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출연자들의 '자존감'을 향상시켜준다는 tvn의 리얼리티 쇼 <렛미인>, 하지만 그 그럴듯한 프로그램 소개에도 불구하고, 여성단체들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할 정도로 물의를 빚고 있다. 여성 단체들을 비롯한 다수의 네티즌들이 이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이유는 바로 '자존감 향상'을 빙자하여 성형을 당연시하며, 외모 지상주의를 공공연하게 설파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의 진행 양식 때문이다. 외모의 문제로 인해 가족 내에서, 혹은 사회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출연자들이 외모가 인위적으로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은 애초에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가진 시청자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쌍꺼풀 수술 정도는 '수술'에 들어가지도 않고, 연예인이 아니라도 보톡스나 필러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세태에서, 렛미인 프로그램의 생존 여부와 별개로, 외모 지상주의 세태는 쉬이 변화되지 않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10월 19일 방영된 <힐링 캠프> 장윤주 편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최고의 모델, 하지만 웃기게 생겨 개그우먼이 되고 싶었다던 장윤주
우리나라의 최고 모델로서 onstyle의 <도전 슈퍼 모델>을 진행하고 있는 장윤주답게 <힐링 캠프>의 시작은 그녀의 당당한 모델 워킹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33-24-34라는 신체 치수를 내걸고 시작한 프로그램은 최고의 모델 장윤주에 대한 거침없는 찬사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치지는 않았다. 당당한 자세로 앉아있는 장윤주에게 방청객은 짖궃게도 윗배가 좀 나왔다는 문자를 보냈고, 그런 문자에 대해 장윤주는 본능적으로 배를 가리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은 '배가 나온 모델'이라고, 그리고 먹는 것을 좋아하며, 오늘도 많이 먹고 나와서 그렇다고 응수한다. 

그렇게 가장 완벽한 몸매를 자신의 대표적 상품성으로 내걸었음에도 그 세간의 잣대에 자신을 꿰어 맞추는 대신, 배가 나왔다는 것과, 힐은 무대에서만 신는다며 소박한 하얀 운동화를 신고 힐링 캠프를 찾아온 장윤주는 그 하얀 운동화처럼 소박하게, 하지만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미스 봉'으로서 그렇게 잘 될 줄 몰랐음에도 졸지에 천만 영화의 일원이 되어 버린 첫 영화 <베테랑>에 대한 이야기도, 이제 겨우 6개월이 된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눈에서 사랑이 뚝뚝 떨어지고 마는 신혼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했지만, <힐링 캠프>라는 프로그램의 취지에 가장 걸맞았던 것은 이 시대 대표적 아름다운 사람이 보여준 진솔한 속내였다. 

서른이 되도록 자신이 못생겼다는 자괴감때문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던 방청객 mc의 사연을 시작으로, 장윤주의 진짜 매력은 제대로 빛을 발한다. 한번도 자신이 이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던 방청객은 장윤주의 '이쁘네'라는 말에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다가가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준 넉넉함에 허물어 졌다. 

안경을 쓰고 긴 앞머리로 얼굴을 가린 방척객 mc를 보고 대번에 자신의 얼굴에 자신감이 없어하는 것을 눈치 챈 장윤주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못생기지 않았음을 역설한다. 오히려 그렇게 못생기지도 않은 그녀에게 '이쁘다'는 말을 한번도 해주지 않은 주변이 이상함을 지적할 뿐이다. 그런 그녀의 지적은 엄마와 함께 방청객으로 온 모델학과 학생에게도 일관된다. 못생겼다는 방청객 mc에 비해 훤칠하게 잘생긴 청년, 하지만 그런 그에게 장윤주는 그럼에도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질 것을 독려한다. 

이렇게 '자신감'을 강조한 장윤주의 '멘토링'이 설득력을 가진 것은 그 이후에 풀어놓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이다. 초등학교 때 언니랑 놀다 앞니를 뿌러뜨린 장윤주, 그 이후로 중학교 3학년때까지 앞니가 없이 지내던 그녀를 보고 친구들은 웃었고, 그런 친구들의 웃음 앞에, 장윤주는 초라해지는 대신, 차라리 좀 더 웃긴 모습으로 개그우먼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또한 그렇게 자신에 대한 평가에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않은 이유는 오히려 딸만 내리 본 집안의 또 한 명의 딸로서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무이라 담담하게 풀어 놓는다. 그런 그녀였기에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가장 당당한 모습으로 세계 무대에서 조차 인정받는 대한민국 최고 모델이 될 수 있었음을 구구절절한 설명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그 누구도 배려해 주지 않는 시간을 거쳐 스스로 쌓아올린 자존감으로 오히려 집안의 아들 노릇을 하는 딸로, 최고의 모델로 자리 매김을 했기에 방청객 mc들의 사연에 대한 충고가 당당하고 좀 더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나는 평범하죠.
밥도 잘 먹고요.
......
걷기를 좋아하죠.
편한 차림으로
불편한 힐은 벗고 화장은 잘 안 해요.
.........
이대로 난 좋아요.    -장윤주 I'm fine 중에서 



장윤주의 매력을 배가시킨 안정된 <힐링 캠프>의 진행 
10월 19일의 <힐링 캠프>는 분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누군가의 자존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유수의 성형 외과 의사의 도움이 아니라는 것을, 엄청난 시술과 뼈를 깍는 수술의 과정을 거쳐 달라진 외모가 아니라는 것을. 게스트 장윤주, 그리고 mc 김제동, 서장훈, 광희, 그리고 나머지 방청객 mc 들의 '이쁘다'는 한 마디에, '자신감을 가지라는' 덕담에, 그리고 다가가 안아주는 따스함에, 오랜 시간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잃고 자신을 닫아 두었던 방청객의 상처는 눈녹듯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녀는 엄청난 시술과 수술이 없이도 아마 이젠 거울 속의 자기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없다는 방청객에게, 문제는 당신의 얼굴이 아니라, 당신의 친구들이라 말하는 김제동의 한 마디는 그 어떤 말보다 '촌철살인'이었다. 못생긴 걸로 치자면 김제동과 자기를 앞서 갈 사람이 누가 있겠냐는 서장훈의 말은 그 어떤 말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결국 방청객에게 문제였던 것은, 그리고 그녀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자존감을 잃은 사람에게 문제인 것은 그들의 외모나 현실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편이 되줄 사람들이 없어서라는 것을, <힐링 캠프>는 증명한다. 그리고 말 한 마디로 천 냥의 빚은 갚을 수 없더라도, 누군가의 자존감을 함께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렇게 방청객의 사연과 어우러져 게스트의 진솔한 속내까지 풀어내지는 시간으로, 비로소 개편된 <힐링 캠프>의 진가가 드러난다. 
by meditator 2015. 10. 20. 05:47

<두번 째 스무살>은 <내딸 서영이>로 kbs2 주말 드라마의 불패 아니 성공 신화를 만든 소현경 작품이다. 하지만 <내딸 서영이>를 그저 시청률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의 신화로만 설명해서는 부족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불륜과 위악이 판치는 주말 드라마 속에서 이른바 '착한 드라마'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내딸 서영이> 이후 mbc에서 방영되었던 <투윅스>는 <내딸 서영이>의 히트 작가란 이름이 무색하게 고전하였고, 결국 소현경 작가의 차기작 <두번 째 스무살>은  tvn이란 케이블 장르로 귀결되었다. 




소현경 작가의 특기, 유예된 삶의 이야기
10월 17일 16부작으로 종영한 <두번 째 스무살>, 이 작품은 미처 고등학교조차 마치지 못한 채 한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란 이름으로만 살아온 하노라(최지우 분)가 본의 아니게(?) 대학에 들어가게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극중 하노라는 서른 여덟의 나이에 벌써 대학 1년생의 아들을 준 아줌마이지만, 남편의 이혼 요구에 제대로 불만조차 표출하지 못하는 '자아' 상실형' 인간으로 등장한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지만 제대로 된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 어른들의 이야기, 바로 이것이 소현경 작가가 꾸준히 풀어내오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공통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발군의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2011년 5월 종영한 <49일>이라 할 수 있다. 방송 초반 모 가수의 팬픽과 유사하다는 표절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마지막 회에 이르러 어이없는 자매 설정에도 불구하고, <49일>은 드라마 사상 드물게 죽은 자가 주인공이 되어, 49일의 유예된 삶의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왜곡된 삶을 바로 잡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 뒤에 비로소 49일의 유예를 얻어 자신의 뒤틀린 삶에 개입하는 <49일>의 여주인공 신지현처럼, <두번 째 스무살>의 하노라도 남편과의 이혼을 막기 위해 무작정 뛰어든 대학 생활 속에서 비로소 헝크러진 자신의 삶을 목격하게 된다. 방송 초반 하노라는 <49일>의 신지현처럼 불치병 해프닝을 통해 자신의 삶에 그다지 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긴박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불치병이 말 그대로 해프닝이 되어버렸지만, 그것을 계기로 하노라는 그저 누군가의 아내,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인 채 자신이 묻어두었던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꺼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자신은 서른 여덟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열여덟 남편을 만났던, 그리고 무용에 뜻을 두었던 그 시절에 정체되어 버린 아이 어른이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우연히 만난 그 시절의 친구, 하지만 하노라를 첫사랑으로, 그리고 자기 인생의 은인으로 생각했던 차현석(이상윤 분)의 도움으로 하노라는 비로소 열 여덟의 그 시간으로 부터 발을 내딛는다. 



어른으로 살고, 사랑하는 법에 대하여 
<두번 째 스무살>은 흔히 캠퍼스물처럼 학생 하노라와 교수 차현석은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서로 만나고 갈등하고 사랑을 가꾸어 나간다. 또한 여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처럼 대학으로 간 하노라는 '회춘'의 모든 통과 의례를 수행한다. 수강 신청도 하고, 또래 대학생들과도 어울리고, 알바도 하고. 

하지만 소현경의 <두번째 스무살>은 그저 다시 대학으로 간 낭만을 만끽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저 그 시절 첫사랑을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루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남편의 이혼을 막기 위해 간 대학을 결국 스스로 나오듯이, 남편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을 선택했던 그녀가 남편의 내연녀에게 당당하게 남편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로,  짧은 대학 생활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해 나간다. 거기에 15회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를 하는 차현석에게 결별을 선언할 만큼, 하노라는 그 짧은 시간을 통해 비록 차현석의 도움을 얻었지만,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만을 하지 않는 자신의 삶에 용기를 얻어 나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도 좋지만, 나도 소중한 진짜 어른 하노라가 된다. 

또한 <내딸 서영이>를 통해 불통인 어른 세대와 젊은 세대의 화해를 고민했던 소현경 작가는 <두번 째 스무살>에서도 그 문제 의식을 이어간다. 하노라가 간 대학은 그래서 그저 그녀가 생각했던 막연한 낭만과 꿈이 충만한 대학이 아니라, 죽도록 알바를 해도 등록금조차 빠듯한, 그래서 주판알을 튕겨보니 대학을 다니는게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서게 만들 정도로, 삼포 세대의 현실이 담긴 대학이다. 그리고 거기서 하노라는 몸만 어른인 채 아직은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현실의 파고에 휩쓸린 청춘들과 조우한다. 의기충만하여 교수의 성추행에 반발해 보지만, 그 조차도 현실의 직업 구애에 고개를 숙여버린 선배, 동기들과의 갈등으로 이끌어 가는 에피소드들은, '어른'도 아이도 만만치 않은 2015년의 현실을 깊게 고심한다. 

그러나 용감하게도 작가는 삼포 세대의 현실에 그저 함께 고개를 수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막연하게 취직을 해야 해서 경영학과에 갔던 선배는 마지막에 공연 기획을 꿈꾸고, 학점의 노예였던 아들은 외국에 나가 일을 하며 자신을 단련시킨다. 그저 대학이란 공간에서 자신을 어른으로 성장시킨 것은 늦깍이 대학생 아줌마 하노라만이 아니라, <두번 째 스무살> 속 청춘들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던져져 어른들의 프레임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던 아이들은 조금씩 그 어른들의 프레임 밖으로 튕겨져 나와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함께 어른이 되어가며, 젊은이들과 덜 젊은이들은 서로 소통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차현석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는 하노라뿐만이 아니라, 오직 하노라 바라기였던 차현석은 첫사랑 하노라를 넘어 현실의 하노라를 사랑하게 된다. 자기애적 인격 장애의 안하무인 교수 남편도 조금은 성장한다. 입신양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김우철(최원영 분)이 유배대로 유배를 가고, 다시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논문을 쓰고, 사랑을 얻기 위해 비열함을 마다않던 김이진(박효주 분)이 자신의 부도덕함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교수직을 사퇴하는 결론은 철부지들의 또 다른 어른이 되는 법이다. 

덕분에 많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극중 누구도 끝까지 나쁜 놈이 되지 않는 <두번 째 스무살>의 결론은 그래서 오히려 감동적이다. 불륜이 복수가 아니라, 나의 성장의 터전이 되는 그래서 당당하게 남편을 던져버리는 당당한 여성으로서의 성장은, 이것이야 말로 진짜 어른다운 복수가 아닐까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길지 않은 16부작의 시간 동안 모두가 한뼘씩 자라,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 그래서 보는 시청자마저 '어른스러워지게' 만드는 드라마, 역시나 소현경의 또 한편의 착한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 착한 드라마를 어른스럽게 만든 것에는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겨울 연가> 이후 오래도록 고전하는 최지우는 서른 여덟 사랑스러운 하노라를 그녀의 새 이름으로 얻었다. 이상윤은 우재씨에 이어 또 한번 소현경의 남자임을 증명했다. 비열한 남편임에도 그의 연기로 인해 설득되고 싶은 최원영, 밉지 않는 내연녀의 박효주 역시 <두번째 스무살>의 공신이다. 

by meditator 2015. 10. 18. 15:36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4회 시청률이 5.2%(닐슨 코리아 기준)가 나왔다. 야구 중계 관계로 mbc의 <그녀는 예뻤다>가 결방한 가운데 3회가 7.1%나왔던 거에 비하면 폭락에 가까운 수치다. 하지만, 역시나 <그녀는 예뻤다>의 결방으로 12%까지 치솟았던 <객주-장사의 신> 역시 10%대로 내려 앉은 거나, 그 이전 1,2회 시청률이 5~6%였던 거로 보면, 그저 조금 낮아지거나, 그 수준을 유지한 것이라 평가하는 것이 맞겠다. 5~6%의 시청률, 그 결과만을 놓고 보면,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야 하는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의 낮은 시청률이 왜 당연한 것이냐고? 그것은 굳이 <마을>을 걸고 넘어질 것이 아니라, <마을>과 유사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시청률을 살펴보면 알 수 있겠다. 

8월 11일 종영한 kbs2의 <너를 기억해>는 최고 시청률이 5.3%였다. 콘텐츠 지수면에서 양호한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방영 내내 이 드라마는 4~5%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좀 나은 편은 2014년 4월 종영한 <신의 선물>이다. 역시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였던 이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이 10.6%를 기록했다. 하지만 역시나 대부분의 회차는 8~9% 정도 수준이었다. 

<마을>을 비롯한 <너를 기억해>, <신의 선물>과 같은 장르의 특징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그저 틀어놓고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드라마가 아니라, 잠시 잠깐 한 눈을 팔면 중요한 힌트를 놓칠 수도 있는, 사건의 추이를 주의깊게 주목하고 그 이면의 것들을 추리해야 하는 생각하는 드라마들이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유괴 사건으로, 연쇄 살인으로 시작된다 한들, 결국 드라마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며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마을>은 무섭다. 심지어 방영하는 시간 혼자 보기 힘들 정도로. 그런데 <마을>dl 무서운 이유는 그저 간간히 나타나는 죽었다던 김혜진쌤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드는 의심, 그리고 그 의심을 뒷받침하는 시청자의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이 드라마를 무섭게 만든다. 실제 드라마 속 설정들은 그리 잔인하지 않다. 무섭지도 않다. 기껏해야 해골 쫌 나오고, 귀신인 듯한 여자가 창문에 매달리고 만다. 하지만 그보다는 비밀을 숨긴 사람들의 묘한 시선, 속을 알수 없는 사람들이 횡행하는 마을이 무섭다. 그들의 숨겨진 사연이 가진 폭발력이 두려운 것이다. 

바로 그런 '생각하는 드라마' 라는 것이 현재 공중파 드라마에서는 '이질적'인 장르가 되었다는 것이 이들 드라마의 낮은 시청률의 한 원인이 된다. 즉, 스스로 '바보 상자'란 그 이름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공중파 드라마들은 시청률이란 이름으로 대중들이 가장 손쉽게 소비할 수 있는 장르에 몰입해오다 보니, 결국 이제 이렇게 생각을 하며 따라가야 하는 드라마는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편성에 따른 '광고'를 무시할 수 없고, 그래서 리모컨을 수호하는 중장년층의 구미에 맞는, 그들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드는데 천착하다 보니 점점 더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을 한다는 것이 낯선 일이 되어가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sbs의 월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묵직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드라마를 시작했지만, 역시나 시청률이라는, 그래서 대중들을 손쉽게 유혹할 수 있는 이야기꺼리를 위해, 미성년자 강간 장면을 여과없이 내보내고, 마치 무협 게임의 설정과, 일본 사무라이 검법을 우리의 검법인 양 잔뜩 버무려 무술의 내공으로 시청자를 현혹한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 이 높은 시청률의 전제가 되는, 리모컨을 쥐고 있는 중장년츠의 기호라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드라마, 자극적인 내용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그들은, 결국 우리나라의 '생각하지 않는 중장년층'으로 귀결된다. '생각없는 세대'를 위한, '생각하지 않는 드라마', 그 속에서 새로운 시도는 점점 고갈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생각없는 세대를 위한 생각없는 드라마는 역으로 이렇게 생각없는 사회를 조장하는 중이다.



생각하는 드라마, 그렇다면 무엇을 생각할까?
생각없는 세대를 위한, 생각하지 않는 드라마, 이 정언은 궤변과도 같다. 그저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말 드라마, 혹은 아침 드라마, 그리고 이제는 그런 드라마를 흉내내는 주중 미니 시리즈에 등장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적을 죽음으로 몰아넣거나, 자신과 똑같이 의식 불명 상태의 환자로 만들어 버리는 설정. '복수'라는 미명아래 자신의 자식마저 외면하고, 혹은 자신의 자식을 이용하여 누군가를 위해하는 설정들은, 오히려 웬만한 미스터리 스릴러의 내용들을 능가한다. 설정의 호불호, 혹은 자극성을 가지고 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는, 대부분 미스터리 스릴러물이 추구하는 주제 의식이 대중들의 입맛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너를 기억해>도, <신의 선물>도, 그리고 이제 <마을>도 모두, 결국 그 끝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욕망에의 반추, 반성, 그리고 징벌이다. 여타 드라마들이, 욕망에 대한 징벌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그 왜곡된 욕망을 또 다른 욕망으로 상쇄하는 반면, 대부분의 미스터리 스릴러들은, 인간의 욕망이 저질러 놓은 범죄로 시작하여, 그 헛된 욕망의 헛헛한, 혹은 무자비한 결말로 시청자를 이끈다. '성공'과 '밝은 미래'와 '화목'을 이야기하는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꺼림찍한 것이 시청자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이제 4회에 이른 <마을>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수상하다. 이제 4회에 불과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주연이고, 조연이고 할 것없이 저마다, 자신의 욕망으로 인한 숨기고 싶은 과거를 가진 인물들인 듯하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마을을 관광 특구로 만들기 위해 살인 사건마저 덮으려는 도의원 서창권(정성모 분), 하지만 그가 살인 사건을 덮으려는 데는, 의문의 실종자 김혜진이란 인물과의 석연찮은 인연때문이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다. 가영이란 여고생이 자신의 어머니와 서창권의 사진에 집착하듯, 혹은 서창권의 아내 윤지숙의 '서창권의 여자 관계때문이라면 마을 모든 여자들을 적으로 돌려야 한다는' 말처럼 과연 이 마을에는 서창권의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의 삿된 욕망은 마을의 실종 사건의 배경으로 검게 피어오른다. 하지만 권력을 지닌 서창권만이 아니다. 그에게 전화 한 통화로 미술 선생을 정직원으로 만들 수 있는 그의 처제처럼,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욕망으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김혜진 실종 사건에 직간접적 관련자들인 듯 보인다. 심지어 파출소 한경사(김민재 분)마저 예외가 아니다. 

사망으로 처리된 자신의 과거를 찾아 마을로 찾아온 한소윤(문근영 분), 그녀가 찾아낸 죽지 않았다던 언니 한소정, 하지만 죽지 않았다던 언니는 자신의 친언니가 아니었고, 입양된 언니는 사고 후 살아남았지만, 소윤의 외할머니의 외면으로 보육원에 버림받은 신세가 되었다. 심지어 어렵사리 찾아낸 고모로부터, 아버지조차 친아버지가 아니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렇게, 회를 거듭하며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는 사건들은 어른들의 부도덕함이다. 그리고 그런 어른들의 부도덕함으로 덮인 마을의 비밀에 유나, 가영 등 철모르는 아이들이 덤벼든다. 문근영이 분한 한소정 역시, 여전히 앳된 그녀의 모습처럼, 여섯 살의 나이에 사고를 당한 그 시점에 머물러 있는 어른 아이이다. 즉, 부도덕의 세계에 세례를 받지 않은 그래서, 면죄부를 가진 아이들이, 부도덕한 어른들의 세계에 메스를 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을은 단막극 <늪>으로 몬테카를로 tv 페스티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던 도현정 작가의 작품이다. 남편의 불륜을 궁극으로 자신의 처절한 죽음을 통해 복수를 가했던 처연한 <늪>의 주제 의식은, 일반적인 드라마의 '복수'화법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복수'도 하고, 나는 나대로 승승장구 해야 하는 요즘 시절, 과연 <마을>속 욕망의 노예가 되어 과거를 덮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결말을 이끌런지, 부디 시청률이 낮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지 말고 자신의 몸을 던져 남편을 징죄하던 <늪>처럼 오래도록 기억되는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 어차피 욕망을 반성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에 내일은 없다. 

by meditator 2015. 10. 16. 15:18

얼마전 중국 동방 위성 tv <여신의 패션>에 참가한 배우 윤은혜의 참가 의상이 온라인 상에서 문제가 되어 기사화되기 까지 하였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속속 찾아내는 '표절' 확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인 윤은혜는 오히려 반박을 하거나, 그 사실에 대해 함구하여 논란을 증폭시켰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윤은혜가 보인 반응의 속내는 11월 발매 예정 인 중국 잡지 <보그 차이나>와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윤은혜는 '중궁 생활이 편하고 기대되'며, '내게 중국은 새로운 시작'이고, '대중들 마음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생각을 밝힌다. 그녀가 했던 '표절'에 대한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오히려 이제부터의 중국 활동에 대한 포부를 밝힐 뿐이다. 한국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국 내에서 들끓은 '표절' 시비에도 불구하고 동방 위성 tv <여신의 패션>에 참가한 윤은혜는 연일 1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고국의 표절 시비가 문제가 된다 하더라도, 아니 그것을 무시할 만큼 중국 활동을 통해 얻고 있는 결과물이 더 큰 것이다. 이렇게 '표절' 시비조차 꿀꺽 삼켜버리는 한 여배우의 행보는 최근 한국 문화 산업계를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만든 이른바 중국 한류의 한 표상이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중국의 끊임없는 구애
윤은혜의 사건은 이른바 '중국 한류'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중국 한류에 기댄 것은 윤은혜만이 아니다. 10월 14일 <라디오 스타>의 mc진들은 두번 째 출연한 fx의 멤버 루나에 대한 대우에 격을 달리한다. 그저 아이돌 그룹의 외국인 멤버였던 루나는 이제 중국 한류의 선두 주자로, 엄청난 출연료로 저절로 mc진의 고개를 수그리게 만든다. <라디오 스타>만이 아니다. 첫 방송을 선보였던 <해피 투게더>에 출연한 <런닝맨>의 동료 지석진과 개리를 대하는 유재석의 반응 조차 다르다. 여전히 동네 형 다루듯이 짖궃게 굴지만, 방송의 상당 부분은 개리와 지석진이 '중국 한류'로서 얼마나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에 대한 감탄과 존경(?)으로 채워진다. 더 이상 찌질한 동네 형이나, 이상한 동생이 아니라,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류 스타인 것이다.

이렇게 방송가의 문화나 관행조차 변화시킨 중국 한류, 그 현실에 대해 10월 15일 방영된 <추적 60분>이 다룬다. 그 시작은 지석진과 개리를 한류 스타로 등극시킨 <런닝맨>이다. 일요일 저녁 예능 <런닝맨>은 한국 내에서는 동시간대 타 방송사 예능에 비해 낮은 성적을 보이지만, 해외로 나가면 위상이 달라진다. 아이돌을 비롯한 핫한 스타들의 출연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출연진들이 중국내 한류 스타가 될 정도로 이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는 핫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시청률 40%에 해당하는 5%의 기록적인 수치를 자랑한다. 한류 붐의 시초가 되었던 <대장금>이 2.9%였음을 상기해보면 격세지감의 인기다. 심지어, 중국 위성 tv에서는 이와 비슷한 아류 프로그램들이 양산될 정도이고, 중국 내에서 <달리는 사람들>처럼 새로운 공동 제작 양식도 도입되고 있다. 

최근 중국 한류는 이전에 드라마를 중심으로 완성된 작품의 콘텐츠를 파는 형태에서 변화하는 중이다.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는 이제 <런닝맨>, <드림팀> 등 예능 프로그램이 그 중심에 놓여지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넘어 제작진의 중국 행과, 공동 제작 등 새로운 양식이 시도되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검증을 받은 장태유 피디는 중국에서 두번 째 작품에 돌입하고 있으며, mbc 예능의 대부 이영희 피디 역시 중국 행을 선택했다. 

중국 한류의 변화는 여러가지 외적 내적 요인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최근 중국 정부가 '특정 국가 특정 지역에 편중해서 콘텐츠 구입을 자세하라'는 정책을 내건 것처럼, 자국 문화 보호와, 외국 콘텐츠 수입에 제동을 거는 등 무분별한 한류 수입에 통제를 가하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정부의 정책 발표 이후 중국에 수입되는 한국 드라마의 수입 단가가 한층 낮아졌다고 한다. 또한 중국 문화계 이제는 대부분의 한류 콘텐츠 상품들이 수입된 상황에서, 선별적인 수요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제작진, 그리고 합작을 통해 중국화된 콘텐츠를 만들어 가고자 하고 있다. 

이렇게 중국 문화계가 변화되는 것과 달리, '러쉬'라는 말이 적당할 정도로 한국의 문화 인력들의 유출은 물밀들이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15분 짜리 코너에 1억 5천의 제작비, 카메라 72대'를 쓸 수 있는 풍족한 제작 환경이 능력있는 문화 자원들의 유출을 독려한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포화가 된 상황에서 열린 중국 시장', 돈과 시장이 있는 중국과, 재능이 있는 한국 사람들의 결합은 천생연분(장태유 피디)라는 것이다. 더욱이 경제 대국에 이어, 문화 콘텐츠 강국을 추구하는 중국의 정책은 말만 하면 헐리우드의 첨단 기자제를 빌려서라도 제작을 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여, 열악한 제작 환경에 시달리던 문화 인력들에겐 '엘도라도'처럼 여겨질 것이라 다큐는 전한다. 



얼마 남지 않은(?) 한류의 미래 
중국 시장으로 달려가는 인력은 비단 피디 등만이 아니다. 영화 <명량>에서 특수 효과를 맡았던 업체는 이제 중국 영화 <서유기>의 특수 효과를 담당한다. 우리 어린이들의 친구 뽀로로도 중국 시장을 향해 달린다. 중국에는 한국 감독들의 합숙소가 있다는 우스개가 돌 정도이다. 

이런 한국 인력의 중국 러쉬에 대해, <까칠한 시선>의 최광희 평론가는 한국 영화가 중국 영화의 하청 업체로 전락할까 우려한다. '하청'도 만만치는 않다. 소규모 방송 제작사는 중국측의 요구에 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돈을 못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이런 경우는 비단 소규모 제작사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제작사 역시 중국 측의 요구로 제작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시즌2를 제작할 처지에 놓였다고 볼멘 소리를 한다. 

거기에 심각한 것은 윤은혜 사례에서도 보여지듯이 '표절' 등에 대한 중국 측의 취약한 법적 장치도 문제다. 한국의 방송사, 혹은 제작사가 중국 측과 계약을 해도, 그 전에 타 위성tv에서 아류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해 버리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개그 콘서트>, <무한 도전> 등이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입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인력들에게 그 모사 프로그램 제작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류 프로그램이든, 자체 프로그램이든 이미 한국 내 방영되고 있는 대다수의 프로그램이 동시에 중국인들과 공유하는 현실이다. 중국 문화계는 이제 한류의 수입을 넘어, 공동 제작, 그리고 유능한 인력의 수혈을 통해 자신만의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현재 융성하고 있는 중국 한류의 미래가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정도의 기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한류'라면 '일본'이 대세였다. 하지만, 결국 '겨울 연가'붐을 피크로 재미를 보게 만들었던 일본 한류는, 일본내 한류 거리를 불황에 빠뜨릴 정도로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말았다. 동방신기, jyj처럼 일본 내 자생력을 가진 몇몇 한류 스타를 제외하고는 일본 한류는 맥을 못춘다. 과연 중국 한류는 이와 같은 일본 한류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조만간 미국에 이어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등극하고자 차분히 준비해 가는 중국 콘텐츠 시장에서, 과연 우리는 한때 '한류'로만 남을 것인가, 재능있는 인력의 유출 이상, 콘텐츠 강국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지, 낙관은 쉽지 않아 보인다. 

by meditator 2015. 10. 15. 16:10

대안학교를 다니다 뒤늦게 입시 전쟁을 치루고 있는 아들의 수능을 앞둔 친구는 기존의 교육 제도의 통과 의례를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런 친구에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그토록 비합리적이라 비판했던 수능이 그나마 자신의 실력으로 자신을 입증하고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기회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고 만다. 그러나 그 조차도 어쩌면 거짓이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좋은 환경에서 남들과 다른 교육적 혜택을 풍요롭게 받은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과의 경쟁은 애초에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육룍이 나르샤>이 이른바 음서 '고려와 조선 시대,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나 지위가 높은 관리의 자손을 과거를 치르지 아니하고 관리로 채용하던 제도) 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던 고려 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것은 '시의적'이다. 그래서 무신 길태미의 아들이 성균관에서 펄펄 날뛰는 음서가 당연시되고, 이인임, 길태미로 대변되는 권문세가들의 권력이 횡행하는 그 시대는 사극의 한 장면이지만, 그대로 현실로 오버랩된다. 그리고, 그 혼란의 고려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망해가는 나라 속에서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그대로 이 드라마가 현실에 부르짖고 싶은 간절한 외침으로 전해져 온다. 



혼란의 고려 말, 인간은 저 마다 자신의 바닥을 확인한다. 
'난세'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어지러운 세상이란? <육룡이 나르샤>는 그것을 '인간이 자신의 바닥을,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시대'라고 말하는 듯 하다. 태평치세라면 그저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 세상의 이치대로 흘러가면 되는 것을,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저 마다 시험에 들고, 삶의 위기에 몰린 채, 자신이 결국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확인하게 만들고 만다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영웅도 탄생하고, 비겁자도, 배신자도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제 2회에 이른 드라마는 말한다. 

애초에 kbs의 대하사극 <정도전>과 비슷한 시기에 기획되었던, 하지만 <정도전>의 편성으로 방송사가 바뀌고, 시기가 미루어 진채 2015년에 돌아온 <육룡이 나르샤>는 <정도전>과 같은 시기를 다룬다. 하지만, kbs의 사극 <정도전>이 역사를 정공법으로 해석해 들어갔던 사실화에 가깝다면, <육룡이 나르샤>는 마치 피카소의 인물화처럼 같은 시대를 여러 각도의 다른 층위를 가지고 접근한다. 그래서 피카소의 그림 속 인물이 그 미묘한 층위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접근하듯, <육룡이 나르샤>도 드라마 속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을 통해 혼란기 속에 드러난 인간의 본질을 논한다. 

그래서 북방의 장수로서의 한계를 넘어서 고려 말의 지도자로 등극한 이성계(유동근 분)는 <정도전>에서 마지막까지 왕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에도 불구하고 고려 왕조의 신하로서 그 충심을 거스르지 않는 지극히 정의로운 인물로 묘사되었다면, <육룡이 나르샤>의 첫 번째 용 이성계(천호진 분)는 첫 회에 그의 숨겨진 치부를 드러내고 만다. 즉 쌍성총관부를 다스리던 조소생을 배신하고 고려군에 투항해 성문을 열었던,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의 과거가 이성계로 하여금 고려말 도당에 진입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장벽을 만든 것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선'과 '악'의 선문답같은 이인임(최종원 분)과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남다름 분)과의 대화를 통해 조선을 이룬 시조 이성계가 위인전의 시나리오와 달리 이미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도덕의 잣대로는 평가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잔트가르'(최고의 사내)'라 부르며 흠모하던 아들 이방원은 진짜 잔트가르를 찾아 헤맨다. 

그가 발견한 아버지와 다른 잔트가르는 정도전(김명민 분),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과 <정도전>의 정도전은 그 정의의 방향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정도전>의 정도전이 시대와 불협화음을 내며 성장하는 캐릭터라면,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은 좀 더 노회하게 시대를 짚어보며 전략가의 기지를 갖춘 캐릭터랄까. 그렇게 이인임 앞에서 고개를 숙인 이성계 대신 이인임을 보기 좋게 한 방 먹인 정도전을 따라 이방원은 성균관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정도전과 그를 따르는 신진 사대부들의 길을 쫓는다. 하지만 결국 정도전은 원나라와의 수교를 하려던 이인임의 술수는 막았지만 고문을 당하고 유배를 가는 신세가 되었고, 성균관에 남은 이방원은 불법 서적 '맹자'를 읽었다는 이유로 '사문난적'(유교, 특히 성리학에서 교리를 어지럽히고 그 사상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이마에 새길 신세가 될 뻔한다. 



정의, 하지만 난세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다. 
<육룡이 나르샤>는 <정도전>과 비교가 되지만 오히려 극의 구성 면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미드 <왕좌의 게임>을 연상케 한다. 시청자들이 그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줄 수 없는, 왕좌를 향한 피비린내나는 욕망이 진동했던 '게임'과도 같은 처절한 권력의 드라마를 향해 <육룡이 나르샤>는 달려간다. 

도당의 일원이 되고자 하지만 자신의 부도덕성에 발목이 잡힌 이성계, 고고한 정의를 향한 의지는 갈급하지만, 그의 뜻을 펼칠 광장은 허락되지 않은 정도전, 그리고, '잔투가르'가 되기를 갈구하지만, 결국 자신의 앞길을 막는 자들의 목숨을 거두고 시작되는 현실적 정의의 이방원까지, 조선을 향한 대의에 힘을 모을 이들의 서로 다른 '정의'의 첫발을 드라마는 그린다.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오히려 2회에 이르는 동안 주목을 받는 것은, 고려 제일검이라며, 경박하고, 또 경박하고, 경박하기 그지 이를데 없는 길태미의 캐릭터이다. 자신의 욕망에 너무도 솔직한, 그러면서도 자신의 권력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길태미의 캐릭터는 <정도전>의 이인임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대한민국의 속물 갑의 본질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시청자의 친근한 주목을 끈다. 거기에, 1회에서 정도전의 가장 가까운 벗으로 그와 함께 정의의 길에 나섰다가, 2회에 이르러 길태미의 사돈으로 변신하는 홍인방(전노민 분) 역시 그의 말대로, 위기 속에서 변절하고 마는, 이 땅의 그 누군가들을 연상케 한다. 

드라마 속 대사가 투박하게 '선과 악'의 변증법을 논하고, '정의'를 내세우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위기 속에서 저마다 자신을 확인한다. 누군가는 변함없는 권력에의 의지로, 그리고 또 누군가는 정의로운가 싶었던 자신의 속된 본질을, 그리고 또 누군가는 선하고 싶지만, 도덕적 딜레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또 누군가는 목숨을 내걸고도 여전히 자신의 뜻을 향한 멀고먼 길을 확인하고 마는, 그리고 또 누군가는, 정의보다 가까운 피를 확인하며 저마다의 '정의'를 써내려간다. 그렇게 실존적인 인물들의 이합집산을 통해 드라마는 추상적 정의가 아닌, 역사 속에서 펄펄 살아 움직이는, 그래서 인간적으로 고민해 볼만한 '정의'를 논하기 시작한다. 


이제 2회에 이른 <육룡이 나르샤>의 만듬새는 그다지 매끄럽지 않다. 장면은 들쭉날쭉하고, 인물들의 캐릭터에 집중은 쉽지 않다. 그런가 하면 대사는 사변적이고 어렵다. 그리고 그 핑계의 몫은 상당 부분 피디인 신경수에게 돌려진다. 그런데 신경수 피디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작품이 있다. 바로 2014년 세상이 바른 리더의 자질을 소리높여 갈구할 때, 부도덕한 대통령(손현준 분)이 젊은 세대의 대변자같은 경호원(박유천 분)과 함께 자신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 했던 이야기를 다룬 <쓰리데이즈>가 그것이다. 희망을 기대할 수 없었던 세월호의 시대, 강직하게 '정의'를 이야기하고, 지도자와, 젊은이가 함께 미래를 기약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어수선했던 연출력에도 불구하고 신경수 피디의 우직한 주제 의식에의 천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여전히 그 어수선함은 쉬이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육룡이 나르샤>가 그 본래의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결코 곁가지로 벗어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부디 세월호의 시대보다 더 나쁜 시대가 있을까 라는 탄식이 실현되고 있는 2015년, 다시 우리에게 '정의'를 향한 희망을 길어줄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 주길 기대해 본다. 기왕이면, 간지나는 연출의 업그레이드도 함께. 

by meditator 2015. 10. 13. 15:48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상처받은 두 여성이 있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이혼을 했으며, 동시에 삶에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거나, 시작했다. 그런데 이 두 여성들에게 남자가 다가온다. 그리고 그 남자를 보며 가슴이 뛴다. 이 사람과 다시 사랑을 해도 될까? 그런데 그녀에게 찾아온 두 번 째 사랑이 전적으로 반갑지만은 않다. 




<두번 째 스무살> -하노라의 이혼=성인식, 그리고 두번 째 사랑의 딜레마 
tvn의 금토 드라마 <두번 째 스무 살>의 여주인공 하노라(최지우 분)는 이제 겨우 서른 여덟 살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벌써 대학에 입학한 아들이 있고, 대학 교수인 아들이 있다. 그건 그녀가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채 아들 민수(김민재 분)를 가진 채 홀로 할머니를 남겨두고 남편을 따라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하노라의 선택으로 인해, 이제 서른 여덟이 된 하노라는 남편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이혼을 당할 처지에 놓였고, 역시 대학 새내기인 아들은 매사에 '엄마는 몰라도 돼!'라며 무시한다. 청천벽력같은 남편의 이혼 선고에 어떻게든 시간을 되돌리려 한 하노라는 남편, 아들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을 가고자 했고, 해프닝 끝에 입학한 우천대 인문학부 새내기 생활은 그녀에게 전과 다른 세상을 선물했다. 

그 결과 이제 하노라는 오히려 당당하게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기애'적 성격 장애를 가진 남편 김우철(최원영 분)과의 만남을 '그의 탓'이기 보다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라 담담하게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말 한 마디 섞지 않는 아들에게 '이혼'을 이해받고 위로받는 처지가 되었다. 무엇보다 김우철을 만나 멈춰버린 하노라의 십대는 그녀가 우천대 새내기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비로소 '어른'으로서의 시작으로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김우철을 만난 그 시간 이래로 정체되어 있던 하노라의 시간이 다시 흐르게 된 데에는 대학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자 첫사랑 차현석(이상윤 분)의 도움이 크다. 하노라를 만나자마자 벌컥 화부터 낸, 말도 없이 사라져 할머니의 장례식에도 나타나지 않은 첫사랑 하노라로 인한 상처를 가진 차현석은 불치병 해프닝을 거치며 하노라의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도와준다. 그러면서 그의 가슴이 그 예전처럼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하노라의 가슴도 차현석을 보며 두근거린다. 그와 시선을 마주하는 것조차 버겁다. 이런 하노라, 차현석과 다시 사랑해도 될까?

<두번 째 스무살>의 소개글에서는 이 드라마가 분명 '캠퍼스 로맨스 드라마'라고 정의내려져 있다. 하지만, 막상 가슴이 뛰기 시작한 하노라를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노라가 김우철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한 것은 다친 그녀의 발을 치료해 주는 '아빠같은'그의 등때문이었다. 그리고 단지 김우철이 '아빠같은' 모습을 보인 것이 그때가 마지막이었던 것이 하노라-김우철 커플의 슬픈 운명이었다. 그렇게 '아빠같은' 남자를 선택하려 했지만 실패한 하노라, 그렇다면 이제 진짜 '아빠같은' 남자 차현석을 만나 행복하면 될까?

극중 차현석의 캐릭터는 말 그대로 '아빠같은' 키다리 아저씨이다. 제일 잘 나가는 연극 연출가임에도 그의 모든 일상의 촉각은 오로지 하노라를 향해 있다. 그래서 하노라가 어려운 고비마다 그는 '슈퍼맨'처럼 나타나 척척 해결해 주곤 한다. 그리고 하노라는 그의 도움을 받아, 김우철 앞에서 말 조차도 어려워하던 무기력한 서른 여덟의 주부에서, 왕따를 극복하고, 동기들의 사랑을 받는 늦깍이 대학생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제 비로소 '어른'으로 시간을 열어가는데, 여기서 차현석과의 해피엔딩이라면, 그녀는 김우철 '아빠' 에서, 차현석 '키다리 아저씨'로 말만 갈아탄 셈이 되는 건 아닐까? 

물론 '어른'으로서의 홀로서기가 꼭 누군가와 사랑을 배제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우철이란 존재의 그늘에서 숨죽여 살아온 하노라가, 이제 비로소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두번 째 스무살>에서, 차현석과의 사랑은, 예측되는 해피엔딩이면서도, 한편에서, '어른되기'를 극중 화두로 삼았던 드라마의 내용으로서는 불협화음을 낸다. 부디 이런 '의존'으로서의 사랑을 승화시켜 하노라의 홀로서기를 훼손시키지 않는 진정한 사랑으로 마무리되길 기대해 본다. 



<애인 있어요>-독고용기가 된 도해강에게 찾아온 사랑, 그런데 그 사람이 전 남편?
그래도 다시 찾아온 첫사랑의 <두번 째 스무살>은 나은 편이다. <애인있어요>의 독고 용기가 된 도해강에게 찾아온 사랑은 설상가상이다. 

천년 제약의 며느리로, 그리고 변호사로 천년 제약의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했던 도해강(, 하지만 어린 딸이 그녀의 사건 피해자로 인해 죽임을 당하자 그녀의 남편이자 천년 제약의 아들인 최진언(지진희 분)은 그런 그녀에게 정내미가 떨어져 한다. 그리고 그런 최진언의 마음은 결국 그를 불륜으로 이끌고. 결국 도해강은 최진언과 이혼을 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천년제약의 모든 직위를 잃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그나마 시아버지의 배려로 중국으로 떠나던 날, 쌍둥이 독고용기로 오인을 받아 사고를 당하고 그녀를 구한 백석(이규한 분)덕분에 '독고 용기'가 되어 살아간다. 

그렇게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백석에 의해 독고 용기로 살기위해 애쓰는, 그러면서 최진언의 바램대로,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을 찾고, 그 예전 악덕 변호사 대신, 정의로운 사무장이 되어 살아가는 독고용기인 도해강 앞에, 귀국한 최진언이 우연히 나타난다. 그리고 백석의 의동생 설리(박한별 분)의 남자 친구로 엮이게 된 두 사람, 기억을 잃은 4년 동안 오로지 도해강 바라기로 사랑을 고백해온 백석, 이제 결혼만을 앞둔 설리를 두고, 도해강과 최진언의 가슴은 다시 뛴다. 

도해강과 최진언, 죽은 딸이 좋아했던 음악 앞에서 가슴이 떨리는, 감정의 데시벨이 일치하는 두 사람, 하지만 그저 이혼을 했던 전 남편과 기억을 잃은 전 아내라는 순애보의 조건 외에, 두사람의 애정을 가로막는 장벽은 너무도 많다. 

무엇보다 이제 4년이 흘러 독고용기가 된 도해강이 그 예전 최진언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도해강의 감정을 고스란히 상기하여 다시 가슴이 뛴다 하지만, 이렇게 기억조차 잃은 채 독고용기로 살아가야 하는 도해강의 굴곡진 삶에 최진언의 전과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그건 비단 최진언이 저지른 불륜만이 아니다. 오히려 불륜을 빙자하여 아내 도해강으로부터 도망가려 했던 비겁한 동반자 최진언이 그 핵심이다. 그리고 도해강과 최진언의 부부 관계를 넘어서, 도해강과 독고용기를 불행에 빠뜨린 원인을 제공한 최진언의 아버지의 부도덕, 그리고 도해강이 공범자이자 결국 피해자가 되어버린, 그리고 독고 용기는 그로 인해 남편까지 잃게 된 천년 제약이란 재벌 기업의 부도덕이 이 두 사람의 다시 불붙은 사랑의 배후에 어둡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불붙은 두 사람의 사랑은, 금기였던 도해강의 존재를 망각 속으로 부터 불러오고, 결국 금기였던 천년 제약의 모든 부조리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결국 독고용기가 된 도해강과 최진언의 사랑은, 금단의 열매와도 같다. 그리고 성서 속 무책임의 캐릭터 이브처럼, 최진언은 그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댄다. 그리고 그 사랑의 댓가는 앞서 설리와의 불륜 이상 처절하게 그와 그의 집안을 무너뜨려 갈 것이다. 



이혼 뒤에 두 여자에게 찾아온 사랑은 트렌드의 드라마답다. 하지만, 녹록치 않다. <두번 째 스무살>의 사랑은 키다리 아저씨의 환타지를 넘어, 이제 막 성인식을 치룬 하노라의 홀로서기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애인있어요>는 사랑이, 이 드라마가 드려놓은 큰 그림, 부도덕을 먹이로 성장한 재벌 기업의 파멸을 향한 도미노의 첫 스타트가 될 것이다. 그래서 <두번 째 스무살>과 <애인 있어요>가 그저 뻔한 사랑 이야기만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사랑은 달콤하다. 심지어, 한때는 불륜남이었던 최진언이 다시 설레일 만큼, 하노라의 홀로서기는 기대되지만, 차현석이란 백마탄 왕자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다. 과연 이 딜레마를 잘 극복하고, 좋은(?) 드라마로 기억될런지, 남은 숙제가 만만치 않다. 
by meditator 2015. 10. 12. 16:32

기존의 출연진이었던 박미선, 김신영을 하차시키고, 새로운 멤버 전현무, 김풍을 합류시킨 <해피 투게더3>, 유재석의 말대로 7년만에 찜질방 옷을 벗은 채 작업복을 입고 변화를 시도했다. 방송 말미 이 변신이 그야말로 '미흡한 점'이 많은 첫 회임을 강조하며 앞으로 좀 더 노력할 것을 강조했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속담이 무색하게, 변화된 <해피투게더3>의 시청률은 그 이전회 4.3%보다 떨어진 3.7%를 기록하였다. 최근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4~5%를 오가던 시청률에 비하면 폭락에 가까운 수치이다. 




전현무가 과연 대세일까?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박미선을 하차시키고, 요즘 대세라 불리우는 전현무, 김풍을 합류시킨 <해피 투게더3>, 찜질방옷을 벗어 던진 채 작업복을 입고, 출연자의 집에서 들고 온 헌 '물건'을 스튜디오에 정리하느라 쩔쩔매는 출연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유재석을 비롯한 <해피 투게더3> 제작진이 이 새로운 포맷을 위해 얼마나 고심을 했는가가 전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뿐이다. 애썼다. 하지만, 그 노력이 가상하다고 재미없는 걸 봐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날 합류한 전현무에 대해 김풍은 말미에 안쓰럽다는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 늘 케이블 방송 등에서 펄펄 날던 전현무가 그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kbs, 그것도 유재석의 곁에서 어색해 하며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해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나보다. 그런 김풍의 평가에 대해 전현무는 명쾌하게 정리한다. 아마도 내일의 시청률이 안나오면 그건 오로지 자신의 탓일 테고, 혹시나 시청률이 잘 나오면 유느님 탓일 거라고. 

그런 전현무의 자조적인 평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간 온라인 상에서 회자되던 예능 신4대 천왕이라 지칭되는 사람들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견을 표시한 사람이 다름아닌 전현무였고, 전현무에 대한 과대 평가에 문제 제기가 많았음에도, 정작 kbs는 물의를 일으키고 나간 전현무를 '금의환양'식으로 추석 특집 <전현무 쇼>에 이어, <해피 투게더3>에 합류시킴으로써, 그의 아직은 미흡한 자질을 빠르게 드러내고 말았다. 



유재석 옆에 선 전현무는 그의 말처럼 그간 어느 방송에서보다 어색했다. 아니, 정확하게 전현무에게 어울리는 방송이 아니라는 것이 정확한 평가다. 그간 전현무가 빛을 발한 경우는 <히든 싱어>처럼 양념같은 진행이 어울리는 프로그램이었다. 그것 조차도 과연 전현무가 아니라면 안되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프로그램들이었다. 오히려, 신 예능 4대천왕에 김성주가 빠진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처럼, 전현무는 김성주의 마이너한 대체재에 가까운 존재라는 것이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 아니 대체재라기에도 부족한 점이 많다. <해피 투게더3> 첫 방송에서 본인조차 갑갑해 하는 것이 드러나듯, 유재석처럼 그 누군가의 곁에서 그와 함께 방송을 꾸려가기에는 전현무라는 캐릭터는 미흡하거나, 적합지 않은 존재이다. 늘 어느 자리에서거나 '자뻑'혹은 '안하무인'에 가까운 자기애로 튀어오르는 캐릭터로 두각을 나타낸 것이 전현무였으니까, 그 튀어오른 캐릭터의 도드라짐으로 그가 대세가 되었을 지는 몰라도, <전현무 쇼>에 이어, <해피 투게더3>에서도 보여지듯이, 그가 진짜 4대 천왕이 될 길은 아직 요원한 듯 보인다. 



지금 유재석에게 필요한 것은? 
하지만 유재석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전현무냐 아니냐가 아니다. <해피 투게더3>의 mc진 유재석, 박명수, 조세호, 전현무, 김풍의 전열을 보면 기시감이 느껴진다. 20부작으로 종료된 <나는 남자다>가 떠오른다. 그 당시 한창 대세라 지칭되던 장동민에, 허경환, 배우 임원희 등이 합류한 집단 mc 체제와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말이다. 당시에 예능 블루칩이라 지칭되는 인물에, 타 예능 프로그램에서 좀 재밌었다고 평가받던 사람들을 불러다 만든 어색한 조합, 그 팀웍을 만들기에도 한참이 걸렸던, 아니 유재석과 예능을 하면 오래할 지는 몰라도, 온리 유재석만 남는다는 박명수의 평가처럼, 유재석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기억되지 않는 그런 조합의 연속이다.

이렇게 대세라, 혹은 예능에서 좀 화제가 된다는 인물들을 모아 새로운 군단을 만든, 거기에 누군가의 안쓰는 물건을 가져다 그것을 매개로 토크를 나누고, 재발견해주고, 나누어 준다는 의도는 좋은 예능, <해피 투게더3>는 안타깝게도 강호동의 <달빛프린스>가 떠오른다. 의도는 좋지만, 재밌지도, 어울리지도 않았던. 

헌 물건을 가져다 애써 늘어놓고, 그걸로 퀴즈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새로운 포맷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게도 그 이전 목욕탕에서 나누던 이야기와 그리 다르지 않다. 이제는 한류가 돠었다는 지석진이지만, 유재석에게는 언제나 나이많은 철부지같은 형이다. 심지어 개리는 kbs 첫 출연이 무색하게 신선하지 않다. 결국 포맷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옷을 바꿔입고 장소를 달리 해봐도, 여전히 지석진은 유재석에게 여전히 유에프오나 믿는 기러기 아빠이기를 즐거워 하는 철딱서니없는 형이요, 개리는 런닝맨의 동료일 뿐이다, 제 아무리 주변에 기지 넘치는 김풍이 있고, 자뻑인 전현무가 있어도, 포맷이 달라져도 <해피 투게더3>는 유재석에 의한, 유재석의 쇼이기에, 그가 바라보는 게스트, 그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프로그램을 채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이럴 바에 그런 우수리를 다 떼어 버리고 이 즈음에 유재석의 홀로서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제 아무리 유재석이 새롭게 하는 프로그램들마다 시원찮은 성적을 내세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 유재석은 여전히 예능의 선두주자이다. 해마다 연말 시상식이 열리면 스테디셀러 유재석에게 어떤 상응을 해주어야 할지 방송국들은 고심한다. 심지어 대상을 받은 사람들이 유재석에게 민망해 하는 상황이다. 상황이 아직도 그럴진대, 유재석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자신을 내세우는 대신, 여전히 낯선 포맷과 어색한 조합의 출연진들과 씨름을 한다. <힐링 캠프>가 김제동으로 승부수를 내세웠듯이, 이제 <해피 투게더>도 어차피 유재석에 의한 프로그램이라면, 유재석 한 사람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것이 어떨까? 정 불안하다면, 그래도 그와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박명수나, 박미선 정도의 보조는 괜찮을 듯하다. 포맷도 꼭 목욕탕 옷을 입거나, 작업복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출연진에 따라, 셰프복을, 운동복을 입을 수도 있는 유연한 컨셉으로 가면 될 터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대한민국에서 게스트로 나온 출연자의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고, 그의 장점을 가장 예능에 맞춰 잘 끄집어 내주는 능력에 있어서는, 그리고 게스트에게 한바탕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데 있어서는 유재석만한 mc가 없다. 그런 그의 능력에 이즈음이라면 자신감을 가지고 한번 밀어붙일 때도 되지 않았을까? 저 웃지못할 10월 8일의 <해피 투게더3>의 조합보다야 적어도 나을 듯하다. 전현무도, 김풍도, 가장 빛을 발할 때는 게스트로 나올 때였다. 그리고 그걸 만들어 준 사람은 바로 유재석이다. 이제, 유재석 자신을 믿고 나설 때다. 

다만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유재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노회해가는 유재석이다. 10월 8일 방송에서 보여지듯이 개리의 자기 개발서에 반색을 하고, 지석진의 ufo에 면박을 주는 유재석의 시각인 것이다. 더 이상 자기 계발서가 좋은 책이라 평가받지 않는 세상에서, 유재석의 토크 내용은 그의 나이와 함께 진부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필요 없어서' 명품이 필요없는 유재석이라면, 그 본연의 진솔한 모습으로 그만의 쇼를 기대해 볼 가치가 있을 듯하다. 
by meditator 2015. 10. 9. 14:43

<용팔이>의 후속으로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이 첫 선을 보였다. 20%를 육박하던 전작의 후광은 아랑곳없이 첫 회를 선보인 <마을>은 단번에 <그녀는 예뻤다>, <객주>에 뒤를 이은 꼴찌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환영받지 못하는 '미스터리 스릴러'인 <마을>은 아마도 앞으로도 '로코',와 '사극'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장르를 뛰어넘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점, 공중파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미스터리 스릴러 <마을>, 그것이 이 드라마의 묘미이자, 장점이다. 




마을의 비밀, 장소가 주인공이 된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은 흡사 니콜 키드먼이 출연했던 2003년의 영화 <도그빌>을 연상케 한다. 로키 산맥의 평화로운 마을, 거기에 의문의 여인 '니콜 키드먼'이 등장한다. 마을은 아름다운 그녀로 인해 술렁이기 시작하고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러나 정작 이 영화의 제목이 '도그빌'인 것처럼, 영화가 그려내고자 한 것은 여주인공 니콜 키드먼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 드러나는 '도그빌'이란 마을의 숨겨진 모습이다. 

그렇게 영화 <도그빌>처럼 <마을-아치아라의 비밀>도 우리말이지만, 생소한 '아치아라'라는 지명의 마을을 내세운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마저도 '죽은 이'로 만든 '아치아라'로 향하는 젊은 여교사 한소윤(문근영 분)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하지만 비오는 날 연쇄 살인범의 사건 소식을 들으며, 호두를 문지르는 소리에 쫓겨 거리를 달리는 한소윤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그녀가 도착한 아치아라가 그곳 사람들 말처럼 '가족같은' 곳이 아님을 감지시킨다. 그리고 장면은 바뀌어 이제는 마을의 유지가 된 마을 출신의 지역구 도의원이자, 한소윤이 일하게 된 해원 재단의 주인인 서창권(정성모 분)과 윤지숙(신은경 분)의 내연녀를 둘러싼 갈등이 보여진다. 윤지숙은 자신의 딸이 몰래 지켜보는 가운데 서창권의 내연녀랑 머리끄댕이를 잡고 '육박전'을 벌인 것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해원 중학교 원어민 영어 교사가 된 한소윤, 하지만 '작은 연못'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커다란 호수를 품은 마을은 온통 수상한 모습들 투성이다. 그녀의 방 맞은 편에 '신당'을 연상케 하는 이웃집 여인에서 부터, 그녀를 따라다니는 의문의 남자, 그리고 그런 수상한 모습 끝에 그녀는 폭우가 내린 얼마 후 따라나선 사생대회에서 범죄라고는 없었던 이 마을의 유일한 오점, 사라진 여선생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부르는 듯 모습을 드러낸 시체의 앙상한 모습에 혼이 나가고, 아이들이 붙인 '시체샘'이라는 별명에 혼란에 빠진 한소윤을 한편으로 한채, 첫 회 드라마가 드러낸 것은, 시체의 발견과 함께 반응을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수상한 모습이다. 마치 모두가 공범자인 양, 그 시체와 관련된 범행을 아는 양, 석연치 않은 모습을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면면에서, <마을>의 실질적 주인공은 한소윤이 아니라, 어쩌면 아치아라라는 마을 그 자체일 지도 모른다는 심증을 흘리며 드라마는 열린다. 거기에 미술 교사의 '아치아라에 빠져 그 누구도 이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은 그 심증에 의혹을 더한다. 



서로 다른 결의 추리가 주는 재미
앞서 니콜 키드먼의 <도그빌>을 예를 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김은희-장항준 콤비의 <위기일발 풍년 빌라>가 '저주받은 역작'으로 불리워지듯이 생소한 장르이다. 하지만, 미드, 특히나 영드에서는 이렇게 장소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가장 인기있는 장르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닥터 후>로 인기를 끌었던 데이비드 터넌트가 형사로 등장한 영국에서는 인기리에 방영되어 시즌 2가 제작된 <브로드 처치(broadchurch)> 역시 조용한 마을에서 발생한 어린 아이의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입소문을 끌고 있는 < 포티튜드(fortitude)> 역시 북극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다룬다. <왓 리메인즈(whatremains)> 역시 한 건물과 거기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이다. 

이렇게 '장소'가 주인공이 된 미스터리 스릴러들은 <마을>처럼 하나의 사건, 주로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숨겨진 마을의 모습이 드러나고, 거기에 그저 평범하고 착한 것처럼 보여지는 인간 군상의 숨겨진 비인간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그 전개의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그 비인간성의 폭로의 매개가 '종교'가 될 수도 있고,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고, '이기적인 육친애'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든 평화로움과 이웃이라는 집단애에 숨겨진 인간의 또 다른 이면을 폭로하는 한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렇게 인간의 숨겨진 이면을 그린다는 점에서 벌써, 폭로와 반성보다는 환타지와 복수에 익숙한 우리나라 시청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장르라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점에서 <마을>은 더더욱 시도되고, 웰 메이드의 좋은 선례로 남겨져야 할 '사명'이 있는 드라마가 된다. 기왕에, 막장식의 몇몇 재벌 치정극으로 재미를 본 sbs가 이쯤에선 그간의 오명을 씻을 조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 마을에서 벌어진 여느 장소를 배경으로 한 미스테리 스릴러의 공식을 순조롭게 따라나선 <마을>은 하지만 이미 첫 회 '마을의 진실'을 향한 추리의 갈래는 다양하게 갈라지며 볼 재미를 선사한다. 

단적으로 발견된 시체는 누구일까? 드라마 초반 복병처럼 등장한 윤지숙과 젊은 여선생의 육박전에서 보여지듯 한소윤의 방에서 사라진 여선생일까? 왜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공범자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과연 '시체샘'이라 불리게 된 법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한소윤의 정체는 무엇일까? 마을, 그것도 아치아라에 사로잡혀 귀신이 된 채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미술 교사 말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마을>은 미스터리 스릴러에서 심령극까지 다양한 갈래의 상상력을 추동한다. 과연 첫 회만으로 사고를 풍성하게 만든 ,마을>이 시청자들의 뒷통수를 '갈기며' 추리의 묘미를 더해갈 것인지, 그것이 바로 장소 스릴러 <마을>의 관건이 된다. 
by meditator 2015. 10. 8. 13:20

노처녀 영애씨의 일과 사랑을 다룬 <막돼먹은 영애씨>가 10월 5일 시즌 14를 완주했다. 시즌 14, 대한민국 드라마계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대세이던 2007년 '다큐멘터리' 형식에 '드라마'를 가미한 새로운 시도로 작은 간판 회사에서 후덕한 외모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맞서 '막돼먹게' 대들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던 영애씨가 드디어 그녀의 꿈이었던 '이영애 디자인'의 사장이 되며 시즌 14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어디 시즌14뿐인가, 시즌14의 마지막, 양 손의 떡처럼 양 팔에 두 남자 김산호(김산호 분)와 이승준(이승준 분)을 안은 영애씨의 네버엔딩 러브스토리처럼, 당연히 시즌 15가 예정되어 있다. 





낙원사의 사장이었던 이승준의 무모한 중국 투자로 인해 새로운 사장 조덕제(조덕제 분)가 등장하며 영애씨는 졸지에 정리 해고 대상자로 길거리에 내몰리고 만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 영애씨는 그간 꿈꾸어왔던 자신의 회사를 차리기에 이르렀는데.....

'사장'이 된 영애씨, 하지만
그렇게 이제 '을'의 처지에서, '갑'으로 등극한 영애씨, 하지만 불황에 시달리고, 또 다른 '갑'의 횡포에 무너져 내리는 이땅의 500만을 넘는 자영업자의 현실은 고스란히 <막돼먹은 영애씨> 속 '이영애 디자인' 사장 영애씨의 현실이 된다.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해 함께 고생하자 의기투합했던 라미란(라미란 분)이 영애씨를 배신한 채 낙원사로 돌아가고, 심지어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일식집 알바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알바'를 하지 않는다고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일감을 얻기 위해 접대는 물론, 떡볶기 심부름까지 불사해야 하고, 결혼까지 갔던 산호에게 일감을 구걸하는 처지로 내몰린다. 어디 그뿐인가, 자신을 거리로 내친 낙원사에 들어가 새 사장의 갖은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간판집 직원에서, 낙원사 디자이너, 그리고 '이영애 디자인' 사장으로 영애씨의 직함은 시즌을 거듭하며 업그레이드 되었고, 그녀의 직위만 보자면 분명 '사회적 상승'에 불과한데, 막상 시즌의 회차를 채우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 '을'로 '밥벌이의 지겨움, 궁색함'을 감수해야 하는, 그래서 보통 시민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덕분에 자신이 당한 '차별대우'와 부당함은 반드시 어떻게든 되갚아 주고야 말았던 영애씨의 '막돼먹음'은 이제는 월급도 제대로 못주는 직원들 때문에 한결 완화되고 만다. 예전갚으면 열번은 더 뒤짚었을 판을, 그래도 어떻게든 '하청' 한번 따보겠다며, 그래서 직원들 월급이라도 주겠다며 눈을 질끈 감는다. 덕분에, <막돼먹은 영애씨>의 주된 매력 중 하나였던 그 '막돼먹음'이 시즌 14에 들어와 그저 조미료처럼 가끔씩 등장한 반면, 밥벌이의 애환은 깊어졌다. 사랑했던 이의 앞에서 알바를 하다 들켜 넘어져 생선과 씨름을 하느라 치욕을 겪어도, 결국 다시 그 알바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어느새 '가장'이 되어버린 영애씨가 된 것이다. 

덕분에 비록 그녀의 '막돼먹음'의 통쾌함은 누그러졌지만, 그녀의 깊어지는 삶의 애환이 여전히 우리네 이웃의 그 누군인가같은 영애씨의 정체성을 공감케한다. 

영애씨의 사랑, 드라마의 동력이자, 딜레마
대신 '갑'이 되었지만 여전히 '을'인 자영업자 영애씨의 고달픈 삶의 행간을 채운 것은 그 어떤 멜로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했던 그녀의 사랑이다. 

시즌 13을 거쳐 이제 서로 반지를 나누며 고백만을 남겨두었던 작은 사장 이승준과의 사랑, 하지만 그 사랑은 시즌14초반 낙원사를 거덜내버린 이승준의 사업 실패로 유보되고 만다. 낙원사 사장에서 낙원사 직원이 되어버린 이승준, 존재의 초라함을 이겨내지 못한 이승준의 찌질함이, 그리고 그 낙원사에서 조차 쫓겨나버린 영애씨의 현실이 두 사람 사랑의 장벽이 된다. 

그런가 하면 결혼까지 약속했다가 혼수 문제로 결별을 한 산호가 등장한다. 같은 건물에 사무실이 있어 오가며 마주치던 산호는 위기에 빠진 이영애 디자인을 구원해준 구세주로 영애씨의 애정 전선에 막강한 존재로 복귀한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돌아온 산호의 변함없는 애정과, 사랑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가로막힌 승준의 '중2병적' 애증으로 채워져 간다. 이렇게 두 남자의 과분한 사랑을 받는 웬만한 멜로 드라마 여주인공 저리가라할 처지의 영애씨, 하지만 정작 <막돼먹은 영애씨>의 멜로를 채운 것은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해 산호에게 일감을 부탁하는 영애씨, 자존심을 접은 채 낙원사 하청으로 들어온 영애씨에게 자기 자존심을 어쩌지 못해 막무가내의 행동을 벌이는 승준처럼, 현실의 삶이다. 드라마의 틀은 삼각관계이지만, 여느 드라마와 달리, 그 삼각관계의 변수가 되는 것은 이영애라는 노처녀 자영업자의 현실인 것이, <막돼먹은 영애씨>가 여느 드라마와 다른 것이다. 



노처녀 영애씨가 <막돼먹은 영애씨>의 대표적 캐릭터인 만큼, 이렇게 삼각관계에 얼크러진 영애씨의 애정 전선은 시즌 14에서 결론을 내지 않는다. 여느 멜로 드라마라면 드라마 자체가 '도루묵'이었겠지만, 시즌 15를 앞둔 <막돼먹은 영애씨>의 결론은 다르다. 숱한 남성들과의 애정 행각에도 불구하고, '자신'이라는 중심으로 돌아오곤 했던 영애씨는 시즌14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한 호의를 가지고 자신을 바라보는 산호로 인해 흔드렸던 그녀는 오히려 그런 관계를 통해, 이전의 혼수로 인해 파토난 결혼의 앙금을 지워내었고, 모든 사람이 말리는 이승준과의 관계에서 자기 확신을 더했다. 물론 그럼에도 관계는 그녀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지만, 숱한 '산호지지파'와, '승준 지지파'의 열화와 같은 원성에도 불구하고, 그저 시즌15의 러브 라인을 위해서가 아닌, 인간 영애로 흔들렸던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는 시즌14는,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영애씨 다웠다. 누군가와 짝짓기의 성공이 아니라, 언제라도 그랬듯, 자기 확신과 자기 결정에 충실한 영애씨였으니까. '제작진의 밀땅'이란 원성에도 불구하고, 영애씨는 그래야 영애씨다운거니까. 



하지만 시즌14의 아쉬움도 남는다. 리얼리티 다큐의 장점을 한껏 살린, 이영애 디자인의 사장이 되어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갖은 수모를 견뎌내는 영애씨의 고군분투에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현실이 고스란히 투영되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위기위기마다 그녀에게 구원의 동앗줄을 내려준 것은, 첫 일감을 준 산호에, 이제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이영애를 '갑'으로 등극시켜준 이승준처럼 여느 로맨틱코미디처럼 '남자들'이 한 몫했다는 점이다. 비록 애정 전선에서는 한껏 두 남자와 얼키더라도, 사업만은 자신의 힘으로 우뚝 서는 영애씨를 기대했다면 지나친 '환타지'였을까? 그런 면에서 현실을 한껏 살리면서도, 결국은 '로코'의 틀에 천착해버린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4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일뿐, 그 어떤 드라마보다 맛깔난 연기로 매회를 채워주는 영애씨를 비롯한 '소름끼치게' 찌질한 작은 사장, 화룡점정 라미란에서 단역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새로이 등장한 악역 조덕제 사장이 신스틸러가 되어버린 영애씨 출연진의 '막돼먹지' 않은 중독성있는 연기가 벌써 그립다. 
by meditator 2015. 10. 6. 15:06

지난 9월 29일부터 30일까지, 그리고 4일 저녁에 거쳐 재방영된 <ebs다큐 프라임- 행복한 건축 3부작>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4일밤 방영된 <sbs스페셜-아파트 혼란의 시장>으로 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맞겠다. 대한민국의 주거비율, 단독 27.3%, 연립 12.6%. 아파트 59.6%이 시대, '집'에 사는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아파트'라는 곳에 사는 세상, 하지만 그런 '집'을 사는데 한 푼도 안 쓰고 평균 9년 5개월을 모아야 집을 살수 있는 세상, 그런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란 대명사로 지칭되는 '집'이란 <sbs스페셜>에서 보여지듯이 지금 아파트를 살 것인가 말 것인가로 귀결되는, 부동산의 물건으로 귀결되어 버린다. 즉,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문화적 형태, 혹은 가족의 정체성을 짓뭉개버린 채 오로지 '돈'으로의 가치가 있느냐 여부가 그 모든 것을 짚어 삼켜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경제적 부'의 상징인 혹은 '부'의 뻥튀기가 되는 '집'을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곧 '루저'가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행복한 건축'이란 무엇일까? 총선 전에 건설사들이 어떻게든 사둔 땅을 털어버리려 마구잡이로 분양을 하고, 정부는 앞장 서서 그걸 부추키는 세상에, 건축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다니, 그건 어떻게 사놓은 아파트 한 채가 일확천금이 되었던 우리 한강의 기적 세대 이후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행복한 건축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건축'=환금성이 되는 세상에서, <행복한 건축>은 뭉근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서울 시민 아파트가 건립되어, 1970년대 한강이 개발되어 건축이 돈이 되었던 세상에서 아파트 풀숲을 헤치고서야 겨우 찾아들어갈 수 있는 '학소도'로부터 다큐는 시작된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월급을 모아 하나둘씩 벽돌을 올렸던 집, 하지만 세월과 함께 버려지다시피 하여 외딴 범죄의 소굴이 될 뻔한 집, 그 집을 공부다 여행이다 하며 외국을 떠돌던 아들이 되찾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글씨로 쓴 '학소도(학이 머무는 섬)'이란 현판을 올리고, 어린 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벽에 걸어놓고 그 멈춘 시간과 함께 아들이 아버지처럼 나이들어 간다. 그런가 하면 충남 공주에 역시나 버려질 뻔한 돌아가신 교우 할머니의 집이 할머니가 쓰시던 세간살이가 그대로 자리를 지킨 채 '루치아의 뜰'이란 찻집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오하이오 페리스버그에는 200여년이 된 집들이 그 자리를 지킨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추억을 상실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지키는 '건축물'들을 통해, 다큐는 '건축'의 의미를 묻는다. 그것이 1부, 집을 기억하다의 화두이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살아온 시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건축은 결국 함께 살아온 삶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건축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소통하고 나아가 치유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부, 소통을 넘어 치유로는 바로 그렇게 건축을 통해 소통과 치유를 논한다. 

소통의 건축을 위해 다큐는 일본의 고즈넉한 도시 고치현을 찾아간다. 일본의 작은 도시, 하지만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꼭 찾는다. 그 이유는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한 사다와씨가 만든 '소통'의 아파트 때문이다. 1971년부터 시작하여 세번에 걸쳐 건축된 아파트, 계단 대신 건물을 삥 둘러싼 비탈길로 에워싸여진 아파트는, 그거 건축물을 넘어 '소통'의 공간을 지향하는 대표적 건축물로 유명하다. 또한 거주하는 세대가 너나없이 살아가는 풋콩집 또한 소통의 공간이 된다. 

소통을 넘어 '치유'가 되는 건축물도 있다. 세지마 가즈요가 지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거창한 미술관 대신 고풍스런 도시와 조화를 이루며 도시민들을 향해 열린 나즈막한 열린 건축물로 도시의 숨통을 틔운다. 그런가 하면 루이스 칸에 의해 지어진 소크 생물학 연구소나 라 투레트 수도원은 애초에 '치유'가 건축물의 목적이 된다.



'행복한 건축'을 통한, 아파트 대한민국에 대한 반성
하지만 다큐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멋들어지게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골목을 걸어보라는, 그래서 스스로 그 골목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병원 건물을 동네의 헐릴 한옥으로 재단장한 대구의 한 의사처럼, 그리고 그리니치 빌리지를 뉴욕의 명물로 생존시킨 제인 제이콥스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사라져가는 도시 속 소통과 치유의 공간의 가치를 다큐는 역설한다. 부수고, 짓는 것이 아니라, 건축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는 소통과 치유는, 우리가 머물렀던 공간을 소중하게 지키고 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2부는 결론짓는다. 

그래서 다큐의 3부는 '기억의 유산'으로 귀결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애초에 호텔로 지어졌지만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감옥과 수용소를 오갔던 건물이 그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채 '문화적 대사관'의 역할을 하듯이, 건축은 그것이 흘러온 시간을 새로운 시대 속에 흩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가꿈으로서, 사랑하면 알게되고, 그 앎은 이전과 다른 가치는 지니듯, '기억의 유산'은 오늘을 사는 주거 유목민들의 삶은 안정화시킬 유일한 수단이라 주장한다. 

세계의, 그리고 우리나라의 '행복한 건축물'들을 통해 3부의 다큐가 도돌이표처럼 되새기는 것은, '기억'의 흔적을 쉽게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기억'의 흔적을 놓친 그곳에 남는 것은 결국 '자본'의 잔인한 파고만이 휩쓸고 지나갈 터이니. 그리고 오히려 그 흔적이,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가치를 부여하며 그곳을 오히려 더 가치있는 명소로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낙산의 사람 냄새 나는 고즈넉한 골목, 그리고 동사무소에 목욕탕을 만들었던 정기용의 '인간적 건축'이 '행복한 건축'의 숨겨진 진짜 주제 의식이다. 굳이 소리 높여 '건축 자본주의'를 비난하거나, 아파트 대한민국을 비판하지 않지만, 오히려 '행복'이란 주제로 조감한 3부의 건축 속에서, '환금성'을 통해 도달할 수 없는  '주거'를 통한 '행복'의 가치는 강건해진다. 

집은 유년시절을 보낸 기억의 집, 현재 사는 집, 살아 보고 싶은 꿈 속의 집이 있다. 이 세 가지가 겹친 집에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정기용


by meditator 2015. 10. 5.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