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도 종종 등장하는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의 취미 생활을 '정치'라 정의한다. 나이들어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하는 남자들이 밥 먹고 취미 삼아 허구헌 날 '정치'를 취미로 단물이 다 빠지도록 씹고 또 씹는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듯 '종편'이 하루 종일 '정치'를 매개로 각종 프로그램을 돌려도 그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남성들의 정치다. 아니 남성들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폭스 tv를 본따, 가쉽화한 '정치'는 이제 여성들의 '껌'으로 까지 기능한다. 조만간 tv에서 자취를 감출 강용석이 tvn에서 가쉽성 프로그램 '강용석의 고소한 19'를 진행하다, tv조선의 <강적들>이나, jtbc의 <썰전>에 출연하는 것이 이물감이 없는 이유는, 바로 연예인들의 가쉽이나, 타 프로그램의 정치가 같은 프레임의 틀 안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정치'라고 생각해 왔다. 


독일의 총리였던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 정의했다. 대표적 현대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이미지와 의미의 관계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정치와 예술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tv를 통해 보는 정치는 '혐오주의'를 낳을 만큼 협잡의 장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는 정치는 현실로 들어오면 이합집산과 이전투구의 다른 말로 구현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 침을 뱉고, 그 더러운 침을 뒤집어 쓴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무관심을 혹은 가쉽성 관심을 핑계로 더더욱 그들만의 리그에 충실한다. 

그런데 보좌관 생활 10년 국회에서 뼈가 굵을 대로 굵은 작가 정현민은 그렇게 현실에서 우리가 보는 그것이 '정치'가 아니라고, <어셈블리>의 진상필을 통해 일갈한다. 국민 진상 진상필을 통해 매번 물을 먹은 백도현(장현성 분)에 대해 드디어 청와대 칼을 빼들었다. 스스로 국민당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한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가 선택한 카드는 진상필. 왜 자신처럼 매번 청와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문제적 국회의원에게 사무총장직을 권유하냐고 진상필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 진상필의 의문에, '제갈공명'같은 최인경(송윤아 분)는 이것이 청와대에게는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히든 카드요, 재선을 기약할 수 없는 진상필에게는 정치의 중심에 설 절호의 기회라 역설한다. 일개 국회의원인 당신으로서는 해결하기 힘든 해고 노동자 문제와 같은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리고 그런 최인경에게 진상필은 한 마디 던진다. '최보는 기술자 같아요. 정치 기술자!'



정치 공학이 아닌 진짜 정치를 말하는 <어셈블리> 
사무총장직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진 국민당 의총, 그 자리에서 백도현은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그리고 잇달은 국민당 의원들의 성토 발언, 마지막으로 진상필에게 발언권이 주어진다. 진상필은 '제가 사무총장이 된다면'으로 시작된다. 자신이 사무총장이 된다면, 반청계와 친청계로 나뉘어 계파 싸움이나 하는 당신들에게 한 명도 공천을 주지 않겠다고 소리높여 말한다. 그의 발언에 반발하는 동료 국회의원들에게도 거침없다. 당신들, 국회 앞에서 매일 농성을 하는 해고 노동자들이 어느 회사 소속인 줄 알고나 있냐고, 정작 국민들의 대표로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계파 싸움에, 차기 공천에 눈이 멀어 있는 동안, 노동자들의 임금은 체불되고, 그 사주는 법의 선처를 받아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벗어나는데, 그 동안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소리 높인다. 그리고 만약에 자신에게 그런 일을 할 권한을 준다면 사무 총장을 당장이라도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당신들이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편갈라 싸우는 '정치 공학'이라고 일갈한다. 

<어셈블리>의 시청률은 고전중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노라면 그런데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13회 진상필이 한 일은 아내가 돈을 맡긴 바벨 타워 시티 파산에 대해 아내의 돈을 받아주는 대신, 그 문제로 '특검'을 들고 나온 진상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배달수의 아들을 통해 진상필의 목을 조르려던 백도현 측의 술수가 결국 진상필의 진심에 마음을 돌린 김규환에 의해 무위로 돌아가는 것을 다룬다. 그리고 14회, 백도현의 사무총장 직을 넘겨받은 진상필로  결국 통쾌한 '정치 공학'에 대한 질타로 이어진다. 이렇게 진상필에 의한 '진상'이 아닌 진짜 정치'를 다루는데, 왜 시청률이 낮을 수 밖에 없냐고? 

이쯤에서 <정도전>의 화제성을 되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핵심에는 바로 지금 <어셈블리>에서 노회한 반청계 대표로 등장한 이인임이란 인물이 있었다. 즉, 고려말 노회한 정치가 이인임에 의해 벌어지는 '정치 공학', 마치 삼국지의 각 인물들이 일진일퇴를 하듯, 게임처럼 자신들의 정치 생명과 목숨을 두고 벌이는 롤러코스터같은 그 '정치 드라마'에 사람들은 환호를 보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등장한 결국 이기는 자도 지는 자도 없는 정치허무주의까지. 사람들이 생각한 '민낯'의 정치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물론 <어셈블리>에도 반청계와 친청계를 중심으로 한, 그리고 정치꾼으로 거듭나고 있는 백도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정치 공학의 묘수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진상필에 의해 설파되는 진짜 정치에 대한 '계몽'이 <어셈블리>에는 결정적이다. 바로 이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참 정치에 대한 갈파가, 역설적으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어셈블리>에 재미를 덜 느끼게 한다. 진상필의 정치는 분명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그리고 추구해야 할 진짜 정치이지만, 그래서 어쩐지 더 이상적이고, 불가능해 보인다. 현대판 각시탈같은 <용팔이>의 김태현보다도 더. 아내가 피땀흘려 벌어들인 돈 보다도, 국민을 생각해야 하는 국회의원, 입신영달보다도, 재선보다도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을 더 고려해야 하는 진짜 정치, 그게 너무 다가오지 않는 웃픈 현실인 것이다. 김규환이 말하듯, 최인경이 손가락을 치켜세우듯, 진상필은 멋지고, 최고인데, 그가 멋지고, 최고일 수록, 어쩐지 점점 현실에서 멀어져만 가는 듯하니, 역시 현실의 진짜 정치는 '상그릴라'처럼만 느껴지나 보다. 


by meditator 2015. 8. 28. 15:09

198회 <힐링 캠프>는 4대 천왕-정형돈 편이 방영되었다. 

최근 연예계 이슈로 회자되고 있는 '4대 천왕', 그 첫 번째 편의 테이프를 정형돈이 끊은 것이다. 사실 말이 4대 천왕이지,(정형돈처럼 굳이 누구라 밝히지 않는 것을 전제로) 이 '4대 천왕'이란 화두의 요점은, 급이 어울리는가 여부를 두고 화제를 되는 한 명의 인물을 제외하고, 당연히 천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사람을 차치하고, 당연히 이제는 천왕급이 된 정형돈의 존재이다. <무한도전>에서 '웃기지 못해' 고전하던 그 정형돈이 이제는 그 누구와 파트너가 되도, 빵빵 터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명불허전'이 된 정형돈이, 4대 천왕 시리즈의 첫 회를 장식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지사다. 

하지만 막상 500명의 mc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시간 여의 프로그램을 해낸 정형돈은 예능 대세 정형돈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의 말대로, 좋아하는 일이, 이제는 가장 잘 하는 일이 되어버린, 프로페셔널한 방송인의 가장 진솔한 모습을 보여준 방송이었다. 4대 천왕으로서의 자부심, 성취감 대신,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 사회 생활의 전성기를 누리는 잘 나가는 남자의 뒤안길을 슬쩍 드러낸 진솔한 방송, 어찌보면 개편된 <힐링캠프>이래, 가장 '힐링'의 본질에 다가간 방송이었다. 



대세가 된 연예인 정형돈의 우유부단함(?)
24일 방송 중 정형돈이 김제동이 무심코 내뱉은 4대강, 대통령 등의 용어 자체에 '알레르기'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방송을 보면, 정형돈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것은, 그 단어 뿐만이 아니다. 자신을 '규정'하는 그 어떤 정의에 대해서, 정형돈은 일관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치 24일의 컨셉이 '자기 부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등장한 4대강, 대통령이란 단어에 대한 반응은 오히려, 그런 일련의 '자기 부정'의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런 단어에 조차 '화들짝' 조심스레 해야 하는 모습을 보인 정형돈의 모습은, 그런 단어 조차 거르고 조심해야 하는 연예인의 숙명을 '셀프디스'한 역설적 표현이라 보는 것이 옳다. 

그렇게 시종일관 정형돈은 '우유부단'이라는 자막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규정이나 정의에 대해 불편해 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이 그 누군가, 혹은 어떤 것에 대해 예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방청객 mc들은 그런 정형돈에 대해 겉은 유재석을 닮으려하지만 속은 박명수라는 정의를 내리기도 하고, 자신을 내보이길 주저하는 정형돈에 대해 500명을 앞에 두고 떨고 있다 우스개로 퉁치려고 김제동이 나섰지만, 정형돈은 그 어떤 규정에 대해, 쉬이 수긍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형돈의 본 모습은 '죄송하지만 오늘 결코 끝까지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고백에서 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학생들을 앞에 두고 한 두번 째 강연에서 '내가 뭐라고?'하는 직시와, 그 뒤로 단 한번도 강연에 나서지 않았다는 자기 결단이, 어쩌면 오늘날 그 누구와도 좋은 호흡을 이루어 예능을 이끌어 가는 4대 천왕이 된 정형돈의 저력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예능계의 대세가 된 정형돈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일이 가장 잘 하는 일이 되어버린 처지, 그리고 언젠가 자기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자신의 생각을 물건으로 구현해내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에서, 무형의 언어에 기탁하여 인기를 끄는 연예인의 슬픈 숙명, 나아가 '밥벌이의 고달픔'마저도 엿보게 된다. 그래서 500명의 mc들은 '솔직하지 못한' 정형돈에게 그 어느때보다도 공감하고, 함께 힐링하게 된다. 



500명과의 공감, 김제동의 딜레마
24일의 방송 중 가장 빛을 발한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29살 먹은 직장인의 사연을 함께 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새롭게 개편된 <힐링 캠프>의 방식대로 출연한 연예인은 방청객으로, 그리고 MC라 지칭되는 일반인의 사연을 듣고 '멘토링'을 해주는 시간을 갖는다. 거기서 등장한 사연, 29살 먹은 보육 교사는 바로 오늘 직장에 사표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사연에 대해 정형돈은 이의를 제기한다. 자기가 뭐라고 남의 인생에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그가 강연을 하지 않게 된 사연, 혹시라도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로 인해 영향을 받을까 함부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정형돈의 생각에, 김제동은 웃으며 사람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했지만, 이 장면은 <힐링 캠프>의 새 포맷의 장단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순간이었다. 

방청객이 MC가 된다는 <힐링 캠프>의 새로운 포맷, 불난 집에 불구경 하는 걸, 최고의 재미로 치는 우리네 정서에 걸맞게, 방청객 MC들은 자신들이 미디어를 통해 접한 정보를 통해 게스트로 등장한 연예인과 소통하고자 한다. 자신을 드러내길 혼란스러워하는 정형돈에게 겉은 유재석이지만 속은 박명수이기 때문아니냐고 질문한 방식이 그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그런 방청객 MC들의 질문에 적당히 호응하며 자신들의 이미지메이킹을 한다. 그래서, 소통과 공감을 하는 듯이 보이고, 또 그래서 천편일률적이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형돈 편의 재미는 그런 <힐링 캠프>가 가지고 왔던 일련의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난 일탈의 즐거움이다. 정형돈은 방청객 MC가 내린 규정에 자신을 딱히 이렇다 정의 내리기 힘들다고 '소통'을 거부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연을 들고 나온 방청객에게, 당신의 삶에 대해 왜 내가 왈가왈부하느냐고 반문한다. <힐링 캠프>의 존재론에 대한 반격이다. 하지만, 그래서 24일의 <힐링 캠프>는 그 어느때보다도 신선했고, 정형돈의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였다. 그가 이 시대의 4대 천왕으로 자리 매길할 만큼의 내공과 자기 색깔이 충분히 드러난 한 회였다. 

그렇게 정형돈의 매력이, 그 스스로의 내공에 의해 빛을 발하는 순간, 하지만 종종 그런 정형돈의 존재론을 흐트러트리는 존재가 있었다. 다름아닌 김제동이다. 김제동하면 떠오르는 예의 스타일로 김제동은 정형돈 편을 이끌어 가고자 했다. 하지만, 정형돈은 완강히 그런 김제동 식의 진행에 거부한다. 정형돈이 한 말에 대해 어느 틈에 김제동이 '예단'하고 '정의' 내리려 하면, 정형돈은 그게 아니라 '정정'하고 '정의 내림'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제동의 쇼가, 진솔한 듯 하지만, 보다보면 뻔한 그 딜레마가 드러난다. 김제동의 이야기 쇼는, 진솔한 듯 하지만, 김제동에 의해, '네이밍'된 규정성이 강하다는 단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24일 <힐링 캠프>의 재미는 그런 '네이밍'된 김제동 쇼에 정형돈이 휩쓸려 들어가지 않고, 자기 색을 분명히 드러내며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은, <힐링 캠프>의 가능성이자, 동시에 숙명적인 과제로 남는다. 
by meditator 2015. 8. 25. 14:57

jtbc에서 새로이 선보인 <연쇄 쇼핑 가족>은 이제는 취미 생활이자, 절대 반지로 등극한 현대인의 '쇼핑'을 예능의 주제로 선택한다. 


먹거리에서 부터 시작하여 뷰티, 남성용품까지 필요한 제품을 소개해 주는 쇼핑 정보 프로그램은 이미 케이블을 통해 범람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프로그램을 얹는 것일까? 라는 의문에 <연쇄 쇼핑 가족>은 한 발 더 나아선다. '소비 욕망'을 분석해 주고 '공감'과 '조언'을 해준다는 것이다. 



토크와 시트콤의 결합 신선한 포맷으로 쇼핑을 충고하다
첫 선을 보인 <연쇄 쇼핑 가족>의 포문을 연 것은 이영자, 박명수, 박지윤, 써니, 박원 등 다섯 명의 mc군단이다. 마치 세대별 대표라도 되는 듯 연령대별로 골고루 모아놓은 다섯 명의, 그래서 콩가루 집안처럼 이질적인 mc군단이 쇼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 코너는 매주 mc들이 쓴 소비을 함께 들여다 보며 그들의 소비 패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영수증토크>가 선보였다. 보기와 다른 49만원짜리 이영자의 폴리플랍에서부터, 박명수의 백화점에서 산 두 장에 60만원이 넘는 티, 그리고 박지윤의 신개념 물놀이 가방, 써니의 해외 직구 피규어까지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영수증이 등장한다. 자신의 실 소비 품목까지 드러낸 mc들의 살신성인, 하지만 몇 십만원을 쉽게 쇼핑하는 그들의 경제적 수준에, '공감'보다는 아마도 역시나 이래도 저래도 연예인이라는 이질감으로 포문을 연 것이 아닐까. 세대별 공감을 위해 '써니'는 홈쇼핑에 지름신을 운운하고, 이영자는 덩치와는 다른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물품에, 그리고 박원의 신개념 '크라우드 펀딩'까지 등장했지만, <연쇄 쇼핑 가족>은 좀 사는 사는 사람들의 '쇼핑' 이야기라는 범주 제한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영수증을 보며, 각자 무심히 자신의'부'를 드러낸 연예인 mc들에 이어, 봉천동에 사는 가상의 한 가족 시트콤을 배경으로 본격적인 첫 회의 주제가 등장하였다. 야심차게 선보인 <연쇄 쇼핑 가족>의 첫 번째 이야기는 '교육도 쇼핑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이어진 교육 쇼핑의 이야기, 전세 대란 속에 졸지에 친정 살이를 하게 된 봉천동 가족의 첫 째 딸, 월수 320을 받는 직장인 남편을 둔 큰딸은 내년에 학교에 입학할 큰 딸을 위한 교육 쇼핑에 나선다. 이제 곧 출산할 둘째도 있지만,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큰 아이를 좀 더 좋은 교육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 들뜬 큰 딸, 그녀의 쇼핑 바구니에 들어가 있는 것은 서울 지역의 내로라 하는 사립 초등학교 들이다. 근처 흑석동에서 부터 종로구, 그리고 재벌가의 자제들이 다닌다는 곳까지 곳곳의 사립 초등학교들을 큰 딸은 만삭의 몸으로 훑고 다닌다. 하지만 그런 아내의 교육 쇼핑에 아이의 교육비로 한 달에 100여만원을 지출하는 바람에 한 달 용돈 20만원에 쪼들리는 남편은 결국 불만을 토로하고, 서로 의견이 다른 아내와 남편은 부부싸움을 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시트콤같은 봉천동 가족 이야기가 펼쳐진 가운데 스튜디오에서 mc들은 교육 평론가 이범을 초빙하여, 본격적인 '교육 쇼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역시나 박명수와 박지윤이 자신있게 영어 유치원에 다닌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시작으로 하여, 봉천동 가족을 배경으로 한 상세한 서울 시내 사립 초등학교에 대한 '카달로그'식 설명, 거기에 마무리로 이범의 '해법'아닌 '해법'같은 교육 쇼핑 해결책이 얹어진다. 



누구를 위한 쇼핑 공감인가?
'공감'과 '조언'을 지향한 <연쇄 쇼핑 가족>하지만, 대뜸 연예인 mc들의 티 한 장에 몇 십만원에서 부터 시작된 쇼핑 품목은, 유치원 하니, 영어 유치원을,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며 사립 초등학교의 면면을 알려주는 자상한 교육 쇼핑 정보로 이어진다. 스스로 '옷을 좋아한다'는 박명수의 명품 백화점 쇼핑 스타일은 이미 케이블에서 등장했던 '쇼퍼홀릭'을 강요하는 몇몇 패션 프로그램이 떠올려지고, 박원으로 구색을 맞춘 '크라우드 펀딩'까지 들먹이는 신세대 쇼핑은 역시나 케이블의 '남성들의 잇아이템'을 다룬 모 프로그램이 떠올려진다. 거기에 박지윤은 이미 tvn의 <성적 욕망>에서 했던 교육 쇼핑에서 운운했던 '돼지 엄마'를 다시 들고 나온다. 나름 가족적 구성의 mc라지만 정작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젊은 써니와 박원의 입은 닫혀있고, 그 세대가 이야기할 때는 이영자나 박명수는 눈이 땡그래진다. 가족처럼 모두가 공감하는 쇼핑에 대해 이야기을 풀어 가겠다고 하는데, 가족처럼 그, 누구도 쉽게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는 구성이다. 

무엇보다 첫 회 야심차게 교육도 쇼핑하는 시대라고 포문을 연 <연쇄 쇼핑 가족>의 상당 시간을 채운 것이 서울 시내 겨우 세 개에 불과한 사립 초등학교의 면면을 세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앞선 영수증 토크에 이어, 영어 유치원, 그리고 사립 초등학교까지, 결국 대한민국 중산층이라면 이 정도쯤은 쇼핑 장바니구니 안에 들어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깐다. 결국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쇼핑이라며, '그사세'로서의 쇼핑을 들고 나온다. 아니 마치 케이블의 패션 프로그램이 눈요기처럼 몇 백만원짜리 옷가게를 들락거리듯이, <연쇄 쇼핑 가족>도 맛이라도 보라며 사립 초등학교을 등장시킨 것이었을까?

봉천동 큰 딸의 처지에 공감하는 나이든 박명수, 박지윤 등 학부모 층 mc진의 교육 쇼퍼 홀릭의 증상을 완화한 것은 어쩌면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은 듯한 교육 평론가 이범의 존재였다. 한동안 너도 나도 사립 초등학교의 품목을 가지고 선택 장애에 빠져 있을 때, 이범은 '자식에게 좋은 교육 기회를 주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노후 자금은 커녕 앞날이 보장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투자가 아니며, 자기 살을 깍아 먹듯 사립 초등학교에 보낼 것이 아니라, 교육 환경이 개선된 혁신초나 농어촌 초등학교를 선택할 것을 권유한다. 그런 이범의 권유 뒤에 부부 싸움을 물베기라고, 아이를 위해 좀 더 나은 대안을 다시 생각해보자며 하지만 사립학교 입학 시즌인 11월까지라며 여운을 남기고  봉천동 시트콤 속의 부부도 화해를 한다. 

중산층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대한민국, 계층간 소비의 격차가 심화되어 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아마도 그럴 듯한 대학을 나와 방송가에 종사하는 정규직 방송국 관계자들, 그리고 프로그램을 이끄는 mc 수준의 중상층을 대상으로 한 <연쇄 쇼핑 가족>, 하지만 방송을 보며 문득 든 생각은, 저 프로그램을 위해 발로 뛰는 계약직 작가들이나, 스탭들은 과연 이 프로그램을 보며 자신의 쇼핑에 도움을 받을 꺼라고 생각할까?란 의문이 든다. 야심차게 쇼핑을 내세우면서 교육이란 화두를 들고 나온 것은 참신했지만, 사립초등학교 쇼핑으로 시작된 <연쇄 쇼핑가족>의 쇼핑 범주는 분명해 진다.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맛이라도 보라는 심정으로 연예인들의 화려한 영수증과 그 보다 한 술 더 뜬 교육 쇼핑을 시청하라기엔 주말의 밤이 너무 아깝지 않을까. 

by meditator 2015. 8. 23. 16:52

최근 표절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신경숙 작가는 2008년 <엄마를 부탁해>를 출간했다. 지하철에서 놓쳐버린 치매끼 있는 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온 모성에 대한 애도와 헌사가 작품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작품은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를 다루었던 <국제시장>처럼 당대의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심지어 외국에 번역까지 되어 한국의 대표적 문학 작품으로 알려졌다. 


<국제 시장>의 아버지, 그리고 <엄마를 부탁해>의 어머니가 여전히 환호와 칭송을 받는 것은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며 이 시대를 뒷받침해온 부성과 모성에의 경의이다. 하지만 또 한편에서 이런 작품들이 여전히 당대의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것에 당혹감을 주는 것은, 그 세대가 결과한 현재에 대한 반성 없음에 대한 아쉬움과,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부성'과, '모성'이 존재할 수 없는 시대에 대한 현실감때문이기도 하다. <국제 시장>을 경유하여, <가시 고기>로 좌초한 '부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여전히 내려지지 않은 채, 모성 역시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엄마를 부탁해>를 쉬이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8월 21일 밤 조용히 찾아온 단막극 한 편에, 이 시대에 새롭게 생각해 볼 '모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다. 



우리 시대의 모성이란?
<알젠타를 찾아서>는 자신의 키보다 몇 배자 더 긴 장대를 들고 질주하는  장대높이 뛰기 선수 승희(이수경 분)의 땀방울과 좌절로 시작된다. 대한 체대 4학년, 눈부신 우승 성적과 기록을 뒤로 하고 대학에 들어온 오래 승희는 한번도 좋은 성과를 거둔 적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학교 때부터 수술을 받기 시작한 그녀의 무릎은 운동선수로서의 그녀의 앞길을 막는다. 육상 연맹의 간부인 아버지는 압박하고, 그저 장대높이 뛰기만을 하며 줄기차게 달려왔던 그녀에겐 운동 이외의 삶은 생소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다시 한번 좋은 성적으로 국가 대표가 되고자 하는 승희, 하지만 그녀의 몸과 기록은 그것을 받쳐주지 못하고, 결국 금지된 약물에의 유혹까지 받는다. 

승희가 은밀하게 약물까지 거래하려던 것을 알아챈 아버지, 자신이라도 나서서 딸의 코치가 되겠다던 아버지는 한때 한국 육상계의 스타였고,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던 강진아가 시청 코치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승희를 그녀에게 맡기고자 한다. 그 이유는 바로 강진아가 승희를 낳은 엄마이기 때문이다. 

강진아를 찾아간 아버지는 그저 엄마이기 때문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매몰차게 거절하는 강진아에게, 승희가 약물에 손을 대려 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매달린다. 마지 못해 승희를 받아들인 코치, 그리고 사실은 엄마 강진아. 

<알젠타를 찾아서>의 친엄마 강진아는 한 마디로 '나쁜 년'이다. 국가 대표 유망주였던 그녀가 자신의 코치였던 승희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까지 하자 더 이상 국내에선 선수로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강진아는 한 살 배기 승희 대신, 자신의 운동을 택했다. 자신이 죽었다고 하라며 어거지로 어린 딸을 지금의 승희 의붓 엄마인 팀 후배에게 맡기고 강진아는 외국 행을 택한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엄마와는 전혀 다른 삶으로서의 엄마이다. 어떻게 어린 딸을 버리냐는 후배의 말에 강진아는 말한다. 이렇게 승희의 엄마로서 한국에 주저앉아 버린다면, 평생 지금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살 것이라고. 강진아는 그래서 후회하는 삶대신, 딸을 버리더라도,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극중 제목으로 등장한 알젠타는 600만년 전 아르헨티나에서 살았던 전설적인 새 아르젠타비스 마그니피센스를 뜻한다. 키가 2미터 양쪽 날개 끝까지까지의 길이가 8키터에 달하는 이 새는 몸이 너무 무거워 스스로 하늘을 날지 못해, 행글라이더처럼 언덕을 달려 바람을 이용해 하늘을 날았다고 전한다. 그 전설적인 새 아르젠타비스는, <알젠타를 찾아서>의 극중 어린 딸로 인해 육상 선수로 재도약할 수 없는 엄마 강진아를 상징한다. 그래서 엄마 강진아는 자신의 무거운 날개인 어린 딸을 버리는 것으로 도약에 성공한다. 극중 엄마가 가진 날개, 그리고 딸에게 남겨진 새의 목걸이는 '성공'을 위해 분리된 '모녀' 사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드라마는 자식마저 버린 나쁜 엄마 강진아를 그저 나쁜 엄마 대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한 엄마 이전에 한 사람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국가 대표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운동 선수 승희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결국 이해한다. 극중 강진아는 심장 판막이 다 망가져 수술 시기를 놓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딸을 보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올 용기를 낸 것으로 그려진다. 비록 떨어져 있었지만, 그녀가 승희에게 남긴 상자에서 보여지듯이 한시도 딸 승희를 잊지 않았음 또한 보여준다. 그리고 엄마 강진아는 자신을 희생하여 딸을 기르는 대신, 이제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슬럼프에 빠진 승희에게 길을 제시하고 떠난다. 

비록 아이를 '케어'하지 않지만, 결국 아이가 스스로 설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는 엄마, 그것은 그간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지향해온 모성상에 전적으로 위배된다. 오히려 <알젠타를 찾아서>의 엄마는 우리가 보았던 서구 영화의 아버지 상에 더 부합된다. 아이를 돌보지는 않았지만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부성,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변화된 모성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나날이 증가되어 가는 일하는 엄마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제시할 수 있는 방향일 수도 있다. 더 이상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자신을 희생하며 살 수 없는 엄마들의 세대, 그 엄마들에게 여전히 <엄마를 부탁해>가 모성의 이상향으로 그려져서는 안된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케어는 할수 없지만, 삶의 본보기와 가능성을 열어주는 새로운 모성상으로서의 <알젠타를 찾아서>의 엄마 강진아가 비록 극단적이지만, 이 시대 생각해볼 모성상의 가능성이다. 그런 면에서 <알젠타>를 찾아서는 그저 승희의 인간 승리가 아니라, 이 시대 새로운 모성상의 구현에서 생각해 볼 만한 드라마가 되었다. 
by meditator 2015. 8. 22. 15:33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는 말한다. 자신이 그 어떤 소설가보다 잘 써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대가 자신을 선택했기에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다고. 김영하의 말처럼, 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는 역사라는 수많은 페이지 속에서 길어올려진 시대적 산물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한 시대를 빛내던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콘텐츠는 그 시대와 함께 운명을 한다. 


말릭 벤젤룰의 영화 <슈가맨을 찾아서>는 남아공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유명한 스타이지만, 정작 본고장 미국에서는 단 두 장의 앨범을 남기고 사라진 가수 로드리게스를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느껴지는 것은 슈가맨인 로드리게스를 찾는 여정도 여정이지만, 그 여정을 채우는 로드리게스의 음악이다. 음유 시인과도 같은 그의 음악, 그런데 왜 이 음악이 로드리게스의 고향은 미국에서는 사랑받지 못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게 하는 가슴을 울리는 음악, 여기서 결국 앞서 말한 김영하가 말한 '문화의 슬픈 운명'이 상기된다. 

남아공에서 당대 최고의 음악인 로드리게스의 음악이 정작 본고장 미국에서는 외면을 받았듯,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이제는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음악을 추적하는 '또 하나의 음악 탐정' 프로그램을, '<크라임씬>의 윤현준 피디가 들고 돌아왔다. 당대 최고의 mc라는 유재석, 그리고 유희열과 함께. 이미 <무한도전 가요제>를 통해 절묘한 궁합을 선보인 두 사람이, 가요제에서 못다한 콤비를 신선한 투유 프로젝트와 함께 돌아왔다. 



추억 현실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하다. 
<슈가맨을 찾아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2회 파일럿으로 마련된 투유 프로젝트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 활동했던 가수들을 추적하는 양식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그 시절 추억의 가수를 찾는다면서, 정작 스튜디오를 채운 패널들은 그 시절의 가사를 제 아무리 풀어 줘도 알아맞추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래서야, 그들을 찾는다 해도 무슨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싶은데, 다 이유가 있었다.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을 찾아서>는 과거와 현실에 각각 한 발씩 담근 모양새를 갖춘다. 아직 <불유의 명곡>에 나갈 연배는 아니거나, 나갈 정도로 히트곡이 많지도 않은, 그저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 이른바 <응답하라> 시대를 잠시 풍미하고 사라진, 그러나, 그, 혹은 그녀가 불렀던 노랫말과 멜로디를 떠올리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웅얼거리게는 되는 '유행가'의 주인공을 추리하고, 추적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한 축이다. 

그렇게 노랫말을 알아 맞추고, 그 시절 지인들을 들쑤셔 그의 현 존재를 찾아내기까지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한 20년만에 그 시절의 가수 본인이 무대에 등장하여 그 시절 히트곡을 부르는 것이, <슈가맨을 찾아서>의 전반전이다. 

하지만, 유재석과 유희열이 마치 딱지 치기를 하듯 번갈아 과거 슈가맨의 자랑 배틀을 하며, 그 시절 추억과, 그들의 최근 동정을 엮어 가는가 싶더니, 프로그램의 분위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궤도를 튼다. 장막을 거두고 등장한, 슈가맨의 노래를 들어본 적도 없는 말 그대로 '영'한 일레븐의 심사위원들이 등장하고, 도대체 왜 이들이 이 자리에 있는가 싶은 후배 가수들과 작곡가들이 슈가맨의 히트곡을 2015년 버전으로 들고 무대에 올라 배틀을 벌인다.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자면, <불후의 명곡>의 90년대판 같은데, '음악판' '탐정 놀이'을 끼얹고, 유재석, 유희열의 맛갈진 토크 배틀을 더하니, 신선한 예능 한 편이 등장한다. 심지어, 어설프지만 랩을 하며 분위기를 조성하는 유재석과 유희열을 보고 있자니, <무한도전 가요제>의 기시감마저 느껴진다. 과거의 곡을 오늘에 되살리는 배틀은 분명 익숙한 것인데, 신사동 호랭이와 신혁이라는 유명 작곡가의 자존심 대결이 더해지니 색다른 긴장감이 조성된다. 



첫 술에 배부르랴
초반에 슈가맨을 찾는 '탐정' 놀이는 아직은 어설펐다. 유재석과 유희열이 칠판에 쓰는 가사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고, 흥얼거리는 멜로디는 도무지 힌트 깜냥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후반부를 위해 준비된 어린 혹은 젊은 패널들에게, 유재석, 유희열이 내는 문제들은 그저 딴 나라 말처럼 보였다. 남아공의 엘비스 정도는 아니더라도, 슈가맨에 궁금증을 유도할 좀 더 치밀한 '탐정' 놀이가 필요해 보인다. 이어진 개그맨들의 장황한 슈가맨 찾기도 뻔해 보였다. 

그에 반해, 역시 유재석, 유희열이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첫 방송임에도 유재석과 유희열의 콤비는 마치 오래전부터 해왔던 사람들처럼 시너지를 냈다. 첫 방송의 어설픔마저도 토크의 부분처럼 승화시켜가는 두 mc의 노련함이, 첫 방송의 무리수를 둔화시켰다. 특히나 오랜만에 방송에 등장한 슈가맨들과 함께 하는 토크에서 두 사람은 발군의 역량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미 <무도 가요제>를 통해 익히 알려진 바 유재석의 열정과, 음악인 유희열의 존재가, 후반부 2015년 버전으로 승화된 슈가맨의 음악에 활기를 더한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찾아서>는 새로울 것이 없는 것들의 조합이다. 하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요소들도 잘 모아놓으면 전혀 새로운 예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을 찾아서>는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익숙한 듯 신선한 조합은 얼마든지 제작진의 변주에 따라, 토크가 강화된, 혹은 무대가 강조된 다양한 모습을 띨 수 있다는 것이 <슈가맨을 찾아서>의 가능성이다. 또한  jtbc로 간 유재석, 그것은 그저 공중파의 제왕으로 군림하다 jtbc로 행차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나는 남자다>에서도 포기하지 못했던 이른바 유재석 군단을 포기하고 홀홀단신 새롭게 시작한 유재석의 제 2라운드의 도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신선하다. 
by meditator 2015. 8. 20. 01:43

유투브, 아프리카 tv 등 나날이 확장되어 가고 있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뉴 미디어들의 영역은 방송가의 화두이자 과제이다. 제작 여건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kbs 단막극의 경우, tv 방영한 내용을 시간차를 두고 바로 인터넷을 통해 재방영함으로써, 제한적인 단막극의 처지를 극복하고자 하기도 한다. 2014년 tvn에서 시도된 <공유 tv 좋아요> 역시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동영상이나 화제의 인물을 방송 포맷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였다. 이런 간헐적인 움직임들을 뒤로 하고, 파일럿 방송에서 백종원이란 화제의 인물를 부각시키며 토요일 밤의 강자로 자리잡은 <마이 리틀 텔레비젼>은 아마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포맷을 정규 방송의 포맷을 변환시킨 가장 성공정인 사례가 되었다. 


그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이 리틀 텔레비젼>성공의 뒤를 쫓아 2인자의 자리를 노리는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대놓고 선발 주자의 프로그램을 베끼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방송가에서, 올리브 tv에서 매주 목요일 밤 방영되는 <주문을 걸어>는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 없었다면 등장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다음 팟을 배경으로, 시청자가 주문하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배달까지 해준다는 이 프로그램은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백종원의 고급진 레시피'에 이미 <마이 리틀 텔레비젼>을 통해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아이돌 키와, 배달을 해준다는 토핑을 얹은 포맷이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백종원의 고급진 레시피를 그럴 듯하게 베낀 듯한 <주문을 걸어>는 그저 어수선하기만 할 뿐, 아직까지 화제성에서도, 정보성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웬만한 요리 프로그램이라면 화제가 되는 올리브 tv 프로그램에서도 유독 이 프로그램만큼은 요리를 하는 것인지, 예능을 하는 것인지 그 정체성을 알 수 없는 프로그램으로 고전 중이다.



<18초>, 동영상을 중계하겠다는 무리한 시도 
그런 가운데 sbs가 11일과 18일에 걸쳐 파일럿으로 <18초>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8명의 출연자들이 정해진 시간 동안 18초 분량의 동영상을 올려 '조회수'를 놓고 대결을 벌이고, 그 과정을 이경규, 배성재, 그리고 카이스트의 이원재 교수가 함께 중계를 하겠다는 것이 <18초>의 취지이다. 

그런 취지에 따라 8명의 출연자들은 각자 자신이 준비한 18초의 동영상을 선보인다. 에로계의 거장 봉만대 감독은, 자신이 올린 영상의 댓글에 따라 영상의 내용을 만들어 가겠다는 '네 멋대로 해라'를 준비했고, 표창원 교수의 그가 지금까지 인터넷 유저들과 함께 해왔던 바 '추리 게임'을 보여준다. 김종민은 지금까지 자신에게 씌워진 바보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회자되었던 각종 코믹한 과학 실험을 시도하고, 김나영은 패션 피플인 그녀의 이미지에 맞게 '리폼'을 비롯한 각종 패션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건강 미인으로 이미지을 얻은 소유는 역시 그녀의 이미지에 맞게 요가를 비롯하여 수상 스키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 잡고자 하고, 아이돌 찬열은 당구를 비롯하여 자신만의 버킷 리스트를 펼쳐 나간다. 광고 회사 직원들로 이루어진 월급 도둑들은 이미 sns 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발군의 연기를 선보이고, 영국 남자는 영국에서 한국의 음식등을 실현해 보이며 화제성을 이끌어 가고자 한다. 

쭈욱 나열해 놓으면 흥미진진해 보이는 8명의 출연진들의 나만의 동영상 만들기, 하지만, 정작 <18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진 이들의 동영상을 만드는 과정은 흥미진진하지도, 박진감이 넘치지도 않았다. 카이스트 교수까지 초빙하여, 마치 운동 경기의 해설자처럼 각자 만들고자 하는 동영상의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판별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해설'은 커녕, 2회차에 이르러서는 말 한 마디 하는 장면이 없을 정도로, 콘텐츠에 대한 해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해설을 그렇다 치고, 애초에, '넌센스'와 같았던 '동영상 중계' 역시 '과욕'이었음을 <18초>는 여실히 보여준다. 

그저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 '아프리카 tv'등에서 흥하는 포맷을 성공적으로 정규 방송으로 끌어 왔으니, 그 비슷한 것을 시도하되, <마이 리틀 텔레비젼>과는 차별성을 두겠다는 '야욕'이 어설프게 '동영상 중계'라는 무리수를 두게 만든 듯하다. 아니, 18초의 분량만으로 '등재'되는 동영상의 과정을 좀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실제 봉만대의 영상은 그가 올린 18초 분량보다, 그것을 준비하는 봉만대 감독의 독특한 열정과, 그것을 바라보는 출연자들의 썰렁한 반응, 그 자체가 언밸런스한 분위기로 웃음의 코드가 된다. 

하지만, 그런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시행 착오들을 <18초>는 수렴할 준비도, 능력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마치 19세기의 사람들이 20세기의 옷을 입고, 21세기의 콘텐츠를 활용하듯, 가장 전형적인 예능 프로그램의 방식으로, 가장 첨단의 미디어 콘텐츠인 sns를 기반으로 한 동영상 제작을 수용하고자 하니, 웃을 타이밍도, 웃길 타이밍도, 재밌을 타이밍도 놓친 채 지루하기 그지없는 동영상 제작기가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18초>의 문제점은, 8명의 출연진이 가진 차별성을 제작진은 천편일률적으로 이해하거나, 심지어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8일 방송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으로 귀결되는 표창원의 추리 게임, 하지만, 1,2회 동안, 과연 방송을 보는 시청자 중 몇 명이나 표창원의 추리 게임을 따라갈 수 있었을까? 심지어, 그것이 결국 위안부 소녀상으로 귀결 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그 과정에서 배성재 아나운서는 전혀 모르겠다는 말만 할 정도로 mc진의 이해도가 낮았다. 봉만대 감독의 시도를 두고, 이경규는 <18초>의 영역을 확장시켜주는 시도라 했지만, 1,2회 방영동안 댓글에 따라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봉만대 감독의 획기적인 시도는 빛을 보지 못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이나, <18초>나 모두 인터넷의 실시간 유저들의 반응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포맷을 취하지만, 그 양상은 전혀 다르다. 똑같은 조회수를 기반으로 한 방송이지만, 그래도 <마이 리틀 텔레비젼>은 이합집산에도 불구하고, 출연자가 한 콘텐츠를 통해 연속적으로 시청자들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반면, 18초의 동영상은 그에 비해 훨씬 더 단편적이고, 단선적이며,  콘텐츠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저스틴 비버를 누르는 귀여운 강아지 영상에서 보여지듯이, 당연히 깜짝쇼같은 타 영상에 비해 표창원의 추리 게임이 관심도가 낮을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것이다. 제작진은 그런 18초 영상의 한계를 중계라는 과정을 통해 보완하고자 했지만, 방송에서도 보여지듯이 '중계' 과정은 18초 영상의 한계를 충족시켜 주는데 그닥 성공적이지 못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의 경우, 초반 백종원이란 화제의 인물이 부각된 것에 비해 어수선한 콘텐츠가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채팅창이라는 독특한 콘텐츠를 방송의 일부분으로 잘 어우러지게 하면서, 기미 작가니, 모르모트 피디니 하는 요소들을 등장시키며 인터넷 방송 영역에만 의존하지 않는 '예능'의 요소를 창출시켜 나갔다. <마이 리틀 텔레비젼>의 성공은 '인터넷 방송'이라는 필요 조건에, 제작진의 능력이라는 충분 조건이 합해진 결과이다. 

그에 반해, 후속 주자로 등장하는 <주문을 걸어>나, <18초>는 선발 주자의 장점이 무엇인지 포인트를 정확히 잡지 못한 모습이다. 그저 인터넷에서 인기를 끄는, sns 상에서 화제가 되는 그 무엇을 방송으로 끌어온다고 해서 모두 예능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랬다면 일찌기 이경규가 김구라와 함께 했던 <공유 tv>가 성공했을 것이다. <공유 tv>는 이경규 김구라가 했던 <화성인 바이러스>이 인터넷 확장판이었다. 하지만, 확장만 했을 뿐, 그저 옷만 바꿔입은 <화성인 바이러스>였다. <18초>도 마찬가지다. sns에서 조회수가 높이 올라가는 동영상이 등장한다고 해서, <18초>가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아이돌이 1위를 먹는 동영상의 세계라니! <마이 리틀 텔레비젼>의 백종원의 고급진 레시피와 하늘과 땅 차이 아닌가. 아이돌들이 중심이 되는 <인기 가요>의 나날이 하락하는 시청률은 떠올리며, 더 흥미진진한 <18초>가 되어 돌아오려면 좀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할 듯 싶다. 
by meditator 2015. 8. 19. 02:15

sbs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2부작 특집 다큐를 마련하였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 최후의 심판>이 그것이다. 8월 15일 방영된 1부는 <엄마여서 미안해>, '위안부'라는 명칭조차 숨기며 살아왔던 '엄마'로서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그 가족들의 고통을 다룬다. 




엄마, 아내, 그리고 위안부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의 숫자는 238명, 하지만 실제로 추정되는 '위안부'의 수는 수만에서 많게는 수십 만에 이른다고 한다. 알려진 '위안부'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홀로 '역사의 상흔'을 숨기며 살아가야 하는 역사의 희생자들이 더 많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저 무심코 '위안부'라 지칭하는 이분들에게는, 그 '위안부'라는 명칭 석자 만으로도 몸서리를 치는 상흔을 가진 가족들이 있다. sbs스페셜을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위안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자 하였다. 지난 3월 시작된 이 프로젝트, 하지만 찾아간 가족들은 제작진을 거부하거나 마다하였다. 광복 70주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그 상흔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등록된 '위안부' 할머니들 중 생존해 계신 분이 몇 십 분에 지나지 않은, 그래서 아마도 일본은 그 위안부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가보다 라고 절망하는 위안부 생존자들, 그분들에게도 가족이 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어머니가, 아내가 위안부였다는 것은 또 다른 '사회적 짐'이 된다. 마흔이 넘어서부터 신경 안정제를 먹어야 지탱하는 어머니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더 이상 한국 사회에 살기 힘들어 이곳을 떠나야 했다는 딸, 차마 직장에서 자신의 숨겨진 가족사를 알릴 수 없어 직장에서 멀러 떨어져 나와 인터뷰를 하는 아들, 임종의 얼마 안남은 이제야 회한에 잠긴, 한때는 '남의 남자랑 실컷 뭐 하던 걸 데려와 좋게 살지 못했던' 남편, 그들에게 '위안부'는 그저 지나간 역사가 아니다. 

뒤늦게 회한에 쌓인 남편은 그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병상에 누운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알아차리기 힘들다. 죽기 전에 쌓인 한을 풀어주고 싶지만, '일본의 사과'를 받기 전에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나마 결혼을 하고 자식이라도 낳았으면, 277번 째 신고자 박숙이 할머니는 열 여섯 그때 자궁마저 들어낸 줄 자신조차 몰랐다고 한다. 그래도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이 혹시라도 자신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까 그 아이들이 장성할 때까지 자신의 상처는 꼭꼭 숨겨야만 했다. 그렇게 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상처가 직접 낳았든, 그렇지 않든 아이들에게 이어질까 가슴조리며 살아왔다. 한 달에 한번 대학생들을 만나 자신의 경험을 전하는 할머니 짱짱하게 일본의 만행을 전하던 할머니는,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난 후 되살아난 그 시절으 ㅣ기억에 몸을 가누지 못한다. 



그렇게 <최후의 심판-엄마라서 미안해>는 70년이란 세월이 대를 이어 이어지는 '위안부'의 고통을 다룬다. 일본이 기다리는 것처럼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신다고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엄마라서 미안해>를 보다보면 다큐를 통해 제작진이 결론을 낸,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서도 풀어내지 못한 응어리인 '일본의 사과'가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사과를 하지 않는 뻔뻔한 일본만큼이나, '위안부'라, 혹은 '위안부'의 자식이라 드러내는 것이 수치가 되는 우리 사회는? 이라는 질문이 던져진다. 

물론 70년이 지나도 여전히 제대로 된 '사과'한번 하지 않는 주범 일본도 문제다. 하지만, 시민 공원에 자리가 없다고 위안부 소녀상조차 설치 하지 못하게 하는 최근 부산시의 방침에서 보여지듯이,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기에 앞서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도 경계 밖의 존재로 대접받는 '위안부'의 존재를 집어보는 것이 <최후의 심판-엄마라서 미안해>가 드러낸 뜻밖의 진실이다. 엄마가 위안부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래서 더 이상 한국에서 살 수 없었던 딸, 직장에서 어머니의 과거로 인해 눈치를 보는 아들, '너네 할머니는 일본 군인들하고 살다 온 창녀다'라고 아이들이 놀림받는 현실, 어쩌면 진짜 짚어보아야 할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소녀상조차 설 곳이 없는 대한민국의 냉랭한 현실이 아닐까. '위안부 할머니'들이 '엄마라서 미안해'라고 말하게 하는 대한 민국 사회, 그런 면에서, 본의 아니게, <최후의 심판-엄마라서 미안해>는 시사적이다. 

by meditator 2015. 8. 16. 15:39

좀비, 백과 사전적 정의로는 아이티에서 유래된 부두교에서 등장하는 살아있는 시체,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미디어 속 좀비는 전염병과 생물 병기에 의해 감염되어 파멸된 존재, 그래서 생각없이 생물적 본능과 반사 행동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그려진다.  좀비는 이제 시즌 6에 돌입하고 있는 미드 <워킹 데드> 시리즈를 정점으로, 스릴러 물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그를 통해 자본주의 발전의 그림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산업 사회의 노동력으로, 혹은 상업적 소비 문화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상징적 존재로 등장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좀비'를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는 장르는 웹툰을 중심으로 한 에니메이션 장르이다. '좀비'나 '뱀파이어'는 이은재의 <1호선>,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 , 그리고 최근 드라마화 하고 있는 <밤을 걷는 선비> 등을 통하여 '스릴러'에서부터 '로맨스'까지 다양한 장르로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로 오면 여전히 이들은 생소하며 이질적인 장르이다. 드라마화한 <밤을 걷는 선비>를 필두로  <오렌지 마말레이드> 등 여러 드라마들이 '뱀파이어'를 극중 주요 제재로 활요하고자 하지만, 여전히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좀비'는 더하다. 아예 공중파이건, 케이블이건, '살아있는 시체'는 한 발을 들이미는 것조차 버겁다. 

그런 가운데 8월 14일 방영된 <드라마 스페셜 2015>의 세번 째 작품으로 좀비물이 등장했다. <라이트 쇼크>가 그것이다. 



드라마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좀비물'<라이브 토크>
<라이브 토크>의 이야기는 전형적이다. 권력과 손을 잡는 다국적 제약 회사의 실험 과정 문제로 '좀비'가 발생한다. 제약 회사는 '좀비' 실험 참가자들을 죽여없애려고 하지만, 그 중 한 명의 실험 참가자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채 살아남아, 생방송인 <금요 토론> 방송에 난입한다. 조종실에 들어가 인질들을 잡은 채 생방송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참혹한 진실을 알리려고 했던 실험 참가자(장세현 분), 하지만 약물로 잠시 잠재웠던 그의 '좀비' 증상이 다시 나타나고, 그런 그에 의해 습격당한 방송국 관계자들은 '좀비'가 되기 시작하고, 그 파급력은 거침없이 방송국을 집어 삼킨다. 

그런 '좀비' 쇼크의 와중에 놓인 알바 사이트의 대표로서 생방송에 참가했던 은범(백성현 분)과 그 여동생 은별(김지영 분), 그리고 풋내기 방송 기자 수현(여민주 분)는 생과 사의 갈림김, 그리고 제약 회사의 숨겨진 비리와 희생된 사람들 사이에 휩쓸려 들어간다. 

거대 다국적 제약 회사의 숨겨진 음모, 그리고 거기에 결탁한 국회의원, 그리고 '좀비' 실험인줄도 모르고 '많은 알바비'에 '희희낙락'하며 찾아든 순진한 학생들, 그리고 은범과 은별 남매의 애끓는 혈육의 연, 거기에 신참 기자의 사명감까지, 한 편의 단막극이 설정할 수 있는, 그리고 이런 종류의 장르물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라이브 토크> 한 편에 수요되었다. 

하지만 익숙하고도 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남짓의 단막극 <라이브 토크>는 땀이 채 식기도 전에 후딱 지나가 버릴 정도로 '스릴'에 넘쳤다. 

알바 희생자였던 '좀비' 실험의 희생자가 다국적 제약 회사의 비리를 알릴 장소로 선택한 '방송국', 그리고 생방송 토론은,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나갈 가장 절묘한 장소가 되었다. 마치 영화 <더 테러 라이브>가 방송국과 생방송이라는 장소와 설정을 절묘하게 풀어가는 것처럼, <라이브 쇼크> 역시 생방송에 진입한 좀비, 그리고, 방송국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번져가는 좀비 바이러스라는 설정을 '방송국'이라는 지형지물을 기막히게 이용하여 풀어낸다. 

알리고자 하는 희생자, 하지만 알리게 놔두어서는 안되는 권력 측은 '방송'을 매개로 힘겨루기를 하고, 결국, 마지막 한 신참 기자와, 책임감을 가진 한 시민의 정의감은, 통제된 방송을 넘어, '인터넷'이라는 또 다른 매체를 통해 '진실'을 알린다는 결론은, '통제'된 현대 사회의 단면과 허상을 적절하게 설득해 낸다. 

거기에 도시 한 가운데 있지만, 철문 셔터를 내리고 나면, 무법 천지가 되어버리는 거대한 방송국 건물은 그 자체로 '스릴러'가 된다. 그 어둠의 공간이 되어버린 방송국, 그 높은 빌딩의 복도와 복도, 그리고 나선형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밀실과도 같은 제작 현장들 사이로 좀비와 인간, 그리고 잡으려는 자와, 잡히지 않으려는 자의 숨막히게 벌어지는 레이스는, 충분히 늦여름의 더위를 식히고도 남았다. 



물론 얼굴에 돋아오른 수포 분장과, 구체 관절 인형처럼 꺽어져 버린 좀비들은, 등장한 첫 순간에는 좀 어설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드라마 스페셜>의 제작비로 따지자면, 이 정도면 '블록버스터' 급 일 것이다. 그런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좀비'들의 출현을 상쇄시킨 아니, 극복한 것은 출연자들의 연기이다. 대부분 어디선가 얼굴을 한번 본듯한, 아니, 그 조차도 아닌 단역의 출연자들은 '혼신'의 좀비 연기를 선보이며 방송국을 질주하여, <라이크 쇼크>에 <워킹 데드>급의 공포를 안긴다. 높은 제작비와, 그에 따른 엄청난 물량의 미드의 공포물을, 방송국이라는 유리한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단역 연기자들의 투혼으로 상응한 공포물을 만든 것이다.

덕분에, <라이브 쇼크>는 뻔한 듯 이어지는 스토리, 예정된 결말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리모컨을 이동할 수 없는 한 시간을 선사했다. 마지막 순간의 반전이라는 옵션까지 더해. 드라마에서 쉽게 선택할 수 없었던 이질적 장르물로서의 '좀비'물은, 가장 약소한 물적,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드라마 스페셜>의 존재감을 한껏 뽐냈다. 이 정도라면, 비록 매주 시간을 잃은 대신, 가끔씩 찾아드는 <드라마 스페셜>을 기다릴만한 이유로 충분하다. 

by meditator 2015. 8. 15. 16:43
전 국민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홀로 사는 사람으로 이루어진 시대다. 1990년 9%였던 1인 가구가, 불과 20여년 사이 2010년 23.9%로 급격한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 상태로라면 불과 10년 후 30%를 육박할 예정이다. 

홀로 사는 사람, 싱글족, 혹은 1인 가구로 지칭되는 경향은, 사회적 변화의 결과물이다. 그 중 30대 이하 청년층의 경우엔 비혼자의 증가(30.1%), 고용불안 경제 여건 악화(26.5%)라는 사회적 현상의 결과물이요, 노년층 1인 가구의 증가는 가족 가치의 약화(31.4%)나 개인주의 심화(26.7%)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가족 가치의 약화나 개인주의 심화는 젊은 층의 1인 가구에도 역시나 영향을 준다. 

이렇게 사회의 변화,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로 인한 1인 가구의 증가, 하지만 사회적 문제로서 '싱글족'에 대한 근심은 '다큐'의 몫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싱글'들은  혼자 뛰어다녀도 될 만큼 넓은 공간, 그 공간을 가득 채운 멋들어진 가구이거나, 고시촌의 비좁은 방이라는 극과 극의 대비로만 등장할 뿐이다. 그런데, 최근 등장하고 있는 '에듀테인먼트 형' 예능 <젠틀맨 리그>가  싱글'이 대세가 된 세상을 배워보고자 한다. '다큐'아 아닌 방식으로 읽어 본 '트렌드'는 어떨까?



대세가 된 '싱글 라이프'
'핫한'사회적 현안을 사회, 경제, 역사 각 분야의 '젠틀맨'들과 함께 풀어보는 본격 지식 과부하쇼 <젠틀맨리그>는 전형적인 성인들을 위한 에듀테인먼트다. 신문 한 장 제대로 볼 일이 없는 요즘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주제를 선정하여 그에 대해 심도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주제이다. 그에 걸맞게, 그간 이 프로그램은 '전세 대란', "메이드 인 촤이나', '나 홀로 족'등 가장 현실에 와닿는 주제를 선정한다. 

하지만, 가장 민감하면서도 현실적인 주제를 접근하는 <젠틀맨리그>의 접근 방식은 생각 외로 포괄적이다. 매주 그 주의 주제에 걸맞는 키워드, 'g워드'를 통해 주제에 접근해 가는 이 지식 과부하 에튜테인먼트의 시야는 넓다. 

첫 회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을 가장 현실적으로 괴롭히고 있는 '전세 대란', 하지만 <젠틀맨 리그>를 통해 본 세상은, 어느새, 아니 이미 조선시대 부터, 오늘날 전세계에 이르러서까지 '월세 시대'였다. 심지어, eu 평균 주거 비용이 30%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보면, 어쩌면 우리는 이제야 '진정한 세계인'이 되어가는 중인 듯하다. 2회의 메이드인 차이나가 훑어가는 세상도 넓다. 전세계를 싹쓸이하다시피 한 대세가 된 중국에서 부터, 하지만 어느새 섣부르게 끝물을 점쳐보는 중국 천하의 미래까지 '메이드 인 차이나'의 해부는 생각외로 예리하고 심도깊다. 
그런 면에서 3회의 싱글족 역시 마찬가지다.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싱글족인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저 우리나라 만의 '문제'가 아니다. 

즉, <젠틀맨리그>를 통해 본 '싱글족'은 전 세계적 현상이며, 결혼은 사치품이 되어간다. 남자들의 소득과 결혼율은 비례하며, 상대적 빈곤율이 높은 계층일 수록, 싱글족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오늘날 '싱글족'의 증가가, 심해지는 빈부 격차와 소득 격차와 직접적 연관이 있음을 증명한다. 

그렇게 <젠틀맨 리그>는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 체제가 되어가는 지금, 그에 따라 빈부의 격차가 늘어나고, 그로 인한 사회적 현상 중 하나가 '싱글족'의 증가임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낸다. 소리 높에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를 지적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몇 가지 g워드의 현학적 분석만으로 결혼과 삶의 형태마저 규정하여 버리는 '자본주의' 체제를 실감케 한다. 물론, 그 마저도 조선 시대에도 여전했던 '싱글족'에 대한 고민을 통해, 언제나 가지지 못한 삶은 일생의 파트너를 구하는 그 기본적인 일에서조차 '궁여지책'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전세 대란', '메이드 인 촤이나', '싱글족', 등 가장 현실적인 사회 문제에 대해 <젠틀맨 리그>는 섣부르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그 문제에 대한 시야를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넓히고자 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재미'도 발생하고, '통찰'할 수 있는 눈을 키워준다. 굳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더라도, '결혼'을 사치품이라 정의내린 미국 언론의 기사를 보면, 상대적 빈곤율과 역비례하는 결혼율을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버거움을 지레 짚어볼 수 있다. 

'신문'을 더 이상 보지 않는 세상이다. 그래서 전통의 신문사들이 '종편'이란 수단을 통해 날마다 '독설'을 뿜어내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포털'에 편집된 단편적인 정보나, 페북을 통해 회자되는 지식만을 습득한다. 오죽하면, 한때 진보 정치의 화두를 선점했던 진중권, 노회찬, 유시민이 한 진보 정당의 팟 캐스트를 통해 제대로 된 '여론'과 '지식'의 전파에 나섰을까. '넘쳐나는 삿된 정보와 지식의 세상에서 제대로 된 '정보' 지식'이 절실한 요즘이다. 그런 면에서, <전틀맨리그>가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에듀테인먼트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예능의 긴급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1%도 요원한 시청률이지만, 부디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속깊은 지식을 잘 전달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생존하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5. 8. 14. 15:48

sbs의 수목 드라마 <용팔이>가 4회만에 14.9%의 시청률을 보이며 놀라운 시청률 상승을 보이고 있다. 그런 반면, 이제 10회를 맞이할 <어셈블리>는 여전히 5%대의 시청률을 보이며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하지만 <어셈블리>의 시청률을 들여다 보면, 용접공 신분으로(정확하게 신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용접공은 드라마 상에서 진상필을 대우하는 동료 국회의원들의 태도만 봐도 '신분' 맞다) 감히 여당 국회의원이 된 지 몇 달 만에 정치 생명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진상필(정재영 분)처럼, 한 회 4%대였다가, 한 회 5%대였다가 역시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중이다. 또한 재미있는 게, 그저 백도현(장현성 분)의 선거용 이용물로 여당에 들어왔다가 조금씩 '정치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진상필처럼 들쑥날쑥하면서 야곰야곰 시청률도 성장하여, 이제는 6%를 바라보고 있는 것 역시 <어셈블리>와 같다. 



리얼 인듯, 환타지스런 정치인 진상필
<어셈블리>란 드라마는 현실적이다. 백도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정치 이야기, 자신의 지역구에 등장한 대통령 후보군의 인물 때문에, 은밀하게 새로이 물색한 후보 지역구에, 총알 받이로 노조위원장 출신의 진상필을 공천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국회에 들어온 신참 국회의원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냈다가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여당 내에서 인정받기 위해 저격수를 마다하지 않는 과정,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셈법에 따라 다시 한번 내처지는 과정은 '실록'처럼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의 맨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반면 애초에 용접공 출신 노조 위원장이 여당 국회의원이 된다는 설정에서 부터 '환타지'스러웠던 설정은, 롤러코스터와 같은 역정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초심을 놓치지 않는 인간 진상필이 벌이는 정치 행보, 그 자체가 <어셈블리> 자체를 더욱 환타지 스럽게 만든다. 

여당이라면 무조건 당선은 따논 당상인 경제시에서, 백도현 사무총장의 추천으로 진상필은 국회의원이 된다. 비록 그 과정에서 그와 함께 노조를 이끌어 오던 배달수(손병호 분)의 희생은 있었지만, 그래서 더 진상필은 국회로 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런 그와 함께 하게 된 애초에 경제시의 국회의원 내정자였지만, 진상필의 출현으로 졸지에 그의 보좌관이 된 최인경(송윤아 분)가 있다. 

이 두 사람은 최인경은 진상필더러 모가 아니면 도라고 다그치며 좀 더 정치적인 모습을 보이라 힐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닮았다. 무기력한 노조 대신 정치를 선택했던 행보, 그리고 다음 공천을 위해 여당 저격수를 마다하지 않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추진력에도 불구하고, 형과 같은 배달수와 함께 했던 그 초심을 놓치지 않고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를 하고자 하는 진상필이 있다. 그리고  가장 믿었던 선배 백도현의 부탁으로 진상필을 돕게 되었지만, 이제 그 백도현의 정치적 술수에 휘말려 희생양이 되어가는 진상필을 위해, 자신의 계보와도 같은 백도현을 등지기로 결심한 최인경의 행보 역시 '낭만적일 만큼' 인간적이다. 최인경의 '동지'라는 무색하지 않게, 진상필과 최인경은 인간이기를 쉽게 마다하는 '정치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얼굴을 포기하지 않는 정치'의 동지들이다. 

드라마 중 김규환(옥택연 분)의 존재는 사족이다. 배달수의 아들로 등장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오해하고,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진상필에게 접근하여 칼을 간다. 드라마 속 진상필의 진심을 의심하는 그의 존재는 정치인 진상필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굳이 등장할 필요가 없는 그 존재를 통해 매회 진상필이란 정치인의 진심을 의심하고, 따져보고, 건드려 보며 그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어셈블리>의 행보는 더디다. 



정치 혐오주의 세태 속에서 인간적 정치란?
왜 굳이 속시원한 진상필의 활약 대신 그때문에 죽었다는 오명을 쉽사리 벗기 힘든 형과 같은 동지의 아들을 등장시켜 진상필을 의심하게 만들까. 
그것은 진상필로 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에 팽배하여 있는 '정치 혐오주의'때문이다. 

그 언제부터인가 이제는 그 시기조차 알 수 없게, 우리 사회엔 정치는 더럽고 나쁜 것이란 '정치 혐오주의'가 팽배하여 있다. 물론 국회의사당에 모인 사람들은 맨날 말만 많고, 심지어 서로 싸움박질만 하고 제대로 해내는 것은 없다. 아니, 제대로 해내는 것이 있기는 하다. 자기 논에 물대기처럼 국민들이 뽑아주었다는 처지를 망각한 채, 자기들 개인의 이익, 그리고 차기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자기 지역구 이익에는 앞장을 선다. 그리고 이런 국회의원들의 변할 줄 모르는 행태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뿌리깊은 혐오'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뿌리깊으면 뿌리깊을 수록, 사실 '노가 나는' 것은 국민들의 외면을 받은 정치인들이다. 국민들이 더럽다고 손가락질 하면 할수록, 그 손가락질 받은 구석에서 자기들끼리 협잡을 하고, 자신들끼리 해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사람들의 외면을 받은 현실 정치 혐오주의에서, '인간적 정치'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불가피하게 '인간적'인 그 면을 설득해 내기 위해 <어셈블리>는 지지부진 갈짓자를 달려왔다. 끊임없이 사족같은 동지의 아들을 통해 진상필을 의심하고, 심지어 동지였던 최인경조차 서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 9회 어떻게 하면 진상필을 끌어내릴까 노리던 김규환이 진상필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판국에도 최인경을 보호하고 싶은 그의 진심이 적이었던 김규환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 그와 함께 최인경도 돌아왔다. 

그리하여 여전히 낭만주의적일 정도로 순수한 정치적 이상주의자 최인경과, 노조 출신의 초심을 놓치지 않은 진상필은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의 길에 본격적으로 나서고자 한다. 그 길을 구불구불하고 에돌아 왔지만, 대신 '인간'에 대한 신뢰를 얻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어셈블리>를 지켜보는 시청자들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얼굴'을 한 정치에 대한 희망을 건져보게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8. 13.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