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청춘의 아련한 슬픔과 공감어린 사랑을 그려내는데 그 누구보다도 탁월했던 <커피 프린스>의 이윤정pd가 2009년 그녀를 연출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던 <트리플>이후 오랜만에 미니시리즈로 돌아왔다. 그간, <골든 타임>과, 2014 드라마 페스티벌 <포틴>을 통해 예의 연출력을 선보였지만, <커피 프린스>의 이윤정을 기다리던 팬들에게 흡족함을 주기엔 미흡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tvn으로 이적하면서, 드디어 이윤정이라는 이름의 색채가 첫 회부터 잔뜩 드리워진 <하트 투 하트>로 그녀를 기다렸던 사람들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이윤정 pd가 들고 온 <하트 투 하트>는 맨 얼굴로 세상에 나서면 얼굴이 붉어져 헬맷을 써야만 하는 대인기피증 여주인공 차홍도(최강희 분)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렇게 맨 얼굴로는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는 그녀가 택한 또 다른 세상살이에는, 돌아가신 할머니로 분장하는 방식도 있다.

그런데, 어라, 어쩐지, 그런 차홍도의 '변장'이 익숙하다. 그렇다. 바로, 자신의 본 모습으로 세상과 만날 수 없었던, <커피 프린스>의 고은찬(윤은혜 분)가 떠올려진다. 2007년의 고은찬이 옥탑방에 사는 소녀 가장으로 자신의 꿈인 바리스타를 하기 위해 남장을 해야 했다면, 2015년의 차홍도는, 대인기피라는 자신의 반사회적 증상을 덮기 위해 헬맷을 쓰고, 할머니 분장을 한다. 2007년에 꿈을 위해 남장을 하던 소녀는, 이제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고, 상처를 입은 여자가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달라진 것은, 대인기피증을 앓는 여주인공만이 아니다.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많다던 쿨가이, 하지만 커피전문점의 사장이 되어, 소년같은 고은찬의 '키다리 아저씨'같던 남자 주인공 최한결(공유 분)도 달라졌다.

<하트 투 하트>의 첫 장면은, 얼굴이 빨개지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의자 위에 책을 놓고, 넥타이를 골라 목을 매려는 남자 주인공이 장식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자전거를 만들어 파신 할아버지에 하버대 대학을 나온, 거기에 베스트 셀러 작가이신 이 주인공, 하지만 알고 보면, 자가용과 진찰실 곳곳에 술병이 상비되어 있는 알콜 의존증이요, 여자랑 사랑은 나눠도 잠을 잘 수 없는 이상 증후군을 가진, 여주인공 말대로, 진짜 미친 놈이다.

심지어 첫 회를 장식한 해프닝은, 바로 그가 술로 인한 블랙 아웃 상태에서, 진료하던 환자가 그가 쓰던 만년필로 자해를 하는 바람에, 살인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e스타

 

이렇게, 그림같은 커피 전문점을 배경으로 동성애인가, 이성애인가 헷갈리는 사랑을 키우던 꿈많던 청춘은, 이제 2015년에 이르면, 각자 자신이 짊어진 정신병리학적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중생이 되어 등장한다.

전셋값 500만원 인상에 이사를 고민하는 여주인공은, 세상으로 부터 끈 떨어진 신세가 되어, 할머니 분장을 하며 겨우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고, 그런 그녀의 상대가 될 예의 재벌남 남주인공은, 번듯한 이력의 이면에서, 심각한 자아 분열을 겪는 중이다.

드라마는 그런 두 사람의 현재를, 어린 시절 그들로 부터 지금까지, 단 몇 컷의 성장 과정을 통해, 설명한다. 구구절절 설명이 없이도, 어린 시절부터 자신감을 잃어, 그  증상으로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하여, 결국 세상의 끈을 놓치고 마는 과정이나,  눈이 나빴던 소년이 자신의 컴플렉스인 안경을 벗어 제끼며, 자신의 자의식을 포장하기 시작하며 성장하는 컷의 연결은, 경우는 다르지만, 우리 시대를 사는, 가진 자는 가지고 성취하기 위해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지지 못해 소외된 청춘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그렇게 간략하게 설명된 두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통해, 드라마는 뻔한 스펙 좋은 재벌남과, 가난한 여주인공의 러브 스토리를 넘어, 우리 시대를 사는 상처받은 상징적 젊은 존재들의 만남과 소통, 그리고 치유를 할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비록 <트리플>을 통해서는 주저 앉아 버렸지만, 일찌기, <태릉 선수촌>과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커피프린스 1호점>을 통해 당대 젊은이들의 고뇌를 섬세한 결로 지켜 보았던 이윤정 pd의 내공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또한 <하트 투 하트>가 기대되는 지점은, 일찌기, 그들의 20대 시절 이래, 로맨틱한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으로 한 자리를 차지하던, 최강희와, 천정명이 모처럼, 자신들에게 맞춤한 옷으로 돌아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늘 해왔던 것이라 하더라도, 천연덕스럽게 노인 행세를 하고, 질펀하게 욕을 해대는 최강희에게서는 역시나 최강희라는 찬사가 나올만한 내공이 느껴지고, 까실한 정신과 의사로 등장한 천정명 <리셋>의 어색함이 한 풀 벗겨진 듯한 자연스러움이 느껴져 반갑다. 그들과 함께 등장한 장두수 역의 이재윤과 고세로 역의 안소희 역시 버거워 보이지 않는다. 이 반갑고도 신선한 조합의 앙상블이 그려내는 맛깔나는 로맨틱 코미디로서, <하트 투 하트>가 또다른 볼거리다.

by meditator 2015. 1. 10. 0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