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자면 그렇다. 

감자란 그저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먹거리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그 속에 감자 농사 흉작으로 인한 아일랜드의 기근으로 인한 참상과, 오늘날 아메리카를 이루어 낸 이민의 역사가 드러난다. 그저 몇 알 뿌리는 것만으로도 음식의 풍미를 달리만드는 후추의 역사를 훑어보면, 육식을 탐한 서양인의 식탁을 위한 인도 항로의 개발을 위한 각 유럽 국가의 해양 도전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해양 도전은 신대륙의 발견과, 곧 신대륙 원주민의 잔혹사로 이어진다. 이렇게 우리가 쉽게 접하는 먹거리들의 이면을 들추면, 그것을 소비한 인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더 맛있는 먹거리에 집중하다 보니, 우리 식탁에 올라온 그것들의 전사를 쉽게 간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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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맛있는 먹거리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려니 했던 <수요 미식회>는 3회 복고 치킨에 이르르면서, 프로그램의 영역을 '역사'로 확장한다. 야심만만하게, <라디오 스타>를 겨냥한 시도가, 그저 식언이 아닌, 프로그램의 깊이가 느껴진다. 그저 요즘 우리가 쉽게 접하는 다수의 프랜차이즈 치킨이 아니, 굳이 '복고'라는 명칭을 치킨 앞에 붙인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수요 미식회>에서는 몇몇의 맛집을 소개한다. 하지만 복고 치킨의 맛집 소개는, 그저, 예전 방식의 치킨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치킨을 통한 서민 먹거리의 전사를 훑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 시작은, 이제는 한국 소개 책자에도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다는 명동의 치킨집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저 명동의 치킨집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저 전기 구이 통닭에 불과한 그 치킨 집이 당대에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명동에 3층 건물을 세우고, 그곳의 통닭을 들고 가는 것만으로도 마치 '루이비통' 가방이라도 든 듯이 으스댈 수 있었는지의 그 세월을 그려낸다. 
닭 한 마리를 먹는 것이 하루치 일당을 소비하는 것에 맞먹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올라간 닭에 대한 추억은, 시장통에 닭장을 두고,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닭을 잡아 대령하던 재래 시장의 닭집에 대한 추억을 훑고, 학창 시절 소풍이라도 가면 선생님께 대접할 가장 큰 접대가 통닭이던 그 시절의 치킨을 되살린다. 닭이 귀해, 그저 온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닭도리탕이나, 백숙이 가끔 밥상 위에 오르던 시절의 치킨은 어린 김유석에게 눈물나게 먹고 싶은 특식이었던 그 시절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미식회'답게 맛에 대한 평가도 놓치지 않는다. 20대의 박용인이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고 하자, 황교익 평론가는 역시나 냉정한 한 마디를 덧붙인다. 양념과 기름으로 범벅이 된 현재의 치킨이 사실은 얼마나 밋밋하고 맛이 없는 음식인가를 알기 위해서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삭한 외양과, 그 속에 밋밋한 살 맛으로도 감지덕지하던 시절은, 미군 부대 앞에서, 미국의 식문화를 가장 앞장서서 받아들인 의정부 치킨집으로 옮겨가면, 드디어 기름과 본격적인 치킨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저 우리가 치킨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반죽 여하에 따라, 기름에 따라, 혹은 기름을 튀기는 용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음식으로 재탄생될 수 있는가를 소개된 치킨집을 통해 알 수 있게 한다. 

치킨 한 마리가 가장의 권위를 세워주던 시절을 지나, 미군 부대 앞에, 미국식을 흉내낸 치킨집을 넘어, 이제 치킨은, 70년대 문인들의 문학적 산실의 역할까지 맡게 된다. 반포동의 치킨집을 소개하기 위해,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졸지에 '치킨을 기다리는 동안'으로 변형되었고, 실제 그 집에 즐겨 들렀던 김현 시인의 영전에 바치는 황동규 시인의 시가 읊어졌다.

대설날-고 김현에게
(전략)
오늘 양평으로 네 잠들어 있는 곳에 가/찬 소주 대신/가슴에 품고 온 인간 체온의 청주 한 잔 땅에 붓노니/ 그 땅이 네 무덤이건/ 우리가 자주 들린 반포 치킨이건/ 그냥 지나쳐 버린 어슬어슬 산천이건 
(후략)

겨우 치킨 한 마리 따위를 소개하기 위해, 당대의 최고 문인의 시가 감히 동원되는 것이 하등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다. 오히려, 그저 치킨이 아니라, 출연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입맛이란, 맛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추억의 그것의 다른 명칭이라듯이, 치킨을 통해, 근대화의 역사 속에,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기에, 김유석이 '내 스탈이야'라고 고집하는 의정부의 치킨 집과, 20대의 박용인이 고집하는 학교 앞 분식집의 맛을 재현한 신사동의 치킨집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살아온 세대와 추억이 다름의 결과도 쉽게 이해 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또한 거기서 더 나아가 굿굿하게 치킨은 맛이 없다를 주장하는 황교익 평론가의 원칙론과, 그러기에, 거기에 우리 고유의 양념을 곁들여 세계인이 반하는 또 하나의 한류를 만들어 내는 음식 문화를 주장하는 홍신애 요리 연구가의 주장에 고개가 제각가 끄덕여 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지난 시간 '칼국수'를 통해, 서민의 고단한 삶과, 정치인의 이합집산의 교차로에 있던 칼국수라는 가장 싼 음식이기도, 혹은 귀한 별미일 수도 있는 음식을 들여다 보더니, 이제 '복고 치킨'을 통해, 우리의 음식 문화사의 한 면을 건들여 본다. 가보지 않은 맛집이나 알아볼까 궁금해 들여다 본 프로그램에서, 뜻밖에 잊었던 추억과, 세대 별로 달라진 치킨의 세태까지 엿보게 된다. 맛있는 탐식을 넘어, 문화가 된, 먹거리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5. 2. 5. 05:33

제2의 모래시계라는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월화 공중파 3사 드라마 중 송지나 작가의 <힐러>는 제일 후속작 <빛나거나 미치거나>에도 밀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이제 종영 단 2회를 남겨두고, 80년대에 얽힌 과거사가 모두 밝혀지고, 김문호(유지태 분)는, 썸데이를 통해, 그 진실을 폭로하였건만, 어쩐지 막상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맥이 뚝뚝 끊긴다. 분명 심각하고 진지한 것인데, 그 심각함의 톤을 오래 유지하기 힘들다. 


이렇게, 80년대의 악연이 풀어지는 가운데,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두 남녀가 있다. 자신의 아버지 서준석(지일주 분)이 사랑하게 된 채영신(박민영 분)의 아버지 오길한(오종혁 분)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된 서정후(지창욱 분)는 괴로워한다. 역시나 자신은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 자책한다. 하지만, 김문호의 도움으로, 그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살인자도 비겁한 사람도 아니었다는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 역시나 그저 버림받은 줄로만 알았던 채영신 역시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서정후처럼 한때는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역시나 사랑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한다. 
그런데, 바로 이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이 문제다. 
극 초반, <힐러>라는 작품명답게, 스파이처럼 동분서주 신출귀몰하던 서정후는, 자신이 힐러라는 걸 채영신이 알게 되고, 그녀와의 사랑이 결실을 맺자, 힐러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대신, 채영신 지킴이로써, 그녀의 곁에 머물고자 한다. 

80년대 부모들의 얽힌 인연이 낳은 서정후와, 채영신의 슬픈 운명,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분명, 그 사랑이 역사성까지 지니며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는, 역사적 명제를 풀어가고 있는 극의 사명을 잊은 채 종종 '로맨틱'물이 아닌가 싶게 전혀 다른 드라마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사부의 죽음을 맞이하고 사부가 만들어 준 아지트에 칩거한 서정후, 힐러를 찾아간 영신, 거기까지는 구원의 여인으로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아지트에서 두 사람이 벌이는 애정 행각은, 극의 흐름을 끊은 채 마치 무릉도원에 간 사람들처럼, 세상에 없는 행복한 애정씬을 보인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심각한 사명을 띠고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거침이 없다. 심지어, 2월 3일 자 방영 분에서는, 어르신의 집에서 잠이 든 서정후를 찾아 다짜고짜 어르신의 집으로 뛰쳐 들어간 영신이, 졸고 있는 정후를 자기 무릎에 뉜 채 한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거기가 어딘가, 목숨이 촌각을 다툴 수 있는 사지인데, 거기서 한가롭게 잠에 취한 서정후를 무릎에 눕히고, 영신은 애정에 겨운 대화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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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송지나 작가는, 심각한 역사적 이슈를 드라마로 풀어내는 무게감을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로 완화시키고자 하는 듯하다. 하지만, 최근 진행되고 있는 <힐러>에서, 서정후, 채영신의 사랑 이야기는 그런 완충적 역할을 넘어서 극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볼 정도가 되고 있다.
마치 드라마는 '미드' 등에서 , 전형적으로는 <007> 시리즈에서 흔히 보이듯, 적나라한 남녀의 애정씬을 염두에 둔 듯, 두 사람의 애정씬을 소모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흔히 '미드'의 소모적 눈요기씬이라기엔, 지금 <힐러>라는 드라마에서 서정후와 채영신의 애정씬은, 부모 세대의 비극으로 인한 극적인 사랑의 운명을 넘어서, 극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실제, 2월 3일 18회, 드라마는, 과거, 서정후의 부 서준석과, 채영신의 부 오길한이 함께 정치자금이 오가는 현장을 취재하게 된 경위와, 그 과정에서 오길한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그것을 보고, 서준석은 그것을 알리는 과정에서 어떻게 희생되었는지을 밝혔다. 서정후와 채영신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만들었던 비극의 전사가 18부에 이르러서야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 과정의 목격자, 김문식이, 처음엔 잡혀가서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말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그것을 자신의 입신양명에 이용하기 위해 적극적이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그려 냈었다. 오늘날 서울 시장 후보로 나와서, 80년대 자신이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며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 된 김문식의 전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동생 김문호는, 그런 형의 이면을, 그리고 형의 비겁으로, 억울한 죽음이 된 형의 친구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형들의 죽음을, 게릴라 형식으로, 썸데이를 통해 드러낸다. 
하지만, 이런 결정적 사건들이, 드라마에서는, 서정후와 채영신의 사랑 이야기에 눌려 조역처럼 작용한다. 마치, 그런 과거의 사건들은 두 사람의 애정을 가렸던 한 점 구름처럼만 여겨진다. 

그리고 <힐러>의 진짜 딜레마는 이것이다. 송지나 작가는, 80년대 이 땅을 뒤덥은 비극적 역사와, 거기에 임했던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의 역사를 통해, 그들, 그들의 동생, 그리고 그들의 아들, 딸 등을 통해, 해결되지 않은 역사가 오늘에 있어서도 어떤 질곡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가를 풀어내고자 하는데, 정작 드라마는, 방점을 어디에 찍을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가 내세운 주인공은, 20대의 젊은 남녀들이고, 그리고 그들이야 말로, 어른들 세대의 질곡을 해결할 세대라는 걸 알면서도, 정작 그것을 풀어내는데, 젊다보니 사랑도 해야 하고, 뭐 그런 처지다. 그렇게 젊은 세대를 전면에 내세우다 보니, 정작, 지금 과거의 질곡을 풀어내기 위해, 메이저 방송사의 앵커직마저 때려치우고 나와서, 찌라시 언론이었던 썸데이를 통해, 형들이 하던 방송으로 21세기판 해적 방송을 하는 김문호의 도전은 항상 한 켠으로 밀려나곤 한다. 정작, 드라마가 벌이는 싸움은, 거대 언론의 수구가 된 형 김문식과, 그런 형에 대해, 또 다른 방식의 언론을 통해, 실현 가능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문호의 게릴라전인데, 그런 주된 싸움의 방식이, 주인공이 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의 들러리가 되는 느낌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종종 들곤 한다. 차라리, 김문호가 주인공이 되어, 싸우고, 두 남녀 주인공이 거기에 양념처럼 버무려진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다면 좀 더 극의 주제가 살아날 텐데, 번연히 드라마는, 갈 길을 헤맨다. 

거기에 덧붙여, 이른바 '어르신'이라는 상징적 악의 존재도 피상적이다. 어르신(최종원 분)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80년대도 그렇고, 21세기가 된 현재에도 그렇고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어르신으로 존재하는, 그 정체가 불분명하다. 권력의 파워가 몇 번을 명멸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피상적인 '어르신'으로 대한민국의 권력을 규정하는 것 역시 <힐러>의 딜레마이다. 18회, 드디어 썸데이에 대한 검찰 , 세무, 심지어 썸데이 대표 부인이 하는 치킨집에 대한 세금 폭탄 등의 구체적인 제제가 등장하지만, 그 이전에는 맘에 들지 않으면 없애 버리는 원천적인 응징이 드라마의 주를 이루었다. 현대 세계의 시스템화된 악에 대해 드라마는 피상적으로 밖에 그려내지 못한다, 그러니, 결국, 다시 18회 마지막, 영신 앞에 등장한 해결사 킬러로 극의 돌파구를 해결하려 든다. 이제 세상은 킬러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한 사람 정도는 없앨 수 있는 조직화된 악의 시스템을 갖춘 세상에서, 여전히 <힐러>는 그 예전의 원초적 해결 방식으로,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만들고자 한다. 역사를 논하고자 하면서, 정작 역사의 변화에 대해 둔감하다고나 할까. 이런 점들이, 드라마 <힐러>를 어딘가 붕 뜬 사회 고발극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에서 부터 이어진 대한민국의 비리 권력의 역사, 그리고, 거기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그리고 지금도 도전 가능한 언론의 기능, 그리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시도하고자 한 송지나 작가의 열정이 무색해 지지는 않는다. 부디, 마지막까지 그 본진을 잃지 않고, 훌륭한 마무리를 해주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5. 2. 4. 11:11

마지막으로 김준(이수혁 분)을 찾아간 장희태(엄태웅 분)는 '고맙다'고 말한다. 

그저 '아내'와 어머니'로만 바라보았던, 자기 꺼였던 사람들을, 김준으로 인해, 한 여자,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일리있는 사랑>의 주제가 단적으로 표현된 장면이다. 

희수(최여진 분)가 죽은 후, 희수의 빈 침대에 누워 본 일리(이시영 분) 역시, 나즈막하게 말한다. 나도 희수 언니와 다르지 않구나, 지난 7년간 숨만 쉬고 살고 있었구나 라고 말한다. 
흔히들 말하듯 결혼이 사랑의 감옥이라 표현되듯이, 김일리는, 장희태의 아내로 산 7년 동안 그녀 김일리를 죽이며 살아왔다는 것을 7년이 지난 후, 김준을 사랑하고 나서야, 그리고 그 사랑의 댓가를 혹독하게 치루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장희태는 너무 미안해서 그저 사랑이라고 치부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일리 역시 김준을 만나 그 마지막 날, 역시나 김준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장희태의 나레이션은 말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다 저마다 '일리'가 있다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일리있는 사랑>이 사랑을 일리있게 만들기 위해 희태의 어머니에게는 '치매'라는 천형을 선사했고, 장희태와 일리에게 죽음의 문턱에까지 갈 뻔한 위기를 주었다. 결국,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빠졌던 남자에게 빠지는 해프닝을 벌이고, 각 상대방이 죽음으로 세상을  떠날 위기에, 그리고 가족 중 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일리의 사랑은 일리있는 사랑이 되었고, 부부는 성숙해 질 수 있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리있는 사랑'은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엑스포츠 뉴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이란 상투적인 주례사 이후, 아니,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하지 못해도, 심지어 요즘은, 연애를 하기만 해도, '내꺼'라는 소유욕이 발동하여, 데이트 폭력이란 단어마저 상용화되고, 내 껀데 하면서 칼부림이 심심치않게 뉴스 시간을 차지하는 세상에, <일리있는 사랑>의 주장은 허무맹랑하기까지 하다. 백 번을 양보해도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하게도 된다. 

하지만, <일리있는 사랑>은 우리가 딛고 사는 그 단단한 고정 관념의 껍질을 톡톡톡톡 부숴버린다. 아주 단단한 껍질이, 아주 미세한 송곳으로 구멍이 뚫리듯, <일리있는 사랑>의 나직한 수사들을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결혼이라는 제도로 우리가 치부하고 있는 것들의 속내가 얄궃게 드러난다. 

'안드로'라는 별명이 어울렸던 소녀 일리가, 지켜주고 싶은 남자 희태를 만나, 7년을 아내로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 바람둥이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오랜 시간 병석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은 딸을 여전한 마음으로 거두는, 하지만 며느리에게는 깐깐하기 이를데 없는 시어머니가 한때는 멋진 남자에 가슴 설레하던 꽃다운 처녀였다는 사실을,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평범한 명제 뒤에 숨겨진, 한 여성의 좋게 말해 개성의 상실, 실제로는 자아의 상실을, 현재의 결혼이라는 제도는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쉽게 용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증언한다. 
그리고 그것을 남자들은, 그저 미안한 마음 한 켠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지그시 짖눌러 왔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불륜이란 방식을 통해, 아내와, 어머니가, 실은 여전히 피가 펄떡 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렵게 드라마는 증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런 역설적인 증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 부부의 화해에 이르렀지만, 쉽게 아내의 어깨에 올라가지 못하는 희태의 손처럼, 드라마를 보았던 사람들에게 '공감'의 수순을 밟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한, 내 꺼라는 벽은 숭숭 구멍이 뚫려도 견고하다고 치부되니까. 

<일리있는 사랑>의 화법은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다르게 보고자 한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운 희수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것을, 가방을 메고 소풍을 떠난 것으로 묘사한다. 마치,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던 천상병 시인이,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라는 표현에 버금가는 설정이다. 7년을 병석에 누운 희수와, 그 희수를 돌보는 일리가, 정신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설정도 독특하다. 결국, 드라마는, 두 사람의 처지가 그리 다르지 않았음을, 두 사람의 정신적 교감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그런 교감이 있었기에, 일리의 7년간 숨만 쉬고 살았구나 라는 토로가 가슴에 다가온다. 마찬가지로, 한 마리의 펄떡이는 고등어를 바다로 돌려보내주는 여린 희태이기에, 아내의 불륜에 어쩌지 못하면서도, 결국 인지상정으로 돌아볼 수 있는 인간 희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리있는 사랑>은 유의미했다. 
모두가 그렇다고 믿는 구멍 뚫린 결혼이란 제도 속에 몸담고 사는 세상에서, 뻔히 그렇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기에, 그 예전, <연애시대>에서 이혼한 동진(감우성 분)과 은호(손예진 분)가 오래도록 서로에게 '자기 꺼'라는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도너츠 집에서 종종 만나, 서로를 탐색하고 연구했듯이, 이혼 후의 결혼 후일담으로 가기 전에, <일리있는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일리의 봄날 같은 사랑을 통해, 일리와 희태의 결혼을 짚어보고자 하였다. 두 사람을 칭칭 감았던 붉은 실을 결국은 하나씩 매듭을 풀어, 결국은 서로의 몸에 감았던 실을 풀어 버렸던 동진과, 은호와 달리, 일리와 희태는, 풀어냈던 실을 다른 색깔의 실로 다시 감기 시작했다. 


길 건너의 일리를 보고, 오랜만에 시선도 못마주치고 고개를 돌리는 희태처럼, 우리가 살면서, 가증스런 신혼 코스프레가 아니라, 진정으로, 서로에게 다시 가슴 설레이는 기회를 살면서 얼마나 다시 가질 수 있겠는가, 그저, 동거인으로, 애 엄마로서, 애 아버지로서, 한 가족으로 익숙해지거나, 그걸 못견디면 헤어지기 전에, 아마도 그건, 일리도, 희태도, '내꺼'라는 소유욕의 현신, 결혼 제도를 넘어, 불륜이라는 세간의 잣대를 넘어,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시간의 선물을 받은 것이리라. 
그러니, '미친 놈', 미친 년'이라 치부하기 전에, 우리는 누군가를 내꺼 아닌 존재로 얼마나 이해하고 사는지, 찬찬히 생각부터 해볼 일이다. 


by meditator 2015. 2. 4. 09:27

바닷가 마을에서의 리얼리티 예능으로 단 2회 만에 <삼시세끼> 어촌편은 케이블임에도 시청률 10%를 넘보며 화제의 방송이 되었다. 하지만 물가로 간 예능은 <삼시세끼> 어촌편만이 아니다. <정글의 법칙 with 프렌드>는 신비의 섬 팔라우를 찾았다. 그뿐이 아니다. 1월 23일 첫 방송을 시작한 <용감한 가족> 역시 캄보디아의 톤샤레프 호수를 찾았다. 공교롭게도 금요일 밤 찾아든 세 편의 예능이 모두 물가를 프로그램의 배경으로 삼았다. 물가를 배경으로 한다지만, 각 프로그램 별로 다른 특징을 지닌다. <삼시세끼> 어촌편이 목포에서 배를 타고 여섯 시간이나 가는 외딴 섬 만재도에서의 삼시 세끼 먹방에 촛점을 맞춘다면, <정글의 법칙>은 언제나 그래왔듯, 살길이 막막해 보이는 정글에서의 날 것으로서의 생존기를 담았다. 그렇다면, 후발주자인, <용감한 가족>은 어땠을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용감한 가족>의 출연진은 가상의 가족 형태를 띠고 구성되었다. 시골 머슴 출신 아버지 이문식, 심태후라 불려지는 카리스마 넘치는 엄마 심혜진, 언제나 씩씩하고 밝은 맏딸 최정원, 자상한 아들 강민혁, 그리고 막내딸 설현에, 천덕꾸러기 삼촌 역할을 하는 박명수까지, 대가족이, 캄보디아의 거대한 호수 톤샤레프의 수상가옥 촌에 둥지를 튼다.

 

'가족'의 형태로 구성된 예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mbc에서 <사남 일녀>를 통해 연예인들이 형, 동생이 되어,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들을 만나러 간다는 예능을 구현했었다. 현재 화요일 밤 11시 sbs의 <룸메이트>도 한 집에 살면서 대안 가족을 이루는 연예인 예능을 지향하고 있다. 그와는 좀 경우가 다르지만, 장근석이 하차한 ,<삼시세끼>의 경우도, 차승원과 유해진을 차줌마와, 바다 사나이로 캐릭터를 만들면서, 부부의 상으로 맞추어 내고자 유도한다. 그런 면에서, 출연진의 면면은 새롭지만, 야심차게 시도한 <용감한 가족>의 가족 형태가 결코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선하지 않지만, 그 가족들이 보이는 모습은 새로운가? 안타깝게도, '수상 가옥'에 산다는 것 외에는 다 어디선가 본 것들이다. 동남아 국가에서 말 한 마디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으며 사는 모습은  이미 강호동을 앞세운 <맨발의 친구들>을 통해 그다지 대중적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바 있다. 거기에 톤샤레프 호수의 수상 가옥이란 조건은 신선하지만, 낯선 가족들이 모여 이물감을 느끼다, 함께 밥 해먹고 부대끼며 어느 틈에 한 가족처럼 변해가는 모습은, 이미 <룸메이트>나, 심지어 <나 혼자 산다>에서 조차 익숙한 광경이다. 톤샤레프 호수라는 삶의 조건에서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아야 하고, 그래서 첫 날 허탕을 치고, 그곳에서 신기한 고기잡이 과정을 담는 것은, 굳이 외국을 나가지 않아도, 이미 <삼시 세끼>에서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아쉽게도, 출연진의 면면과 함께 하는 호흡이 적절하지도 않다. 출연진 각자는 충분히 개성이 강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만, 2회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이 사람들이, 연기를 하는 것인지, 리얼리티를 하는 것인지, 애매한 어색함들이 프로그램을 가득 메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색한 사람은 뜻밖에도 예능에서 잔뼈가 굵은 박명수이다. 새삼 유재석이 그의 옆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그가 보이는 각각의 액션, 리액션은 어색하거나, 튀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도무지 주변에서 조율해주거나, 해명해 주는 사람이 없이, 그의 행동은 늘 생뚱맞을 뿐이다. 설현의 머리를 밀치는 해프닝도 그런 무리수의 연장 선상에서 발생한 것이다. <무한도전>에서야 그런 박명수가 이해되고 그러려니 하지만, 새로운 가족, 새로운 환경에서도 여전히 <무도>의 거성처럼 행동하니 불편한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예능도, 시트콤도 아닌 어정쩡한 분위기를 내리 연출하고 있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이 연기 잘 하는 이문식과 심혜진, 그리고 똑부러지는 최정원에, 주말 드라마등을 통해 호의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는 강민혁, 그리고 아이돌 그룹이지만 연기도 시작하고 있다는 설현이라는 멤버를 데리고, 이 어디선가 본듯한 뻔한 리얼리티 예능을 만들 것이 아니라, 차라리 드라마를 한 편 찍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그런 생각을 강력하게 하는 건, 막장이라 해도 시청률이 무난하게 나왔던 <사랑과 전쟁>을 폐지하고, 일요일 밤 늦게라도 감지덕지했던 <드라마 스페셜>조차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게 만든 상황에서, 겨우 만들어 낸 것이, 이렇게 어정쩡한 예능이기 때문이다. 2015년에 들어, kbs는 야심차게 새로운 예능들을 선보이고 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드라마 스페셜>을 대신할 만한 깜냥이 되는 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고전 중인 주중 kbs 드라마의 미래를 위해서도, 어설픈 예능 여러 편보다, 신선한 <드라마 스페셜> 한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나영석 피디의 예능을 통해 연기자들의 새로운 면이 부각되면서, 너도나도 다수의 연기자들이 예능의 수혜를 받고자 산과 바다로, 그리고 심지어 군대로까지 뛰어든다. 가수들이 자신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예능이 필수가 되어가듯이, 이러다 연기자도 비슷한 상황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을 알리려는 연기자들, 그리고 좀 재밌어 보이는 연기자들이 너도 나도 예능의 한 자리를 꿰어찬다. 하지만, 복벌복의 결과를 낳고 있다. 지명도를 높이는 것이 광고로 이어질 지는 모르나, 그것이 곧 연기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용감한 가족>이 톤샤레프라는 이방의 수상가옥을 배경으로 뻔한 예능을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찮게 캄보디아에 살게 된 가족의 생존기였다면, 조금 더 신선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실소가 나오는 계란 한 알을 둘러싼 가족의 신경전도, 아메리카노 한 잔을 갈구하는 정황도, 좀 더 실감나게 다가왔을 것이다. 뻔히 짜고 치는 예능인 줄 알면서, 지레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가족의 위기를 어거지로라도 만들려고 애쓰는 <용감한 가족>이 하나도 용감해 보이기는 커녕, 안쓰러워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 31. 06:25

공교롭게도 mbc와 sbs의 수목 미니 시리즈에는 다중인격 장애를 지닌 재벌남들이 등장하여 경쟁을 벌이고 있다. sbs 의 <하이드 지킬 나>의 웹툰 원작가인 이충호 작가가 표절을 주장하고 나설 만큼, 두 드라마는 동일하게, 다중인격, 정확하게는 해리성 인격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지닌, 그러면서도 재벌가의 자제인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충호 작가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킬미 힐미>가 앞서 시작한 선점 효과에 더해, 자그만치 7중 인격의 캐릭터를 앞세워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중이다. 그에 반해, <하이드 지킬 나>의 경우, 현빈, 한지민 등 스타를 앞세워 화제몰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첫 방을 선보인 후, 상대적으로 밋밋한 캐릭터와 연기로 인해, 동시간대 꼴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1위를 하거나, 꼴찌를 하거나, 결국 공중파의 수목 드라마는 세 개 중, 두 개가 이상 인격을 가진 재벌남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킬미 힐미>건, <하이드 지킬 나>건 채널을 돌리다 문득, 왜 우리가 이런 정신 이상 재벌남 이야기나 보고 있어야 하는가? 란 반문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공중파만이 아니다. 미생의 후속 작품으로 tvn에서 한참 방영 중에 있는 <하트 투하트> 역시 외관상으로는 정신과 의사인 남자 주인공 고이석(천정명 분)이 대인기피증 차홍도(최강희 분)를 치료하는 듯 보이지만, 기실 들여다 보면, 차홍도가 없으면 환자 조차 치료할 수 없는 고이석의 정신적 문제가 만만치 않다. 게다가 고이석 역시 직업은 정신과 의사이지만, 자전거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고상규 회장의 단 하나뿐인 손자라는 점에서, 이른바 재벌가 남주의 계보를 잇는다.

 

드라마 킬미힐미 인기. 킬미힐미 황정음과 지성이 계약을 맺고 함께 살게 됐다. /MBC 킬미힐미 방송화면 캡처

the fact

 

여심을 흔드는 재벌가 남주의 등장은, 이미 로맨틱 코미디를 비롯하여 여성들을 주시청층으로 하는 드라마에서는 빼놓을 없는 설정이 되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트렘펫을 불며, 거기에 매너까지 완벽했던 강풍호(차인표 분)라는 캐릭터를 통해 신출내기 차인표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1994년작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만 해도 재벌가 남주는 가난한 여성을 위해 준비된 키다리 아저씨였다. 그러던 것이, <하이드 지킬 나>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빈의 히트작이 된 2010 <시크릿 가든>에 들어서면, 재벌가 남주는 가진 것은 많되 '찌질하기' 이를데 없는 보살펴 주어야 하는 캐릭터로 변모되었다. 그러던 것이, 2013년 <주군의 태양>의 주중원(소지섭 분)을 거치며 정신적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이제 아예 대놓고 해리성 장애라는 반사회적 정신적 증후군의 환자로 등장하였다.

 

그런데 그런 해리성 장애를 가진 주인공에 대한 반응이 갈린다. 원작 <지킬앤 하이드>를 전복시킨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여자의 손을 물고, 자신을 쫓아오는 여주인공을 엘리베이터에서 밀어버리는 싸가지 없는 행동으로, 비도덕적인 캐릭터로 등장하여, 원성을 사는 것과 달리, <킬미 힐미>의 차도현은, 재벌가의 불우한 혼외 자식으로 뒤늦게 재벌가에 입성한 사연에, 기억을 잃은 어린 시절의 상처가, 감당키 힘든 7인격을 만들어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느라 전전긍긍하는 존재로, 애처로운 존재로 대접받는다.

구서진이 '땅콩 회항'의 주인공인 모 재벌가 자제의행동을 연상케 하는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비난을 사는 반면, 차도현은 극중에서도 그를 설명하는 단어로, 책임감이란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할 만큼, 자신은 물론, 자신의 나머지 인격에 대한 뒤치닥거리를 마다하지 않는 존재로 설정한다.

 

하지만 실제 '땅콩 회항' 사건이, 물론 그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할 사건임에는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그 사건에 손가락질을 하는 동안, 정작 어쩌면 더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정치적 사안들이 물에 물 탄 듯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처럼, 그저 구서진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불쾌감으로, 혹은 차도현이란 캐릭터에 대한 연민으로, 실은 구서진이나, 차도현이나, 한 기업의 중요한 직책을 맡기에는 심각한 결격 사유를 가진 인물이란 사실을 간과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해리성 장애'는 정신과 질병 중에서도 중증 질환으로, 과연 이런 질환을 가진 인물이, 한 기업, 놀이 동산이나, 엔터테인먼트라는 공익적 성격이 농후한 사업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가에 대해, 드라마는 전혀 반문하지 않는다. 도덕적인가, 책임감있는가라는 그 일개인의 자질 문제에 대해서만 논의가 분분할 뿐, 기본적으로 그 기업이 가진 본질적 전횡과, 부조리에는 무감각하듯이 말이다. <하트 투 하트>에서는 자신의 질병을 숨긴 채, 고이석은 차홍도를 대동한 채 환자를 진료하는 상황을 재연한다. 물론, 드라마이기에,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상황이지만, 현실 사회에서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드라마 속에서 재벌이라는 조건에서 용인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보아야 하겠다. 차라리 주말 드라마의 부도덕한 그래서, 지탄받고,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등장하는 재벌들이 더 현실감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런 공적 직함을 가질 수 없는 재벌남과 사랑에 빠지는 여주인공들이다.

<하이드 지킬 나>의 여주인공 장하나(한지민 분)는 서진의 전속 테마 파크에 소속된 서커스단의 단장이자, 배우이다. 하지만, 첫 회, 당장 구서진에 의해 서커스단의 해체를 통보받는다.

<킬미힐미>의 여주인공 오리진은 정신의학과 레지던트 1년차이다. 하지만, 차도현의 승진그룹의 입김으로 6개월 휴직 처리를 당한다.

<하트 투 하트>의 차홍도는 어떤가, 대인기피증 치료를 위해 고이석을 찾아간 환자이다.

드라마 속 그녀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을'이다. 하지만, 을인 그녀들은, 을로써의 불이익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갑'인 남자 주인공들과 사랑에 빠질 예정이다. 심지어, 그들의 정신적 상처를 보듬어 주고, 감싸안아주고, 치유해 줄 예정이다. 정신과 의사인 <킬미힐미>의 오리진이야 그렇다 치고, 서커스단을 이끄는 장하나와, 사람만 만나면 얼굴이 빨개지는 차홍도라고 예외는 아니다.

물론 이런 갑을 관계를, 을의 정신적 우위, 도덕적 우위를 통해 설명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회에서, '을'로써의 분노와, 저항을 해야 할 존재들이, 드라마 속에서는 갑을 보다듬어 주고, 치유하고 있으니, 오히려 그들로 인해 상처받고, 치유되어야 할 존재들이, 오히려 저들을 치유하는 존재로 등장하니, 제 아무리 '사랑'이야기라지만, '을'인 그녀들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이건 뭐, '계급 화해'라기에도 무색한 퍼주기가 아닌가 말이다.

 

물론 드라마는, 재벌이라는 캐릭터, 혹은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남자 주인공을 넘어, 정신적으로 혼돈스런 세상에서 여전히 순수한 그 어떤 사랑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 대상이, 재벌, 그것도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재벌을, 을의 위치의 여성들이 구원해 주어야 한다는 이 전형적 구도는, 청년 실업이 짖누르는 21세기의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는  너무도 허황한 설정이 아닌지,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by meditator 2015. 1. 30. 06:33

우리집에선 끼니 때가 되면 자연스레 리모컨을 찾는다. 리모컨이 반찬이나 밥이 아닐진대, 마치 그것이 없으면 밥을 먹을 수 없은 듯 온 식구가 수저를 들지 않고 리모컨을 찾을 때까지 기다린다. 리모컨을 찾아 tv를 켜면, 대부분 채널의 제 1순위는 올리브 채널이다. 그리곤, <오늘 뭐 먹지?>를 하는지 확인하고, 이 프로그램이 방영하고 있으면 그것을 반찬 삼아, 마치 성시경과, 신동엽과 함께 식사를 하는 듯 그들의 때로는 어설픈 요리와, 요리를 넘어서는 입담에, 그 밥에 그 나물인, 우리 밥상을 잊는다. 예전에는 밥상을 마주하고 tv를 켜면 당연히 채널은 그 날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로 고정되었었다. 하지만, 언제인가부터, 그 뉴스를 보다보면 밥이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힘들던 그 언제인가부터, 우리 식구는, tv속 요리 프로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ebs의 <오늘의 요리>는 tv 속 요리 프로그램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요리가 문화로 대접받기 시작하고, 아프리카 tv 등에서 '먹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tv 속 요리 프로그램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우선은 mc와 게스트들이 이 집 저 집 맛집을 찾아 순례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매일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음식명은, 그날 각종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음식들이기 십상이다. 정준하는 여전히 예의 그 먹성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아, 함께 하는 여성 mc들을 갈아치우며 여러 식당들을 순회하고 있고, <테이스티 로드>의 여성 mc 교체를 둘러싸고, 프로그램의 열성팬들의 신랄한 설전이 게시판을 메우는 건, 여전히 이런 맛집 순회 프로그램들의 건재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엑소 떡볶이 vs 한 뚝볶이 하실래예. 냉장고를 부탁해에 인턴 셰프가 등장했다. 냉장고를 부탁해 이원일 인턴 셰프는 25일 방송에서 한 뚝볶이 하실래예를 만들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캡처t

the fact

 

맛집 순회 프로그램이 몇 개의 대표적 프로그램으로 정리되면서, <올리브 tv>에서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살려, 전국 각지 요리의 진검 승부를 가린, <한식 대첩>과 요리 버라이어티 <올리브 쇼>가 시즌을 거듭하며 안착해 가도 있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요리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예능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식 대첩>은 증명해 내었고, 셰프들이 그저 요리만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주인이 되어 끌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올리브 쇼>가 증명해 내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정재형, 성시경, 신동엽 까지 트렌디한 연예인들을 주방으로 끌어들여, <프랑스 가정식>, <오늘 뭐 먹지?> 등 각 인물의 특성에 맞는 요리의 예능화를 실현해 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요리 전문 채널로써 올리브 tv가 '먹방'의 인기에 힘입어 요리 전문 채널을 넘어, 예능 일반으로 안착하면서, 케이블과 종편에서도 앞다투어 새로운 요리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슬로우 라이프를 표방한 <삼시세끼>나, <꽃보다>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나 먹방이다. <삼시 세끼>의 경우, 아예 작정하고, 프로그램의 미션이 하루 세끼를 해먹는 것 단 하나이다. 정선편에서는 정선이란 시골 마을의 텃밭과 정선 장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어촌편은 만재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아궁이에 불을 붙여 밥상을 마련하는 그 과정이, 온전히 프로그램의 내용이다. <꽃보다> 시리즈에서도 여행을 간 연예인들이 하는 건, 아름다운 풍경과, 그곳의 맛난 먹거리를 먹는 것이다.

 

그 중에서 최근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이다.

게스트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옮겨와,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로, 게스트가 손쉽게 할 수 있는 요리를, 세프 군단이 대결을 통해 만들어 낸다.

이 프로그램이 여타 요리 프로그램과 차별이 되는 것은, 대표적으로 만화가 김풍과, 전문 셰프샘 킴의 대결에서 보여지듯이, 그간 요리 프로그램의 정석을 살짝 비껴간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분명, 전문 셰프인 샘 킴과 김 풍은 요리의 내공으로는 비교가 될 상대가 아니고, 김풍은 오랜 자취 생활의 내공으로 이른바 '야메 요리'를 추구하는 요리계의 아웃사이더인데, 이  두 사람이, 게스트의 냉장고의 재료로, 게스트의 입맛에 간택을 받는데 있어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격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이미 올리브 tv를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요리의 영역이 조금씩 등장하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이, <냉장고를 부탁해>가 되는 것이다.

<삼시 세끼>에서 차승원이 조미료가 없으면 요리를 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볶은 햄에,

할라피뇨, 계란 후라이를 얹은 칼로리 폭발의 요리가 '맛있다'는 평가를 받는 '현실적 요리'가 멋들어진 요리 문화 속에 자신의 지분을 얻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몸에 좋은 요리만 찾다가, 라면을 먹고 속시원하게 트림을 하듯, 현실태로서의 요리의 세계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나선다. 거기에, 고명을 얹는 건, 셰프와 아마츄어의 대결을 흥미진진한 게임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는, 김성주와, 정형돈의 만담에 가까운 진행이다. 각자 자신만의 입맛이 두드러진 mc진이 객관적 위치를 넘어, 사심에 가까운 진행을 통해, 먹고싶은 프로그램의 실감을 살려낸다.

 

이렇게 굽고 지지고 볶고 tv화면 속 '그림의 떡'임에도 보는 이의 식욕을 한껏 부양하는 각종 요리 프로그램들이 앞 다투어 방영되고 있는 가운데, tvn의 <수요 미식회>는 새로운 모험을 시도한다. 비록 자료 영상으로 각종 맛집의 풍성한 음식들이 보여지기는 하지만, 스튜디오에 앉은 mc와 패널들은 오로지 그들의 세치 혈로만 그날의 음식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로지 그들이 맛본 음식에 대한 현란한 소개만으로도, 스튜디오에서 지지고 볶는 요리만큼이나, 아니, 때로는 그 이상 '먹방'의 갈증을 불러 일으킨다. 오히려 패널들이 먹지 않고, 말로써 먹는 그 과정이 먹방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낳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맛집을 언젠가는 가보리라는 다짐을 끝내 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시아 투데이

 

다종다양한 요리 프로그램들의 양산은 결국, 누가 더 맛있게 먹고, 누가 더 잘 요리하며, 어디가 더 맛있게 하는가를 서로 경주한다. 몸에 더 좋은 것을 견주더니, 이젠, 몸에 좋은 것도 좋지만, 결국은 내 입에 맞는 게 최고라며 인스턴트와, 조미료를 양지로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수요 미식회>에서 황교익 요리 평론가의 '언제부터 마블링이 고기맛을 좌우하게 되었나?'라던가, '칼국수를 굳이 맛집을 찾아다니며 먹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촌철살인이, 새삼, 더 맛있는 것에 탐닉하던 잠시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하지만 이즈음에 진짜 되돌아 보아야 하는 것은, '먹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그 시점이다. 홀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먹방'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당장 우리집만 해도, 밥상머리에 앉아도 대화 한 마디 하기 힘들어 서먹한 관계를 메우기 위해 허겁지겁 '먹방'을 찾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흥건한 재료와, 배가 터지도록 되풀이 되는 맛집 순례의 저편에서, 하루 3000원 짜리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라면을 얼마나 먹었는지 세기 힘들 정도로 하루를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망각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의 고단함과, 고달픔과 반비례하는 먹방, 그 흐드러진 잔치가 끝나고 나도, 어쩐지 마음의 허기는 여간해서 가시지 않는다.

by meditator 2015. 1. 29. 06:03

이번엔 중식이 밴드다!

'만만치가 않네. 서울 생활이란 게 이래 벌어가꼬 언제 집을 사.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나오네. 월세 내랴 굶고 안해본 게 없는 라는 장미 여관 '서울 살이'를 통해   '전월세 대란, 서민은 서럽다'의 페이소스를 한껏 심화시켰던 <mbc다큐 스페셜>이 이번엔 1회 인디뮤지션 대상을 받은 중식이 밴드의 음악을 통해 이른바 '3포 세대'의 서러움을 그려낸다

 

군대를 다녀온 아들이 드디어 연애를 시작했다. 다녀오자마자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틈틈이 애인을 만나러 다니느라 불철주야 바쁘다. 하지만 해를 넘기는가 싶더니,결국 헤어져 버렸다. 헤어지고 나서, 비로소 쉴 틈이 생겼다며 한 숨을 내쉰다. 아르바이트를 두 탕, 세 탕 뛰면서 하는 연애는 연애가 아니라, 녀석에겐 그저 쉴 여가마저 없는 버거운 과제처럼 느껴졌었나 보다. 연애는 젊음의 향유이자, 권리라 여겨지던 때가 언제인가 싶다. <mbc다큐 스페셜-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는 이렇게 연애조차 버거운 젊음 세대, 결혼, 출산, 육아, 그것을 포기하는 세대가 아니라, 아예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게 아니나며 반문하는 세대의 이야기를 그 세대의 상징과도 같은 중식이 밴드의 음악과 함께 전한다.

 

 

'친구야 꿈이 있고 가난한 청년에겐 /어쩌면 사랑이란 사치다.

빚을 내서 대학 보낸 우리 아버지/ 졸업은 해도 취직은 못하는 자식/ 오늘도 피씨방 야간 알바 하러 간다' (중식이 밴드, 선데이 서울)

 

이렇게 피씨방 야간 알바를 전전하던, 하지만 그래도 노래를 하고 싶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청년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서른을 바라보는 그 청년은 여전히 노래를 부른다. '선데이 서울'이던 노래는, '아이를 낳고 싶다니'로 바뀌었다.

젊은이들 중 겨우 30%만이 하고 있다는 연애를 운 좋게 8년째 하고 있지만, 그의 여자 친구는 더 이상 그에게 결혼을 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낮에 연습하고, 저녁에 공연을 하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밤 11시부터, 땅 속으로 들어간다. 지하철에 통신 케이블을 깔기 위해, 위험한 천장을 딛고 다닌다. 피씨방 알바는, 통신 케이블 업체의 야간 임시직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단지 노래를 하고 싶은 중식이 밴드의 보컬 이야기만이 아니다.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가 보여준 청춘들의 삶은 대동소이하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고시원에서 지내며 도서관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며 알바와 공부를 오가는 삶에 연애란 사치이다. 심지어 대학 등록금, 아니,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커피 전문점 화장실을 치우는 야간 알바는 하는, 그러면서도 다시 다음 학기 휴학을 하는 처지에 놓인 대학생에게, 역시나 연애나 결혼은 그저 저절로 어느 틈에 포기해 버린 미래이다.

신혼집을 구하는데 드는 비용이 평균 1억에서 2억, 결혼 비용이 남자 1억 5천 만원, 여자 9천 만원을 넘는 나라에서, 젊은이들은 자연스레 결혼을, 그리고 그 결혼의 전제 조건인 연애를 포기한다. 아니, 당장, 살아가기 위해 연애를 할 시간조차 없다. 25세에서, 29세 남녀의 평균 미혼율이 무려, 8,90%를 넘는다. 거꾸로 가는 경제 정책을 내놓은 최규환 부총리에게, 순순히 아이를 낳아주지 않겠다는 대자보가 연세 대학교에 붙었다. 이른바 명문대학 대학생들이라고 해서 더 나은 삶이 아니다.

 

어디 결혼 뿐인가?

아이를 낳고 싶다니....../ 나 지금 니가 무서워/ 너 우리 상황 모르니/ 난 재주도 없고 재수도 없어/ 집도 가난하지, 머리도 멍청하지, 모아놓은 재산도 없지/아이를 낳고 결혼도 하잔 말이지/학교도 보내잔 말이지/ 나는 고졸이고, 넌 지방대야/ 계산 좀 해봐/ 너와 나 지금도 먹고 살기 힘들어/ 뭐 애만 없으면 돼/ 너랑 날 지금처럼 계속 사랑만 하며 살기로 해(중식이 밴드, 아이를 낳고 싶다고)

 

아이를 낳고 싶다고? 바보 아냐? 라고 반문하는 중식이 밴드의 노랫말이 하나도 허투루가 아님을 다큐를 보다보면 저절로 공감이 간다. 통신회사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는 회사가 승계해주지 않는 임시직 때문에, 결혼을 약속하고 함께 살던 애인을 집으로 돌려 보냈다. 낮에는 광장에서 시위를 하고, 밤에는 겨우 대리 운전을 하며 연명하는, 하지만 밀린 월세에 시달리는 그에게 이제 결혼은 꿈깥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을 게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앳된 고등학생 시절 만나, 이제 남자가 서른이 훌쩍 넘긴 나이가 된 커플은 여전히 연애 중이다. 그저 함께 만나있는 시간만으로도 좋지만, 그들에게 결혼은 감히 엄두를 낼 수도 없는 사안이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린 밤, 남자는 홀로 사는 단칸 방에서, 여자는 엄마의 병구완을 위해 각자 홀로 밤을 보낸다.

 

결혼을 했다고 그다지 달라지는 건 없다. 아이를 낳아도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아이를 낳고 집에서 누가 애를 봐/ 우리는 언제 얼굴 봐/ 아이를 낳고 나면 아이가 밥만 먹냐'

는 중식이 밴드의 가사와 하나도 다르지 않는 삶이 이어진다.

어떻게 아이를 하나 낳아도 아이를 키우는데 드는 비용, 아니,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현재의 삶에서 부부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아니, 맞벌이를 위해 시어머니를 주말 부부를 만들며 겨우 지탱하는 삶에서 또 한 명의 아이란 사치이다. 직장에서 만든 좋은 유치원이 있지만, 직장 근처의 집값이 너무 비싸, 아내는 먼 경기도에서 좌석 버스를 한 시간 여 타고 직장을 다닌다. 종종 걸음으로 퇴근하여, 아이를 찾아 돌아온 집, 엄마는 밀린 집안 일을 하느라 바쁘고, 아이는 그런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엄마의 휴대폰을 가지고 논다.

 

 

이렇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 3포가 아니라, 선택의 기회조차 놓쳐 버리고 사는 젊은 세대의 삶에 대해, 대학 교수는 결혼 하지 않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문화가 되어가는 사회를 염려한다. 실제 일본에서, 4,50대 되어서야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문화가 자리잡은 것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다른 대학 교수는 말한다. 이 상태로 가면, 인구의 1/3이 줄어드는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문화가 된 사회, 더 이상 출산을 하지 않아 국가 경쟁력이 문제가 되는 사회, 하지만, <연애만 8년째, 결혼 할 수 있을까?>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대학 교수들의 분석이 사치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문화나, 국가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꽃다울 나이의 젊은이들이, 가장 본능적인 남녀간의 구애조차 미루며, 보장할 수 없는 미래의 스펙과 정규직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 아니, 현재를 연명하기 조차 버거워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사회, 그렇게 젊은이들을 '지옥도' 속으로 몰아넣은, 그 체계를 만든 기성 세대의 일원으로 '석고대죄'를 올리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미안했다. 경쟁과, 스펙과, 더 나은 삶과, 발전을 위해 기성세대가 쌓아올린 신기루의 그늘에서, 현재의 젊은이들은 젊음을 유보 당한 채, 생존하기 위해 신음하고 있는 중이다. 그걸, 그저 '문화'라 규정하고, 국가 경쟁력을 논하기에 당대의 젊음은 너무 처연하다. 도대체 이들의 젊음을 보상하고 책임질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by meditator 2015. 1. 27. 12:28

기영재(오광록 분)가 죽었다.

해적 방송을 한 이유로 정치범이 되어 12년의 감옥살이를 한 그가, '힐러'라는 의심을 받고(아니 스스로 힐러라 자청하며)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의문의 독살을 당했다.

기영재의 시신이 모셔져 있는 장례식장, 한때 그와 함께 '언론의 자유'를 위해 해적 방송을 불사했던 친구 김문식(박상원 분)이 찾아와 오열한다. 그리고 오비서(정규수 분 )에게 가장 비싼 비용을 들여 그를 보내줄 것을 주문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족 한 사람없는 오랜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서럽게 추모해주는 유일한 친구, 더할 나위없는 우정이다.

 

하지만, 김문식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다.

그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며 가장 슬프게 눈물을 흘리지만, 그런 김문식과,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오비서를 두고, 동생 김문호(유지태 분)는 동전 앞 뒤처럼 떨어질 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고 정의내린다. 김문식이 양지에서 그 분의 하수인으로 그럴 듯한 언론의 대표로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는 동안, 오비서는 음지에서, 김문식이 할 수 없는 온갖 불법적인 뒤치닥거리를 한다. 기영재의 죽음도 오비서의 사주를 받은 박형사의 범행이다. 김문호는 말한다. 과연, 김문식이, 오비서가 저지르는 모든 범죄를 모르겠냐고.

 

그렇다면, 김문식의 추모가, 위선, 심지어 위악이라면, 기영재의 억울한 죽음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한 줌의 가루가 되어, 하얀 보자기가 씌워진 상자에 담긴 기영재, 그 상자는, 슬며시 바꿔치기당한다. 김문식이 가장 슬픈 표정을 짓고 가짜 기영재의 유골함을 들고 장례식장을 나설 때, 또 한 사람 기영재를 사부로 모셨던 진짜 힐러, 서정후(지창욱 분)가 진짜 기영재를 들고 그곳을 떠난다.

 

처음 기영재가 자기 대신 힐러임을 자청하고 경찰서로 잡혀가 심문을 받다 죽었다는 사실을 안 후, 서정후는, 모든 통신기기를 끊고, 기영재가 남겨 준 아지트에 칩거, 세상과의 소통을 끊었다. 늘 밉다고 했지만, 그 누구보다 그리워했고, 믿었던 어쩌면 그의 유일한 가족, 사부, 기영재가 자기 대신 죽어갔다는 사실을 서정후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자, 늘 컴퓨터 앞에만 앉아 서정후와 소통하던 동업자 조민자(김미경 분)가 그녀의 아지트를 나선다. 그리고 채영신(박민영 분)을 찾아가 서정후의 아지트 위치를 가르쳐 준다. 지금의 서정후를 그곳에서 구출해 낼 유일한 사람이 채영신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판단이 틀리지 않게, 채영신은 서정후를 구출해 냈고, 다시 기운을 차린 서정후는 김문호를 찾아간다.

 

기영재의 제자 서영후, 그리고 늘 기영재를 낯도깨비라 불렀던 조민자, 그리고 기영재를 형이라 불렀던 김문호는 그리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기영재를 추모한다.

 

뉴스1

 

그들이 택한 방식은, 그저 골방에서 죽은 기영재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짓거나, 그의 죽음을 억울해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채영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경찰서에서 안타깝게 죽어간, 그 죽음의 복수를 가장 멋지게 해내는 것이다.

 

그를 위해, 서정후는 위험을 무릎쓰고 경찰서에 들어가, 조민자를 위해 경찰서 보안 망을 뚫고, 다시 박형사의 집으로 찾아가 숨겨진 그의 대포 통장과 기영재를 죽이는데 사용한 독극물을 찾아낸다.

그리고 힐러인 서정후와, 조민자가 함께, 밝혀낸 박형사의 비리와, 그 배후 오비서가 함께 찍힌 사진을, 김문호는 사이버 대응센터 팀장 윤동원(조한철 분)에게 전달하는 한편, 박형사를 검거하는 그 일련의 과정을 취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썸데이'의 이름으로 만천하에 공개한다.

 

박형사 사건의 말미, 김문호의 앵커 멘트는 비장하다.

 '세상에는 언론에서 다루어 지지 않는 숱한 억울한 죽음들이 있다. 그 모든 사건을 다룰 수는 없더라도, 단 하나의 억울한 죽음이라도 거기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렇게 김문호와 서정후, 조민자의 합작으로, 기영재의 죽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드디어  그간 여러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던 오비서가 경찰에 연행된다.

<힐러>를 통해 송지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추도의 방식이다. 죽은 자를 그저 그리워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 방식은, <힐러>에서 보여지듯이, 그 억울한 속내를 샅샅이 밝혀내는 것이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 있는 추도의 방식은, 2014년 많은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여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지는 작가의 발언이기도 하다.

같은 날 jtbc 뉴스는,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는 유족과 생존자들의 대장정을 보도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이다. 그저, 세월호를 인양하여, 숱한 억울한 죽음의 속내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달라는 것! 그리고 손석희 앵커는, '부끄러움'에 대한 논평을 했다. 세월호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그것을 이념 논쟁의 먹잇감으로 던져버린 악폐가, 사회 전반적으로 후안무치한 범죄들을 잇달아 벌어지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힐러>에서, 사부를 잃고 분노하며 달려가는 서정후를 붙잡아 세운 것은, 그래서 함께 복수를 하자고 달랜 것은 김문호이다. 그리고, 식음을 전폐하고 실의에 빠진 서정후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채영신을 찾아간 것은 조민자였다. 젊은 세대들이, 다시 힘을 얻고 싸울 수 있기 위해서는, 결국, 김문호와, 조민자같은, 어른다운 어른들의, 부끄러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럴 듯한 기자로, 유능한 음지의 해커로 살아왔던 그들이, 자신들이 살아왔던 삶에 대한 반성과 회한, 그리고 그 부끄러움에 대한 실천이 선행될 때, 젊은 세대들은 좌절에서 다시 한번 힘을 내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 작가는 말한다. 그런 그들의 자각과 실천은, 그 반대편에서 쉽게 항복하고, 그 항복을 통해 자신의 입신양명을 얻어낸 김문식의 후안무치함과 비교된다. 비록 김문식이 느네들이 겨우, 몇몇의 느네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비웃었지만, 김문호의 말처럼, 억울한 한 사람의 죽음을 밝혀냈다. 그 끝마저 창대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들, 그리고 그 어른들의 뒷받침으로 이제 막 힘을 얻기 시작한 젊은이들, 이들이 함께, 싸움을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추모의 방식이다.

by meditator 2015. 1. 27. 05:45

원래 1월 16일 방영 예정이었던 <삼시 세끼> 어촌편은 장근석 소속사의 탈세와 관련된 구설수로 인해, 한 주 방영이 미뤄졌다. 과연 애초에 홍보를 해왔듯이, 차승원, 유해진, 장근석, 이 세 사람의 어촌편 <삼시 세끼>가 단 한 주 만에, 물의를 일으켜 스스로 물러난 장근석을 드러내고, 얼마나 완결성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졌다. 일찌기 <1박2일>에서 부터 시작하여, tvn으로 이적한 후,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그리고 <삼시세끼>까지 트렌드를 만들어가며 승승장구하던 나영석 피디의 위기가 지레 점쳐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1월 23일 첫 방송을 선보인 <삼시 세끼> 어촌편은 과연 이 프로그램에 장근석이 합류했었는가를 기억하기 조차 힘들게, 차승원, 유해진의 <삼시세끼>어촌편으로 돌아왔다. 심지어, 그에 앞서 방영되었던, 이서진, 옥택연의 <삼시 세끼> 정선편과는 또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삼시세끼>를 빚어 냄으로써, 나영석의 위기가 아니라, 능력자 나영석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시간이 되었다.

 

<1박2일>이 융성하자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연예인들을 산과 들로 데리고 다니며 미션을 주는 프로그램을 시도했으나 <1박2일> 외에 그 어떤 프로그램도 생존하지 못했다. <꽃보다> 시리즈가 트렌드가 되자, 이번에는 연예인들을 데리고, 전 세계로 떠나는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지만, 역시나 그 중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프로그램들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 <삼시 세끼>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생활을 예능화하자, 또 여기저기서 배우 출신의 연예인들을 역시나 시골 마을로 끌어들이지만, 그다지 주목받고 있지는 못하다. 그렇다면, 후속 주자의 불운을 탓하기에 앞서, 다른 프로그램들과 나영석 피디가 만든 프로그램들의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엑스포츠 뉴스

나영석 피디가 만든, 아니 정확하게는, 나영석 피디 사단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나영석 피디, 이우정 작가, 그리고 <꽃보다 청춘>에 이어, <삼시 세끼> 어촌편을 함께 하는 신효정 피디 등, 나영석 피디와 함께 하는 일군의 무리들을 나영석 사단이라 지칭한다면, 이들 나영석 사단의 특징은, 패러다임를 새롭게 창출해 내고 있다.

일찌기 <1박2일>을 통해, 야생 버라이어티의 새 장을 열었다면,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그저 젊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예능에 할배와 누나, 그리고 중년들을 초빙함으로써, 전 세대가 공유하는 예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 <꽃보다> 시리즈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서진을 활용해 <꽃보다 할배> 시리즈의 스핀 오프처럼 시작된 <삼시 세끼>를 통해, 슬로우 라이프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능의 트렌드로 만들어 냈다.

 

하지만 이런 나영석 피디의 예능이 늘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가 했던 전작들이, 다음 작품에서 버전업, 버전 업 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1박2일>은 야생의 조건에서 강고한 미션을 주어, 리얼리티의 극한을 밀어부쳤다. 까나리 액젓까지 시음하는 열악한 조건에서, 출연하는 멤버 각자의 성격에 따라, 캐릭터가 부여되었고, 그 캐릭터들의 이합집산, 이것이 <1박2일>을 전국민적 예능으로 끌어올린 강력한 견인차가 되었다.

이렇게, 야생이라는 조건과 거기에 주어지는 미션이라는 성격은, <삼시 세끼>까지 이어지지만, 그 강도와 조건은 달라졌다. 극한의 조건, 강력한 미션이라는 상황은 둔화되고, 오히려 그 속에서, 이서진, 옥택연이라는 인물의 정서와 캐릭터가 프로그램을 이끌고 간다. <1박2일>때도 그저 다섯 사내들이 청소년들처럼 청소년들처럼 잠자리와 먹거리에 목숨을 걸듯이 게임을 하는 그 과정을 보기 위해 매주 채널을 고정시켰다면, 그것이 <삼시 세끼>에 와서는, 오히려, 이서진이라는 인물의 매력에 좀 더 방점을 찍는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정선 시골 마을이라는 조건도, 거기서 매 끼닌 앞의 텃밭에서 나는 먹거리와 정선에서 장을 봐온 것들만으로 세 끼를 해먹다는 미션들이, 온전히 '그딴 걸 왜해?'하면서, 도시의 삶을 칭송하는, 하지만, 결국은 기왕에 하는 거 꼼꼼하게 해내고야 마는, 이서진이라는 인물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되었다.

 

슬로우 라이프는 이미 나영석 피디가 kbs를 나오기 전에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도한 <인간의 조건>에서 선을 보인 것들이다. 나영석 피디가 사라진 <인간의 조건>이, 인간적 삶을 위한 다양한 미션들로 진화한 반면, tvn으로 온 나영석 피디는, <삼시세끼>라는 오히려 <인간의 조건>과는 정반대로, 정해진 공간, 정해진 미션 안에서, 인물이 살아 숨쉬는 말 그대로, 느긋한 삶의 조건을 프로그램으로 재연해 냈다. '미션'이라는 이름의 흉내가 아니라, 안착한 공간에서, 자연에 스며들어가는 도시인의 모습에서, 삭막한 도시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그저 그들이 밥해먹는 것만 봐도 마음이 편해지는 묘한 경지를 맞보게 한 것이다. 또한 이미 그 단초는, <꽃보다> 시리즈를 통해, 바쁜 삶을 평생 이어오던 할배들의 노년의 선물과도 같던 여행, 누나들의 휴식과도 같은 여행, 그리고, 90년대의 전성기를 보냈던, 이제는 아버지가 된 뮤지션들의 변함없는 열정을 확인했던 여행 속에서, 빠쁘게 살아가는 삶에 쉼표를 찍는 여행 시리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삼시 세끼> 어촌편은 어떻게 버전 업이 되었을까?

앞서도 말했다시피 애초에 <삼시세끼>는 차승원, 유해진, 장근석 세 사람의 만재도에서의 삶을 다룬 것이었다. 나영석 피디가 이들 세 사람과 함께 만들고자 했던, <삼시세끼> 어촌편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지만 도무지 차승원, 유해진 두 사람의 <삼시세끼> 어촌편을 보면, 세 사람의 그림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차승원, 유해진 두 사람의 호흡이, 너무도 완벽하게, <삼시 세끼>어촌의 그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일찌기 <이장과 군수>를 통해 시골 마을 두 친구의 걸쭉한 삶을 재연해 냈었던 두 사람은, 두 사람 스스로가, <이장과 군수>가 연상된다고 하듯이, 손발이 척척 맞는 호흡을 선보인다. 가리고 비껴가도 종종 장근석의 뒤통수와, 다리 한 짝이 등장해도, 시청자들은 그런 모습이 신경쓰이지 않는다. 때론 차승원이 아내가 되고, 유해진이 남편이 되고, 또 때론 그 반대가 되는 상황이 되기도 하며, 그저 오래된 중년의 두 친구의 그림 속에, 또 다른 사람의 여지가 쉽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저 정선의 시골 마을에서, 만재도라는 여섯 시간 배을 타고 가야 하는 어촌으로 옮긴 상황만 변화된 것이 아니다 차승원과 유해진이라는 인물이 빚어내는 상황이, 단적으로 <삼시 세끼>를 <삼시두끼>로 변화시키듯, <삼시 세끼>와는 전혀 다른 맛의 프로그램을 창출해 낸다. 정선 시골 마을에서 매사에 툴툴 거리면서도, 곧이 곧대로 제작진이 시키는 삼시 세끼를 순순히 만들어 내었던 이서진, 옥택연과 달리, 온전히 풍광 좋은 만재도에 와서, 하루 종일 통발을 살피고, 땔감으로 불을 피우고,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단조로운(?) 삶에 반기를 들고, 차승원과 유해진은 삼시 두끼만 먹을 것을 결정한다. 예전 <1박2일>같았으면 어림없을 결정이, <삼시세끼>에선 가능해 진 것이다. 마치 일정을 마친 최지우가 이순재 선생님 일행과 함께 하루를 더 보내게 되듯이 말이다. 사람사는 생활에서 가능한 일탈과 해프닝들이 자연스레 프로그램의 일부로 승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해진은 아침 일찍 일어나 땔감을 쪼개 불을 피우는 대신, 귤로 아침을  때우고, 만재도 산의 바람을 맞고, 차승원은 늦잠을 즐긴다.

 

시청률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귀여운 강아지의 지분은 여전하지만, 세프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기에 조미료를 피할 수 없다는 차승원식의 요리가 스리슬쩍 눈 깜짝할 사이에 등장하고,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 집착하는, 하지만 차승원의 급한 성격에는 곧 꼬리를 내려주는 유해진의 넉넉함이, 그저 어촌이라는 환경의 차이를 넘어, 새로운 버전의 <삼시 세끼>에 대한 기대를 부풀어 오르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위기를 그저, 솎아내기가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라볼 줄 아는, 나영석 사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이렇게 끊임없이 새롭게 버전업 되는 나영석 피디의 예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프로그램에 일관된 맛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사는 맛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든, 저렇든, 늘, 나영석 피디 사단이 만든, 프로그램을 보면, 거기엔 사람사는 냄새가 풀풀 풍긴다. 그래서, 야생 버라이어티가 되었든, 할배들의 여행이 되었든, 시골 마을의 슬로우 라이프가 되었든, 인지상정으로 자꾸 마음이 끌리게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 24. 06:59

1월21일 새롭게 선보인 sbs수목 드라마<하이드 지킬, 나>는 나름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흔히 이중인격하면, '지킬앤 하이드'처럼 선한 주인격과, 그 주인격을 넘보는 악한 두번 째 인격을 연상하기 마련인데, 첫 선을 보인, <하이드 지킬, 나>는 정반대이다. 주인격인 원더랜드 상무 구서진(현빈 분)은, 전형적인 싸가지 없는 재벌이다. 심장 박동기를 차고 수시로 자신의 심장 박동수를 체크하고, 요가를 하고, 심호흡을 하며 혹시나 심장 박동수가 올라갈까 노심초사 그가 두려워 하는 것은 지난 5년간 나타나지 않았던 그의 또 다른 인격이다. 그런데, 정작, 자기 혼자 살겠다고 장하나(한지민 분)를 밀치고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지만, 순간 증폭하는 심장 박동 끝에 나타난 그의 또 다른 인격 '로빈'은 옥상으로 달려가 위기에 빠진 장하나의 목을 조르는 괴한을 물리치고, 떨어지는 그녀를 구하고자 함께 물에 뛰어든다. 싸가지 없는 주인격과 전혀 다른 '의로운' 제 2의 인격이라니! 신선하다.

 

하지만 어쩌랴, 안타깝게도, 그 신선함은, 이미 5회를 맞이한 <킬미힐미>에서 지성이 연기하고 있는 7다중이 앞에 초라해져 버리고 만다. 분명 타인에 대한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주인격에, 그런 그와 정반대의 정의로운 제 2의 인격은 신선한 발상이지만, 선한 주인격 차도현과, 그를 넘보는 막가파 야성남 신세기에, 사제 폭탄을 들고 설치는, 하지만 '배 한 척'이란 소리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페리박, 심지어 일곱 살 여자 아이 니나까지 등장하는 <킬미 힐미>를 한 회라도 보고나면, 어쩐지 <하이드 지킬, 나>가 심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이드지킬나’ 첫방, 두 명의 현빈과 한지민의 만남 ‘특급 로코 예고’

 

무엇보다,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과, <킬미 힐미>의 차도현, 두 사람 다 재벌가의 인물들이기에, 캐릭에서의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결국, 둘 중 어떤 캐릭이 더 화려한 변주를 선보이느냐가 관건이 되버리고 마는 상황에서, 두 주나 후속 작품이면서, 이미 앞선 작품이 화려하게 7 캐릭의 변주를 예고하는 있는 가운데, 겨우, <지킬 앤 하이드>를 한번 뒤틀었다는 자부심만으로 <하이드 지킬, 나>로 관심을 끌어들이기엔 역부족처럼 보인다.

 

이 작품의 구서진이란 캐릭터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현빈은 이른바, '업계의 불문률'을 어기고, 동시간대 드라마 <킬미힐미>를 퇴짜 놓은 것을 기사로 흘려 문제가 된바 있다. 그것이, 현빈 측이건, 제작사건, 동시간대에 맞붙을 상대작을 '팽'하고 상대작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킬미 힐미>는 캐스팅의 부담을 안고 시작해야만 했다. '현빈이 거부한 작품이란 꼬리표에, 7다중이란 부담으로 실제로 첫 방을 시작하기 얼마전에야 겨우 지성이 주인공으로 결정되었고, 그런 우려 속에 <킬미힐미>는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7다중이란 우려를 불식하고, <해를 품은 달>의 작가 진수완은, 지금까지 등장한 차도현의 또 다른 인격들을 개연성있게 풀어내고 있고, 그 서로 다른 설정의 다중이들은, 지성이 '작두를 탄 것 마냥' 풀어내고 있는 중이다. 오죽하면, <킬미힐미>의 주인공과, 서브남이, 주인격 차도현과 신세기가 되었고, 여주인공 오리진을 둘러싼 이 두 사람의 쟁탈전이, 세간의 흥미를 끌며, 똑같은 사람이 연기함에도 차도현파와, 신세기파의 흥미로운 갈등마저 양산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정작 논란을 일으키면서 까지, <하이드 지킬, 나>를 선택한 현빈의 경우,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아직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하이드 지킬, 나>는 <지킬앤 하이드>와 역전된 캐릭터로 승부수를 띠웠지만, 막상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겐 그런 작가의 의도보다는, 익숙한 현빈의 연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니 정확하게는, 현빈이 아니라, 그가 군대가기 전에 인기를 끌었던,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야심차게, 역전된 캐릭터로 신선함을 선사하고 싶었지만, 정작 시청자들에게, 그 역전된 캐릭터는 마치 '놀이공원'을 인수한 김주원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제 아무리 연기자 본인이 다른 헤어 스타일과, 다른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을 해도, 싸가지 없는 재벌 캐릭터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는 현빈이었기에, 몇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각인된 전작의 캐릭터의 기억을 쉽게 놓을 수 없다.

지성이, 심지어 전작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황정음과 다시 한번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작에서 했던 재벌가의 자제로 등장하면서도,  차도현에게서나, 또 다른 인격 신세기에게서 <비밀>의 조민혁을 쉽게 찾아낼 수 없는 것과 달리, <하이드 지킬, 나>의 구서진은, 여전히 김주원같다는데, <하이드 지킬, 나>가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 또 다른 숨은 복병이다.

혹시나 현빈이, <시크릿 가든>의 영광을 다시 한번 재현하기 위한, 자기 복제였다면, 그 선택은, 7다중이 지성의 과감한 연기 앞에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다.

 

아쉽게도 남자 주인공만이 아니다. 생기발랄한 여주인공이란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킬미 힐미>의 오리진 역의 황정음과 <하이드 지킬, 나>의 한지민의 대결에서도 아쉽지만 <킬미힐미>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비록 첫 회만으로 평가를 하는 것은 섣부를지 모르겠으나, 고릴라를 조련하고, 공중 줄타기를 하며 고군분투하는 한지민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녀의 연기는 조금은 음을 높게 잡은 채 노래를 부르는 듯 아직은 붕 떠있는 느낌이다. 반면, 종종 발음이 분명하지 않고, 떽떽거리는 소리는 귀가 아플 지경이지만, 이미 시트콤을 통해 단련된 황정음의 코믹 연기는 지성의 원맨쇼를 돋보이게 할 만큼 자연스럽다.

 

물론 아직 첫 회에 불과한 <하이드 지킬, 나>와 이미 물이 오르기 시작한 <킬미 힐미>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쩌랴, 얄궃게도 동시간대 시청자를 놓고, 이중인격과 다중이가 경주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비교 대상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후속작이면서 비슷한 재벌에, 정신 장애를 가진 남자 주인공을 들고 돌아온 , <하이드 지킬, 나>의 애꿏은 운명을 탓할 수 밖에. 아니, 진짜 안타까운 것은  수, 목요일 10시, 그저 이중인격 아니면, 다주인격의 재벌가 자제의 자아 찾기 중 골라잡을 수 밖에 없는 시청자들의 선택 폭이 좁은 시청권이다.

 

by meditator 2015. 1. 22. 0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