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잊으라고 합니다. 그래요, 잊어야 하지요. 잊어야 한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아직 그럴 수가 없어요. 전 그 아이의 부모이니까요.' 


2014년 대한민국의 가족은 과연 행복한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고 가족 모두가 행복해 지는 가족의 방향을 모색해보고, 새로운 가족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ebs 다큐 프라임은 11월 17일부터 9부작으로 <가족 쇼크>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 1,2회로 세월호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다룬, 1부 나는 부모입니다와, 2부 당신의 가족은 안녕하십니까를 방영했다. 

세월호 참사 217일 11월 18일 사고 수습을 담당했던 '범정부사고 대책본부'가 해체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세월호 인양과 관련된 문제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세월호 추모관 건립조차 불투명해 졌다. 차가운 광화문 광장 바닥에서 여전히 세월호 부모님들은 '진상 규명'을 외치며 시민들의 호응을 부탁한다. 광화문만이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들을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고 다닌다. '특별법'이 통과된 이즈음 더 이상 무엇을 받아내려 하느냐며 이들 부모님들에 대한 시선이 따가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광화문 광장이 세월호 진상을 지켜가는 유일한 보루이며, 특별법이 진실되게 수행되고, 성역없는 진상이 밝혀질 수 있는 지키미가 되기에 그곳을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영화 <다이빙벨>의 상영조차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이즈음, 부모님들이 차가운 도시의 바닥을 쉬이 떠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다큐 프라임- 가족 쇼크>는 우리 시대 가족의 의미에 대해 말문을 떼면서, 제일 먼저, 가족을 잃은 세월호 부모님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자식을 잃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 자체가 상처를 후벼파는 것이지만, 아이들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 세월호 사건이 국민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모님들은 어렵사리 인터뷰의 자리에 앉는다. 

49제, 18살 아들의 영전에 마흔이 넘은 아버지가 절을 올린다. 이 말도 안되는 불효막심한 상황을 낳은 것은, 이 사회가 낳은 세월호 참사이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가 돼서 해줄 것이 없어서, 아빤데, 그래도 아빤데, 사건이 난 이래, 팽목항에서 기다리며 수습을 기다리고, 재판을 지켜보고, 진상이 규명되기를 바라는 것 말고 해줄 것이 없는 아빠라서 무능력한 아빠라서 서럽다. 그래서 아빠는 아들의 옷을 입고, 아들의 신발을 신고, 아들의 죽음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 나선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번호를 줄줄이 왼다. 반 번호가 아니다. 주검이 수습된 번호다. 첫번째 주검을 수습한 아빠는, 아들을 데리러 간건데, 아들의 주검을 수습하러 간 게 아니었는데, 라며 말문을 잇지 못한다. 하지만, 번호가 이른 부모님들은 그래도 수습된 아이들의 주검을 만져보기라도 하고, 뺨을 대보기라도 했단다. 하지만 어느 틈에, 팽목항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부모님들은 먼저 주검을 수습한 부모님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100번대가 넘어간 부모님들은 가린 얼굴을 차마 보지 못했단다. 살이 흐트러질 까봐, 만져 보지도 못했단다. 그리고 아직, 그런 시신조차 만나지 못한 부모님들이 있다. 
부모님들은 말한다. 다시 한번만 만져보고 싶다고, 안아보고 싶다고. 그저 그렇게 한번만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고. 예전처럼 아이의 두툼한 볼을 꼬집고, 고춧가루낀 이빨을 놀려보고 싶다고, 자식과 나누는 평범한 것들을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몇 달이 흐른 후 유류물처리반이 찾아 보내온 물에 젖은 아이의 가방 앞에 어머니는 물에 빠진 아이를 다시 본듯 목놓아 오열한다. 그리고, 바닷 기운을 빼기라도 한듯 빠득빠득 빨아 볕 좋은 곳에 말린다. 마치 바닷속에서 죽어간 아이에게서 바닷물의 음습한 기운을 빼기라도 하듯이. 
남은 엄마는 아침이 제일 힘들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우리 아이만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게 힘들다고 한다. 생존한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날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은 너희라도 살아서 돌아와서 반갑다고 하면서도, 결국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내 아이만 이곳에 없다. 이렇게, 남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 지 도무지 엄마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아이를 잃고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채 세상과 담을 쌓아버린 엄마도 있다. 
아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가족을 위해 해외에서 돈을 벌던 아빠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 지 모르겠단다. 재판을 보기 위해 혈압약까지 챙겨 먹으며 걸음을 재촉했던 아버지는, 재판이 끝난 뒤 무기력한 자신에 담배를 피워문다. 
아이의 누나는 학교도 휴학한 뒤, 아빠와 함께 전국을 돌며, 진상 규명 서명을 받기 위해 분주하다. 


아이의 생일날, 엄마와 아빠는 단원고 아이들 100명이 잠든 하늘 공원을 찾는다. 아직 따스한 밤과 미역국, 생일 케잌, 하지만 생일 케잌에 촛불을 불 아이는 사진 속에 있다. 엄마는 눈물이 앞을 가려 차마 생일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매일 아침 한겨레 신문에는 단원고 아이들의 얼굴이 박재동 화백의 스케치로 등장한다. 사람들이 잊고 싶어하는 그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이들은 매일 아침, 말간 얼굴과, 착한 아들과 딸의 이야기로 우리들을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할 500명의 부모들이 지금 대한민국에 있다.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이들의 방, 때때로 들어가 빨지 않아 다행이라며 아이의 체취가 묻어있는 옷에 얼굴을 파묻는 부모들, 이것이, <ebs다큐 프라임-가족쇼크>가 제시한 대한민국 가족의 첫번 째 얼굴이다. 다큐는 말한다. 이것이 부모라고, 그리고 묻는다. 그렇게 이 상처난 가정을 잊고 싶은 당신의 가정은 얼마나 안녕하시냐고?


by meditator 2014. 11. 19. 17:10

1월 17,18일에 방영된 <라이어 게임>,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로 나뉘어진 두 팀은, 상대방의 돈을 '밀수'하여 더 많이 챙기쪽이 이기는 게임을 진행한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진 동쪽 나라와 서쪽 나라 게임 형태를 보고,  조달구(조재윤 분)는 흡사 동독과 서독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하우진(이상윤 분)은 뭘 그리 멀리 찾을 게 있냐고 덧붙인다. 그렇다. 말이 동쪽나라와 서쪽 나라지, 서로 멀찍이 떨어진 두 게임 영역,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오갈 수 없는 조건,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만이 나서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 이제는 통일된 동독과 서독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대, 한반도의 상황을 고스란히 빗댄 것이다.

그런데, 이 게임의 이름이 '밀수' 게임이다. 분단된 한반도의 상황을 빗대어 게임 형상을 만들어 놓고, 게임의 방식이 '밀수'라니. 군사력이 아닌, 누가 더 상대방의 부를 몰래 빼내어 오는가가 게임의 방식이고, 그 과정에서 서로 상대방의 조력자를 얼마나 많이 구워삶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된다. 결국은, '돈'이, '부'가 승패의 갈림길을 결정한다. 

두 나라의 게임 참가자들은, 매번 주어진 순번에 따라, 가방에 돈을 넣어가지고 가서, 상대방과 협상을 진행하고자 한다. 그런데 재밌는게, 싸들고 간 가방 속이 협상의 관건이 된다. 가방 속 돈의 액수가 얼마인가 알아맞추는 것과, 그것을 알아맞추지 못하는 것, 혹은, 애초에 가방에 얼마를 쌀 것인가 등이, '거짓말 게임'의 묘미를 드러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남북 관계를 비롯한 수많은 외교적 협상 테이블의 실상이다. 적이 생각한 것보다 적게 가지고 나가서도 문제요, 내가 가지고 나간 돈의 액수를 적이 대번에 알아맞추듯이, 내가 가진 패를 상대방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도 협상에선 낭패이다. 그 어떤 경우의 수도, 나의 의도를 적에게 읽히지 말아야 하며, 적의 의도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결국 '밀수'를 목적으로 진짜 속고 속이는 진흙구덩이에 함께 나뒹구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속일 것인가, 혹은 상대방보다 조금 더 나은 패를 가질 것인가로 딜레마에 빠졌던 상황을 타개한 것은, 언제나 예의 '남다정 식' 진심이다. 
즉, 서쪽 나라는 동쪽나라의 돈을 모조리 인출한다. 하지만, 서쪽 나라 사람들은 그 돈을 가지고 올 수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강도영의 독재에 시달리는 나머지 참가자들이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에게, 서쪽나라는 이번 라운드 게임에서 이긴 상금을 줄 것을 약속한다. 물론 그 약속은, 남다정이 하는 약속이기에 신뢰성을 얻는다. 즉, 서쪽 나라는 게임에서 이기지만, 그 상금은, 자신들에게 협조한 동쪽나라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 서쪽 나라의 '필승' 전략이다. 

이 서쪽 나라 필승 전략의 포인트는 두 가지다. 그간 수차례 게임 과정에서 보여준 남다정의 신뢰이다. 정리해고 게임에서도 승자가 되었으면서도 부를 독식하지 않고, 자신의 불리함을 감수하고서도 게임 참가자들과 나누었던 남다정이기에, 독재자 강도영을 배신하는 피 말리는 상황에, 동쪽 나라 나머지 게임 참가자들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 그런 그들에게 제공하는 약속된 '부'이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 게임에 참가하는 그들에게 강도영이 줄 수 없는 부를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부는, 서쪽 나라 참가자들의 '희생'에 기반한다. 

이렇게 상호간의 신뢰와, 원하는 경제적 부에 대한 약속으로 서쪽 나라의 필승 전략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강도영의 수는 이들을 넘어서는 듯 하다. 자기 수하의 세 사람의 배신을 감지한 강도영은 카드를 가지고 그들을 농락하고, 오히려 서쪽 나라의 제이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물론 제이미가 결국 남다정의 한 마디, 당신이 배신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건 바로 당신 자신뿐이라는 한 마디에, 배신을 포기했지만, 게임의 승자는 카드를 모두 손에 쥔 강도영이 된다. 

하지만, 그런 강도영에게 남다영은 주변을 보라고 한다. 카드를 모두 손에 쥔 강도영, 하지만, 그의 주변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그의 수하였던 게임 참가자들조차 이젠 서쪽 나라 게임참가자들과 나란히 서서 그들과 희비를 같이 한다. 그리고 그런 강도영에게 남다정은 '정신승리'라고 비웃는다. 카드만 가졌을 뿐,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가 의기양양하게 인출기에 넣었던 카드조차, 그와 같은 전략을 쓴 하우진으로 인해 쓸수 없는 카드였다. 결국 강도영은 돈도, 사람도 잃었다. 

도식적으로 분단된 국가를 설정해 놓고, 두 국가간의 '치킨 게임'을 다룬 '밀수 게임'의 해법은 외외로 간단했다. 일관된 신뢰와,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원하는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아량,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이장님이 '뭘 자꾸 멕이줘야지'하시던 말씀과, 바람과 해님이 나그네 옷을 벗기는 라퐁텐 우화도 떠오른다. 
그래서, 남다정 덕분에 돈을 손에 쥐고 더 이상 게임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동쪽 나라 게임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게임에서 손을 띠면 남다정이 불리해질 까봐 다음 라운드까지 함께 하기로 한다. 물론, 남다정이 최종 상금을 타면 함께 나누겠다는 약속의 무지개빛 미래에 대한 기대도 함께. 

극한 심리 추적을 통해 가장 인간 본연의 감정에서 비롯된 '밀수 게임'의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 대한 믿음과, 나눔과 베품이었다. '라이어게임'에서 가장 무용할 것 같은 수단이 가장 효능있는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속고 속이고, 상대방의 패를 알기에 전전긍긍하다 그나마 기회도 날리는 아쉬었던 게임 전반부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상황이 더 안타깝다. 일관된 신뢰는 커녕 기왕에 쌓은 신뢰조차도 들어먹고자 애쓰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과연, 우리는 남다정처럼, 혹은 서쪽 나라 사람들처럼, 저쪽 사람들에게 우리의 몫을 나누어 주면서 까지 함게 갈 의지는 있을까? '통일'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그 질문에 대한 답부터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라이어 게임> 9,10회에 대한 소회다. 


by meditator 2014. 11. 19. 15:01

11월 17일 방영된 <오만과 편견> 7회, 모든 정황은 자살을 드러내고 있지만, 자살같지 않았던 차윤희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다. 그리고 그 실체는 검사가 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초보 검사 한열무(백진희 분)에게, 검사란 직위에 대한 첫 번 째 좌절을 안겨 주었다.

 

성형외과의 비정규직 간호조무사였던 차윤희, 그녀는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겠다는 원장의 유혹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무능력한 아버지, 병든 어머니, 그리고 아직 어린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장이 그녀의 몸을 더듬을 때마다, 죽을 만큼의 수치심을 느꼈지만, '한번만 참자'며 2년을 버텨왔다. 그 기간 동안 원장은 2,3개월씩 계약을 연장해 가며 그녀를 성추행해 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런 그녀의 행동는 오히려 더 큰 올가미가 되었고, 거기서 빠져 나오려 몸부림쳤지만, 오히려 소문을 내겠다며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그런 그녀가 선택한 것은, 남겨진 부모님에게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살인같은 자살이었다.

 

의욕이 충만한 초보 검사 한열무는 직감적으로 차윤희의 사건 뒤에 흑막이 있음을 감지하고, 그것을 파헤치기 위해 달려든다. 그리고 구동치(최진혁 분) 역시 부장 검사의 눈을 피해가며 그런 그녀를 돕는다.

차윤희의 소지품을 다시 검사해서 보관함의 쪽지를 발견한 한열무는 범인으로 몰린 친구 송아름(곽지민 분)을 찾아가 설득, 보관함을 열고 차윤희가 남긴 다이어리를 찾아낸다.

 

(뉴스엔)

 

다이어리에 적혀진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리고, 아버지로 하여금 고소를 진행하고자 하고, 성형외과 의사를 불러 추궁하려고 하지만, 구동치는 한열무를 말린다. 현행 법으로, 한열무가 하고자 하는 일련의 법률적 행위들이, 차윤희를 구제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차윤희가 쓴 다이어리는 적절한 증거가 되지 않으며, 그렇게 불충분한 증거로 인한 재판은 오히려 원장의 무죄 방면과 파렴치한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추인해 주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차윤희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동료들의 협조를 구하지만, 돌아오는 건 냉랭한 거부와 오히려 차윤희에 대한 험담뿐이다. 그 누구하나, 비정규직 간호 조무사라는 처지의 동료 의식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적반하장으로, 성형외과 의사는 스스로 법원을 찾아와, 차윤희와의 관계를 '연애'로 포장한다. 더구나, 딸을 죽음으로 몰아간 원장에 대해 분노하며 고소를 하겠다는 아버지는 돈을 받고 고소를 포기하겠단다. 딸의 죽음값이, 자기들에게는 절박한 생존의 수단이라며.

 

결국, 분명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 그리고 증언할 동료들을 찾아내지 못한, 한열무와 구동치는 차윤희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더는 어쩌지 못한다. 정황은 분명히 차윤희의 성폭행으로 인한 자살을 가르키지만, 법의 그물망은 성겨,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를 옭아매지 못한다.

 

의욕을 가지고 덤볐지만, 고소를 하지 않겠다는 아버지 앞에서 무기력한 한열무는 '검사가 별거 아니'라며 의욕만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낀다.

 

이렇게, <오만과 편견>은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불리한 대우, 하지만, 법률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그들의 처지를 차윤희 사건을 통해 단적으로 그려낸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정규직들이, 법률과 조직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원자화된 개인으로,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중압감과 절망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죽기 전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건 전화 통화에서 차윤희는 말한다.

'그까짓 정규직이 뭐라고 정직원이 꿈이었을까. 대통령도 아니고, 가수도 아닌 정직원이. 그거 돼봤자,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도 마음놓고 살 수 없는 정직원이. 고작 그거 되려고 죽기보다 싫은 짓을 참아왔는데(중략),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 멀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을 꿈꾸는 차윤희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통화,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청춘들의 소박한 희망이다.

 

한 젊은 여성의 좌절과 죽음을 다룬 <오만과 편견>은 거창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적인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려낸다. 법률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오히려 법률로서는 어찌 해볼 수 없는 한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7회에 이르른 <오만과 편견>은 그래서 조금씩 탑을 쌓아가듯이, 의욕적인 한열무가 부딪치는 사건들 속에서, 그녀가 느끼는 사회의 벽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사회의 한계를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덜그럭거리는 건 있다. 어렵게 공부해서 법학 전문 대학원을 나온 한열무,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 법학전문 대학원을 가는 사람들은 한열무같은 사람들일까? 한 해 수업료만 일반 가정의 자녀에게 버거운 엄청난 금액인 법학 전문 대학원이, 가진 사람들의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일이다. 더구나, 최근 조사에서도 나왔듯이, 좋은 동네에 살며, 외고를 나와, 좋은 대학을 가고, 법학 전문 대학원을 나온, 계층적 고착화가 정착되고 있는 시점에, 차윤희의 사건에 의협심을 가지고 덤비는 초보 열혈 검사 한열무, 그리고 그런 열무와 뜻을 같이 하는 구동치는 드라마니까 하면서도 어쩐지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개과천선>의 현실감과는 궤를 달리하는 낯섬이다. 우리가 사건, 사고를 통해 만나는 법과 법률, 그리고 그 법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리라. 당장 13일 대법원은 153명 해고 노동자들이 낸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의 대량 정리 해고가 정당하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by meditator 2014. 11. 18. 10:02

방영 전부터 김상중, 박해진, 조동혁, 마동석 등 쟁쟁한 출연진에, 범죄자들이 범죄자를 소탕한다는 흥미로운 소재로 관심을 끌었던 <나쁜 녀석들>은 중반을 넘긴 지금, 평균 시청률 3.8%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화제성을 끌고 있다. 심지어 동시간대 남자 시청자 10명 중 3명이 이 드라마를 시청할 정도로 보통 젊은 층이 주시청층인 케이블 드라마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그러나, 중반을 넘기면서, 각자 자신이 가진 장기를 이용해, 종종 1대 100을 넘는 상황에서도, 한번 가는 인생, 뭐 아낄게 있냐면서 거침없는 액션으로 시선을 끌던, <나쁜 녀석들>이 이야기 상에서는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쁜 녀석들>의 여주인공은 이정문 역의 박해진이란 우스개가 있다. 실제 여주인공인 유미영(강예원 분)보다 더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며, 심지어 사연많은 사이코패스로서, 늘 다른 동료 나쁜 녀석들이 구해주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이정문은, 캐릭터로 보면 여주인공의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대놓고, '브로맨스'는 아니지만, 매회, 이정문을 향해, 안타까운 눈빛을 발사하며, 그를 죽여야 함에도 죽이지 못하는 박웅철(마동석 분)에 이르면, <나쁜 녀석들>의 주 멜로 라인은 이정문과 박웅철이 아닌가 라는 착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정문이 누군가,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이다. 하지만, 만나서 으르렁거리는 것도 잠시, 마치 전쟁터의 전우처럼 함께 몇 번의 작전을 벌였던 이들은, 쉽게 동료애에 빠져 이정문을 죽이라는 청부 살해 요청을 수행하지 못한다. 청부 살해 요청을 수행하지 못하는 건 그렇다손 쳐도, 매회, 이정문을 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쯤이면, '나쁜 녀석', 심지어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이라는 이정문에 대한 감정적 특혜가 지나친 게 아닐까?

 

논외지만, 드라마 상에서, 이정문은 7회에 도달했는데도 오리무중이다. 천재 사이코패스라는데, 드라마 중 그의 활약은 언제나 어설픈 액션이기 십상이고, 천재성은 발견하기 힘들다. 그런데 반해, 의심스러운 눈초리와 상관없이 동료들의 그에 대한 편애와 믿음은 절대적이다.

 

드라마는 이런 범죄자에 대한 연민을 우회적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박웅철에게 이정문 살해 요철을 한 것은, 그가 오랫동안 모시고 있던 형님이다. 하지만, 이미 이정문에게 동료애를 느낀 박웅철은 그 명령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러자, 형님은 그러면 너를 대신 죽여야 한다며, 박웅철을 묻는다.

7회에 등장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정태수가 이정문을 살해하라는 청부 요청을 거절하자, 정태수를 죽이라는 명령이 하달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움직이려던 정태수의 대부같은 임종대 등이 살해되었다.

즉, 애초에 이정문에 대한 동료애, 측은지김에 대한 개연성 부족을, <나쁜 녀석들>은 박웅철과 정태수의 측근들을 죽이거나, 상해를 입힘으로써, 메꾸어 가고자 한다.

 

(헤럴드 경제)

 

몇 번의 범죄자 소탕 과정을 거치면서, 박웅철과 정태수는, 정태수의 말대로, 범죄자로서 가져서는 안되는 죄책감, 연민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그 예전, 함부로 사람을 죽이던 조폭이나, 청부 살해업자가 될 수 없다.

물론 그들의 작전 참가에 따라 복역 기간이 줄어드는 특혜를 얻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상해를 입혔던 범죄자이다. 그것은 그들이 죄책감과 연민을 얻게 되는 것과 별개의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이정문 역시 마찬가지다. 보호해 주고 싶은 애처로운 존재요, 자기 자신이 사이코패스인 줄 확신을 가지지 못한 미궁 속의 인물이지만, 그 역시 범죄자이다. 귀요미 박웅철에, 자신이 살해한 남자의 아내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오열하는 정태수라 하더라도 말이다. 다짜고짜 동료애에서, 그런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나쁜 녀석들은 그래서, 추동하는 스토리에 딜레마를 내포한다.

 

결국 남은 회차 동안, <나쁜 녀석들>은 이런 이정문에 대한 무한 보호, 사랑이란 딜레마를 이야기로 설득해 내야 한다. 또한, 진심으로 개과천선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쁜 녀석들이었던 그들에 대한 범죄자에 대한 미화가 아닌  설득력있는 마무리도 필요하겠다.

by meditator 2014. 11. 16. 02:40

<미생>9회, 원인터내셔널에 신입 사원으로 들어간 네 명, 장그래, 안영이, 장백기, 한석률의 고난사가 펼쳐진다. <미생>을 보는 시청자들이, 군대건, 사회건, 혹은  알바를 하는 곳이었던 자신이 처음 맞닦뜨렸던 사회에서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이 사인사색으로 펼쳐진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부서의 모든 일에서 배제되는 안영이, 결국 그녀가 선택한 것은 커피 심부름부터 쓰레기통 비우기까지 부서의 모든 허드렛 일을 하는 것이다. 그녀의 말 마따나,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 수있는 모든 수단을 해보는 것이다. 그런 안영이와 정반대로, 자신을 너무 잘 대해 준다고 자랑이 입에 붙었던 한석률의 경우도 알고보면 나을 게 없다. 입에 발린 말 뒤에, 결국 자신의 일까지 떠맡긴 상사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지 못한 장백기는 회사를 옮길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겨우 이제 한 팀으로 인정받는가 싶었던 장그래 앞에는 인격적 모욕을 마다하지 않는 박과장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을 보는 시청자들은 자신이 겪었던 그 어느 구비의 일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울컥한다.

 

모든 일에 순응하는, 심지어 박과장(김희원 분)의 신발 심부름까지 마다하지 않는 장그래에게 김대리(김대명 분)는 결국 볼멘 소리를 하고 만다. 당신은 마치 사회에 나온 갓 나온, 그래서 어떻게 하든 이 사회에 적응하려고 하는 장기수와 같다고.

그런 김대리의 불만에 장그래는 덤덤하게 말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역류에 대응하는 방법에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역류가 거셀 때, 때론 그저 순한 흐름이 되어 그 역류를 맞이하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한 방법이라고.

 

<미생>은 현실 삶을 복기하는 듯한 공감을 준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촌철살인의 해석을 곁들인다. 역류를 견디는 방법 같은 식이다. 거기에, 그저 현실을 반영하는 감동을 넘은 <미생>이란 드라마의 힘이 있다.

하지만, <미생>이 주는 힘은 '자기 계발서'들이 앞다투어 말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던가, '백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던가, 아파도 괜찮아 식의 덕담과는 궤를 달리한다.

 

애초에 드라마의 제목, '미생'이 바둑 용어에서 출발하고, 겨우 회사에 살아남은 장그래를 보고, 오과장(이성민 분)이 '완생'을 운운하듯이, 드라마 <미생>은 '바둑'을 빗대어 회사 생활을, 사회 생활을 설명한다.

그런데 바둑이란 무엇인가, 이제는 게임으로서의 바둑이라지만, 그 원류는 가로 세로 40여 센티의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장기판처럼 노골적으로 왕과, 차, 포, 졸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세를 불려, 적의 집을 에둘러 잡아먹는 살벌한 먹고 먹히는 전쟁터가 바로 바둑판이다. 그리고,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스스로 말하듯, 비록 실패했지만, 승부사로 조련되어진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승부사가 원인터내셔널에 던져졌다. 40여센티의 바둑판에서 상사로 전쟁터만 바뀐 것이다. 이렇게, <미생>은 전쟁터와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 직장인을 전제로 한다.

 

‘미생’ 이성민, 김희원 부정 이해하며 “보상이라 생각했을 것”

 

그렇다면 전쟁터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어떨까? 물론, 정윤정 작가의 각색을 걸쳐, 김원석 피디의 디렉팅으로 다듬어진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원작, 윤태호 작가의 세계관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윤태호 작가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

얼마전 윤태호 작가가 완성한 작품에 '인천상륙작전'이 있다. 진짜 6.25 전쟁 속에 던져진 인간 군상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그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맏형 상근은 뒤늦게 한강 철교를 건너 피난을 가던 중 폭격을 맡아, 몸의 반쪽이 날아가버린 불구가 되어버린다. 그런 가장을 만난 가족들, 그가 살아있다는 기쁨도 잠시, 흉측해진, 그리고 이젠 가장으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그의 모습에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 가족은 살고자 한다. 부인은 남편을 업고 다니며 구걸을 하고, 때론 필요하다면 부역 연설까지도 한다. 물론, 그런 그들의 살기 위한 행동은 그들을 처참한 죽음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살아남은 그들의 아들,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고서도, 자신조차 죽을까 차마 아들인 척 하지 못한 아이는 살아남는다. 굶어죽는자가 태반인 전쟁 후 거리에서, 죽은 자의 주머니를 뒤지고, 거리에 나뒹구는 먹을 거를 마다않고 살아남는다. 신문 연재분 만화의 마지막은 생존의 형형한 눈빛으로 미군이 주는 초코렛을 받아먹는 아이에게서 끝난다.

 

전쟁 속 인간 군상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삶은 언제나 우리를 속이고 기만한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인간은 살아남는다. 그리고 각자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방식에 따라, 이후 그의 삶이 결정된다.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동생은 허망하게 상륙 작전의 희생양이 되고, 부역을 마다하지 않은 형은 결국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진짜 전쟁터에서 윤태호 작가가 말했던 것은, <미생>의 전쟁터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되는 듯하다. 여기서도 삶은 우리에게 가혹하다. 그리고 그 전쟁터와 같은 삶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역류에 맞서지 않고, 흐름에 몸을 맡겼던 건, 장그래가 선택한 방식이다.

 

10화가 그려낸 박과장의 몰락은, 그가 선택한 방식이 자초한 결과다. <미생>의 박과장은, 성희롱을 하고, 인격 모독을 하는 나쁜 놈이었지만, 오과장은, 그런 그를 '보상'이란 단어로 설명한다. 상사라는 전쟁터에서 혁혁한 성과를 냈지만, 한끼의 회식 외에 돌아오는 보상이 없는, 회사에서 스스로 자신의 보상을 찾으려 했던 그는 결국 자신이 만든 가상의 회사로 인해, 감사를 받고, 사법적 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인다. 그저 나쁜 놈이 아니라, 원인터내셔널이란 전쟁터에서 그가 선택한 삶의 결과다. 이런 그의 방식은, 접대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때문에 갖은 수를 다짜내던 오과장의 선택의 맞은 편에 있다.

 

스스로 '보상'을 취했던 박과장도, 그 누구 알아주지도 않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애쓰던 오과장도, 그리고 인격적 모독조차 받아내는 장그래도, 결국, 따지고 보면, 한낯 '넥타이 부대' 혹은 '유리지갑'이라고 만만하게 여겨지는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전쟁터의 졸처럼 쓰고 버려져도, 혹은 가끔은 10회의 장그래처럼, 때로는 역류가 되어 반격을 해도, 그까짓 바둑판과 같은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까짓 바둑 이기건 지건 세상은 달라지지 않듯이, 원인터내셔널 직원 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건, 어떤 삶을 살건 사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미생>은 한 마디를 더한다. 그래도 바둑이라고. 그건, '자기 계발서'의 위로로 설명될 길 없는 삶의 엄정함이요, 한 개인이 짊어지고 갈 삶의 무게다. 어린 시절 고사리 손으로 바둑 돌을 집어들기 시작한 이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인생을 온전히 걸었던 그 시간의 무게같은, 아니 , 때로는 그 무게보다 더하게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곳이 겨우 가로 세로, 40여 센티의 바둑판이다. 그리고, 우리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누군가 보기엔, 겨우 그것이라도, 내가 짊어 지고 갈, 내 삶인 것이다. 삶의 비극성조차 내것으로 받아들인 긍정성이다<미생>이 보여준 삶의 긍정성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흔한 덕담이나, 위로와 다르게 묵직하다.

by meditator 2014. 11. 16. 02:06

11월 13일 <밥상의 신>이 마무리 된 목요일 밤 8시 50분에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이 한 편 찾아왔다. <도서관이 살아있다>

마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연상되는 이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도서관이 살아있다>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출연진들이 각종 게임을 벌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우승한 사람은 영국 도서관을 탐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단지 영국 도서관 탐방인지, 탐방의 미명 아래, 영국 관관인지는 알 길 없으나)

그런데,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들이 살아남으로써 박진감 넘치는 모험을 선보였던 영화처럼 <도서관이 살아있다>도 생생한 도서관 체험이 되었을까? 요즘 도서관이야 여러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책을 보러 가는 곳이다. 그렇다면, 파일럿 <도서관이 살아있다>를 보고 기억하는 한 권의 책이라도 있을까?

 

오히려, 한 권이라도 기억나는 책이 있기보다는, <도서관이 살아있다>는 오히려, <런닝맨> 도서관 특집 같았다. 아니, 도서관 특집도 아니다. <런닝맨> 도서관 특집이라면 조금 더 서가에있는 책을 활용하기라도 할 것 같았다. <무한도전>이 잠깐 이용한 도서관보다 책의 활용 방식이 낮다. 책장을 들춰 본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 책을 찾고, 정보를 이용하는 도서관의 기능은 소개가 되었지만, 정작, 그것을 통해 찾아 본 책에 대한 접근도는 낮다. 오히려 종회무진 도서관을 뛰어다니기만 한다.(사실 도서관은 그렇게 뛰어다니면 안되는 곳이다) 그렇다고, 장소를 제공한 국립 세종 도서관의 웅장한 외관과 달리, 도서관으로서 그곳의 고유성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저 서가와, 컴퓨터, 어느 도서관에나 있는 그런 것들이 보여질 뿐이다. 그래서, 파일럿 <도서관이 살아있다>를 시청하고 난 후,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라고, 그저 도서관이란 지리적 공간을 배경으로 <런닝맨> 같은 예능하기 였는지, 예능을 통해 도서관을 알리기였는지? 그 목적 여하에 따라 이 파일럿 프로그램의 성패를 판단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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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스타)

 

두 명씩 짝을 이뤄 네 개로 팀을 나눈 출연자들은 도서관 광장에 제시된 힌트에서 전화 번호를 유추해 내는 것으로 첫 번째 게임을 시작한다. 출연자들은 각자 자신이 가진 상식에 따라, 혹은 도서관에 비치된 사전의 도움을 받아 전화번호를 알아내 다음 힌트를 얻는다.

두번 째 힌트로 제시된 것은, 도서관 서가 분류 번호를 찾아, 책을 찾아내, 그 제목으로 부터 힌트를 얻는 것이다. 몇 권의 책의 제목에 붙여진 스티커의 단어를 모아, 한 인물을 연상해 내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인물 추적에 성공한 팀은 다음 단계로 올라가, 제작진이 제시한 이순신 장군의 해전 순서를 알아내는 다음 단계의 퀴즈를 통과한다. 이 과정에서 출연자들은 이순신 장군의 해전을 알 수 있는 책을 이용하고, 도서관 정보 이용을 위한 컴퓨터를 활용해 문제를 풀어간다.

이렇게 두번 째 과정까지 넘어 최후의 승자가 된 커플은 이제 마지막 영국 도서관 탐방을 위한 티켓을 걸고, 주어진 택들의 제목들 속에서 한 권의 책 제목을 찾아내는 마지막 승부를 펼친다. 결국 영국 도서관 탐방권은, 한 팀이었던 줄리안을 제치고 '홍길동전'을 알아낸 신봉선에게 돌아갔다.

 

mc 김국진과, 도서관을 배경으로 한 <도서관이 살아있다>는 그 분위기에서는, <느낌표>의 책책책을 읽읍시다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 도서관을 소개하고, 매주 한 권의 책을 베스트 셀러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책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도서관이 없는 곳에 새로운 도서관까지 만들었던 '계몽주의적' 예능이었던 '책책책을 읽읍시다'와 달리, 첫 방송을 한 <도서관이 살아있다>는 먼저 달려 힌트를 선점하고, 문제를 맞추는 <런닝맨>의 포맷에 가까워 보인다. 사전을 뒤적이고, 서가에서 책을 찾지만, 그들이 찾아낸 책에서 소용된 건 그 제목들 뿐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참가한 해전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책을 뒤적이지만 어떤 책을 찾아보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책이 매개가 된 퀴즈이지만, 거기서 소용된 것은 책의 제목들 정도지, 그 이상, 책에 깊이 접근하는 문제는 없다. 서가에 책은 잔뜩 쌓여 있건만, 진득하게 다가간 한 권의 책이 없다. 그들이 책 제목을 통해 찾아낸 인물은 책 속의 주인공도, 위인전의 인물도 아닌, 뜬금없는 슈퍼맨이다. 단계별로 도서관 이용이 심화되지도 않는다. 마지막 결승자를 가리는 문제는 심지어, 책들을 늘어놓고 또 다른 책 제목 유추하기 같은 책과 관련있지만, 독서와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도서관이 살아있다>는 도서관을 매개로 예능을 하고자 하는 의도는 있으나,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그것을 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도서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책에 대한 관심을 키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고 게임이 아주 기발하지도 않다. 재밌기는 했지만, 다음에 또 그걸 보기 위해 채널을 고정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문부호다.차라리 도서관에서 만난 한 권의 책에라도 조금 더 천착하는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추리 였다면 신선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과연 이 프로그램의 주시청층이 누굴까 라고 한다면, 케이블의 현란한 프로그램에 눈을 빼앗긴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이 이 싱거운 도서관 게임에 눈을 돌릴까 싶다. 그렇다고 중장년이 보기에도 어정쩡하다. 공중파 예능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도 명색이 <도서관이 살아있다>라면, 생생한 도서관을 남녀노소를 불문한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해줄 고민이 좀 더 필요하다 싶다. 아니 애초에 주중 8시 50분 예능에 도서관이 어불성설일까?

 

by meditator 2014. 11. 14. 12:29

낮은 시청률로 고전하던(평균 시청률 3.4%) <아이언맨>이 결국 애초에 하기로 했던 20부에서 2회가 줄어든 18회로 조기 종영되었다. 남주인공 주홍빈(이동욱 분)의 등에서 칼이 솟는 기괴한 설정을 시청자들은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그 기괴함 너머에, 밤하늘을 쏟아질 듯 채운 별과, 섬진강의 아스라함, 그리고, 깍아지를 듯한 빌딩, 기하학적 미감의 극치를 보여준 집과 푸근한 재래시장과 오래된 주택가의 대비, 그리고 그것을 채워가던 동화같은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한 어렵사리 도달한 두 주인공의 사랑, 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 세대간의 화해에도 시선을 맞출 수 없었다. 비록 애초에 하고자 했던 20회를 채우지 못했지만, 굳굳하게 <아이언맨>의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에둘러가지 않았다. 마지막 회, 엔딩, 다시 만나 힘껏 포옹하며 하늘로 치솟는 두 주인공들처럼, <아이언맨>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고지순하게 지켜냈다.  왜 굳이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칼'을 설정했을까란 의문이 무색하게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어려웠다. 항상 최고만을 요구했던 엄격한 아버지를 피해 가지고 싶은 걸 사랑하는 소녀의 부모님이 하던 문방구에 숨겼지만, 모든 걸 숨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결국 사랑하는 소녀를 빼앗겼다. 가장 사랑하는 걸  빼앗긴 소년은 상실의 분노를 참을 수 없었고, 그 분노는 소년의 몸에서 자라난 칼이 되었다.

 

그리고 칼이 돋아나기 시작한 소년 앞에, 어린 시절 사랑했던, 그래서 아버지로 인해 잃었던 첫 사랑의 소녀의 냄새를 지닌 또 다른 소녀가 나타난다.

 

 

 

<아이언맨>의 여주인공 손세동(신세경 분)은 마치 '바리데기'와도 같다. 주홍빈의 아버지 주장원(김갑수 분)은 태희(한은정 분)를 찾아가 자신이 세동이로 인해 달라졌음을, 잘못했다고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가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한 세동은, 누군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혹시나 자신의 외면때문에 그 사람이 자신의 부모님처럼 될까봐, 그런 세동이, 창이를 만나고, 창이로 인해 주홍빈을 만나고, 다시 주홍빈으로 인해 주홍주와 주장원을 만나면서, 닫혀있던 이들의 마음에는 생명의 피가 흐르고, 굳었던 관계가 다시 이어진다. 세 부자만이 아니다. 생명을 앗아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거 같은 태희와 주장원, 그리고 그로 인해 꽉 막혀버린 태희와 주홍빈의 관계에도 '해원'을 풀 시간이 주어진다.

 

마치 죽은 부모님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 숱한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며 생명력을 소생시킨 바리데기처럼, 손세동은, <아이언맨>에서 묵은 해원과, 굳은 관계와, 그 속에서 고사되어져 가던 인간성을 살려내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언맨>에 등장했던 모든 사람들을 다시 살려냄으로써(?) 자기 자신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받았던 트라우마에서 놓여나 누군가를 보살펴주는 사랑이 아니라, 주체적인 사랑을 찾는다.

 

(아시아 투데이)

 

 

 

<아이언맨>은 진짜 어른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당대 최고의 게임 회사의 ceo이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무서워 장난감을 숨기고, 장난감을 빼앗겨 분노하던 아이에서 한 치도 성장하지 못한 채 분노를 칼이 되어 뿜어내기만 하는 주홍빈은 누군가를 지켜줄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저버리면서까지 희생하던 손세동은, 역시, 자신의 사랑 앞에 당당해 지는 어른이 되었다.

 

무조건적인 희생도, 무조건적인 분노도 넘어, 성숙하게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가는, 상처받은 아이들의 성장담, <아이언맨>이었다.

 

 

 

그리고, 그 상처받은 아이들에게는 그들에게 상처를 준 아버지가 있다. 그저 그가 아는 삶의 해법이라곤, 높은 건물을 올리듯,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쌓는 것만이었던, 그리고 그런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우리 시대의 어른,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그 아버지로 인해 상처받고, 빼앗긴 그의 자식과 남의 자식들이 있다.

 

 

 

<아이언맨>은 그런 아버지 세대와 '화해'에 대해 고민한다. 자식들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고, 자식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버린 이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아이언맨>의 숨겨진 화두다.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던 손세동의 아버지를 외면해 빨리 수술을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했던 주장원에게 손세동이 요구한 것은 '사과'였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에 대한 시인과,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진심어린 사과.

 

주장원은 어렵사리 말문을 연다. 그저 자기 잘 살겠다고 했던 일이,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는 일인줄 몰랐다고, 그리고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누군가도 자신처럼 자식을 가진 부모라는 걸 염두에 두겠다고.

 

그리고 손세동에게 배운대로, 주장원은 죽어가는 태희를 찾아가 사과를 한다. 노골적으로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세동의 아버지는 죽었고, 태희 역시 주장원의 속내를 헤아린 윤여사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로 인해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그렇게 죽어버린,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 '세치 혀' 주장원의 사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작가는 감옥 한번 다녀오고, 절에 한번 다녀오고 나서, 사죄를 했네라며 뻔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처벌'이 '처벌'이 아니요, 어쩌면 '처벌' 보다는, 진심어린 '사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마지막회 어린 시절 주홍빈이 아버지의 눈을 피해 소중하게 숨겨놓았던 딱지가 알고보니 아버지가 곱셈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홍빈을 위해 만들어 주었던 것이라는 걸 밝혀진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것임에도,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야 했던 아이러니한 사랑의 상징이라니! 그 '불화'의 상징이었던 딱지는,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한 아버지와, 분노를 거두고, 누군가를 책임질 어른이 된 아들의 '화해'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물론 주장원이 그리도 바라던 더 많은 것, 더 높은 것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가 이룬 부는 그의 두번 째 아내의 수중으로 사라졌고, 윤여사가 바라던 주홍빈의 집도 얻어지지 못했다. 텅빈 방에 홀로 서있는 주장원과, 홀로이 떠나는 윤여사의 모습으로, 즉 그들이 어쩌면 핏줄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겨왔던 것을 상실케 함으로써, <아이언맨>의 단죄는 마무리된다.

 

 

 

'바리데기' 같은 여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고도 성장' 시대의 아버지와, '분노'의 시대를 살아온 아들이 다시 손을 맞잡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화같은 남녀 주인공의 사랑도, 어렵사리 도달한 세대간 화해도, 주인공의 등에서 돋아난 기괴한 칼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니, 여전히 '고도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와, '분노'를 성숙하게 다스릴 줄 모르는 아들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진심어린 사과와, 누군가를 지켜줄 줄 아는 사랑은 정말 동화 속 이야기같기만 했기 때문이라는게, 진짜 <아이어맨>이 외면받은 이유가 아닐까?

 

 

by meditator 2014. 11. 14. 10:29

'제발 다음 주에 만나요`'라며 다음 주를 애절하게 기원하던 <무르팍 도사>의 짜투리 프로그램이었던 <라디오 스타>가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요새를 향해, 진격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리고 파일럿으로 편성된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는 그 난공불락 요새로 돌진하는 홀홀단신 용병으로 첫 차출된 프로그램이었다. 차출된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의 성과는 2%(닐슨 코리아)다. 이래서야, 이제는 겨우 5%대로 체면 치례를 유지하는 <라디오 스타>라는 요새의 문을 부셔버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일까, 정규 편성의 변 대신, 다음 주엔 <즐거운 가>가 수요일을 차지한단다.

 

첫 술에 배부르랴 라고 하기에,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의 시작은 장황하다. 뜻하지 않은 사건을 막을 내린 <짝>의 제작진이 만든 프로그램답게,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는 이게 <짝>인가? 싶어 프로그램 제목을 확인하게 할 만큼, <짝>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옮겨온다. 김세원 성우의 농밀한 나레이션을 배경으로,<짝>에서 애정촌으로 사용된 흔적이 벽에 남겨진 산채로 첫 출연자 강풀과 서장훈을 부른다. 리무진에, 기자 회견에, 레드 카펫에, 경호원에 오글거리면서도, 번거로운 격식은,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 30분이 지나도록 지속된다. 강풀의 만화를 좋아해서, 서장훈이 보고 싶어 채널을 고정했던 시청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그 시간 mbc의 <라디오 스타>에서는 요즘 한참 주목받고 있는 조연 연기자들의 입담이 스튜디오를 메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 한 살 동년배의, 강풀과 서장훈의 조합은 신선했다. 그리는 작품마다 화제와 인기를 얻고 있는 당대 최고의 만화가가 된 강풀과 달리, 동갑인 서장훈은, 농구 선수로 살아왔던 그의 인생의 정점을 넘었다. 2013년 3월 19일로 농구 인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시간만 나면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 전화를 거는 강풀에게는, 그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가정이 있다. 하지만, 서장훈은, 이혼으로 인해 은퇴를 미뤄야 했을 만큼, 아픈 상처가 남아있을 뿐이다. '좌빨'이라며 사람들이 자신을 규정하는 모습을 거부하지 않으며 당당한 강풀과 달리, 재계, 연예계에 인맥을 가지고, 재테크에 관심이 많으며,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게 된 지가 오래된 서장훈은 뭐 하나 서로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다.

 

 

 

(일간 스포츠)

 

그렇게 나이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하룻밤을 보내며 인간적 깊이를 쌓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의 의미는 존중받을 만 하다.

서로 만나,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할 만큼 어색했던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걷고, 그리고 함께 술을 마시면서, 말을 놓고, 결국 친구가 되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강풀이 말하듯, 어색했던 하룻 밤을 보낸 두 사람은 '우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까탈스런 서장훈은 여전히 가족도 자기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지만, 그런 서장훈을 이제 이해하게된 강풀은 그럼 자기 집으로 초대하면 된다고 그래서 혹독한 육아를 체험하게 하면 된다고 너스레를 떨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과의 거리두기에 한 치의 틈도 없던 서장훈이, 아내와 아이와 다정스레 전화를 주고 받는 강풀을 보며, 싱글 라이프인 자신의 삶과 미래의 아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서장훈이 이룬 부에 대한, 그리고 26년이 대표작이 되어버린 강풀의 사상성에 대한 솔직한 질문이 오간다.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는 2013년 3월부터, 8월까지 방영되었던 <땡큐>와 프로그램의 성격을 같이 한다. 서로 다른 길을 걸은 두 명의 명사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고, 시청자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인생을 반면교사로 삼아보는 변형된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낮은 시청률로 조용히 사라지게 된 <땡큐>의 색채를 없애고자, '군주'라는 어색한 호칭과, 장황한 격식으로 프로그램의 성격을 달리 보이게 만들고자 한다. 그런데 그 형식적 장치가 <땡큐>가 풍겼던 '힐링'의 성격마저,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오히려 보면서, 과연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가 추구하고자 했던 프로그램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 질 정도로.

 

강풀과 서장훈은 1박2일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밤을 보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앞뒤가 끊긴 채 단절적인 경구처럼 전달된다. 강풀을 알고, 서장훈을 이해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힘들다. 오히려 진수성찬이 마련된 매 끼니의 식사는 대화 한 점없는 식사 시간이 증명하듯, 두 사람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되지 못한다. 하다 못해, <식사합시다>처럼 함께 음식을 차려가는 과정에서 다가가는 묘미도 없다. 즉, 형식이 출연자의 거리를 좁히는데, 출연자의 이해를 돕는데 별 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형식은 강고한데, 그 형식이 강풀이란 사람과, 서장훈이란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 그러니, 형식은 형식대로, 그 안에서, 사람은 사람대로,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문득, 아무 것도 하는 것없이, 하루 삼시 세끼 밥만 해먹는데도, 출연자에 대한, 한번 들르는 게스트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어져 가는 <삼시 세끼>가 떠오른다.

 

그러다 보니, 결국 프로그램의 형식을 벗어난 '잠행', 술에 의존하여 풀어내는 길 밖에 없다. 서먹했던 강풀과 서장훈이 말을 놓고, 속깊은 이야기를 하게 된 건, 하루가 꼬박 지나, 밤이 이슥한 중국집에서였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야, 낯을 가렸던 두 사람의 속내를 듣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이 아니고서는 미디어에 낯선 강풀이란 사람과, 꿈을 이룬, 그리고 아직도 꿈에 대한 미련을 채 접어넣지 못한 은퇴 농구 선수인 서장훈의 속내를 어렵게 읽어가는 시간은 소중했다.

당대 최고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그림을 잘 못그리니 스토리로 승부할 수 밖에 없다며 피를 쏟는 치루에 걸릴 정도로 고된 작업을  반복하는 만화가라는 직업과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매년 크리스마스와 첫 눈 오는 날을 희생하며, 하지만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없는 두 사람이 살아온 다른 인생을 엿보게 된 건 그 자체로 의미있었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하지만, 키가 커서 부모님이 농구 선수가 되기를 희망하는 아이에 대한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와, 잘 하는 해야 한다 라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답변처럼, 전혀 다른 인생관을 가진 두 마흔 한 살의 중년 초입의 남자들을 통해, 치열한, 혹은 치열했던 세상을 엿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꿈은 만화가가 아니었다며, 만화가가 직업임을 강조하는 강풀과 농구선수 외에는 생각해 본 것이 없다는 서장훈을 통해, 꿈과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꿈을 이룬 서장훈에게, 그러면 무엇을 하고 싶을 때까지 놀라는 강풀의 지혜처럼, 세상의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해법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미흡한 결과물을 안은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가 정규 편성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규 편성이 되기 위해서는 '만남'이란 소중한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는, 아니, 그 만남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형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저 새로운 것만으로 설득하기에, <일대일 무릎과 무릎 사이>는 진부했다.

by meditator 2014. 11. 13. 11:37

11월 2일 sbs수목 드라마로 첫 선을 보인 피노키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혜련/조수원 콤비가 다시 한번 뭉쳐 선보인 드라마다.

그런데, 굳이 박혜련/조수원이란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전작을 드러내지 않아도, 첫 회 <피노키오>를 보고 있노라면, 박혜련 작가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떠오른다.

 

델리 스파이스의 노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차용한 제목을 붙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는 신체적 약점이자, 동시에 그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는 증상을 가진 소년 수하(이종석 분)가 등장한다. 어릴 적 사고로 상대방의 눈을 보면 그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증상을 가진 소년 수하는, 하지만 그 슈퍼맨의 능력같은 자신의 증상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항상 들려오는 누군가의 마음의 소리로 인해 괴로워하는 그는, 그걸 막고자 항상 음악이 흐르는 헤드폰을 끼고 있다.

<피노키오>에는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소녀가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사는 사회는, 흰 거짓말, 검은 거짓말이라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말 장난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못베기는 사회를 합리하듯, 진실만을 말하고서는 살아가기 힘들다. 그런 사회에서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인하(박신혜 분)는 거짓말을 하려하지만, 그때마다 딸국질이 그녀를 폭로한다. 이 아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회에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아킬레스건을 가진 소녀가, 거짓 세상 속을 헤쳐나가는 방식이, 곧 <피노키오>의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또한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피노키오> 모두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사건이 그들 삶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다. 민준국에 의해 아버지를 잃게 된 소년 수하, 그런 수하를 돕기 위해 법정에 서서 진실을 증언하게 된 혜성(이보영 분), 그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의 인연은 깊어졌고, 혜성의 세상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피노키오>에도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있다. 기억력이 좋은 작은 아들을 동네방네 자랑하지 못해 좀이 쑤시는 순박한 아버지는 소방관으로 출동했던 공장 화재 사고에서 공장 직원의 발뺌으로 동료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살인자이자, 그 사건으로 부터 자신만이 살아남아 도망다니는 파렴치범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죄과는 고스란히 가족들의 짐으로 떠넘겨지고, 그로 인해 가족은 산산조각나고 소년의 삶은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동심의 세계는 단 한 순간에 파괴되고, 어린 시절의 주인공들은 그들을 보호해줄 보호자를 잃고 세상을 떠돈다. 잔혹 동화다.

그런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도, <피노키오>에서도, 이 잔혹 동화를 빚어낸 건,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는 사회의 어른들이다. 동심의 세계를 파괴한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 속에서, 자신만의 이해를 추구했던 어른들의 타산적 행동이다. 그런 어른들의 탐욕으로, 아이들은 보호받을 그늘을 잃었고, 영원히 씻지 못할 상처를 가진다.

그리고 그렇게 동심의 세계를 파괴한 어른들의 사건은 드라마의 주제가 될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내던져지듯 들어간 법정에서,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범죄자의 시선 앞에서 진실을 고백했던, 하지만 무기력했던 소녀의 증언은, 법 앞의 진실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사실에 앞서, 대중들의 흥미를 쫓는 보도 관행 앞에 파괴되어버린 가정은,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의 사명이란 원론적 질문부터 시작하게 만든다.

 

(sstv)

 

하지만 동시에, 깨어진 동심의 세계에서 튕겨져 나온 아이들은, 주저앉아있지 않고 그로 부터 어른이 된 자신의 삶을 시작한다. 인권 수호자는 커녕 철면피한 국선 전담 변호사가 된 혜성의 직업이 그것이다. 잔인하기까지 했던 기자들의 세 치 혀로 인해 아버지의 생환을 기뻐하지도 못하고, 어머니마저 잃게 된 소년은 기자가 될 예정이란다.

 

첫 회를 선보인 <피노키오>는 단 1회이지만, 사연많은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그로인해 빚어진 주인공들의 캐릭터, 그리고 그들을 만들어 낸 우리 사회의 모순까지 명쾌하게 그려낸다. 사실을 보도한다 하면서도, 그 사실의 선을 넘나들다,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칼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언론의 단면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그런 무심한 누군가의 사회적 행위로 인해, 어린 시절을 잃은 주인공들의 사연을 선연하게 그려낸다. 상처받은 아이에서 히어로가 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들처럼, 동화의 세계에서 튕겨져 나온, <피노키오>의 주인공들은 또 어떤 어른이 되어, 우리 사회를 밝혀줄까, 기대가 된다.

by meditator 2014. 11. 13. 09:21

지난 주 정리 해고 게임에 이어, 대통령 게임을 선보인 <라이어 게임>, 우리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게임 속으로 끌어들인 이 드라마는, 드라마 속 게임을 통해, 갑론을박 속에 가리워진 현실 속 진실을 오히려 명료하게 드러낸다. 


3라운드에 돌입한 참가자들, 이번 게임은 외부에서 대통령이 될 만한 후보들을 게임에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남다정의 도움을 얻은 참가자들은 남다정이 선택한 후보를 믿고 따르기로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조달구(조재윤 분)를 대통령 후보로 선택한 남다정 앞에 흔들린다. 그런 남다정의 후보에 맞서, 진짜 국회의원 보좌관(장승조 분)은 자신이 모시는 국회의원을, 그리고 국장과 커낵션이 있는 제이미는 강도영을 대통령 후보로 끌어들인다. mc 신분으로 게임 참가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지만, 차라리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상대편이 낫다는 하우진(이상윤 분)의 결정에 강도영은 대통령 후보로 합세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질 것 같아'라는 호언장담과 출연자들 모두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결국 3라운드 대통령 게임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은 심리학 교수 하우진조차 속아넘긴 강도영이었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은, 우리 사회 대통령의 선출 방식의 숨겨진 이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통령 게임의 운영 방식은 총 3번의 투표로 이어진다. 각각의 투표 과정에서 후보자는 유세를 하며, 유세 후 각가 개별적으로 참가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유세의 내용은, 세번 중 한번을 거짓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참가자들이 제대로 판별하는가에 따라, 상금과 탈락 여부가 결정된다. 

당연히 참가자들은 후보자 유세 내용의 참, 거짓을 판가름하는데 촉각을 곤두세운다. 조달구를 후보로 내세운 하우진과 남다정은 상대장의 진실 여부에 따라, 조달구의 처지가 달라지기에, 더더욱 예민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후보 조달구는 1차전에서 승리를 확보할 수 없었다. 나름 머리를 써다던 2차전 역시 패는 갈리었다. 승기가 강도영에게 넘어간 3차전은 더더욱이나 패배를 예감할 수 밖에 없다. 

<뉴스웨이>

하지만, 조달구의 승패를 떠나, 후보자의 유세의 참, 거짓과, 그것을 믿고 뽑는 참가자들의 유세 방식은 적나라하다. 유세가 참이었을 경우, 그것을 믿고 뽑은 참가자들은 유세의 내용에 따라, 국고에 있는 선거 자금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참가자들이 선택하는 기준은, 결국 유세자들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느냐 라는 것이다. 참, 거짓의 판가름은 그 다음이다. 가장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후보가 선택의 관건이다. 현대 사회 선거가 가지는, 배금주의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도시 정비 계획 하나로, 노인 연금 하나로  들먹이는 선거판의 복기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참가자들의 얕은 속내는, 결국 복벌복이 된다. 가장 확실한 이익을 보장할 것 같았던 2차 투표의 승리자 강도영을 뽑은 참가자들이, 그가 보장한 이익을 확인하고자 자신들의 금고를 열었을 때, 텅비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참가자들은 후보자가 말하는 유세 내용이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숨겨진 비자금처럼, 후보자의 생각은 '거짓'이 아니라도, 전혀 다른 속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3차의 승리 이후, 대통령이 된 이후, 강도영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말바꾸기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금고를 까보이며 비자금에 대한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서는 하우진과 남다정 등에게 강도영은 냉소적으로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며 비웃는다. 게임의 룰에 골몰하는 하우진등에게, 중요한 것은 게임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선언한다.

강도영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드러난 진실에도 불구하고, 실세를 운운하며 훗날을 기약하는 강도영 앞에서 '비자금의 진실' 조차도 헷갈려하는 사람들, 그리고 결국은 '비자금' 조성 자체 따위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 하우진과 강도영의 동전 게임을 통해, 강자를 확인한 사람들은, 강도영에게 몰표를 던진다. 진실보다는 현실의 강자를 택한, 3차의 투표 과정은, 실체적 진실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승자 독식 주의에 가세하고자 한 표를 던졌던 우리가 경험한 선거를 적나라하게 복기한다.

그렇게, 강도영은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따랐던 참가자들을 외면하고서도,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리고 그를 뽑은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서 떨어질 떡고물을 기대한다. 하지만, 강도영의 떡고물은 그를 뽑은 참가자들 몫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비자금을 관리했던 변호사는 탈락했지만 유명 로펌에 고용되었고, 대통령 후보로 나선 국회의원을 배신한 보좌관은 차기 국회의원 입후보를 위한 자금을 확보한다. 정작 강도영을 뽑은 사람들에게 돌아온 것은, 그저 다음 라운드까지 연명할 수 있는 기회뿐이다. 승자의 편에 서기만 하면, 자기에게도 무언가 이득이 생길거라며 표를 던졌던, 보통 사람들의 적나라한 현실이요, 우리 사회 투표권자들에 대한 은유이다. 

일본 원작 드라마에서, 능력자 하우진의 캐릭터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 건너 온 <라이어 게임>에서 하우진은 그 누구의 심리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자이지만, 현실의 막강한 권한을 내보이는 실력자 강도영에게 역부족이다. 일본 원작의 절묘함을 넘어, 한국 현실의 먹먹함을 고스란히 가미해낸 <라이어 게임>, 리메이크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 리메이크가 복기해낸 선거의 추억은 씁쓸하다. 


by meditator 2014. 11. 12. 1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