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불타는 금요일, 외로운 맘을 달래기 위해 tv를 켜면, kbs2tv <용감한 가족>을 제외하고는 여기도 남자, 저기도 남자,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게 아니라, tv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쏟아져 나올 뿐만 마치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아마조네스의 남성판이라도 되듯, 남자들끼리 먹고 마시고, 심지어 가족을 이루고, 마음을 나눈다. 그들은 외롭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그들 자체로 충만하다.



 

남자, 요리하다

매주 과연 차줌마 차승원이 어떤 요리를 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삼시세끼>에서 변함없이 차승원은 갖가지 요리를 선보인다. 그저 바닷가에 붙어 있던 장식과도 같았던 거북손이 그의 손을 거치면 밥상의 반찬에서 부터 술안주, 심지어 죽으로 갖가지 변신을 거듭한다. 어디 그뿐인가, 갖가지 김치는 당연지사요, 동거인 참바다씨 유해진이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아니, 보통의 주부라도, 그저 마트에서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어묵이 그의 손을 통해 탄생할 정도니, 웬만한 주부라도 그의 앞에선 명함도 못내밀 정도다. 거기에 요리를 하기 위해 그가 동원한 중국팬에서 부터, 매실 액기스 등에서 고수의 향기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가 음식을 해내는 과정 자체가 흥겹다. 요리를 좀 해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느낄 것이다. 그저 어떤 음식이던지, 주저하지 않고 뚝딱 만들어 내는 그의 모양새가 마치 고수가 칼을 가리지 않듯, 그저 요리를 잘 하는 것을 넘어 요리 자체에 어떤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tvn의 <삼시 세끼>에 차줌마가 있다면 <나 혼자 산다>의 이태곤의 먹방은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좋아하는 옷에 음식 냄새가 밸까봐 집에서 음식을 해먹지 않는 이규한과 달리, 이태곤은 혼자만의 브런치를 즐긴다. 이태곤이 만들어 낸 요리래 봐야, 그저 고추 참치에 날 계란, 김과 깨를 곁들인 것이지만, 생선 맑은 국에 곁들여 초간단 자신만의 브런치를 감탄사를 연발하며 먹는 이태곤의 모습에,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나도 한번 저렇게 해서 먹어봐야지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남자, 여유를 즐기다.

자신만의 싱글 라이프를 소개하기 위해 <나 혼자 산다>에 나온 이규한은, 자신의 하루를 '패션 피플'의 그것으로 정의내린다. '멋'이라는 것이 여성만의 전유물의 영역을 잊은지 오래된 이제, tv  속 남자 배우는 서슴없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패션'이라 말할 수 있다. 혼자 브런치를 즐기기 위해 나서려고 옷을 몇 차례나 갈아입는 그의 모습이 당당하게 화면 속으로 펼쳐진다. 배우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벗겨내고 돈벌이가 없어 어려운 시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자신이 쟁여둔 옷을 팔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중고 거래가 이젠 친한 친구가 광주에서 옷을 사기 위해 그의 집을 들를 만큼 부업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안입는 옷을 쌓아놓을 이유가 없다고 쿨하게 말하던 그지만, 옷이 팔리자 마자 비싼 가격에 세일을 기다리던 청바지를 사겠다고 전화를 넣는다. 심지어 그가 출연했던 분량의 마지막은 함께 했던 <나 혼자 산다> 출연자들에게 자신의 옷을 천연덕스럽게 강매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패션을 즐기는 싱글 라이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행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여행에 성공했던 김광규는 새해를 맞이하여 역시나 중국어 한 마디 할 줄 모르면서 용감하게 홀로 백두산 여행에 도전한다. 그런가 하면 <마녀 사냥>의 네 mc는 데이트 코스의 선 경험을 핑계로 홍콩 행을 감행한다. 남자들만의 여행, 그곳에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들 자신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심지어 연인인 양 둘씩 짝을 지어 각자 해보고 싶었던 곳을 거닐고, 회전 관람차까지 탄다. 


남자, 사랑하다.

tv 속 남자들이 사랑을 나눈다. 게이물이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등장했던 '브로맨스'가 이젠 예능 속에서 조차 그 지분을 확장해 나간다. 


<마녀 사냥>속 허지웅과 성시경은 서로 두 사람을 두고 사람들이 연상하는 '연인'모드에 왜 그런지 모르겠다면서도, 애틋한 속마음을 표출하는데 여념이 없다. 참 '고맙다'는 속마음을 진솔하게 표출하는 허지웅과, 그런 허지웅을 이해 넘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회전 관람차 속의 두 남자를 두고, 그저 '친구'라는 수식어로만 표현하기엔 어째 간질간질하다. 유세윤과 

이렇게 '브로맨스'로 시작된 남남 캐미들은, <삼시세끼>로 오면 아예 대놓고 '부부'가 되어버린다. 집안 일이며, 음식하기를 즐겨하는 차승원은 차줌마이더니, 아예 '안사람'이 되어버리고, 그런 '안사람'을 꼬드겨 등산을 하고, 바닷 낚시를 즐기는 이름마저 '참바다'인 유해진은 '바깥 사람'이 되어 버린다. '안사람'은 불철주야 '바깥 사람'을 위한 음식을 하느라 분주하고, 그런 '안사람'을 위해 원하는 만큼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바깥 사람'은 흡사 밥벌이를 제대로 못하는 '남편'처럼 면목없어 한다. 

어디 차승원, 유해진뿐인가. 게스트로 등장하여 눌러앉을 기세인 손호준까지 가세하면 아예 한 가족이다. 심지어, 이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강아지 산체조차도 <삼시 세끼> 농촌 편에서와 달리, 남자다. 시커먼 남자들로 유사 가족을 이뤄 시끌복작한데, 웬걸 제대로 가족 코스프레를 하는 <용감한 가족>보다 훨씬 가족같다. 




tv 속 예능에서 남자들이 득시글거리기 시작한 건, tv 리모컨의 향배가 여성 시청자층에게 있다는 것이 증명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그래서 이제 남자들은 시커멓게 토크쇼에서 부터 시작하여 리얼리티까지 그 존재감을 뽐낸다. 

그 속에서 그들은, 이른바 우리 사회가 '남성적'이라고 규정지어 놓은 영역을 자연스레 파괴해 나간다. 스스로 음식을 하고, 혼자 음식점을 찾아가서 먹고, 옷을 즐겨하고, 홀로 혹은 함께 여행을 하고, 남자들만의 가족을 만든다. 아마도 예전 같으면 남자가 음식 냄새가 밸까봐 집에서 음식도 안하고, 외출하는데 옷을 서너번 씩이나 갈아입는 걸, '남자답지'못하다고 할 상황이지만, 이젠 '패션 피플'이라는 명칭으로 자연스레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차승원이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갈까봐 머리 수건을 하고 종종 걸음으로 식재료를 썰고 무치고 볶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한 것이 되지 않았다. 야곰야곰 영역 파괴를 시작한 연예인들에게 더 이상 배우나 가수란 명칭이 무색해졌다. <나 혼자 산다>에서 가장 인기있는 mc 중 한 사람은 평론가 허지웅이요, <삼시세끼를 이끄는 세 남자는 온전히 다 배우들이다. 예능적이지 않은 예능인들이 만들어 가는 '남자들의 신선한 삶'에 사람들은 시선을 빼앗긴다. 


물론 이런 tv 속 남자들의 속내도 만만치 않다. 10년이 넘도록 오르지 않는 원고료가 평론가 허지웅으로 하여금 방송 출연이라는 영역 파괴를 실천하게 만들었고, 더 이상 자신을 불러주지 않는 드라마가 이규한으로 하여금 예능이라는 신천지를 개척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윤종신이 특수한 경우가 아닌 가수들에게 예능은 자신을 알리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장이 되었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자신을 한껏 희화화시켜주는 <라디오 스타>의 갑질(?)에 이제 예능의 기회가 열렸다며 감사하기까지 한다. '밥벌이'의 고달픔은,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예능 늦둥이들의 '러쉬'로 제공된다. 


또한 여성 시청자의 취향을 넘어서, 짝을 이루지 않은 남자들만의 스토리에는 더 이상 결혼이 최선이 아닌 현실의 묘한 모사가 담겨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삶이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혹은 잠정적으로 혹은 여타의 이유로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남자들은 혼자만의 삶을 즐기기에 노력한다. 그리고 tv 속 예능은 발빠르게 그런 남자들의 현실을 '예능'으로 승화(?)시킨다. 그런 남자들만으로 넘치는 예능을 보다, 문득, 남자건 여자건 저렇게 굳이 이성과 함께가 아니라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삶도 괜찮겠다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알량한 예능만의 영역일 수도 있다. <삼시 세끼>를 보며 차줌마와 바깥 사람의 정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이 현실의 김조광수 감독의 결혼에는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까 말이다. 


 

 

 

by meditator 2015. 2. 14. 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