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드라마의 이름을 검색하면 그 드라마의 '드라마 갤러리'가 연관 검색어로 등장할 만큼, 디시인사이드의 드라마 갤러리(이하 드라마 갤)는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더 이상 생소한 인터넷 문화가 아니다. 새롭게 드라마가 시작되고 나면 그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상에서 함께 자신들이 즐기는 이 드라마에 대한 소감을 공유할 공간으로 드라마 갤을 생성하고자 하는 것이 자연스런 반응이 되었고, 이런 팬들의 소원(?)을 모아 디시인사이드에 청원을 넣으며 새로운 드라마의 갤러리가 탄생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드라마를 응원하는 팬들은 자신들이 즐겨보는 드라마에 대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하고, 그 마음은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물질적 선물로 이어지며 여기서 이른바 '조공 문화'가 탄생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조공 문화'의 시작은 아이돌 스타에 대한 팬들의 물질적 사랑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인터넷 상에서 다양한 분야로 이어졌고 드라마 제작진에 대한 '조공' 역시 그 흐름의 연관 선상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드라마에 대한 조공 문화는 다양하다. 드라마를 방영하는 중간에 시간에 쫓기며 촬영을 이어가는 제작진에 대한 응원차 '밥차'를 비롯한 음료수, 간식 거리 제공에서 부터, 드라마 종영 후 감사의 표시를 각종 리뷰와 응원의 글을 모은 글모음집이나 드라마 캐릭터 클레이 혹은 케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서로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익명의 사람들이 가상의 인터넷 공간에서 모여 함께 드라마를 즐기는 공간이 가지는 불가지, 불특정의 특성이 조공 문화의 폐해를 낳기도 한다. 
특히나 조공 문화의 경우, 누군가 적극적인 사람이 나서서 이른바 '총대'가 되어 그런 일정을 진행해야 하기에 그 부작용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 
최근 새로이 시작된 모 드라마의 경우 자신의 푸드 트럭을 알리고자 하는 업자가 드라마 갤의 팬인 양 행세하면서 자신의 업체를 조공에 이용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애초에 이 드라마 갤러기 조공 과정에서 문제가 제기 된 것은 사람들이 돈을 모은 것에 비해 형편없이 초라하게 보내진 조공 물품에서 비롯되었다. 투명한 비닐 팩에 담긴 낱개 껌 하나, 레모나 2개, 사탕 2개, 핫팩 1개 등이 문제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초라한 물품에서 비롯된 이 드라마의 조공 사건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즉, 그 초라한 물품보다, 함께 들어간 '떡꼬치' 등의 분식 차가 문제가 된 것이다. 화장품 냄새 등으로 그날 제공한 분식의 상당 부분을 먹지도 못했다는 후문이 전해진 이 분식 차의 주인공은 알고보니 가장 적극적으로 총대를 맸던 '조공'을 진행했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추적을 해보니 이 사람은 이 드라마 갤 뿐만 아니라 다른 드라마 갤에서도 이런 식으로 총대를 메고 자신의 업체를 조공 과정에 끼어넣는 전횡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단지 이 드라마 만이 아니라, 작년에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에서 부터 최근 종영한 드라마까지 몇몇 드라마에서 발생했던 일이라는데서 그 심각함은 더해진다. 
팬들이 드라마를 응원하는 마음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조공'을 하고자 하지만, 개인의 이해를 숨긴 업자가 팬인양 드라마 갤러리에서 활동하며 그런 팬들의 순수한 정성을 자신의 업체를 홍보하거나 이윤을 남기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갤러리라는 곳이 개인의 신상을 드러내고 가입을 하는 곳도 아니고, 드라마가 방영하는 동안 한시적으로 열렸다가, 드라마가 끝나면 그 드라마 갤러리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방치되고 마는 한정적인 공간이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 개인적 이해 관계로 진행하거나, 금전적 이익을 남긴 '총대'에 대해 어떤 법적인 제재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총대'의 경우, 배우 개인의 팬들이 강력하지 않은 드라마만 찾아다니며 그런 일을 벌이니 더더욱 추적이나 응징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드라마를 좋아하는 마음 자체를 이른바 '물질적으로 승화시킨' 조공 문화 자체에 대한 반성도 이어진다. 물론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정도전>의 경우, 팬들이 이 드라마를 응원하고자 음료수 트럭을 현장에 보내 응원하였을 때, 그런 문화에 생소했던 배우들이 이 트럭 앞에서 서로를 찍으며 좋아했던 사진들이 드라마 갤에 올라오면서, '응원'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기도 한다. 실제 밥때조차 놓치며 촬영에 매진하는 제작 현장에서 팬들이 보내주는 작은 성원하나가 어렵게 일하고 있는 스텝들의 기운을 담뿍 불어넣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실제 당회분 드라마를 그 바로 전주에 찍어 올리는 급박한 한국 드라마 현실에서, 시간에 쫓기는 촬영 일정 가운데, 팬들의 '조공'을 끼워넣는 것도 만만찮은 노릇이다. 실제 모 배우 팬들의 경우 어렵게 조공을 준비했다가 일정이 취소되어 물질적 손해를 입은 경우가 있기도 하다. 또한 앞의 사건에서 처럼 생각지도 못한 업자가 등장하여 조공 자체를 훼손하거나, 팬들의 성의를 모은 '조공'을 자신의 능력인 양 행사하여 눈길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존재하니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이 그저 개인의 취미를 넘어 함께 즐기는 문화가 되어가는 이즈음, '조공 문화' 역시 이제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타 드라마에서 이렇게 조공을 했는데 라며 비교까지 하면서 '남이 하니 나도 할 수 밖에 없는' 의무가 되고마니, 결국 이렇게 개인 업자가 전횡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시청률이 좋으면 좋으니, 시청률이 나쁘면 그래서 더 응원을 하기 위해서 라는 물질적 호혜의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제고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개인 업자의 전횡이 역시나 같은 디시 인사이드의 게시판을 통해 밝혀지고, 개인 업자의 신상조차 분명하게 명시되며 이후에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자체 정화를 하고자 하지만, 그 드라마를 사랑하여 호주머니를 털은 팬들의 상처받은 마음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누군가 나서서 고소를 하지 않은 이상 법적인 제재 조치가 불가능한 것이 인터넷 상의 제약인 것이다. 실제 문제가 된 드라마에서는 '법무팀'을 모집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이번 기회에 '조공' 자체가 '누구의 떡이 더 큰가'라는 경쟁 문화가 아닌, 선의의 응원이 되기 위해서라도 보다 적절한 대책 마련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5. 2. 25. 13:40

 


14%가 넘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리고 시청률을 뛰어넘는 박정환(김래원 분) 검사의 마지막 6개월을 신드롬으로 만들며, 박경수 작가의 권력 3부작은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로써, <추적자>을 통해 정치 권력, 그리고 <황금의 제국>을 통해 재벌의 권력, 마지막 <펀치>를 통해 검찰의 권력을 조명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부패한 권력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며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을 냉엄하게 그려내었다. 이렇게 현실의 잔혹한 이면을 그려내었던 <펀치>를 보며, 그 권력의 귀추에 숨죽이던 시청자들은 <펀치>의 종영 이후 어떤 선택으로 방향을 틀었을까? <펀치> 종영 이후 첫 주에 제일 먼저 미소을 지은 것은 그간 꾸준히 <펀치>를 추적하던 <빛나거나 미치거나>였다.

 

 

아쉽게도 단점이 돋보이는 후발 주자들; <풍문으로 들었소>, <블러드>

<펀치>을 선보였던 sbs는 후속작으로 권력의 비리에 이어, 상류 사회 갑들의 부조리한 삶을 다룬 <풍문으로 들었소>을 선보였다. 장르 상으로는 전혀 다르지만, 우리 사회 '갑'들의 이면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작품이다. 이미 <아내의 자격>, <밀회>에 이어 jtbc를 통해 상류층의 부조리를 형상화시켰던 정성주, 안판석 콤비가 공중파로 진입하며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 경햠을 연장, 발전시켰다며 밝히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안판석 pd 특유의 고상한 상류층의 분위기를 한껏 드러낸 미쟝센이, 이번에는 너무 힘을 줬는지, 뜻밖에도 어둡고 칙칙하다는 반응에 부딪치며 정성주, 안판석 월드에 시청자가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영화<표적>을 통해 가장 악랄한 악역의 면모를 보인 것과 달리, tv에서는 언제나 좋은 이미지로 등장했던 유준상의 한정호 연기나, 역시나 선한 이미지를 유지해왔던 유호적의 최연희 연기 역시 아직은 낯설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또한 당찬 여고생 서봄 역의 고아성이 그 누구보다 자연스런 연기를 선보인데 반해, 싸이코패스로 익숙한 이준의 어리버리한 고딩 연기는 연기면에서나, 캐릭터의 개연성 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형편이다.

 

<풍문으로 들었소>에 비해 한 주를 먼저 선보인 <블러드>의 경우는 더 쉽지 않은 처지에 봉착해 있다.

케이블 작품 <뱀파이어 검사>나 미드를 통해 이미 익숙해진 '뱀파이어'라는 캐릭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파 미니시리즈라는 대중적 장르로 안착하기에는 아직 생경한데다, 그 뱀파이어를 연기하는 남주인공 안재현의 연기나, 여주인공 구혜선의 연기마저 시청자들이 적응하기에는 생경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다.

게다가 전작 <굿 닥터>를 통해 서번트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진 주인공을 의사라는 직업과 매치시켜 '인간 승리'의 미담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했던 것과 달리, 뱀파이어와 의사의 만남은 어쩐지 갓을 쓰고 양복을 입은 듯 아직은 어색한 만남의 분위기를 일소해 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무난한 스토리, 거기에 가속 패달은 배우들의 호연; <빛나거나 미치거나>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야심차게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 정성주, 안판석 콤비와 박재범 작가가 전작의 영광이 무색하게, 전작의 정서조차 아직 충분히 펼쳐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던 <빛나거나 미치거나>는 뜻밖에도 <펀치>의 빈 자리를 여유있게 차지한다. (13회 13.1% 닐슨 )

 

고려 광종을 주인공으로 삼은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경우,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마저도 외면할 수 있는 왕실 권력 쟁탈전을 배경으로 하면서 그 속에서 피어나는 지고지순한 남녀의 순애보를 그려내는 전형적인 사극으로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맞아들인다.

 

또한 한껏 망가지는 코믹과, 운명적인 삶의 비극적 정서가 그 누구하나 어색함이 없는 호연을 통해 자연스레 전달되는 것이 무엇보다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장점이라 할 것이다. 이미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통해 <추노>의 대길이 같은 연기를 로맨틱 코미디에서도 특화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 장혁이, 다시 한번 그 캐릭터를 사극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시킴으로써 언제나 한껏 진지한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만이 아니라,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코믹 캐릭터까지 영역을 넓힌다. 예의 대길이 같은 웃음과 표정의 오글거림을 극복하고 나면, 어느 장면에서 성실한 장혁과, 그런 장혁과의 호흡에서 딸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는 오연서의 호연에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제 아무리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와, pd의 작품이라도, 결국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그것을 풀어가는 배우들의 호연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 잡기는 함든 것이다. 거의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반 토막에 불과한 나머지 두 작품들의 시청률이 버거워 보인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첫 번째 대결이 마무리됐을 뿐이다. 30부작 <풍문으로 들었소>는 이제 막 첫 단추를 풀어 헤쳤을 뿐이고, 여전히 단 한 장면에서도 정성주 작가의 시선은 예리하고, 안판석 pd의 구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블러드> 역시 박재범 작가의 장기인 병원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풀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두 작품들이 부지런히 선방하고 있는 <빛나거나 미치거나>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우선 낯선 주인공들의 연기부터 친숙하게 만들 해법을 찾아야 할 듯하니, 갈 길이 만만치 않다.

by meditator 2015. 2. 25. 05:47

sbs는 2월 21일에서 22일 양 일에 걸쳐 3D특집 2부작 드라마 <인생 추적자 이재구>를 방영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인생 막장에 몰린 노무사 이재구(박용우 분)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지만, 만약 좀 더 정확하게 드라마의 제목을 짓는다면,  아니 부제라도 붙인다면 '회사원 김태수(엄효섭 분) 씨의 억울한 죽음'이라고 하는 편이 어떨까? 물론 노무사 이재구의 드라마틱한 활약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 보다는 이 드라마가 궁극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 하루 아침에 회계 업무에 종사하던 김태수 씨가 영업사원으로 급락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버티다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되는 우리 사회 '을'의 슬픈 자화상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노무사 이재구가 맡은 김태수 사건 
8년 동안 고시를 준비하다 실패를 거듭한 채 결국 노무사가 된 이재구,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노무사 생활은 여의치 않다. 오랜 고시 실패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3년 째 별거에 이혼을 신청 중이고, 병원에 장례식장을 전전하며 '목숨값을 받아드린다'고 명함을 돌리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분노한 유족이 쏟은 육개장 국물이다. 

실의에 잠긴 그를 찾아왔던 김태수 씨를 병원에서 다시 만나고, 불법 영업으로 쫓기다 졸지에 형 동생으로 의기 투합한 이재구는 그날 밤 김태수 씨의 집에까지 함께 하며 김태수 씨의 사연을 헤아리게 된다. 

김태수 씨는 의료 기기를 파는 GB메디컬에서 회계 업무를 보던 직원이다. 하지만 20년 째 근무하던 회사는 하루 아침에 그를 사무직에서 영업직으로 발령낸다. 의료기기라는 걸 팔아본 적이 없는 그에게, 이미 기존 영업 사원들이 차지하고 남은 할당을 맡아 실적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간 이재구 노무사의 충고대로, 그는 거의 드러내놓고 회사에서 나갈 것을 종용하며 견디기 힘든 일만 골라 맡기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참고 견디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 새벽부터 지방으로 영업을 돌던 그는 그만 계단에서 굴러 뇌에 출혈이 생기고 제때 치료하지 못한 채 밤 늦게까지 접대를 돌다, 다시 또 다른 지방 영업을 하기 위해 가던 중 교통 사고를 내고 결국 목숨을 잃는다. 

김태수 씨가 하던 일이 반품된 의료기기를 몰래 처분하는 일이었기에 회사 측에서는 그의 지방 행을 무단 결근으로 처리한다. 당연히 그의 사고는 그 개인의 사고일 뿐이다. 억울한 아내는 집까지 왔던 노무사 이재구를 찾아가고, 만류하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며 남편의 행적을 쫓는다. 

드라마 속 김태수 씨는 입사 동기였던 GB메디컬 이사의 비리를 알게 되는 바람에, 그리고 그 비리에 동조한 또 다른 입사 동기의 비리를 폭로할 수 없어서 영업직으로 좌천되고, 갖은 수모를 겪는 걸로 드라마는 그려낸다. 하지만, 그런 김태수 씨의 특정한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 건, 우리 사회 '을'들의 보편적인 억울한 사연들이다. 


김태수라는 개인을 넘어선 우리 사회 보편적 '을'의 이야기
하루 아침에 자신이 일하던 부서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으로 대부분 영업직으로 쫓겨나는 것은, 말이 전출이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한 명예 퇴직 강권의 징조이다. KT의 수많은 사원들이 그렇게 졸지에 전봇대에 올라가게 되고, 전단지를 돌리기도 한다. 증권맨이 하루 아침에 이 식당 저 식당에 명함을 모으러 다녀야 한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들이 해오던 일이 아니니 잘 할 수 없다. 그런 그들에게, GB메디컬 박이사로 상징되는 '갑'들은 그건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 라고 말한다. 그렇게 개인의 문제로 밀어부치며 코너에 몰린 '을'들은 그래도 '가장'이란 이름 아래, 어떻게든지 그곳에서 버티려고 한다. 생전 들어보지 않은 무거운 기기를 들고, 생전 가보지 않은 곳에 가서 굽신거리며, 생전 해보지 않은 접대를 한다. 하지만 동료들의 눈은 차갑고, 회사는 어떻게든 몰아내기 위해 더 몰아가기만 한다. 심지어, 극중 김태수 씨처럼 업무 중에 다치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그의 죽음값조차 아까워 갖은 편법을 통해, 개인의 죽음을 온전히 개인의 과실로 밀어부치고자 한다. 

물론 드라마는 이혼을 하고 아이까지 잃게 된 노무사 이재구가 '배수진'의 심정으로 노무사로서의 본령을 찾아 김태수 씨의 사건에 매달리고, 아내 송연희(유선 분)가 남편에 대한 중상 모략은 물론, 갖은 회유와 협박, 심지어 집에 빨간 딱지가 붙는 상황에서도 굳굳하게 남편의 죽음을 밝히고자 하는 의연함을 보였기에 김태수 씨는 죽음값이 아니라, 인생의 값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2부작의 과정 중에, 김태수라는 사람의 사고, 그리고 죽음을 무마하기 위해 사측이 벌이는, 김태수 라는 개인을 무능력한 사람에서, 비리 사원으로까지 몰고가며 가족들을 회유하고 협박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 한 사람의 '을'이 그 죽음의 과정에서 조차 제대로 된 대접을 받는게 얼마나 버거운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 드라마는 주인공을 노무사로 삼고 있듯이, '을'이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 을이 을로써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위치의 사람들이 얼마나 제 몫을 해내는가를 주목한다. 
극중 주인공 노무사 이재구는 처음 김태수 씨의 사건이 났을 때, 그의 명함에서 대놓고 '목숨값을 받아드린다'는 슬로건이 무색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아내 송연희에게 사측과 협상을 권유한다. 그는 그가 그간 해온 노무사 일의 과정에서 한 개인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가를 몸소 체험한 결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산재 보상 위원회 위원장은 의료 기기 업체인 GB메디컬 측의 회유에 손쉽게 넘어가 공적인 그의 일을 쉽게 사적 이익 아래 희생한다. 공적인 위치에 있는 개인이 자신의 일을 사적 이익에 희생할 때 어떤 결과가 벌어지는지, 2부작 <인생 추적자 이재구>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이재구가 노무사로서 자신의 본령에 섰을 때 결국 김태수 씨의 인생을 보상받을 수 있듯이, 공적인 그들이 사리사욕을 넘어 제대로 할 일만 한다면, '갑'의 횡포를 얼마든지 막을 수도 있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덧붙인다. 결국 노동부의 산재 조정 위원회에서 증거도 없이 GB메디컬을 몰아가야 하는 이재구 노무사의 편에, 김태수 씨의 입사 동기였던 이성식(이기영 분) 과장이 선 것을 통해, 누가,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하는가를 말이다. 김태수 씨는 자신이 영업 사원으로 몰리는 상황에서도 동료였던 이성식 과장을 보호하기 위해 박이사의 비리를 눈감는다. 하지만 이성식 과장은 정작 김태수 씨의 사고와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자기 안위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한다. 하지만 이재구는 한 회사원의 산재 보상은 결국 동료 직원의 도움이 없이는 받기 힘들다며 이과장을 설득한다. 그리고 결국 이 과장은 보상 위원회에 선다. 이는 그저 드라마틱한 결말을 위한 극적 장치일 뿐이 아니다. '을'의 정당한 댓가, 정당한 대우는 결국 또 다른 '을'과의 연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라마가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3D 특집 드라마로 특이하게도(?) 우리 사회 '을'의 억울한 위치와, 그들을 돕기 위한 공공직 노무사의 직업 윤리를 돌아본 드라마 <인생 추적자 이재구>, 박용우, 안석환 등의 노무 법인 공수래의 활약은 어쩐지 단 한 번의 특집 드라마로만 보기엔 좀 아깝단 생각이 든다. 공익적 차원에서, 시청률 차치하고, 시리즈로, 아니 그게 어렵다면 시즌제로라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영국의 <셜록>처럼 1년에 한 번이라도 말이다. 우리 사회 억울한 을들의 사정이야, 차고 넘치니 이야기가 고갈될 이유는 없을 테니까.


by meditator 2015. 2. 23. 06:13

또 하나의 가족 관계가 tv 속으로 들어왔다. 

육아 예능으로 골몰하던 tv 속 아이들이 자랐다. 이젠 성장한 딸과 아버지들이다. 
sbs는 설 특집으로 <아빠를 부탁해>를 선보였다. 어릴 때부터 국민 아빠와 딸로 낯설지 않은 이경규와 그의 딸 예림이를 비롯하여, 배우 강석우와 그의 딸 강다은, 조민기와 그의 딸 조윤경, 조재현과 그의 딸 조혜정, 그들의 부녀 관계가 예능의 이름을 빌어 등장했다. 
출연자의 면면을 보면, 이경규를 제외하면 모두 다 배우로 정평이 난 사람들로 예능엔 첫 선이다. 그렇게 따지면, 최근에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배우 예능의 연장 선상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tv 로 들어온 부녀 관계
아빠와 딸', 참 어려운 관계다. 
일찌기 우리 조상들도 그렇게 표현하셨다. 불면 날아갈세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라고. 아들을 두고는 그렇지 않았다
한 가족 안에 존재하는 이성, 그들은 철이 들기 전에는 부대끼며 한없이 가까울 수 있는 관
계이지만,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자신의 성이 요구하는 세계로 집중하면서, 아빠는 아빠대로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바빠지면서 가장 멀어지는 관계가 되기 쉬우니, 한때 국민 아빠와 딸이었던 이경규와 딸 예림이의 관계가 딱 그렇다. 조민기와 그의 딸 조윤경도 비슷하다. 
서양의 경우, 아버지를 둘러싸고 어머니와 딸 사이에 애증의 삼각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런 서양의 가족 관계를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우리 나라의 경우도 최근엔 강석우씨네처럼 아내조차 질투하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조재현처럼 일관되게 자신의 일로 바쁜 아빠와 그런 아빠 해바라기에 지친 딸들도 우리 사회엔 존재한다. 이렇게 <아빠를 부탁해>를 보면 어느 집에서나 아, 저건 우리집!이라고 감탄할만한 경우의 부녀 관계가 연예인의 경우를 빌어 등장한다. 

첫 회, 관찰 카메라를 네 집에 잔뜩 설치해놓고 이경규, 조민기, 조재현, 강석우의 부녀 관계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예능인답게 이경규가 첫 스타트를 끊는다. 하지만 첫 스타트가 무색하게, 10시간 집 안에 감금된 이경규는 몸서리를 친다. 도무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이경규와 그의 딸 예림이는 말 한 마디를 제대로 하기는 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오로지 그 집에 사는 개들만 활개를 친다. 강석우 말대로 개집에 사람이 얹혀사는 모양새다. 
다음 조민기네 집은 조금 낫다. 모처럼 유학에서 돌아온 딸, 그 딸을 위해 아버지는 대낮부터 고기를 굽는 성찬을 마련한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설겆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가 잔뜩 부추켜야 아버지 안마를 해주는 딸처럼, 어느새 웃자란 딸에게 아빠는 조금 어색한 사이다. 
첫 스타트가 무색하게 강석우와 조민기의 비웃음을 샀던 이경규를 살려준 건 조재현이었다. 붐을 일으킨 드라마 <펀치>에서 열연하고 있는 조재현, 드라마 촬영 중이었던 그에게, 딸은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방문을 열어 놔도, 아빠 앞에서 피곤하다며 몸을 푼다며 운동을 한답시고 알짱거려 봐도, 아빠는 한번 쳐다보는 것도 어렵다. 심지어 여태 딸내미가 밥을 먹는지, 뭘 먹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자신의 일 등 자기 자신에게만 골몰하고, 그런 자신에게 사투리를 가르쳐 주며 맞추어 주는 아내만이 편하다. 
그렇게 관심없는 아빠에게 무안해져 버린 딸로 인해 눈물이 핑그레 돈 조재현을 무색하게 만든 아빠는 딸 바보 강석우였다. 자고 일어나서는 웬만하면 눕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틀리지 않게 외국어 공부에서 음악까지 아침부터 분주한 그는, 딸의 기상에서 부터 아침식사까지 일상인 양 자연스럽게 준비해 준다. 또 딸과 나란히 앉아 음식을 먹고, 딸의 머리를 넘겨주며, 딸과 함께 외국의 입양아에게 편지를 쓴다. 딸을 곧잘 시키지만, 딸이 도와줄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마지막은 추운 날 운동가는 딸의 마중까지 완벽한 아빠다. 

기사 관련 사진
▲ 아빠를 부탁해
ⓒ sbs



첫 회가 끝난 후 각 게시판을 도배한 이 프로그램, 아니,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부녀들에 대한 의견처럼, <아빠를 부탁해>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각 부녀 관계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렸으며, 심지어 누군가의 딸의 옷차림에서 부터, 누구는 불쌍하다. 좋겠다에서 부터, 어떤 아빠의 에티튜드까지 호사가들의 말은 끊임이 없었다. 
그렇게 처음 예능으로 들어온 아버지와 딸들의 모습은 애초에, 연극 영화과를 다니는 딸들의 연예계 입문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과 달리, 각 집안의 실제 부녀 관계에 빗대어 tv 속 부녀 관계에 골몰한 현상이었다. 

모범답안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길
드디어 화제에 얹힌 2회, 관찰 카메라를 넘어 아빠와 딸은 함께 무언가를 해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관찰에 머물던 부녀 관계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무엇을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이경규는 모처럼 딸과 함께 떡국을 먹고 개들을 데리고 동물 병원을 간다. 조재현 역시 딸과 함께 할리갈리 게임을 하고, 딸과 대중 교통을 이용하여 대학로를 향한다. 조민기는 홀로 사는 딸에게 청소법을 가르치고, 강석우는 딸을 위해 침대에 케노피를 설치한다. 

막상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하니, 첫 회에 드러난 부녀 관계의 설정이 더 강화되기도 하고, 변화되기도 시작한다. 
여전히 이경규는 딸보다도 자신을 찍는 vj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편하다. 딸이 술을 마신다는 사실에 정말 놀라며, 여전히 그에게 딸은 화장도, 술도 하지 않는 천연지대여야 한다. 그러니, 딸에게 할 말은 화장하지 마라, 살쪘다는 잔소리 뿐이다. 그런 그가 딸과 소통할 수 있는 건 함께 기르는 개들을 통해서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개들조차 딸에게 더 친근한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 가정에 무심한 아빠인가가 다시 단적으로 드러난다. 애지중지하던 개를 떠올리며 흘리는 딸의 눈물 앞에 무심한 아빠 이경규는 어쩔 줄 모른다. 
딸과 함께 버스를 타고, 대학로 거리를 거닐다 스티커 사진까지 찍은 아빠 조재현은 딸이 하자고 하는 것을 할 때마다 반문한다. 이게 정말 좋냐고. 자신의 세계에만 충실하던 아빠 조재현에게 딸의 세계는 낯설다. 

첫 번째 방송에서 부터 일관되게 주장하는 이경규나, 두번 째 방송을 시작하며 세상 대부분의 아빠들은 자신과 같다며 큰 소리를 치는 조재현의 마음이 딸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두 사람 다 딸이 누군가와 결혼을 할 거라는 걸 상상할 수 없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에게 딸은 아주 깊은 곳에 자리잡은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 보물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걸 그들은 정작 모른다. 방송을 보면 이경규냐 조재현이 딸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 사랑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드러난다. 즉, 그들에게 사랑은 감정이지, 관계가 아니다. 딸뿐만 아니라, 아내와도 눈을 점점 더 마주치지 못한다는 이경규를 보면 전형적인 우리네 아버지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딸들은 현재를 산다. 아빠와 할리갈리 게임을 하고, 스티커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 하는 조재현의 딸을 보면, 딸의 바램이 그지 큰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단 한번 개 산책을 시키면서 관계의 희망을 가지는 예림이도 다르지 않다. 그러고 보면, 이경규나, 조재현, 참 바쁜 아빠들이다. 자신의 세계로도 차고 넘치는 아빠들이기도 하다. 그런 아빠들에게 딸과 함께 살아갈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가장 우리네 일반 아빠들의 모습이며, 그래서 이경규나 조재현의 모습이 친근하고 걱정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노력하는 그리고 딸과의 관계가 완벽해 보이는 조민기나 강석우네 모습도 두번 째 가니 조금은 달라보인다. 모처럼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두 아빠는 모두 아빠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한다. 
조민기는 딸에게 청소법을 가르치고자 하고, 강석우는 딸을 위해 케노피를 설치한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를 가르친다고 하더니 잔소리가 범벅이다. 깐깐해 보이는 아버지 조민기의 방식은 웬만한 사람이 보기에도 참 어렵다. 그런데도 딸은 꾸역꾸역 아빠의 잔소리를 참아가며 청소를 배운다. 
강석우도 만만치 않다. 딸을 위해 케노피를 해준다더니, 그 모든 과정에 함께 해야 한다. 아빠와 함께 재료를 고르는 일에서 부터, 케노피를 만드는 과정 모든 것에. 아빠 말대로 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빠는 어떻게 저걸 했을까 싶게, 딸의 조수 노릇은 만만치 않다. 
케노피를 만드는 과정에서 딸의 의견을 무시하고 굳이 번거롭게 일을 하는 강석우의 모습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조민기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사랑에 자부하는 또 다른 기성세대를 발견한다. 강석우나 조민기는 자신들의 사랑이 넘친다고 자랑하지만,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눈엔 그런 극성스런(?) 어른을 참아주는 착한 딸들이 보인다. 역시나 여기도 관계다. 아빠는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푼다고 하지만, 그런 사랑을 견뎌주는 딸들이 한편에서는 있는 것, 이 역시 만만찮은 관계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아빠를 부탁해>의 정규 편성의 가능성이 보인다. 첫 회 딱 한번만 봐도 순위가 딱 매겨지는 네 아빠들의 모습이, 단 2회만에 조금씩 각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물론 전혀 소통이 되지 않거나, 소통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빠의 일방 통행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모범 답안이 분명해 보이던 것이, 다시 보니,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가 헷갈려 가면서, 각 가족만의 답을 찾아가지 시작하는 과정, 거기에 <아빠를 부탁해> 존재 이유가 생긴다. 누가 좋고, 누가 나쁘고가 아니라, 이경규는 이경규답게, 조재현은 조재현답게, 조민기는 조민기네에 어울리고, 자부심에 넘치는 강석우도 자신의 부녀 관계를 새롭게 들여다 보는,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가족들도 자신들의 모습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아빠를 부탁해>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5. 2. 22. 11:11

2014년 3월 장대한 규모로 찾아왔던 요리를 통한 인류학이 설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찾아들었다. <빵과 서커스>,<낙원의 향기 스파이스>, <생명의 선물 고기>에 이은 4에서 8편 <요리인류>, <불의 맛>, <모험의 맛 커리>, <영혼의 맛, 빵>, <요리한다 고로 인간이다>, <마지막 한 접시>가 그것이다. 



일찌기 <누들 로드>를 통해 요리 다큐의 신천지를 개척했던 이욱정 pd는 보다 본격적으로 요리에 천착하기 위해 스스로 최고의 요리 학교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루에서 셰프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그런 요리쟁이로서의 진가를 살려 250일간 20여국을 돌며 세계 각국의 요리 풍습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짚어본다. 또한, 일찌기 <누들 로드>을 통해 방송가의 플리처 상인 피바디 상을 2010년 수상한 그답게, '장문의 지식을 읊어주는' 다큐를 넘어, '재미와 아름다움으로 압도하는 진일보한' 다큐를 선보인다. 

2014년에 선보인 세 편의 <요리 인류>를 통해, 인류사에 등장한 빵과 스파이스, 고기의 전사를 역사적으로 조명하고자 했던 이욱정 피디는, 이제 2015년 선보인 다섯 편의 다큐를 통해, 그 역사의 행간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간다. 


총론에서 각론으로 
4편에서 6편에 이른 <불의 맛>, <모험의 맛 커리>, <영혼의 맛 빵>은 지난 해 선보인 <빵과 서커스>, <낙원의 향기 스파이스>, <생명의 선물 고기>에 이은 속편 격이자, 총론에 이은 각론이라 해도 무방하다. 
<불의 맛>을 통해 여러 고기 요리 중 불을 통해.즉 직화구이로 시작된 고기 요리의 역사를 헤집어 본다. 다른 동물들이 불을 보고 도망하는 것과 달리,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이용하기 시작함으로써 졸지에 생태계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로 고속 승진하게 된 인류, 그들이 가장 쉽게 불을 통해 요리를 하기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고기였다. 고기는 불을 통해 요리를 하면 보다 소화가 쉬워질 뿐만 아니라, 맛도 전혀 다른 경지를 이룬다. 이렇게 인간이 가장 먼저 불을 통해 요리를 시작한 방식을 <불의 맛>을 통해 그려가며, 그 구체적 요리 방법으로 '바베큐'의 역사를 짚어본다. 

스파이스 라는 요리계의 혁명을 짚어봤던 <낙원의 향기 스파이스>는 이제 그 스파이스들의조합으로 등장한 '커리'를 규명한다. '커리'이지만 '커리'가 없는 인도에서 시작된 마놀라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이제는 3분 요리의 대명사로 등장한 커리 하지만, 그 세계는 인도 전역의 각 가정에서 요리되는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마놀라라고 설명될 만큼, 마치 우리나라 각 가정의 장맛처럼 오묘한 각 스파이스의 배합에 따라 전혀 다른 풍미를 선보이는 맛의 신세계 커리를 그려낸다. 또한 인도로 부터 시작하여, 중동, 북아프리카, 포르투칼, 중세 유럽, 그리고 일본까지 이어지는 지리상의 확장이자, 발전, 변형인 커리의 역사도 놓치지 않는다. 



<빵과 서커스>를 통해 서구에서 밀이 여러 사람들의 주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전사를 세심하게 살펴보았던 <요리인류>는 이제 그저 먹거리로서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교감의 도구로서, 빵이 철학적, 인류학적 의미를 짚어본다. 그것은 단지 빵에 담긴 속뜻만이 아니다. 에디오피아의 80cm빵에서부터, 프랑스 전통 빵의 커다란 크기, 모로코의 동네 화덕에서 구어진 빵 등을 통해, 공동의 요리 과정을 통해서 모두가 공유할 수 밖에 없었던 빵의 제작 과정 또한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공동의 식사가 된 빵이, 예수의 살로 상징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인과 관계를 개연성있게 그려낸다.

이렇게 각론으로 들어간 빵, 고기, 스파이스를 그려내면서, <요리 인류>는 그렇다면 그렇게 요리를 발전시킨 과정과 요리하는 인간에 대해 정의하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7편<요리한다, 고로 인간이다>와 8편 <마지막 한 접시>이다. 


요리하니 고로 인간이다 
<요리 인류>가 본 인류의 요리 과정은 한 마디로 변화와 발전, 그리고 융합으로 정의되는, 창조;의 과정이다. 그것을 위해, 일본의 정서를 살려 서양 요리계에서 인정을 받은 일본 요리사를 시작으로, 과학으로 요리를 접근해 요리의 신세계를 개척하는 일군의 요리사들까지 새로운 요리의 영역을 끊임없이 개척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지만, 이렇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오늘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짚는다. 일찌기, 에디오피아 특산물로 글루텐이 없어서 빵으로 만들 수 없는 곡식을 발효시켜 빵으로 만들어 낸 에디오피아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류의 역사 자체가 새로운 요리의 발명이며, 그것은 언제나 발전과 융합이라는 과정을 통해서라고 정의내린다. 

그렇다면 이렇게 요리를 통해 인간됨을 증명한 인류사에서 <요리 인류>가 기억하고자 하는 음식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제는 미국 음식의 대명사가 된 '바베큐'를 통해 다큐가 짚어보고자 하는 것은, 수백도의 열을 견디며 불을 다루었던 미국 흑인 노예들의 숨겨진 역사이며, 바다 건너 일본으로 들어와 스폰지 케익이 카스테라가 되는 과정에서, 죽은 딸의 자식들조차 한껏 거둘 수 있어 행복한 한 가장의 행복이다. 또한 바나나 나무처럼 보이지만 바나나가 열리지 않아 서구의 장식재로나 쓰이는 가짜 바나나 나무 줄기와 뿌리를 짓이겨 며칠의 발효를 거쳐, 빵으로 만들어 내는 기근에 시달린 에디오피아의 아내들의 눈물이 어린 빵이 그것이다. 
8편에서 몸소 바베큐 열기를 체험을 마다하지 않은 이욱정 pd는 말한다. 세계 각국의 진기하고 화려한 요리들은 많지만 가장 요리다운 요리는 맛있고 아름다운 요리가 아니라, 각국의 재래시장이나 서민들의 밥상에서 만날 수 있는 그들의 삶을 반영한 가장 평번한 요리들이라고. 

인류를 인류답게 만든 빵과 고기와 스파이스, 그 총론이 이제, 영혼의 빵과 새로운 조합의 커리와 불맛의 고기로 진화했다. 펄떡거리던 싱싱한 재료들이 장인들의 굳은 손을 통해 선연한 빛깔의 먹음직스런 요리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에디오피아의 오랜 발효를 거친 구멍이 숭숭 뚫린 빵조차 신기한 먹거리로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빵을 찍어 먹는 순록의 피가 퐁듀의 녹은 치즈처럼 느껴진다. 사슴의 죽 늘어진 혀가 어쩐지 새로운 요리로 기대된다. 낯선 문화가 이질적이고 생경잔 질감이 아니라, 그저 사람 사는 세상의 당연한 먹거리로 한번쯤 먹어보고 싶은 그것으로 변모된다. 그리고 가짜 바나나 나무 밑둥을 한없이 긁어대는 에디오피아의 아내들이, 통돼지를 요리하기 위해 불에 쩔은 남부인들의 검은 얼굴이 한없이 정겹다. 다큐가 비추듯 일류 요리사의 손과, 그들의 손이 다르지 않고, 화려한 그릇에 진수성찬이, 질박한 그릇에 담긴 누추한 음식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리고, 오래되고, 새로운 것의 낯섬이 사라진다. 그저, 오래오래 이 눈을 현혹하고, 침샘을 자극하는 요리 성찬에 눈을 빼앗기고 싶을 만큼. 벌써 2016년의 새로운 <요리 인류>가 기대된다. 

by meditator 2015. 2. 21. 11:59

한번이라도 김제동을 대학 축제 등 실제 그가 mc를 보는 현장에서 본 사람이라면 그가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장'에서 얼마나 펄떡이며 뛰노는 다이내믹한 mc인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tv에서 만난 김제동은 강호동이나 이경규 등 선배 mc들 옆에서 주눅들어, 명언이나 날리거나, 스스로 하는 일이 없다 자책하는 캐릭터일 뿐이다. 그나마 안타깝게도 김제동이 제일 웃긴 경우는 그 자신이 말하듯 울궈먹고 또 울궈 먹어 이제는 그때문에 결혼조차 미뭐야 하지 않나 싶은 노총각 캐릭터로 웃기는 <무한도전>의 경우이다. 더구나 이른바 '정치색'을 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섭외 1순위에서 기피 연예인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슬슬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던 김제동이 모처럼 예의 역동적인 그의 기량을 조금이나마 펼쳐보인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2월 20일 파일럿으로 찾아 온 <김제동의 톡투유-걱정말아요, 그대(이하 톡투유)>이다. 


jtbc 에서 여러 신선한 예능을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그간 방송가에 기피 mc였던 김제동이 단독으로 프로그램을 맡았다. 다시 돌아온 mc김제동, 그게 jtbc인 이유가 있었다. 몇 년 전, 한참 잘 나가던 김제동에게 손석희 사장이 제의를 했단다. <백분 토론>에 나와 달라고, 그런 거 할 줄 모른다고 하는 김제동에게 <백분토론> 400회 특집에 나와서 소감 정도만 말해주면 된다고 간단하게 청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 전날 도착한 방송 원고, 거기에 '이명박 정권에 대한 평가'라고 씌여 있었다고 한다. 여타 제반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그렇게 <백분토론>에까지 등장한 김제동은 특정 정치색이 짙은 연예인이란 이유로 방송가의 기피 인물이 되어, <힐링 캠프>의 보조 mc로 연명하게 되었다. 그러니, 김제동을 그렇게 만든 손석희씨 입장에서는 빚을 갚아야 할 처지가 된 것이고, 이제 jtbc 사장이 된 손석희씨는 김제동의 톡투유를 제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빚쟁이의 입장으로 김제동은 jtbc의 파일럿 예능으로 돌아왔다. 

<김제동의 톡투유>와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은 꽤 있었던 것 같다. 여전히 각 방송사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유명한 인사들에서 굴곡있는 삶을 잘 극복해온 사람들이 강사로 등장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청중의 고민을 들어주는 형식의 프로그램들 말이다. 김제동이 보조 mc로 출연하고 있는 <힐링 캠프>에서도 일찌기 인기 철학자 강신주를 비롯하여, 연예 기획사 대표 양현석 등을 데리고 청춘들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해 왔었다. 
첫 선을 보인 <김제동의 톡투유> 역시 인기 만화가 강풀과 인기 강사 최진기가 역시나 한 자리를 차지 하고 등장했다. 



하지만 김제동은 <톡투유>는 여타 멘토링 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심지어없프로그램의 시작에서 부터, 중간중간, 그리고 말미에 까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출연한 사람들, 그리고 고민을 토로한 사람들, 그 누구도 딱히 고민이 해소된 것은 없을 것이라고, 없다고, 없지 않냐고. 그런 김제동의 반문에 방청객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그런데 한 시간여의 방송 시간이 지나고, 스케치북을 올린 사람들의 반응은 즐겁게 함께 웃다가 간다고, 웃다가 울다가 간다고 호평 일색이었다. 그와 함께 한 시간 속에 어떤 묘약이 있길래.

김제동은 예를 들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자신이 버리 쓰레기로 인해 반장 아줌마한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당구나 치러 가자며 공감이 엇나가버린 강풀과 달리, 반장 아줌마네 집 앞에 똥이라도 싸주겠다며 공감을 해주는 코디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억울함이 풀려 버린 사례를 통해, 그저 이 프로그램이 방청객들의 고민을 함께 들어주는 시간임을 강조한다. 그저 그렇구나 하고 손뼉을 마주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프로그램의 자리를 좁힌다. 

하지만, 그저 함께 공감해 주는 <톡투유>의 시간은 도발적이었다. 첫 시간의 주제를 '연애'로 삼고서는 노래를 하러 나온 요조가 반문한다. '연애' 꼭 해야 하는 것이냐고. 왜 연애를 못하면 덜떨어진 사람 취급을 하냐고. 연애도 선택이라고. 노총각으로 <무한도전>에서 교주노릇을 하던 김제동도 솔직하게 말한다. 외롭지만, 홀로 있는 것이 자유롭다고. 하지만, 프로그램은 그저 그렇게 연애는 선택이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 과학 강의로 정평이 높은 최진기가 연애하기 힘든 시대의 실체를 밝힌다. 일본의 예를 들어, 실제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결혼하는 남성들이, 그녀들보다 열 살 이상 많은 경우가 빈번하며, 그런 이유가 바로 경제력에 기인함을 짚는다. 그리고 그런 일본의 경우가 곧 한국의 실제가 될 것임을 예언한다. 즉, 청년들이 연애를 못하는 것은 그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연애를 할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주지 않는 사회적 조건에 있다며 연애의 사회학을 짚는다. 나아가, 프랑스가 출산 장려책을 위해 미혼모의 아이들을 법의 테두리 안에 포용했듯이, 기존의 고정 관념을 뒤짚는, 예를 들면 연예 비용을 국가가 대는 것과 같은, 결국은 '복지' 정책이 젊은이들의 연애조차 풍성하게 만들 것이란 결론에 이른다. 
물론 이런 도발적인 분석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강풀이 덧붙인다. 연애라는 것이 그저 사랑의 감정이 아니다. 질투 등 수많은 감정의 교류로, 살아가면서 이렇게 풍부한 감정의 파고를 한번쯤은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고. 
이렇게 다양한 입장과 해석이 공존하면서, 이 시대의 연애 담론은 풍성해져 간다. 무엇보다, 나의 문제인 연애가, 우리의, 이 시대의 문제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내가, 우리가 되어 가면서, 그저 방청객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저절로 공감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명절이면 자꾸 비교를 하는 손님들, 그리고 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에 서로서로, 그건 너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는 다 지 자식만 생각하지, 남의 자식은 생각 안한다는 솔직한 고백에서 부터, 그저 '그러게요'라며 넘어가면 될 것이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등을  토닥여 주는 식이다. 우리 딸 이쁘다는 말에, 우리 엄마라서 좋다는 말에, 함께 울컥해지기까지, 그렇게, 조금씩 프로그램은 공감의 온도를 높여간다. 

김제동의 장기는 바로 이 지점이다. 별 말을 하지 않는데, 그저 살아오던 이야기를 나누는데, 실제 아무 것도 해결 된 것이 없는데, 한 짐을 내려놓고 가는 가뿐한 느낌이 들게 하는, 어쩐지 뭉클해지는 바로 그것말이다.  일찌기 <야심만만>에서 김제동을 인기에 올려놓은 것은 그가 풀어낸 명언이 아니라, 공감의 지점을 잘 잡은 포인트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소속사에 가장 많은 돈을 벌게 해주었다는 방송에 한번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연일 매진 사례를 행진하고 있는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의 이유 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진솔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짚어줄 수 있는, 그리고 그 자신이 자신만만하게 자랑하는, 대본 한 장 없이도 몇 시간 사람들을 울리고 웃길 수 있는 mc 김제동의 능력이기도 하다. 

굳이 최근 트렌드가 되고 있는 배우들을 예능으로 불러오지 않아도, 물설고 낯설은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스튜디오에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여가 즐거울 수 있는 프로그램, 역시 jtbc의 또 한번의 탁월한 선택이다. 부디 <김제동의 톡투유>가 정규 편성이 되어 매주 함께 울고 웃으며 마음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질 수 있기를. 
by meditator 2015. 2. 21. 10:48

최근 <썰전>만이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강용석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람이 과연 한때 여당 저격수에, 아나운서들을 대상으로 성적 폄하 발언을 했다가 재판까지 갔던 그 사람이 맞나 싶냐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썰전>의 예능 심판자 코너를 보면 평론가 허지웅나 교수 이윤석에 못지 않게 가장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사람이 바로 강용석이요, <수요 시식회>를 보면 음식점의 역사에서 먹거리의 역사까지 그 어떤 분야든지 모르는 것이 없는 박학다식의 대가다운 면모를 보이는 것이 또한 강용석이니, 이 사람 참 볼수록 매력저이단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런 최근 tv를 통해 비춰지는 강용석과, 과거 정치인 강용석은, 마치 '페이스 오프'처럼 다른 사람이었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용석 스스로 2월 19일 <썰전>을 통해 증명한다.


2월 19일 <썰전>은 최근 총리 인준 후보 과정에서 드러난, 이완구 총리의 충청권 맹주론에 대해 짚어본다. 이완구 총리의 총리 후본 인선 과정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충청도 총리론이라는 지역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에 대해 또 한 사람의 패널 이철희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이 총리가 될 수 있을까? 싶게 부동산에서 부터 시작하여, 병역 등 털면 털수록 수많은 의혹이 등장하는 이완구 후부자에 대해 느닷없이 충청도라는 지역 감정을 들쑤셔, 충청 민심을 들쑤시려는 시도에 대해 이철희 소장은 이런 구 시대의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획책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며 분노한다. 
그런 이철희 소장에 대해 강용석이 들고 나온 논리는, 애초에 지역 감정은 문재인 새정치 연합 대표가 시작한 거 아니냐는 식이다. 문재인 대표가 전라도 총리론을 들고 나옴으로써, 총리라는 직위에 지역 감정 프레임을 들쒸웠고, 그에 따라 당연히 이 후보자에게 충청 총리론이 등장할 수 밖에 없다는 투이다. 
사안은 이완구 총리가 총리로써의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 라는 객관적 사실을 놓고 검증하는 것인데, 느닷없이 그 사람이 어느 지역 사람인가 라는 엉뚱한 지역 감정 프레임이 등장하면서, 애초에 객관적 시각을 가지고 검증할 대상의 촛점이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걸 이철희 소장은 문제를 삼고 있는데, 거기에, 강용석은 다시 한번, 그 문제가 된 프레임을 들고 나오면서, 그것이 야당 탓이라는 식으로 물고 늘어진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애초 본질이 된 문제를 놓치고, 그렇지, 문재인이 그랬지, 이완구는 충청도지 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다음 사안, 박원순 후보자의 28억이라는 비싼 서울 시장 공관을 둘러싼 문제가 등장했다. 기존에 그에 비해 열 배 정도나 싼 아파트에서 지내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비싼 전세금의 시장 공관을 마련했다는 것에 대해 논의를 한다.
강용석의 논리는 '서민 코스프레'를 하던 박원순 시장인데, 이제 와서 비싼 공관으로 이사한 이유를 알 수 없다며 박원순 시장의 서민 행보는 필요할 때 하는 이현령 비현령이냐는 식이다. 그에 대해 이철희 소장은 의전 상의 이유로 필요하니까 구입을 한 것이고, 서울시가 우리나라 최고의 도시인데, 그 정도를 하는 것으로 무슨 큰 문제가 될 것이며, 총리 공관은 300억이 넘는 돈을 짓는데 그에 비하면 문제가 될 것도 없는데 물고 늘어지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그 공관을 박원순 시장 개인이 가지는 것도 아니고, 공관으로 유지하다 후임자에게 물려줄 것인데, 그게 무슨 문제냐고 하는데 대해, 강용석은 그 동안 살지 않냐고, 3년간 살지 않냐며 반문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이철희 소장이 박원순 시장 개인 사저가 아니라 의전상 필요에 따른 서울 시장 공관이며, 박원순 시장에 비교할 것이 안되게 여당 측 총리나 부산 시장의 공관이 있는데 유독 박원순 시장만 문제 삼냐고 하면, 강용석은 그래도 비싼데 살지 않냐며, 서민이란 말은 코스프레였냐며 토를 단다. 

세상에 제일 싸움이 안되는 게 이쪽은 논리로 대응하는데, 저쪽에서 떼를 쓸때이다. <썰전>을 보노라면 이철희 소장이 객관적 근거에 따라 이성적 판단을 촉구하는 사안에 대해, 강용석 변호사는, 이번 사례처럼, 그래도 충청도 아니냐던가, 그래도 비싼 집에서 살지 않느냐는 식으로 막무가내로 대응할 때가 있다. 언제나 수많은 자료를 제시하고, 그가 아는 객관적 사실들을 주워 삼기던 사람이, 느닷없이 떼 쓰는 아이마냥 물로 늘어지는 식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때가 이완구 후부자처럼 여당의 첨예한 사안이라던가, 박원순 서울 시장처럼 차기 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일 때가 그런 것이다. 항상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줄줄 주워삼기던 강용석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자신이 저격할 대상이 등장하면, 논리고, 근거고 다 내던지고, 예전에 하던 식으로, 떼를 쓴다. 

강용석이 하는 떼의 문제는 그가 혼자 어리광을 부리는게 아니라는데 있다. 여당에서 시작하여, 종편에서 하루 종일 읊어대는 이른바 '프레임'의 정치의 연장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총리 부적격 여러 사안이 등장해도, 그가 그래도 충청도 사람인데 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고 그걸 줄창 강용석처럼 읊어대면, 사람들의 시선은 부적격한 사실 검증에서, 이완구 총리가 어느 편이냐로 옮겨간다. 옳다 그르다라는 이성적 판단보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란 편가르기가 인간의 감정을 더 움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박원순 시장도 마찬가지다. 서민적이라는 이미지로 시장 선거에 당선된 그에게, 귀족 공관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비판을 하기 시작하면, 그 공관의 필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근거가 핑계처럼 들리고,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아냥이 그럴듯해 보이기 시작한다. 총리 후보자가 300억짜리 공관을 짓거나 말거나 서민을 내세운 박원순 시장은 단 돈 10원도 쓰면 아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철희 소장 말대로, 그냥 박원순이 서울 시장 하는게 꼴보기 싫어 지는 것이다. 

강준만의 <감정 독재>의 50여가지 감정 이론을 보면, 결국 결론은 하나다. 인간은 이성적이기보다는, 이성조차도 감정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감정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과 편의에 따라 쉽게 좌지우지되는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잘 이용하는 것이, 바로 '프레임'의 정치다. 제 아무리 객관적인 근거와 이유를 가져도, '지역 감정'이라는 프레임, '서민 코스프레'라는 프레임을 한번 뒤집어 씌우는 순간, 여타의 모든 이성적인 판단 근거는 사라지고, 그거냐 아니냐는 이분법적 영역에 갇히데 되는 것이다. 그리고 <썰전>에서 강용석이 하는 가장 위험한 행동은 내둥 이성적인체 하다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필요할 때면 이성적인 근거는 다 내 팽개치고, 예의 '프레임'의 정치를 끄집어 내서 우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도 충청도 아니냐고, 그래도 비싼데 사는거 아니냐구!

<썰전>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제반 정치, 사회적 사안에 대해 건강한 보수와 진보의 시각들을 가지고 건전한 논평의 장을 벌이자고 하는 것인데, 정치적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 매번 강용석이 이성이고, 건강한 논평이고 나발이고, 예의 자신의 정치적 프레임만 들고 나온다면 어떻게 건강한 논평의 장이 되겠는가 말이다. 그 예전의 여당 저격수랑, 비싼데 산다며 중중거리는 강용석이랑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제 아무리 이철희 소장이 이성적 근거로 대도, 비싼데 사는데 라는 강용석의 한 마디 말이면 전셋값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라서 속상한 사람들은 300억 총리 공관은 잊은 채, 이완구 후보자의 엄청난 부동산 비리도 잊은 채 박원순이 서민 코스프레 한다는 그 불쾌함을 기억한다. 애초에 부자인 놈들은 그렇다 치고, 우리 편인줄 알았던 너마저! 라는 서운함이 앞서는 것이다. 그렇게 기가 막히게, 강용석의 비논리적인 '프레임' 정치는 기가 막히게 사람들의 약한 부분을 파고 들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종편에서 하듯이 똑같은 논리로 앵무새처럼 '프레임' 정치를 할 거면, 굳이 건강한 진보와 보수의 썰전이란 타이틀이 왜 필요하겠는가? <썰전>이 건강한 논평의 장이 되려면, 강용석이란 패널을 좀 더 객관적 의견을 건강하게 제시할 수 있는 인물로 교체를 하던가, 강용석이 예의 '프레임'에 갇힌 우기기를 자제해야만 할 것이다. 종편의 앵무새 소리가 듣기 싫어, 그나마 좀 낫겠지 싶어 <썰전>을 틀었는데, 거기서 또 그 논리를 재방송으로 듣는 건 너무 불쾌하다. 제발 새해에는, 건강한 정치 평론을 듣고 싶다. 우기기와, 프레임의 틀을 벗어난.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이철희 소장이 객관적 중심을 지키려고 해도, 불리하면 입다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우기거나, '프레임'의 틀을 들고 나서는, 여전히 제 버릇 개못준 저격수 강용석이어서는 곤란하다. 이건 단지 강용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나마 단초를 마련해 가는 건전한 정치 평론의 싹을 밟아버리는 행동이다. 이래서는 건강한 담론의 장이 마련될 수 없다. 


by meditator 2015. 2. 20. 11:11

2월 17일 <pd수첩>은 2억명이 넘는 영화 관객을 기록하며(2014년 기준 2억 1506명)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영화 시장의 이면을 들여다 본다. 


그 시작은 최근 다시 멀티플렉스에 상영관을 확보하게 된 영화<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하 개훔방)>으로 시작한다. 
영화를 본 관객들에 의해 훈훈하고 따뜻한 하지만 현실의 비극을 결코 간과하지 않은 영화로 평가받은 영화<개훔방>은 하지만 그 입소문이 제대로 퍼지기도 전에 멀티 플렉스에서 사라졌다. 이에 영화<개훔방>을 아끼는 관객들은 자비를 털어 영화관을 빌려 이 영화의 단독 상영을 이어갔다. 


좋은 영화가 외면받는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미처 관객들의 평가를 받기도 전에 다수의 영화가 사라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에 대해 <pd수첩>은 현재 극도에 달하고 있는 영화 산업의 독과점에 촛점을 맞춘다. 2014년 한 해, <명량>, <변호인>, <국제시장> 등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총 11편에 이른다. 하지만, 영화 관계자들은 말한다. 단 한 편의 영화가 천만을 달성하는 동안 수 십편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택의 기회조차 잃은 채 멀티 플렉스 극장에서 사라져 간다고. cj, 롯데 등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멀티 플렉스 체인들은 자사가 배급하고 있는 영화들을 개봉 2주전부터 예매를 하기 시작하고, 가장 관객들이 많이 들 수 있는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며, 심지어 한 영화에 전체 상영 영화의 30% 이상의 상영관을 배정하는 기형적 몰아주기를 함으로써 흥행을 넘어 천만 관객을 이루어 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형적인 독과점 체제에서 대기업의 배급망을 타지 않은 영화는 감히 그 경쟁 대열에 끼기 조차도 힘들며, 설사 끼었다손 치더라도 <개훔방>이나, 유지태 주연의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이하 더 테너)>처럼 불리한 시간대에 배치됨으로써 조기 종영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 <개훔방>을 조조나 심야 시간대에 배치하는 것은 아예 보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대기업 배급이 아닌 영화들에게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나마 <개훔방>의 경우 제작사와 관객들이 힘을 합쳐 이 영화에 대한 여론을 불러 일으켜 다시 멀티 플렉스에 다수의 관을 확보하게 되었지만, <더 테너>의 경우는 멀티 플렉스가 아닌 독립영화관 단 한 곳에서만 상영하여 관객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고 한다. 실제 4년 여의 제작 기간, 10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더 테너>의 제작사 대표는 개봉 첫 날 불리한 상영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이 영화의 흥행을 포기했다고 밝힌다. 

제작, 배급, 상영까지 수직 계열화된 대기업의 영화 산업
이렇게 대기업들이 자사 배급의 영화를 독점적으로 심지어, 편법을 사용하면서까지 무리를 하면서 상영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pd수첩>은 현재 기획에서 부터 제작, 배급, 상영까지 온전히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한 대기업의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독과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기획, 제작, 생산의 전 시스템이 대기업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하나의 체계로 지난 10년간 영화 산업이 자리잡혀 왔고, 최근에 들어서는 영화 <광해>의 경우처럼 천만 관객을 만들기 위해 어거지로 세 달 동안 상영관을 유지하는 등 무리수까지 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실제 일찌감치 멀티 플렉스에서 상영관을 놓친 <개훔방>의 경우 당시 함께 상영되던 <오늘의 연애> 보다도 좌적 점유율이 높았지만, 결국 대기업의 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나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개훔방>의 경우만이 아니다. 최근 <쎄시봉>의 경우도 대중들의 반응은 미비하고 좌석 점유율은 낮지만, cj의 배급이란 이유만으로 cgv등에서 많게는 30% 이상의 상영관을 확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영화 산업에서 '갑' 중의 '갑'으로 등장한 대기업의 독과점에 대해 <pd수첩>은 영화 평론가 오상진씨의 입을 빌어, 공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1938년 미국의 '파라마운트 판결'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수직계열화된 헐리우드 스튜디오의 독과점이 문제가 되자, 영화 제작 및 극장 소유를 분리하도록 명령이 이루어 졌다고 한다. 그에 따라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은 극장을 매각했고, 1980년 규제가 완화된 이후에도, 미국 영화계에서는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pd수첩>은 우리도 이와같은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에 따른 영화 산업의 독점 현상을 규제할 법적인 조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런 대기업의 영화 산업 독과점은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 전횡의 일면이다. 재래 시장 주변에 대기업의 마트가 들어서서 재래 시장을 잠식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상인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가듯이, 대기업의 커피 체인점이나 베이커리가 거리에 하나 둘씩 들어차서 중소 상인들의 터전을 빼앗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pd수첩>에서 인터뷰한 시민들과 같다. 극장을 장악한 영화가 그저 인기가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극장에서 파는 팝콘이 터무니 없이 비싸도 모처럼 영화 한번 보는건데 하면서 무감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런 사람들이 재래 시장보다 편한 마트를 가고, 유명한 커피숍에서 시간을 때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이런 영화계의 독과점 현상이 그저 영화 산업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그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란 점까지 짚지 못한 점이다. 



하지만 영화 <개훔방>과 <더 테너>로 시작하여, 스크린 독점, 나아가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까지, 천만 영화의 화려함 뒤에 획일화되어가는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해 <pd수첩>은 체계적으로 잘 짚어나간다. 평론가 오상진이 '이젠 인터뷰하기도 지긋지긋하다. 지난 10년 동안 내내 그 문제를 지적해 왔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토로와 함께, 이 문제가 10년의 궤적을 지닌 심각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또한 '파라마운트 판결'을 통해 그 해법까지도 제시하고 있는 점 긍정적이다. 물론 <개훔방>의 재상영이라는 분명한 결과물이 이루어 진 이후에야 뒷북치듯 이 문제를 들여다 보는 것 같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요원해 보이는 그 해법을 위해서, 꾸준한 환기는 절실하다. 
by meditator 2015. 2. 18. 06:43

2월 16일부터 선보이는 <mbc다큐스페셜>은 일본 후지 tv와 공동으로 기획한 '어디서든 살아보기'이다. 그 첫 번째 편으로  우리나라 배우 정은표 가족이 일본 야마가타 현 긴잔 마을에서 일주일 동안 생활하는 모습을 담아냈다.

 

글로벌 자급 자족 프로젝트인 <어디서든 살아보기>는 이를 위해 출연자에게 제공되는 것은 야마가타 현 긴잔 마을까지의 교통비 뿐, 그 이후의 생활은 오로지 가장 정은표와 아내 김하얀, 세 아이 지웅, 하은, 지훤이에게 달려있다. 온 가족이 함께 일본으로 여행간다며 설레였던 가족은 부푼 마음도 잠시, 눈이 산더미처럼 쌓인 마을 한 집에 도차하자마자 온전히 일주일을 가족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에 망연자실한다. 네 살 배기 막내를 돌보아야 하는 엄마, 그리고 학교를 다녀야 하는 장남 지웅이와, 하은이를 제외하고, 결국 이 다섯 가족의 생계는 이제는 한류 스타로 일본인들에게 까지 알려진 정은표의 몫이다.

 

거리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잠시 한류 스타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정은표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제작진이 마련한 온갖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각종 주류 배달에서 부터, 온천장 청소에 화장실 청소까지, 밤 열시까지 하루를 온전히 노동으로 소모한 가장 정은표가 벌어온 작은 돈에, 엄마 김하얀을 비롯한 온 가족은 눈시울을 적신다. 다음 날 어제 벌어온 돈을 핑계로 일을 나가지 않은 아빠는 토끼 사냥을 나가보지만 허탕, 그 다음 날 역시나 가족과 함께 빙어 낚시를 나가봐도 겨우 낚시꾸들에게 구걸하다시피 얻은 세 마리에 몇 시간 동안 추위에 떨며 겨우 낚은 한 마리를 보탠 네 마리의 초라한 밥상으로 이 가족의 일본에서 먹고 살기는 참 만만치가 않다.

 

심지어 토끼 사냥을 나가서 허탕 친 아빠가 사들고 온 단무지로 한 끼 식사를 때우는 정은표의 가족을 보면서, 문득 이 프로그램이 '리얼리티 예능'인가?라고 반문하게 된다. 한 시간 남짓의 방영 시간 동안 다큐는 끊임없이 정은표의 각종 알바를 비롯하여, 아이들의 학교 생활, 가족의 밥상까지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고심한다. 하지만, 그것들을 보면서 문득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타국에서의 생존기인지, 아니면 다른 문화에서 살아보기인지? 반문하게 된다.

 


                    [MBC 다큐스페셜] 배우 정은표, 온천마을 화장실 청소하며 '생존기' 이미지-1

 

<꽃보다> 시리즈에 이은, <삼시세끼>가 인기를 끌면서 공중파 프로그램에서도 앞다투어 외국으로 나가거나, 오지에 떨구어 생존하게 되는 프로그램들이 만들어 졌다. <어디서든 살아보기> 역시 다큐의 외피를 썼지만, 프로그램의 내용은 공중파 어디선가 보여지던 혹한 리얼리티의 연장선에 놓여진 듯이 보인다. 정작 <꽃보다>시리즈와 <삼시 세끼>가 낯선 곳에서의 여유로운 쉼표에 방점이 찍힌 반면에, 그것을 본딴 다수의 프로그램들은 낯선 곳에서의 미션으로 꾸역꾸역 프로그램을 채우느라 버겁다. 그러다 보니, 여유도 아니고, 그저 낯선 곳에서 힘든 삶의 연속일 뿐이다.

 

정은표의 가족은 가족 모두의 일본 여행이라며 신이 나서 떠났지만, 제작진은 다짜고짜 가족들을 눈 쌓인 일본 외진 마을에 가족을 던져놓고서는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벌어 먹으며 살라고 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던져놓은 것도 아니다. 온천 마을인 이곳에 걸맞게 정은표에게 주어진 각종 알바들은 온천장의 온갖 허드렛일이다. 제작진이 미리 마련해 둔 것이다. 진짜 생존기라면, 당장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도 가서 일부터 구하는 것이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생략된 채 제작진이 마련한 곳에서 정은표가 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상당 시간은 정은표가 일하는 과정이 세세히 보여진다. 뭔가 어정쩡하다. 생존기라지만, 완벽한 생존기도 아닌, 생존하는 것처럼 보이기라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한 가족이 아주 저렴하게 일본에 일주일간 머무는 게 더 현실적인 여행기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차라리 최소한의 비용으로 장을 보고, 아이들이 잠시나마 일본의 학교에 머무는 시간들이 더 신선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곧잘 아이들은 바디 랭귀지로 곧 서로의 신호를 눈치채고 친해지는 그 과정말이다. 심지어 오빠는 일본에 가서도 여전히 짓궂게 구는데, 만난지 얼마 안된 일본의 친구들이 동생 하은이의 역성을 들어주는 모습에 잠시 여행지의 낯섬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단 며칠의 학교 생활에서도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아이들을 보며, 정은표의 볼멘 소리가 새삼 다가온다. 어떻게 온 가족 여행인데 어떻게 아빠는 내리 나가서 돈만 버느라 하루도 가족이랑 제대로 보낼 시간이 없느냐는 그 불평이, 애초에 굳이 자급자족 생존기를 해야 하는가라는 반문으로 들린다.

한 달도 아니고, 단 일주일 외국에서 머물며, 굳이 한 가족의 여행을 아빠는 한국에서 처럼 내내 나가서 돈 버느라 쩔쩔 매고, 엄마는 여전히 아이들 밥 해주고 건사하느라 다 보내 버리는 그런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무엇보다 아쉬웠던 것은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일까, 화장실 변기까지 세세히 보여주는 화면은, 반면에 눈쌓인 야마가타 현을 한번 멀찍이 바라볼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겨우 온천 마을을 한번 쭉 비추고는 만 화면은 내내 답답하게 정은표의 일거리에만 집중한다.

여행이 무언가.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일상의 삶조차 되돌아 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인데, 기껏 일주일 여행을 시키면서, 아빠는 여전히 서울에서 처럼 돈 벌고, 아이들은 학교 다니는 그런 시간이, 정말 정은표 가족에게 행복한 일본 여행이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다. 그까짓 돈이 뭐라고, 일본에서까지 가서 하다못해 허드렛일까지 하며 가족을 벌어먹여야 하는 밥벌이의 고달픔을 연장시키는 것인지, 겨우 일주일 여행에 다시 학교를 가야 하는 아이들은 또 어떻고. 여전히 엄마는 하루 세끼를 해내느라 버겁고. 과연, 이런 것을 자급자족 생존기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아쉽다. 심지어 온 가족이 빙어 낚시를 가서도 그저 뚫어 놓은 얼음 구멍 주변에만 올말졸망하다. 잠시 카메라 옆으로 스치는 하염없이 펼쳐진 설원은 아랑곳 없다. 그저 빙어 몇 마리 더 낚는가가, 일본이든 강원도 산골짜기이든 상관없이 이 가족의 절대 염원일 뿐이다. 굳이 일본까지 가서 추운데 얘들 고생, 아빠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인지, 문득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한 가족이 일본의 산간 온천 마을에 일주일 동안 여행을 가게된다면, 가장 보람찬 시간이 무엇이었을까? 그런 고민이 아쉽다. 그저 '리얼리티'의 시류에 따라, '자급자족'생존기에 애꿏은 정은표네 가족만 고생한 게 아닌지. 딸린 식구가 없으면 저렇게 고생하지 안해도 될텐데 라는 엄마의 짠한 생각은 그저 엄마만의 생각이 아니다.

 

어디서든 살아보기 위해서 우선 그곳에서 먹고 살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시간만 보내다, 정작 낯선 곳의 풍경 한번 제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볼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면 낯선 곳에서 살아보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by meditator 2015. 2. 17. 08:29

2월 16일 10시 <블러드>가 첫 선을 보였다. 케이블이 아니다. 공중파, 그것도 kbs2tv를 통해서이다.

뱀파이어가 영상물에 등장한 것은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찌기 뱀파이어를 잡는 뱀파이어를 그린 <블레이드>를 시작으로,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의 대립을 그린 <언더 월드> 시리즈를 경과하여, 하이틴 로맨스물<트와일라잇>까지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다종다양한 영화들이 있다. 미드도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뱀파이어들이 등장한 <트루 블러드>에서, 역시나 로맨스물로 시즌을 거듭하고 있는 <뱀파이어 다이어리>까지 다양한 시리즈물이 명멸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게 바다 건너에서 인기를 끌던 뱀파이어는 2011년 tvn의 <뱀파이어 검사>를 통해 우리 드라마계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갔다.

 

서구 문화에 있어 뱀파이어는 이질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중세 이후 발칸 반도를 중심으로 떠돌던 민담의 주인공이었으며, 브람 스토커가 1887년 발간한 [드라큐라]를 통해 그 캐릭터는 집대성되었다. 그렇게 역사적 전통을 가진 이 캐릭터는 '피'와 그 '피'를 지닌 여성에 대한 갈구로 오히려 많은 여성 독자들을 매료시켰으며, 서양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변주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렇게 서양의 전통적 캐릭터인 뱀파이어가 우리 영상 문화 속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전통적 이야기를 그대로 본따올 수는 없다. 우리의 민담에는 귀신이나 도깨비는 있을 지언정, 남의 피, 그것도 여성의 피를 탐하는 뱀파이어의 존재는 들어보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tv로 온 뱀파이어들은, <뱀파이어 검사>에서도 그렇고, 이제 새로이 시작한 <블러드>에서도 그렇고, 뱀파이어의 탄생을, 불치병처럼, 기괴한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처리한다. 그들은 마치 태생이 뱀파이어인 종족과 마찬가지로 자신으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감염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뱀파이어가 되었고, 그것은 가족내의 전이로 유전적 요인으로까지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뱀파이어가 된 사람, 그리고 사람들이 편이 갈린다. 드라마 <블러드>에서 주인공 박지상(안재현 분)의 부모로 등장하는 박현서(류수영 분)와 한선영(박주미 분)은 뱀파이어 임에도 자신의 능력을 나쁜 방향으로 쓰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감염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에 반해 다짜고짜 등장하여 박현서를 없애고 한선영과 그의 아들 박지상을 쫓는 이재상(지진희 분)은 아마도 뱀파이어의 능력을 나쁜데 사용할 듯 보여진다. 그러니 박현서를 없앨 밖에.

 

 

 

 

<블러드>의 첫 회는 이렇게 뱀파이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박지상의 전사를 비극적이면서도 운명적인 서사로 그려내고자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부모의 감염, 그 유전으로 이미 선택의 여지도 없이 뱀파이어가 된 아이, 아버지의 불행한 죽음, 그리고 어머니와의 도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던 주인공은 자라면서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에 갑갑해 하다, 조절되지 않는 '피'의 욕망에 좌절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한없이 모멸감을 느끼던 주인공이 뜻밖의 사건으로 한 소녀를 구하게 되고, 소년은 거기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구원'의 감정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그와 어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 적에 의해 어머니마저 죽음을 맞이하고.......

 

그런데 여기까지 이미 <뱀파이어 검사>를 통해 한번 써먹은 감염이야 한국적 상황에 맞추려니 어쩔수 없다 눈감는다 치지만, 그 이후의 의로운 아버지의 죽음에 이은 어머니의 죽음의 전사는 뻔해도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심지어, 이국의 병원에서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전사의 소개는, 박재범 작가의 전작 <굿닥터>의 기시감까지 느껴지니. 전작 <굿닥터>에서도 천재 외과 의사 박시온을 설명하기 위해 장황한 어린 시절을 불러오더니, 이번에도 역시 기괴한 뱀파이어의 설정을 위해 엄마, 아버지까지 희생시킨 전사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굿닥터>에서는 어린 시온이 그렇게 자폐적 증상을 가지게 되기까지의 전사가 그럴 듯했지만, 이번 <블러드>의 어린 시절은 어디선가 본듯한 운명적 상황의 너무 뻔한 조합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국에서도 뱀파이어가 있을 수 있어 라고 접고 들어간다면, 그에 어울리는 비극적 전사 정도야 역시나 또한 눈감고 넘어가야 해 라며 할 말은 없지만, 과연 공영 방송 kbs에서 월화 미니시리즈로 뱀파이어까지 동원할 개연성은 암만해도 부족해 보인다. 거기에 어머니의 당부와, 단 한번 구한 소녀의 목숨으로, 가장 피를 두려워해야 할 뱀파이어가 의사란 직업을 택하는 아이러니는 또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이 역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하는 또 한번의 딜레마가 되는 것일까?

 

<블러드>의 기괴한 설정은, 얼마전 종영한 <아이언 맨>을 떠올리게 한다. 멀쩡한 몸에서 돋는 칼날들을 지니게 된 <아이언맨> 하지만, 그 드라마에서 주홍빈의 등에서 돋는 칼은 뱀파이어의 바이러스같은 막연한 환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성장 주도의 건설 입국 시절을 이기적으로 산 어른들에 의해 상처입은 표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치유해야 할 상징으로 등장했었다. 하지만, 과연 새롭게 시작한 <블러드>는 과연 어떤 상징과 개연성으로 뱀파이어 의사를 그려낼 것인지. 혹시나 <트와일라잇>처럼 매혹적인 뱀파이어 의사로 소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라면, 안이한 설정이 아니었을까 우려된다. 과연 자폐 3급의 서번트 증후군 외과 의사로 훈훈한 휴머니즘을 그려냈던 전작 <굿닥터>처럼 반전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 하지만 그러기엔 첫 회는 너무도 뻔했다. 과연 이 뻔한 서사를 넘어, 매력적인 이야기를 풀어 낼 수 있을런지, 그 몫은, 온전히 박재범 작가에게 달렸다

by meditator 2015. 2. 17. 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