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 건물 옥상에서 거리를 바라보며 서정후(지창욱 분)는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높은 곳에서 이렇게 세상을 내려다 보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 이제야 싸워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자를 도망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싸울 것이다.' 채영신(박민영 분)도 다르지 않다. 그녀 역시,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저 돈을 많이 벌어 남태평양에 있는 섬 하나를 사서 편안하게 살겠다던 서정후는 채영신과 함께 도망가는 대신, 이곳에서, 그녀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는 길을 택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그들을 괴롭히는 '어르신'이란 상징되는 삿된 세력과 마주 서 싸우는 것이다.

 

 

 

 

 

송지나 작가의 화두

돌아온 <모래 시계>의 작가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시작한 송지나 작가의 <힐러>, 송지나 작가는, 그 수식어가 그녀에게 얹은 부담감을 저버리지 않고, <모래 시계>로 시작된 우리 시대의 비극을, 그 세대가,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화두로 삼았다.

 

<모래 시계>에서 사회적 정의에 눈밝은 젊은이로 등장했던 배우 박상원이 <힐러>에서 자신의 개인적 입신양명을 위해, 친구들의 죽음을 외면하고, 심지어 그것을 이용하는 변절자로 등장한 것처럼, 80년대를 이끌었던 세대의 명멸을 진득하게 주시했다.

또한, 김문식의 동생, 김문호로 대표되는, 그 이후의 세대가, 서정후의 말처럼, 생각만 가득한, 하지만 막상 현실에 있어서는 주춤거리는 존재였음을 놓치지 않는다.

특히나, 최근 젊은 세대들이, 각자 자신만의 실존적 문제에 빠져, 사회적 문제에 중지를 모을 수 없음을 작가는 고민의 중심에 둔 듯하다.

이렇게 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를 구성하는, 여러 세대가 201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작가는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80년대 이후의 세대만이 아니다. 이른바 어르신(최종원)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악의 실체를 고발한다.

80년, 총칼로 무장한채 명확하게 드러난 악은 이후, '자본'의 이름으로, 자신을 무장한 채, 산업 현장으로 시작해서, 정관계, 언론까지, 그 마수를 샅샅이 펼친다. 김문식을 힘으로 협박하고, 그의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자신들의 비리를 덮고 확장하기 위한 정치 자금 현장을 무마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사과 박스에 담은 검은 돈을 퍼나르면서, 멀쩡한 다리를 무너뜨리고, 그 과정에서 함께 스러져간 기업들을 잠식하며, 어르신으로 상징되는 세력들을 힘을 키워나간다. 드라마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처럼, 그 과정에서, 거추장스러운 사람들을 편의적인 방식으로 제거하며,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 마을의 생명조차 실험대상으로 삼는, 탈국가적  만행을 저지른다. 한 편에서 기영재(오광록 분)같은 인물을 쥐도새도 모르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가 하면, 김문호와 같이 대중적 인물은 성과 관련된 스캔들로 제거하고자 하는 '통치방식'의 세련됨을 구가한다. 심지어 한 마을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며, '민영화'라는 국가 자본에까지 문어발을 확장하는 것을 마다치 않는다.

 

무기력해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그렇다면 이렇게 전지전능해져 가는 어르신에 대해 무기력해진 우리들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그에 대해 송지나 작가가 내세운 해법은, 세대간의 '연대'이다.

변절한 김문호가 있는 반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그 시절의 열정을 잃지 않고 사는, 어른들이 앞장서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옥에서 나온 기영재가 언젠가 먼 훗날을 기약하며 서정후를 힐러로 훈련시켰듯이 말이다. 김문식의 사랑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던 '자유 언론'의 일원 최명희(도지원 분)도, '돈'만 아는 해커가 아니라,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공적 권력에 대한 회한을 가진 조민자(김미경 분)가 그들이다.

이렇게 여전히 밝은 눈을 가진 어른들과 함께, 어른이 되어가는 김문호의 세대가,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넘어서면, 서정후와, 채영신같은 젊은 세대들도 그들의 손을 맞잡고 싸울 수 있을 것이라 송지나 작가는 20부를 통해 강변한다.

 

특히나 그저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재혼 등으로 외로움에 사무쳐 살던 그래서 돈이나 벌자고 하던 서정후, 버려진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기자라는 막연한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채영신, 그들은 뜻밖에 마주친 개인사의 이면에 고민하고 고뇌한다. 이렇게 돈이던 명예던, 각자의 실존적 이상을 향해 치닫던 젊은 세대들에게, 그들이 마주친 고민들이 어쩌면 각각 역사적, 사회적 근원을 가진 것들이라는 것을, 서정후와 채영신을 사연을 통해 작가는 풀어가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개인사의 이면을 고민하다, 사회적 부조리에 닿는 것처럼, 지금의 젊은 세대들 역시, 실존적 틀을 넘어, 사회적 프레임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졌으면 하는 소원을 드라마를 빌어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옥죄어 오는 현실적 어려움의 그 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밝은 어른들과 함께 힘을 합쳐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 회, 어르신의 비리를 만천하에 폭로할 증거를 가지고 공항에 도착한 연구원을 마중하러, 나란히 어깨를 겯고 공항을 걷는, 서정후, 채영신, 그리고 김문호, 조민자의 모습이 바로 송지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연대'의 현실태이다.

또한 그렇게 그런 그들과 함께 뜻을 함께 하게 된 썸데이의 장병세(박원상 분), 형사 윤동원(조한철 분) 등의 존재에서, 세상은 암울하고 우리의 힘은 미약하지만, 싸우고자 한다면, 여전히 함께 할 누군가가 존재함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힐러의 성취, 그리고

이렇게 힐러라는 액션 어드밴춰물의 주인공같은 존재를 등장하여 대중의 구미를 당긴 드라마 <힐러>는 여전히 시대적 고민을 놓치지 않은 송지나 작가의 야심작이다. 그러기에, 드러나는 스토리 너머, 숱한 상징들이 드라마를 채우고, 그 행간을 읽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약점도 있다. 동시간대 타 방송사의 <펀치>가, 통수에 통수를 거듭하며 권력의 명멸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는 것에 반해, 상징적 화두로 가득찬 힐러는 상징은 풍부하지만, 그 상징을 풀어내는 장치들은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세련된 권력으로 성장한 어르신의 해법은 종종 오비서와 배상수 집단의 폭력적 방식을 통해 안이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어르신이 장악한 사법, 경찰들의 권력은 쟁쟁하지마 정작 해결 방식들은 뻔하달까? 마지막 회, 고성철이 가지고 온 동영상 속 어르신의 비리 장면을 증명해 줄 연구원의 폭로와 그를 둘러싼 접점은 흥미로웠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단순해 드라마적 재미가 반감되었다.

 

거기에, 언제나 그렇듯, 송지나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운명적인 사랑이, 과연, 세대간 연대를 지향하는 이 드라마의 균형점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도 한번쯤은 짚어볼 지점이다. 서정후와 채영신의 사랑은 극적이고, 갸륵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운명을 잊을 만큼, 농후하기도 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흐트러 트린 지점이 있었던 점이 옥의 티라며 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한이 없다'는 송지나 작가의 소감처럼, <모래 시계>로 시작하여, 여전히 시대적, 역사적 혜안을 놓치지 않은 작가는 <힐러>를 통해 이 시대 우리가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흔들림없이 그려내었다. 여전히 시대적 책임감을 놓치지 않은 제대로 된 어른으로 최선을 고민한 20부의 과정에 감사를 드린다.

by meditator 2015. 2. 11. 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