치닫는다.

 

여기 또 다른 '불'의 현장이 있다. 늘 싸우기만 하는 부모, 그 날도 아버지와 엄마는 소리 높여 싸우면서, 아이들에게 나가 놀라고 했다. 평소에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형이 미웠던 소년은 창고 안 드럼통 안에 숨은 형이 미뭐 형이 나오지 못하게 무거운 것으로 눌러 버린다. 그런데 그만 불이 나고 미처 창고 밖으로 나오지 못한 형은 죽고 만다. 화재의 원인은 가정부로 일하는 할머니의 손녀가 붙인 성냥불이란다. 그 다섯 살 밖에 안된 소녀는 화재를 일으킨 범인으로 경찰에 잡혀갔지만, 소년은 안다. 자신이 형의 죽음에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겨우 경찰에서 나온 소녀(최강희 분)는 할머니와 함께 차홍도로  이름을 바꾼 채 살아가지만 얼굴이 빨개지는 대인기피증에 시달려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형을 대신하여 형의 부재에 고통스러워하는 엄마를 거두며 착실하게 성장한 동생 고이석(천정면 분)은 알콜 의존증에 헤매인다. <킬미힐미>와 정반대로, 홍조증에 시달리는 여주인공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 의사인 남주인공을 찾아간다. 하지만 역시나 사랑과 치료가 뒤범벅이 된 두 사람의 관계는 뜻밖에도 숨겨진 과거의 사연을 만나 고통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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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투 하트
ⓒ tvn

 


 

 

번듯해 보이지만 고통받는 그들, 과거의 인연에 엮이다

<킬미 힐미>의 남자 주인공 차도현은 승진 그룹의 유일한 후계자인 재벌 3세이고, <하트 투 하트>의 고이석은 잘 나가던 정신과 의사이지만 역시나 자전거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 고상규(주현 분)의 손자이다. 그들의 집은 화려하고, 그들이 가진 물적 조건은 풍족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다. 아버지를 죽일 뻔한 인면수심의 존재로 자신을 바라보는 할머니, 그리고 오로지 후계자의 자리만 노리는 어머니, 그 두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차도현을 이용할 뿐이다. 고이석의 집안도 콩가루이긴 마찬가지다. 형의 죽음 이후 밖으로만 떠도는 아버지, 자책감에 시달려 자살을 밥먹듯이 하는 어머니, 그런 가족 속에서 역시나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어떻게든 착한 아들 노릇을 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착한 손주, 아들 노릇에는 차도현 역시 저리가라이다.

 

그런 그들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7개의 인격에 시달리는 차도현에게는 정신과 의사라는 존재로, 반대로 정신과 의사인 고이석에게는 골치아픈 환자의 존재로 그녀가 왔다. 누가 의사인든, 환자이든, 그렇게 가족으로 인해 억압적 상황에서 고통받던 그들은, 자신을 찾아 온 그녀에게서, 사랑도 얻고, 치유도 받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랑이 깊어지고, 치유에 한 발 다가가면서, 그들의 봉인된 과거가 풀려지고, 거기엔 치유자가 아닌,  그들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희생자였던 그녀들이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킬미힐미>와 <하트 투 하트>에서는 어린 시절 아이들의 처지를 폭발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으로 '불'이 등장한다. 신화 속에서 불은, '파멸'이자, 동시에 '정화'를 뜻한다. 어린 시절 왜곡된 삶을 살던 아이들은, '불'을 통해 자신의 관계들을 파멸로 이끌어 간다. 동시에, 그

불'은 그들의 왜곡된 삶을 풀어낸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렇게 다시 환자와 주치의의 관계로 만나졌고, 남자와 여자로 교감하게 되면서, 과거 자신의 상처를 바라 볼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이제 그 힘으로 자신들을 왜곡시켰던 어른들의 역사를 거두어 내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킬미 힐미>와 <하트 투 하트>가 그려내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은 공통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받는다. 그들은 재벌가 라는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 물적 조건과, 그룹 내 중진에, 정신과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졌지만 공허하다. 자신을 견뎌내지 못하고 7개의 인격으로 파열음을 내거나, 알코올에 의존한다. 풍족한 사회 속에서 방향을 잃고, 정신적으로 의지가지없는 현실의 젊은이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의 젊은이들을 초래한 것이, 그들올 오로지 '공부 인형'으로만 키운 욕심많은 부모 세대이듯, 드라마 속 젊은이들은 부모들의 탐욕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이들 두 드라마는 중장년층이 리모컨의 향배를 쥔 tv 문화에서 '대박'은 되지 못하지만 젊은 층의 호응을 얻는다. 아마도 그들이 차도현의 7가지 인격의 파열에 공감하며, 작가가 그려내고자 하는 치유의 과정에 호응하는 것은, 차도현을 통해, 상처받은 자신들을 구원하고자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고이석과 장두수 사이에서 헤매이던 차홍도의 이야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을 가지는 것은 여전히 젊은 그들의 치유를 끝내 놓치지 않고 있는 점때문인 것처럼. 그래서 그나마 젊은이들이 관심을 두고 찾아보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3. 5. 06:01

첫 아이를 낳은 엄마는 아이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잘 키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기성 세대의 육아 방식이 마땅치 않은 엄마는 '책'에서 육아의 길을 구하고자 했다. 그때 읽은 여러 육아 서적들이 있지만, 지금도 기억이 남는 것 중 하나는 아이에게 심심해할 시간을 주라는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를 홀로 놔두면 왠지 미안해 한다. 엄마가 뭐라도 아이에게 '교육'을 시켜 주어야 할 것 같은 강박 관념까지 가진다. 하지만 그 육아 서적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아이가 '심심해' 하면서 뒹굴거리는 순간, 아이의 뇌세포는 가장 활성화된단다. 스스로 '심심해'하면서 머리를 굴리는 그 순간, 아이 속에서는 창조적인 에너지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저 세상 숱한 교육 이론 중 하나이겠지만, <영산도 섬소년-바다의 노래>을 보면, 그 시절 그 육아 서적의 '지론'이 떠오른다. 그리고 새삼 '교육'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교육이 무엇일까 반문하게 된다.

 

영산분교 전교 일등 최바다는 외로움을 크는 아이이다. 남도 끝자락 흑산도에서도 배로 십 여분을 더 가야만 하는 영산도의 학교, 영산 분교의 유일한 학생은 최바다 단 한 명이기 때문이다. 최바다가 전학을 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영산 분교에는 이 최바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한 분 뿐이다. '국어'와 수학'을 가르치고 싶은 선생님과, '국어'와 수학 대신 체육이나 하고 싶은 최바다 학생은 오늘도 실랑이를 벌이며 하루 해를 보낸다.

 

애초부터 영산분교에 이렇게 학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영산 분교 1회 졸업생인 이 영산도의 보물 영산분교도 한때는 70여 명의 학생들이 북적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흑산도에서 떨어진 외딴 섬 영산도의 사람들이 자꾸 떠나가고, 얼마 전 6학년 졸업생 세 명이 졸업을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산분교에는 4학년 최바다만이 홀로 남았다.

 

섬에 닿는 여객선의 도선 작업을 돕고, 낚시하러 온 손님들을 상대로 낚싯배를 운영하는 바다 아버지와 무릎이 아픈 할머니, 그리고 바다, 이렇게 바다네 식구들은 세 사람이다. 엄마는 6개월된 젖먹이 바다를 두고 떠났다. 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어른들은 영산 분교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홀로 남은 바다가 안스럽다. 그런 어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바다는 자기가 2년만 더 버티면 된다며 의젓하게 말한다. 그런 속내에는 오랫동안 외로움에 시달린 소년의 또 다른 속내도 숨어있다. 목포로 전학을 생각해 보라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를 자주 볼 수 없어 싫다는 바다는, 낯선 타지에서 모르는 아이들 속에서 또 다시 외톨이가 되느니 여기서 홀로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 났다는 생각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라면을 다섯 개씩 혼자 먹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에 몰두하는 바다에겐 가족과의 사이에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그러나 하룻밤 다녀간 사진가 선생님과의 이별에서 '눈에 물이 들어가듯이' 소년의 외로움은 쉽게 허물어 진다.

 

이렇게 외로움이 깊은 소년의 유일한 친구는 선생님이다. 선생님이자, 그와 온종일 놀아주는 친구이자, 동네 어른들이 바다을 버릇없게 만든다고 잔소리를 할 만큼 외로운 바다의 모든 것을 헤아리며 받아주는 속깊은 어른이기도 하다. 군대를 가기 전에 부임하여 군대를 다녀와서도 다시 영산 분교를 지원하여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았던 선생님은 바다처럼 선택의 기로에서도 다시 영산분교에서 바다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갓 들어온 조기 입학생과 바다를 가르치다 격무에 시달려 고열로 쓰러질 정도로 책임감을 가지고 학교를 지킨다. 대체 근무할 선생님이 없어 일주일 앞서 퇴원을 해야 하는 것도 선생님의 몫이지만, 선생님은 선한 미소를 띠며 영산 분교로 돌아온다.

 

▲ MBC <MBC 다큐스페셜> ⓒMBC

 

어릴 때부터 '조기 교육'을 앞세우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바다와 선생님의 놀이인지, 공부인지 모를 교육 현장은 헷갈린다. 더구나 친구도 없는 당연히 전교 일등이 되는 단 한 명의 학생이라니! 기껏 신입생이라고 들어왔는데, 바다와 다섯 학년이나 차이가 나고, 이 아이를 가르치면 저 아이가 놀고 있고, 저 아이를 가르치면 이 아이가 놀고 있는 콩가루같은 교실은 하나라도 도 내 아이의 몫을 놓칠세랴 눈을 번득이는 도시의 부모들 눈에는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다. 심지어 대체 근무할 교사 자원이 없어 선생님이 아픈 동안 학교는 자연 휴교다. 아마도 당연히 정상적인(?) 부모라면 '전학'이 당연지사일 것이다.

 

하지만 바다에게 목포로 가 공부를 하라는 바다 아버지는 자기보다도 바다가 더 낚시를 잘 한다며, 바다가 저렇게 바다를 좋아한다면 그냥 이렇게 이곳 영산도에서 살도록 둘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단 한 명의 전교생인 영산분교생인 바다에게 목포로 나갈 것을 권하다가도 바다가 머문다니 다시 홀로 학교에 남긴다.  영산 분교 소풍날이면 바다가 외로울 까봐 온동네 어른들이 바다와 함께 소풍을 간다. 조촐한 동네 잔치가 되는 것이다. 바다를 보살피는 정상호 선생님에게는 세상에 저런 선생님이 없다며 선생님이 방학을 맞아 뭍으로 갈라치면 동네 잔치를 벌이는 마을 분들이다.

 

그렇게 친구는 없지만 함께 소풍을 가주는 동네 어른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바다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선생님, 하지만 그럼에도 엄마도 없고, 친구도 없어 외로운 바다는 카메라가 지켜보는 2년 동안 성숙해 간다. 애초에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함께 공을 찰 아이들이 없어 축구를 포기하고 대신 카메라를 벗삼은 바다는 도시의 아이들은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영산도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얼굴과, 영산도의 섬세한 자연을 배운다. 노인들만 그득한 영산도에서 유일한 초등학생인 바다는 도회로 공부하러 간 동네 누나의 친절을 기억하고, 그 집 할머니를 도우면서, 자신들을 가르치느라 제대로 아프지도 못한 선생님의 마음의 헤아리며 철이 든다. 카메라가 지켜보는 2년 동안 혼자 라면을 먹으며 게임에 몰두하던 철부지 소년은 어느새 어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젓한 소년으로, 공부를 땡땡이 치던 소년은 혼자 영산도의 자연을 '시정' 넘치게 담는 꼬마 사진사로 성장한다.

 

컴퓨터를 공부하다 보면 하드에 가급적이면 적은 용량을 담아야 컴퓨터가 원활하게 돌아가며 오랫동안 고장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배운다. 우리의 교육은 하다못해 컴퓨터 만도 못하다. 잔뜩 지식을 찔러넣어 과부하가 걸린 컴퓨터와 같은 아이를 지향한다. 바다는 아주 깨끗해서 언제라도 무한한 기능을 펼칠 수 있는 컴퓨터와도 같다. 도시의 교육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연의 처지조차 저버린 채 외로움 속에서 자란다. 하지만 그 외로움조차도 그를 따스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어른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바다처럼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영산도 섬소년-바다의 노래>는 증명해 낸다. 2년에 걸친 바다의 성숙만으로도 홀로 영산분교를 지키는 정선생님의 보람은 충분하다. 비록 더 좋은 근무 환경과, 더 많은 아이들의 선생님 노릇을 할 수는 없지만, 단 한 마리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양을 구하러 떠난 양치기의 사명을 영산분교 분교장 정상호 선생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영산도 홍보 책자에 실려 어떤 훌륭한 사진가의 작품이냐는 질문을 받을 수준에 이른 바다의 사진 작품 전시를 끝으로 마무리된 섬소년 바다의 이야기, 아들에게 사진전을 선물한 아버지는 사진에 대한 바다의 추억이 그의 성장에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저 남도 끝자락 영산분교 외로운 소년 바다와 그를 지켜보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교육'의 본질을 되돌아 보게 한다.

by meditator 2015. 3. 3. 06:04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3.1절 프로그램들이 찾아왔다. sbs스페셜은 조선의용대의 마지막 분대장 김학철씨가 돌아가시기 까지 최후의 몇 개월을 고스란히 화면에 담았다. 1938년 약산 김원봉에 의해 창립된 조선 의용군은 해방의 그날까지 일본군에 맞써 싸웠던 무장 독립 단체이지만 남한에서는 사회주의 단체라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독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남과 북 모두에게서 외면받았던 단체이다. 그 단체의 최후의 분대장으로 끝까지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애썼던 김학철씨의 마지막 여정을 담는다. 또한  sbs는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신분인 기생들이 일제 앞에 나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기생 독립단'사건을 다룬 <꽃들의 저항, 기생 만세 운동>을 특집 다큐로 제작 방영한다. 김구 선생이 '건국 영웅'이라며 자신의 책에서 밝혔던 기생들은 보석과 패물을 팔아 독립 자금을 댔으며, 자신의 피로 태극기를 그리고, 독립 선언물 수천장을 뿌리며 일제에 맞섰었다. 

특히 이번 3.1절 특집 프로그램 중에 돋보인 것은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일제에 저항하며 '수요 집회'를 열고 계시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화한 것이다. mbc라디오는 1939년 통영에서 일본군 강제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섯 소녀들의 이야기를 <나는 후미코가 아니오>를 통해 그려낸다. 여섯 명의 소녀들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중 다섯 분이 돌아가시고, 단 한 분, 김복득 할머니만 생존해 계시다. 김복득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일본의 진정성있는 사과를 받는 일.김복득 할머니의 증언과 주변인의 인터뷰를 모아, 나문희씨의 나레이션에 얹어 광복 70년의 의미를 되새긴다. 

기사 관련 사진
▲ 눈길
ⓒ kbs



풍성한 특집 속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
mbc 라디오에서 실존 위안부 할머니의 육성을 통해 일제의 참혹한 만행을 전달하고자 했다면, kbs 1tv는 특집극 <눈길>을 통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연을 그린다. 드라마 속 위안부 할머니들은 더 이상 할머니가 아니다. 한 마을에 살던 번듯한 집안의 공부 잘 하던 소녀 영애와, 그녀를 동경하고, 그녀의 오빠를 마음에 품었던 가난한 소녀 종분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똑똑한 소녀 영애(김새론 분), 하지만 그녀의 집안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독립 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주재소로 끌려간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 때문에 오빠도 징용으로 끌려가고, 황국 신민으로 앞장서던 영애도 마찬가지 처지에 이른다. 
영애가 아버지로 인해 근로 정신대에 자원했다면, 종분(김향기 분)은 그런 영애를 부러워하면서 자신도 영애를 따라 공부도 시켜주고 돈도 벌어준다는 정신대에 자원하겠다고 나섰지만 동생을 돌보라는 엄마 말에 그만 주저않고 만다. 하지만 그날 밤 종분의 집에 쳐들어온 정체 모를 무리의 남자들은 종분을 끌어가 정신대 무리에 던져 버린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소녀, 그 소녀의 오빠랑 결혼하는게 꿈이었던 소녀, 이렇게 한 마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두 소녀들은 일본군 막사로 끌려가 위안부가 된다. 이렇게 살 바에야 죽겠다는 영애를 다독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자며 다독이는 종분, 두 소녀들은 죽음보다 비참한 상황에서 서로 의지하며 슬픈 우정을 키운다. 
거듭된 패전으로 이오지마로 퇴군해야 하는 일본군에 의해 총살을 당하게 되는 상황에서 도망치는 과정에서 그만 영애는 목숨을 잃고, 홀로 고향으로 돌아온 종분, 하지만 그토록 그리던 엄마와 동생은 죽거나 그녀를 찾아 실종된 상태다. 심지어 정신대를 다녀왔다는 소문은 고향에서 조차 그녀를 밀어내고 만다.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들은 238분이시다. 그 중 대부분의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이제 53분만이 생존해 계시다. 생존해 계신 분들도 고령으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상황이다. <눈길>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할머니들, 한때는 꿈많은 소녀였던, 아직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했던 아이였던 그 청춘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나라를 빼앗겼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의 꽃다운 시절조차 강탈당하고, 죽음을 맞이하거나, 죽음보다 못한 삶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기사 관련 사진
▲ 눈길
ⓒ kbs



현재형으로 이어지는 위안부 할머니의 역사
<눈길>은 노인이 된 종분(김영옥 분)이 여전히 고향을 등지고, 도시의 지하 단칸 방에서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뜨개질로 근근히 생활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자다 끌려가는 바람에 종분이란 이름조차도 지킬 수 없었던 그녀, 친구 영애의 이름으로, 그래서 아직도 그녀 곁을 맴도는 영애의 영혼과 함께, 외롭게 노년의 삶을 이어간다. 
그런 그녀의 곁에 등장한 불량 소녀 장은수(조수향 분)가 등장한다. 가족이 없어 보살핌을 받지 못한 소녀 은수, 그런 은수를 사회조차 보듬어 주지 않는다. 그렇게 드라마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소녀 은수를 통해, 일제 시대 역시나 그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했던 두 소녀의 처지에 공감을 불어넣는다. 그녀들도, 어쩌면 은수처럼, 그리고 은수도 그녀들처럼, 한참 철없을 나이였고, 꿈많을 나이였지만, 어른들의 보살핌을, 사회의 보살핌을, 나라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꿈많을 시절을 강탈당하고 만다고. 

<눈길>은 위안부의 일을 다루지만, 그 일을 직접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꿈많을 소녀들 두 사람에 집중한다. 그들이 일제 시대라는 시대적 압박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꿈을 잃고, 삶을 잃어가게 되었는가를 통해, 위안부라는 직접적 묘사 이상의 공감을 설득해 간다. 왜 아직도 생존해 계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아야 한다며 수요 집회를 이어가고 계신가를, 드라마는 소녀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통해 형상화해나간다. 그것은 돈이나, 그럴 듯한 몇 마디 형식적 말로는 도저히 가릴 수 없는 그녀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시간이었음을 굳이 강변하지 않아도, <눈길>을 보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홀로 살아가던 종분은 이웃집 소녀 은수를 통해, 돌보아 주지 않아 일제에 의해 짓밟혔던 지난 시간을 새삼 복기하게 된다. 그래서, 은수의 손을 잡아, 은수의 편을 들어 비로소 종분의 목소리를 낸다. 은수를 이용하고 방치한 어른들을 향해, 그 시절 자신을 짓밟았던 일제에게 했어야 할 분노를 비로소 끄집어 낸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방치된 소녀 은수와, 역사적으로 방치된 소녀였던 종분은 손을 잡는다. 시간을 거스른 '연대'이다. 오늘날 일본은 물론, 우리조차도 곁등으로 흘려버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가, 우리 사회 속 외면받은 은수와 같은 소녀들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드라마는 각인시킨다. 이는 드라마 소개에서 밝히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베트남 성폭력 피해자들의 손을 잡은 이야기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도 반성하고 되새김질 하지 않는다면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잘못된 역사에서라면 언제나 되풀이될 이야기라고 말하며 드라마는 끝맺는다. 이렇게 <눈길> 속 위안부 할머니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그녀들이 이제 우리 앞에 할머니의 모습으로 있다고 해서, 그녀들의 삶도 과거형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처럼, 그 역사 역시 과거형으로 마무리될 역사가 아니라고 드라마는 강조한다.

은수의 손을 잡아 준 종분, 그런 종분에게,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준 종분에게, 은수는 말한다. 종분이 은수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듯이, 은수 역시 종분의 분노를 대신 드러내 준다.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은수를 통해서 자신을 비로소 찾아낸 종분은 오랫동안 빌려 쓴 영애의 이름을 돌려주고, 자신의 이름을 비로소 찾는다. 영애와의 오랜 우정이 비로소 마무리되었다. 
by meditator 2015. 3. 2. 10:02

mbc는 2월 22일과 28일에 걸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이 프로그램이 화제가 된 것은 'UCC(user created contents)가 가장 진화한 형태인 1인 방송'을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수용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 한 개인이 '아프리카 TV'등을 통해 자신만의 방송 프로그램으로 개인의 시청자들을 끌어모아 인테넷을 넘어,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받아들여 지게 된 컨셉을 과감히 예능 콘텐츠로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결국 이 프로그램의 관건은 사람들이 흔히 인테넷 방송을 통해 느꼈던 재미는 물론, 그것을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화 했을 때의 소통으로 제대로 확장할 수 있는가 여부에 달렸다. 

첫 선을 보인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하 마리텔)>은 여섯 개의 작은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여섯 명의 출연자들을 제한 시간을 두고 그 스튜디오에서 각자 1인 방송을 하도록 한다. 또한 이들의 방송은 다음 팟을 통해 실시간 생방송으로 방영되어, 
그리고 외식 사업가 백종원, 방송인 김구라, 김영철, 가수 홍진영, 정준일, AOA초아 등이 첫 출연자들로 합류했다. 


마리텔을 대하는 여섯 가지 자세 
이들이 <마이텔>에 대하는 자세는 저마다 제 각각이다. 시작 버튼을 누르지 못해 시작부터 어설픔을 드러냈던 정준일이 있는가하면, 프로그램 중 옷을 갈아입는 것 조차 마다하지 않으며 고군분투 며칠 동안 검색어 순위를 오르내리는 등 화제가 된 초아도 있다. 
김구라는 최근 화제가 된 개인의 신상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며 '트루 스토리'를 내건다. 또한 자신이 자신있는 올드팝을 소개하는가 하면 일신상의 문제로 인해 앓게 되었던 공황 장애를 예을 들어 중년의 건강을 화두로 삼아, 자신을 치료한 정신과 의사까지 초빙한다. 
백종원은 외식 사업가로 알려진 그의 유명세 뒤에 가려진 쉐프로서의 면모에 충실한다. 가볍게 오이 볶음, 계란 말이에서 부터 시작하여 닭볶음탕, 간짜장까지 다종다양한 요리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다. 
영어하는 개그맨으로 이름을 날린 김영철은 역시 자신의 특기인 영어를 들고 나온다. 'actually' 등 을 통해 실제 영어와 한국적 영어의 갭을 설명하며, 실용적인 영어 강의를 풀어 나간다.
이미 개그감이 있는 가수로 널리 알려진 홍진영은 자신의 강점을 발휘한다. 인터넷 방송에 맞게 먹방에서 부터, 댄스 등 다종다양한 장기를 선보이고자 한다. 
정준일은 그의 명성에 걸맞게 호소력있는 그의 노래로 시청자들을 유인한다. 
초아는 화제의 걸그룹 aoa의 후광을 넘어, 민낯에서부터 '고양이'같은 애교있는 외모를 탄생시킨 화장법에서 부터,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소화해내는 가창력가지 뽐내며 가장 화제성있는 출연자가 되었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플랫폼과, 그것을 다시 공중파 예능의 콘텐츠로 걸러낸 <마리텔>은 두번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성과 숙제를 남겼다. 
무엇보다, 1인 방송이라는 인터넷 방송의 포맷을 어떻게 살려내는가의 문제이다. 시작은 '창대하게' 여섯 명의 출연자가 여섯 가지의 콘셉을 가지고 시작하였지만, 막상 실시간 접속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노잼'으로 나오거나, 프로그램이 종영할 즈음에는 백종원의 '요리'를 제외하고는 각 컨텐츠의 특성도 드러나지 않고, 심지어 차별성조차 두드러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이 정규 방송이 되기 위해서는 각자 출연자의 차별성있는 콘텐츠에 대한 준비가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김구라의 방송이나, 김영철의 방송은 그 자체로 재미가 있었고, 심지어 유익하기 까지 했지만, 정작 실시간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것에서 보여지듯이, 이런 개인 방송에 접근하는 시청자층의 특성이 연령대나 관심 분야에 한계가 있다는 면에서 또한 프로그램의 과제로 남겨진다. 결국은 요즘 트렌드가 되고 있는 '먹방'이나, 아이돌의 민낯이나 망가짐이 관심을 끈다면, 결국은 인터넷 방송의 폐해라고 하는 자극적인 경쟁을 넘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인터넷 방송의 묘미인 실시간 시청자들과 1인 bj간의 소통의 묘미를 제대로 살려내는 것이 결구 <마리텔>이란 프로그램의 특성인데, 그 면에서 역시 아직 <마리텔>은 숙제를 남긴다. 실시간 시청자들의 반응을 전달하기 위해 프로그램은 말 풍선이나, 접속수에 따른 벌칙 등을 도입해 그 반응을 전하기에 고심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가장 큰 관건은 bj들이 시청자들과 얼마나 호흡하는가가 인터넷 방송의 묘미인데 이런 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한 출연자들은 그 점에서 미흡했다. 시청자들이 '노잼'이라는 반응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실시간 시청자들의 세세한 반응에는 둔감했다. 오히려 백종원이 요리를 하면서 자신이 볶은 간짜장을 '아스팔트'라 지적한 시청자들의 반응에 자연스레 반응한 반면, 초아 등은 그저 자신이 준비해온 것을 보여주는데 급급하여, 실시간의 '호흡'을 간과했다. 



신선한 시도가 고정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1인 bj의 방송을 도입, 예능의 새로운 영역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마리텔>은 신선했다. 그 신선한 시도만큼 화제도 되었다. 하지만, 첫 회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것과 달리, 2회에 이르러서는 결국 백종원의 '요리'만이 득세를 하는, 마지막 즈음에는 모두가 손을 놓다시피한 컨셉에 대해서는 좀 더 다각적인 고민과 시도가 필요할 듯하다. 
시청률 1위의 수상 상품이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1분 역시 특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1분을 자신의 아내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으로 승화시킨 백종원이 있었기에 특별한 1분이 되었다. 

정작 인터넷 방송의 시조라 했던 김구라가 인터넷 방송에서 장기였던 '욕'을 버리자 평범해져 버렸고, 예능에서 입담으로 날렸던 김영철이나 홍진영은 고전했다. 트렌드인 '요리'를 통해 자신만의 장기와 평범한 1분 소개 시간에서도 진심을 끌어낸 백종원같은 출연자, 그리고 단박에 시청자들의 눈기를 사로잡았던 초아와 같은 출연자가 화제가 되었다는 점, 그것이 <마리텔>의 묘미이자, 숙제이다. 
by meditator 2015. 3. 1. 13:13

평균 시청률 13.3%(닐슨), 동시간대 공중파, 케이블, 종편을 통털어 1위, 바로 신드롬급의 인기를 매주 이 프로그램에서 이른바 '차줌마'차승원이 해내고 있는 음식들이 화제가 되고, 차승원, 유해진누리고 있는 <삼시세끼>어촌편이 이뤄내고 있는 기록들이다.

, 그리고 새로이 합류한 손호준등이 보이고 있는 인간적인 매력에 대한 극찬이 이어진다.

 


 

<삼시 세끼> 어촌 편의 매력

<삼시 세끼> 어촌편은 <삼시 세끼> 농촌 편에 이어 말 그대로 삼시 세끼를 해먹는 프로그램이다. 농촌으로 간 이서진과 옥택연이 그들이 함께 했던 드라마에서처럼 형제애를 보이며 매주 방문하는 게스트들과 함께 정선 텃밭에서 거둬낸 자연 먹거리로 '삼시 세끼를 해먹는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어, 만재도로 간 어촌편은, 텃밭 대신, 보다 광활한 바다라는 '텃밭'을 이용하여 삼시 세끼를 꾸려나가야만 했다. 처음 출연자로 정해졌던 장근석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자진 하차하면서 과연 차승원, 유해진, 두 사람만의 조합으로 프로그램이 제대로 풀려 나갈 수 있을까란 우려가 무색하게 어촌편은 '농촌'편을 뛰어넘는 화제성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어촌으로 간 두 남자 차승원과 유해진은 '브로맨스'를 넘어 아예 대놓고 '차줌마'에, '참바다씨'라며 부부 코스프레를 한다. 거뭇한 콧수염에 몸에 착 달라붙은 스키니한 올 블랙 의상에도 무색하게 손이 마를 사이 없이 끼니를 챙기는 차승원에게 이제 더 이상 '차줌마'라는 명칭이 낯설지 않다. 그런가 하면 벌써 고기를 못잡은 지 여러 날 되건만, 매번 허탕을 치면서도 바다를 향하는 '참바다'씨 유해진은 능력없지만 사람 하나는 좋은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 딱 그대로 이다. 그들은 분명 남자와 남자지만, 프로그램에서의 캐릭터는 우리네 엄마 아빠보다도 더 엄마 아빠같다. 이제 거기에 말 잘 듣는 착한 아들 손호준까지 가세하고, 애완견 산체와 애완 고양이 벌이까지 합세하니, 금상첨화다.

 

이렇게 가족이 된 <삼시 세끼>의 세 남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마치 그들이 우리의 가족이나 친지라도 되는 것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더구나 만재도라는 육지에서 6시간이나 떨어진 척박한 자연 환경 속에서 바다에서 나는 재료들을 가지고 만들어 내는 갖가지 먹거리는 물론, 화덕을 만들어서 까지 구워낸 빵에, 도시에서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토마토 케첩까지 만들어 내는 삼시 세끼가 신기하기도 하고, 그만큼의 정성들이 느껴져서 더더욱 그들이 남같지 않다. 까짓 도시에서는 그냥 때우면 그만인 끼니에 온갖 정성을 들여 섬이라는 조건을 뛰어넘어 가족을 위한 만찬을 차려내는데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가족애'를 새삼 느끼게 되어 뭉클해진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정우

이렇게 사람들이 어느덧 차줌마와 참바다씨, 그리고 착한 아들 손호준을 '우리'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삼시 세끼에 위로를 받으면서 부작용도 발생한다. 그들의 진정어린 삼시 세끼에 어울리지 않는 혹은 거스릴는 것들, 혹은 인물에 대해, 마치 우리 가족을 모욕하는 것과 같은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양'이 된 것은 바로 지난 주와 이번 주에 걸쳐 출연한 정우였다.

 

아마도 차줌마네 가족에 대해 그렇게 '애착'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정우'가 보인 행동들이 경상도 남자의 투박한 행동으로 치부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재도와, 거기에 깃들인 차줌마네 가족, 그리고 거기서 묘기에 가까운 음식들을 만들어 내는 차줌마에 대해 '감탄'을 넘어, '감동'을 느끼고 있는 즈음, 그런 배경 지식이 없이 단 하루 동안 만재도를 방문한 정우의 무심한 행동들에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정우의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배를 타고 온 속에 제 아무리 손호준이 설명을 곁들였어도 그 '빵'을 먹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그냥 '빵'이 아니라, 장발장의 눈물겨운 빵 못지 않은 히스토리를 가진 차줌마의 빵이었기에 그런 정우의 거부가 불쾌함을 불러 일으켰다. 그저 선배의 동정이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에, 아마도 <응답하라 1884>가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그 즈음이라면 '쓰레기'처럼 눈치없는 정우라며 예능에 서투르다고 넘겨 주었을 지도 모를 질문 하나에도 사람들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더구나, 그가 출연했던 영화가 구설수에 얹혀 관객들의 반응조차 좋지 않은 상황에서의 결국은 '홍보차' 방문이,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가족'인데 우리 가족을 자기 홍보에 이용하고자 오면서, 태도마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엄마가 잔뜩 고생해서 손님을 대접하려고 하는데, 나이도 어린 손님이 집에 와서 어른 대접도 안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비춰졌던 것이다.

 

그런 논란이 부담이 된 듯 27일 방영분에서는 어떻게든 미운 털이 박힌 정우를 보다듬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다음 날 바로 차승원과 함께 떠나야만 하는 정우에게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설겆이를 해도, 이제야 분위기를 알아챈 듯 차승원 말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봐도, 손호준에게 아쉬움을 문자로 전해도, 이미 그 전회에 박힌, 지난 한 주 동안 그의 행동으로 인해 숱한 게시판을 달구었던 그 논란이 잊혀지기엔 역부족이었다. 언제나 나영석 피디가 해왔던 방식으로, 이서진이나 이승기, 그리고 윤상이 그랬듯이, 논란을 일으키고 반전 매력으로 그것을 뒤짚는 식으로 정우를 그려내보고자 했지만 그러기엔 지난 한 주를 달구었던 '정우'논란을 뒤엎기에 27일 정우의 분량을 너무도 미비했다.

 

오히려 27일 방영분은  '엄마없는 하늘 아래, 휴일을 만끽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여유있는 하루'에 방점이 찍혔다. 정우는 일찌감치 사라져 버리고, 정우의 존재를 넘어, 하루를 비우면서도 노심초사하는 엄마 차승원과, 그런 엄마의 우려는 아랑곳없이, 엄마없는 여유에 한없이 자유로운 아버지와 아들의 한가로움이 시선을 잡는다. 결국 정우는 홍보하러 왔다가, 홍보는 커녕, '쓰레기'로 쌓은 이미지를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고 돌아가 버린 셈이다.

 

 


 

<삼시 세끼> 가족주의의 함정

실제 정우가 어떤 사람일 지는 모른다. <삼시 세끼>의 정우는 지극히 제작진에 의해 편의적으로 편집된 화면에 의해 조장된 이미지이다. 그의 진심과, 진면모와 상관없이, 우리가 된 차줌마네 가족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다, 가족에게 민폐만 끼치고 떠난, 객식구 노릇만 하고 사라진 것이다. <삼시세끼> 농촌 편이 이서진과 옥택연이라는 상대적으로 젊은 주인에, 그보다 나이가 많았던 대부분의 게스트들로 서열이 역순이었다면, <삼시 세끼> 어촌편은 이제는 방조차 각 방을 쓰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 두 분을 모시고 하는 수직적 가족 관계의 예능인 것이다. 정우의 문제라면 그런 분위기와, 그런 분위기에 대한 시청자의 열광적 반응에 대한 사전 준비없이, 6시간 걸려 고생하며 배를 타고 하룻밤을 머물다 간 것이다.

 

여기서 지난 한 주 내내 달궜던 논란이 어쩌면 그저 정우란 사람이 '다른' 것인데, 그것을 다른 것이 아니라,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데, 제작진이 강조한 '가족주의'가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이면에 흐르는 선후배간의 엄격한 서열 또한 무시하지 못할 노릇이다. '가족주의'든 '선후배 문화'든 결국은 그 본질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철저한 '우리'라는 높은 울타리이다. 조금이라도 '우리'와 다를 것 같으면 밀어내어 버리는 철벽같은 '우리'말이다. <삼시 세끼>어촌편은 농촌편에 이어, 퍽퍽하고 여유없는 우리 삶에 제대로 쉼표를 찍어주는 휴식같은 예능이다. 또한 '먹기 위해 사는' 삶의 본질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가족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우리가 잃어버린 것, 우리가 애착을 가진 것들에 대한 복귀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또 다른 '우리'에대한 울타리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되돌아 볼 일이다.

 

by meditator 2015. 2. 28. 06:53

2월 25일 kbs2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첫 회부터 요란뻑적지근했다. 

안국동 강선생이라 불리워지는 요리 선생 강순옥(김혜자 분) 여사의 두 딸 김현숙(채시라 분), 김현정(도지원 분)과 현숙의 딸 정마리(이하나 분), 할머니와 두 딸, 그리고 손녀까지 모계로 이루어진 이 가정에 평지풍파가 일어난 것이다. 



엄마와 딸의 파란, 그 운명적 공통점은?
우선 그 파란의 첫번 째 주인공은 이 집의 둘째 현숙이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 퇴학을 당한 이래 도무지 풀린 일이라고는 없는 그녀, 딸과 함께 어머니 집에 얹혀살던 그녀가 어머니의 집까지 담보로 삼아 투자한 곳에 문제가 생긴다. 죽으려고 해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은 그녀는 이판사판 친구의 돈을 빌어 도박장에서 한 탕을 해서 어머니 돈을 갚아보겠다고 하지만 그 조차도 불법 도박을 근절시키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로 인해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것 같이, 도무지 되는 일이 없는 현숙에게도 유일한 삶의 보람이 있으니 바로 그녀의 딸 장마리이다. 국문학 강사로 전임 자리를 엿보던 그녀, 하지만 학생들의 환심을 사고자 캠퍼스에서 벌인 짜장면 파티가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사석에서 농담처럼 흘린 피라미드식 학생 유인책이 방송을 타고, 마치 전임 자리를 위해 학생들을 학점과 갖은 방법을 낚은 부도덕한 강사가 되어 하루 아침에 강사직에서 짤린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호구지책이었던 논술 학원 강의조차 소문에 발빠른 학부모들로 인해 날아간다. 

이렇게 사고와 말썽으로 범벅이 된 두 모녀에 비해 그래도 여전히 솔직한 입담을 자랑하며 수강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이 집의 실질적 가장 강순옥 여사나, 여전히 싱글이며 후배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지만 그래도 굳건하게 앵커자리에 버티고 있는 현정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첫 회는 주인공 현숙와 그녀의 딸 마리의 수난사로 시끌벅적했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에게 찍힌 이래 현재 어머니의 집까지 날릴 처지에 놓인 현숙과, 오로지 공부를 통해 엄마의 자부심이 되어 대학 강사까지 되지만 하루 아침에 강사직은 물론 논술 강사직까지 날린 마리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녀들이 자신들의 삶을 곧이곧대로 살아보려 했던 '착한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 학생들의 학구열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1등부터 60등까지 성적순으로 앉힌다는 선생님에게 유일하게 부당하다며 반기를 들었던 현숙, 그렇게 원칙을 준수하고자 했던 그녀의 삶은 하지만 거기에서 부터 어긋난다. 선생님은 그녀를 찍었고, 학생들은 그녀를 따돌렸다. 
그녀의 딸 마리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강사로 인문학 강의의 어려움을 사석에서 토로하고, 짜장면까지 사주며 학생들을 독려하려 했지만, 그녀의 의도와는 반대로 학생들을 피라미드식으로 모집하려는 사심어린 강사로 찍혔을 뿐이다. 
엄마인 현숙과, 그녀의 딸인 마리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불행이 바로 엄마인 현숙이 고등학생이던 시대의 이른바 학력을 둘러싼 '경쟁 우선주의'와, 이제, 딸 마리가 사는 이 시대 역시나 또 다른 대학 사회의 '경쟁 우선 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즉 약삭빠르게 옆의 사람이 어떻게 되건 말건 나 한 사람 잘 되면 되는 세상에서, 엄마인 현숙과, 그녀의 딸인 마리는 영 젬병이다. 엄마는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지식한 태도로 결국 신분 상승의 기본적 수단을 제공하는 학교에서 밀려났고, 이제 겨우 인문학 나부랭이를 가르치며 강사 자리라도 유지하려던 마리는 그녀가 가진 생각이 오해를 불러 역시나 또 다른 신분 보증의 수단인 대학 사회에서 밀려난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착한(?) 현숙과 마리가 불행해지는 이유는, 결국 엄마가 학생이던 시절부터 현재 마리가 사는 세대까지 우리 사회에 일관되게 이어지는 '경쟁'이 내재화된 사회이다. 



착하다지만 착하지만은 않은 그녀들의 행보 
하지만 이렇게 상징적 존재로 등장한 현숙이 1회 동안 벌이는 해프닝은, '착한' 그녀라기엔 어쩐지 '착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의 집까지 담보로 해서 무리한 투자를 벌인다든가, 친구의 돈까지 빌어 도박판에 가담하는 모습은, 비록 그것을 통해 제도권에서 밀려난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의 제한성을 보인다 하더라도, 어쩐지 고지식해 일찌기 밀려났던 현숙의 캐릭터와는 이율배반적이다. 일찌기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말리는 내한한 팝스타의 공연을 보러갔다가 벌을 서는 현숙처럼 말이다. 

이렇게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현숙에게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그녀를 학교 밖으로 밀어버린 결정적 역할을 한 선생님 나말년(서이숙 분)이다. 될성 부르지 않은 학생은 일찌감치 찍어내버려야 한다는 것처럼 가혹하기 한 자신의 교육관을 당당하게 부르짖는 나말년의 소신이, 현숙이란 애매모호한 캐릭터를 추동하는 발연재로 쓰인다. 

그런 면에서는 딸 마리도 마찬가지다. 선의에 의한 것이지만 결과론적으로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소지가 있는 행동을 벌인 마리의 짜장면 해프닝을 통해 마리의 캐릭터 설명하기에는 어쩐지 애매하다. 그를 위해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정황을 부여한 이두진(김지석 분)이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엄밀하게 보면 '착하다'고만은 하기엔 어정쩡한 그녀들, 하지만 단 1회 동안, 돈 날리고, 경찰에게 쫓기고,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가장 현실적인 사건들이, 그녀들, 그녀들의 이후 삶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분명 엄마의 집까지 담보로 삼고, 그 돈을 보상하겠다고 친구 돈을 빌어 도박판으로 향하는 현숙은 이해받기 어렵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가혹한 에피소드는 현재의 허황한 그녀조차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며, 나말년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그녀의 다짐에 동조하게 만든다. 마리의 무리수인 짜장면 파티도, 어렵사리 된 강사직조차 놓쳐버리고 논술 강사직까지 잃은 채 초라하게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그녀의 모습으로 마음을 돌리게 만든다. 과정이야 어떻든 가진거 다 잃고 이제 식구들마저 거리에 나앉게 생긴 현숙네 가정에 닥친 폭풍, 그 폭풍의 운명성이 삶의 희노애락에 시달려 본 동년배들의 시선을 끌 가능성이 높다. 
by meditator 2015. 2. 26. 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