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 극한 직업 유병재 코너가 화제다.

snl 작가였더 유병재는 까메오로 snl에 출연하기 시작하다, 아예 극한 직업이라는 코너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이제는, tvn에서, 극한 직업 유병재라며, 유병재가 출연했던 코너만 따로 떼어내어 재방송을 할 정도로 인기 코너가 되었다. snl의 극한 직업 코너는 유병재가 그 회차의 출연 연예인들의 매니저가 되어 각종 수모를 겪는 고난기가 웃음의 포인트이다. 갖은 잔꾀를 써보아도 결국은 '을'인 매니저 유병재와, 각종 진상을 피는 '갑'인 연예인의 해프닝이 인터넷에 회자되며 작가 유병재를 snl의 인기인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무엇을 해도 억울한 '을'의 대명사 유병재가, 또 다른 '을'이 되어, <오늘부터 출근>의 신입사원으로 등장했다.

 

똑같이 회사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미생>이 장안의 화제가 된 것과 달리,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오늘부터 출근>이 1%의 고지를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작진은 극한 '을'의 대명사 유병재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11월 27일부터 시작된 3기 신입사원들은 유병재를 비롯하여, 유병재만큼이나 억울한 '을'에 어울려 잔존하게 된 봉태규, 사유리, 차학연이란 본명으로 등장한 빅스 엔, 그리고 역시나 무념무상 캐릭터로 두각을 나타낸 김도균과, 그와 똑같은 장발에 음악인지만, 김도균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진 미노가 신입사원으로 등장했다.

 

거기에, 사무실에 여성 속옷이 주렁주렁 걸려있는 속옷 회사와, 가발로 만들어질 인무가 박스채 배달되는 가발 회사는, 제작진이 선택한 또 하나의 강수다.

2기까지 무사 입성하던 경우와 달리, 출연진은 쟁쟁한 시험관들이 있는 방 안에 홀로 들어가 갖은 까다로운 면접 과정을 거쳐 신입 사원이 된다. 결국은 채용이 되는 요식 행위이지만, 다짜고짜 자리배정부터 받고 시작하던 이전 기수에 비해, 진땀을 흘리는 신입 사원 면접은, 나름, '미생'의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한 제작진의 배려다.

 

(tv리포트)

 

덕분에, 출연진들은 첫 출근부터 땀이 흠씬 나도록 선배 직장인들의 갖은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 디자인실과 영업부라는 두 가지 부서의 선택을 두고, 이전 직장에서 영업부의 고뇌를 잘 아는 봉태규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디자인실 선택 몰빵이었던 속옷 회사 신입 사원 지망생들은, 왜 자신이 디자인실에 근무해야 하는가라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나름 고심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의 전략이 주효하지는 않는 법, 자신의 특기가 자신의 실수를 쉽게 인정하는 거라, 써낸 유병재는, 그의 캐릭터답게 어눌한 답변 끝에, 자신이 디자인실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만다.

가발 회사로 간 김도균과 미노도 그리 처지가 다르지 않다. 간밤에 아내의 도움을 얻어, 몇 마디 영어 소개를 외웠지만, 면접관들 앞에서, 그 문장들은 뒤죽박죽이 되고 만채,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하얀 시간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뻔한 결과지만,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신입사원이 된 3기 출연진들의 첫 날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속옷 회사 답게, 유병재등은 선배 여사원이 강의하는 여성 속옷, 그 중에서도 브래지어에 대한 장황한 강의를 들어야 한다. 직접 유병재들이 사원들 앞에서 브래지어를 입어보이는 실험까지 해보이는 상황을 연출하며, <오늘부터 출근>은 미묘한 선정성과, 속옷 회사 남자 사원의 난처함의 경계를 오간다. 가발 회사의 첫 날을 맞이한 김도균과 미노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어쩐지 섬뜩했던 누군가의 머리채는, 그것이 몇 박스 채가 되는 순간, 그저 산더미같은 일에 불과해진 것처럼, 역시나 호러와 직장물을 오가는 상황을 선보인다.

 

유병재가 여성 속옷을 입고, 예의 그 난처한 표정을 짓고 선배 여사원 앞에 자신의 몸을 맡긴 채, 동료 사원들의 웃음 속에 서있는 그 장면은, snl 극한 직업 유병재를 고스란히 연상케 한다. 속옷이라는 극단적 설정과, 거기에 가장 엇물리는 속옷에 대한 별 지식도 없는 남자 사원이라는 설정을 통해, '미생'의 극한 직업 버전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snl이 19금의 야한 농담과, 그 상황에서 빚어지는 페이소스에서 재미를 승부하듯, 유병재를 출연시킨 <오늘부터 출근>의 3기 승부처는, 리얼리티로 온 snl과도 같다. 그래서, 여성 신체 부위를 거침없이 설명하고, 짚어가는 어쩐지 낯부끄러운 상황의 당연함에서 오는 미묘한 껄끄러움이 새로운 재미의 포인트가 되고, 그래서 또 그것이, '선정성'이라는 아쉬움을 낳는다.

 

결국, snl 극한 직업이라는 타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빌려와 인공 호흡을 시도하고 있는 <오늘 부터 출근>,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이 다음에 선택할 카드는? 이란 질문이 던져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왜, <오늘부터 출근>은 꼭 '화이트 칼라'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따라 붙는다.

 

익히 알려지다시피, 애초에 극한 직업이라는 코너는, 말 그대로 ebs의 <극한 직업>을 차용한 코너이다. 그리고, ebs의 <극한 직업>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그간 미처 몰랐던, 정말 '극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각종 직업들을 소개해 왔다. 빌딩에 매달리고, 산속을 헤매고, 바닷길을 헤치는 극한의 직업들 말이다. 세상에 출근해야 할 곳은, <오늘부터 출근>에서 보여지는 칸막이로 나뉘어진 덩그런 사무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속옷이 주렁주렁 걸려있건, 가발이 박스채로 배달달되건, 거기는 결국 대학물 먹은 사람들이 가는 화이트 칼라의 세상이다. 그 화이트 칼라의 세상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오늘부터 출근>은 '미생'의 아류작이며, '미생'의 감동을 뛰어넘을 수 없다.

 

오늘도 아침 잠을 쫓으며 출근해야 하는 직업에는, '카트'를 밀고 다니며 하루 종일 물건을 날라야 하는 마트의 임시직도 있고, 화장실 구석 공간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청소원에, 전봇대에 매달려 평생을 보내는 기술직도 있다. <오늘부터 출근>이 '미생'의 아류를 벗어나, 결국은 거짓말인 '리얼리티'의 한계를 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선정적인 속옷 회사에,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 유병재가 아니라, 어쩌면, 화이트 칼라라는 벽을 넘어선, 오늘도 출근하는 세상의 다양한 직업군이 아닐까? 기왕에 직업인들의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면, '창조 경제'의 눈치를 보지 말고 , 좀 더 실감나는 '밥벌이'의 고달픔을 제대로 보여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1. 28. 1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