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채시라, 도지원 등 출연진의 면모가 심상치 않다 했더니, 방영 2주만에 일곱 개의 인격의 변주에 충격적 과거사까지 밝혀진 <킬미 힐미>의 시청률을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넘었다.(목요일 기준 닐슨 전국 기준, <킬미 힐미> 9.8%, <착하지 않은 여자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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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하지 않은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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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타깃층 공략에 성공한 <착하지 않은 여자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주인공들의 면면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tv 리모컨의 향배를 쥔 이른바 '아줌마'층을 노골적으로 공략한 드라마이다. 
주인공 김현숙(채시라 분) 도박장까지 넘나드는 독특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되는 일이 없으며 지금도 역시나 되는 일이 없다'며 억울해하는 전형적인 아줌마들의 억눌린 정서를 대변하는 말을 종종 내뱉음으로써 이 드라마가 특정인 김현숙이 아니라, 아줌마들 공통의 정서에 기반한 드라마임을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심지어, 과거에 되는 일이 없었던 사연으로는 독특하게도 입시 지옥 속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혼이어서 선생님에게 눈밖에 나는 바람에 학교 밖으로 내처지게 된 공감의 역사를 도입한다.
그런가하면 늘 잘난 언니가 되어 못난 동생의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김현정(도지원 분)은 여자들의 공공의 적, '나이'앞에 장사가 없음을 대번에 증명함으로써 또 다른 공감 코드를 획득한다. 
뿐만 아니라, 채시라의 엄마 역인 김혜자가 극중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로 과거 그녀의 남편을 빼앗은 장모란(장미희 분)을 등장시킴으로써 이른바 '조강지처'의 고뇌와 한을 극중 갈등의 축으로 끌어 들인다. 
물론 극중 채시라의 딸 정마리 역에 이하나가 등장하여 송재림, 김지석 등과 삼각관계를 펼칠 예정이지만, 실제 극중 정마리의 분량도 아직은 미미할 뿐더러, 방송작가로 엄마의 과거를 추적하는 일을 맡음으로써 주인공 채시라의 사연을 채워주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렇게 세대별 연령별로 아줌마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코드로 꼭꼭 채워넣은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채시라, 김혜자, 도지원 등의 호연에 힘입어, 거기에 김인영 작가의 내공있는 '스릴러' 방식의 스토리까지 곁들여져 단 2주 만에 화제의 드라마 <킬미힐미>을 제압한다. 

<킬미힐미>는 '차도현입니다'라는 대사가 복선이었음을, 승진가의 숨겨진 비밀을 통해 드러낸다. 결국 차도현과 오리진은 승진가의 비극 속 희생자로 만나야 할 운명이었음을, 만나서 그들의 억눌린 트라우마를 함께 풀어야 할 '동지'였음을 절정의 <킬미 힐미>는 밝혀낸다. 하지만 여전히 7개의 인격이 난무하는 드라마는 흥미진진하면서도 때로는 기괴하게 느껴지는 낯설음을 극복하기 힘든 면이 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기인한 두 주인공의 고통은 분명 그들이 함께 눈물을 흘릴 때마다 거기에 공감하는 누군가는 그로 인해 함께 치유받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진전이 없이 과거에 얽매여 '내내 징징 짠다'는 지겨움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시작부터 도박판을 전전하다 홀홀 단신 야반 도주에서 부터 검찰 난동에, 과거 선생님과 동창 들 앞에서 '무릎을 끓라'며 도발하는 여주인공의 다이내믹한 활약에 비하면 <킬미 힐미>가 동심원을 그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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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하지 않은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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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이라기보다는 세대별 tv시청 양극화 현상
하지만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선전이 단지 작품의 재미나, 우월함으로 설명되기 힘든 면이 있다. 젊은 층들이 즐겨 보는 '티빙' 등의 경우에는 실시간 점유율이 <킬미 힐미>가 40%가 넘는 반면,<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10%도 되지 않는다던가, vod 역시 압도적으로 <킬미 힐미>가 높은 점유율을 보이며 심지어 <하이드, 지킬 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점에 이르면,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재미가 더 있다기 보다, 마치 <국제 시장> 처럼 과거 정서에 기반한 tv타깃층 공략에 성공한 것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특히,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영화<세시봉>처럼,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끊임없이 과거 김현숙의 사연을 설명하기 위해, 김현숙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여고생들이 열광했던 레이프 가릿 열풍을 재연한다. 억압적 입시 지옥에 시달리던 김현숙에게 유일한 위안은 레이프 가릿을 흠모하며 그를 좋아했던 것이다. 마치 요즘 청소년들이 아이돌을 좋아하듯 아이돌 스타가 없던 그 시절 김현숙은 레이프 가릿을 통해 자신의 열정을 불사른다. 

하지만 여기서 맹점이 드러난다. 극중 중년이 된 김현숙이 자신의 지금까지의 일생에서 '젊음의 절정'을 레이프 가릿 공연 무대에 불려나가 그의 세레나데를 들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레이프 가릿 등이 아이돌 스타를 갈구하던 여고생들의 로망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레이프 가릿의 내한 공연은 상당한 가격으로 일반적 여고생들이 김현숙처럼 그렇게 쉽게 접근할 공연이 아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는 있었지만 막상 그 공연을 간 사람들은 그래도 부유한 층에 속하는 아이들 중 일부에 국한된 일이었다. 요즘 아이돌 공연 가듯이 그렇게 쉽게 레이프 가릿 공연에 접근할 수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치 <세시봉>이 이제 와 사는 게 넉넉해져서 그 시절 세시봉을 추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세시봉 공연을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젊은 시절에는 사느라 팍팍해져서 세시봉 근처에는 가볼 엄두도 나지 못했던 세대에게 <세시봉>을 그 시절 대표적 문화로 설명하려 하듯, <착하지 않은 여자들> 역시 레이프 가릿을 통해 김현숙의 고등학교 시절을 보편화시키는 일반화의 맹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레이프 가릿 열풍을 통한 당시 세대 문화를 일반화시키려 하듯이 말끝마다 '일찌기 어린 시절부터 되는 일이 없고, 지금도 되는 일이 없다'는 아줌마 일반의 공감을 끌어들이고자 하는 김현숙의 푸념 역시 마찬가지로 일반화의 우려를 지닌다. 하지만, <킬미 힐미>를 보자니 난해하고, <하이드, 지킬 나>를 보자니 재미가 없었던 아줌마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는 일단 성공적으로 보인다. 심지어,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는, 미워했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사랑하는 남편의 존재라던가, 사십 평생 노처년 앞에 등장할 재벌 급의 출판사 사장 등은 이리저리 꼬아놨음에도 여전히 순애보적 환타지에 충실한 행보를 보일 것임을 예고한다. 

오히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역전으로 우려가 되는 것은 시청률표에서 보여지듯이, 중장년 층에 시선을 빼앗긴 공중파 tv 프로그램의 노후화이다. 시청률표의 상위 순위는 대다수 중장년층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들로 채워진다. 심지어 수요일 kbs1의 <생로병사>를 보던 사람들은 목요일이 되자 <착하지 않은 여자들>로 이동하듯이, 건강과, 그들이 공감하는 스토리로 리모컨은 옮겨다닌다. 반면, 젊은 층들이 주로 이용하는 '티빙' 등의 인기 프로그램은, 공중파의 시청률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드러낸다. 공중파 프로그램 시청률 표에서는 보이지 않는 케이블과 jtbc의 프로그램들이 대거 몰려있다. 그 나마 그 중에서 구색을 맞춘 것이 <킬미힐미> 정도이다. 그런 면에서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선전은 '선전'이라 보기 민망한 지점이 있다. 오히려 양극화된 tv 시청 문화가 다시 한번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5. 3. 6.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