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상하다. 분명16회 중반에 이르기까지 연쇄 살인범 권재희(남궁민 분)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기까지 허술하기가 이를데 없는 스릴러였다. 그런데 그가 죽고 최무각(박유천 분)이 흘린 회한의 눈물이 마르기 무섭게 결혼식을 했느니 마느니 하던 무림 커플(최무각-오초림)이 신혼 여행도 떠나지 못한 채 아웅다웅하며 예의 '냄새를 보는' 수사를 하는데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자기를 빼놓고 혼자 수사를 갔다고 삐지는 스물 아홉 남편, 그런 남편을 꽉 껴안으며 귀여우니 삐지지 말라는 스물 세살 어린 신부, 하지만 그들이 신혼 여행도 미룬 채 자전거를 달려 수사를 하러 가는 모습에선 더할 나위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치매도 아니고. 하지만 뭐 어떤가?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걸 뭐 이런 생각이 드는 걸. 그렇게 '바코드 살인 사건'이란 부제를 걸고, 스릴러의 구비구비마다 걸려 넘어지던 <냄새를 보는 소녀>는 이 드라마만이 가능했던 '로코'의 분위기를 한껏 뽐내며 마무리되었다. 각자의 트라우마에 짖눌려졌던 두 연인, 하지만 트라우마 따위 한 방울의 눈물로 날려버리고, 서로를 보듬어 안고 함께 해서 행복한 그 순간을 만끽하는 이 평범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그간 어설픈 스릴러에 시달린 마음조차 풀어져 버린다.
이희명 표 로코로서의 냄새를 보는 소녀
웹툰 <냄새를 보는 소녀>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원작이 가졌던 어두운 분위기를 일소하고 한껏 밝은 분위기의 '로코'로 시청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를 위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상처로 고통받던 여주인공은 '냄새를 보는 능력'을 유지하는 대신, 과거의 기억을 잃은 '개그우먼' 지망생의 밝은 캐릭터가 되었다. 자신도 몰랐던 과거의 사건을 알게 되며 때론 눈물짓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최무각을 만났던 그 미용실 강도 사건 해프닝에서 다짜고짜 사건에 뛰어들던 그 '씩씩함'에, 형사 최무각에게 만담 파트너를 해달라는 대담한 딜을 할 수 있는 '당참'까지, 굴곡진 16부작의 롤러코스터 동안 매력적인 오초림으로 <냄새를 보는 소녀>의 포인트를 놓치지 않았다.
거기에 원작에서는 보일듯 말듯했던 캐릭터의 남자 주인공은 동생을 잃은 사연으로 인해 감각을 상실한 최무각이란 독보적인 캐릭터로 돌아왔다. 특히나 두 주인공의 알콜달콩 러브 스토리와 연쇄 살인 사건의 스릴러라는 양 극단의 분위기를 오초림의 만담 파트너와 형사라는 캐릭터를 오가며 복합 장르로서의 <냄새를 보는 소녀>를 가능케 했다.
무엇보다 <냄새를 보는 소녀>의 장점은 그간 로맨틱 드라마의 대부분이 실장님, 혹은 그 이상의 남자 주인공과, 그로 인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하지만 대신 사랑을 줄 수 있는 여성의 '신데렐라'식의 스토리였다면, <냄새를 보는 소녀>는 말단 순경과, 개그우먼 지망생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연인들의 러브 스토리를 근간으로 삼음으로써, 그 어떤 드라마보다 '보통' 연애의 코스프레를 완벽하게 한다. 더구나, 일방적인 남성의 보호와, 여성의 사랑받음이 아니라,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두른 최무각 순경의 팔을 당차게 밀치고 자신이 그의 어깨를 겯는 장면에서 상징되듯이, 만담도 하고, 수사도 공조하는 '평등한 현실 연애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실제 이 커플이 극중 나이 차가 여섯 살 정도가 남에도 불구하고, 매번 여주인공이 '최순경님'이라고 부름에도 불구하고, 실제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 일방적인 방향의 환타지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가 연애를 하며 벌이는 갖가지 해프닝들이 극을 이끈다. 그래서 이 무림 커플들은 세상의 연인들처럼 늘 만나 무언가를 먹고, 길을 걸으며, 함께 버스를 타며 그들이 운명처럼 만난 극적인 사건을 겪어 나간다.
평범한 연애, 하지만 비범한 연기
하지만 이 지극히 평범한 연애의 일상은 정작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이 되면 매우 고난도의 능력을 요한다. 조금 어색하면 바로 '코스프레'의 티가 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매번 이희명 작가가 욕심내는 스릴러까지 덧붙여진다면, 연기를 하는 배우의 편에서 보자면 '하이 퀄리티한 연기력'을 요하는 장르가 된다. 이희명 표 로코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특히나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처럼 만담을 하다가, 사건을 수사하고, 알콩달콩 연애를 하다, 자신의 측근을 죽인 살인범을 만나 분노에 떠는 폭넓은 연기력이 아니고서는 <냄새를 보는 소녀> 자체가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미 <옥탑방 왕세자>를 통해 300년의 시공을 가른 사랑을 때로는 절절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풀어냈던 박유천의 선택은 이미 한번의 검증을 끝낸 셈이다. 더구나, 박유천이 <냄새를 보는 소녀>를 하기 전까지 했던, <보고싶다>, <쓰리데이즈> 등의 멜로에서부터 스릴러를 오가는 장르적 경험과, 영화<해무>까지 더해지고 보면,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스릴러와 로코를 봉합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배우가 없을 듯싶다. 또한 역시나 <뿌리깊은 나무>, <아이언 맨>, 그리고 <타짜2>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연기를 보여주었던 신세경 역시 <냄새를 보는 소녀>를 통해 만개하였다. 이 두 배우의 내공과 시너지로, 중반 이후 흔들렸던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무림 커플은 굳건하게 <냄새를 보는 소녀>를 지켜낸다.
그렇게 현실적인 두 연인을 연기한 박유천 신세경 외에, 늘 실장님의 인자한 모습으로 각인된 남궁민의 제 얼굴같았던 사이코패스 연기 역시 <냄새를 보는 소녀>의 한 축인 스릴러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침묵 속에 '염미 반장'으로 돌아온 윤진서의 스타일리쉬한 캐릭터 역시 원작의 염미 반장의 카리스마를 잊게 만든다. 그들과 함께, <옥탑방 왕세자>에서 신하 3인방이 개그 코드를 담당했듯, 강력반 형제님 3인방은, 믿고 보는 든든한 조연으로 극을 받쳐준다. 비록 드라마는 들뛰어도, 연기는 그런 들뜀조차 지그시 눌러가며 <냄새를 보는 소녀>를 볼 맛을 제대로 지켜낸다.
현실적인 러브 스토리와 만난 스릴러
아마도 <냄새를 보는 소녀>가 종영한 시점에서 가장 아쉬운 점을 꼽아 보라면 분명 그것을 어설픈 스릴러일 것이다. '황금 물고기'는 운운하며 의미심장한 유언을 남겼지만, 연쇄 살인마에게 목격자가 살아있다는 힌트를 주고만 천백경 원장의 죽음에서 부터, 드러나지 않은 바코드 0번의 죽음은 물론, 사이코패스가 희생시킨 아홉 사람의 죽음까지, 의문을 가지고 스릴러물로서 <냄새를 보는 소녀>를 보았던 시청자들의 입맛에 <냄새를 보는 소녀>는 도무지 충족되지가 않는다.
하지만, 권재희의 처음 알리바이에서부터, 강에서 어떻게 탈출했는지, 그리고 마지막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설명해 내지 않는 <냄새를 보는 소녀>의 스릴러 부분을 보면서, 애초에 이 드라마가 공약했던 로코 80%에 스릴러 20%의 그 20%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 스릴러적 스토리의 20%가 아니지 않은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이희명 작가가 생각한 스릴러는, 초반 무림 커플이 수사에 발을 들이면서, 냄새를 보는 설정을 이용해, '코난'처럼 좋게 말하면 '쾌도난마'식으로, 따지고 보자면 분위기만 잡다 입수사를 하게 되는 '만화적' 설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즉, 스릴러라면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추리를 하고, 실마리를 따라 사건을 풀어가고, 추적해 가는 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이런 사건이 있다, 라는 상징적 스릴러적 분위기라는 것이다.
오히려 패착이라면, 작가의 그런 설정에 대해, 연출진이 지나치게 방점을 부여하면서, 그의 분위기가 슬릴러에 집중되면서, 로코 80%의 전체적인 균형을 흐트러트린 데 <냄새를 보는 소녀>의 패착이 있는 듯하다. 물론 따지자면, 스릴러를 욕심내면서도 전혀 섬세하게 스릴러 장르의 묘미에 천착하지 않은 작가의 탓이 크겠지만, 16부의 완결 과정을 보노라면 애초에 작가는 무림 커플이 작은 사건 수사하듯, 바코드 살인 사건을 염두에 두었는데, 판이 너무 크게 벌어져 버린 탓이랄까. 물론, 케이블과 미드의 스릴러 물을 통해 높은 심미안을 가진 스릴러 팬들의 증가를 무시한 채 안이하게 극의 갈등이라는 양념 정도로만 스릴러를 써보겠다는 안이한 의도가 근본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어설픈 스릴러에도 불구하고, 이희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15회 비밀의 방 앞에서 죽은 사람들의 생을 기록한 책을 챙긴 채 도망가려던 권재희를 잡고도 최무각은 떨떠름하다. 엄마가 남긴 글을 읽으며 눈물짓는 초림을 보는 그의 심정은 더욱 무거워져만 간다. 죄를 지은 자가 사법적 심판을 받아도, 피해자들의 상처가 씻겨지지 않는다는데 최무각의 무거운 마음이 놓여져 있다. <냄새를 보는 소녀> 초반 최무각은 다짐한다. 내가 살인범을 잡아 죽일거라고. 그리고 결국 16회 권재희는 최무각의 손에 의해 생을 마친다. 물론, 권재희를 죽이고 싶었지만 최무각은 최후의 순간 그래도 법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그런 최무각의 결정이 무색하게, 권재희는 그가 경찰들을 죽이고 호송차에서 탈출하는 순간, 즉, 스스로 법의 경계를 벗어나고, 다시 최무각과의 대결에서 그를 죽이려 도발하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해 버린다. 법을 지키려던 피해자, 하지만 결국 가해자는 스스로 법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피해자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권재희로 인해 동생을 잃은 최무각, 그리고 권재희에게 부모님을 잃은 오초림, 이 사건 피해자 두 사람은 사건 관계자는 수사에 참여할 수 없는 원칙을 벗어나 사건에 참여하고, '냄새를 보는 능력'을 이용하여 범인을 밝혀내고 잡는다. 그리고 결국은, 피치못할 상황 속에서 스스로 범죄를 단죄한다.
<옥탑방 왕세자>가 300년이라는 시공의 경계가 무색하게 '기억'이 있다면 그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라는 사랑의 영원성을 일관되게 주장했다면, 알콩달콩한 로코와 어설픈 스릴러의 경계를 넘어서며, <냄새를 보는 소녀>를 통해 이희명 작가가 어쩌면 말하고 싶은 것은, 고통받는 피해자들, 그리고 그런 피해자들이 무색하게 사과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고통받는 피해자들과, 그들의 사연 따위나, 세세한 알리바이 조차 궁금하지 않은 파렴치한 가해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어쩌면 이희명 작가가 무림 커플을 통해 한번쯤 질러보고 싶은 것은, 얄팍한 법의 보호가 아니라, 피치못하던 어쨌던, '심판'이 아니었을까? 어설펐던 스릴러, 그리고 그런 약점을 덮고도 남을 현실적 연애, 그런 모든 장치를 걷어낸 <냄새를 보는 소녀>의 속내다. 하지만, 그런 속내가 제대로 전해졌을지, 그건 스릴러에 분노하고, 로코에 매료된 시청자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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