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방영된 <로맨스가 필요해3>의 백미는 신주연(김소연)과 그녀를 보살펴 주는 주완(성준)의 관계도, 신주연도 미처 깨닫지 못한 선배 강도윤(남궁민)과의 사랑도 아니다. 내일 방송을 앞두고 겨우 집에 들어가 옷이나 갈아입고 올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조기 폐경을 맞게 된 신주연의 동료이자, 고참인 ( )과의 갈등이다.

( )은 강도윤과 동기이자, 직장 연배로 보면 신주연에게 언니 대접을 받아야 할 처지이다. 하지만 늘 신주연에게 ‘자기야’라고 불리워지는, 신주연을 팀장으로 모셔야 하는(?)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신체적 변화가 생긴다. 흰 머리가 늘고, 달력의 잔글씨가 보이지 않고, 급기야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는 조기 폐경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늘 연애할 시간조차 제대로 없다고 푸념을 하던 그녀에게 일하느라 바쁘고 번거로워 금요일 밤의 원나이트 정도면 즐기기에 적당하다 하던 그녀에게 내려진 여자로서의 사형선고이다.

자신에게 닥친 불의의 신체적 변화에 아노미 상태가 된 그녀는 그 일을 비밀 없이 지내는 듯한 사무실 동료들에게 토로하지만 돌아온 것은 내일 방송을 앞둔 팀장 신주연의 철면피같은 무반응이요, 그저 ‘왜 이렇게 바쁜 시기에’라는 난처함이 역력한 다른 동료들의 표정이다. 그런 동료들의 모습에 분노한 ( )는 ‘갑각류같은 년’이라며 신주연에게 퍼붓고 그 자리를 떠나버리고 바쁜 동료들에게 이기죽거리는 심정으로 카톡으로 사직서를 날려 버린다.

<로맨스가 필요해3>가 사랑에 미성숙한 여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해 주는 멋진 두 남성이라는 환타지에 충실한 로맨스 소설의 얼개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음에도 젊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가는 측면은 그 로맨스 소설이 딛고 있는 현실성이다. 고시를 앞둔 애인 때문에 데이트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고사되어 가는 듯한 ( ), 마흔을 앞두고 있음에도 직장 일에 얽매어 시원하게 연애 한 번 사랑 한번 못해본 ( ), 그리고 팀장의 자리에 오를 만큼 일에서의 성취는 눈부시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사랑에 있어서는 미성숙한 신주연까지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이 그 중 누군가에게 자신을 투영하기에 충분할 캐릭터들이다.

그렇게 일에 압박당하느라 사랑도, 젊음도 제대로 챙겨보지 못한 젊은이들의 삶을 케이블 tvn이 그려내고 있는 동안, 종편 jtbc< >가 그려내고 있는 것은 그녀들의 언니급인 마흔 무렵의 삶이다.

직업적으로 안정된 지위에 올랐지만 결혼이라는 관문을 아직까지 넘지 못해 이제는 불안해 하는 ( ),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화려한 결혼을 했지만 그 번듯함이 허명이 되어 고통으로 다가오는 ( ), 결혼도 넘고, 이혼까지 넘어버린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 가장이 되어 자기 삶을 꾸려낼 수 밖에 없는 처지의 ( )는 우리 시대 마흔 무렵 여자들이 빚어낼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성이다.

sbs의 <따뜻한 말 한 마디>의 ( )는 세대로 치자면 jtbc < >와 같은 세대이다. 하지만,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의 논조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그녀를 연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미경(김지수)의 시선이다. 자신의 동생이 미경의 동생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 )는 자신이 전염병같다고 오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재학(지진희)와 정신적 외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미경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고, 가족, 친지, 심지어 동네 사람들에게서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외도 그 불가피성 여부랑 상관없이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려가고 있는 파장은, 외도가 가족에 미치는 사회 병리학적 조사 보고서와도 같은 것이다. 가족이, 남편이 전부였던 삶을 살았던 40대 중반의 여성 미경의 눈높이이다.

( )가 재학과의 외도 한번에 천형과도 같은 형벌을 겪고 있는 것과 달리, < >에 오면 상황은 한결 여유로워 진다. 비록 그녀가 낳은 숨겨진 딸의 아버지라는, 첫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이제는 엄연히 남의 집 부인과 그 집 남편의 사업상 파트너라는 위치에 놓인 ( )와 ( )는 사람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키스를 나눌 만큼 대담하다. <따뜻한 말 한디>에서 ‘사랑’이기에 더 용서할 수 없던 외도가, < >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조장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 )와 ( )는 한 남자를 놓고 연적이 될 처지이지만, 결혼이란 제도에서 놓여진 그녀들이 철천지원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로맨스가 필요해3>로 가면 한 발 더 나아간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첫사랑을 빼앗겼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신주연이지만 머리끄댕이 한번 잡는 것으로 지나간 회한을 풀어내고, 사업상 그녀가 필요하자 그녀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하는 ‘쿨’한 선택을 한다. 얼굴만 마주대면 으르렁거리다가도 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냉철한 카리스마를 놓치지 않는다. 사랑에 상처받으면 일로 풀어내고, 일이 힘들어 졌을 때 다시 사랑이 채워주는, 양수겹장의 삶이다. 그러기에 신주연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일과 사랑 모두에서 그녀의 버팀목이던 도윤의 냉정함에 마주쳤을 때이다.

이렇듯 동시간대 sbs, jtbc, tvn에서 월화 10시대에 방영되는 드라마는 각 그 드라마의 타겟층이 되는 여성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이혼을 해도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따뜻한 말 한 마디>의 그녀들과, 이혼 후의 가장이 되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 >, 그리고 일이 곧 삶의 주된 동인이 되어버린 <로맨스가 필요해3>의 그녀들은 우리 시대 세대별 여성상이자, 세대별 사회상, 경제상의 반영이기도 하다.

by meditator 2015. 8. 2. 16:46

설 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가 정규 편성되었다. 방랑 식객 임지호와 이영자가 함께 ‘밥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취지하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치유와 치료의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다.

임지호와 이영자 그리고 게스트 김혜수는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나고 자란 풀들을 이용하여 첫 만찬을 즐긴다. 즐비하게 자란 조팝나무와 소루쟁이, 임지호씨가 아니라면 그것들이 음식이 될 거라 상상할 수 없는 식물들이, 방랑 식객의 손을 거쳐 땅의 미역이라 이름 붙여진 소루쟁이 된장국과, 참기름 내가 진동하는 조팝나무순 주먹밥으로 재탄생된다.

이영자는 묻는다. 여의도라면 차도 많이 다니고, 먼지도 많은데 이런 걸 먹어도 되냐고. 그런 우문에 대해 임지호씨는 현답을 내린다. 이미 그 오염된 환경에서 뿌리내린 식물은 이미 그 오염된 환경을 이겨낸 결과물이라고, 사람들이 이 환경 속에서 살아가듯, 그렇게 살아가는 식물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필요 없다고. 늘 사람이 사는 주변 환경의 식물이 바로 그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음식이라는 그의 생각처럼, 한강 고수부지의 식물들은 서울 하늘을 함께 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역시나 필요한 식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게 첫 만찬을 끝내고서 이들은 차를 달려 첫 번째 의뢰인을 찾아 나선다. 의뢰인은 김재민, 23살의 대학생, 청년은 자신의 부모님들께 밥 한 끼를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년이 인도하는 데로 찾아간 곳에서 정작 마주친 것은, 그의 친 부모님이 아니었다. 그가 가슴으로 맞아들인 부모님은 그의 선배였던, 고 문광욱씨의 부모님이었다.

고 문광욱씨는 해병대에 입대한 후 2010년 11월 11일 연평도에 배치를 받았다가, 11월 23일 연평해전 교전 중에 전사한 해병대원이다. 그리고 김재민씨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문광욱씨의 뒤를 따라 입대한 친구와 후배들 23명 중 한 사람이었다.

아들을 잃은 대신 23명의 아들을 다시 얻었다고 말하는 문광욱씨의 아버지지만, 아들이 죽은 후 5개월 동안 술로 세월을 보내며 위가 수축되어 지금도 밥을 잘 못 먹는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도 꿈에서 아들을 만났다고 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첫 휴가 때 사가지고 온 쌀을 아직도 뜯지도 못한 채 보관한다. 아버지를 닮아, 아버지가 평소 좋아하던 돼지고기를 좋아했던 아들, 하지만 부모님은 아들이 죽은 후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부모님에게 임지호씨는 말한다. 아들이 사가지고 온 쌀은 그의 기일에 밥을 해서 함께 먹으면서 마음의 상처도 풀어내라고. 그리고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좋아했던 돼지고기를 이용해 만찬을 차린다. 봄의 생기를 머금은 과일과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군산의 벚꽃 봉오리는 요리의 하이라이트. 열매라는 건 꿈, 그래서 열매를 이용한 요리는 미래를 지향하는 의미를 담는다고 임지호씨는 덧붙인다.

마음으로 얻은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잠시 시름을 잊고 수저를 든다.

이 장면을 보며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팽목항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또 다른 부모님들, 그분들도 언젠가 이들처럼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음식을 드실 그날이 올까….

음식을 통한 치유, 나아가 음식을 통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야무진 시도를 내보인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하지만 그 시도가 안타깝게 방송 시간은 모처럼 늦잠을 자거나, 혹은 볕을 찾아 나가기 좋은 토요일 아침 8시 40분이다. 그래서인가 정지해버린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디딘 이 프로그램의 흔적은 희미하다.

예능이 정지된 시간, 그저 언제 다시 시작해 볼까 눈치만 볼게 아니라, 사실 이 시간에 필요한 것은, 그간, 이 정지된 시간들을 채웠던 지난 시간들 속에서 우리가 그간 너무 흥청망청 웃고 떠들지만 않았는가 하는 반성이 아닐까. 그리고 그저 시간이 지나 조금 무뎌졌다고 다시 예전처럼 그럴 것이 아니라, 세월호의 부모님은 물론이고 전 국민이 상처를 얻은 이 시간… 치유하는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by meditator 2015. 8. 2. 16:33

<tv문학관>으로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kbsdml 빼어난 수작 단막극의 전통은 <드라마 스페셜>로 명맥이 이어졌다. 하지만 해마다 그 입지가 위축되는 수익 구조, 제 아무리 배우들이 '봉사' 정신'으로 참여한다 해도 줄어드는 제작비의 압박, 게다가 점점 뒤로 밀려가다 못해 이제는 부정기적으로 방영되는 존재감은 그나마 공중파 3사중 유일무이하게 단막극의 존재감을 떨치던 <드라마 스페셜>의 위기였다. 


그런 가운데 7월 31일 오랜만에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2015> 시리즈가 찾아왔다. 다섯 편의 시리즈로 찾아온 2015 단막극 시리즈는 두 가지 면에서 신선한 기획이 돋보인다. 
우선 첫 번째, 여름하면 한번쯤은 보고 싶은 '납량 특집' 시리즈로 그 기획을 연 것이다. 첫 번째로 방영되는 <귀신은 뭐하나>는 <전설의 고향>의 명맥을 잇는 귀신 이야기이다. 그에 이어 두번 째로 이어지는 작품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공포물로 재해석한 '붉은 달'이다. 그 뒤를 이어 스포츠 성장물<알젠타를 찾아서>, 감동 판타지물<취객>, 아동성장물<그 형제의 여름>이 이어지면서단막극이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또 하나 수익 구조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이미 <간서치 열전>에서 시도한 바 있는 웹 드라마로서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열어간다. tv 방영과 함께, 네이버 캐스트를 통해 이어 방영을 시도함으로써, 이미 활성화되어 가고 있는 웹 드라마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단막극으로서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한다. 



현대판 처녀 귀신 이야기<귀신은 뭐하나>
여름이면 생각나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납량 특집물'이다. 그 오싹한 귀기에 더위마저 잊게 만드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여름이면 그리워한다. 하지만 올 여름 찾아오는 귀신들은 좀 시원치않다. <밤을 걷는 선비>의 뱀파이어들은 폼은 잡지만 어쩐지 어설프고, <오 나의 귀신님>의 귀신은 남자에게 하룻밤만 보내자고 앙탈이나 하고 다니는 형편이니 이 역시 면이 서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2015> 시리즈의 첫 테이프를 끊은 <귀신은 뭐하나>는 아예 노골적으로 귀신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 

그런데 귀신 이야기하면 그저 컴컴한 밤 으슥한 산골에서 시작될 법한데 <귀신은 뭐하나>의 시작은 화창한 대낯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 대학 캠퍼스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귀신보다 더 오싹한 순간, 무릎까지 끓고 한껏 진심을 담아 고백을 한 남학생은 고백이 무색하게 남자로서의 가장 치욕스런 말을 듣고 상대방 여학생에게 그 자리에서 차인다. 

그로부터 8년 서른 줄의 백수가 될 때까지 그 남학생 구천동(이준 분)은 때면 때마다 그 여학생이 한 말에 걸려 취직이면 취직, 사랑이면 사랑 되는 일이 없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는 그 여학생의 얼굴에 잔인한 낙서을 해대며 외친다. '귀신은 뭐하나 무림이 얘 안잡아가고'
그런데 그의 앞에 그 무림이가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조수향 분)

일찌기 <전설의 고향>버전 죽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는 귀신들의 이유는 바로 '한'이다. 그리고 그 한에는 자신을 죽음으로 이른 그 억울함을 풀지 못한 '복수'의 한이 있는가 하면, 다하지 못한 사랑 같은 애닮은 '한'도 있다. 그리고 구천동 앞에 나타난 귀신 무림은 바로 후자의 한을 가졌다. 처녀 귀신의 다하지 못한 사랑의 한을 풀어달라고, 바로 그 무림으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던 구천동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귀신은 뭐하나>는 8년전 그녀의 이별 선언으로 인해 현실에서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구천동에게 자신의 '한'을 풀어 달라며 귀신으로서의 갖자지 술책을 부리는 귀신 무림의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처녀 귀신의 못다한 사랑 이야기라는 고전적 귀신 이야기의 요소를 내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구조를 가진 작품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도 아닌 구천동 앞에 죽어서 나타난 무림을 보며, 그녀가 찾는 애닳픈 사랑의 주인공이, 그녀가 집착하는 이름표의 의사가 아니라 구천동일 것이라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지만, 두 주인공으로 분한 이준과 조수향의 앙탈하고 얼르고 뺨치는 연기 속에, 그런 페이크쯤은 감내할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결국 도달한 곳은 일찌기 귀신과 사람의 애닮픈 사랑 이야기 <사랑과 영혼>만큼이나 죽어서도 잊을 수 없었던 곡진한 처녀 귀신 무림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뒤돌아 보니, 그런 무림의 자신을 잊어도 천동은 잊을 수 없는 애닮픈 사랑이 있으니, 지난 8년간의 천동의 현실 낙마조차 설명이 된다.  



무서운데 웃긴 처녀 귀신 무림의 도발과, 그 끝에 만난 결국은 누선을 자극하고 만 무림과 천동의 순애보, 웃다가 울리고 마는 <귀신은 뭐하나>는 <전설의 고향>판 처녀 귀신 이야기의 절묘한 현대적 해석이다. 그리고 마지막 천동과의 사랑을 확인하고 별이 되어 떠난 그녀가, 또 다른 귀신을 보내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까지, 웃기고 울리다, 다시 웃음으로, 괜히 뒤를 확인하게 되는 찜찜함없는 깔끔한 마무리까지 <귀신은 뭐하나>는 감동과 재미를 적절하게 배합한 모처럼 찾아온 단막극의 선두주자로 손색이 없다. 

이렇게 여름에 어울리는 납량 특집극이지만, 그것이 그저 과거 <전설의 고향>의 반복이 아니라, 오늘날에 맞는 로코 버전으로 재탄생한 <귀신은 뭐하나>는 그 이야기의 참신성으로 '단막극'의 위상과 가치를 증명한다. 수익구조니, 존재의 당위성이니 해도, 재밌고 알찬 드라마로 증명해내야 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8. 1. 12:26

7월 23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tvn의 새 예능 프로그램 <가이드>, 프로그램 제목답게 방송 이전 홍보 영상은 권오중, 안정환, 박정철 등 세 연예인 혹은 준 연예인들의 '가이드' 과정에 촛점을 맞춘 내용이 보여졌다. 생전 처음 아줌마들을 데리고 '가이드'에 나선 이 초짜 가이드들이 예상과는 다른 여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인해 '멘붕'에 빠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작 첫 날 방영된 <가이드>의 내용을 채운 것은 세 사람의 가이드가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것도 잘 생긴, 게다가 방송으로만 보던 세 남자 가이드를 대동하고 외국 여행을 떠난,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들의 뭉클한 여행기가 화면을 채운다. 




'난생 처음' 여행을 떠난 주부들
되돌아 보건대, 70이 넘은 할아버지들의 여행, <꽃보다 할배>가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제 아무리 당대의 스타로 한 평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평생을 '스타'란 이름, 혹은 '배우'의 이름을 걸고 '일만 하느라' 여행 한번 제대로 못다녀본 '할배'들이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행을 같은 길을 오래 함께 걸어온 친구들과 떠난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 감동적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저 권오중, 안정환, 박정철이라는 연예인 혹은 준 연예인의 이름값에 기댄 여행 프로그램이겠거니 했던, 혹은 그런 식으로 홍보를 했던  <가이드>가 정작 방송 내용에서, '주부들의 힐링 여행'에 촛점을 맞춘 것은 현명한 전략이다.

물론 방영분에서 초보 가이드 세 사람, 권오중, 안정환, 박정철의 매력을 강조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좀 웃기는 연예인 권오중,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안정환, 그리고 아직은 <집밥 백선생>에서 어눌하고 진지함 이상의 그 무엇을 보여주지 않았던 박정철은, <가이드>를 통해 '성'에 밝은 이상 '수석 가이드'로서의 책임감을, 그저 잘생긴 축구 선수 이상의 매력적인 넉살과 오랜 외국 경험에서 오는 여유로운 대처 능력을, 그리고 어눌함을 넘어선 초짜 가이드로서의 순수함과 세심함을 한꺼 드러냈다. 어떻게 저런 조합을?이란 의문이 들 여지도 없이 세 사람은, 불철주야, 심지어 알레르기까지 감수하며 가끔 함께 한 주부들이 '어떻게 연예인들이랑 여행을!'이란 감탄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연예인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 '가이드'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이드>의 매력은 여행을 떠난 여덟 명의 주부들이다. 30년 동안 주부로 살다 처음 여행을 떠난 왕언니, 혹은 30년만에 처음으로 미용실을 닫은 미용사, 오랜 가이드 생활도 접어두고, 늦둥이를 키우느라 고군분투했던 50대 주부, 그리고 30에 홀로 되어 급식실 도우미로 두 아이를 키우느라 여유가 없었던 50대 엄마 가장, 일과 가정을 병행하느라 아등바등 살아왔던 역시나 50대의 커리어우먼, 농사 지으랴, 5남매 키우랴, 시부모님 모시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던 40대 주부, 그리고 아들은 벌써 고2인데, 권고 사직을 앞둔 '미생'인 40대의 직장인 등, 그 누구하나 똑같은 사연이 없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그래서 각별했던 여덟 명의 주부들이 여행을 떠난다. 

한번도 남편과 아이를 떼어놓지 못해 걱정스러워 하던 주부는,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 너무 행복해서 '아이'와 '남편'을 잊었다고 하고, 가이드 생활을 잊지 못하던 주부는 모처럼 '가이드'의 내공을 뽐낸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시부모님께 둘러싸여 살면서도 외로워 노래방 앱에 마음을 의지했던 주부는, 모처럼 자신의 말에 귀기울여주는 누군가를 만나 행복하단다. 그렇게 길지 않은 4,50평생을 자기 자신보다 '가족'을 앞세워 살던 주부들은 '멋진 가이드'가 배려해 주는 난생 처음' 외국 여행에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워한다. 



'주방'에 들어 간 남편들
그렇게 주부들이 여행을 떠난 한편에선 남편들이 주방에 들어선다. <집밥 백선생>을 둘러싼 논란은 '단맛' 논란을 위시하여 다양한 이슈들이 있겠지만, 그 본질은 바로 '주방으로 들어간 남자들'이라 할 수 있다. 요식업계 대표 백종원을 차치하고, <집밥 백선생>의 출연자들을 보자. 기러기 아빠 윤상, 경제 문제로 인해 별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김구라, 그리고 아내의 잦은 출장으로 홀로 식사를 때울 때가 많은 박정철, 거기에 실질적 싱글은 손호준 한 사람 정도이다. 

즉 누군가의 남편이고 가장이지만 '돈'을 버는 것 외엔 무능했던 남자들이 '칼 잡는 법'부터 시작하여, 장을 보고, 이제 하나 둘씩 요리를 만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백선생이 가르쳐 준 '야메' 아닌 '야메' 요리로 뚝딱 요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그들의 '입맛'도 갈수록 세련되어져 간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 이래로 사람들이 열광했던 백종원 요리의 본질은, 집에서도 내가 별로 어렵지 않게, '그럴 듯한' 집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였다. 

그렇게 tv 속 남편들은 '요리'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가족을 위해 봉사해 온 '아내'들은 자신만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하다. 2014년 생활 시간 조사에 따르면 10세 이상 인구가 하루 평균 '식생활'을 위해 투여하는 시간은 남성 10분, 여성 1 시간 8분이다. 여성은 맞벌이를 하면 남편은 그나마 8분으로 줄어들지만, 여성은 1시간 28분으로 늘어난다. 심지어 여성만 버는 집에서도 남성은 28분을 하는 '집밥 노동'을 여성은 1시간 25분이나 한다. 이렇든 저렇든 현재 대한민국 여성들은 그 말이 좋은 '집밥'의 노동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레디안, 김원정, 집밥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중) 

그런 면에서 <집밥 백선생>이 '단맛' 등 많은 논란거리에도 불구하고 주방의 문턱을 낮추는데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턱이 낮춘 들 여성의 처지가 나아지고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지난 1월 15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4,50대 고용율 각가 65.1%, 60,9%로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가계 소득 정체와 불안정한 노후 준비로 인해 취업 시장'으로 나온 중년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즉, 오랜 시간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왔던 주부들은 이제 그 '가사'와 '육아'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 다시 돈벌이에 나서고 있으며, 현실에서 여전히 '가사'의 부담도 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바로 통계적으로 증명된 대한민국 주부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가이드>는 출연한 주부들의 말대로 '꿈'같은 이야이다. 평생 가사 일에 육아에, 그리고 돈벌이에 여유가 없던 주부들에게 '자신의 돈을 출혈하지 않는' 외국 여행이라니 말이다. 더구나 '멋진' 연예인이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는. 그런 면에서 어쩌면 <가이드>는 <꽃보다 할배>보다 더 뭉클한, 감개무량한 환타지이다. 

<가이드>와 <집밥 백선생>의 출현은 고달픈 현실의 정점에 그 요구가 닿아있다. 대리 만족 예능의 구현이요, 환타지이다. 

by meditator 2015. 7. 31. 11:14

2011년 7월 '힐링'이라는 트렌드에 맞추어 '스타'를 초대하여 '스타'도 힐링하고, 그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도 '힐링'을 시켜준다는 모토 하에 시작되었던 <힐링 캠프>가 햇수로는 4년, 회차로는 어언 190회를 넘어섰다. 여자 mc였던 한혜진이 결혼과 함께 물러나고 성유리가 그 뒤를 잇는 시간, 이경규는 <힐링 캠프>의 중심이 되었고, 김제동은 조용히 그 곁을 지켜왔다. 때로는 그의 존재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정도로. 


'힐링'이란 단어 만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고 설명되었던 시기가 지나고, '힐링'이란 단어만으론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힐링'을 받겠다고 <힐링 캠프>를 드나들던 스타들의 수만큼이나, 이제 나올만한 사람은 웬만큼 다 나왔고, 때로는 몇 번씩이나 등장한 '스타'들도 있었다. 고갈된 '스타'풀에, 그리고 변화된 트렌드에 맞춰 때로는 집단 토크쇼를 시도해 보기도 하고, 요리도 해보고, 시청자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지만, 그 어떤 것도 <힐링 캠프>의 진부한 분위기를 쇄신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스타'들의 이야기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고, <힐링 캠프>와 용호상박을 겨루는 <안녕하세요>처럼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자중지난'에 빠진 <힐링 캠프>는 일대 혁신을 시도하였다. 지난 4년간 실질적으로 <힐링 캠프>를 이끌어 온 이경규를 하차시킨 것이다. 반면에 그의 곁에서 조용히 지내오던 김제동을 단독 mc로 잔류시켰다. 김제동의 잔류? 하니 사람들은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토크 콘서트의 방송 버전인 <톡투유>도 비교한다. 이에 <힐링 캠프> 제작진은 묘수를 짜낸다. 기존의 <힐링 캠프>와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를 '합체'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힐링 캠프> 더하기,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
새로운 <힐링 캠프>의 시작은 김제동의 토크 콘서트처럼 시작되었다. 500명, 아니 499명의 방청객들, 그리고 그들을 단번에 들었다 놨다 하며 좌중을 집중시켜 버리는 김제동,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499명의 관객들은 개었다 흐렸다, 박장대소를 하다,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이래서야, jtbc <김제동의 톡투유>와 다르지 않지 않은가. 그래서 제작진은 499명의 관객들을 mc로 둔갑시킨다. 그리고 단 한 명의 게스트, 첫 번째 게스트 황정민을 무대로 올린다. 짧은 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졸지에 mc가 되어버린 499명의 관객들이 우후죽순 황정민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고, 그에 따라 프로그램은 마치 변칙 복서처럼 좌충우돌한다. 황정민을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 관객은 영화 속 그의 대사를 주문하고, 중학생 관객은 이도저도 아닌 자신의 현재를 투영하여 질문을 던지고, 황정민의 명쾌한 답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은 거 같다'는 당돌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갈길이 아득한 배우 지망생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지 않는 자에겐 운조차 찾아올 길이 없다는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가 더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황정민'이란 인물에 천착해 진행되던 프로그램은, 후반 게스트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작성한 관객들의 질문에 따라, 애초에 의도하였듯이 특별한 사람과 함께 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이제 황정민은 게스트지만, 그의 뒤에 가득 메운 '포스트잇' 속 보통 사람들의 사연을 함께 하는 순간, 특별한 스타가 아니라, 그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또 한 사람으로, 관객들의 사연에 함께 한다. 그와 더불어,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가세한 관객들과 함께 풋풋한 젊은 남녀의 연애사에 개입하기도 하고, 암에 걸린 아내와 남편의 애틋한 사연에 함께 눈물짓기도 한다. 어느새 프로그램은 '황정민'으로 인한 '힐링' 대신, 499명이 함께 하는 '공감'의 온도를 높인다. 

이미 <안녕하세요>가 선점한 일반인 예능, 거기에 후발 주자로 종종 구설수에 오르며 화제성을 얻어가는 <동상이몽> 그리고, 김제동이 토크 콘서트를 고스란히 옮겨온 jtbc의 <톡투유>까지 이미 일반인 예능의 구색이 맞춰져 가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보통 사람들의 예능으로 출사표를 던진 <힐링 캠프>의 선택은 기발했다. 기존 연예인 예능과 일반인 예능의 결합은 신선한 실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저 '첫 술에 배부르랴'란 덕담을 던기지엔, 개편 첫 회< 힐링 캠프>가 남긴 숙제는 많아 보인다. 스타 토크쇼와 일반인 예능의 '콜라보레이션'은 신선했지만, 동시에 어정쩡할 수 있다는 것을 첫 개편된 <힐링 캠프>가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황정민이란 스타에 집중을 하는 것도 아니고,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에 흠씬 접어들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것도 아닌 측면이 드러난 것이다. 

김제동의 지인으로서가 아니라, 영화 <베테랑>의 개봉을 앞둔 배우 황정민이 과연 개편된 <힐링 캠프>에 나와서 어떤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는가에 대해서는 고개가 꺄우뚱해진다. 분명 마지막 황정민은 매우 만족스러운듯한 의사를 보였지만, 영화를 홍보한 것도 아니고, 이전 <힐링 캠프>에 출연했을 때 풀어놓은 그의 '히스토리' 이상의 그 무엇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함께한 관객들과 나눈 이야기가 그닥 신선해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중학생조차 그의 답을 듣고 '운이 좋았던'거 같다고 정리하듯, 그의 충고나 자신의 지나온 시절에 대한 설명은 '성공한 사람의 후일담'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던져지는 일반인 mc들의 질문에 능란하게 대응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스타를 1인 게스트로 하고, 그에 맞선 김제동과 나머지 499명의 관객을 한데 묶어 500명의 mc로 포진시킨 구도는 언뜻 시선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김제동이라는 '토크 콘서트'의 주재자가 개입하여 프로그램을 원활하게 만들 여지가 적은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500명 정도의 관객,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시청자들조차 만족할 만한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토크 콘서트'의 달인 김제동 정도도 될까말까한데, 제 아무리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우라도 황정민을 무대 중앙에 올려놓고 그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것은 버거워보였다. 그나마 오랜 연극 무대 경험을 가진 황정민이 그 정도일진대, 그보다 무대 경험이나 내공이 적은 사람이라면 과연, 1인 게스트로서 <힐링 캠프>를 이끌어 갈 수 있을 런지. 물론 말로는 김제동을 포함한 500명의 mc라지만, 결국 무대 중앙에 집중할수 밖에 없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게스트의 능력 여하에 따라 프로그램의 재미는 함께 널을 뛸 수 밖에 없단 것을 <힐링 캠프>는 보여주고 말았다. 

애초에 계획은 스타의 이야기도 듣고, 그 역시 보통 사람으로 관객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는 취지는 가상하지만, 스타도, 관객도 그저 맛보기가 되거나, 이도 저도 따로 놀거나, 관객들의 이야기나 듣다 가는 무게 중심의 어정쩡함이 숙제로 남게 된 것이다. 
by meditator 2015. 7. 28. 06:32

5월 7일과 14일 <sbs스페셜>에는 하얀 가면을 쓴 일군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들은 바로 '의사'였다. '병원의 고백'이라는 2부작을 통해 '의료계'의 현실을 현장의 목소리로 토로했던 '의사'들은 자기 고발적인 프로그램의 내용때문에 얼굴을 드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숨기고 낱낱이 의료계의 현실을 들려준 덕분에, <sbs스페셜>은 '의료수가'로 인해 히포크라테스 선서 대신, 주판알을 튕겨야 살아남는 의료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이제 7월 26일 의사들은 다시 한번 '하얀 가면'을 썼다. 바로 26일 자정을 기해 마지막 남은 메르스 환자가 격리에서 해제된, 사실상 종식된 메르스를 복기하기 위해서이다. 



메르스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신종 베타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중동 호흡기 증후군 메르스는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병된 후 3년간 453명의 사망자를 내었지만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공포의 대상이었다. 

<sbs스페셜-메르스의 고백>은 메르스 바이러스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바레인에 다녀온 첫 번째 환자를 숙주로 그 어떤 제재도 받지 않고 가뿐히 대한민국에 입국한 메르스, 그로부터 186명의 확진자와, 6729명에 이르는 격리자, 그리고 36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 시설이라 자타의 공인을 받았던 삼성 서울 병원을 비롯하여 몇몇 병원을 '자체 폐쇄'이르는 병원 시스템의 마비를 가져왔다. 과연, 이토록 무방비하게 대한민국이 '메르스'에 당하게 되었는지 jtbc <썰전>의 이철희 소장과 조동찬 의학 전문 기자가 각계 전문가와 현장 의료진, 그리고 보건 당국자들을 만나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메르스 사태'와 관련하여 전 사회가 경악했던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외래의 바이러스 질환에 이토록 무방비하게 무너졌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로 들어본 <sbs스페셜>을 통해, 이전의 '병원의 고백'처럼 시청자들은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접하게 된다. 


평택 성모 병원에서 시작된 메르스, 하지만 첫 번째 감염자가 확진을 받을 때까지의 시기는 늦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현장 의료진의 반응은 뜻밖이다. 고열의 환자를 이름조차 낯선 '메르스'라 의심했던 '의사'를 '의대 시절 공부를 잘 했구나'란 감탄의 반응을 보이고, 확진이 늦어진 상황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니란 이유로 확인조차 하러 들지 않은 '질병 감염 관리 본부'의 늦장 대처가 짚어진다. 하지만, 그건 '메뉴얼'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바이러스성 질환에 대한 '메뉴얼'은 있었지만, '메뉴얼'대로 시스템을 가동하여 '긁어부스럼'을 만들려고 하지 않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메르스 사태를 확산시켰음이 짚어진다. 그저 병원 복도에 잠시만 않아있어도 알아차릴 수 있는 상황을. 책임질 위치에 있는 그 누구도 '현장'에 나가보지 않는 '안일한' 태도가 결국 '메르스'를 확산시킨 주범이었음을 확인시켜준다. 

나아가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 라는 전국민적 경악을 낳았던 '삼성 서울 병원'의 무능도 짚는다. 원장 위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사장'이라는 존재가 삼성 서울 병원을 '의료'의 공익성보다는 '이윤 집단'으로서의 가치를 우선하게 함으로써 '전염병'대응에 무능하게 대처하도록 했음을 지적한다. 이는 결국 '병원의 고백'의 연장 선상이다. 대한민국의 의료체계가 '공익' 성보다는 '돈벌이'에 우선하는 현실이 다시 한번 까발려진 것이다. 또한 '삼성'이라는 체계가 가진 습성인 '비밀주의'가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들 내에서 조차 정보가 공유되지 않도록 하여, 메르스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없는' 체계로서 삼성 서울 병원을 만들었다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결국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붕괴, 질병 관리 시스템의 무능
'비밀주의'는 삼성의 습성만이 아니었다. 현장의 의사들조차 '메르스'에 대해 알 수 없어 감염자가 마구 돌아다니게 방치했던 상황, 결국 박원순 서울 시장의 한밤 기자 회견을 봇물이 터져버린 메르스 정보 공유의 문제도 다루어 진다. 감염 분야 전문가들의 입장에 바라본 박원순 시장의 정보 공개 기자 회견의 정당성 여부에서 부터 시작하여, '전염병' 대응에 있어 무지하고, 무능력했던 정부의 대처 시스템의 원인도 적나라하게 짚어본다. 결국 '슈퍼 전파자'라는 희생양을 만들어 내고만 시스템의 무능을 드러낸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미 ' 병원의 고백'에서 부터 비판된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 의료 수가배분의 문제가 다시 한번 지적된다. 1인당 감염 관리료 150원인 대한민국의 현실, 그 비용을 가지고 정부는 '음압 병동'을 짓고 '바이러스성 질환'에 대처하라고 한다고 현장의 의료진을 입을 모은다. 이는 결국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고. 



질병 관리 본부 등 정부 측 관계자는 이 정도면 '메르스'라는 바이러스 성 질환에 대해 '양호하게' 대처한 것이 아니냐고 정부측은 자부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정작 '메르스의 고백'을 통해 밝혀진 대한민국 질병 관리 체계의 현실은 '메르스'가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 병원, 150원의 감염 관리료를 측정한 정부, 그리고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는 '메르스'와 같은 감염성 질환에 대해, '이 정도면'하며 자부하며 '박원순 사태'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정보 공개'조차 했을까 의심스러운 관료들, 심지어 정부의 발표 그 순간에조차, 국민들의 건강보다, 그 누군가의 이해가 우선되는 시스템은 결국 또 다른 '메르스'의 발병과' 또 다른 '슈퍼 전파자'라는 희생양은 필요충분 조건이 됨을 자연스레 이해시킨다. 

<sbs스페셜-메르스의 고백>은 몇 달간 겪었던 메르스 사태, 그리고 그로 인한 다수의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이 그저 '메르스'라는 우연적 요소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데 주력한다. 이미 '병원의 고백'을 통해 고발하려고 했던  영리 산업이 되어버린 '의료계의 현실'과 그것을 방조하는 정부 정책의 연장 선상에서 이번 '메르스' 사태를 다루고자 한다. 달라지지 않을 현실, 여전한 시스템의 무능, 그 속에서 환자 0명, 마지막 격리자의 해제로 '메르스 사태' 종식을 선포하려는 정부의 발표는 그저 무수한 지뢰 중 하나를 누군가의 희생으로 제거한 것에 불과하다. 

by meditator 2015. 7. 27. 07:02

7월 24일 첫 선을 보인 jtbc의 <라스트>, 정관사 the와 합쳐져 종말, 결말, 끝, 그리고 인생의 종말을 의미하는 이 단어가 뜻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정상적인 사회 생활에서 튕겨져 나온 잉여 인생, 노숙자들을 의미한다. 전국의 1만2천명(2013년 기준), 서울시에만 4천여명 삶에서 방치되고, 일반인들에게 멸시받고, 그 스스로 어떤 삶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삶의 공동체, 그리고 그 속에 암약하고 있는 100억의 지하 경제가 바로 드라마 <라스트>의 배경이다. 


<라스트>가 기대되는 이유
지난 6월 30일 jtbc본사에서 열린 드라마 cp간담회에서 송원섭 드라마 제1cp는 시청률 20%를 넘는 주말 드라마의 반 정도 밖에 안되는 <미생>이 전국적인 화제성을 보인 점을 예로 들며, 시청률을 뛰어넘은 의미를 지닌 것이 화제성이며 jtbc의 드라마는 <미생>처럼 시대성을 보여주는 드라마, 지상파에서는 하지 않는 차별화된 드라마를 지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대성을 보여주는, 지상파와 차별화된 드라마로 첫 선을 보인 드라마가 바로 24일 첫선을 보인 <라스트>다 



조회수 600여만건을 기록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라스트>는 지상파에서 다루기 힘든 노숙자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지하경제를 다룬다. 비범한 두뇌를 가진 전직 작전 세력이었던 장태호(윤계상 분)가 작전에 실패하여 경찰과 사채업자에게 쫓겨 하루 아침에 노숙자의 신세로 전락하게 되고, 거기서 돈 되는 일이라면 강매, 장기 밀래, 대포 통장 거래 등 그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노숙자 지하 세계에 발을 들이며 그곳에서 승부사의 기질을 다시한번 발휘해 가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그 어떤 드라마보다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신선한 스토리이다. 

지상파에서는 엄두를 내기 힘든 노숙자를 배경으로, 케이블에서나 다룰법한 장기 밀매 등의 지하경제가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라스트>는 그렇다고 느와르의 침침함에 기대지 않는다. 외려 하루 아침에 노숙자가 된 장태호가 단돈 5000원을 위해 우연히 노숙자 세계 넘버7을 때려 눕히면서 시작되는 넘버1을 향한 생사를 건 액션어드벤쳐의 성격을 띤다. 그런가 하면 장노인 정종준과 변칠복이 김영웅 등이 펼치는 질펀한 노숙자의 세계는 언뜻 <유나의 거리>가 보여준 질펀한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과, 그속에서 벌어지는 '주먹'리그의 인간 군상이, <라스트>의 첫 회에서 떠올려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는 sbs을 통해 <추적자 the chaser>, <황금의 제국> 등을 통해 독자적인 연출 세계를 확보한 조남국 피디의 첫 jtbc연출작이라는 점이다. 과연 그가 <추적자 the chaser>와 <황금의 제국>을 통해 선보인바 있는 사회 고발적인 세계관이 jtbc와 <라스트>라는 작품을 통해 얼마나 자유롭게 발휘될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와 더불어 첫 회 단 한 장면으로도 시선을 사로잡은 박혁권을 비롯하여, 이미 조남국 감독과 함께 한 <추적자 the chaser>에서 주목받은 바 있는 넘버 7 뱀눈 역의 조재윤에서 부터 넘버 1이범수까지 걸출한 조연들의 포진이 <라스트>의 빼놓을 수 없는 기대 요소이다. 마치 잘 차려진 조연진에 주연 윤계상만 잘 떠먹으면 되는 모양새이다. 




제작사간 판권 분쟁이라는 잡음에도 순조롭게 첫 선을 보인 <라스트>.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웹툰 원작이 오히려 <라스트>의 뒷덜미를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첫 회 선보인 적나라한 서울역 노숙자의 세계와, 원작보다 더 절묘한 조연진들의 연기가 우선은 그런 우려를 잠재울 만 하다. 그저 앞으로 매력적인 장태호의 캐릭터를 윤계상이 잘 살려내기만 한다면, <라스트>는 순풍에 돛단듯 할 것이다. 
by meditator 2015. 7. 24. 23:55

2008년 요미우리 신문발 보도로 한일 정상 회담 과정에서 일본의 독도 편입에 대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란 표현으로 정체성을 의심받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를 4개월여 남기고 독도를 깜짝 방문했다. 이로써 이명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독도를 방문한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의 독도 방문으로 오히려 독도는 국제적 분쟁지역으로 부각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일본내 반한 감정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안그래도 일본내 끝없는 불황의 지속으로 재일 외국인들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이 격해지고 있는 시점,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 상황의 예봉을 한국인으로 돌리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의 냉랭하다 못해 '소원'해진 한일 외교 정책, 그리고 그런 한국의 태도에 맞불을 놓기라도 한 일본 정부의 반한 시위 등 혐한 감정에 대한 암묵적 방조는 2002년 월드컵, 그리고 드라마 <겨울 연가>, 이후 동방신기 등 아이돌 그룹의 인기로 융성했던 한류 붐의 침체기를 불러온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한류'라는 막연한 문화 현상, 혹은 문화를 빙자한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한류', 하지만 실제 일본에서 '한류'는 '신오쿠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문화 컨텐츠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고, 그 속에는 거기에 깃들어 살아가는 재일 한국인 뉴커머들이 있다. 



신오쿠보 화려한 영광과, 긴 그늘
신오쿠보 지역이 원래부터 번성했던 상업지구는 아니었다. 일본 신주쿠에서 10분 남짓 신오쿠보, 한류 거리, 코리아 타운이라 불리어지는 이곳은 애초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들이 많이 다니던 공장 주변에, 한인들을 위한 식당, 가게들에서 그 유래를 추정한다. 하지만, 그때는 코리아 타운이라 불리워지지 않았다. 그저 퇴폐 유흥 업소들이 즐비한 후미진 골목이었을 뿐이다. 그러던 곳이 한류 열풍과 더불어 화려하게 만개했다. 

하도 길을 메운 인파가 많아서, 심지어 '걷다가 서지 마시오'라고 했던 이곳,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며, 신오쿠보를 중심으로 한국 식당, 화장품, 한류 인기 상품을 파는 곳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분위기를 급락시켰다. 무엇보다 일왕에 대한 남다른 외경감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죄 발언은 감정적 충격파가 컸다. 그에 이어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단 한번도 이루어 지지 않는 정상 회담으로 양국의 냉각 분위기는 더해졌고, 그는 곧 일본 내 한류 열풍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류가 붐을 이루었을 때는 지상파 방송에서도 한국 문화 등에 대한 소개가 자주 등장하여 일본 문화 전반에 한국에 대한 접근성을 용이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 냉각된 한일 관계는 그 자리를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대신한다. 그리고 신오쿠보 중심가에서는 혐한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겨진 상인들은 한류 붐을 타고 높아진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미노게임처럼 파산 대열에 빠져들고 만다. 남아있는 상인들도, 혐한 시위대가 던진 빨간 페인트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채, '대한민국'이라는 간판을 가리고, 가게에서 손님을 맞는 대신, 도시락 배달을 한다. 

정부의 정책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변하고, 산업으로서의 한류는 편의적으로 흐름이 달라지지만, 그 자리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쉽게 그 곳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한때는 tv에 소개되기도 했던, 재료가 없다며 사람들의 줄을 끊기도 했던 호떡 장수는 '화양연화'처럼 그 시절을 회고할 뿐이다. 그나마 이전에 돈을 벌어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나은 편이다. 문을 닫은 가게들이 즐비하고, 파산 신청을 한 사람들은 일본에서도, 그렇다고 이제 한국으로도 발길을 돌리지 못해 방황한다. 



물론 정부의 냉각된 외교, 한 철 장사같았던 한류 열풍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신오쿠보 상권의 한계도 있다. 동아시아 최고라 불리워지는 챠이나타운처럼 문화콘텐츠로서의 내실을 키워가지 못한 채 화장품 가게와 한류 상품에만 집중한 상권의 특성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신오쿠보가 인기가 있자 너도나도 몰려들어 동일한 업종에 경쟁이 붙어 스스로 부가가치를 낮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혐한이나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일본 내 양심적인 움직임이 등장하고, 혐한시위도 한풀 꺽여 가는 이 즈음, 여전히 신오쿠보를 중심으로 일본내에 자리잡고 살고자 하는 3세대 한인들은 일본 내 공존을 위해 고민한다. 
by meditator 2015. 7. 23. 15:21

 “당신은 언제 첫사랑이 그리운가요?”

첫사랑과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첫사랑을 추억하는 방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살기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지금 삶의 무게에 허덕일 때, 내 마음 속에 숨겨둔 순수했던 지난날의 추억을 꺼내들게 된다. 그건 단지 첫사랑이 아니라, 그 시절의 아직은 많은 가능성을 품었던 나를 꺼내보는 것이니까.

<응답하라 1997(이하 응7)>에 이어, 호응을 얻고 있는 <응답하라 1994(이하 응4)>는 흡사, 이렇게 다시 꺼내보는 첫사랑과도 같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90년대의 그 시절에는 한없이 철없어 보이는 ‘빠순이’요, 서울에 와서 하숙집조차 제대로 못 찾아가고, 패스트 푸드점에서는 주문조차 못하는 ‘모질이’로 시작된다. 하지만 <응7>에서도 그랬듯이, 그런 그들이 현재로 오면 대단한 사람들이 되어 있다. 한없이 부족 해 보이던 그들이 2013년의 현재로 오면 강남의 고층 아파트에 살며 넥타이를 맨 그럴 듯해 보이 는 ‘성공’한 사람들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가수나 쫓아다니고, 농구장이나 들락거리고, 뭐 하나 제대로 한 거 없어 뵈는 철없는 아이들이 자라서, 대통령 후보도 되고, IT강국 의 주체가 되고, 그럴 듯한 직업을 가진 어른이 되었다는, 그런 인물들을 만들어냈다는 세대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이다.

90년대의 세대가 누구인가. 고단했던 정치적 격변기를 살아낸 선배 세대와 달리, 정치적으로는 상대적 안정기를 겪으며, 경제적으로는 그 어느 세대보다 도 풍족하게 젊음을 누렸던 세대다. X세대다 뭐다 하며 유별난 별칭을 가지고, ‘빠순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한 문화를 누릴 여건을 지녔던 세대였던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오히려 지금 이 사회의 중추가 되어 살아가는 삶이란 고달프다.

경제는 장기적 불황기에 들어서, 앞선 세대와 달리 직장도, 집도, 그 어느 것도 녹록하게 내 몫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불안한 사회 안전망으로 인해 늘 위태롭고 흔들릴 뿐이다.

정치적으로는 어떤가. 지난 대선이 세대 대결이라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로,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온갖 첨단의 SNS 등을 통해 ‘투표’를 독려했으나, 최근 불거진 대선 결과를 둘러싼 부정 음모 등으로 패배 의식을 떠안았을 뿐이다. 획일적 문화와 조직적 사고방식을 지양 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개인을 흔들고 나락에 빠뜨리려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세대적 불안함과 허무함을 위로한 것이 <응답하라> 시리즈이다.

단지 추억팔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추억을 길어 현실의 고단함을 툭툭 위로해주고자 하는 것이다. 마치 그 옛날 나탈리 우드가 나왔던 영화 <초원의 빛>처럼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라며 그 시절의 아름답고 화려했던 젊음을 다시금 조명해 준다.

현실에 지치고 고달픈 이 시대의 주역들에게, ‘너희들에게 이렇게 빛나고 아름다운 청춘이 있었어. 그리고 그런 시대를 지나 너희는 이만큼 성장하고 이루어내었어’ 하고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자존감’을 가지라고, 첫사랑을 꺼내보듯, 그 찌질하지만 순수하고 아름답던 청춘을 되새기며 위로 받으라고.

물론 ‘추억’은 위험하기도 하다. 첫사랑과의 추억에 빠지다 지금의 사랑을 놓칠 수 있는 것처 럼. 그러나 주저앉아 그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때로는 빛이었던 자신의 젊은 날이 다시 한 번 일어설 힘이 되어주기도 할 것이다. 부디, 고달픈 현실을 살아가는 90년대 세대에게 위로가 되기를. 

by meditator 2015. 7. 22. 21:40

'스릴러' 장르물의 묘미는 무엇일까?

액션이니, 추리니, 거기에 겯들인 로맨스니 해도, 결국은 스토리가 주는 쫄깃한 반전이 아닐까. 뒤통수를 맞은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뒤통수를 내어주어도 좋을 것 같은 허를 찌르는 그 기발한 스토리가, 이런 저런 겉치레를 덜어낸 장르물의 진짜배기 알곡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월, 화요일 밤 10시, 11시에 연달아 찾아드는 두 편의 장르물 <너를 기억해>와 <신분을 숨겨라>는 로맨틱 스릴러와, 도심 액션 스릴러라는 서로 다른 지향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장르물의 묘미를 흠씬 맛보게 해준다. 


범인과 범인을 잡는 묘미라니!
21일 10회의 시작은 이현(서인국 분)의 집에 초대되어 온 정선호(박보검 분) 변호사로 시작된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방문자, 이현이 초대한 옆집 사람, 이준호(최원영 분) 법의관이다. 이 세 사람이 함께 한 식탁은 긴장감이 흐른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시청자 역시 손에 땀을 쥐며 바라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프로파일러, 변호사, 법의관으로 안면을 트게 된 세 사람이지만, 어쩌면 형과 동생, 그리고 형과 동생의 생이별을 기인하게 만든 연쇄 살인범이라는 악연일 수도, 아니 거의 그래보이니까. 그리고 현재의 사건으로 드러나는 '시체 없는 연쇄 살인'의 배후일 수도 있는 인물들과 그들을 의심하는 프로파일러와의 만남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긴장감이 흐르던 세사람의 식사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차지안(장나라 분)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차지안의 납치 소식에 충격을 받은 이현, 그런 이현을 만류하고 대신 운전대를 잡은 정선호,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준호, 차지안을 알고 있던 세 사람은 그래서 함께 현장으로 향하고, 본의 아니게 함께 수사에 참여하게 된다. 세상에,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과의 수사라니! 하지만, 일찌기 탁월한 두뇌 플레이로 감옥을 빠져나간 이준영으로 부터, 아버지로부터 사이코패스라 낙인 찍힌, 하지만 이젠 프로파일러가 된 이현에, 사실은 진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의심이 되는 이현의 동생같은 정선호까지, 세 사람의 싸이코패스가 함께 하는 수사라면, 따지고 보면 이게 바로 천하무적이다! 천하무적의 승률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하지만 서로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의 눈길을 접을 수 없는 세 사람은 손발을 맞춰, 아니 정확하게는 입을 맞춰가며 범죄자를 추적해 들어가고 검거에 성공한다. 길지 않는 세 사람의 수사 장면은, <너를 기억해>만이 선보일 수 있는 '쪼는 맛'의 정점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 이현은 어쩌면 자기 동생 역시 그저 가출이 아니라, 이준영에 의한 유괴였다면 이번 사건처럼, 이준영에 의해 사이코패스로 길러졌을 수도 있을 것이란 의혹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의혹은 동생의 실종을 두고 이준영과 딜을 한 현지수(임지은 분)로 인해 더더욱 확고해진다. 하지만 이현이 그런 의심을 하는 시각, 이준영은 전혀 다른 언급을 한다. 범죄자와 함께 하여 범죄자가 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런 소양이 있었기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겠냐는 이현돠 다른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렇게 이현과 이준영이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하게 만든 사람, 바로 이현의 동생으로 추정되는 정선호 변호사, 그를 자신의 동생일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가지게 된 이현은, 그래서 동생이 그가 다가가는 연쇄살인의 범인일까 고뇌하고, 그런 이현의 마음과 달리 정선호 변호사는 형이 자신을 찾지 않았다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자신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에 눈빛이 흔들린다. 

<너를 기억해>의 묘미는 차지안의 이현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시작하여, 이현의 차지안의 기억으로, 그리고 이제 다시 정선호의 기억에서, 이현의 기억으로, 얽혀있는 인물들의 기억과 상처 속을 헤집으며, 범죄 수사, 그리고 진실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냄으로써 동생을 싸이코패스로 만들까봐 두려워하는 이현, 하지만 그런 형과 달리 자신을 기억해 주지 못하는 형이 내내 서러운 동생, 그리고, 아버지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차지안 등, <너를 기억해> 속 숨겨진 반전의 장치들은 그저 사실을 알게 되는 쾌감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관계'와 '인간'에 대해 다시 짚어보게 되는 지점을 열어준다. 


'고스트' 대신 '민태인'을 잡아버린 통수
11회 <신분을 숨겨라>가 기대되었던 것은 드디어 '고스트'라 불리워졌던 인물과의 대면이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는 정황때문이었다. 정선생(김민준 분), 남인호(강성진 분) 등 악인 뒤에 숨어있는 절대 악 고스트가 유명인사초청 자선파티에 등장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수사5과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수사 5과 요원들을 현장과 주변에 잠복시킨 채 자선파티을 예의 주시한다. 

파티에 등장하는 한 명, 한 명의 인물들, 장민주(윤소이 분)의 친부로 추측되는, vd107바이러스에 관심을 가졌던 이명근 방위산업체 회장, 최대현 국정원 과장, 이일한 경찰청장 등 그들이 등장할 때마다 수사 5과 인물들은 물론 시청자들조차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신분을 숨겨라>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한번쯤은 혹시나 고스트일까 의심했던 인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은 미리 예견되었던 바 고스트가 등장할 밀실까지 초대받는다. 

하지만 드라마는 시청자의 뒤통수를 친다. 이명한 회장을 제외한, 질병관리 센터장을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은 엄인경의 주도 아래 와인을 마시며 잠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와인잔이 따라지는 순간, 장민주의 수사로 그 와인잔에 독이 든 것을 알게 된 수사 5과의 저지로 다행히 세 사람은 죽음을 면하고, 엄인경만이, '국가에 의해 부정당한 스파이'의 전설을 통해 경고를 남기며 죽어간 것이다. 

역시나 이번 회도 '고스트'의 뒤를 쫓다 헛물만 키는가 하는 순간, 11회의 뜻밖의 복병이 나타난다. 수사5과가 고스트의 꼬리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순간, 고스트는 vd107을 획득한 것이다. 남인호가 잡히면서 함께 회수된 줄 알았던 바이러스, 하지만 남인호는 자신의 체포를 예감하고 바이러스를 자신을 잡으러 온 민태인의 몸 안에 주입했고, 고스트는 수사5과의 눈을 자선파티에 돌린 채 유유해 민태인을 납치해버린다. 수사5과의 '장군'에, 더 강력한 고스트의 '멍군'인 셈이다. 

<신분을 숨겨라>의 감정 코드는 고스트와 수사 5과의 전선이 대치된 가운데 사랑하는 동생과 연인을 잃은 민태인(김태훈 분)과 차건우(김범 분)의 깊은 원한, 그리고 그들과 동지애로 얽힌 장무원(박성웅 분)의 형제애로 이루어진다. 이미 5년간의 잠입 수사 끝에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는 민태인이, 이제 다시 그의 몸이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어 고스트의 손에 잡히는 설정은, 그 어떤 멜로드라마의 이별보다 애절하다. 수사5과가 고스트 측이 내세운 하수인, 정선생, 남인호, 이제 엄인경까지 하나씩 제거해가며 고스트로 좁혀가는 순간, 고스트는 민태인을 숙주로 이용하며 수사5과의 허를 찌른다. 결국 잔가지들을 다 제거당한 고스트와, 가장 안타까운 동지를 잃은 수사 5과의 진검승부만이 남게 된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고스트를 지키려는 하수인들, 그리고 그렇게 하수인들을 잃고 수사5과의 아킬레스건 민태인을 볼모로 자신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고스트,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한 <신분을 숨겨라>의 다음이 기대될 수 밖에 없다. 



by meditator 2015. 7. 22.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