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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배우자가 바람을 핀다면? 이란 질문을 던졌을 때, 생각 외로 다수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자신이 알 수 없기를 바란다고 대답한다. 이'아이러니한' 대답의 숨겨진 의미는, 그것이 사랑에 의한 것이었든, 아니면 그쳐 스쳐지나가는 정말 바람이었든 그런 '사건'이 오랜 결혼 생활 가운데 불가피한 사건일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배우자가 바람을 핀 것을 알게 되었다면? 사태는 달라진다. 우선은,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자고 약속했던 그 '신성한' 약속에 대한 배반에서부터, '사랑'을 기반으로 한 남녀의 결합이란 결혼 제도에 대한 배신까지, 자신들이 생각해온 결혼을 어그러뜨려버린 상대방의 행동에, 쉽게 결혼 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 설사 그것을 '꿀떡' 삼켰다 해도, <일리있는 사랑> 희태(엄태웅 분)의 어머니 고여사처럼, 치매가 온 상태에서, 오랫동안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하여 남편을 거렁뱅이 취급을 하며, 무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리있는 사랑>의 희태의 분노와, 그가 선택한 결혼에의 파국은 개연성을 가진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에 기반한 현재의 결혼 제도에서 그의 결정은 타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드라마 <일리있는 사랑>은 이렇게 뻔한 우리 시대의 당위론적인 결론에 자꾸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래야 하는 거냐고? 결혼이 그런거냐고?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 가장 완고한 존재였던 희태의 어머니, 고여사에게 '치매'라는 천형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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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사, 자고 일어나 보니, 아침에 자신이 입었던 옷과 다른 옷을 입고 있고, 자신이 입었던 옷이 세탁기 속에 흙투성이가 되어 들어있는 것을 보고, 깔끔하고 까다로운 자신의 변모에 당혹스런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정작 치매 증상이 도지기 시작한 그녀는, 완고하고 까다로운 시어머니의 거죽을 훌훌 벗어던지고, 그 옛날 미스터 장에게 반했던 미스고로 돌아가 버린다. 그래서, 그녀의 기억 속에 미스터 장을 찾아, 이쁜 옷을 입고, 곱게 화장을 하고 집 문을 나선다. 정작 그녀의 남편이 되어, 평생 바람을 피며 그녀로 하여금 세탁실에서 홀로 소주를 기울이게 한 미스터 장은 본체만체 하면서, 그녀의 기억 속에 멋진 사내였던 미스터 장을, 다름아닌 며느리 일리가 바람난 장본인인, 김준(이수혁 분)에게서 찾아낸다.
사라진 어머니를 찾아 혼비백산 돌아다니던 아들 희태는, 잔뜩 설레이는 표정으로 김준의 팔을 잡고 오는 어머니를 발견한다. 그리고 되뇌인다. '우리집 여자들은 왜 다.........'
한 화면에 잡힌 어깨까지 구부정한, 이젠 홀애비 냄새까지 난다는 중년의 희태와, 자고 일어나 부스스한 모습에도 훤칠하고 잘생긴 김준의 대비는 확연하다. 굳이 우리집 여자들은 왜 다..... 이후의 말 줄임표을 구구절절 덧붙이지 않아도, 그가 느끼는 열패감은 분명하다.
그리고 정신줄을 놓은 어머니가 그러하듯, 김준에 대한 일리의 감정도, 어쩔수 없는 교통사고 같은 불가항력이라는 걸, 드라마는 그려낸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며느리가 바람 난 남자를 사모하는 시어머니라니!
그런데, 오랫동안 남편의 바람기에 시달리고, 하나밖에 없는 딸은 꼼짝 못하고 누운 신세에, 이제 아들까지 며느리가 바람을 펴서 이혼을 당한 상태에서 '치매'로 정신줄을 놓은 시어머니의 해프닝에 실소가 나오면서, 동시에 눈물이 난다.
자신을 놓칠까 안절부절했던 그녀의 삶은, 여전히 강팍한데, 정작 정신줄을 놓은 그녀는 해맑게 행복해 보이니, 아들과 몸싸움을 하면서까지 김준을 찾아가려는 그녀의 순정이 애처롭다. 그녀가 잃어버린 또 다른 삶을, 그녀의 치매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여사를 바라보는 감정은, 희태의 아내로 7년을 살아왔던 일리라는 여성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진다.
ufo를 타고 안드로메다에 가서 사과나무를 심고 싶었던 여고생 일리는, 희태와의 결혼 7년 후, 그저 자신의 연구에 빠져 종종 집을 비운 남편을 기다리며 친정 식구에, 시댁 식구 뒷바라지를 하는 페인트공이 되었다. '지켜주겠다'는 그 말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남편은 물론, 꼼짝 못하는 남편의 누이와, 까탈스런 시어머니, 무심한 시아버지에 말썽꾸러기 백수 시동생까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대신 ufo를 타려던 꿈을 접었다. 의젓한 맏딸로, 든든한 며느리로, 아내로 살아가기 위해, 접었던 그녀의 남다른 감수성이, 뜻밖에, 김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톡'하고 터진 것이다.
형식은 '바람'인데, 결국 그 내용은, 고여사의 치매처럼, 눌러왔던 자아의 어떤 부분이라고, 드라마 <일리있는 사랑>은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 '사건'에 대해 일리는, 그저 '교통사고 ' 수습하듯이 덮어두려 했지만, 정작, 주변의 잔인한 장난으로, 남편 희태가 알고,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폭로된 일리의 바람은, 물론 과거의 사건이라지만, 수없이 바람을 피면서도, 내가 이 가정의 가장입네 하는 희태 아버지의 바람과 대비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리의 외도는 당연한 사실이고, 희태는 여전히 그것을 용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희태만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는, 결혼 제도를 지탱하고 사는 다수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움' 조차도 사랑의 한 형태라는 것을 희태가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처럼, 결혼이란 제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혹은, '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 진정한 이해와 용서가 무엇일까, <일리있는 사랑>은 자꾸 되물어 온다. 아니, 어쩌면,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족'이란 공동체를 유지가, 진정 한 인간의 존재에게, 특히 한 여성에게 유익한 것이냐고 회의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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