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피아노를 설명하는 사전의 항목이다. 하지만 18세기 초에 만들어져, 1900년대 선교사를 통해 이 땅에 첫 발을 들인 피아노란 악기가 우리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지평은 남다르다. 그 현대사의 문화적 상징이자 추억인 피아노가 거리로 나선다.
여유있는 문화의 상징으로 '피아노'
중년이 넘은 기자에게도, 노오란 피아노 가방을 들고 피아노 교실을 다니던 언니는 선망의 상징이었다. 그 언니가 흑백의 건반을 눌러 '음악'을 만드는 장면은 일찌기 보지 못한 신기료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후에, 나에게도 그 신기료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계적 연습의 반복에 질리면서도, 환타지같은 '연주'의 실마리를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절, '벽돌로 지은 이층집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라는 광고의 문구와도 같은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피아노'는 당시 서민들로서는 부담하기 힘든 가격의 이 악기를 집에 들이고, 매달 배우게 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의 상징이었다. 즉, '피아노'라는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여유의 필수품이 되어갔다. 나 역시 고학년이 되어서 공부를 하라했지만, 사실은 집안 형편이 매달 피아노 학원을 보내 줄 형편이 되지 못해서였다.
거리로 나선 피아노에 노인들은 멀찍하니 앉아있다. 차마 다가서지 못한다. 그리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달걀 열 알을 온전하게 살 수 없었던 그 때 형편으론 꿈도 꾸지 못할 이야기였다고. 그 반대편의 이야기도 있다. 월남전에 참전하고, 중동에 가서 돈을 벌어왔던, 하지만 이제는 몰락한 아버지는, 구룡마을 철거전 비닐 하우스 집 구석에서 온갖 물건들을 떠받치며 견디고 있는 낡은 피아노를 버리지 못한다. 왜 피아노를 버리지 못하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아버지는 '미련'이라고 답한다. 딸들의 성화에 못이겨 비싼 피아노를 무리해서 월부로 샀던 늙은 어머니는 이제 딸들조차 가져가지 않는 피아노를 집을 옮길 때가 되어서야 버린다.
피아노 키드의 탄생
피아노란 악기는 묘하다. 조금만 연습하면 완결된 곡을 연주할 것 같지만, 막상 한 곡을 그럴 듯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계적인 연습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피아노가 발명된 18세기 이래, 집안에서 아이들의 피아노 소리를 듣기 위해 무수한 연주법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피아노가 문화적 여유의 상징으로 우리 사회 속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피아노 학원은 호황을 누리기 시작하였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여유를 피아노를 통해 증명하기 시작하였고, 그 여유를 누리지 못한 자식들은, '포한이라도 풀듯이, 자신이 커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그래서 언제인가 부터 피아노는 초등학교 무렵 아이들이 거쳐가야 할 필수 학원 코스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여의도 증권가 그곳에 피아노가 놓이자, 뜻밖에도 깨끗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둘러 맨 남자들이 피아노를 친다. 그것도 제법. 바로 피아노 학원을 전전했던 세대이다. 거기서 만난 한 보험맨, 그는 한때 앨범까지 낸 전직 가수였지만 몇 년 전 보험맨으로 이직했다. 잠자는 시간마저 아깝다는 그는 1조를 목표로 보험맨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제는 악기를 만진지 오래 되어 피아노 코드조차 헷갈리는 그는 기타를 둘러맨 거리의 젊은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단다. 그 시절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 지를 경험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신입 사원 교육에서,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말한다.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답이 없다'고.
그런가 하면, 자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던 피아노를 유일한 밥벌이의 동아줄로 여긴 사람도 있다. 이 다큐의 나레이션을 맡은 유희열은 청소년 시절 어려워진 집안 형편으로 피아노에까지 붙인 빨간 딱지에서 자기 집안의 몰락을 읽었다고 한다. 종이 피아노로 대학 실기 준비를 했던 그는 하다못해 나이트 클럽에 가서라도 피아노 연주를 하여 자기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고 하고,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그의 여전하 모토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삶의 행복은, 어린 시절 자신과 형이 치던 피아노에 행복해 하던 엄마의 모습처럼, 사진 한 장처럼 소중하게 기억되는 찰라의 감정이라며, 그 감정의 소중함을 놓치지 않고자 한다. 피아노는 이렇게 엇갈린 두 욕망의 교차점이 되어 우리에게로 온다.
그런가하면 그 욕망은 대를 이어간다. 어린 시절 집이 어려워 피아노를 꿈도 꿀 수 없었던 엄마는 아이를 낳은 후 아이들에게 무조건 피아노를 가르쳤다. 경포대 바닷가를 배경으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익숙한, 하지만 기계적인 피아노 연주. 엄마는 계면쩍게 웃는다. 엄마의 열망이 아이들의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것같지는 않다고. 그런가 하면 은행잎이 노오랗게 깔리는 산책길에서 만난 아기 엄마는 아이를 키우던 그 손으로 능숙하게 피아노를 연주한다. 능숙하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뒷바라지 해주던 아버지, 하지만 그녀에게 아버지는 늘 미흡한 부모였었다고, 이제야 눈물짓는다. 또 이제 막 아이를 낳고, 아이를 낳을 부모들은, 자신들의 부모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도 아이들에게 '피아노 정도는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진다.
거리의 피아노, 거리의 삶
거리로 나선 피아노에서는 퍽퍽한 현실의 삶도 엿볼 수 있다. 붕대를 감고, 커피 찌꺼기가 낀 손톱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명동의 젊은이, 한때 호른을 전공했던 그녀는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이제는 바리스타를 하다 인대까지 늘어난 처지에 놓여있다. 부모님이 마음 아파하실까봐 집에선 호른조차 꺼내지 못한다는 그녀에게 피아노는 유보된, 아니, 어쩌면 영영 조우하지 못할 '꿈'의 상징이다.
우리 사회로 쏟아져 들어 온 조선족들의 집단 거주처 가리봉동에서 만난 중년의 여인은 낯설게 그러면서도 애증의 대상으로 피아노를 대한다. 연변 방송국 pd로 오십 평생 '선생님' 소리를 듣고 살았던 그녀, 하지만 이젠 서울의 한 집 가사 도우미로 날마다 피아노를 닦아야 한다. 닦아도 닦아도 닦은 티가 나지 않는 피아노가 그녀는 이제 싫다. 하지만, 그 피아노를 닦아 모은 돈이 연변의 아파트 한 채이기에, 과거의 흔적을 지운 채 오늘도 '아줌마'로 살아간다.
단 한 시간, 거리로 나선 피아노를 통해 만난 우리들의 삶은 지난 1년간 거리로 나선 피아노를 통해 완성된 이야기이다. 한때 문화적 여유의 삶이었던 피아노는, 이제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피아노 배달'만 해도 먹고 살 수 있겠다던 중개상은 이제 낡은 피아노를 중국으로 옮기는 일을 한다. 공장 안을 가득 채운 허름한 피아노들, 그것은 마치 경제 부흥기를 겪고 지쳐버린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다. 그저 피아노 한 대, 하지만 그 피아노를 통해 산업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왔던 우리 삶을 꿰뚫어 보고자 했던 <거리의 피아노>, 그 시간은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피아노 연주에 맞춘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주제가와도 같았다. 서정적이었지만, 결코 서사가 숨겨지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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