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밤 새로이 시작된 예능, <투명인간>은 아마도 케이블은 tvn의 히트 드라마 <미생>이 없었다면 태동되지 않았을 프로그램인 듯 보인다. 이 시대 직장인들의 애환을 현실감있게 그려낸 <미생>의 인기를 보면서, '아! 저걸 예능에 응용해 볼까?'란 의도가 매우 농후하다. 케이블의 아이디어를 확장시킨, 마치, <꽃보다 할배> 시리즈의 스핀 오프 시리즈로, <삼시세끼>가 등장한 듯한, 공중파의 예능이라, 격세지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첫 회를 방영한 <투명인간>은 말 그대로, '미생'이다. 직장인들을 예능의 대상으로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응용해야 겠다는 지점에서, '완생'의 길이 멀어보인다. 

우선, 왜, 하고 많은 직장인들에 대한 '위로' 중에서, 하필, 1;1 로 웃기기 게임을 프로그램의 기본 아이템으로 설정했을까? 방영된 1회를 보는 내내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직장인 팀 한 부서를 상대로, 연예인 팀의 한 명, 한 명이 그 중 한 명을 찾아가, 제한 시간 내에 웃음기어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연예인이 직장인을 선택하고, 반대로, 직장인이 연예인을 선택하는 전,후반부의 제한 시간 동안, 연예인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 춤, 노래, 콩트, 그리고 심지어 사정과 위협을 동원하며 직장을 웃기기 위해 애를 쓰고, 직장인들을 그것을 참아내느라 애쓴다. 그리고 첫 회 승리한 직장인들이 그 댓가로 얻은 것은, '휴가'이다. 굳이 '직장인'들을 위로한답시고 찾아가, 웃기기 게임을 벌이며, 그 포상으로 건, 휴가라니!  어쩐지 웃프다. 

일간스포츠

하지만 달콤한 휴가를 얻기 위해 그들이 참아내야 하는 연예인들의 원맨쇼는 한 마디로, 참 보기가 '거시기했다'.
김범수가 다짜고짜 얼굴을 들이대고, 세계 27위의 모델이라는 사람이 웃기는 춤을 추고, 하하는 그 특유의 화법으로 들이대고, 강호동은 결국 소리를 지른다. 그나마, 게스트로 등장한 하지원이 제시한, 그녀의 전화번호와 옆자리 영화 관람 정도가, 매혹적인 아이템이라고나 할까? 오죽하면 직장인들 중 한 명이, '아직 준비가 덜 되신 것 같다'는 평을 할까?

무엇보다, 제작진은, 직장인들을 상대로 한 '예능'이라는 지점에 꼿혔을 뿐이지, 그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웃음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해 보지 않은 티가 첫 회에 너무도 역력하다. 그저, 포상으로 휴가나 던져주면 장땡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투명 인간> 자체가 아주 별로는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무턱대고 직장인들을 상대로 웃겨보마고 나선 어설픈 판에서도, 가능성을 보인 지점이 있다. 
바로 그건, 연예인들이 아니라, 직장인 그들 자체였다. 그들 각자의 다양한 캐릭터와, 준비된 예능감들이, 어설픈 연예인들의 장기보다, <투명인간>의 가능성으로 드러났다. 
그러기에, 연예인과 1;1로 마주선 장면보다, 상무님을 모시고 한, 뿅망치 게임 등에서, 그들간의 조합이 훨씬 더 신선하고, 재미를 자아냈다. 생글생글 웃음이 만발한 신입에게, '말을 안듣는다'며 단호한 평가를 내리는 대리와, 마지막으로 '느끼함을 불살라 보겠다'는 부장님, 이런 캐릭터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1 대결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실패했지만, 정태호의 쵸사이언 변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과 달리, 선글라스에서 부터, 팔을 잘라낸 와이셔츠, 그리고 콧구멍을 들이비춰도 웃음기를 참아내는 내공들은, 연예인들을 앞선다. 차라리, 연예인을 앞세운 1;1 웃기기 게임이 아니라, 직장인들의 장기를 드러낸, 직장인들의 연예인 웃기기가 오히려 낫지 않을까 싶은 지점이다. 그래야, '휴가'를 쟁취하는 맛도 나고. 

<투명인간>은 <안녕하세요>, <우리동네 예체능>을 이어갈, 일반인 예능의 계보를 타고 있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의 상대가 되는 일반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의 성격을 살릴 수 있게 고민이 좀 더 배가되어야 할 듯하다. 
<안녕하세요>가 매회 다양한 일반인들의 사연을 등장시켜, 일반인 예능으로 안착한 반면, <우리 동네 예체능>이 '우리 동네'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양한 연예인들의 돌려막기로, 그들만의 리그로 변질 된 지점을 '벤치마킹'하여 <투명인간>의 행보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지점에서, <안녕하세요>에는 있는데, <우리 동네 예체능>에는 없는 것이, <투명인간>에도 없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딜레마로 작용할 듯하다. 바로, 일반인들의 그것을 풀어낼 mc의 능력말이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웃기기를 하겠다는 설정은, 다분히 강호동이라는 mc를 배려한 아이템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가 한 것은, 언제나 그랬듯이, 들이대고, 소리지르고 하는 예의 강호동 식이다. 회사원들은, 어색한 연기를 보인, 강호동을 두고, 머리가 좋다느니 어쨌다느니 했지만,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그저 오그라들 뿐이다. 정작,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회사원들의 캐릭터를 살려주는 센스를 보인 것은, 하하와 정태호였으며, 히든 카드는 뜻밖에도 게스트 하지원이었다. <투명인간>에서 필요한 것은, 기가 센 mc가 아니라, 센스있게 직장인들이라는 미지의 인물들을 파악하고, 그들을 '예능'이란 장에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mc들이다. 그런 면에서, 오랫동안 <스타킹>을 진행해온 이력이 무색하게, 첫 회부터 강호동은 프로그램의 짐처럼 느껴졌다. 

<투명인간>이라는 제목을 보고, 직장인들을 위로 한다고 하여, 직장으로 들어가 하다못해 복사 라도 한 장 해주며, 그들의 고달픈 삶을 덜어주는 프로그램이란 생각이 무색하게, <투명인간>은 직장인을 이용한 그저 어디선가 해본 듯한 예능이었다. 더구나, 여전히, 이 프로그램에서 조차, 기계음이 귀를 막는 공장도, 국자와 칼이 번쩍이는 주방도, 미생들의 또 다른 삶터일진대, '직장인'은 칸막이가 쳐진 사무실에서, 번듯하게 넥타이를 매고 근무하는 화이트칼라들이다.  이렇게 해서야, 제 아무리 '휴가'를 건다해도, '미생'들의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런지. 첫 술에 배부를 리야 없겠지만, 첫 술에 벌써 지레 먹기 싫게 만들어 버려서는 안되지 않을까, 부디, '미생'들의 위로에 대한 진지한 숙고와 배려로 탄생되는 진짜 위로잔치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5. 1. 8. 11:52

공교롭게도, 2015년 새해 벽두부터, 공중파 3사의 월화 드라마는, 비리와 권력으로 더렵혀진 세상을 향해 전쟁중이다. 물론, 3사  드라마 각자가 싸우는 대상도 다르고, 싸움의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드라마가 굳굳하게 밀고 나가고자 하는 것만은 같다. 포기하지 말고 싸우자!


sbs <펀치>의 등장인물들은 피터지께 싸우는 중이다. 처음에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싸우더니, 이제 그 형의 비리를 들고 싸우고, 그리고 그 형이 원죄를 뒤집어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 형의 복수와, 거기에 얽힌 관계를 놓고 대결한다. 그런 싸움 속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법'과 '정의'도 있지만, 아들의 병역 비리, 입지전적 성공에의 갈망과, 사업하는 형의 정경유착 비리, 그리고, 구속된 아내를 풀려내기 위한 타협과 협박 등 각자의 사연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등장인물 각자가 자신의 숨길 수 없는 욕망으로 인해 '법'으로 굴러가야 할 사법 체계를 일그러뜨리는 동안, 여주인공인 신하경(김아중 분)만이 줄곧 우직하게 '법' 을 위해 자신을 던진다. 

서울경제

아이를 사고로 몰아넣은 진짜 범인, 이태준(조재현 분)의 형 이태섭을 잡으려 하다가, 검사로서 직을 던지고 스스로 청문회장에 서기도 하고, 결국 감옥까지 가는 신세가 된다. 남편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태섭 회장의 자술서로 타협을 한 줄 알게 된 신하경은, 자신을 구하기위해서라는 걸 알면서도, 애초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아가, 더 큰 그림인 오션 캐피탈 김회장과 이태준의 밀착 관계를 밝히기 위해 뛰어든다. 심지어 그토록 믿고 따르던 윤지숙(최명길 분) 장관의 수사 종료 지시에도 따르기 힘들다. 

우직한 검사들은 또 있다.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최진혁 분)와 한열무(백진희 분)가 그들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놓쳐버린 유괴범 때문에, 그리고 유괴로 인해 죽임을 당한 동생 때문에 검사가 된 두 사람은,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못해 용의자까지 되고 마는 민생 안정팀의 팀장 문희만의 회유와, 드러내놓고 위협을 마다하지 않는 실체, 그리고 그 하수인인 검찰국장등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15년전 사건의 실체를 밝힌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속해있는 민생 안정팀이 해체되는 위기에 빠져도, 그 자신들이 신체적 위해 등의 위협을 당해도, 그리고 검사로서의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우직하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법'을 향해 '정의'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구동치 자신은, 15년전 그날, 자신이 백곰의 살인범일 지도 모른다는 혐의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15년전 사건 현장으로 다시 한번 뛰어든다. 

이렇게 <펀치>의 신하경이, 그리고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와 한열무가 우직하게 '정의'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굽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그 '법'적인 정의를 실천할 도구를 가진 검사들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검사들이, 그저 자신들의 일을 제대로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법적'인 정의가 바로 세워질 수 있음을 밝힌다. 물론, 그 과정은 갖은 협박과 위협과, 회유가 반복되는 과정이지만, '법'이라는 수단을 구현하는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정의'는 달라질 수 있음을 어렵게 밝혀가는 중이다. 

하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이 늘 만만한 건 아니다. <힐러>의 김문호 기자는 그가 진행하던 뉴스에서, 방송국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돌직구를 하고, 결국 자신이 진행하던 데스크를 박차고 나오기에 이른다. 상위 1%의 기자이지만, 이제 그가 세상을 향해 소리치던 '마이크'를 잃었다. 하지만, 김문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늘 '언론'의 정의를 실현하려던 자신을 회유하고 방해하던 거대 언론대신, 비록 '찌라시'의 수준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올곧이 전할 수 있는 언론사를 꾸려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서울 시장 후보자 언론 인터뷰 현장에서 허락된 기자들만이 출입이 허용되는 상황에서, 김문호 기자가 몸담고 있는 '썸데이' 는 입장조차 할 수 없다. 김문호는 포기하지 않는다. '정공법'이 안된다면, '게릴라'식으로 허를 찌르는 방식을 택한다. 바로 옆 약혼식장의 측근으로 위장한 서정후(지창욱 분)와 채영신(박민영 분) 커플이 화려한 복장으로 봉쇄 라인을 뚫고 들어가고, 채영신이 도발적 의상으로 인터뷰 장 한 가운데로 뛰어나가 서울 시장 후보자에게 그와 관련된 섹스 스캔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리고, 이어, '썸데이' 뉴스의 김문호 앵커의 그와 관련된 멘트가 이어진다. 세상에서 주어진 방식이 진실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나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캐가겠다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이들이 비리를 밝히고자 하는 하며 싸우는 대상, 혹은 그런 그들과 부딪치는 대상들과, 이들의 차이점은 사실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쩌면, '한 발자국' 바로 거기에서, 지금의 현격한 차이가 만들어 진다. 
이른바 '어르신'의 집안으로 들어가다, 김문호의 형이자, 메이저 언론사 사주이며, 권력의 '개'로 살아왔던, 김문식(박상원 분)은 자신의 그 첫 '한 발자국'을 회상한다. 한때 자유 언론의 수호자로 개조된 트럭을 몰고, 서울 하늘 곳곳에 진실을 알리기에 용기를 냈었던 김문식은, 그 자신과 사랑하는 여인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정의'를 외면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오만과 편견>의 끊임없이 정의와 타협의 길을 오고가는 문희만 부장검사(최민수 분) 역시, 수사를 하던 과정에 저지른 뺑소니 사고, 그것을 덮기 위한 한 걸음이, 그를 '화영'의 개로 만들었다. 
<펀치>에서, 우직하게 '정의'의 편에 섰던 윤지숙 장관의 한 걸음은 바로 병역 비리를 저리른 아들이었다.
기성 세대가, 일신상의 이유로, '정의'의 편에서 물러서서, 세상과 타협하는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그들이 추구했던 '정의'가 무너져 내렸던 것을 알기에, 아니, 그 실체를 모르더라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에, 젊은 그들은 우직하게, 자신들의 정의를 고수하고자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럴 수록, 그들의 정의가 위태위태하고, 때론 안타깝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펀치>에서 유일하게 강직한 인물을 여주인공 신하경이지만, 보는 시청자는 그런 그녀에게 감정이 이입되기 보다는, 때론 그 고지식한 정의가 안타까울 정도로 '융통성 없어 보일'뿐이다. 
그런 그녀보다는, 때론 아내를 구해내기 위해, 때론 입신 양명을 위해, 때론 모시는 분을 위해, 타협도 마다하지 않는 박정환(김래원 분)에게서 인간적 향기를 맡는다. 
<오만과 편견>도 마찬가지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우직한 구동치와 원론적 질문을 던지는 한열무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가를 저울질하면서, 그래도 차악을 선택하려 애쓰는 문희만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 그녀의 아이를 외면하고, 평생 그것을 덮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김문식의 사연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젊은 그들의 정의는 어쩐지 불안하고 어설픈데, 노회한, 그래서 '타협'이 익숙한 저들의 편의는 익숙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화법'이 거기에 가깝기 때문이리라. 

오만과편견
tv데일리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것들은, <펀치>에서도, <오만과 편견>에서도, 그리고 <힐러>에서도 밝혀지는 권력층의 비리, 섹스 스캔들을 비롯한, 온갖 협잡과 권력형 비리들이, 결국, 누군가의 개인적 이해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들이다. 인간적이어 보이는, 그들의 '한 발자국'이 결국, 이렇게 갈짓자, 흐트러진, 썩은내 나는 권력형 비리와 스캔들로 이어진게 된다는 것을, 각종 사건들로 드라마는 상징적으로 설명해 낸다. 

그래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정의'가 주는 울림은 강하고 깊다. 어렵게 다시 마련된 앵커의 자리, 좁은 스튜디오, 단 한 대의 카메라, 그것을 앞에 두고, 김문호는 말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마련된 '썸데이'의 뉴스가 계속될지, 이번 한번이 될지, 혹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썸데이'는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말을 맺는다. 그저 한 마디 말에 불과한데, 여운이 오래 간다. 이 희박하고도, 어려운 '진실'을 말하기 위해, <힐러>, <펀치>, <오만과 편견>은 고군분투 중이다. '희망'으로 시작되는 한 해다. 


by meditator 2015. 1. 7. 12:37

영화 <국제 시장>이 4일 현재, 누적 관객수 720만 1055명을 기록하며, 1000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가 하면, 3일 방영한 <무한도전 -토요일토요일은 가수다>는  29.6%를 기록(tns 수도권 기준), 요즘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보였다. 


이렇게 천만 관객을 앞둔 영화, 공중파 프로그램으로 30%에 육박하는 프로그램에 두고, 뭐라 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가. 심지어, 그것을 보고 즐기고, 눈물 흘리면 됐지, 뭐라 말하기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기에, 그 '감읍'한 감동을 뒤로 하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글을 쓰기에 앞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은, <무한 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90년대 화려한 문화계를 공유했던 사람도 아니요, <국제 시장>의 고생담을 공유한 세대도 아니다. 그저, 이 세대도, 저 세대도 아닌, 어중간한 세대의 기자가 본, '그들'의 추억에 대한 감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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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 시장>이 개봉하기 전부터 다수의 영화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딱 한 마디로, 영화 평론가 김태훈의 말처럼, 맨날 듣던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극장에 가서 또 들을 필요까지 있겠는가 였다. 문제는, 그 아버지의 이야기의 '화법'이었다. 극단적으로는, 허지웅 식으로, '반성이 없는 어른 세대'의 그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당파성'을 떠난 고생담에 대한 미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새정치 연합 문재인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가족의 가치를 확인하고, 부모 세대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했으며, 이런 문재인 의원의 생각과, '우리 역사가 굴곡이 많은데, 그 고비마다 고생을 많이 하고."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생각은 그리 다르지 않은 듯했다. 그 시절을 경험했던 사람으로서의 '소회'가, 이성을 앞선다. 
심지어, 이 영화를 보고 박대통령은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을 들어, 즐거우나, 괴로우나 나라 사랑하세 라는 결론을 냈고, 엄밀하게 이 말은, 문재인 의원의 '애국은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는 가치다'라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여봐란듯이, 여야 정치인들이, 너나 할 것없이 영화<국제 시장>을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보고 눈물을 흘린다. 

당파성을 떠나, 중견의 여야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공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그들의 '추억'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살지 않은 기자 조차도, 때론 tv를 통해 보여지는 '대한늬우스'에 시큰해지는 걸 보면, 지나간 것에 대한 '감상'은 인간의 누선을 약하게 하고, 마음을 여리데 만드는게 분명하다. 하지만, 거기에, 그리도 쉽게,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에는, 역시나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하듯이, 우리 아버지 세대의 삶에 대한, 비평과 평가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논외의 대상이란 의미도 된다는 것이다. 그저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살아왔기에, 그것만으로도 다 용서되고, 설명이 되는 것이, 여전한 우리 아버지 세대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그 '과거'는 선택적이다. 그들은 <명량>을 보고, <국제 시장>을 보지만, 2014년 개봉한, imf시절을 배경으로 한 인간 군상을 다룬, <해무>를 보러 가진 않았다. 자신의 배와, 가족, 그리고 생존을 위해, 피치 못할 범죄를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또 다른 우리 기성 세대의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당대의 마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카트>는 조용히 극장에서 내려왔고, 용산 참사를 다룬 <소수의견>은 극장에 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이 말하는 역사는 엄밀히 말하면, 편집된 역사이다. 영화 <국제 시장>의 역사가, 지극히 보고 싶은 면만 보여준 아버지의 역사이듯이.

그렇게, <국제 시장>이 보고 싶은 우리의 고생담만을 칭송할 때, tv를 통해 보여지고 있는 90년대의 열풍은 어떨까?
이미 그 조짐은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예견되었다. 과연, 90년대의 음악이 ost로 깔리지 않은 <응담하라> 시리즈가 지금처럼 장안의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었을까? 경제적 부흥의 마지막, 문화의 르네상스, 90년대의 화려함은, 당대의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차려진 문화의 진수성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90년대 르네상스의 복귀는, 2014 말과, 2015년 초 <무한 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통해 절정을 이룬다. 
하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시청했던 사람이라면 <무한도전-토요일토요일은 가수다>가 생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청춘 나이트' 라는 특집을 통해, 90년대의 가수들이 나와, 그 시절의 음악을 재현해 내었던 것을 먼저 한 것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먼저했던 특집을, 보다 대중적인 영향력을 지닌 <무한도전>이, 그 시절 가수들의 이야기까지 얹어,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만드니, 밥을 먹던 식구들까지 서서 tv를 보며 몸을 흔들게 만든, 흥겨운 잔치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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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pop

그런데, <무한도전 -토토가>는 그저 90년대의 오마주랑 다르다지만, 정말 무엇이 다를까? 그 시절의 가수들이 등장하여, 그 시절 못지 않은 여전한 무대를 선보임으로써, 그 시절을 완벽하게 재현해 낸 시간, 과연, 그 시간을 통해 시청자들이, '접신'하고자 한 경지는 무엇이었을까?
이제는 음악 프로를 봐도 얼굴도 모르는 아이돌들이, 한 주 만에 1위를 하는, 저들만의 음악 세상이 된 세상에서, 음악을 즐겼던 그 시절에 대한 회귀?, 댄스 뮤직에서 부터, 발라드, 아이돌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성찬처럼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던 풍성한 음악에 대한 그리움? 아니면 한때 자신이 즐기고 좋아했던 가수들에 대한 여전한 팬심? 

안타깝게도, 그 화려한 잔칫상의 너머로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감정은, 무엇을 해도 될 꺼 같았던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아닐까? imf라는 경제 위기로 마침표가 찍어지기 전까지, 경제 호황과, 성장, 그리고 발전이라는 떡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란 말이다. 기약할 수 없는 저성장과, 취업난과, 고소비의 아득한 현재가 아니라. 

아버지의 세대가 지나온 시절을 반성없이 고생담만을 늘어놓는다 하면서, 정작 그 아들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이룬 호황 속에 흥청망청 했던 시절을 그리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무한도전-토토가> 열풍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tv가 말하는 90년대에 왕년에 잘 나가던 가수들은 있지만,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 백화점이 부서지던 졸속 시공과 부실 공사가 거듭되던 imf로 결단날 허술한 대한민국은 없다. 정말, 환호하며 반기는 그'토토가' 열풍이, 정말 온전히 그 가수들에 대한 그리움과 반김인지, 한번쯤, 조금은 더 젊은 사람들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지나간 것을 그리워 하는 순간, 사람은 자신이 나이들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나간것을 그리워하는 순간, 어느새 사람은, 조금씩 '보수적'이 되어간다. 그 시절의 가수들과 함께, 자신의 화려한 젊음을 반추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자신의 회고 방식이, 과연 <국제 시장>을 보며 눈물 흘리는 어른들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한번쯤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14-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종교에 억눌렸던 인간 본연의 정신을 되살려내기 위해, 고대 그리스의 인문 정신을 불러 들였다. 고대 그리스의 그것은 분명 과거의 그것이지만, 암흑의 중세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안티 테제였다. 
어른들은 <국제 시장>을 보고 눈물 흘리고, 젊은이들은 90년대의 음악을 다시 부르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새로이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과거를 쉽게 이야기하고, 90년대 문화는 트렌디 셀러가 될 듯하다. 부디 지금 불러낸 이 과거의 '망령'들이 그저 과거를 '미화'하고 '칭송'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충전재'가 될 수 있기를. <국제 시장>과, <무한도전-토토가> 사이에 낀 세대의 작은 새해 희망이다. 


by meditator 2015. 1. 4. 18:12

한때 촌각을 다투며, 심지어 헬기를 타고다니면서까지 강연을 다니던 김정운 교수가 사라졌다. 그러던 그가,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책, [에디톨로지]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2015년 새해 벽두부터, kbs2tv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장장 3부작에 걸쳐 드러낸다. 

2012년부터 홀로 일본에서 지내며 일본 옛그림을 배웠다는 김정운은 홀로 지냈던 시간이 너무 외로워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는 조금은 아니, 많이 업된 자신을 양해해 달라며 흥겹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굳이 그가 소개한 하버드 대학의 빌 게이츠와, 스탠포드 대학의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비교하지 않아도, 스스로 흥이 자서, '자뻑'을 빈번하게 드러내며, 자신의 새로운 학문, '에디톨로지'를 통해 풀어낸 '수다'는 '영양가'를 떠나, 그 어떤 개그 프로그램보다도 즐겁다.

 

그런가 하면, 흔들림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에 진력하던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영화 평론가라는 그의 직업에는 생소한 장르, 토크쇼의 mc로 '수다 한 판'을 풀어낸다. 이미 <금요일엔 수다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김태훈과 함께 진행했지만, 그 역시 영화 관련 프로그램이었기에, 본격적인 외도라 할 만하다. 
이동진이 새롭게 mc를 맡은 <시간여행자k>는 온전히 '수다'의 한 판이다. 해방 이후 70년간 대한민국 사회가 변화되어 왔던 시간들을, 개그맨 이윤석, <비정상회담>의 타일러 라쉬, 시나리오 작가 김희재, 독고탁으로 상징되는 만화가 이상무, 배우 김부선, 가수 레이디 제인 등, 다양한 연령과 직업군의 인물들이 모여, 온전히 '입'으로만 터는' 시간이다. 

일찌기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라는 도발적 저서로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노는 만큼 성공한다> 등을 통해, 오로로 '일'밖에 모르며 늙어가는 이 시대의 남자들을 도발하기 시작했던 김정운은, 그의 새 책, <에디 톨로지>를 통해, 일한 만큼, 늙어가는 시간이 남아도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창조는 재미다>, <재미는 창조다>, <데이터베이스가 공부다>를 통해, 정보가 만연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정보의 늪에 빠지는 대신, 주체적으로 그 정보를 '자신만의 방식'을 통해 편집하며, 자신의 삶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다. 그런데 여기서 김정운이 추구하라고 하는 삶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달려왔던 '성공'이 아니다. 그 자신이 바쁜 교수와 강연의 늪에서 빠져 나와, 일본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듯이, 결국 은퇴하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삶에 연연하지 말고, 진짜 자신이 즐기며 행복해할 공부를 하라고 충고한다. 

'편집'으로 부터 시작하여, 재미와 행복으로 넘어가는 김정운의 수다는 현실적이다. 더 많은 정보 속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정보'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더 이상 '성장'과 '발전'을 담론으로 삼을 수 없는 '저성장, 고소비'의 사회를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것이 ,'공부'하는 것이라며. 그가 말하는 공부가 별거 아니다. 우리 나라 최고의 명강사였던 그가, 일본 작은 대학에서, 미술 공부를 하듯, '재미'를 느끼는 것에 몰두하는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라고 충고한다. 물론, 정신적 만족의 함정도 놓치지 않는다. 그저 나 좋은 것만에 탐닉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인다, 자신이 느끼는 재미, 자신이 느끼는 행복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물어야, 재미가, 자기 만족적 탐닉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말한다. 
그가 들고온 새로운 그의 이론이 재밌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발을 디고 사는 삶의 현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요, 50세 이후의 오래될 늙음과, 쉬이 성공을 기대하기 힘든 젊음들에게 '생각해 볼만한' 현실적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3일에 걸쳐 김정운 교수의, 아니 교수가 적성에 안맞아 때려 친, 저술가 김정운의 수다가 질펀하게 드리워진 한편에서 조용히 새로 시작된 또 다른 수다 프로그램은 <시간 여행자k>다.
첫 시간 주제 한국인의 몸, 피비린내 나는 전란 속에서 시작된 미스코리아 대회를 시작으로, 변화되어가는 여성의 몸과, 그 한편에서, '살찌는 약'을 광고하고, 우량아 선발대회를 하던 못살던 대한민국의 변화상을, mc와 패널들의 수다로 온전히 짚어간다. 


이런 수다의 관건은 결국, 시각이다. 어떤 관점에서 지나온 대한민국의 역사를 볼 것인가? 더구나 최근 지나온 과거의 역사에 대해, '칭송'과 '폄하'의 양 극단이 오고가는 상황에서, 그런 <시간 여행자k>의 관점은 건강하다. 
전란의 과정에서도 수영복 심사를 받는 미스코리아 후보들을 바라보는 심사위원들의 관음적 시각을 짚을 수 있는 관점과, 변화되어가는 육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시선, 그리고, 이제 다시 '마름'이 트렌드가 된 세상을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까지, 70년이란 시간을 훑어보는 시각들이 편향되어 있지 않다. 
가끔은 열혈 투사 배우 김부선의 입을 통해 거친 단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 스스로, <100분> 토론인가 라며 자정하는 센스를 보였고, 이제는 고전이 된 만화 독고탁의 만화가 이상무 옹의 시선은 노회하지 않았다. <썰전>에서 말 한 마디 하기 힘들던 이윤석은 모처럼, 그 자신의 탁견을 펼치며 신이 났고, 중년의 김희재와, 젊은 레이디 제인이, 여성이라는 공감대에서 크게 비껴가지 않는다. 이방인 타일러의 낯섬이 어색하지 않고, 또 다른 다양함으로 어우러진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그 다름이 튕겨가지 않고, 지나온 70년의 격동의 세월처럼, 그저 한데 어우러진다.

무엇보다, 그간 영화 평론을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폄하보다는, 장점을 짚어보려 하고, 열연을 했던 배우와 감독에 대한 존중감을 놓치려 하지 않았던, 평론가 이동진의 객관성이 돋보였다. 그의 넉넉한 시선 아래, 김부선의 튀는 언어도, 이상문의 고답적 시선도, 타일러의 색다른 시선도, 모두 그럴 수 있는 생각들이 된다. 19금의 야한 이야기도, 지레 얼굴이 빨개지는 이 mc덕에, 수즙은 생각으로 돌변한다. 

과연 현재 kbs라는 공영 방송의 토요일 8시대에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할 수있을까?라는 회의를, <시간 여행자k>는 얼마든지, 건강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누가, 어떻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고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다름을 차이나, 차별로 읽지 않고, 그저, 다름의 개성으로, 역사로 읽어낼 수 있음을 <시간 여행자k>는 보여주었다. 과거를 지레 미화하지도, 섣불리 그리워하지 않으며, 지나온 시간으로 덤덤히 짚어보며, 오늘을 반추할 수 있는 시간, 건강한 수다 한 판, <시간여행자k>다. 그리고 지금 필요한 것은, 비록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더라도 ,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건강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 4. 15:48

최근 새롭게 선을 보이고 있는 kbs예능의 화두는, 교양과 예능의 콜라보레이션인 듯 하다. 얼마 전 선을 보인, ,<발칙한 사물 이야기>를 통해, 인문적 상식과 토크쇼의 조화를 추구하더니, 1월2일 파일럿으로 새롭게 선보인 <나비효과> 역시 아예 대놓고 예능과 교양의 접목을 내세운다. 


부제도 거창하게, 미래 예측 버라이어티라 내세운 <나비 효과>는 도무지 무엇을 보여주려는 프로그램인 지 예측할 수가 없다. 
오히려 이 정체모를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 것은 애초에 이 프로그램의 mc로 예정되었던 김구라가 건강 상의 이유로 프로그램이 출격하기도 전에 mc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가쉽성 기사였다. 그것 외에는, 이른바 스타 mc의 출연도 없이, 화제성있는 패널의 등장도 없는 무엇을 하겠는지로 모를 <나비 효과>는 '오리무중' 그 자체였다. 


첫 회, 김구라의 퇴진으로 '어부지리'로 mc자리를 꿰어 찬 최동석 아나운서와 박지윤 전 아나운서의 mc 조합이 화제에 오를 때까지도 이 프로그램의 정체는 모호했다. 
<비정상회담>의 구도를 떠올리게 하는 양 측으로 늘어선 채 마주 보는 패널들, 거기에 한 쪽은 이른바 의사, 변호사, 심리상담가, 미래학자까지 전문가군은 종편의 흔히 보는 토크쇼 패널을 연상시키고, 맞은 편의 봉만대, 레이디 제인, 사유리, 미노 등은 케이블의 19금 상담 프로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에 드디어 등장한 첫 번째 '나비 효과', 익숙한 성우의 목소리에 실린, '남자가 집안 일을 하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식의 단호한 귀납적 정의는, <스폰지>을 통해 익숙한 '화법'이다. 

이렇게 어디서 본 듯한 구도와 구성과 달리, <나비 효과>의 내용은 신선했다. 말 그대로 '나비효과', '남자가 집안 일을 하면'이라는 예상 외의 조건이, '집값이 떨어진다'라는 뜻밖의 결과를 낳는 행간을 연예인 패널과 전문가의 해석이 곁들여져, 황당한 정의가, 풍성한 상식으로 이어진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먹지 조차 못해 애를 쓰는 미노의 난처함과, 오랜만의 예능의 당황함을 고스란히 드러낸 붐의 여전한 예능감에, 19금을 불사하는 사유리의 당돌한 발언, 그리고 전혀 19금스럽지 않은 말을 해도 19금이 되는 봉만대 감독의 해석, 그리고 그런 봉만대 감독과 이미 영화 프로그램을 통해 호흡을 맞추어, 갑론을박의 묘미를 살려내는 전문가 그룹의 김태훈에, 아직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전문가적 식견을 넘어, 패널로써의 묘미를 살려낼 가능성을 제시한 전문가 그룹들이, 황당한 나비효과 명제들을 예상 외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덕분에 '남자가 집안 일을 하면 집값이 떨어진다'를 통해 천편일률적인 부부 역학 관계에 대한 모색은 물론, 거기서 더 나아가, 성적 매력과, 친밀도라는 19금을 넘나드는 남녀 사이의 미묘한 관계까지 짚어보고, '샤워를 오래하면 벌레 버거를 먹게 된다'를 통해서는 뜻밖에도 지구 온난화에 대한 실감나는 고뇌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남자가 스키니를 입으면 남성이 멸종된다'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힘도, 권위도, 심지어 성적 능력에 있어서 조차 무기력해져 가는 남성에 대한 공감을 공유하는,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한 명의 여성을 포함한 전문가 그룹의 강한 반대를 낳는 전혀 전문가스럽지 않은 결과로, 프로그램은 교양을 넘어 예능으로의 가능성을 살려낸다. 

뜻밖의 결과를 낳는 명제를 제시하며, 거기에 행간을 메꿔가는 이 프로그램은,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이미 <스폰지>를 통해 익숙한 예능 화법이다. 거기에, 종편과 케이블에서 이미 검증된 패널과 구도를 더해, 새로운 <나비 효과>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스폰지>의 깜짝쇼같은 일상의 경이로움이, 이제 문화적 트렌드를 타고, 인문, 시사 영역으로 그 범위를 확장한 듯한 모양새다. 이런 익숙함을 넘어, <나비 효과>가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결국, 새롭게 판을 짠, 연예인과 전문가 패널의 신선함과, 매력으로 승부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김구라 개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아직은 예능의 초보지만,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진부해지는 김구라 대신, 부부가 함께 시작한 최동석, 박지윤의 진용은 신선하다. 최동석의 미흡함은, 오랜 자숙 끝에 돌아온 붐의 매끄러운 진행 능력으로 이미 충분히 보완되는 듯하다. 
거기에, 박지윤의 아줌마스러움은, 뜻밖에도, 이미 영화 프로그램을 통해 합의 묘미를 보여준, 봉만대와 김태훈의 조합이 뜻밖에도 19금스러운면서도, 19금스럽지 않은 풍부한 상식의 토크로 보완해 간다. 아직 채 시동을 걸지 않은 가능성으로 잠재해 있는 전문가진용이 그들의 능력을 한껏 발휘할 때까지, 두 사람의 활약은 돋보일 듯하다. 하지만 이미 첫 회에서, 전문가 이상의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졌다. 
연예인 패널도, 연예인이라는 비전문가 영역을 넘어 오히려 전문가같았던 이현이나, 그저 4차원을 넘어선 시선을 제시한 사유리의 활약이 돋보였다. 하지만, 끝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조차 힘들어 하던 미노와, 동문서답의 김태원의 존재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보아 할 듯하다. 또한 '미모'만으로 버티기에 에릭남 역시 버거워보인다. 최소한 토크쇼라면, 연예인 패널에서도, 대화나 토론이 가능한 상대가 등장해야 할 듯하기 때문이다. 

스타 MC나 뻔한 신변잡기류의 토크쇼를 넘어, 이미 KBS가 전통으로 가지고 온, 교양과 예능의 콜라보라는 영역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신선한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도가 반갑다. 부디, 이런 프로그램들이 잘 정비되고, 다듬어져 정규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높여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5. 1. 3. 12:54

1월 1일, 2일에 걸쳐 kbs2tv는 새로운 시도, 창극 시트콤 <옥이네>를 선보였다. 우리 소리와 코믹한 시트콤의 콜라보레이션, 옥이네는 한 편의 난장을 보는 듯 어수선하기도 하였고, 조금은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그다지 어색하지만은 않은 조합이었다. 


창극 시트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우선 창극이 무엇인가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겠다. 흔히 우리 소리라 하면, '판소리'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렇다면, '판소리'와 '창극'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판소리 열 두 마당 등, 전통의 우리 소리로 알려진 판소리는 북을 치는 고수 한 명을 두고, 광대 한 명이 극 한 편을 온전히 끌고가는 1인극을 일컫는 말이다. 이렇게 전통적으로 1인극이던 판소리가 20세기 들어 근대적 극장인 원각사의 설립과 함께 형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극장의 공연을 위해 1인극이 남창과 여창으로 나뉘고, 각각의 배역이 나뉘고, 배역에 따른 사실적 연기를 하게 된 창극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일제 시대 암흑기를 맞아  크게 위축되었던 창극은 해방 후 국립 국악원이 설립 된 이후 여러 창극 단체가 결성되었으며, 1962년 국립 창극단이 결성된 이후 서양 오페라에 비견되는 우리의 음악극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거창한 역사가 아니더라도, 한때는 당대의 명창이던 조상현, 안숙선 명창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창극이 안방 극장을 찾아들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문화의 급격한 발전 아래, 판소리 전통의 계승이라는 장르적 한계에 갇혔던 창극은 어느새  tv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게 이제는 이름조차도 생소해져가는 창극이 시트콤과 합체를 했다. 1월 1일, 2일에 걸쳐 방영된 <옥이네>가 그것이다. 
시트콤으로 돌아 온 창극의 배경은 우리 것의 잔향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전주, 전주 한옥 마을 골동품 가게가 바로 옥이네 집이다. 여주인공 옥이의 할아버지는 자신이 파는 골동품을 자식처럼 아껴서 팔기조차 아까워 하는 골동품가게 주인이요, 옥이는 그 할아버지의 사라진 아들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자,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pd이다. 

전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걸맞게, 이야기도 전주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임진왜란 당시 각지에서 소실된 왕조 실록과 달리, 전주 유생들에 의해 지켜진 왕조 실록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그 역사적 전통이 오늘에도 면면이 이어져 가고 있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시트콤으로 담았다. 선비 사(士)자를 심볼로 내세우며 현재에도 여전히 일본에 의해 수탈된 문화재를 찾아오기에 고심하는 비밀 결사 단체 '검은 선비단'의 활약이, 창극 시트콤<옥이네>의 숨겨진 이야기이다. 우리 소리로 풀어내는 창극에 걸맞는, 적절한 소재의 이야기로, 극중 등장하는 각종 국악의 배경 음악과, 극중 인물들의 소리가 우리 문화재 지킴이라는 검은 선비단의 이야기와 이질감없이 어우러져 풀어진다. 

판소리나, 창극이나 대중을 상대로 한 공연의 형식이요, 서양의 오페라에 대응하는 우리의 음악극이듯이, <옥이네>는 이런 음악극의 요소를 고루 살리고자 한다. 극중 남주인공 격인 풍남문(이현우 분)을 흠모하는 아니, 모든 남자들을 흠모하는 노처녀 아나운서로 등장하는 안세련(이예림 분)의 노처녀가를 비롯한 코믹한 '혼자소리'에서부터, 10년간 이별한 부녀의 정을 풀어낸 남창과 여창의 합주, 2회 마지막 조선 왕조 실록을 빼돌리려 한 김관철 관장(박상규 분) 일행에 맞서 모인 검은 선비단의 웅장한 의분을 담은 '떼소리'까지 다양한 창극의 요소를 담으려 애쓴다. 

물론 아쉬운 점은 남는다. 일단 여주인공 역을 한 화영의 경우, 창극에 어울리는 발성은 물론, 그저 노래를 부르기에도 조금은 버거운 음량에, 시트콤을 '오버'라 해석한 과잉된 코믹 연기가 그녀의 미모로 덮어지지 않는 아쉬움을 남긴다. 극중 감초 역할의 이예림 역시 발군의 소리와 달리, 과잉된 연기와 캐릭터에 아쉬움을 남긴다. 여전히 시트콤= 오바 연기라는 잘못된 해석이 극을 관통하는 듯하여 시청자들의 집중을 흐트린다. 그와 함께 전체적으로 창극으로서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소리들이 등장했지만, 첫 시도로서의 노력 이상으로 잘 어우러졌는지에 대해서는 반성할 여지를 남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학'을 한 정서로 하는 우리 소리를, 시트콤이라는 현대적 장르와 콜라보레이션 하고자 한 시도 자체는 반길만하다. 우리 문화재 탈환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검은 선비단의 수장 할아버지 한길이라는 코믹하면서도 우직한 캐릭터를 통해, 그리고 그의 곁에서 얽히고 섥힌 가족들의 다양한 사연과 캐릭터를 통해 풀어내고자 하는 이야기가 가진 흥미진진함과, 거기에 곁들인 우리 소리가 신선했다. 때로는 '오글거리는' 소리의 등장이, 시트콤의 코믹한 요소로 여겨질 만큼. 부디 다듬고 발전하여, 창극 시트콤이 그저 우연한 시도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by meditator 2015. 1. 2. 21:08

결국 '임진왜란'이 터지고야 말았다. 풍전등화 앞의 조선, 하지만, 나라의 흥망이 눈 앞에서 오고가는데도, 그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 자신의 입장을 놓을 수 없다. 그렇게 왜적이 침입한 상황에서도 저마다 다른 속내를 펼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왕의 얼굴>은 갈리는 운명으로 풀어낸다.

 

왜적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수도 한양을 위협하는 상황이 다가오자, 선조(이성재 분)는 파천을 결정한다. 대신들에게 내건 명목이야, 좀 더 명에 가까운 곳으로 옮겨, 명에게 원병을 청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왕의 파천 행렬을 막아선 백성들의 분노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자기 한 몸 살겠다고 도망가는 거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의 역사 속에서 도망가는 위정자의 모습은 너무도 익숙하다. 6.25 전쟁이 나고, 수도 서울을 버리고 한강 다리까지 폭파해버린 채 도망가던 이승만 대통령은 도망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도 서울의 사수를 내세웠다. 심지어, 후에 서울이 수복된 후 자신들이 다리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공산치하에 내던져졌던 사람들을, '사상검증'의 잔인한 '인민 재판'앞에 던져 버린다.

 

왕의 얼굴

tv데일리

 

그렇게 도망가는 선조가 자기 대신 왜적의 총알받이로 내세운 것은 다름아닌 '광해'였다. 명목이야, 맏아들 임해가 왕재가 아니요, 신성군은 너무 어린 탓이요, 왕자 들 중 가장 왕의 재목에 어울리는 현명함을 가졌다지만, 결국 왜적들의 손에 잡혀 목숨을 잃어도 어쩌지 못할 만만한 대상이었음을 드라마 <왕의 얼굴>은 밝힌다.

하지만 그런 선조의 '응큼한' 속내에 아랑곳없이,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큰 아들 임해군과 신성군은 자신들이 세자가 되지 못함이 먼저이다. 왜적이 들이닥치건 말건, 나라가 없어지건 말건, 자신들의 '자리'가 먼저인 그들은 어떤 면에서 가장 아비를 닮은 아들들이다.

그런 형, 동생들과 달리, 드라마 속 현명한 왕재 광해는, 그런 자신의 운명을 익히 알고 있으며서도 기꺼이 아비를 대신해 수도 한양에 남겠다고 말한다. 그의 얼굴에 드리운 '왕재'가 그저 헛운명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임란 속에서 위기에 빠진 왕가의 궁여지책으로 세자가 된 광해와 달리, 스스로 '왕의 길'을 가겠다고 나선 또 한 사람의 인물이 있다. 바로 김도치(신성록 분)다. 대동계의 수장으로, 평등 세상을 꿈꾸는 그들의 앞에 나선 모든 일들을 진두 지휘하던 김도치, 하지만 정작 선조를 암살하려던 대동계의 일원을 스스로 죽여버리면서까지 선조의 총애를 얻으려 했던 그의 속내가, 13회에 분명해졌다. 자신의 부모 형제가 억울하게 죽어갔던 분노를 '대동 세상'을 만드는 것을 통해 '승화'하는 대신, 그 자신이, 왕이 될 '역심'을 품는다. 왕의 재목이 별거냐며, 도망간 왕이 비운 자리에 자신을 앉혀본다.

 

국난의 시기에도 나라를 지키기보다는 일신의 안녕을 우선하여, 발빠르게 도망했던 왕, 스스로 국경을 넘어 명으로 건너가려 했으나, 신하들의 만류로 겨우 국경 근처에 머물렀던 왕, 비겁한 왕 선조와, 그런 아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세자가 되었던 광해, 그리고 결국 궁여지책이 그를 왕으로까지 만들었던 운명의 이야기를 <왕의 얼굴>은 '관상'이란 운명론적 서사를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그래서 파천을 앞둔 전날 선조는 용상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왕이 되어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는 자신의 처지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 왕의 재목이 아니라, 결국 왜적들에게 나라를 내주게 되었다며.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관상을 통탄하고 있는 선조의 운명론의 맞은 편에 한양에 남아 광해를 돕겠다는 가희(조윤희 분)의 운명론이 있다. 왕의 후궁이 되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그녀, 하지만, 그녀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다 운명을 맞이하겠다며 광해를 돕기 위해, 남장을 하고 활과 목검을 챙긴다. 그런 그녀에게 당대의 최고 관상가 백경은 타고난 '관상'을 이겨내는 것이 '심상'이라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준다.

 

하지만 백경이 존중해 주지 않는 '심상'도 있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도치에게 백경은 그에게 독초를 먹여 죽이려다 차마 죽이지 못했던 과거 자신의 우유부단을 후회한다.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려는 도치의 결단은, 그저 왕재로 타고나지 못한 운명론을 넘어선 의지론이라기 보다는, 자신과 함께 했던 대동계의 동지들마저 자신의 의도에 따라 희생시키는 선조와 다르지 않는 '일신의 안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고난 운명을 거스르는 도치의 야욕 앞에 자신의 관상에 따라 진정한 왕의 재목으로 거듭나는 광해가 있다.

 

<왕의 얼굴>은 전란에 빠진 조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운명적 선택을 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관상'을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서사의 방식이, <왕의 얼굴>의 매력이자, 또한 한계가 된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인물들은, 결국 그로 인해, 다른 역사적 결과물을 낳지만, 드라마는, 그걸 원심력있는 역사로 풀어내는 대신,'관상'이라는 운명론으로 귀결시켜 버린다.

그래서 왕은, 나라를 버리고 달아나는 전날, 결국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나라를 이 지경에 빠진 자신을 반성하는 대신, 자신의 관상탓이나 하고 있다.

 

bnt뉴스

 

그런 왕을 대신하여, 졸지에 나라를 떠맡은 광해의 운명은 애처롭고, 그 상황에서 의연한 모습은 대단해 보이지만, 어쩐지, 그런 그의 모습은, 또 다른 운명론적 영웅을 보는 듯, 단선적이다. 비록 최근 들어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조명을 새롭게 하여,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폭군'이 아니었음이 새롭게 부각되어지고 있지만, 정말, 적군의 총발받이로 남겨진 세자가 된 그가, 한번도 자신의 애꿎은 운명을 탓하지 않은 채, 그토록 애닮게 '백성'만을 생각하는 성군이었을까? 도망가는 아버지를 걱정하고, 자신을 음해하고, 죽이려고 드는 형과 동생을 대신하여 화살을 받고, 총알을 기꺼이 받는 광해는 '순교자'적이긴 하지만, 매력적인 역사적 인물은 아니다. 광야에서 악마에 시달리며 자신의 운명을 놓고 울부짖던 시간이 있어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더 숭고하듯이, 인간적 고뇌조차 제껴두고, 오로지 백성만을 걱정하는 광해는,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럴 수록 생동감있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현실감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광해에 비하면, 오히려, 타고난 운명을 거슬러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선, 김도치란 인물이 드라마적 흥미를 일으킨다. 하지만, 일찌감치 대동계의 인물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희생시킴으로써, 드라마는 하늘이 내려준 운명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으려 한다. 신분제 사회 조선을 넘어서려는 김도치란 인물을 그저 결국 나쁜 놈으로 그려냄으로써, 그리고 '왕재'의 관상을 타고난 광해를 지고지순한 영웅으로 그려냄으로써, 운명론적 역사관에 스스로 갇혀 버리게 된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 2. 10:51

수능이 끝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변별력없는 수능이란 제도가 문제 되고, 그 속에서 제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처지가 논해지고, 새로운 제도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논의되는 대학 입시 제도, 교육이 곧, 수능이요, 공부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대학이 보내는 것이 된 세상이다. 하지만, 수능이 바뀌면 바뀔 수록, 점점 더 '공교육'이 제대로 서기는 커녕, 더 이른 사교육을 받고, 재빨리 특목고로 갈아탄 아이들이 유리해질 뿐이다.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 심지어 학교 밖으로 튕겨져 나온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 조차 낙오자들 취급하는 교육 현실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를 기대할 수는 없다. 


여기 한 편의 연극이 공연되었다. 지금부터 쓰는 '리뷰'는 그 연극 자체에 대한 리뷰가 아니다. 연극이 아니라, 그 한 편이 연극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을 보고 쓴 '감상문'이다. 12월 27일, 28일 양 일에 거쳐, kbs1tv를 통해 방영된 2부작 특집 다큐<우리는 두번 째 학교에 간다>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두번 째 학교에 간다>라는 연극을 공연할 주인공들은 학생들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 아이들을 학생들이라 말할 수 있을까? 

2014년 교육부가 조사한 초중고 학생 학업 중단 현황을 보면, 학교 밖을 튕겨져 나온 학생들이 6만 여명, 이는 전체 학생 중 1%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하지만 이들만이 아니다.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 해도 조퇴와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학생들, 그리고 쉬는 시간에 깨어 있다가 수업 시작 종과 함께 잠을 청하는 아이들, 이렇게 학교와 세상의 경계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끼어 있는 아이들의 숫자는 집계 조차 되지 않는다. 그저, 공부 못하는, 혹은 안하는 아이들일 뿐이다. 
<우리는 두 번 째 학교에 간다>는 이렇게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해 있는 아이들이나, 학교 밖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마포에 위치한 대안 교육 센터에서, 용인대학교 연극과 교수 박미리 교수의 지도 아래, 8명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연극을 공연하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나레이터로,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아 주는 또 한 사람의 어른으로, 최불암 선생이 있다. 

8명의 아이들에게는 각각의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일찌기 선생님의 폭력으로 인해 학교 생활을 접어버린 아이, 강남 학군으로 이사 온 후 성적으로 이한 부담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둔 아이, 가출을 밥먹듯이 하는 아이, 중학교 시절 화장을 하다 선생님의 눈 밖에 난 아이, 일반고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미용학교로 옮긴 아이, 부모님이 안계셔서 이 쉼터, 저 쉼터를 전전하는 아이. 오토바이 사고로 보호관찰을 받는 중인 아이,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 이른바 '문제 학생'이라 칭할 수 있는 8인 8색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연극은, 세상이 그저 '문제'라고 바라보는 이 아이들의 사연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문제에, 아니, 자기 자신을 올곧이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연극을 위한 모임 자체가 여덟 명의 아이들로 다 구성되기가 힘들다. 학교에서 쉬이 빠져나가던 아이들은, 규칙적인 연극을 준비하는 모임 자체에 성실한 것이 힘들다. 각자의 사연들도 그들로 하여금 연극에 집중하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아버지와 따로 떨어져 배달 알바를 하는 형이랑 사는 아이의 생활도, 이 쉼터, 저 쉼터를 전전하는 아이의 생활도, 밤늦게 까지 미용실 알바를 하는 아이의 생활도, 학교가 끝나자 마자 pc방으로 직진하는 아이의 생활도. 

하지만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귀기울여 주지 않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모임에 아이들은 열중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묵혀두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폭력, 그리고 폭력이 아니더라도 폭언, 무시 등, 학교라는 곳에서 아이들이 당했던 상처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스란히 아이들의 속에 남겨져 있다. 학교만이 아니다. 아직 보호받아야 할 나이임에도 그 어느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처지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면서, 묻어 둔 자신의 상처를 비로소 제대로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두 번 째 학교에 간다>라는 다큐가 가진 독특한 지점은 우리 사회가 제껴 놓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노회한 할아버지 최불암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철딱서니 없다 라는 어른들의 시선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가끔은 참다 못해 너희들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어떻게 그렇게 불성실하냐며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없이 아이들을 철없이만 보던 할아버지 최불암도,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변화한다. 그들을 문제아로 만든 것이, 그저 그 아이들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을, 2회의 다큐 동안, 변화된 최불암의 시선을 통해 '어른'인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공연 바로 전날 까지도 저 아이들이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란 의문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완성해 낸다. 그들이 가졌던 상처, 그리고 지금의 그들이 가진 두려움, 좌절, 그리고 혼란을 가감없이 자신들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그걸 주변의 어른, 친구들과 나눈다. 그들이 완성한 연극, 그것이 바로 그들의 두번 째 학교였다. 

기적처럼,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아들은, 정말 두번 째 학교를 졸업한 사람처럼 달라졌다. 자신들의 문제를 직시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선택에 자신감을 가지려 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자 한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아이들의 연극을 지켜보며 변화한 어르신 최불암처럼, 아이들의 연극을 지켜 본 어른 들도 감회가 남다르다. 부끄러움에서 부터, '모든 아이들을 몰아넣은 공교육'에 대한 새로운 책임감까지. 그저 '생각없는 아이'들이었던 아이들에게 진솔한 고민과 고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 자신도, 그들을 바라보던 어른들도 달라졌다. 진짜 '교육'이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 진정한 질문이 던져진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4. 12. 28. 23:59

2014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각 방송사 별로, 연예, 가요, 연기 부문의 시상을 한다 하여 시끌벅적하다. 이렇게 각종 시상식이 즐비한 가운데 차분하게, 하지만 엄정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자 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바로 시사프로그램들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사건 사고가 많았던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영돈의 현장 속으로>와 <그것이 알고싶다>는 2014년의 사건, 사고들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jtbc는 12월 13일 발생한 세트장 화재 사건으로 방영이 불확실시 되고 있는 드라마 <하녀들> 대신 이적한 이영돈 pd의 <현장속으로>를 편성했다. 이영돈 pd가 예의 그다운 방식으로 2014년의 사건, 사고가 발생했던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 사고의 위험성을 체험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세월호 사고를 비롯하여, 판교 환기구 참사, 잠실 싱크홀 등 지난 1년 우리 사회를 경악에 빠뜨렸던 사건, 사고들의 현장에 이영돈 pd가 나섰다. 
사건들의 보도 이후, 이pd는 '하인리히 법칙'을 제시한다. 하나의 결정적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300여 개의 전조 증상과 29개의 작은 사고들이 있다는 것이다. 즉, 300여 개의 전조 증상과, 29 개의 작은 사고들이 도미노 게임이 되어, 결국 하나의 대참사를 불러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 실례로 삼풍 백화점 참사 사건을 든다. 개발과 발전이 중심 화두 가 된 사회, 건설 과정에서 보다 높은 건물을 빨리 짓기 위해, 몇 개의 부속이나, 몇 개의 기둥 정도 빼먹는 것은 쉽게 눈감아주는 관행이, 결국, 삼풍 백화점이라는 이 거대한 건물을 버티는 기둥이 몇 개 밖에 되지 않는 괴물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결국 참사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수 대교를 비롯한 각종 사건 사고들이 삼풍 대참사를 예언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여전히 관행적으로 부실을 눈감았고, 사업자들은 이익에만 눈이 멀었으며, 시공자들은 공기를 단축하는데만 급급하여, 결국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뉴스엔

그리고 이런 삼풍 참사의 전례는 고스란히 세월호 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pd가 제시한 세월호와 같은 회사가 운영한 세모 유람선의 실태와 사고는 소름끼치게 세월호의 그것과 흡사함을 보인다. 쭈르륵 밀려 쓰러지는 도미노들, 그 중 단 하나의 도미노판이 제거 되어도 결정적 참사 한 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가 나야 문제점이 뭔지 알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처럼, 성수대교 20주기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후진국형 사건 사고가 빈발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이런 사고는 계속 일어 날 거'라는 예언이 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데서, 2014년을 보내는 마음이 착잡해 지는 것이다. 
부산 고층 건물 사고 이후 여전히 화마의 이동 통로가 되고 있는 각종 배관 통로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땜질식 처방이나, 방화문의 부실한 관리, 그리고, 판교 참사 이후 개선되지 않는 환풍구 관리와, 싱크홀 이후에도 잠실 땅을 파대는 각종 공사들이 또 다른 도미노 게임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 

<이영돈 pd의 현장속으로>가 예의 이영돈 pd의 현장성을 살려, 2014년의 사건 사고를 되돌아 보았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1년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었던 각종 사건 사고를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그저 지난 1년간 이러이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식의 나열이 아니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올해 초 방영되어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형제 복지원' 사건이었다. 왜 형제 복지원인가? <그것이 알고싶다>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된 형제 복지원 사건을 보다, 한 남자가 통곡을 했다고 한다. 바로, 열 살 먹은 해 부산 역에서 형제 복지원에 잡혀 가 청소년 시절까지 무려 5년을 각종 구타와 고문, 노역에 시달렸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부러진 어깨뼈가 흉터로 남듯, 그의 마음에도 지울 수 없는 상흔이 중년이 된 지금에도 남아있다. 하지만, '사죄'만이라도 해주기를 바란다는 그의 아내의 말처럼, 형제 복지원 당사자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부랑아'라는 꼬리표를 단 채, 피해자가 아닌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가 형제 복지원 사건으로 말문을 연 이유다. 

'개인'의 잘못이었다가, 사호 복지 법인의 문제였다가, 국가 정책의 문제임이 이제서야 조금씩 드러나는, 하지만 여전히 30여년이 흐른 이후에야 본인들이 스스로 밝혀내야 하는 '끝이 나지 않는 사건'에 대해 <그것이 알고 싶다>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형제 복지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뼈동굴'로 넘어간다. 우연히 발견된 뼈 무더기가 발견된 동굴, 하지만 거기가 끝이 아니다. 6.25전쟁을 전후로, 100만명이 살상된 민간인 학살의 흔적들이, 남한 곳곳에 뼈무덤으로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제서 발굴되어 플라스틱 상자에 들어있는 뼈들이 돌아갈 곳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받아들 일 수 없기 때문이다.
4.19 이후 사회적 환기를 불러 일으켰던 민간인 학살 사건이, 5.16 발발과 더불어, 그것을 제시한 사람들초자 '빨갱이'로 몰면서 우리 사회 '레드 컴플렉스'가 발효되기 시작했다고, <그것이 알고싶다>는 진단한다. 2005년 어렵사리 진실 화해 위원회가 발기되고, 과거사 진상 조사가 시작되었지만, 이명박 정권의 등장과 함께, 진실의 햇살은 그림자가 지고 만다. 

우리의 대통령은 일본에게 말한다. '부끄러운 과거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하지만, 프로그램은 그것의 방향을 우리에게 돌린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는 용기를. 20여년 만에 텔레비젼에서 형제 복지원 사건을 보고 통곡하는 중년의 가장의 모습에서 보여지듯이, 그리고 여전히 갈곳을 찾지 못해 플라스틱 상자 안에 채곡채곡 쌓여있는 유골들에서 보여지듯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렇게, 과거사 라 해서 잊혀지고, 지워져서 되는 걸까요? 라고 묻는, <그것이 알고싶다>가 귀결된 곳은, 2014년 최대의 사고였던 '세월호', 겨울 바람이 부는 팽목항, 인적이 드문 그곳에,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가장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 사람들은 지겹다, 그만하자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가장을 기다리는, 그리고 돌아오지 않을 가족을 가진 사람들에게 세월호는 여전히 의문 투성이의 해명되지 않은 사건에 불과하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말한다. 형제 복지원, 6.25 민간인 학살처럼, 제대로 해명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상흔으로 남겨진다고. 따박따박 짚어본다. 세상 사람들이, 세월호 사고가 있은 이후, 더 이상 세월호 이전과 우리 사회가 같아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2014년이 마무리 되는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이전과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고. 사람들이 말한 그 이전과 달라진 사회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사회인데, 과연, 세월호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이 사회가, 정말 '사람'을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회냐고? 반문하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스포츠 월드

흥청망청, 그래도 살만했어 라며, 수고한 사람을 찾아 상을 주며, 어떻게든 보람을 만들라며 애쓰는 연말, 시사 프로그램들만은 자신들의 본분을 놓치지 않고, 올 한 해 우리 사회의 실상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것이 여전한 사건 나열식이든, 그것을 넘어서, 본질을 간파한 것이든, 떠들썩한 세밑에서 올 한 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리고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놓치고 있는 것들을 논한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다' 


by meditator 2014. 12. 28. 14:03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인간의 몸으로, 솔선수범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라고 배웠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바로 그 사랑의 현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날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더 이상 크리스마스에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올해는 크리스마스치고 경기가 예년만 못하다며, 덜 흥청거리는 인파를 걱정할 지언정. tv도 마찬가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어수선함을 보이되, 그 누구도 '크리스마스'의 특별함을 주목하지 않는다. 그저 <라디오 스타> 박준형의 말처럼, 최고의 'holiday'일 뿐이다. 그런 가운데, 조용히 성탄 특집 다큐 한편이 찾아왔다. <천상의 엄마>가 그것이다. 하늘이 보내 준 엄마를 기록하기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무려,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큐가 시작되고, 대 여섯살이나 될까 하는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놀러 나간다. 그들을 인솔하는 건 초로의 수녀님 한 분, 아이들은 서로서로 수녀님에게 매미를 잡아달라, 물놀이를 해달라 며 매달린다. 그런데, 이 아이들, 수녀님에게, '엄마'라 부른다. 왜 '엄마'라고 부르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머리에 쓴 두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머리엔 이미 하얗게 서리가 내린 초로의 수녀는 부끄럽다는 듯이 웃는다.  할머니라 불러도 무방할 나이에, 아이들은, 그래도 자신들을 '엄마'처럼 돌보아 주는 수녀님을 엄마라 부른다. 그리고 수녀님도 어쩐지 아이들이, 자신을 '엄마'라 불러주지 않고, 수녀님이라 부르면 섭섭하시단다. 

부산시 암남동 산자락에 자리한 마리아 수녀회, 이곳엔 80여명의 엄마와, 그 엄마들이 키우는 600명의 아이들이 있다. 생후 1개월에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의 18살까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수녀님을 엄마 삼아 이곳에서 자란다. 6.25 전쟁 후 전쟁 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해 미국인 알로이시오 신부가 만든 이곳이, 2014년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존재한다.

▲ KBS 1TV <천상의 엄마> ©KBS
pd저널

그리고 이곳에서 수녀님들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돌본다. 영, 유아반, 초등반, 중고등반, 각가 다른 생활관에는 수녀 엄마들은 적게는 대, 여섯명에서 많게는 열 댓 명까지의 아이들의 엄마가 된다. 
하루 종일 아이들이 뒹구는 방 한 편, 문을 열면, 이층 침대 하나로 가득한 골방이 나온다. 침대 이층에는 아이들에게 읽어 줄 책으로 가득찬, 그 아래 겨우 몸 하나 누일 공간이 남은 곳 이곳이, 아이들의 엄마 노릇에 몸이 부대끼면 잠시 들어와 몸을 누일 엄마 수녀님만의 공간이다. 벽에 걸린 몇 벌의 수녀복, 그것이 수녀님의 전재산인 이곳이, 수녀님은 편하다며 웃는다. 

엄마 수녀님들의 일상도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어떻게라도 좋은 음식 한 첨이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는 마음도, 청소년기의 질풍노도의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아이가 아프면 수녀복의 권위건 뭐건 다 내팽개치고 대뜸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리는 것도, 그저 다른 엄마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수녀님들은 늘 진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안쓰럽다. 초로의 몸이 닳도록 아이들에게 스킨 쉽을 해줘도 열 댓명의 아이들에게 충만한 모정을 채워줄 수 없는 부족함에, 청소년기의 제 멋대로인 아이에게 한 잔소리가 행여나 마음의 생채기를 더할까 노심초사한다. 심지어, 이제는 다 커서 자식을 데리고 온 아이에게, 뒤늦게 서른 몇 명의 엄마로 살던 파릇파릇한 청춘의 멋모르던 엄마 시절의 잘못을 되새긴다. 그래도 품 안의 자식이라 고등학교 때까지는 거둘 수 있어도,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진짜 혼자가 되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말끝을 맺지 못한다. 

그렇게 해도 해도 다해지지 않는 '엄마'의 길을 지탱해 주는 건 바로 수녀님들의 신앙이요, '기도'이다. 그 바쁜 '엄마'의 일상 속에서도 빠짐없이 채워지는 하루 세 시간의 기도는, 그녀들이 '엄마'로서의 삶을 이어가는 근원이요, '엄마'로서 자신을 반성하며 채근하는 시간이요, '엄마'로서의 소명을 주신데 대한 감사의 시간이다. 아이들 걱정에 번거로운 생각에, 혹은 피로한 몸을 이기지 못하는 졸음에, 왜 자신이 '기도'에 온전히 충실핮 못할까 반성하면서도, '엄마' 수녀들을 버텨주는 건, 역시 온전히 '하느님'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도'이다. 

이곳에 있을 때는 착한 딸이었던, 그리고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아이는, 오랜만에 '엄마'를 찾아와, 늙은 엄마의 모습에 눈시울을 적신다. 엄마로 사는 수녀님의 삶이 너무 고되다고. 
하지만, 이제 '엄마' 노릇도 힘에 겨워 손을 놓고, '경비'를 하며 소일하는 걸음마저 절뚝거리는 늙은 '엄마' 수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예외다. 그건, '고생' 이 아니라, 삶이라고. 엄마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그걸 고생이라고 어디 생각하냐고. 평생을 아이를 돌보다 허리가 꼬부라지고, 눈꺼풀이 내려앉은 수녀님은 반문한다. 내 얼굴이 행복해 보이지 않냐고. 사진 속의 꽃같았던 아가씨였던 초로의 엄마는, 내 아이가 아닌, 여러 아이의 엄마로 살수 있었던 '소명'을 주신 것에 새삼 감사한다. 
다큐의 마지막, 한때 이곳에서 엄마의 자식 중 한 명이었던 아이가, 이제 엄마가 되겠다며 서원을 한다. 엄마가 되어 이곳으로 돌아온 아이를 박수를 치며 반기는 수녀님들의 얼굴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그 고되고 보람찬 삶에 들어온 아이에,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소회다.

'불경기'라도, 어떻게 하든, 영화 한 편이라도 보며, '놀아야' 하는 '크리스마스', 우리가 잊고 사는, 이타적 사랑에 대해 <천상의 엄마>는 되돌아 보게 한다. 그리고, 엄마 수녀들의 조건없는 사랑에, 이기적 사랑조차 반추해 보게 만든다. 진짜 크리스마스는 여기에 있다. 


by meditator 2014. 12. 25.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