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사전에서 '식구(食口)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 1인가구 비율이 25.3%인 네 집 중 한 집이 홀로 사는 가구가 차지하는 이 사회에서, 식구는 더 이상, 그 예전에 한 집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기가 힘들다. 
가족과 사별해서, 혹은 이혼을 해서, 그게 아니라도, 직장과 학교 등의 이유로,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아직 홀로 사는 1인 가구들이 늘어나는 세상, 그래서, 이제, 나의 생애에서 언젠가는 홀로 사는 삶이 더 이상 이상할 것이 없어지는 세상에서, 식구, 그리고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ebs 다큐 프라임은 '식구의 탄생'이란 프로그램을 위해 1인 가구의 식사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식사 프로젝트를 알리고, 참가자를 모집하고, 그 결과, 8명의 다양한 연령대, 직업군의 식사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모집되었다. 
일흔이 넘은 1년전 할아버지를 사별한 할머니, 마흔 중후반의 기러기 아빠, 그리고 이혼한 가정의 싱글남, 삼십대의 공무원, 프리렌서, 그리고 외국인 강사, 이십대의 회사원과 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덞 명의 참가자들의 생활 면면과 건강 상태를 우선 점검했다. 아예 밥을 하는 밥통 자체가 없는 집에서 부터, 7첩 반상을 정갈하게 차려놓고 식사를 하는 집까지,다양한 삶의 양상이 보여졌다. 하지만, 오랜 1인 가구 생활로 홀로 밥을 하고 반찬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저, '한 끼를 때운다'는 식으로 식사 시간을 보내거나, 외식을 하는 게 식습관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건강에 문제가 많았다. 가족을 외국으로 보낸 외로움을 폭식으로 달래던 기러기 아빠는 가족과 이별하기 전보다 무려 5kg이 넘게 살이 쪘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에 비해 반찬 가지수가 반 이상 줄은 할머니는 빈혈에 시달렸다. 텅빈 냉장고 대신 강냉이 자루로 허기를 때우는 독거남의 건강 역시 좋을 리가 없다. 무엇보다, 반찬을 잘 차려 먹든, 한 끼를 그냥 때우던 홀로 사는 그들의 식사 시간 동반자는 예외 없이, 핸드폰, 텔레비젼같은 전자 기기들이었다. 이들은, 그들을 쳐다보며, 홀로 식사하는 외로움을 달랬다. 

하지만 홀로 식사 하기에 지쳐있던 사람들이라도 막상 생면부지의 여덟 명과 식사를 하는 건 어색했다. 첫 만남, 할머니와 손자 같은 두 사람을 당번으로 첫 식사가 마련되고, 그래도 밥상 앞에서 조금씩 서로의 말문이 트여갔지만,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대화는 풀려갔을 뿐, 그 사이에서 할머니나, 중년 세대는 눈치만 볼 뿐이었다. 
두 사람이 짝을 이뤄 밥을 준비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옥상에 마련된 텃밭을 가꾸거나, 담소를 나누며 밥을 기다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이루어진 식사 프로젝트가 몇 회에 걸쳐 진행되어가면서, 서먹하던 서로의 벽이 조금씩 무너져 간다. 캐나다에서 온 외국인 강사와, 캐나다에 아내와 아이들을 보낸 아빠는, 함께 요리를 하며 친구가 되어갔고, 요리 생초보 젊은이들은 이제 서로의 집을 방문할 정도가 되었다. 혼자서도 진수성찬을 차려 밥을 먹으며 홀로 사는 삶에 만족스러움을 보였던 이혼 싱글남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유독 오래도록 프로젝트에 어울리지 못했지만, 결국 그도 그 자신의 입으로 자신이 이혼했음을 밝히는 '커밍아웃'을 하며 자신의 벽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8주에 걸친, 그것도 겨우 일주일에 한번 만나 밥을 해먹는 식사 프로젝트, 외연상으로 보면, 요즘 빈번하게 시도되는, 1인 가구의 '셰어 리빙'의 절충적 형태 같았다. 
하지만, 식사 프로젝트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저 함께 나누는 즐거움, 기쁨을 만끽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기간 동안 그들의 변화에 대해 주목한다. 

8주의 기간 동안, 그거 일주일에 한번 밥을 먹었을 뿐인데, 8명의 사람들은 어느새 가족처럼 가까워져 갔다. 할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홀로 사시던 할머니도, 서울에 홀로 '유학'와 아는 사람 하나 없던 학생도, 그리고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싫고, 또 그래서 누군가 나의 삶에 간여하는 것도 싫었던 이십대의 독거남도, 조금씩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걱정을 해주는 '가족'처럼 되어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할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고, 나오지 않는 멤버를 걱정하고, 또 나오지 않았다고 타박하는 다른 멤버들의 지청구에 거리감을 느꼈던 멤버는 오히려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된다. 홀로 사는 자신을 따스하게 맞이한 젊은 사람들이 고마워 가락시장에서 파를 다듬어 번 돈으로 양말 한 켤레씩을 돌리던 할머니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그런 할머니가 젊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고맙고, 걱정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일주일에 밥을 한끼씩 먹는 동안 여덟명에게서 나타난 놀라운 변화이다. 
그들이 함께 살지도 않았는데도, '유사 가족'이 생겨나고, 함께 가끔이라도 밥을 먹게 되면서, 여덟 명 각자의 생활 자체가 변화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던 할머니는 한결 밝아져, 또래 할머니들과도 만나는 등 삶의 재미를 느끼시게 되었다. 한 동네 살면서 같은 마트를 이용하던 서른의 누나와 이십대의 동생은, 이제 서로의 끼니를 걱정하며, 함께 장을 보는 사이가 되었다. 밥통하나 없던 싱글남의 집에는 밥통이 생기고, 잡곡밥과 반찬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 시작 전에 건강 검진 결과 나타났던 콜레스테롤 과다, 우울증 등의 건강 이상 상태가 많이 호조되었다. 그저, 일주일에 한번 함께 모여 밥을 먹었을 뿐인데.

그래서, 이 식사 프로젝트는 1인 가구의 존재를 통해,  이 시대의 가족의 존재와 의미를 묻는다.
식사 프로젝트를 통해 한 집에 모여 살지 않더라도, 그리고 매 끼니를 나누지 않더라도 가끔이라도 끼니를 나누는 존재들이 여전히 우리 삶에 유의미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더 이상 1인 가구가 낯설지 않는 세상, 당신의 평생에 한번쯤은 홀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과연 가족은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할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별한 그 누군가여야 하는지, 이제는 남남이 되어 한 달에 한번 겨우 만나는 누군가여야 하는지, 혹은 지방에 살아 한 계절에 한번 보기 힘든 누군가여야 하는지, 여전히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이 과연 1인 가구가 25%를 넘는 이 사회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고 에둘러 말한다. 
차라리 그게 아니라면, '식사 프로젝트'처럼,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따스한 밥 한 끼를 나누며 정을 키워가는 누군가가 더 '가족'으로 적합한 것은 아닌지, 나의 행복을 위한 그런 가족을 만들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렇게 다큐 프라임, 가족 쇼크 4부, 식구의 탄생은 반문한다. 


by meditator 2014. 12. 1. 09:42

'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 덕담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우리 사회 청춘에겐, '꿈이 사치'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절이 돌아왔다. '꿈이 '사치'가 되는 시절, 하지만, 그럼에도 '꿈'을 꾸는 청춘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그 가혹한 세상의 이야기를  tv는 전한다. 요즘 가장 인기있다는 두 개의 드라마, <미생>과 <나쁜 녀석들>이 그것이다. 아마도 젊은이들이 이 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현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토로하기 때문일게다.

 

9회에 돌입한 <나쁜 녀석들>, 드디어, 나쁜 녀석들을 모아놓고, 박웅철(마동석 분)과 정태수(조동혁 분)로 하여금 이정문(박해진 분)을 죽이도록 사주한 오구탁(김상중 분)반장의 사연이 하나씩 풀어진다. 그리고 화연동 연쇄 살인 마지막 희생자였던 오구탁 반장 딸의 사연도 함께.

처음 딸의 유학을 앞두고 설레이며, 이별을 아쉬워 하며 함께 상을 마주했던 두 모녀, 하지만, 오구탁 반장 딸의 유학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범인을 '공명정대'하게 쫓느라, 전셋집 대출금 갚기도 빠듯한 오구탁 반장의 딸은 레슨 선생이 이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을 정도로 피아노 치는 실력이 월등하다. '유학'을 권하는 레슨 선생, 하지만, 자신을 회유하는 범인에게, 법의 심판을 들이대는 오구탁 반장에게는 딸을 유학 보낼 돈 5000만원이 없다. 검찰총장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에게 빌려봐도, 다 오구탁 반장 같은 그들이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 아버지를 아는 듯 괜찮다는 딸, 하지만, 사실 딸은 괜찮은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소식을 듣고 달려 간 병원, 그곳에서 오구탁 반장은 고수익 알바 보장이라는 문구에 속아 노래방 도우미를 자청했다 폭력을 당한 딸을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이 꾼 '꿈'으로 인해 좌절하며 절망하는 어린 딸을 목격한다.

 

결국 이 사회에서, 자신이 소망하는 '꿈'을 가진 것 없는 아버지로 인해 꿀 수 없게 되어 절망하는 딸 때문에, 청렴함을 자랑처럼 내세웠던 오구탁 반장은, 처음으로 검은 세력을 눈감아 준다. 하지만, 그런 그의 결탁이 무색하게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어 기뻐했던 딸은 유학을 가기 전 날, 무참히 살해되고 만다. 그리고, 오구탁 반장은, 자신의 신념조차 헌신짝처럼 버리며 지켜주려 했던 짓밟힌 딸의 '꿈' 앞에, 가장 잔인한 복수를 계획하고, 그것이 바로, '나쁜 녀석들'이 된 것이다.

 

그리고 방식은 다르지만 또 한 명의 짓밟힌 꿈이 있다. 바로 <미생>의 비정규직 장그래(임시완 분)이다.

박과장의 횡령 등으로 엎고 가야 했던 요르단 수출 건을 영업 3팀의 프로젝트로 대담하게 내세워 원인터내셔널 전 직원의 주목을 받은 것도 잠시, 장그래에게는 비정규직의 현실이 다가온다. 마치 하늘을 난 것도 잠시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내려 바다로 추락하고 만 이카루스처럼, 전직원의 주목을 받고, 각종 회의에 참가하며, 신입 동기들의 부러움과 질시를 받던터라, 연봉 협상은 커녕 하다못해 새해 선물에서조차 차별이 노골적인 비정규직이란 존재의 자각은 장그래에게 더 뼈아프다.

 

오구탁 반장이 평생을 지켜왔던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면서 까지 딸의 '꿈'을 지켜주려 했던 것과 달리, 장그래의 멘토 격인 오과장(이성민 분)은, 장그래에게 냉혹하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다. '아마도 너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대학을 나오고, 어학 연수를 다녀온, 정규직들의 내공을 넌 이겨낼 수 없을 것이라고. 차라리 기대하지 않는 게 속편하다고.

 

하지만 그런 오과장의 냉혹한 현실 정리에는 역시나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그에게는 장그래 이전에 또 한 사람의 비정규직 부하 직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그래처럼 오과장을 따르며 오과장을 배우며 '꿈'을 키웠던 비정규직 직원, 그녀에게, 오과장은, '자기 개발서'에 나오는 '희망'의 언어들을 들려주었다. '꿈'을 키우면 언젠가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덕담을 마다치 않았다. 하지만, 오과장과, 최전무(이경영 분) 등, 정규직의 자기 보신과 안위를 위한 제단에, 그녀의 비정규직은, 제물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었고, 오과장에게는 내내 그녀의 이름이 잔인한 꾜리표가 되어 따라 다닌다. 그래서, '꿈'을 쫓다 추락하는 또 한 명의 비정규직을 만들고 싶지 않아, 오과장은 냉정하게 장그래에게 현실을 인정하라고 직언하는 것이다.

 

(tv리포트)

 

그런 오과장에게 장그래는 반문한다. '꿈'을 꾸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냐고? 그저 자신이 바라는 건, 계속 함께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뿐이라고. 그리고 그건 장그래 개인의 속내가 아니라, 오늘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질문이요, 외침일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오구탁 반장의 딸처럼, 스스로 자신의 꿈을, 그리고 자신을 포기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돈이 없어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혹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 대해, '꿈'을 꾸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이, 그리고 그 어른들로 대표되는 사회가 하는 일이란, 오구탁처럼 '비리'를 눈감으며 '검은 돈'으로 입신양명을 돕거나, 오과장처럼 책임감없는 맆서비스마저 할 수 없어 절망하거나, 최전무처럼 외면하는 것이다. 어른들이, 그리고, 이 사회가, 젊은이들의 '꿈'을 위해 '제도적'으로 모색할 수 있는 것은 없다.

by meditator 2014. 11. 30. 09:58

snl 극한 직업 유병재 코너가 화제다.

snl 작가였더 유병재는 까메오로 snl에 출연하기 시작하다, 아예 극한 직업이라는 코너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이제는, tvn에서, 극한 직업 유병재라며, 유병재가 출연했던 코너만 따로 떼어내어 재방송을 할 정도로 인기 코너가 되었다. snl의 극한 직업 코너는 유병재가 그 회차의 출연 연예인들의 매니저가 되어 각종 수모를 겪는 고난기가 웃음의 포인트이다. 갖은 잔꾀를 써보아도 결국은 '을'인 매니저 유병재와, 각종 진상을 피는 '갑'인 연예인의 해프닝이 인터넷에 회자되며 작가 유병재를 snl의 인기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무엇을 해도 억울한 '을'의 대명사 유병재가, 또 다른 '을'이 되어, <오늘부터 출근>의 신입사원으로 등장했다.

 

똑같이 회사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미생>이 장안의 화제가 된 것과 달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오늘부터 출근>이 1%의 고지를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작진은 극한 '을'의 대명사 유병재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11월 27일부터 시작된 3기 신입사원들은 유병재를 비롯하여, 유병재만큼이나 억울한 '을'에 어울려 잔존하게 된 봉태규, 사유리, 차학연이란 본명으로 등장한 빅스 엔, 그리고 역시나 무념무상 캐릭터로 두각을 나타낸 김도균과, 그와 똑같은 장발에 음악인지만, 김도균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진 미노가 신입사원으로 등장했다.

 

거기에, 사무실에 여성 속옷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속옷 회사와, 가발로 만들어질 인무가 박스채 배달되는 가발 회사는, 제작진이 선택한 또 하나의 강수다.

2기까지 무사 입성하던 경우와 달리, 출연진은 쟁쟁한 시험관들이 있는 방 안에 홀로 들어가 갖은 까다로운 면접 과정을 거쳐 신입 사원이 된다. 결국은 채용이 되는 요식 행위이지만, 다짜고짜 자리배정부터 받고 시작하던 이전 기수에 비해, 진땀을 흘리는 신입 사원 면접은, 나름, '미생'의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한 제작진의 배려다.

 

(tv리포트)

 

덕분에, 출연진들은 첫 출근부터 땀이 흠씬 나도록 선배 직장인들의 갖은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 디자인실과 영업부라는 두 가지 부서의 선택을 두고, 이전 직장에서 영업부의 고뇌를 잘 아는 봉태규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디자인실 선택 몰빵이었던 속옷 회사 신입 사원 지망생들은, 왜 자신이 디자인실에 근무해야 하는가라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나름 고심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의 전략이 주효하지는 않는 법, 자신의 특기가 자신의 실수를 쉽게 인정하는 거라, 써낸 유병재는, 그의 캐릭터답게 어눌한 답변 끝에, 자신이 디자인실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만다.

가발 회사로 간 김도균과 미노도 그리 처지가 다르지 않다. 간밤에 아내의 도움을 얻어, 몇 마디 영어 소개를 외웠지만, 면접관들 앞에서, 그 문장들은 뒤죽박죽이 되고 만채,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하얀 시간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뻔한 결과지만,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신입사원이 된 3기 출연진들의 첫 날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속옷 회사 답게, 유병재등은 선배 여사원이 강의하는 여성 속옷, 그 중에서도 브래지어에 대한 장황한 강의를 들어야 한다. 직접 유병재들이 사원들 앞에서 브래지어를 입어보이는 실험까지 해보이는 상황을 연출하며, <오늘부터 출근>은 미묘한 선정성과, 속옷 회사 남자 사원의 난처함의 경계를 오간다. 가발 회사의 첫 날을 맞이한 김도균과 미노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어쩐지 섬뜩했던 누군가의 머리채는, 그것이 몇 박스 채가 되는 순간, 그저 산더미같은 일에 불과해진 것처럼, 역시나 호러와 직장물을 오가는 상황을 선보인다.

 

유병재가 여성 속옷을 입고, 예의 그 난처한 표정을 짓고 선배 여사원 앞에 자신의 몸을 맡긴 채, 동료 사원들의 웃음 속에 서있는 그 장면은, snl 극한 직업 유병재를 고스란히 연상케 한다. 속옷이라는 극단적 설정과, 거기에 가장 엇물리는 속옷에 대한 별 지식도 없는 남자 사원이라는 설정을 통해, '미생'의 극한 직업 버전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snl이 19금의 야한 농담과, 그 상황에서 빚어지는 페이소스에서 재미를 승부하듯, 유병재를 출연시킨 <오늘부터 출근>의 3기 승부처는, 리얼리티로 온 snl과도 같다. 그래서, 여성 신체 부위를 거침없이 설명하고, 짚어가는 어쩐지 낯부끄러운 상황의 당연함에서 오는 미묘한 껄끄러움이 새로운 재미의 포인트가 되고, 그래서 또 그것이, '선정성'이라는 아쉬움을 낳는다.

 

결국, snl 극한 직업이라는 타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빌려와 인공 호흡을 시도하고 있는 <오늘 부터 출근>,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이 다음에 선택할 카드는? 이란 질문이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오늘부터 출근>은 꼭 '화이트 칼라'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따라 붙는다.

 

익히 알려지다시피, 애초에 극한 직업이라는 코너는, 말 그대로 ebs의 <극한 직업>을 차용한 코너이다. 그리고, ebs의 <극한 직업>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그간 미처 몰랐던, 정말 '극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각종 직업들을 소개해 왔다. 빌딩에 매달리고, 산속을 헤매고, 바닷길을 헤치는 극한의 직업들 말이다. 세상에 출근해야 할 곳은, <오늘부터 출근>에서 보여지는 칸막이로 나뉘어진 덩그런 사무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속옷이 주렁주렁 걸려있건, 가발이 박스채로 배달달되건, 거기는 결국 대학물 먹은 사람들이 가는 화이트 칼라의 세상이다. 그 화이트 칼라의 세상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오늘부터 출근>은 '미생'의 아류작이며, '미생'의 감동을 뛰어넘을 수 없다.

 

오늘도 아침 잠을 쫓으며 출근해야 하는 직업에는, '카트'를 밀고 다니며 하루 종일 물건을 날라야 하는 마트의 임시직도 있고, 화장실 구석 공간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청소원에, 전봇대에 매달려 평생을 보내는 기술직도 있다. <오늘부터 출근>이 '미생'의 아류를 벗어나, 결국은 거짓말인 '리얼리티'의 한계를 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선정적인 속옷 회사에,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 유병재가 아니라, 어쩌면, 화이트 칼라라는 벽을 넘어선, 오늘도 출근하는 세상의 다양한 직업군이 아닐까? 기왕에 직업인들의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면, '창조 경제'의 눈치를 보지 말고 , 좀 더 실감나는 '밥벌이'의 고달픔을 제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1. 28. 11:53

조선은 왕가의 혈통에 따라 왕위가 세습되었던 세습 군주 국가이다. 하지만, 대를 이어가면서, 왕가의 혈통은 왕의 아들, 즉 적통으로 세습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왕의 적통은 아니지만, 왕가 주변에서 왕위에 어울리는 인재를 찾아 왕위를 세습하는 방계 세습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첫 번째 대상자가 바로 <왕의 얼굴>의 14대 선조이다.

선조는 중종의 서자였던 덕흥군의 아들 중에서도 셋째 아들이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 덕흥군은 중종의 일곱번 째 아들로 후궁 창빈 안씨의 소생이었다. 그렇게 왕가에서도 비교적 먼 방계 혈족이었던 하성군은 이름조차 원래 이름이었던 균을 버리고, 명종의 세자 항렬을 따라 고치며, 34살 이른 나이에 죽은 명종의 후계자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혈통을 중시하고, 그 중에서도 적통을 중시하여, 서자에게는, 어미의 신분을 따르게 하여, 양반의 자식이라도 어미가 천민의 신분이면 천민이 되었던 철저한 신분제 국가 조선에서, 왕의 아들이 아닌, 그것도 후궁의 소생인 아버지를 둔 대비의 뜻에 따라 하루 아침에 왕이 된 선조의 처지가 어땠을 거라는 건 짐작할 만 하다. 왕이라지만,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쟁쟁한 가문의 신하들 사이에서 항상 그 자신이 자신의 정통성에 대한 자격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부실한' 정통성으로 인한 결핍감으로 몸부림치는 선조란 인물이, '관상'이란 매개를 통하여 tv드라마로 등장했다. 11월 19일부터  kbs2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왕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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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상에서, 선조(이성재 분)는 임금의 얼굴을 논하는 '용안비서'를 근거로 하여, 자신이 왕이 될 인재가 아니라는 사실로 인해 늘 컴플렉스에 시달린다. 심지어, 우연한 기회로 왕의 자리를 차지한 그는 자신이 그랬듯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증까지 가지게 된다. 드라마는 이렇게 정통성을 얻지 못해 고뇌하다, '왕의 얼굴'을 예언한 '용안비서'를 불태우고, 의로운 정여립을 왕의 자리를 넘본다며 역적으로 몰아죽이고, 자신의 부족한 왕의 기를 후궁의 관상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아버지 선조를 그려낸다.

 

그래도 선조는 방계라도, 서자라도 그래도 나은 편이다. 21대 영조로 가면, 그 컴플렉스는 극에 달한다. 비록 후궁이 되었지만, 궁중에서 제일 천한 신분이었던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를 가진, 영조는, 후세 사가의 책에서, 형이었던 경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혐의를 받을 만큼, 그리고 실제, 1722년 소론의 공격으로 60여명의 노론이 처형당하고, 170여명이 귀향을 간 임인옥사에서 경종 시해 음모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 목숨이 경각에 이르기도 하였던, 인원왕후의 뒷배와 경종의 요절로 가까스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드라마 <비밀의 문>은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르게 된 영조의 사연을, 영조와 노론 사이의 밀약, '맹의'를 통해 풀어낸다. 즉, 왕위에 오르기에 불리했던 연잉군이, 노론과 밀약을 맺음으로써, 노론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올랐고, 그때 맺었던 밀약으로 인해 영조는 노론에게 발목을 잡혔고, 맹의의 실종과 재등장으로, 정통성에 컴플렉스를 가진 영조의 입지는 오르락내리락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드라마 속 아버지 선조와 영조는, 자신들의 출생의 한계로 인해 생긴 컴플렉스를, 올바른 선정을 통해 극복하는 대신, 무리한 신하들과의 밀약, 혹은, 그것의 근원이 되는 서적의 제거, 심지어, 인물의 제거를 통해 풀어내고자 하는 무리수를 범한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 속 정통성을 잃은 아버지들의 무리수는, 묘하게도 근대사 속, 정통성을 잃은 우리의 아버지 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한국 방송공사 이사장 이인호씨는, 그가 서울대 역사학과 교수로서 한때는 명망있는 학자로서의 이름값이 무색하게, 친일파였던 자신의 할아버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김구 선생마저 부인하는 등의 행태에서부터, 최근 일련에 벌어지고 있는, 한국사 왜곡 교과서 파동에서 보여지는 해프닝은, 역시나 정통성을 잃은, 그래서 정통성을 왜곡하려는 현재의 아버지 세대들의 또 다른 음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조와 영조에 대한 해석은, 드라마적이다. 최근 들어, 임진왜란 동안 도망친 비겁한 군주였던 선조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 지고 있으며, 아들을 죽였다는 원죄를 벗어날 수 없는 영조는, 교과서에서는 '탕평책'을 통해 조선 후기의 당쟁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왕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역사적 사실에서, 한 부분, 출생의 컴플렉스란 부분을 부각시켜, 정통성을 잃은 아비 세대의 왜곡된 몸부림을 통해, 우리가 사는 오늘의 왜곡된 현실을 상징해 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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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러가지 원인으로 해석되는 사도 세자의 죽음은, <비밀의 문>에선, 당쟁에 휘둘리는, 그리고 척신들의 치맛폭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버지에 대항한, 신분제도를 뛰어넘는, 보다 근대적인 정치관을 가진 진보적인 왕제로 그려진다. 그래서, 결국, 그런 아들을 허용할 수 없는, 그리고 그런 왕을 옹립할 수 없는, 아버지와 권신들의 정치적 살인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왕의 얼굴>은, 관상이라는 신비주의적, 혹은 운명론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아버지를 넘어, 진정한 얼굴의 상은, 그가 한 일로부터 비롯된다는 가장 보편적인 가르침을 얻고, 백성들의 삶을 살펴보기 시작한 진정한 왕의 얼굴을 추구해가는, 그래서, 그렇지 못한 아비와, 권신들과 갈등하는 아들 광해의 노력을, 그리고 그 노력이 품은 슬픈 운명을 그려가고자 한다.

 

<왕의 얼굴> 평균, 6.2%(닐슨 코리아), <비밀의 문> 평균 5.4%(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에서도 보여지듯이, 용포를 제대로 갖추어 입지도 않고, 막말을 하고, 감정에 휘둘리는 결핍감이 그득한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한 아버지 왕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들 드라마의 부진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왕답지 않은 왕의 모습이 불러오는 거부감이 빠질 수 없는 중요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전히,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영화<인터스텔라>, 그리고 개봉하기도 전에 이미 천만 관객이 예언되는 <국제 시장>에서 보여지듯이, 가족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고 희생했던 사람이다. 그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과정에서, 그가 감행했던 정치적 불의, 혹은 정치적 외면, 역사적 왜곡은, 여전히 논의의 대상이 되기엔 불편한 진실일 지도 모르겠다.

 

또한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평민에게 과거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혁명적 발상'을 하는 왕세자와, 진정한 왕의 얼굴을 얻기 위해, 관상가의 길을 마다치 않는 왕제의 구도적 발상은,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손에 잡히지 않은 신기루와 같은 이상주의다. 그래서, 아비의 발악만큼, 아들의 고군분투가 허방하다. 억울한 죽음의 사도 세자와, 왕의 이름을 얻지 못한 광해군에 대한 재해석 역시, 당당한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우리 아들 세대 만큼이나, 현실감이 없는 것 역시, 이들 드라마의 부진 요소라 할 수 있다.

 

by meditator 2014. 11. 27. 12:18

tvn의 드라마 <라이어 게임>이 12부작으로 종영했다. 전회보다 0.2% 상승한 1%의 시청률(닐슨 코리아)로 종영한 <라이어 게임>은 종영도 하기 전에 시즌2에 대한 요청이 자자할 정도로, 수치로는 설명할 길 없는 인기를 누렸다. 그런 시청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마지막 회, 악의 축이었던 강도영(신성록 분)이 호송 도중 실종되고, 하우진(이상윤 분). 남다정(김소은 분)에게 진짜 라이어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전화가 옴으로써, 시즌2의 도래를 예고했다.

 

카이타니 시노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이미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던,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미 <지니어스 게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리메이크 <라이어 게임>에 대해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섰다. 하지만 그런 우려를 드라마 <라이어 게임>은 불식시켰을 뿐만 아니라, 리메이크 드라마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내었다. 일본 드라마 <만능 사원 오오마에>를 <직장의 신 미스김>으로 리메이크 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갑과 을의 문제, 비정규직의 애환을 실감나게 그려내 찬사를 받은 바 있듯이, <라이어 게임>은 일본 원작의 게임을, 우리 실정에 맞는 게임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는 듯한 정황을 역시나 실감나게 그려냈다. 정리 해고 게임을 통해, 정리 해고의 진정한 해법에 대한 고민을, 대통령 게임에서는, 진실의 중요성보다, 권력과 금권의 향배가 좌우하는 대통령 선거의 실체를, 그리고 밀수 게임을 통해, 통일에 대한 제언까지, 일본 드라마가, 돈 100억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그려내는데 치중했다면, 리메이크 <라이어 게임>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그려내는 바로미터로서의 매력을 더했다.

 

 

그렇게 사회적 비판까지 곁들이며 진행되던 <라이어 게임>은 11,12회 마지막 게임 '라스트맨 스탠딩'을 통해, 그간 이 게임에서 악의 축으로 자리잡았던 강도영이, 무리를 해가면서 까지 '라이어 게임'을 진행해온 이유를 드러냈다. 즉, 거짓말 게임을 통해, 강도영과, 남다정, 그리고 하우진의 진실을 향해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강도영의 집착과 달리, 어린 시절 그들이 함께 했던 기억을 잃은 하우진과, 남다정은 그들이 함께 하우진의 엄마(김영애 분)가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사실을 들추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들추어진 기억 속에는, '엄마'라 함께 불렀지만, 결국은, 고아원 원생과 친아들이었기에 갈라진 강도영과 하우진의 인생 행로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던 두 사람, 어려워진 고아원 운영때문에 입양 브로커가 내민 손을 외면할 수 없었던 하우진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을 제외한 강도영의 입양을 허용하고 만다.

부유한 미국인 교수 부부라는 입에 발린 거짓말과 달리, 사실은 월든2라는 심리 실험의 대상자가 된 강도영은 심리 분석의 대가가 된 하우진조차 그 속을 읽을 수 없는, 아니 속이 비어버린, 공허한 실험기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강도영은 그렇게 갈리어진 운명을 복기하기 위해, 그 날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써 남다정과 하우진을 <라이어 게임>으로 초대하여 마지막 라운드까지 이끌고 왔다.

진실을 알고 스스로 아들의 손을 놓아버린 하우진의 엄마와 달리, 어린 시절, 엄마가 한 일을 알고, 엄마의 손을 놓았던 아들 하우진은, 마지막 라운드, 남다정의 총구 안에서 발사될 자신이 장전한 진짜 총알 앞에 초연하게 가슴을 들이대는 강도영을 구하며 뒤늦은 사과를 구한다.

함께 입양된 아이들이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자신을 비워내고 심리 실험 기계가 된 채 살아남아 절대악이 된 강도영과, 그런 그를 애증으로 바라보는 하우진의 사연, 그런 과정에서 '믿음'을 시험받는 남다정의 사연은, 이해하면 할 수록 애절하지만, <라이어 게임>은 그것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감정을 극대화하여 드러내는 한국 드라마 특유의 신파조을 삼간 채, 담백하게, 게임의 배경으로 그려내어, 여운을 남긴다. 악역의 사연은 존중하되, 악역의 미화는 삼간, 균형점을 <라이어 게임>은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았다.

또한, 착한 남다정에서 시작되어, 고아들을 거리로 내몰 수 없어, 입양 브로커의 거짓말에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어, 결국 처절한 보복을 받게 된  하우진의 엄마까지, 그저 사람을 믿고 살고 싶어하는 진실된 존재, 혹은 진실된 삶의 딜레마 역시 적나라하게 그려내었다.

 

리메이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재창조된 <라이어 게임>의 보는 맛을 더한 것은, 이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 연기자들 덕분이다. 잘 다듬어진 각본, 그리고 그 각본을 한층 더 맛깔나게 살려낸 연출 덕분에, 연기자들 조차,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미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소시오패스연기를 인정받은 강도영 역의 신성록은 <라이어 게임>을 통해 <별에서 온 그대>의 이재경을 뛰어넘는 악역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재경과 유사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그저 소시오패스의 흉내를 내는 듯하던 연기를 넘어,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속이 텅빈 강도영을 실감나게 그려내었다.

악의 축으로서 강도영의 신성록이 있다면, 그의 맞은 편에서, 감옥까지 다녀온 천재 심리학자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준 하우진 역의 이상윤이 있다. 이 사람이 이런 배우였나 싶게, 그간 드라마에서 보여주었던 부잣집 막내 아들같기만 하던 애매한 이미지를 이상윤은 <라이어 게임>을 통해 한방에 날려 버리고, 하우진이란 의심스러운 전력을 가졌지만, 믿고 싶은 다층적인 캐릭터를 진솔하게 그려내었다.

하우진, 강도영만이 아니다. 조달구 역의 조재윤, 제이미 역의 이엘, 불독 역의 이철민, 장국작 역의 최진호까지, 매력있는 조연들의 연기가 아니었다면, <라이어 게임>의 재미는 한층 반감되었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1. 26. 11:04

<오만과 편견>의 날라리 검사 이장원(최우식 분)이 이른바 '칼퇴'를 하려하지만 수사관 유광미(정혜성 분)는 담당 사건의 피해자가 내원하기로 되어 있다며 말린다. 사건의 피해자는 자신이 시험을 친 수출입 은행 신입사원 모집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며 수출입은행 은행장을 비롯한 다수의 고위 관료를 고소한 사건 당사자이다. '또라이'가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신청한 말도 안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 이장원은 학원이 끝난 후 겨우 시간을 내서 법원을 찾아온 취준생에게 당신이 고소한 이 사람이 취직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 차례는 아니라며 갖은 모욕을 준 후 돌려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정오까지 사건들을 해결해 놓으라고 한 문희만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흥겹게 '칼퇴'를 하는 이장원을 지켜 본 취준생, 그는 이장원이 클럽 스테이지에 나가 춤을 추느라 놓은 가방을 들고 나른다. 그가 가지고 가버린 가방에는 다음날 정오까지 해결해야 할 피해자들의 정보가 담긴 온갖 사건 서류들이 들어있다. 서류를 들고 간 취준생의 조건은 단 하나, 그가 의뢰한 사건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위기에 빠진 이장원의 부탁을 받고 함께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한 구동치(최진혁 분), 하지만 그저 취준생의 억울한 사연인 줄만 알았던 사건이, 그가 해결하려 했던 성형외과 간호 조무사의 자살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문희만 부장검사가 그냥 던져 준 사건이 아닌 것이다. 즉, 간호 조무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성형외과 의사 집안은, 취준생 대신 수출입은행에 들어간, 스펙도 없고, 토익 점수도 낮은, 심지어 입사지원서도 쓸 줄 몰랐던 빽이 좋은 친구의 그 집안이었다. 그리고 그 집안은 국회의원의 두둑한 후원자들이었다. 그렇게, 간호조무사의 자살 사건과, 억울한 취준생의 사연은 하나의 큰 그림으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간호 조무사는 죽음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포기하려 했지만, 검사의 가방을 들고 날르며 협박까지 불사하며 고깃집 알바를 하면서 어렵게 도전한 취업 시험의 결과를 포기하지 않은 취준생의 열의가, 사회적 비리의 그림을 제대로 그려내게 한 것이다.

 

<오만과 편견> 최우식, 고소인 무시했다가 '대형사고' 났다! 이미지-1

 

그런 돈없고 빽없는 취준생의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어서는 열의는, 한열무(백진희 분) 동생 사건을 포기하지 않은 한열무 아버지의 열의로 이어진다. 동생의 사건이 누군가 이름모를 검사의 지시로 석연치 않게 종지부를 찍게 되었지만, 한열무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지는 그날까지 억울한 아들의 죽음을 풀기 위해 법원 앞에서 샌드위치 맨이 되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동생 죽음의 범인은 구동치라 오해한 한열무는, 즉 검사란 권력를 가진 구동치라 오해한 딸은 이제 그만 포기하라 읍소한다. 동생을 죽인 범인은 우리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그러면 더욱 포기할 수 없다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곤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진 아버지, 한열무는 그런 아버지의 말을 되새기며 검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동생의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그리고 그녀에겐, 역시나 자신이 놓친 유괴 사건으로 인해, 검사가 된 구동치란 든든한 동지가 있다.

 

돈있고 빽있는 동료 학생에게 취업의 자리를 빼앗긴 취업 준비생, 그는 세상이 그렇지 하며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낙방시킨 관련자들을 고소한다. 그가 고소한 면면을 보면, 그건 몇몇의 사람이 아니라, 그를 세상에서 배제시키려 한 이 사회, 그리고 이 사회의 부도덕한 비리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합법적 고소가 뜻을 꺾였을 때, 그는 검사를 협박하는 불법적인 수단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행동은, 같은 날 한겨레 신문의 후지이 다케시의 칼럼, '신호등 안지키기'의 '아나키스트적 행동'을 떠올리게 한다.

후지이 다케시는 최근 번역된 미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의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를 소개한다. 제임스 스콧은 그의 책에서 자동차가 지나다니지도 않는데 신호등을 지키는 길에서 신호등 어기기처럼, '합당하지 않은 사소한 법들을 매일 어기도록 하라'고 주장한다.

 

이런 황당한 '아나키스트적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제임스 스콧은 이런 일상적인 법에 대한 저항이, 앞으로 언젠가 정의와 합리의 이름으로 중요한 법을 어기라는 요청을 받을 때를 대비하는 '아나키스트식 유연체조'로, 모든 것을 규격하고 관리하려는 국가에 대항하여 자율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보하기 위한 작은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아나키스트'란 파괴적인 아니다. 그는 국회에서 하는 법의 제정 조차, 기존의 국가적 경계를 넘어서는 시도로, 그 역시 '아나키스트'적인 행위로 규정하며, 근본적으로, 정치가 그런 것이라는 것이다. 즉, 국가는 우리를 의지하려 하게 만들려 하지만, 우리가 그 안에서 안존할 것이 아니라, '주체'로서 국가를 건강하게 만드는 행위가 바로 '아나키스트'적인 것이라는 것이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이 주장하는 포기하지 않은 건강한 정치의 시작이다.

 

이런 제임스 스콧의 주장한 '아나키스트적 행위'의 정신은, 묘하게도 <오만과 편견> 9회 취준생의 불법적 일탈과 연관된다. 그의 합법 불법을 넘나드는 비리를 파헤치려는 의지가, 문희만이 그려가고자 하는 거대한 권력의 그림자를 파헤치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그런 취준생의 의지는, 죽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열무 아버지의 억울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가난한 공장 수위의 아들로, 그리고 역시나 공장 노동자의 딸로 검사까지 되며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구동치, 한열무로 이어진다. 돈없고, 빽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라고 <오만과 편견> 9회는 힘주어 말한다.

by meditator 2014. 11. 25. 11:13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감정수업', '너는 나에게 상처줄 수 없다',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등 이상은 교보문고 통산 베스트 셀러 100위 안에 든 심리학 관계 서적이다. 교보문고 만이 아니다. 다른 서적 판매 사이트를 가도, 아니, 다른 시기의 베스트 셀러를 검색해 보아도, 요 몇 년 동안, 베스트 셀러의 내역 중에 '심리 관계' 서적이 빠진 적이 없다.

현대 사회가 고도로 원자화된 개인을 양산할 수록, 고립된 개인들은 자신의 사회적 무기로 '심리학'을 장착하고자 한다. 그 이전에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사회적, 조직적으로 해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이제 조직 속에 있으되, '단수'로서 존재를 체감하는 개인은, 조직적, 사회적 해결 방식보다, 자기 개발서나, 심리학 관련 책에 의존하여, 봉착한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심리학은 이제 전문적인 분야를 넘어, 마치 학창 시절 교과서 문제를 풀기 위해 뒤적이던 '자습서'같은 역할을 한다. 오죽하면, 심리학 만능주의 세상이면, 하다하다 '심리학에 속지마라'는 심리학 책이 등장하겠는가. 참고로,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 전문 잡지 편집장인 스티브 아얀이 펴낸 '심리학에 속지 마라'의 부제는, '내 안의 불안을 먹고 사는 심리학의 진실'이다.

 

(osen)

 

그런데, 이 불안한 현대인들의 '만능키' 심리학이 그 영역을 넓혀 tv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프로파일러로써 사건을 풀어가는 주인공의 조력자 역할에 만족하던 심리학이, 주인공 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 신해철씨의 합류로 화제가 되었던 jtbc의 <속사정 쌀롱>은 대놓고 '인간 심리 토크쇼'를 표방한다. 11월 23일 방영된 4회에서는 '군중 심리'와 관련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사람들이 군중 심리에 빠지게 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군중 심리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짚어본다. 또한, 중학교 동창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아내의 심리를 의뢰받아, 패널들의 속시원한 의견을 다양하게 풀어낸다. 심리 토크 쇼 답게 이미  엘리베이터 실험이나, 쥬스 시음 실험처럼 학계에서 통용된 심리 실험이 재연되고, 그에대한 진중권의 전문적 식견과, 각 패널과 게스트의 다양한 심리적 분석이 곁들여 진다. 전문적 심리학적 견해에, 비전문적인 사견이 곁들여진, 대중적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심리 토크쇼이다.

'군중 심리'라는 추상적 주제를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sns상의 여론 몰이와 왕따 현상등을 들어 설명하며, 가장 이해하기 쉽게 주제를 접근하고자 하며, 마치 <마녀 사냥>이 개인의 연애 문제를 해결하듯, 개인이 겪는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풀이 하여, 만능키로서의 '심리학'의 묘미를 살려낸다.

 

그런가 하면, 같은 날 첫 선을 보인 ocn의 드라마 <닥터 프로스트>는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닥터 프로스트'를 드라마화 한 것이다.

웹툰 '닥터 프로스트'는 연세대 심리학과를 나온 이종범 작가의 작품으로, 애초에 '심리학과 만화의 접점을 추구하고자 한 작품으로, 인간 내부의 무의식이 어떻게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가를 만화를 통해 풀어내,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 역시 밤에는 바텐더 일을 하며 다양한 인간 군상을 연구하고, 낮에는 용강 대학교에서 심리 상담소를 맡게 된 프로스트 교수(송창의 분)를 주인공으로 한다.

드라마가 심리 상담에 치중한 반면, 드라마는 보다 극적인 요소를 살리기 위해,1회부터 유명 여배우를 질시하여 그와 닮게 수술을 하고, 결국, 그녀의 자리를 빼앗고 죽이려 한 한 연극 배우의 사건을 다룬다. 그 과정에서, 존 레논을 죽인 마크 채프먼의 사례와, 해리성 정체감 장애(이중인격)같은 전문적 심리학적 분석이 사건 해결의 주요한 열쇠가 된다.

 

'속사정 쌀롱' 조세호 “진중권, 모난 사람이라 생각했다“

 

대놓고 심리학적 해결을 표방한 <닥터 프로스트>만이 아니다. 이제 마지막 게임을 앞두고 있는 <라이어 게임>의 남자 주인공 하우진(이상윤 분) 역시 최연소 서울대 응용 심리학과 교수 출신이다. 하우진만이 아니다. 그 누구라도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는 하우진의 눈을 속인, 강도영의 존재 역시, 아직은 명확히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심리 실험의 결과물, 혹은 희생물이다.

결국 다수의 참가자들에도 불구하고, 라이어 게임은  심리학과 교수 하우진과, 그에 대적하는 역시나 하우진 못지 않게 심리학에 능통한 강도영의 진검 승부에 촛점이 맞춰진다. 그들 사이에서, 진실만을 추구하는 남다정의 캐릭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심리학의 또 다른 변수이다.

 

이렇게, 서점계를 강타했던 심리학은, 이제 조력자의 신분을 넘어, 주인공으로 ,TV안에 한 자리 떠억하니 자리 잡았다. 과연 이것이, 대중적 관심을 얻어 토크쇼의 새 장을 열 하나의 돌파구가 될지, 혹은, 만능키로서의 심리학을 증명하는 계기가 될 지, 그도 아니면 소재 고갈에 시달리는 TV가 선택한 스쳐지나갈 트렌드에 불과할 지는 아직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듯하다. 하지만, <라이어 게임>의 절대 악 강도영이 심리 실험의 피해자로 윤곽이 드러나듯,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혹은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서 조정한다는 것이, 과연, 이 시대의 만능 해결사가 될 지는,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사회적, 조직적 문제를, 개인적 독심술로 해체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1. 24. 10:04

ebs다큐 프라임>은 9부작 '가족 쇼크'로 1,2부 세월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다룬데 이어, 3부로 이주 노동자들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다. 흔히, 우리가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연상되는 '행복' 혹은, '화목'의 정반대편에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족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두 부류의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족 쇼크'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은, 가족이라는 내부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하고 있는 구조적 고통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이, <다큐 프라임>의 시각이다. 우리 사회가 가진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가족들의 두 번 째 이야기, 바로 마석 가구 공단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사연이다.

 

남양주군 화도읍, 마석 가구공단,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공장들, 그리고 그 공장안에서, 가구를 만들기 위해 톱밥이 날리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각국으로 부터 돈을 벌기 위해 이곳 마석으로 온 사람들이다. 건강을 해치는 작업 공정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하는 3d 직종에 속하는 가구 공정 과정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다.

 

3부 '가족 쇼크' '마석, 집으로 가는 길'의 서두는 공항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새 신부 간치히이다. 홍콩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을 하고 있는 그녀는 모처럼 휴가를 맞이하여 한국으로 와, 결혼식을 올린다. 일주일 전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전통적 방식에 따라 치뤄진 결혼식, 그리고 꿈같은 신혼여행, 하지만 남편 차마르는 아내 간치히를 다시 홍콩으로 떠나 보내야만 한다. 네팔에서 한국으로 와 마석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팔남매 중 맏이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국에서 일하던 그는 어렵게 간치히를 소개받아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각자 여전히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두 사람은 꿈같은 결혼식과 신혼 여행도 잠시,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해야 한다.

그나마 만나서 결혼식을 올리는 차마르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고국에 결혼을 약속한 신부를 둔 다른 이주 노동자는 서른 중반을 넘어서야 핸드폰 영상 화면을 통해, 고국의 신부와 결혼 서약을 한다. 온 가족이 축하 해주어야 할 결혼식, 한국의 동료들은, 그의 곁에서 덕담을 하지만, 고국의 가족들은 결혼식조차 화상 통화를 통해 해야 하는 처지의 아들과 손자를 생각하며 눈물 바다다.

 

 

그래도 화상 통화를 통한 결혼이든, 견우직녀같은 결혼이든 결혼을 할 수 있다면 그건 나은 형편에 속한다. 33살 핫산은 결혼은 꿈도 꿀 수 없다. 대학을 가고 싶던 핫산에게, 부모님은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한국에 나가 돈을 벌기를 부탁했다. 가족을 생각한 핫산을 두 말하지 않고, 그 길로 마석으로 왔다. 이제 마석이 집같은 핫산, 하지만 마석이 제 2의 고향이 되는 동안, 그는 아버지의 부음을 전화를 통해 전해 들었다. 하지만 아직 고향에는 위암으로 투병하는 어머니가 계시다. 하지만, 전직장에서 채불 임금이 남아있는 핫산은 아직도 어머니의 치료비를 넉넉하게 부쳐드리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결혼은 언감생심이다.

 

가족을 남기고 온 가장도 있다. 역 기러기 아빠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핸드폰 화상으로 확인한다. 하지만 아내는 그에게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 갑상선 암을 앓은 그가 그나마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 한국이기에, 또한 고국에 돌아가면 그나마 먹고 살 길조차 막막하기에, 아내는 눈물을 머금고, 이별을 택한다. 가족과의 생이별을 택한 그는, 대신, 월급날 부쳐 준 아이의 학용품과, 온갖 고향에는 없는 가전제품으로 아버지의 몫을 대신한다.

 

가족이 함께 있는 경우도 형편이 낫지는 않다. 출산을 앞둔 이주 노동자 부부의 고민은 출산이 다가올수록 깊어진다. 한국민으로서 정상적인 신분을 확보하지 못한 그들은 언제 쫓겨날 지 모르는 처지이다. 당연히 그들의 아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다 해도, 그 아이를 한국에서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처지에서 학교조차 가지 못하는 아이로 키울 지, 아니면 고향 필리핀으로 생이별을 해야 할 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이주 노동자의 자녀들을 받아주는 곳은 종교 기관이 유일하다. 그 마저도 마치 비밀 조직처럼 은밀하게 아이들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친구는, 어느날 말도 없이 사라진다. 당국의 갑작스런 검거 과정에서 잡히면, 살림살이 하나 챙기지도 못하고, 고국으로 송환되기 때문이다.

 

'마석, 집으로 가는 길'의 이주 노동자들은, 1960년대부터 독일로 돈을 벌러간, 광부와 간호사들을 연상케 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위해 두 말 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타국으로 온 그들, 핸드폰 화상 결혼식을 올리는 이주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결혼식은, 사진 결혼을 했다던 하와이 이주 노동자의 사연이 오버랩된다. 하지만 독일의 경우, 이민자들도 사회 복지의 혜택을 받는다. 건강 보험은 물론, 자녀들은 의무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우리의 역사의 한 구비에서, 우리 역시, 다른 나라에서 돈을 벌어와, 고국의 가족들을 먹여 살렸던 역사를 가진 경험을 가졌건만, 2014년 현재의 우리는 우리 사회의 한 편에 엄연히 존재하는 이곳을 또 하나의 고향으로 여기는 그들에게 가혹하다. 그들의 임금은 종종 체불되어, 고향의 아픈 가족들의 약값을 걱정해야 하고, 그들의 신분은 불안정하여, 아이조차 마음놓고 키울 수 없다. 그들의 노동력이 없이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사회이면서도, 여전히 그들의 존재는 불법적이다. 그들도, 그들의 가족도, 우리의 배려 대상이 아니다. 고국보다 낫다는 의료 환경은, 가끔 오는 의료 봉사 회원들이고, 아이들의 교육은 종교 기관의 호혜적 활동에 의존해야 한다.

 

'가족 쇼크' 1,2,3회를 통해, 이야기 하고 가족들, 세월호, 그리고 이주 노동자의 가족들, 다큐는 말한다. 우리가 '가족'하면 떠올리는, 그런 이상적인 가족만 가족이 아니라고, 우리가 우리 가족의 행복을 떠올리고 꿈꿀 때, 그늘에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짖눌려지고, 상처받고, 외면받는, 또 하나의 가족이 있다고, 그리고 그들 역시 우리 사회의 가족이라고. 그렇게, <다큐 프라임>은 이 시대 가족 이야기의 말문을 연다.

by meditator 2014. 11. 23. 14:16

11월 5일 방영된 <썰전>은 제주도로 간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우리가 알만한 다수의 연예인들이 이른바 '공기좋고 물맑은' 제주도로 이주했으며, 그렇게 연예인들을 비롯한 다수의 사람들이 제주로로 이주를 선택한 덕분에 요즘 제주도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솟았으며, 더 이상 제주도는 도시의 사라들을 피해 호젓하게 은자의 삶을 즐길 수 없는 곳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용한 섬 제주도를 벅적이게 만들고 땅값을 들먹이게 만드는 요인이 연예인들말고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11월 22일 kbs1을 통해 방영된 <다큐공감>은 제주도로 몰려드는 새로운 교육 열풍을 다루었다.

 

 

올해 말로 거주 인주 62만 명을 넘을 제주도 이주민의 상당수는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이다.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송당 초등학교 아이들의 등굣길을 맞아주는 것은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교장선생님이다. 육지에서 전학 온 학생이 18명이나 되지만, 그래도 송당 초등학교 전교생은 63명, 한 학년 학급이래 봤자, 열 명 남짓이다. 그래서 수업은 거의 선생님과 일대일 식으로 진행되고, 수업 후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목관악기, 골프, 외국어 수업을 다양하게 누릴 수 있다. 굳이 사교육을 찾을 이유가 없다.

 

워킹맘이던 엄마 때문에 밤 늦게 까지 학원을 전전해야 했던 엄마와 아이는, 이제 이 학교의 방과후 교사와 학생으로 만난다. 그리고 그 시간이 끝나면 아이는, 자전거로 제주도의 마을을 달리고, 감나무에 오르고, 엄마와 함께 마당에서 딴 감을 나누어 먹는다. 서울에선 꿈도 꾸지 못했던 삶이다.

제주도로 아이의 학교를 옮긴 다수의 학부모들의 선택은 바로 이같은, 서울에서는 선택할 수 없었던 자유로운 아이의 삶이 목적이다. 대안 교육은 아니지만, 제도 교육의 틀 내에서 충분히 아이를 포용해 줄 수 있는 학교, 더 이상 학원을 뺑뺑이 돌지 않아도되는 경쟁적 교육의 틀에서 벗어난 아이의 숨겨진 소양을 키워줄 수 있는 학교, 그런 학교를 찾아, 학부모들은 기꺼이 바다 건너 이곳 제주까지 '교육 디아스포라'를 감행한다.

 

건강 때문에 옮겨온 경우도 있다. 요즘 학부모들에게, 아토피, 비염 등 도시의 공해로 찌든 삶이 낳은 아이들의 질병은, 그저 병치레 수준이 아니다. 아토피가 심한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 정도로 학교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또 경쟁 위주의 체제에서, 선생님 말을 알아듣짐 못하고,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반 아이들과의 교류에서도 자연히 뒤처지고, 성격 조차도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 제주도 작은 학교로 전학온 사랑이네도 같은 경우이다. 아토피로 인해 학교 생활조차 여의치 않았던 사랑이는 제주도로 와서, 아토피가 나았음은 물론, 그간 위축되어 드러나지 않았던 창의성이 작은 학교에서 만개했다. 이렇게 한 학급에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때문에 방치되던 아이들은 작은 학교에서 그들의 숨겨진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新맹모 삼천지교'라 아름답게 지칭된 제주도로의 일련의 교육 '디아스포라'는 크게 보면, 한계에 봉착한 한국 제도 교육에 저항하는 '교육 노마디즘'의 한 흐름이라 볼 수 있다.

오로지 경쟁과, 경쟁 속에서 일류가 되지 않고서는, 좋은 상급 학교에 도달할 수 없는 교육 체제에 불만을 가진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에 맞는 교육 제도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왔다. 그것이 때로는 일찌기 어린 나이에 해외 유학이 되기도 하고, 대안 학교라는 제도권 밖 교육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살기좋은 곳으로 '제주도'가 입소문을 타면서, 해외 유학을 선택했던, 대안 교육을 선택했던 학부모들에게 제 3의 대안으로 '제주도'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 유학을 갈 만큼  비용은 많이 들지 않으면서도,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자연이 있고, 대안 학교라는 제도 밖의 불안감을 상쇄시킬 만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관심있게 지켜봐 줄 작은 학교가, 바로 그곳 제주도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큐 공감>이 말하지 않은 요소들이 또한 그곳에 존재한다. 그래도 혹여나 아이들의 공부가 뒤처질까, 학부모가 나서서 방과후 교사로 외국어, 악기, 골프같은 다양한 특기를 가르치고, 그것도 부족하여 저녁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영어 교육을 시키는, 교육열은 제도 교육 속 학부모의 교육열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제주도에 생긴 '국제 학교'는 제주도라는 교육 환경에, 매력을 더하는 요소라는 걸 또한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큐에서도 등장하듯이, 제 아무리 집값이 도시에 비해 싸다지만, 전원의 삶을 누릴 정도의 여유를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배경 또한 드러나지 않지만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다큐에서 보면, 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이 도시에서 삶을 접고 여유로운 제주의 삶을 선택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이다. 즉, 이 아이들의 아버지는, 이 아이들의 여유로운 제주 생활을 위해, 다른 유형의 기러기 아빠가 된 것이다.

비록 외국에 비해 자주 볼 수 있다지만, 기러기 아빠까지를 감수하면서, 선택한 제도로의 교육 러시 덕분에, 제주도 각 마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학부모들로 인해 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대기 학부모가 50여 명이 넘는 곳도 있다.

 

 

전국에 폐교 위기에 놓인 작은 학교가 오직 제주도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기러기 아빠를 양산하며 제주도로 가야 하는 것일까? 중상층 이상의 경제적을 가진, 기러기 아빠의 삶을 선택하면서라도 아이들의 교육을 중요시하는 교육열을 가진, 학부모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재가, 바로 제주도의 작은 학교인 것이다. 과연 이것이 유명 연예인들조차 너도 나도 살고자 찾는 트렌드로서의 제주도, 그리고 다른 유형의 과열된 교육열인지, 그게 아니면 진정 대안적 교육 형태에 대한 욕구인지, 혹은 그것들이 혼재된 과도적 형태인지, 그 판단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하지만, 제주도가 유행의 흐름으로 피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내 아이를 조금 더 행복한 환경에서 교육시키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교육 노마디즘'은 '경쟁 위주'의 현 교육 체계에서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4. 11. 23. 12:38

기미가요 파동으로 한 풀 꺽이긴 했지만, 출연자였던 에넥스 카야 등이 다른 프로그램의 게스트며, 광고를 찍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비정상 회담>은 외국인 예능의 신경지를 이룬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비정상회담> 덕분에, 방송가에는 아이들에 이어, '외국인'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또 하나 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비정상회담>이 개척한 새로운 예능 트렌드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또 하나의 외국인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mbc의 <헬로 이방인>이 그것이다. 추석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9월 8일 방영된 후, 10월 16일부터 정규 편성된 <헬로 이방인>은 '외국인'이라는 트렌디한 소재를 가지고도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간판이 무색하게 줄곧 낮은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다. (평균 시청률 3.7%, 11월20일 전국 기준 2.5% 닐슨 코리아)

더구나 11월 20일 방영분에서는 전주를 찾아간 이방인들을 다루면서, <헬로 이방인>은 '외국인'과 '먹방'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노렸다. 하지만 결과는 시청률로 보여지듯 처참하다. 화제성은 더더욱 없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줄리엔 강을 등장시켜 '셀프 디스'를 하게 하는 등 화제성을 만들고자 했지만, 역시나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똑같이 외국인을 출연시킨 프로그램인데, <비정상회담>은 되고, <헬로 이방인>은 안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 두 프로그램이 다루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시선에 시대적 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헬로! 이방인> 여기가 진짜 한국! 전통 한옥 게스트하우스 '동락원' 이미지-1

 

두 프로그램 모두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각 대륙의 대표격인 외국인들을 구색에 맞춰 모아놓는다. 콩고에서 온 프랭크는 이층 침대에서 이슬람식 기도를 한다. 파키스탄에서 온 알리는 '할랄'식 치킨 요리를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와 일본처럼 <비정상회담>의 중국 대표와 일본 대표, 프랑스와 독일 대표는 사사건건 신경전에 돌입한다. 똑같이 다양한 외국인들과 외국인들의 문화가 등장한다.

 

하지만, 문화라고 해서 다같은 문화가 아니다. <비정상회담>의 문화는, 지금 여기,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이 모여 드는 국제적 도시 서울의 현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서울이란 국제 도시에 모여든 세계 각국의 문화들이 만나고 충돌하면서 어우러지는 그 상황을 <비정상회담>은 중계한다. 또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1세기의 국제적 국가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그들 각자의 시선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우리보다도 더 보수적인 '유생같은' 터키의 에넥스 카야가 두각을 나타내고, 그런 그와 전혀 대치되는 지점의 벨기에의 줄리안이 부각되게 되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동양권이면서도 같은 듯 다른, 장위안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프로그램은 그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주제들을 다룬다. 우리와는 다른 그들의 시각은 때론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이기도 하지만, 그런 시선조차 너그러이 귀기울여 들을 만큼 '글로벌 코리아'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리고 그런 시각조차 그저 한 나라의 특별한 의견으로 받아쳐줄 만큼 다양한 다른 나라의 시각도 존재한다. 우리의 문화도, 다른 나라의 문화도, 함께 이야기하며 공감하고, 소통해가는 '글로벌 문화'의 매개가 된다. 치열한 '문화 다양성'의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마치 <마녀 사냥>을 통해 금기시 되었던 성과 사랑의 문제를 공개화 시켰듯이, <비정상회담>을 통해 이방인들의 날 것 그대로의 속이야기를 속시원하게 끄집어 낸 것이다.

 

그에 반해, <헬로 이방인>은 어쩐지, 그 예전에 보던 명절 특집 <외국인 장기 자랑>을 보는 듯하다. 세계 각국의 이방인들을 게스트 하우스에 모아 놓은 것까지는 그렇다 치고, 그 다음부터는 그들에게 '한국'을 알리느라 고심한다. 한복을 입고, 어눌한 발음으로 우리 노래를 부르며 장기 자랑을 하듯, 그들을 데리고 한의원을 가서 놀래키고, 우리 국악을 가르친다며 기괴한 소리를 내게 한다. 전주 한옥 마을에  가서 '먹방'은 빠질 수 없다.

심지어 우리 나라에 산지 10여년이 넘은, 자신의 고국보다 한국이 더 고향같은 외국인을 데려다 놓고, 여전히 너네 이거 모르지? 식의 한국 문화 알리기에 고심한다. 이런 식의 '한국 알리기' 프로그램은 이미 닳고 닳을 정도로 써먹은 컨셉이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룸메이트 시즌1>의 결정적 실패 요인이었던, 짝짓기에 골몰한다. 연예인 지망생인 듯한 외국인 여성들을 데려자 놓고, 이리 저리 짝대기를 긋느라 프로그램은 골몰한다.

그런데, 그 짝짓기의 대상이 된 인물들이 신선하지도 않다. 이미 <감자별>, <하이킥 시리즈>에서 알려진 후지이 미나나, 줄리엔 강의 등장은, 신선한 외국인에 대한 대중들의 기호에 반한다. 게다가 그들은 우리가 tv를 통해 어디선가 본듯한 외국인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아프리카에서 온 교환 학생은 촌에서 유학온 학생처럼 어눌하며, 미국에서 온 외국인은 자유분방하게 유쾌하며 중동의 외국인은 자기들의 문화를 지키기에 골몰한다.

 

'비정상회담' 6.8% 자체 최고 시청률…꾸준한 상승세

 

똑같이 한국에 와서 살고,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헬로 이방인>이 그 어떤 게스트를 등장시키고, 외국인 출연자들을 이리저리 바꾸어도 화제성이 없는 반면, 일본 출연자의 배경음악으로 '기미가요'를 튼 것만으로도 프로그램의 존폐가 운운할 만큼, <비정상회담>은 화제의 중심에 놓여있다. 똑같이 서울대를 다니는 학생이지만, 타일러가 장황하게 한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동안, 아미라는 전주 한옥 마을을 헤매며 진기한 먹거리를 찾아 다닌다.  '외국인'은 아이들과 다르다. 아이들이야, 그저, 그 존재만으로도 이쁘고, 사랑스럽지만,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신기하기만 존재가 아닌 '외국인"은, 그들을 버무려 담는 솜씨에 따라, 대중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더 이상, '외국인 장기 자랑'이 명절 특집으로 편성되지 않는 이유, 그게, 바로 <헬로 이방인>이 고전하는 이유다.

 

by meditator 2014. 11. 21. 1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