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자면 그렇다. 

감자란 그저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먹거리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그 속에 감자 농사 흉작으로 인한 아일랜드의 기근으로 인한 참상과, 오늘날 아메리카를 이루어 낸 이민의 역사가 드러난다. 그저 몇 알 뿌리는 것만으로도 음식의 풍미를 달리만드는 후추의 역사를 훑어보면, 육식을 탐한 서양인의 식탁을 위한 인도 항로의 개발을 위한 각 유럽 국가의 해양 도전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해양 도전은 신대륙의 발견과, 곧 신대륙 원주민의 잔혹사로 이어진다. 이렇게 우리가 쉽게 접하는 먹거리들의 이면을 들추면, 그것을 소비한 인간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저 더 맛있는 먹거리에 집중하다 보니, 우리 식탁에 올라온 그것들의 전사를 쉽게 간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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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맛있는 먹거리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려니 했던 <수요 미식회>는 3회 복고 치킨에 이르르면서, 프로그램의 영역을 '역사'로 확장한다. 야심만만하게, <라디오 스타>를 겨냥한 시도가, 그저 식언이 아닌, 프로그램의 깊이가 느껴진다. 그저 요즘 우리가 쉽게 접하는 다수의 프랜차이즈 치킨이 아니, 굳이 '복고'라는 명칭을 치킨 앞에 붙인 이유가 그것일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수요 미식회>에서는 몇몇의 맛집을 소개한다. 하지만 복고 치킨의 맛집 소개는, 그저, 예전 방식의 치킨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치킨을 통한 서민 먹거리의 전사를 훑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 시작은, 이제는 한국 소개 책자에도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다는 명동의 치킨집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저 명동의 치킨집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저 전기 구이 통닭에 불과한 그 치킨 집이 당대에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명동에 3층 건물을 세우고, 그곳의 통닭을 들고 가는 것만으로도 마치 '루이비통' 가방이라도 든 듯이 으스댈 수 있었는지의 그 세월을 그려낸다. 
닭 한 마리를 먹는 것이 하루치 일당을 소비하는 것에 맞먹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올라간 닭에 대한 추억은, 시장통에 닭장을 두고,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닭을 잡아 대령하던 재래 시장의 닭집에 대한 추억을 훑고, 학창 시절 소풍이라도 가면 선생님께 대접할 가장 큰 접대가 통닭이던 그 시절의 치킨을 되살린다. 닭이 귀해, 그저 온 가족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닭도리탕이나, 백숙이 가끔 밥상 위에 오르던 시절의 치킨은 어린 김유석에게 눈물나게 먹고 싶은 특식이었던 그 시절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미식회'답게 맛에 대한 평가도 놓치지 않는다. 20대의 박용인이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고 하자, 황교익 평론가는 역시나 냉정한 한 마디를 덧붙인다. 양념과 기름으로 범벅이 된 현재의 치킨이 사실은 얼마나 밋밋하고 맛이 없는 음식인가를 알기 위해서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삭한 외양과, 그 속에 밋밋한 살 맛으로도 감지덕지하던 시절은, 미군 부대 앞에서, 미국의 식문화를 가장 앞장서서 받아들인 의정부 치킨집으로 옮겨가면, 드디어 기름과 본격적인 치킨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저 우리가 치킨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이, 반죽 여하에 따라, 기름에 따라, 혹은 기름을 튀기는 용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음식으로 재탄생될 수 있는가를 소개된 치킨집을 통해 알 수 있게 한다. 

치킨 한 마리가 가장의 권위를 세워주던 시절을 지나, 미군 부대 앞에, 미국식을 흉내낸 치킨집을 넘어, 이제 치킨은, 70년대 문인들의 문학적 산실의 역할까지 맡게 된다. 반포동의 치킨집을 소개하기 위해,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졸지에 '치킨을 기다리는 동안'으로 변형되었고, 실제 그 집에 즐겨 들렀던 김현 시인의 영전에 바치는 황동규 시인의 시가 읊어졌다.

대설날-고 김현에게
(전략)
오늘 양평으로 네 잠들어 있는 곳에 가/찬 소주 대신/가슴에 품고 온 인간 체온의 청주 한 잔 땅에 붓노니/ 그 땅이 네 무덤이건/ 우리가 자주 들린 반포 치킨이건/ 그냥 지나쳐 버린 어슬어슬 산천이건 
(후략)

겨우 치킨 한 마리 따위를 소개하기 위해, 당대의 최고 문인의 시가 감히 동원되는 것이 하등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다. 오히려, 그저 치킨이 아니라, 출연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입맛이란, 맛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추억의 그것의 다른 명칭이라듯이, 치킨을 통해, 근대화의 역사 속에, 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기에, 김유석이 '내 스탈이야'라고 고집하는 의정부의 치킨 집과, 20대의 박용인이 고집하는 학교 앞 분식집의 맛을 재현한 신사동의 치킨집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살아온 세대와 추억이 다름의 결과도 쉽게 이해 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또한 거기서 더 나아가 굿굿하게 치킨은 맛이 없다를 주장하는 황교익 평론가의 원칙론과, 그러기에, 거기에 우리 고유의 양념을 곁들여 세계인이 반하는 또 하나의 한류를 만들어 내는 음식 문화를 주장하는 홍신애 요리 연구가의 주장에 고개가 제각가 끄덕여 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지난 시간 '칼국수'를 통해, 서민의 고단한 삶과, 정치인의 이합집산의 교차로에 있던 칼국수라는 가장 싼 음식이기도, 혹은 귀한 별미일 수도 있는 음식을 들여다 보더니, 이제 '복고 치킨'을 통해, 우리의 음식 문화사의 한 면을 건들여 본다. 가보지 않은 맛집이나 알아볼까 궁금해 들여다 본 프로그램에서, 뜻밖에 잊었던 추억과, 세대 별로 달라진 치킨의 세태까지 엿보게 된다. 맛있는 탐식을 넘어, 문화가 된, 먹거리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5. 2. 5. 0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