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부터  jtbcf를 통해 방영된 <적과의 동침>은 '국민들에게는 통쾌함을 정치인에게는 맷집을'을 표방하며 여야 의원들의 버라이어티 예능을 하고자 하였다. 집권 여당의 김무성, 원유철 의원에서 부터 야당의 박지원, 김재윤 의원까지 내노라하는 국회의원들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 해를 넘기지도 못하고 11월 종영되고 말았다. 처음 '정치인에게는 맷집을'이라며 호기롭게 시작한 프로그램은 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맷집보다는, 정치인 홍보용 프로그램이 되어 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제작진이 마련한 종횡무진 각종 예민한 사안들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정치인들이, '연성화'된 방송 내용으로 연예인들과 깔깔거리느라 얼굴이 붉게 물들고, 이쁜 연예인도 마다않고 자당 대표와 짝짓기를 하느라 골몰하는 모습들만이 화면을 채우고 말았다. 맷집은 맷집이되, 국민들의 따끔한 회초리로 인한 맷집이 아니라, 이른바 '예능감'으로서의 맷집만 키우고만 셈이 된 것이다. 결국, 애초의 건강한 여야 소통, 혹은 국민 소통을 유도하고자 했던 프로그램은 노골적인 국회의원들의 자기 홍보와, 낯뜨거운 편먹기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아마도 '셀프 홍보'로 치자면 그 어떤 연예인도 따라가기 힘든 국회의원들의 방송은, 언제나 이렇듯 국회의원의 '홍보'라는 늪에서 쉬이 헤어나오기가 힘들다. <어셈블리>에서 추상같은 여당의 사무총장인 듯하던 백도현(장현성 분)이 차기 선거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해 부당 해고 노동자까지 이용하고자 하는, 스스로 정치꾼임을 자임하는 상황은 비단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가 되었다. 그렇기엔 지난 토, 일요일 밤 10시 30분 2부작으로 야심차게 시도된 <여야 택시> 역시, 내건 의도와 달리, 이런 의심의 눈길을 피해갈 수 없다. 



민심을 듣겠다며 택시 운전기사가 된 국회의원
<여야 택시>는 말 그대로 여당과 야당의 국회의원 혹은 전직 의원들이 택시 운전기사가 되어 서울과, 상대 당 텃밭인 광주, 대구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민심을 취합하겠다는 취지를 내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이번에 여당 원내 대표가 된 원유철 의원과, 새정치 연합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서울에서, 김문수 새누리당 전 보수 혁신 위원장은 광주에서, 그리고 원혜영 새정치 연합 공천 혁신 추진위원장은 대구에서 택시를 몰고 1일 기사로 나선다. 

그런데 말이 택시 기사지, 이들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국회의원임을 숨기지 않는다. 심지어 택시에는 떠억하니 이 차에는 정치인이 타고 있습니다 라고 붙어있다. 가장 서민적인(?) 교통 수단을 통해 민심을 듣겠다며 말만 택시이지 정치인이 운전하는 공짜 택시를 탄 서민들이, 과연 얼마나 민심을 가감없이 전달할 수 있었을까? 방송에서 보여지듯이, '이거 말 잘못했다가 잡혀가는 거 아냐?"라는 반응이 여전히 나오는 대한민국에서, 결국 대놓고 국회의원이 운전하는 택시에서 전달된 민심이란 일단 '필터링'이 거쳐진 민심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감안한듯 제작진은 2부에서는 아예 sns등을 통해 정치인에게 하고픈 말이 있는 사람들을 모집한 듯하지만, 다둥이 가족이나 정치에 관심많은 여고생들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방송 분량이 없는 듯 보였다. 

흔히 상식적 차원에서 생각하듯이, 아니 그 옛날 임금님이 살던 시절부터 민심을 알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하던 '변복'을 하고, 신분을 숨긴 채 '민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왜 <여야 택시>는 하지 않았을까? 그 답은 택시에 승객들이 타기만 하면 네 명의 국회의원들이 빠짐없이 돌리곤 하던 그들의 명함에서 알 수 있다. 그리고 꼬박꼬박 자신이 누군지 아냐고 확인하고, 그 답에 따라 일희일비하던 표정에서도 답은 확인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군지 숨길 수 없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말이 민심을 알기 위해서라지만, 2회 방영되는 내내 '민심'의 내용보다, 택시를 운전하는 국회의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추기에 급급하다 못해, 나중에는 꼴랑 하루 택시 운전에 '라디오 방송 노래방 출연'이벤트까지 하는 프로그램 내용을 보면서, 과연 이들의 하루 운전으로 '민심'이 전달되었겠다고 공감하는 시청자가 얼마나 있을까? 오히려 저런 택시 운전 코스프레를 통해 이번에 여당 원내 대표가 된 원유철 의원의 얼굴을 알게 되고, 내년 대구에서 총선에 출마할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나, '듣보잡' 국회의원이었던 (?) 강기정, 원혜영 의원을 알게 된 것이 진짜 성과가 아닐까? 제 아무리 아니다 한들, 대구의 새로운 다크 호스로 떠오른 유승민 의원에대해 고군분투하던 김문수 전 지사가, 그리고 박수로 추대되어 입장이 난처했던 원유철 원내 대표에게 유리한 홍보의 장이 되었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택시 운전 코스프레를 하지만 역시 '나으리들'
아니 민심 파악 택시 운전 코스프레를 통해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긴 하다. 국민들의 대표라 지칭되는, 그리고 언제나 '선거'를 통해 자신들이 민심을 국회에 전달하겠다고 큰 소리치는, 심지어 여당 원내 대표까지 된 이 사람들이, 서민들의 실정에 대해, 혹은 서민들이 정치인들에 대해 생각하는 바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국회라는 곳이 대한민국 밖 어디 다른 곳에라도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곳에서 하는 일들은 서민들의 삶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것처럼, 택시 운전사가 된 국회의원들이 택시를 탄 서민들의 말에 보이는 반응은 완전 딴세상을 보는 듯했다. 다둥이 문제도, 동네 빵집 문제도, 청년 실업 문제도, 지역 감정 문제도, 그리고 정치인들에 대한 냉정한 반응에도 매우 새삼스럽다는 국회의원들의 리액션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국회에서 다루는 이른바 '민생'이란 것이 저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여야 택시>를 통해 역설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기껏 젊은 세대와의 공감을 위해 아이돌 멤버 이름 맞추기나 국회의원 이름 알아맞추기나 내세우는 제작진의 한심한 공감 코드가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정치인이 운전대를 잡았다고 성의있게 정치에 대해 자신의 간곡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민심을 주마간산 식으로 정말 스쳐가는 승객의 그것들로 열거해 버린 채 운전대를 잡은 정치인에 골몰한 프로그램의 모양새가 그 진정성에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이다. 

tvn에 동명의 예능 프로그램 <택시>가 있다. 거기에는 택시를 타는 승객이 그날의 주인공이다. 운전대를 잡은 mc는 그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보조 장치일 뿐이다. 하지만 <여야 택시>처럼 민심 대신 운전대를 잡은 국회의원이 돋보이는 민심 파악 예능이라면, 그저 인사치례같은 '덕담'을 넘어 민심은 언제나 주인공 대접을 받게 될런지. 
by meditator 2015. 7. 20. 16:58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 인터넷 생방송으로 방영되던 그 시점부터 7월 18일 tv 방영이 되는 한 주 내내 인터넷은 '김영만 아저씨'로 인해 뜨거웠다. 개그맨 김영만과 동명이인인 종이접기 달인 김영만씨, 하지만 이분은 '김영만씨'아 아니라, '김영만 아저씨'로 꼭 불리워져야 한다. 김영만이라는 이름 뒤에 붙여지는 그 '아저씨'라는 호칭에는 김영만 아저씨와 함께 어린 시절을 공유했던 이제는 어른이 된 코딱지들의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다 큰 어른이 된 시청자들에게 여전히 '코딱지'라는 호칭을 불러주는 아저씨와 함께 한 종이접기 시간은 그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퉁하기엔 소중한 '공감'의 데쟈뷰였다. 




김영만 아저씨가 전해준 '추억'의 감동
'김영만'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폭발적으로 밀려드는 접속자로 인한 서버 다운까지, 종이접기 달인 김영만 아저씨의 <마이 리틀 텔레비젼> 출연은 그 자체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김영만 아저씨가 누구인가, 이제는 어른이 된 그들이 어린 시절 누구나 다 한번쯤은 접해 보았을 그 '종이접기'를 가르시던 분이다. '종이접기'가 뭐라고, 하지만 지금 어른이 된 '코딱지'들은 어린 시절 이담에 공부를 잘 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두뇌를 단련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조기교육'의 당사자들이었던바, 그 '코딱지'만한 시절부터, 손재주가 있건 없건 누구나 한번쯤은 tv를 통해서, 혹은 유치원에서 색종이를 꾸적꾸적 접어야만 했고, 그 가르치던 분의 대표주자는 다름아닌 '김영만 아저씨'였다. 그러기에, 김영만 아저씨는 그저 종이접기를 잘 하던 분이 아니라, 어린 시절로의 회귀, 추억의 상징으로 자리매김이 된다. 

그 아저씨가, 이제는 아저씨라기보다는 '할아버지'같은 김영만 아저씨가 tv에 다시 나와 어린 시절 가르쳐 주던 그 '색종이' 몇장으로 갖가지 신기한 물건을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은, 마치 중년 이후의 세대들이 <국제 시장>을 보며 느끼는 감회와도 같다. 고생스럽던 <국제 시장>의 시절을 보며 눈물짖던 어른들처럼, 다 큰 '코딱지'들은 김영만 아저씨와 함께 다시 색종이를 접으며 그 시절을 회고한다. 

아저씨가 접는 목걸이, 모자 등은 다 큰 '코딱지'들이 예전처럼 자랑스레 목에 걸고, 머리에 쓰고 다닐 수 없는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마치 그 시절 '코딱지'들처럼 접속자들, 그리고 시청자들은 여전히 아저씨의 색종이 마술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를 보내며 반응한다. 그 시절 1cm를 인지하지 못해 '손톱만큼'이라는 아저씨의 기막힌 수사에 무릎을 새삼스레 탁 치며,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저씨의 접는 속도를 따라하지 못해 쩔쩔 매고, 핑킹 가위따위는 없어도 기가 막히게 모양을 만들어 내는 아저씨의 가위 실력에 어른이 된 지금도 나아지지 않은 손재주에 한탄을 하고 만다. 

그렇게 아저씨와 함께 잠시 '코딱지' 시절로 돌아가 '색종이' 마법에 빠지던 이들은, 접속자 수가 많아 서버가 다운되었다는 어려운 컴퓨터 용어를 전하며 좋아하시는 아저씨 모습에 함께 기뻐하다가, 백종원을 제외한 '인간계' 1위를 했다는 소식에 눈물을 보이고 마는 아저씨 모습에 결국 함께 눈물을 흘리고 만다. 자신들을 여전히 '코딱지'시절처럼 대해주는 '아저씨로 인해 세파에 찌들었던 어른 '코딱지'들은 자신들이 한때 아저씨의 색종이 마법만으로도 행복했던 '코딱지'였음을, 그리고 그런 '코딱지'들의 환호만으로도 눈물이 나올 만큼 아저씨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음에 뭉클한 '힐링'을 역설적으로 맛본 것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의 가능성
김영만 아저씨의 출연은 생뚱맞았다. 어린 시절 종이접기 선생님이라니! 하지만 그저 김영만 아저씨가 출연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고, 아저씨의 출연 방송분이 실시간으로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김영만 아저씨의 출연이 <마이 리틀 텔레비젼> '신의 한수'였음이 증명되었다. 

인터넷 방송의 연장, 혹은 확장으로서의 <마이 리틀 텔레비젼>, 그 파일럿 프로그램을 정규화시킨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셰프 대세 시대의 정점을 찍은 백종원이었다. 여러 요식업체를 이끄는 ceo라는 직위를 내려놓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레시피로 친근하게 다가온 인간 백종원의 매력과, 그의 인간적 매력 못지 않은 '더 고급진' 야메 요리 들이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켜 이 프로그램을 단번에 인기있는 토요 예능의 강자로 군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백종원의 압도적 인기는 빛과 그늘이 있었다. 그를 '신계'로 끌어올린 반면에, 그에 적대하는 군소 '인간계"의 고군분투가 생각보다 빛을 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방송의 전설이었던 김구라가 인터넷이라는 한계를 넘어선 '각종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한 신선한 모색을 하고, 여러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며 애를 쓰고, 홍석천, 이은결, 레이디 제인 등 연예계 재주꾼들이 자신의 장기를 선보였지만, 여전히 '인간계'의 영역을 쉽게 넘어서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중에 '김영만 아저씨'의 출현은 백종원이라는 신계를 끌어내리지는 못했지만 그에 버금가는 화제성으로 <마이 리틀 테레비젼>을 이끌었다. 또한 김영만 아저씨의 출연은 그저 화제성뿐만 아니라, '공감' 예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신선하다.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그 '추억'을 <마이 리틀 텔레비젼> 방식으로 공유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종이를 접는 과정 하나하나, 시청자들이 따라 하기 쉽게 친절하게 소개하고, 풀어가며, 그리고 마치 눈 앞에 어린이들과 교감을 하듯 접어가는 '종이접기'라는 것이 절묘했다. '조기 교육'의 이름으로 배운 수많은 것들 중, 그 무엇보다 '종이접기'가 그 누구라도 한번쯤은 해보았고,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하며 고전했던 그 과정 상의 경험을 선택한 것이 제작진의 탁월한 선구안이었다. 

그런 면에서 김영만 아저씨의 출연은 '공감'의 방식에서 예능의 확장을 보여준 것이고, 김영만 아저씨와 같은 무수한 '추억'들로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코딱지'들에게 종이접기를 하던 어린 시절만 있었겠는가, 구성애 아줌마의 '성교육'을 듣던 청소년 시절도 있었을테니, 이제 그 가능성의 여러 버전 중 또 하나를 열어 제치면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7. 19. 15:28

17일 방영된 <삼시 세끼> 정선편 10회는 평균 12.4%, 최고 15.9%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닐슨 코리아 케이블, 위성, iptv 시청률 기준) 거기에 10대에서부터 50대까지 걸쳐 동시간대 1위를 하며 전 연령대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호사다마'일까? 뜨거운 시청률만큼, <삼시세끼>를 둘러싼 각종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이러한 논란이 유명세일까? 시청률 고공 행진의 <삼시 세끼>에 그 '구설수'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밍키, 패밀리일까? 촬영용 소품일까?
17일 방송에 시청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운 이유 중 하나는 다름아닌 밍키의 출산이었다. 이미 그 전회 예고에서 보여진바 있듯이 <삼시 세끼>의 귀염둥이 밍키가 임신을 하고, 10회 드디어 출산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일찌기 이서진이 시인한 바 있듯이 방송 초반 <삼시 세끼> 인기의 견인차 중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 것은 이서진도 옥택연도 아닌 바로 강아지 밍키였다. 그저 동네 강아지였지만 아련한 그 눈빛에, 누굴 보더라도 꼬리를 흔들며 쫓아다니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텃밭을 뛰노는 자유분방함까지,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들여놓은 강아지 밍키가 뜻밖에도 '밍키를 보기 위해 삼시세끼를 본다는' 팬덤까지 만들 정도로 프로그램의 인기에 한 몫을 톡톡히 했다. 오죽하며 만재도라는 외딴 섬에 어울리지도 않는 장모종 치와와 산체를 들이밀 정도로 <삼시 세끼>와 강아지의 어울림은 절묘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뿐이었다. 몇 달이면 성장해버리는 더더구나 가정에서 기르는 애완용 개와 달리, 부쩍 성숙해져 버리는 동네 개 밍키는 <삼시 세끼> 제작진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래서 밍키를 보기 위해 <삼시 세끼>를 본다는 밍키 팬들은 자유롭게 떠돌던 밍키가 줄에 묶여 한 쪽 구석에 '쭈구려져' 있는 모습을 보며, <삼시 세끼> 보이코트를 운운해야만 했다.

그러던 밍키가 다시 <삼시 세끼> 카메라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밥도 먹지 않은 채 마루 밑에 들어가 웅크려 있던 밍키가 알고보니 임신을 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이미 배가 부를 대로 부른 밍키를 데리고 동물 병원에 간다, 집을 지어준다 하며 <삼시 세끼> 패밀리는 밍키에 대한 관심을 보였고, 더불어 시청자들도 아직 어린(?) 밍키를 임신시킨 나쁜 놈을 수배하는 등 부화뇌동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17일 방송에서 밍키는 오랜 산통을 이기지 못하고 제왕절개를 거쳐 '사피와 에디'라는 '바둑이' 두 마리를 출산했다. 

그런데 가슴을 졸이며 밍키의 출산 장면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눈을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다름아닌 출산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밍키를 옭죄는 굵은 체인의 '개줄'이었다. 심지어 그 개줄은 두 마리의 새끼를 낳은 후에도 밍키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새끼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이서진과 옥택연이 밍키를 위한 큼지막한 나무 울타리를 한 집을 지어주었는데도 밍키의 몸에선 개줄이 떨어지지 않았다. <동물 농장>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동물 농장>에선 볼 수 없었던 개줄이 줄곧 밍키의 몸을 얽매이자 불편해 했다. 

불편한 건 그뿐이 아니다. 말이 <삼시 세끼> 패밀리지 자신의 집이 있고 촬영 때만 출연하는 밍키는 강아지 티를 벗은 이후 부쩍 카메라와 <삼시 세끼> 패밀리를 낯설어 하고 눈치를 보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강아지를 낳고 난 후 편하게 몸을 풀고 먹이를 먹어야 하는데도 눈치를 보는 모습에서, 동물 예능의 훈훈함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말이 밍키는 우리 가족이요, 자막은 한껏 밍키의 출산을 칭송하고, 그 기쁨을 만끽하는데, 시청자들은 어쩐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게 불편한 것이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시골 풍경 속 '유기농 리얼 라이프"의 환타지에서 퍼뜩 깨어나는 자각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유명세라기엔 어쩐지 불편한 <삼시 세끼>의 시선
물론 이러한 시청자들의 불편함은 인기의 상승 곡선과 함께 늘어나는 <삼시 세끼>에 대한 과도한 애정 표현이라고, 혹은 유명세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삼시 세끼>와 그것을 지켜보는 시청자들 사이의 시선의 차이랄까, 그런 것들이 비번해지면서, 그저 유명세라기엔 짚어볼만한 지점들이 생겨난다. 

7월 3일 방영된 <삼시 세끼>의 게스트는 김하늘이었다. 방영 이전 일찌감치 각종 뉴스를 통해 김하늘의 삼시 세끼 하우스 방문을 알렸고, 그 어느때보다도 훈훈한 분위기였음을 예고했다. 하지만 막상 김하늘을 출연한 8회를 본 시청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결국은 김하늘의 별명이 되고만 '옹심이'를 야심차게 준비해 온 김하늘, 하지만 칼질조차도 서투른 그녀에겐 버거운 요리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사회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대번에 느껴지는 가장 함께 하고 싶지 않은 태도, 함께 하는 사람들 의견 무시하기, 잘 하지도 못하면서 부득부득 우기기, 그러다 결국 망치기 등등을 김하늘이 8회 내내 보여주었다. 결국 시청자들은 그런 김하늘에 대한 호불호로 의견이 갈렸고, 그로 인한 논란으로 각종 게시판은 뜨거워졌다. 

다음 주 8회의 논란을 알았다는 듯이 <삼시 세끼>는 서투른 김하늘을 '옹심이'라고 놀리며 그것을 웃음의 포인트로 잡아가며, 그런 김하늘을 '만만하고 친숙한'이미지의 인물로 그려냈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김하늘이란 이름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은 후였다. 그렇게 친숙한 이미지로 그려낼 양이었으면 왜 애초에 8회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8회에 그려진 김하늘의 모습은 9회에 달리 포장을 하지 않은, 혹은 포장의 포인트를 달리 잡은 모습이었다. 

그러다 보니 최근 <삼시 세끼>의 총괄 피디 나영석의 인터뷰가 잦아진다. 보아의 출연 이후도, 김하늘의 출연 이후도 나영석은 <삼시 세끼>라는 프로그램 대신 인터뷰를 통해 해명했다. 인터뷰는 인터뷰일 뿐이다. 결국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의 의미는 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피디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삼시 세끼의 공감은 유명세라기엔, 구설이 잦다. '공감'의 시선에 대해 반성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5. 7. 18. 17:32

정도전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정도전> 작가 정현민의 복귀와 영화배우 정재영의 첫 드라마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kbs2의 수목 미니 시리즈 <어셈블리>, 하지만 그 화제성은 아쉽게도 시청률로 이어지지 않았다. 첫 회 5.7%를 보였던 시청률은 모처럼 볼만한 정치 드라마란 호평에도 불구하고 2회만에 4.7%로 자리수를 바꾸며 주저 앉았다.(닐슨 코리아 기준) 




<어셈블리>의 부진, 정도전은 되고 진상필은 안되는 걸까?
2014년에 방영되어 화제를 모았던 50부작 <정도전>은 그 이전의 사극과는 궤를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인물을 시대적 사명에 부름받은 입지전적 인물로 미화시키는데 반해, 사극<정도전>은 고려말 조선초를 배경으로 격동기의 역사 속에 '정치'라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명멸해간 인간적 군상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신성인의 길을 걸었던 정도전은 하지만 막상 권력을 손에 쥐자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의 화신이 되어 정권을 유지하는데 혈안이 된 인물로 변모한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가 취하고자 하는 신념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 속에 빗바래져만 가고, 결국 역사는 그저 명멸하는 '권력'만이 생존할 뿐이라는 걸 '허무'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그 날 것 그대로의 '정치'를 그려낸 <정도전>에 열광했다. 주인공 정도전 뿐만이 아니라, 극중 이인임으로 등장한 박영규까지 연말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는 등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었다. 

그리고 1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5년 <정도전>의 정현민 작가는 마치 고려말의 정도전이 현대로 환생한 듯 역시나 날 것 그대로의 정치 현장을 오늘에 되살린다. 드라마 속 정도전이 성균관을 뒤집어 업고 똥물을 고려 권신에게 투척하던 그 모습은 이제 2015년의 현대의 정도전이 된 진상필은 노동 현장의 해고 노동자가 되어 되살아 난다. 고려 말 화분의 꽃잎을 닦아주던 이인임(박영균 분)은 역시나 여당의 막강 실력자 박춘섭으로 현현되어 집 마당의 꽃나무를 쓰다듬는다. 이권을 위해서는 나라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던 고려 말 권신은 이제 말로는 국민을 위하고 대의를 운운하지만 정치꾼이 되어 다음 선거를 위해서는 야권 후보조차 쟁탈하는 백도현(장현성 분)으로 돌아왔다. 여야의 대립으로 각을 세우는 대신 노동 현장의 부당 해고자가 여당 국회의원이 된다는 설정으로 어설픈 논쟁을 피해, 역설적으로 정치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이미 첫 회부터 출연자들의 면면을 현실 정치인에 빗대어 상상해 보는 재미에서 부터, 여야를 떠나 결국은 '선거'를 통해 이합집산하는 정치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화제를 모았던 <어셈블리>의 성과는 미미했다. 드라마의 첫 출연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이면서도 유연한 화면 장악으로 '역시 정재영'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낮은 시청률은 졸지에 '정재영'이라서 라는 물음을 만들고야 만다. 극적인 반전이었던 부당 해고 노동자의 여당 국회의원으로의 변신은 시선을 사로잡아야 할 첫 회에 노동자들의 해고 투쟁을 선보여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핑곗거리를 만들었다. 시청률이 나오기 전 <어셈블리>에 대한 호평들은 시청률이라는 지표로 읺내 단 한 순간에 사람들이 외면할 이유가 되었다. 결국은 '먹고사니즘'이 판치는 세상에 누가 골치 아프게 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허무맹랑하면서도 머리 아픈 이야기를 들여다 보겠냐는 것이 낮은 시청률의 이유라면 이유이겠다. 



<어셈블리>의 고전, 하지만 속단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신드롬이 되었다던 <정도전>도 처음부터 신드롬이지는 않았다. 일개 성균관 유생이던 정도전이 더러운 권신들의 세상을 참지 못해 똥물을 투척하고 세상을 떠돌때만 해도 <정도전>은 10%를 겨우 넘는 드라마였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셈블리>의 좌초를 섣불리 운운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진상필이 국회로 입성하여 본격적으로 '정쟁'을 벌이기 시작한다면 '정치' 드라마로서 잃었던 시청자들의 관심을 회복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다지고 보면 사람들이 <정도전>에 매료되기 시작한 시점은 이인임과 정도전의 반목이 본격화되면서 부터였기에, 국회로 들어온 진상필이 박춘섭, 백도현과 이념을 넘어선 권력 투쟁을 하기 시작한다면 얼마든지 <어셈블리>의 국면 전환은 가능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부당 해고자 진상필의 필모를 이른 정리와  여당 국회의원으로 빠른 변신은 <어셈블리> 전개의 청신호다. 그리고 거기엔 그저 무난하게 연기를 하는 김규환 역의 택연의 연기가 발연기처럼 보이는 출연자들의 호연이 뒷받침된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과 별개로, 전작 <복면 검사>에서 이제 <어셈블리>2회까지,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나 기능을 담은 드라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에 대해서는 한번쯤 짚어볼만 한다. '먹고사니즘'이 판치는 세상, 결국 사회 비판의 맥은 '우리의 먹고사니즘'이건대, 자기 삶에 몰입한 사람들은 내 '먹고 사니즘'이 아니고서는 외면하는 그 즉자적인 반응이 무섭다. 결국, 인간사 '우리'가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않는 세상에, 갈수록 '내 먹고사니즘'에의 몰입은 점점 더 사회현실을 논하는 드라마들의 입지를 좁히기만 하니 말이다.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이 '내 먹고사니즘'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빠져드는 것은 정작 '남의 먹고사니즘'이라는 것이다. 동시간대 <가면>의 자체 최고 시청률(12.2% 닐슨 코리아 기준)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도 다름아닌 '재벌'들의 이야기. 도대체 살면서 뉴스가 아니고서는 조우할 일도 없는 재벌가의 끝도 없는 이전투구에 사람들이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보기 편하고 재밌으니라는 말로 퉁치기엔 씁쓸한 오늘의 과제다. 


by meditator 2015. 7. 17. 18:12

7월 15일 첫 선을 보인 kbs2의 미니 시리즈 <어셈블리>의 첫 회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자신들의 부당 해고 판결을 파기 환송해 버린 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여, 법을 제정하는 국회로 질주한 일군의 노동자들이다. 


드라마 속 부당해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더라'
극중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진중필(정재영 분)이 조직부장으로 있는 한수조 정리 해고자 복직 투쟁위는 경제시에 터를 잡고 있는 한국 수리 조선소에서 해고된 지 3년된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부당 해고에 대하여 법원은 서로 다른 결정을 내렸다. 1심에서 회사 측에 손을 들어주었던 법원은 2심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고, 마지막 대법원은 결국 1심 법원으로 환송해 버리는 허무한 결정을 내려 버린다. 그런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분노한 진상필은 자신들을 '얼르고 뺨친' 대가로 '사과'라도 하라고 울부짖는다. 항의 농성하러 불법으로 점거한 의원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경제시를 대표한 국회의원은 그들이 찾아간 바로 그날, 불법 자금 수수로 의원직을 잃고 만다. 결국 아침마다 한국 수리 조선소의 아침 체조 구령에 맞춰 함께 체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던 노동자들은 이제 전기를 끊고, 천막을 철거하겠다는 회사의 통고에 벼랑 끝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불법'을 마다하지 않은 농성마저 무위로 만들었던 경제시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은 뜻밖에도 '한수조 해고자 복직 투위'에 호재로 작동한다. 조선소 등 노동자들의 다수가 선거권자인 이곳에 야당 연합이 '한수조 복직 투위' 위원장을 경제시의 야당 국회의원 후보로 선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복직 투쟁의 길이 막연해진 가운데,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면 그나마 자신들의 억울함을 널리 알릴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한수조 복직 투위'를 흔들고, 나서겠다는 위원장과, 결국 국회의원이 일신 상의 입신양명 아니겠냐는 진상필의 만류로 복직 투위는 혼돈에 빠진다. 그런 가운데, 드라마는 뜻밖의 복병이 등장한다. 국회로 쳐들어 온 진상필을 눈여겨 본 여당 사무총장 백도현(장현성 분)이 진상필에게 야당이 아닌 경제시 여당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권유했기 때문이다. 

현실 속 부당 해고, 도돌이표의 끝나지 않는 싸움
여당이냐, 야당이냐, 국회의원에 나갈 것이냐, 말 것이냐, 그래도 드라마 <어셈블리> 속 한수조 복직 투위에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같은 날 <어셈블리>가 끝나고 이어진 <추적 60분-부당해고, 멀고 먼 복직>으로 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다큐는 부당 해고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한다. 부당해고,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행하는 해고를 뜻한다.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는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하거나, 행정 소송, 민사 소송 등을 통해 부당 해고를 인정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셈블리>에서처럼 대법원이 1심으로 되돌리지 않아도, 실제 법원에서 '부당 해고'을 인정 받아도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일하던 현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법'과 같지 않다. 

우선 <어셈블리>에서 진상필이 속한 한수조 복직 투위의 법적 투쟁이 대법원까지 3년 여의 시간이 걸리듯이 '부당 해고'를 인정받기까지의 길고 지리한 법정 싸움 끝에 부당 해고 인정을 받은 노동자들, 하지만 막상 '법적 강제력'이 없는 법원의 판결에 사측은 '복직' 대신 과태료인 '이행 강제금'을 내며 버티기도 한단다. 그리고 그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소송을 제기하고, 다시 끝없는 법정 싸움이 이어진다. 총장 일가의 비리를 폭로하는 바람에 해고된 교수는 해고 무효 판정을 받아들었으나 학교측은 재임용 기간 만료를 핑계로 교수의 복직을 거부했다. 복직을 하기 위해 사장 앞에 무릎까지 끓었던 한 운전기사는 그럼에도 복직이 되지 않자, 모멸감에 스스로 회사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복직이 된다고 해도 '원직 복직'은 요원하다. 우선은 원래 자신이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학생을 가르치던 교수가 배치받은 곳은 취업 지원 센터'잡카페 드리미'였다. 말이 취업 상담이지, 그곳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교수는 학생들에게 풀이나 빌려주며 시간을 보내다, 그마저도 다시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어 다시 '해임 처분'을 받아야만 했다. 13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하고 복직한지 1년만에 양우권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말이 복직이지 한 달 여의 교육이 끝난 후 현장에서 일하던 그를 책상 앞에 앉혀놓고 그 누구도 그와 말조차 나누지 못하게 하는 생활을 견디지 못한 그는 자신의 생을 스스로 접었다. 그나마 '복직'이 되었다고 해고 동료들에게 부러움을 샀던 복직의 결과물이다. 

이렇게 부당 해고를 당한 그 순간부터 노동자들의 삶은 벼랑으로 몰려간다. 몇 년의 시간을 들여 무효 판결에 이르는 시간은 '삶과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가는 지름길이요, 설사 판결을 받아 복직이 된다 한들, 사측, 사용주 측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언제든지 다시 노동자들 '해고'의 늪으로 빠뜨릴 수 있다. '부당 해고'에 대한 법적 판결은 너무 긴 시간, 구속력이 없어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복직 이후의 삶은 보호받지 못한다. 거기엔 그들을 구원해 줄 동앗줄 같은 국회의원 보궐 선거같은 건 없다. 



부당 해고 만이 아니다. 408일 만에 굴뚝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스타 케이칼 노동자 차광호 씨를 기다린 것은 구속 영장이었다. 경영 악화를 핑계로 문을 닫은 회사를 상대로 싸우던 노동자들은 '해고자 11명의 힘으로 해결 할 방법이 굴뚝 밖에 없어 그곳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어셈블리>의 한수조을 연상케 하는 대우 조선 해양 하청 노동자 강병재씨는 50m크레인에 매달려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택시 노동자 송복남, 심정보 씨는 노조 인정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부산 시청 앞 전광판에 77일 째 올라가 있다. 기아차 사내 하청 노동자 최정명, 한규협 씨는 '불법 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국가 인권위원회 전광판에서 21일을 경과하고 있다. 

사용자 측에 유리한 법, 그리고 사용자의 전횡을 묵과하는 각종 시스템이 항존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없는 노동자들은 사면초과다.  외환 위기 이후 노조의 힘이 사회적으로 약해진 이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막다른 길에서 높은 곳으로 오른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살아나 외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노동자들이 오른 높이는 1389, 4166m(한겨레 신문 7월 2일자)이다. 
by meditator 2015. 7. 16. 16:18

7월 14일 방영된 <집밥 백선생>이후 전국의 마트는 '닭'비상에 걸렸다는 기사가 올라온다. 그도 그럴 것이 9회, '집으로 돌아온 닭' 특집에서 백선생 백종원은 닭을 활용한 갖가지 요리를 선보였고, 역시나 그 반응은 이 프로그램을 4주 연속 동시간대 케이블 및 종편 프로그램 1위를 수성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닐슨 코리아 기준 평균 6.6%, 최고 8.1%)


하지만 막상 방송에서 자신만만하게 닭을 해체하며 튀김에서부터 스테이크, 닭갈비까지 현란한 요리 솜씨를 보이는 것과 달리, 요리를 하는 백선생도, 제자들도 그 어느 때보다도 멘트에 있어서 한층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다른 때 같으면 한번쯤 등장할 만한 '슈가보이' 드립은 '소스에 당연히 설탕이 들어가야지'라고 이구동성으로 채워졌고, 이러면 게시판에서 욕을 먹는다며 스스로 자기 점검을 하는 듯한 모양새가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 이어, <집밥 백선생>까지, 백종원의 인기가 거의 심드롬급이 되면서, 그와 그의 요리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고, 백종원 요리에 대한 '직설'을 한 평론가 황교익에 대한 네티즌들의 '호불호' 역시, 황교익에 대한 진화에도 불구하고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백종원 논란? 문제는 백종원이 아니다. 
논란의 시작은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 출연한 백종원이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설탕'을 즐겨 사용하며 '슈가보이'란 별명을 얻으면서 부터이다. 그가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서 부동의 1위가 확고해지면 질수록, 그리고 연이어 출연한 <집밥 백선생>이 인기를 얻고 거기서 그가 하는 요리들이 회자되면 될수록 백종원 식 요리에 대한 논란도 커져만 갔다. 

그런데 애초에 백종원이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 등장한 코너 이름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더 고급진 레시피', 즉 전혀 고급지지 않은 방식으로 사람들이 즐겨먹는 혹은 즐겨 먹고 싶어하는 고급 음식들을 재연해 낸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그가 '고급진 레시피'에서 선보이는 것들은 다 그런 식이다. 콩을 불리고 삶아 갈아서 만들어야 하는 콩국, 레스토랑에나 가야 맛볼 수 있는 스파게티, 스테이크, 그리고 각종 일식, 중국식 요리들, 때로는 시간을 걸려 해놓고서 실패를 하고서, 백주부 스스로 '굳이 이렇게 애써서 할 것 없이 식당 가서 사먹는게 제일'이라는 고급진 요리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즐겨 찾는 요리들을 우스타 소스를 간장과 식초, 설탕, 토마토 소스만으로 재연해 내는 식으로 거의 똑같이 만들어 내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열광과 함께, 비판도 시작되었다. '설탕'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 맛이 너무 진하지 않냐? 심지어, 난 내 자식에게 그런 식으로 요리를 해주지 않았다는 자부심 섞인 비판까지 다종다양한 비판들이 백종원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백종원 스스로가 늘 밝히듯이, 그는 세프가 아니다. 그 스스로 말하듯 한식 조리사 자격증도 없다. 그저 요식업계 종사자로, 오랜 시간을 걸쳐 스스로 개발한 각종 요리들로 각종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로, 가장 대중적인 입맛으로, 그리고 가장 대중적인 수준의 요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애초에 <마이 리틀 텔레비젼>의 취지가 인터넷 먹방 방송의 변형이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듯이, 그리고 <집밥 백선생>의 취지가 집에서 요리라고는 해먹지 않는 네 남자들을 데리고 요리에 대한 입문서 였듯이, 백선생의 요리는 이 시대 가장 대중적인 입맛의 상징일 뿐이다. 그러기에 그에 대한 비판은, 백종원식 요리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거기에 매료된 이 시대의 입맛에 대한 비판이어야 하는 것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나 <집밥 백선생>의 선택은 가장 대중적인 '호'에 어울리는 백선생을 취한 것뿐이다. 만약에 대중들의 입맛이 좀 더 '건강'에 트렌드가 맞춰져 있다면, 아마도 이 방송들은 백선생이 아니라 들판의 잡초를 요리로 승화시키는 '방랑 식객' 임지호를 불러 왔을 것이다. 



황교익 논란, 황교익이 잘못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수요 미식회>에 출연하고 있는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한 백종원에 대한 평이 논란이 되었다. 백종원의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며, 그의 레시피는 그저 외식 레시피일 뿐이며 적당한 단맛과 적당한 짠맛의 밸런스만 맛춘 싸구려 식재료로 맛을 낼 수 있는 수준일 뿐이라고 하여 분란을 일으킨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황교익의 직설이 이미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는데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황교익은 일찌기 서울 시내 내로라 하는 칼국수집을 섭렵한 <수요 미식회> '칼국수' 편에서도 제일 맛있는 집은 슬리퍼 신고 터덜터덜 가서 먹을 수 있는 동네 칼국수 집이 제일 맛있다며 명물 칼국수 집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또한 '닭튀김' 편에서는 '닭'이라는 고기 자체가 별 맛이 없으며, 우리가 맛있다고 먹는 닭맛은 대부분 양념 맛이거나 기름 맛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황교익이 일관되게 하는 주장은, 오늘날 우리들의 입맛이 얼마나 외식 산업의 발달 속에서 현혹되어 극단적으로 변모하였으며, 실제 우리가 맛있다고 먹는 음식의 대부분은 그가 백종원의 음식을 평하듯, 분위기 70, 음식맛 30의 외식 산업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또한 백종원 논란으로 그가 해명하듯, 이미 오래전부터 현대인들의 입맛을 '단맛'과 '짠맛'이 무감각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는 것을 지적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분노한다. 하지만 그 분노의 저변에 깔린 심정은 객관적인 백종원 음식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백종원 음식에 대해 열광했던 자기 자신에 대한 무안함이 아닐까. 말 그대로, 고급지지 않은 재료로 고급진 음식을 만드는 그 과정에, 별거 아닐 레시피로 식당에서 사먹던 맛을 재연해 낸 그 레시피에 매료된 '속된' 자기 입맛을 인정하기 싫어서 일 수도 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나는 공정하고 균형잡힌 사람'(한겨레 7월 14일 이명수의 사람 그물 중)이라는 강박의 발동일 지도 모른다. 공정하고 균형잡힌 내가 좋다고 평가한 사람들 누군가 흠집을 내는 그 '사실'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것이요, '그가 그런 잘못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뒷전이요, 본인들이 생각하는 프레임만이 사실이요, 사소한 실수도 전인격적인 결함의 징후로' 간주하여 분노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저 예능의 트렌드로 잠시 부상한 백종원의 레시피에 못견뎌 하며 나는 내 자식 그렇게 안키웠다는 속단도 씁쓸하고, 맛칼럼니스트의 소신있는 자기 주장을 못견뎌 하는 것도 아전인수다. 백종원이 트렌드라 하여 그의 레시피가 '만능'인 것은 아닌 것이며, 황교익이 '비평'을 했다하여 백종원의 레시피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이다. 황교익이 이미 오래전 '단맛'에 통탄을 할 그 때부터 우리 입맛은 '단맛'과 '짠맛'에 길들여져 무뎌졌으며, 밥 한끼도 해먹기 힘든 세상에 백종원의 레시피는 '감읍'한 오아시스인 것이다. 그저 황교익의 평론으로 무뎌지고 외식 산업에 길들여진 우리의 입맛을 한번쯤 되돌아 보면 되고, 그러면서도 오늘 저녁 백종원의 레시피에 감사하며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면 되는 것이다. 요리를 하면서 설탕 반 스푼을 덜고, 간장 한 숟가락을 덜어내는 실천이면 금상첨화고. 삶의 아이러니에 그 정도 입맛의 아이러니쯤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만 하지 않은가.
by meditator 2015. 7. 15. 16:07

7월 12일 <sbs스페셜>에서는 '슬픈 천륜, 감옥 밖의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살인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한 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살인 사건이 1000 여건, 그 살인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는 분명 법의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부모를 범죄자로 둔 자식들의 운명은 가혹하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남기고 떠나야 할 자식들 때문에 범죄자 아버지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만 아버지의 눈물로는 자식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또 다른 인권의 사각 지대에 놓인 범죄자의 자식들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게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는 중국의 사례를 빌어 부모를 범죄자로 둔 자식들의 이야기를 다룬 <sbs 스페셜>, 바로 다음 날 방영되는 kbs2의 <너를 기억해>는 바로 그 슬픈 천륜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 한 소년의 이야기가 극중 에피소드로 다루어 졌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불행한 우정
이현(서인국 분)의 강의실을 찾아와 살인자의 자식인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토로했던 소년 이정하, 이현의 다독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찾은 현장에서 이정하는 아버지를 감옥으로 보낸 목격자를 죽인 현장에서 그 자신도 상해를 입은 채 잡히고야 만다. 하지만 이현은 이정하의 범행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 정선호(박보검 분) 변호사를 붙여, 그를 보호하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그의 친구인 이진우를 쫓고, 결국 이진우가 이정하의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라 오해하여 벌인 범행임을 밝힌다. 

두 소년의 불행한 우정, 거기엔 이정하를 아버지로 오인했지만, 사실은 이정하에 의해 죽임을 당한 피해자의 아들 이진우와, 그런 이진우를 알고도 묵과해버린 이정하의 혼돈이 있다. 그리고 이진우의 오해를 알고서도 이용한 파렴치범 이정하의 아버지, 이한철이 있다. 

sbs스페셜은 사회적으로 배척받는 범죄자의 자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범죄자의 자식을 '인권'의 차원에서 다루었다면, <너를 기억해>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범죄자의 DNA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범죄자 자식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깊게 다룬다. 이현의 말대로 성범죄자였던 아버지 때문에 사춘기가 되어서 자신에게 찾아온 성적인 혼돈조차 죄의식으로 느꼈던 소년, 누군가를 죽인 아버지 때문에 살면서 누구나 때론 떠올릴 수 있는 나쁜 생각조차 죄책감으로 시달려야 했던 소년은 결국 친부를 오해해 살인을 저지른 피해자의 자식인 친구의 칼을 맞아 세상을 떠나고야 만다. 길지도 않은 18년의 세월의 상당 부분을 자신도 아버지처럼 살인자가 될까 두려움에 떨며 보내다가.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식이라는 어긋난 운명이 불러온 불행한 우정도 슬프지만, 자신의 천륜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사는 범죄자 자식의 가혹한 운명이 이정하라는 소년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소년의 죽음을 통해 자신들의 상처에 한 발씩 다가서는 이현과 차지안 
그리고 이 이정하에 대해 변호사까지 붙여주며 마음을 써주던 이현, 그리고 그런 이현의 마음을 헤아리는 차지안(장나라 분)는 이 사건을 통해, 서로에게 조금 더 한 발 다가가게 된다. 이정하에게 마음을 쏟는 이현에게 정 변호사는 이유을 물었지만 이현은 그저 꽃 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꽃이 있다고 대답을 피했지만, 차지안은 안다. 그 소년에게서 어린 시절 아버지에 의해 '사이코패스'라 규정되어 갇혔던 경험이 있는 이현이 자기 자신을 투영했음을. 그리고 차지안에게 조차 자기 자신을 의심했기 때문에 솔직하지 못한 거 아니냐며 반문하는 이현의 여전한 고뇌를. 

그래서 소년의 죽음 이후, 마음이 아플 이현을 찾아가 차지안은 말한다. 너는 괴물은 아닌 거 같다고. 그것은 일찌기 어린 시절 아버지조차 '내 아들이 괴물'이란 규정을 당한 이현에게는 뒤늦게 찾아 온 면죄부와도 같다. 그렇게 이현은 내내 자신을 옭죄어 왔던 '괴물'이란 올가미가 차지안으로 인해 조금 느슨해 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현 역시 차지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역시나 소년처럼, 차지안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준영과 함께 사라져버린 교도관의 딸로, 공범의 자식으로 취급받으며 살아왔던 차지안의 삶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이만큼 자라느라 수고했다며 쓰다듬어 준다. 

그렇게 이준영이라는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으로 인해 어린 시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진 소년 이현과 소녀 차지안은 이제 어른이 되어 만나, 함께 파트너가 되어 사건을 해결해 가면서 그 사건 속에서 두 사람의 '치유'의 실마리를 얻어 간다. 이미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도 보여졌듯이 상처를 입은 두 주인공은 서로의 상처를 그 누구보다 진솔하게 이해하고 보다듬으며, 그 사건에 개입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한다. <냄새를 보는 소녀>와 <너를 기억해>가 공통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권하는 치유의 해법이다. 

이현과 소년 이정하는 한 권의 동화책을 공유한다. 인디언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을 담은 '늑대 이야기'가 그것이다. 여기서 늑대는 실존하는 늑대가 아니라 마음 속 늑대다. 마음 속에 있는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 두 늑대 중 누가 승리하느냐에 대한 인디언 추장의 대답은, 바로 내가 먹이를 주는 늑대이다. 즉, 이 '늑대 이야기'를 통해 <너를 기억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그간 우리 드라마가 관행적으로, 혹은 편의적으로 다루어 온 결정적 범죄자 사이코패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다. 타고난 사이코패스라 하더라도, 결국 그의 범죄를 결정짓는 것은 '그의 의지'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피해자였던 소년이 자기 자신을 살인으로 내몰수도 있게 되는 것, 혹은 그 반대로 살인자 아버지를 둔 채 평생을 자기 반성으로 살아갈 수도 있는 것, 그리고 아버지에 의해 괴물로 낙인 찍혔지만 오히려 범죄를 쫓는 프로파일러가 되는 것처럼, 결국 어떤 '늑대의 삶을 사는가는 자신의 책임이라는 '주제 의식'을 7회 <너를 기억해>는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의 주제 의식은, 앞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이준영과 이현의 동생을 통해 보다 구체화될 것이다. 
by meditator 2015. 7. 14. 06:25

<1박2일>은 매주 대부분 서울이 아닌 어딘가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곳에서 '고향'을 떠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휴가 때 놀러갈 만한 좋은 곳, 맛있는 것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가 우선이다. 그에 반해, 지난 7월 5일과 12일에 방영된 <1박2일>은 이전의 명소를 찾아가는 것과 달리, 우리에겐 이젠 향수로 남아있는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명절마다 막힌 도로를 뚫고 찾아가는 그곳은 '고향'이라기엔 너무 허겁지겁 '면피용'일 뿐이다. 제사를 지내고 차 막히기 전에 떠야 하는 그런 곳일 뿐이다. 그렇게 명절이 되어서도 '향수'에 젖을 여유조차 없는  고향을 떠나와, 도시에 깃든 우리들은 '철거'가 휩쓸고 간 도시 위에 우뚝 선 똑같은 아파트에 '거주'할 뿐인 시청자들에게 뜬금없이 <1박2일-너네 집으로>편은 '고향'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고향'을 연상케 하기 위해 <1박2일>이 선택한 곳은 여섯 멤버 중 김준호, 김종민, 정준영의 집이다. 물론, 7월 12일 방영분에서 겨우 집에 도달한 정준영의 제주도 집에서, 부모님조차 이제 오래 사시지 않은 그곳에서 어떤 고향을 떠올리게 할 지 모르겠지만, 이미 김준호와 김종민의 집에서 우리가 잊었던 '고향' 내음이 물씬 풍긴다. 

김준호의 집은 이미 그가 출연했던 <인간의 조건>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조건>과 <1박2일>은 똑같은 김준호의 고향 나들이를 어떻게 다르게 소화해 내고 있을까. <인간의 조건>에서의 귀향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1박2일>이 마련한 것은, 김준호가 고향에서 살던 그 시절로의 회귀이다. 고향집에서 살던 때 김준호가 즐겨 입었던 옷을 입고, 그 시절 친구들과 용돈을 벌기 위해 팔았던 야광 팔찌를 팔아 고향으로 향하는 식이 바로 <1박2일>의 방식이다. 그래서 이미 고향에 도착하기 이전, 김준호가 고등학교 때 즐겨 입었다던,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영웅본색>의 의상을 입는 순간부터, 여섯 멤버들은 그 시절로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 시간을 거슬러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곳.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 입던 옷을 입고, 그 시절 용돈벌이 방식으로, 거기에 그 시절 함께 '개구진' 짓을 하던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당시 친구들의 아지트였던 고향을 찾아가는 방식은, 말 그대로 '그 시절로의 회귀'이다. 그렇게 <1박2일>이 정의내린 첫 번째 고향의 의미는, 그저 어린 시절 보낸 곳을 넘어, 그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친구들의 아지트였다는, 그래서 20여년을 지나도, '옛날 그집'이란 말로 퉁치며 친구가 바로 찾아갈 수 있는 그곳에서 기다리는 건 뜻밖에도 지금의 친구들, 그 친구들이 김준호 일행보다 먼저 떠억하니 김준호의 방에 누워, '니 방 참 편하다'며 맞이해주는 그곳은 고향을 떠난 아들대신 아들의 사진을 잔뜩 벽에 붙인채 기다려주는 부모님과 함께, '고향'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그렇게 김준호의 고향집을 통해 첫 번때 고향의 의미를 되새겨 본 <1박2일>이 선택한 곳은 뜻밖에도 김종민이 어린 시절 잠깐 지냈던 이모님 댁 시골 마을이다. 동생을 본 덕택에 며칠을 울며 엄마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곳, 그리고 이제는 그곳에 모신 아버지 때문에 성묘를 다니는 그곳이 생뚱맞게도 '너네 집'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것은, 청소년기의 고향에서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 '동심'의 고향이다. 어릴 적 마을 사람들이 따가운 햇살을 피해 찾아들던 그늘이 되어주던 아름드리 나무가 여전히 맞이해 주는 그곳, 어두운 밤길을 걸어 집에 갈라치면 그 어두운 길을 더 무섭게 하던 상여집이 있던 고즈넉한 시골길, 그리고 그 길에서 나는 냄새조차 여전하 그 곳, 거기서 시청자들은 굳이 김종민과 같은 시골에 살지 않았더라도 내 어릴 적 잃어버린 고향의 어느 길과 냄새를 연상케 된다. 그리고 이제는 함께 하지 않는 아버지의 그늘까지. 훌쩍 커버려 돌아온, 하지만 냄새만으로도 고스란히 기억되는 그곳이다. 


<1박2일>이 찾아낸 고향은 한 폭의 서정시와도 같다. 그저 청소년 시절 살았던 곳, 어린 시절 잠깐 머물렀던 곳을 넘어, 청소년 시절의 정서가, 그리고 동심의 기억이 공유되도록 만든다. 이제는 우스운 복장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찢고 까불었던 그곳, 그리고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안온함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그곳으로서의 '고향'을 연상케 한다. 이미 <서울> 편을 통해 시청자의 감성을 울렸던 발군의 '서정적인 정서'가 다시 한번, '너네 집으로'편을 통해 시청자의 감성을 두드린다. <1박2일>시즌3를 시즌3답게 만드는 고유의 정서다. 덕분에 김준호처럼 청소년 시절을 보내지 않았어도, 김종민처럼 시골에서 지내지 않았어도, 도시에 갇혀 주눅들어 가던 시청자들의 정서는 잠시 '아파트 숲'과 '콘크리트 정글'을 넘어 잃어버린 고향의 하늘에서 유영한다. 

by meditator 2015. 7. 13. 06:22

괴랄하다'는 국어 사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터넷 용어이다. '괴상하다'란 뜻과, '지랄맞다'는 뜻이 결부된 인터넷 상에서 자생된 이 언어가 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뜻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랄맞은 세상'에 '괴상하다'란 단어로 설명할 길없는 감정의 기복을 설명해 내는데는 어쩔 수 없이 딱이다. 이렇게 사전에 없는 단어가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듯이, 기존에 우리가 알던 문화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괴랄하다'란 단어가 이물감없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듯이, 거기엔 문화적 공감이란 것이 전제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제 2회를 마친 <밤을 걷는 선비>, 이 괴랄한 드라마가 과연 '괴랄하단' 단어만큼 대중적 공감력을 가진, 그래서 공중파 수목 10시대를 장악할 만한 것일까? '괴랄하다'란 단어에 딱 어울리는 <밤을 걷는 선비>지만, 안타깝게도 그 드라마가 가진 '괴랄한' 맛은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7.7%로 시작된 드라마의 시청률은 2회만에 6.8로 하락했다.(닐슨 코리아 기준)



2015년 상반기에만 흡혈귀물이 무려 세 편!
<밤을 걷는 선비>에 대해 언급하기에 앞서 2015년 올 한 해, 그것도 이제 7월에 불과한 상반기에만 공중파를 찾은 괴기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아야 할 듯하다. 

2015년 2월부터 5월까지 kbs2tv 월화 드라마로 <블러드>가 방영되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감염'되듯이 불의의 사고로 뱀파이어가 된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현재 역시나 kbs2tv 금토 드라마로 5월부터 방영중인 <오렌지 마말레이드> 역시 뱀파이어와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뱀파이어와 인간간의 사랑을 다룬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이다. 그리고 이제 7월 8일 mbc에서 수목드라마로 <밤을 걷는 선비>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물론 <블러드>는 병원을 배경으로 뱀파이어가 된 외과 의사의 이야기요,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시대를 관통하는 순수한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야기요, <밤을 걷는 선비>는 뱀파이어가 되었지만 홍길도처럼 의적이 된 사내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를 수 있다지만, 결국 이러니 저러니해도 뱀파이어물의 정체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피'를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신체적 딜레마를 가진, 하지만 대신 인간의 능력치를 훨씬 뛰어넘는 능력치를 갖게 된 슈퍼맨 뱀파이어가 주인공을 등장하여, 이종의 인간과 얽혀 사랑도 하고, 갈등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뱀파이어, 흡혈귀? 도대체 이 이종의 문화 콘텐츠가 한 해 동안 그것도 상반기에, 그것도 편성되기도 어렵다는 주중 미니시리즈의 시간대에 줄기차게, 심지어 겹쳐지며 편성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뱀파이어물이 tv로 유입되기 시작한 유래를 따지자면 2005년 시즌3까지 방영된 <안녕 프란체스카>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하다. 그러나 시트콤이지만 프란체스카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국적 불명의 뱀파이어물과는 다르다. 엄연히 체코 프라하에 그 시원을 가진 원조 뱀파이어들이다. 단지 재수없게 한국이란 나라에 불시착했을 뿐. 그렇다. 어린 시절 극장에서 만난 드라큐라 백작에서 알 수 있듯이, 드라큐라, 혹은 뱀파이어, 그리고 흡혈귀는 서양 중세 동유럽을 배경으로 한 설화에서 유래된다. 서양의 설화로 시작된 뱀파이어는 여인의 피를 먹어 영생을 유지하는 창백한 미남자로 인해 매력적인 소재로 각종 문화의 영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건 그저 외국의 이야기였을 뿐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상대적으로 역사적 고증 따위에서 자유로운 로맨스 소설들이 그 매력적인 소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트와일라잇>, <뱀파이어 다이어리> 등 미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청춘물의 소재로 뱀파이어를 등장시키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우리 드라마에서도 뱀파이어란 이종의 문화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부터 시즌2에 걸쳐 ocn에서 방영된 <뱀파이어 검사>가 최근 범람하고 있는 뱀파이어물의 원조격이 된다. 원치 않았던 이유로 인해 뱀파이어가 되고 만 착한 주인공, 그는 자신과 다르게 뱀파이어의 능력을 이용하여 인간 세상을 해치는 무리들을 상대로 하여, 자신이 가진 뱀파이어 능력을 앞세워 싸워나간다. <뱀파이어 검사>는 뱀파이어라는 인간 세상의 질서에 위배된 능력을 가진 자가, 검사가 되어 정의를 실현한다는 아이러니한 정황을 드라마적 재미로 내세워 열혈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뱀파이어 검사> 까지만 해도 엄밀하게 말도 되지 않은 뜬금없이 한국 땅에서 뱀파이어가 된다는 소재가 케이블이란 한계가 오히려 장점이 되어 극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저 매니아들을 위한 장르물이 여러 세대들을 아우르는 공중파로 진출한다는 것은 또 다른 생각해 볼 점이다. <블러드>에 이어 <오렌지 마말레이드>, 그리고 <밤을 걷는 선비>까지, 연속된 시도에도 불구하고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지극히 자의적이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뱀파이어란 소재가 로맨스 소설이나, <트와일라잇> 등에 젊은 층이 열광할 만큼 신선한 소재며, 매력적이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의 공중파 드라마로 모든 세대를 설득해 내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일련의 뱀파이어 드라마들은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조선 선비의 옷을 입고 뽀족한 이빨을 드러내고 덤비는 뱀파이어라니!

1979년부터 1989년까지 무려 10년 동안 방영되었던 <전설의 고향>은 우리나라 전국 방방 곡곡에 숨겨진 전설들을 이야기화했다. 어느 마을 어느 고개 이야기, 산 마루의 바위에 얽힌 사여 등, 드라마 말미 이 구체적인 지명을 등장시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설득시켜 내었다. 이렇듯 10년간의 스테디 설러가 가능했던 이유는 전국을 샅샅이 훑고 다닌 작가 임충씨와 제작진의 이야기를 찾기 위한 여정이다. 차라리 어설프게 외국의 콘텐츠인 뱀파이어를 가자 붙일 바에야 전설의 고향을 복습하며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어떨까.



뱀파이어 소재보다 더 심각한 것은 뻔하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 
하지만 어쩌면 진짜 문제는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이질적으로 차용한다 해도 그것을 설득력있게 잘 풀어내기만 한다면 시청자들은 볼 것이지만, 어쩌면 한결같이 뻔한 이야기 구조를 가져가는 것인지 아쉽다. 

뱀파이어을 다룬 드라마들은 인간의 피를 먹어야 사는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한편, 늘 그의 반대편에 그에 적대적인 나쁜 흡혈귀를 내세운다. <블러드>가 그랬고, <밤을 걷는 선비> 역시 다르지 않다. <오렌지 마말레이드>가 뱀파이어와 인간의 관계가 역전된 듯하지만, 갈등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지진희가 분한 <블러드>의 이재욱, 그리고 이수혁이 분한 <밤을 걷는 선비>의 귀, 이들 나쁜 흡혈귀를 상대로 한 착한 흡혈귀의 목숨을 내건 싸움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배경이 병원이건, 조선시대건 악귀는 끊임없이 악행을 저지르고 그를 수습하고 맞서 싸우다 보면 드라마는 끝나고 만다. 

심지어 <밤을 걷는 선비>는 이 드라마에 출연한 sm 소속의 최강창민과 같은 그룹인 유노윤호가 출연한 <야경꾼 일지>와 흡사한 극의 구조를 가진다. 임금조차도 그 생사를 좌지우지할 절대 악귀와, 거기에 맞서는 선한 이들, <야경꾼 일지>의 사담(김성오 분)이나, <밤을 걷는 선비>의 귀나 국적 불명의 의상을 입고 정체모를 헤어스타일을 하고, 기괴한 힘을 분출한다. 그의 힘에 왕조차도 그의 힘 아래 무기력하게 굴복하거나 죽임을 당하고, 그렇게 악귀의 힘에 농락당한 왕권을 지키기 위해 선한 이들이 뭉친다. 불과 1년의 간격을 두고 방영되는 드라마지만, 마치 같은 드라마를 보는 듯,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음산한 악의 기운을 전지전능하게 뿜어내는 세력이 장악한 묘하게도 역사의 어느 시점이 연상되는 정체 모를 조선의 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퓨전 사극' <밤을 걷는 선비>와 <야경꾼 일지>는 마치 이란성 쌍둥이와도 같다. 

거기에, 일찌기 <성균관 스탠들>에서 부터 시작하여 퓨전 사극에 단골이다 못해 이젠 우러날 것이 없는 사골이 되어버린 남장 여자의 등장은 이젠 지양해야 할 소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유비가 연기하는 조양선 캐릭터는 책괘라는 신선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연기하는 면면이 마치 <성균관 스캔들>에서 김윤식을 연기한 박민영의 모습을 본딴 듯이 닮았다. 

가난하지만 씩씩하게 남장을 하면서까지 가족을 부양하려고 나선 여인, 그 여인보다 아름다운 선비, 그의 말못할 비밀, 그리고 나라 전체를 집어 먹을 듯한 악귀, 마치 인스턴트 음식처럼 반복되어 등장하는 '퓨전 사극'속 이런 설정에 그 누가 질리지 않겠는가. 심지어 외국 수출을 염두에 두기라도 한듯 끼워넣은 아이돌까지. 안이하다 못해 지루한 문화 컨텐츠이다. 심지어 이 정도라면, 용두사미의  괴작이 되고만 이준기의 전작 <아랑 사또전>이 콘텐츠적으론 더 신선하단 생각이 들 정도다. 부디 이 뻔한 설정을 극복하고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by meditator 2015. 7. 10. 16:01

7월 8일 채널 cgv는 영화 전문채널의 특성을 살린 영화 전문 토크쇼 <무비 스토커>를 선보였다. 이른바 '취향 저격 토크쇼'라는 취지를 내건 이 프로그램은 실제 영화 잡지 '맥스 무비' 편집장인 박혜은을 편집장으로 하여, 기자 출신 영화 감독 이병헌, 그리고 현역의 기자 이지혜에, 뮤지션 윤상, 배우 김정민, 최태준이 기자로 등장하여, 각자 취향에 맞춰 주제에 맞는 영화를 소개하고, 그 내용으로 한 권의 영화 잡지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결국 영화 전문 채널답게 하나의 주제로부터 시작된 다양한 영화 소개가 이 프로그램의 본질이지만, 거기에 잡지를 표방한 다양한 기자층을 중심으로 한 좌충우돌 토크가 <무비 스토커>의 매력이다. 


그런데 첫 회, 제 아무리 등장만으로도 다섯 기자들을 움찔하게 만드는 기존 영화 잡지의 편집장이라지만 토크쇼는 처음인 박혜은, 이 명목상 편집장의 곁에서 부편집장으로, 이질적인 다섯 기자들을 때로는 쪼고, 때로는 부추키며 토크쇼로서의 활력을 불어넣는, 결국 실질적으로 이 프로그램의 mc격인 한 인물이 있다. 바로 김구라다. 



mc계의 신종 포식자 김구라
그렇게 김구라는 자신이 진행하거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또 한 편 늘렸다. 고정 mc를 보는 mbc의 <라디오 스타>, <복면 가왕>, <세바퀴>, sbs의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jtbc <썰전>, tv조선<솔직한 연애 토크 호박씨>, tvn의 <집밥 백선생>에 이제 채널 cgv의 <무비 스토커>까지, 말 그대로 공중파와 케이블, 종편을 종횡무진하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 수에 있어서는 최근 예능 mc가 되어 열 몇 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신동엽에 비해 비록 그 숫자는 적을 지 몰라도, 그 활동 범위에 있어서는 신동엽 못지 않은 '포식력'을 자랑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김구라가 누구인가. 2012년 새정치연합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김용민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이후 과거 김용민과 함께 했던 인터넷 방송에서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폄하한 막말 동영상이 문제가 되어 본의 아니게 출연했던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던 사람이다. 그렇게 칩거했던 김구라는 같은 해 9월 tvn의 <택시>를 통해 다시 방송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가정사로 인한 건강 상의 이유로 잠시간의 칩거는 있었지만, 김구라는 오히려 그가 방송을 자진하차했던 이후보다 더 활발하게 mc로서의 영향력을 확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mc로서 김구라와 신동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가장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존재감을 보였던 이경규가 <힐링 캠프>에서의 하차와 더불어 주춤하고 있고, mc계의 양대 산맥이라 일컬어지던 강호동, 유재석 중 강호동은 <우리 동네 예체능>으로 면피를 하는 형편이고, 유재석 역시 <무한도전> <런닝맨>등의 스테디 셀러를 통해 존재감을 놓치진 않지만,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와 jtbc의 새 예능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와중에, 신동엽과 김구라는 불도저처럼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늘려가고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구라만의 다양한 행보 
이 두 사람의 활약은, 이른바 리얼리티 예능이 한 풀을 꺽이고, 다시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한 '토크'예능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현 예능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일하게 스튜디오 예능의 강자로 두각을 나타내지만 신동엽과 김구라의 행보는 좀 다르다. 신동엽은 열 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하고, <마녀 사냥>에서 <오늘 뭐 먹지>까지 다양한 색채를 보이는 듯 하지만, 그 모든 프로그램에서 신동엽은 묘하게도 다른 듯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그런 신동엽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바로 <마녀 사냥>의 신동엽을 들어 설명할 수 있다. 나이가 좀 들었지만, 여전히 '야한 것'에 솔깃한, 솔직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그런 <마녀 사냥> 속 신동엽의 모습은 그가 참여하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버전만 다를 뿐 동일하게 운용된다. 

그에 반해 몇 달 간의 칩거 후 복귀한 김구라의 행보는 좀 더 실험적이다. 여전히 예전에 하듯이 <라디오 스타>에서부터 <복면 가왕>, <세바퀴>까지의 말많고 간섭이 심한 듯 하지만, 게스트의 숨은 매력을 매의 눈으로 놓치지 않는 그의 장기를 아낌없이 내보이는 한편, <마이 리틀 텔레비젼> 등을 통해서는 기존 프로그램에서 보이지 않았던 영역으로의 시도를 거침없이 해본다. 

2015년 4월 첫 선을 보인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서 김구라는 인터넷 방송의 원조로서 합류한다. 그리고 11회에 이른 이제 변함없는 1위를 고수하는 백종원과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사람으로 '백종원 타도'를 내세우며 이 프로그램에 잔존하고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서 김구라는 인터넷 방송에서 하듯 '닥치고 막말'대신, 인터넷 방송도 이렇게 고품격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할 양으로, 야구, 그림,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대해 조금 더 깊은 '지식'을 보여주기에 고심한다. 물론 늘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볼 거리가 있는 방송으로서의 시도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복귀 후 김구라가 타 mc들과의 차별성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게 만든 프로그램은 다름아닌 <썰전>이다. <썰전>에서 두 시사 평론가 이철희와 강용석의 중심에 서서, 각종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풀어감에 있어 김구라는 손색이 없다. 물론 그 이후의 <예능 심판자> 코너에서 때로는 준비 부족으로 질타를 받기도 하였지만, 역시나 철판 깔고 심판하는데 김구라만한 출연자는 드물었다. 결국 '심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예능 심판자>는 사라지게 되었지만, 그 후속으로 경제 문제를 끌어 온 <썰쩐>에서 김구라는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엊그제까지 연예인의 가쉽을 논하던 그가, 오늘 집값과 차값, 증시를 운운하는데 이물감이 없다. 



시사 문제를 논하고, 인터넷 방송에서 인문학을 논하던 김구라가 <집밥 백선생>에서는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겠다고 나선다. 때로는 눈치없이 끼어들어 퉁바리를 얻어들으면서도 굳굳하게 자기 주장을 놓치지 않는 그가 회를 거듭하며 땀을 삐질거리며 요리를 한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영화 프로그램에서 부편집장입네 하고 앉아서 '입을 터는데' 그리 이물감이 없다. 각자 취향에 빠져 자기 주장만 앞세우는 기자들 사이에서 때론 중심을 잡고, 종종 예리하게 핵심을 집는다. 그저 말만 많은 상사가 아닌 것이다. 

7월 8일 방송된 <라디오 스타>에서 김구라는 기승전 '나 잘 났소'의 삼천포식 자기 최면 화법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최근 그가 출연하는 방송을 보면 '나 잘 났소' 할만하다 할 만큼 다양하다. 과연 현재 대한민국 방송가에서 김구라만큼 시사에서 경제, 요리, 영화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제 몫을 하는 mc가 과연 누가 있을까라고 반문한다면 답이 분명해진다. 아마도 이 정도의 역량을 보이는 누군가가 등장하기 전까지 김구라에 대한 '갈급'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김구라의 존재감은, 세상물 좀 먹은, 하지만 그저 나이만 먹지는 않은 그래도 줏어 들은 거가 좀 있는 세상사에 관심많은 아저씨를 대변한다. 그래서 때로는 아저씨스런 잔소리나, 아저씨스런 속물감으로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래서 편하고, 쉽게 공감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무엇보다, 자진 하차 이전 비슷한 예능 프로그램의 mc로서의 확장을 넘어, 방송 칩거 이후 김구라가 보이는 다양한 시도는 쉽게 누군가 따라하기엔 '내공'이 필요한 영역이다. 아들 동현이에게 '책을 읽으라' 강권하는 아버지 김구라가 그저 '권위'나 '허언'이 아님을 최근 김구라의 실속있는 행보가 증명한다. 
by meditator 2015. 7. 9. 1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