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기 한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이 아이가 학교에 가서 하는 일은 잠을 자는 일이다. 제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가는 것도 힘들다. 그래도 겨우 온 학교에서 아이가 하는 일이란 하루종일 잠만 잔다. 수업 시간에 깨우던 선생님도 결국 포기하고 만다. 함께 운동장에 나가 체육을 하자며 아이를 흔들던 친구들도 잠에 취한 아이를 어쩌지 못한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이 학생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 이런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도대체 부모가 어떻게 키웠길래?' 그런데, 48%난 되는 고등학생들이 평소에 학교를 그만두고 싶단 생각을 한다면, 그리고 그중 태반이 하루 수업의 대부분을 '잠'으로 때운다면, '학교를 왜 다니는지 모르겠어요', '시간이 아깝잖아요. 3년동안 하지도 않는 공부하려고 학교 책상에 앉아있는게'라는 아이들의 '토로'에서 비단 그 책임을 학생 개인의, 혹은 학생 부모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2014년 한 해에만 2만5천명의 학생이 '학교 부적응'이란 이유로 '자퇴'를 하는 현실, 그리고 그렇게 떠날 용기를 내지 못하는 다수의 학생들이 '3년'을 '잠'으로 때우는 학교의 현실에, sbs가 창사 25주년 기획으로 야심차게 문제 제기를 한다. 과학과 현실의 조우를 마련했던 사이언스 픽션(sciencefiction)이나 집단 지성의 사회 변화 움직임을 담은 소셜픽션(socialfiction)처럼 상상 속의 학교를 현실로 구현한 스쿨픽션(schoolfiction)을 시도한 것이다. sbs스페셜은 29박 30일의 바람의 학교 리얼리티를 11월22일부터 12월 13일까지 4부작으로 방영했다.
바람이 부는 곳, 그리고 바람이 이루어지는 곳, 바람의 학교
제주도에서도 바람이 가장 많아 풍력발전기가 6기나 도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마을, 이곳에 임시로 바람의 학교가 창립되었다. 전 이우학교 교장이었던 정광필 교장 선생님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뜻을 가지고 오신 네 분의 선생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서울 사대 대학생 멘토 5명, 거기에 소년원을 갓 출소한 아이에서 부터, 탈북 청소년, 다문화 가정의 아이, 홈스쿨링에서 부터, 하루 여섯시간 이상 게임만 하는 아이에서부터, 학교에만 가면 자거나, 아예 학교 가기조차 거부를 하는 아이까지 다양한 전력(?)을 가진 16명의 아이들이 '바람의 학교'의 입학생이 되었다.
4주간에 걸친 소셜픽션, 하지만 당연히 순조롭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 pc방등 아이들이 즐겨놀만한 꺼리가 없는 이곳에서 새로운 다짐을 가지고 '우일신'해보자는 선생님들의 다짐과 달리, 아이들의 흡연권에 대한 논의조차 쉽지 않은 '정글'이 바로 학교의 시작이었다.
지금의 학교와는 다르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온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와 같이 자신들을 '교칙'이란 이름으로 '통제(?)하려는 선생님들에게 불만을 표출하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하지만, 차라리 토론이 돠는 사안이면 그렇다 치지만, 아예 막무가내 하교에 들어서기 조차 힘들게 생활 습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은, '학교 존립' 자체에 위기를 가져온다.
튕겨나가고 널브러지는 아이들을 추슬러 겨우겨우 학교의 틀안에 꾸겨 넣지만, 일반인들조차 난해한 '오이디푸스'의 독해에서부터 시작된 '연극 수업'등은 아이들로 하여금 '학교'의 의미를 찾기 힘들게 한다. 따라서 일반 학교 교실의 풍경이 다시 답습되고, 그런 아이들의 몸에 밴 저항(?)에 선생님들은 자신들이 '선생님'이 된 존재 이유조차 되물으며 아이들과 함께 흔들린다.
그렇게 어거지같은 교육과 막무가내의 함께 함으로 몇 주가 지나며, 도저히 가능성이 없을 것같은 아이들에게서 희망의 빛이 보인다. 그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거부하는 아이들마저 있었던 연극 수업, 준비 과정에서 늘어지던 아이들도 막상 연극이 구체화되어 자신들에게 맞는 책임이 주어지자 달라지기 시작한다. 평소에 화장을 즐기던 아이는 분장을 하고, 하루종일 기타만 치던 아이는 음악을 만든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살던 아이는 편집을 하고, 자신의 삶에 이유를 찾지 못하던 아이들이 사진을 찍고, 무대 장치를 하며 눈을 빛낸다. 그러다 보니 어느 덧, 상습적으로 지각을 하던 두 아이들이 반장이 되어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시점까지 이르게 된다.
도대체 외딴 곳에 지어진 학교에서, 난해한 오이디푸스를 읽으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던 바람의 학교는 4주만에 스스로 만든 연극 '수업료를 돌려 주세요'와, 가시리 홍보 프로젝트 두 편을 성공시킨다. 그리고 아이들을 찾아온 학부모들과 눈물의 상봉을 하고, 16명 그 중 한 명의 탈락자도 없이 선생님의 성의있는 졸업장을 받아들게 되었다.
바람의 학교가 던지는 질문;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이들이 학교로 간 기숙사에서 오후가 되도록 잠에 늘어진 아이들, 집보다 편할 줄 알고 왔는데 자신의 자유를 속박한다며 돌아가겠다는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을 통해 느껴진 절망이 깊은 만큼, 겨우 4주만에 그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만든 랩을 쑥쓰러워하며 발표를 하고, 반장으로 다짐을 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 반전의 묘미는, 그저 감동 이상의 충격이었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아이를 추스리기 위해 달려온 교장 선생님, 흡연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다하여 아이들에게 담배를 나누어 주는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이 외면하는 수업에 눈물로 읍소하는 선생님, 그런데, 그 포기하지 않는 선생님들의 진심에 아이들이 조금씩 깨어난다. 물론 그 과정에는 진심만이 있는 건 아니다. 담배를 나누어 주듯이 처음 선 원칙의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하고, 선생님으로서의 존재 이유에 회의를 가지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손을 놓지 않는다면,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도달한 성취이다. 결국 바람의 학교 4주가 남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아이들의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아주 지극히 사소한 원칙이다.
또한 그 원칙과 함께, 그 널브러진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자신의 공연을 완성하듯이, '희망'의 내용이다. 대다수 무기력한 청소년들의 문제는 가정문제나, 학업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서 앞으로 살아나갈 그들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여부라고 다큐는 힘주어 말한다. '희망 진로가 없는 상위권 학생들이 희망 진로가 있는 하위권의 학생들보다 학교 적응이 떨어진다'는 조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은 아이들에게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견디게 만든다. 그리고 바람의 학교 4주의 과정은 결국 그걸 찾아내는 과정일 뿐이었다.
13일 방영된 4부의 끝부분에서는 4주간의 바람의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의 후일담을 다루었다. 누군가는 바람의 학교 경험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고, 누군가는 자신이 하고싶은 음악에의 길을 열게 되었다. 그렇게 몇명은 바람의 학교 경험으로 다음 희망의 징검다리를 짚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바람의 학교에서 반장까지 하던 아이는 학교로 돌아가 다시 예전처럼 되었다. 학교를 나오지 않은 것이다. 바람의 학교 교장 선생님이 나서서 아이를 추슬러 보지만, 결국 아이는 자퇴를 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결과는 바람의 학교가 결국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그렇게 달라질 수도 있는 아이를 제 자리에 돌려놓고 마는 기존의 학교 교육 시스템을 증거하는 것이다. 나서서 주도적으로 아이들을 이끌 수 있는 아이도, 결국 스스로 학교에서 물러나게 만들고 마는 현재 학교 교육 시스템, 그것에 대한 강력한 물음표로, 그리고 바람의 학교 경험으로 정규 학교 과정에서 적응을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대안 교육 센터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교육자에 대한 물음표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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