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부터 9월 9일까지 방영되었던 ebs의 다큐 프라임은 <한국인의 집단 심리 WE>를 통해 우리의 집단 문화를 진단해 본다. 그 중 1, 2편은 PD인 오정호씨에 의해 책으로도 발간된 홍보, PR, 프로파간다의 매커니즘을 다룬 <대중 유혹의 기술>이다. 그  대중 유혹의 기술 세번 째 명제, '그들의 귀에 드라마를 집어 넣어라'는 태국의 드라마와 현실의 맞물림을 분석한다. 


2013년 태국 범죄 중 성폭행, 강간과 관련된 범죄가 3만건을 육박했다. 하지만 신고된 범죄 중 10% 정도가 조사를 받았고, 그 중 2000 명만이 검거가 되는게 태국의 현실이다. 왜 이렇게 성과 관련된 범죄는 만연한 반면, 그와 관련된 단속이나, 단죄는 허술한 것일까? 이에 대해 <대중 유혹의 기술>은 태국 드라마의 경향성을 예로 든다. 태국 드라마 내용 중 연인간 말다툼이나 데이트 폭력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드라마는 이를 낭만적 연애의 한 과정처럼 묘사한다. 그리고 이는 9시도 안된 시간 태국의 어린이들까지 보는 시간대에 높은 시청률로 인기를 끈다. 태국의 여성 단체들은 이런 드라마 속 성적 내용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만, 시청률에 투항한 제작진들은 아이들과 함께 보는 이 시간의 성폭행에 가까운 내용을 포기하지 못한다. 심지어 2008년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에서 데이트 강간이 드라마 중 가장 선호하는 장면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태국 드라마의 내용, 그리고 시청자의 선호도, 그리고 시청률을 미끼로 이를 양산하는 제작진, 그리고 높은 성폭행 범죄율을 통해 다큐는 드라마 속 내용과 현실의 상관 관계를 설파하고자 한다. 



태국엔 성폭행 드라마, 우리나라엔 막장 드라마 
태국의 성폭행 드라마와 우리네 드라마가 무슨 상관이냐고? 태국에 데이트 폭력을 다룬 드라마가 만연한다면, 우리네 드라마에는 외국어로도 번역되지 않고 고유 명사로 쓰이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있다. 아침 드라마로부터 시작되어, 주말로 번지고, 이제 시청률이 변변치 않자 주중 미니 시리즈에까지, '막장'의 막강한 영향력은 지칠줄 모르는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중이다. 

<왔다 장보리>를 통해 악역 연민정을 연기한 배우 이유리에게 연기대상을 안겼던 김순옥 작가는 '역시 김순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신작 <내딸 금사월>을 주말의 스테디 셀러로 등극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런가 하면, <상류 사회>, <가면>에 이어 <용팔이>는 재벌 집안을 배경으로 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막장 스토리로 SBS 드라마에 시청률 1위의 보상을 안겨주고 있는 중이다. 

갱도의 마지막 부분을 뜻하는 막장이 드라마로 오면 시청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연성과 설득력을 제친 채 자극적인 설정의 반복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드라마의 한 장르가 된다. 거기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들엔 몇 가지 특징이 더해진다. 

우선 드라마의 전반적 코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복수'이다. 최근 종영한 <여자를 울려>의 경우에서도 보여지듯이 시청률이 좀 안나온다 싶으면 드라마는 그중 '복수'의 코드'를 강화시키고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궤도도 변경시킨 채, 극중 주연의 비중조차 변경시키는 것이 이제는 한국 드라마에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내딸 금사월>에서 신득예 역을 맡은 전인화는 <전설의 마녀>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복수를 위해 칼을 갈며 남편과 자식까지도 이용하는 집요한 집념의 캐릭터로 다시 한번 등장하여 <내딸 금사월>의 동력을 추동한다. 남편으로 인해 망한 친정, 그리고 잃어버린 첫사랑을 되갚기 위해 자신이 낳은 딸도 보육원에 버려둔 채 본래의 얼굴을 숨기며 복수를 위한 칼을 간다. 그런가 하면 <용팔이>는 재벌가의 경영권을 독차지하기 위해 의붓 동생을 의도적으로 뇌사 상태에 빠뜨린 철면피한 오빠가 등장한다. 그리고 의로운 의사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 여동생은 경영권도 되찾고 자신을 의식 불명 상태로 빠드린 인물들에게 '복수'를 한다. 

사이코패스를 향한 복수를 종용하는 드라마 
이렇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막장' 드라마의 주된 동력은 '복수'이다. 자신을 가해한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보복, <용팔이>의 한여진이 냉정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인물들에게 복수를 하고, 신득예가 자신의 가문을 파멸로 빠뜨린 사람들을 향해 케이크 독살 사건과 같은 술수를 부릴 때 시청자들은 통쾌해 한다. 과연, 이런 '보복성' 드라마의 설정은 우리 사회에 최근 급증하고 있는 묻지마 증오 범죄와 무관할까? <미세스 캅> 마지막 회, 강태유(손병호 분)를 죽이겠다고 다짐했던 강력팀 반장 최영진(김희애 분)는 결국 그 다짐을 실천한다. 물론 드라마는 칼을 뽑아든 강태유를 향한 최영진의 정당방위로 처리했지만, 이제 드라마도,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시청자도  더 이상 강태유같은 사람을 법의 심판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좀 더 끔찍하게 잔인하게 가혹하게 복수를 할 것인가, 새롭게 등장하는 '막장 ' 드라마들은 저마다 기묘한 방법을 강구한다. 

그리고 또 하나 막장 드라마의 새로운 특징으로 등장한 것은 악의 주구가 '사이코패스'스러워 졌다는 것이다. 극중 복수의 대상은 '인간'이라 치부할 수 없는 파렴치한 인간 말종들이다. 도덕적 기준 따위는 저버린 지 오래, 수치심, 죄책감 따위도 들어설 여지가 없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인물들이 드라마 속에 넘쳐난다. <용팔이>의 한도준(조현재 분)은 마치 중2병 인물처럼 여동생을 두고 아버지로 부터 받은 차별을 내재화시켜 도덕심 따위는 말아먹은 파렴치범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파렴치범에 대한 동생의 복수는 모든 경제적 특권을 빼앗긴 채 자신과 똑같이 13층의 병실에 의식 불명 상태가 되어 눕히는 것이다. <내딸 금사월>은 부모대의 애증 관계가 고스란히 아이들대로 이어진다. 심지어 강만후(손창민 분)는 자신이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가해자임에도 오민호(박상원 분)의 아이와 자신의 아이가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불쾌함을 내보일 정도이다. 도덕적 가치 따위는 버린지 오래, 전도된 감정과 가치관들이 드라마를 통해 '악'의 이름으로 마구 분출된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이런 '정상'을 벗어난 사이코패스적인 악행의 당사자들, 대부분 극중 부도덕하게 부를 축적하여 선한 이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인물들에 대해 '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만나는 미디어를 통해 만나는 가진 자들의 맨 얼굴이 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휠체어를 타고 등장해 조롱거리가 되었던 재벌은 곧 드라마의 주된 설정이 되고, 자식의 아들을 위해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고 돈을 던져 준 재벌 에피소나, 땅콩 나부랭이에 갑질을 했던 해프닝은 드라마를 자극적이란 수식어에서 구해준다. 

이런 반인격적 장애를 가진 나쁜 놈들을 상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시청자들은 이렇게 현실을 베낀듯 나쁜 사이코패스적 악인들을 향한 착한 사람들의 마지못한(?) 보복 범죄에 카다르시스를 느끼며 응원한다. 나쁜 놈들은 '반인격적 장애'를 가진 파렴치범을 상대하는 방법은 이기에,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하고, 복수하는 대상이 될 뿐이다. 맞써 싸우는 방식은 그들처럼 힘을 가진 존재가 되어,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는 '복수'이다. '싸움'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고, 보복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통쾌하고 시원해질 수록, 현실에서 싸울 방법은 요원해진다. 왜냐하면 시청자들은 신의 손을 가진 대번에 재벌가의 딸이 반할 의사도 아니요, 그렇다고 눈만 뜨면 대번에 경제력을 회복할 재벌가의 딸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의 싸울 대상은 여전히 전지전능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매료된 '막장'은 보는 동안은 시원하고 통쾌하지만, 보고나면 한결 더 허무해지는 이유가 그때문이다. '막장'식의 복수에 길들여지다 보니, <어셈블리>의 '당신이 외면하는 정치'를 향한 진득한 외침은 그저 시시해 보일 뿐이다. 그저 통쾌한 맛에 보고, 즐기면 그뿐이라고 하지만, 그 '막장'에 중독되어 조롱하고 대리만족 하는 동안, 어쩌면 우리는 '막장'의 세상에 무감각해지고, 무기력져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싸우는 방법조차 잃는다. 그저 기억나는 것이곤, 보복, 복수, 현실의 범죄는 이걸 증명한다. 재밌어서 보는 드라마, 시청자들이 즐겨 찾아서 만드는 드라마가 낳은 결과이다. 

by meditator 2015. 10. 1. 14:53

언제나 명절이 그렇듯,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이하여 떠들썩한 잔치 한 마당이 벌어졌다. 저마다 '추석 특집'이라는 이름표를 하나 더 붙이고, 다른 때보다 더 화려하게, 더 시끌벅적하게 판을 벌인 각종 프로그램들이 그것이요, 명절을 빌미로 슬쩍 끼어들여 시청자의 구미를 한번 당겨보는 새롭게 런칭해보려는 프로그램들이 그것이다. 2015년의 트렌들에 맞게 누군가는 '노래'를 가지고, 또 누군가는 '음식'을 가지고 명절로 인해 들뜬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 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명절이 들썩거리고 시끌벅적하기만 한 건가, 누군가 한데 어울려 놀면, 그 무리에 끼지 못한 채 외로움이 깊어지는 사람들이 있을 터이고, 누군가 가족을 만나면,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서러움은 깊어질 것이다. 굳이 어떤 사건을 떠올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름달이 휘엉청 밝은 이 초가을의 명절은 누군가에게 기쁨과 번접함이라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슬픔과 사무침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잔치판에 몰두하는 미디어는 화려한 특집을 마련하기에 골몰하는데, 그런 와중에 독특한 드라마 한 편이 찾아왔다. '추석 특집극'이라는 명패를 달았는데, 제목이 무려,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이다. 추석에 장례식이라니! 허긴, 추석이 뭔가, 돌아가신 조상을 햇 곡식으로 기리는 날인데, '판타스틱한 장례식'이 굳이 안 어울릴 건 없는 거다. 




죽기 전에 치뤄보는 장례식
생로병사, 이 평범한 네 글자의 문구가 '자본주의'라는 제도화된 사회에 진입하면 복잡해 진다. 일전에 친지의 장례식을 겪으며 느낀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죽음에도 돈이 필요하구나 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런데 돈이 있는데 가족이 없다면, 그 또한 죽는 자에겐 난감한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 어느 곳엔 가족이 찾아가지 않은, 혹은 가족이 돈이 없어 버려진 이른마 '무연고자'들의 무덤이 있다.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의 주인공은 바로 그렇게 무연고자의 처지에 몰린 장미수(경수진 분)이다. 뇌종양 판정을 받은 장미수, 병실 동기의 붉은색 드레스 코드가 있는 깜찍한(?) 장례식에 참석한 그녀는 그녀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죽음 걱정에 눌린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업 현장에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어릴 적 집을 나가버린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보호자연했지만 남보다 못한 고모로 인해,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장례식 걱정이나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심지어 모처럼 만난 첫 애인조차도 그녀가 조만간 죽을 것을 알고 그녀의 돈을 노리며 달려드니, 장미수가 그 누구를 믿고 세상을 떠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은 흔히 드라마가 다루는 시한부 생명을 가진 환자의 이야기를 다르게 해석한다. 그리고 '추석'이라는 혹은 '명절'이라는 이름 만으로 마치 모두가 가족과 함께 어우러져 지낼 것만 같은 이 시기에,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의 장미수처럼 세상에는 아빠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집을 나가고, 친척은 그저 내 돈만 관심이 있는,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명절'은 커녕, '죽음'이라는 통과 의례 조차도 '가족'이 없으면 외로움을 배가시키고,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다는 것을 '추석 특집'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즉, 이 지극히 '가족 중심', 그리고 '가족'이 아니고서는 걷어주는 그 누구도 없는 매정한 사회 속, 홀로 죽어가는 이의 죽음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드라마는 젊은 남녀가 등장하는 드라마답게, 무연고 죽음에 몰릴 장미수에게, 첫사랑이었던 박동수(최우식 분)이 등장하는 환타지가 일어난다. 고등학교 때 전교 1등 장미수를 좋아한다며 무작정 전학까지 왔던 박동수, 하지만 어느 날 사라졌던 그가, 기적처럼 장미수 네 아파트 벽 페이트공으로 장미수네 창문 밖에 대롱대롱 매달려 등장한다. 그리고, 청소년 시절처럼 '너만 보면 염통이 아파'라며 다시 장미수에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다가온다. 그녀의 죽음을 알고 나서도, 죽을 때가지 나랑 놀다 가라며.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에 등장한 백마 탄 왕자는 '염통이 아픈' 순진남 박동수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드라마의 잘 나가는 실장님보다도 더 멋지다. 이제 죽음을 앞둔 장미수에겐 돈도, 그 어느 것도 필요 없고, 마지막 순간을 맞을 그녀의 보호자가 필요할 뿐인데, 그가 바로 딱 그 역할인 것이다. 그렇게 죽음의 순간에 걸맞은 백마 탄 왕자를 만난 장미수는 덕분에,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쫓기지 않고, 죽음의 통과 의례를 순탄하게 맞이한다. 

죽을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냉소적으로 말하던 그녀는 박동수 덕분에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그래서 죽음을 서러워하고, 아쉬워하며 갈 여유(?)를 가진다. 그리고 그 누구도 돌아봐조지 않을 죽음에 두려워하는 대신에, 사랑하는 이의 마중을 받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미리 작별을 고하는 '판타스틱한 장례식'까지 참석하기에 이른다. 



죽을 사람이 미리 참석하는 '판타스틱한 장례식', 이 아이러니한 드라마의 설정은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명절'이라는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가족 중심'적인가를, '가족'의 아웃 사이들에 대해 얼마나 무방비하고, 매정한 가를, 그리고, '판타스틱한 장례식'을 통해 그래도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고 그렇게 보낼 수 있는 친지들은 얼마나 행복한가를 역설적으로 깨닫게 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준비하지 못한 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내는 그래서 명절이 더 서러운 사람들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것이다. 

마치 강요라도 하듯이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며, 즐거움을 강요하는 듯한 추석 명절에,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은 신선한 볼거리였다. 모두가 들썩일 때 더 외로워지는 사람은, 이게 아닌데, 이렇게 웃고 떠들 때가 아닌데 라며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볼만한, 물론 죽음의 순간에도 왕자님이 찾아온 이야기는 환타지이지만, 그 행간을 넘어 여러 생각해 볼 거리를 남겨준 작품이다. 다만 죽음을 앞둔 장미수의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니,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기에 심장 이식을 거부한 순애보 왕자 박동수의 숨겨진 이야기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by meditator 2015. 9. 27. 14:30

9월 23일 첫 선을 보인 <장사의 신-객주 2015>는 김주영 작가의 대하 소설 <객주>를 2015년에 걸맞게 새로이 각색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구한말 격동기의 상인 사회를 중심으로 정의로운 상인 천봉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19세기말 조선 사회의 사회적 갈등과 새로운 계층의 대두를 실감나게 묘사했던 김주영의 <객주>가 2015년을 배경으로 하면 어떻게 변화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2015년의 대한민국에 돌아온 <객주>

<장사의 신-객주 2015(이하 장사의 신)>의 시작은 청나라와의 무역로인 책문이 열리고 포부를 가지고 길을 떠나는 천가 객주의 장정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길을 떠나기도 전에 천가 객주의 발목을 잡는 이가 있다. 그는 바로 개성 유수, 길을 떠나는 천가 객주 행렬을 붙잡고 느닷없이 술을 권한다. 객주에게 모처럼의 청나라 행은 엄숙하다 못해 신성하기까지한 과업이기에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한 맹세를 개성 유수는 자신의 권력을 내세워 술을 강권한다. 

그런가 하면 그렇게 만만한 천가 객주의 길목을 막아서던 개성 유수는 어느 틈에 바람같이 수도 한양으로 달려와 육의전 행수에게 아양을 떤다. 이 장면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정경유착, 그 중에서도 '재벌'처럼 보이는 경제 권력에 빌붙는 정치 권력의 두 얼굴이다. <장사의 신>이 진단하는 2015년의 대한민국, 그곳에서 진정한 장사의 도를 이야기 하기 위해 배경이 되는 것은, 이렇게 강력한 재벌에 아부하고, 힘없는 경제 세력들을 짓밟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비굴한 현실에서 <장사의 신>이 지향하고 있는 바는 어떤 것일까? 모처럼 열린 책문을 향한 길을 험란하다. 겨우 개성 유수의 협박을 아들 천봉상의 기지로 넘기로 길을 떠난 천가 객주의 길을 장마로 허물어진 길이 막아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천가 객주 천오수(김승수 분)는 목숨을 잃을 뻔한다. 그의 목숨을 구한 것은 송파 마방의 조성준(김명수 분)이다. 소가죽 밀거래를 하기 위해 책문으로 떠났던 조성준은 천오수의 목숨값으로 자신들과 함께 밀거래를 할 것을 제의한다. 그런 조성준의 제의에, 떠나기 전 환전 객주 김학준(김학철 분)에게 빌린 돈으로 인해 고통을 받던 천오수의 의형 길상문(이원종 분)은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길상문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천오수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 이유는, 자신도 밀거래로 인한 이익이 탐나지만, 그렇게 이익을 취하고 나면 더 이상 험난한 길을 걸어 다리품을 팔아 물건을 팔러 다니는 객주로서의 자신의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첫 회지만, <장사의 신>은 '정의'롭게 물건을 파는 장사의 도를 지키려는 천오수와, 그런 천오수의 맞은 편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조성준, 김학준 등을 대비시켜, <장사의 신>이 그저 천봉삼의 입신양명기를 넘어, '진짜 돈을 버는 법'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공홈의 소개에도 천봉삼을 '정경유착 재벌에 항거하는 700만 자영업자의 대표로 설정'하듯이, 2015년 버전으로 돌아온 <장사의 신>은 그저 돈을 버는 방법, 혹은 돈을 통해 입지전적 성공을 이루는 것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제대로 버는 법을 이야기하겠다고 첫 회부터 포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2015년에 유의미한 <장사의 신>의 의미라는 것이다. 





제대로 돈을 버는 경제 정의에 대한 이야기, <장사의 신>

하지만 자영업자의 대표로 그려진 객주의 길은 험란하다. 천봉삼의 아버지 천가 객주는 오늘날 금융권을 상징하는 환전 객주의 빛 독촉에 시달린다. 심지어, 환전 객주는 천가 객주의 흑충(말린 해삼)을 미리 사들여 청나라의 흑충 값을 떨어뜨려 천가 객주를 위기로 몬다. 흡사 오늘날 골목 상권을 차지한 재벌들의 행태와도 흡사하다. 심지어 돈을 위해 아편 밀매를 부추기는 부도덕은 물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는 것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마치 2015년의 대한민국의 재벌이 그러하듯, '돈'을 위해서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돈의 정의인 양 이야기한다. 그리고 <장사의 신>은 그렇게 부도덕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돈의 세상 속에서 아비를 잃은 천봉상을 통해 '진짜' 돈을 이야기 하겠다고 한다. 


이런 <장사의 신>의 야심찬 혹은 무모한, 그렇지만 2015년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은 의도는, 최근 kbs수목 드라마를 관통하고 있는 공통적 코드이다. 비록 6%를 넘지 못한 채 종영했지만 그 강직한 울림으로 '참 정치'에 대한 갈망을 되살려 준 <어셈블리>는 정치 혐오 주의 세상에서, '진짜' 정치의 길을 어렵사리 밝혔다. 또한 그 전작 <복면 검사> 역시 권력과 돈의 시녀가 된 법의 세계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정의를 부르짖는 젊은 검사를 통해, 대한민국 법치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렇게 '법'과 , '정치'에 대한 '정의'를 꾸준히 부르짖던 kbs 수목 드라마가 이번에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경제'이다. 하지만, <장사의 신>이 이야기 하고자 할 경제 정의는 정치 혐오주의보다 더 험란하다. 돈 놓고 돈 먹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된 세상에서, 가진 자들에 대한 '막장식' 조롱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과연, '진짜' 돈 버는 법의 순수함에 관심을 기울여 줄런지, 그 누구 한 사람 열연이 없었던, 진실한 외침이 일관되었던 <어셈블리>에 대해 '순진하'고 '단순한다'는 평가를 내리는 세상에, 과연 <장사의 신>의 야심찬 의도는 올곧게 받아들여질런지, 지레 우려가 된다. 또한 과연 <복면 검사>가 애초의 주제 의식과 달리, 용두사미가 되었던 경험처럼, 과연, '진짜 돈벌기'의 야심찬 의도가 마지막 까지 순조롭게 진행될런지, <장사의 신> 제작진에게 화이팅을 먼저 외쳐본다. 부디 힘겹게 이어가고 있는 kbs 수목 드라마의 정의 시리즈가 <장사의 신>에서 빛을 발하길!

by meditator 2015. 9. 24. 20:34

최근 새정치연합의 윤후덕 의원의 로스쿨 출신의 딸의 대기업 취업 청탁이 이슈가 되었다. 윤의원만이 아니다. <pd 수첩>이 찾아본 사례에 따르면 여당 의원, 장관, 대법원 등 정가와 법조계 등 다양한 곳의 명사들이 로스쿨 출신 자신들의 자녀들을 자신의 '인맥'을 통해 '취업'을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네이버의 경우, 지난 해 5월 인턴으로 뽑혔던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의 딸을 같은 해 11월 변호사로 정식 채용했다. 그 과정에서 변호사 채용 공고는 없었다. 네이버는 자신들이 채용한 변호사가 이주영 의원의 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이의원의 딸이 채용되는 그 시점에 네이버와 이주영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있던 해양 수산부 사이에 '해양 수산 콘텐츠 공동 활용'에 대한 포괄적 업무 협약(MOU)를 체결했다. 이외에도, 김태원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 역시 2013년 정부 법무 공단에 특혜 채용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로스쿨, 개천의 용인가? 희망의 덫인가?


현대판 음서 제도 로스쿨

불거진 몇몇 의원 자녀들의 취업 특혜는 어쩌면 로스쿨 제도가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우리 사회 가진 자들의 계층 아니 이제는 계급이 되어가는 에스컬레이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할 수 있다. <PD 수첩>은 왜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 제도'가 되어가는지, 그 입학과 졸업의 전 과정을 샅샅이 훑어본다. 


아이러니하게도 로스쿨 제도를 추진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이다. 2009년 사법 개혁의 차원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인재들을 전문성 있는 변호사로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오늘날 일반 대학원의 두배인 연간 2000만원의 등록금을 내야 갈 수 있는 로스쿨은 로스쿨이 주장하는 바 다양한 장학금 등의 제도에도 불구하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제도가 되어가고 있다.


입학 과정에서의 진입 장벽은 비단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경제적 장벽을 감수하고 로스쿨에 지원하는 학생들, 그들 대부분의 성적은 로스쿨의 기대치에 맞춰 비슷한 수준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비슷한 성적 수준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결국 당락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은 '면접'과 자기 소개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그 과정에서 각 개인이 가진 배경, 집안, 인맥 등이 로스쿨 당락의 주요 요인으로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PD수첩>은 밝힌다. 심지어 아버지가 교수로 있는 학교에 아들이 입학을 하는 '로사부일체'의 웃지 못할 사례로 비일비재하다. 성적이 안되더라도 유력한 인물이 자녀를 거부라는 건 불가항력이다. 


로스쿨, 개천의 용인가? 희망의 덫인가?


'금수저'만이 아니다. 실제 서울 지역에 위치한 로스쿨의 경우, 대부분이 이른바 SKY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또한 서울 지역 로스쿨 학생들의 거주 지역을 보면, 강남 3구가 다수를 차지한다. 높은 등록금, 불평등한 입학 사정 제도는 결국, 가진 자들의 계층 상승 과정으로서 로스쿨 제도를 안착시킨다. 


입학 이후에는 더더욱 문제가 된다. 상대 평가 중심의 평가 제도, 그리고 평가를 로스쿨이 책임지기에 절대적일 수 밖에 없는 교수의 권한 속에서, 입학 과정에서의 불평등은 오히려 확산되거나 양산된다. 교수의 자녀는 순탄하게 변호사를 따고 유력한 로펌에 취업을 하게 되고, 심지어 유력한 인사의 자녀는 로스쿨 1년차에 벌써 취업이 결정되어 버리는 웃지 못할 사례도 생겨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네이버와 해양 수산부의 업무 협약에서도 보여지듯이, 거대 로펌의 경우, 앞날을 위한 '보험'의 성격으로 대기업 자녀라든가, 고위 공직자, 고위 검사의 자녀는 없는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받아들에게 되는 것이다. 


로스쿨, 개천의 용인가? 희망의 덫인가?


로스쿨 관계자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 제도'의 오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입학에서 부터 교육 과정, 그리고 이후 졸업과 변호사 자격 취득, 취업에 이르기까지, '음서 제도'로 오인받을 수 있는 여러 제도적 헛점들을 가지고 있고, 이것들을 애써 해명하거나 개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에서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된다면, 변호사, 검사, 판사 등 법률적 직위들은 그간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계층 사다리'의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걷어차여진 채, 철저한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것이라는 것이 22일 <로스쿨, 개천의 용인가, 희망의 덫인가>의 결론이다. 


하지만, <PD수첩>의 결론에 더더욱 암울한 것은 로스불의 개혁만으로 쉬이 개선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현실이다. <PD수첩>이 암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법 시험의 존치론은, 결국 왜곡된 결과를 낳게 되었지만 이미 노무현 정부시절 그 이전부터, 이미 계층 상승 사다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법률 마피아라는 패권 세력을 양산하는 주요한 통로이기도 했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스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경제적 부담을 지고, 상대적으로 덜 금수저들의 음서 제도로서의 역할을 한다지만, 이미 우리나라 사시 합격자의 대다수가 또 다른 '금수저'들이라는 것은 통계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미 대학 입학자, 그리고 그중 이른바 명문이라는 SKY 합격자의 상당수가 강남 3구와, 이른바 명문이라 불리워지는 학교들 출신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로스쿨은 이미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고착된 계급 구조의 일각을 일깨워 준 것에 불과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법 개혁으로 시작된 로스쿨 제도가 결국 가진 자들의 음서 제도로 귀결된 현실이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9. 23. 15:51

셀프 인테리어 말 그대로 자신의 주거 공간을 스스로 고치는 인테리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인터레어란 또 무엇일까? 실내 마감재, 가구, 조명기구, 커튼 등 쾌적한 실내 환경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이들을 변화시키는 과정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성 잡지를 사면 언제나 그 한 코너를 차지하는 것이 이른바 '인테리어' 파트이다. 한 눈에 봐도 몇 천 만원, 심지어 억을 호가하는 비용이 들었음직한 화려한, 혹은 멋들어진 인테리어가 우리의 인식에 박힌 '인테리어'였다. 그래서 새로 지은 아파트의 설비들을 몽땅 뜯어내고 완전 다른 집처럼 꾸미는 것이 인테리어였고, 거의 집을 새로 짓듯이 헌집을 싹 뜯어 고치는 것이 '인테리어' 인 줄 알았다. 그래서 '디자이너'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인 사람들에 의해, 비싼 자재와 가구들을 배치해 '잡지'에나 나올 그런 폼 나는 집을 만드는 것이 '인테리어'를 하는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의 근저에 깔린 것은, 즉, 몇 천만원, 혹은 그 이상의 돈을 들여 집을 고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돈을 들여도 아깝지 않을 오래도록 지낼 수 있는 '내 집'이 선행 조건이 된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전셋값 폭등에, 심지어 돈이 있어도 전셋집을 구하기조차 힘든 세상이 되었다. 삼포 세대라 지칭되는 젊은 세대들이 포기해야 할 항목의 제일 첫 번째는 바로 집인 세상이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지 않고서, 자신이 돈을 벌어 집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대한민국에서, 잡지에 등장하는 비싼 인테리어는 딴 세상 이야기가 되었다. 


그런데, 아니 그렇다면 남의 집을 잠시 빌어 사는 전셋집은 그냥 꾹 참고 살아야 하는 건가, 심지어 전세도 아니고 월세라면? 그런 월셋집을 고치겠다고 하면, '미친' 소리를 듣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평생을 벌어도 집을 살수 없는 세대라면, 퇴근 후 돌아와 머무는 '공간'을 통해 누릴 수 있는 행복조차 포기해야 하는 걸까? 


바로 이런 기본적인 욕망, 비록 나의 집은 아니라도, 내가 머무는 주거 공간을 내 맘에 드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셀프 인테리어'이다, 합리적인 금액으로, 내 맘에 쏙 드는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셀프 인테리어, <mbc다큐 스페셜>은 바로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셀프 인테리어의 현장으로 들어가 본다. 



제이쓴과 함께 하는 셀프 인테리어

<나 혼자 산다>를 통해 강남의 집을 단돈 97만원으로 180도 다른 집으로 변화시켜 화제가 되었던 셀프 인테리어계의 아이콘 제이쓴이 제작진과 함께 '셀프 인테리어'의 전도사가 된다. 


제작진이 선택한 셀프 인테리어의 대상자가 된 집은 세 집, 고향에서 직장을 얻어 올라와 처음으로 자신의 공간을 가진 이상진씨,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남겨진 두 자매의 미완성된 집, 그리고 결혼 7년차, 결혼 생활만큼 쌓인 짐, 그렇다고 더 이상 큰 집으로 이사를 할 형편은 아닌 김선아씨의 집이다. 


제작진이 사연을 보낸 신청자들 중 몇 집을 골라 집을 고쳐주는 컨셉은 마치 그 예전 신동엽이 진행하던 집고치기 프로그램과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제이쓴이 합류한 셀프 인테리어의 시작은 집 주인의 눈을 가리고 집안으로 들어와 눈 가리개를 벗겨내면 신세계가 펼쳐지는 깜짝쇼와 다르다. 오히려 제이쓴이 제시한, 어떤 힘든 과정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싸인을 하는 '살벌한 (?) 과정으로 시작된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셀프 인테리어계의 아이콘이라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셀프 인테리어', 자신의 집을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고치기 위해, 집에 거주한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움직여 '인테리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첫 주거 공간을 가진 이상진씨는 제이쓴과 함께 도배를 하고, 김선아씨의 남편은 스스로 톱질을 한다. 겨우 스물 두살의 잔디씨는 자신들의 공간이 마련된다는 기대에 무거운 것을 마다치 않는다. 



셀프 인테리어의 과정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온집이 '짐' 덩어리였던 김선아씨의 집에서 보여지듯이, '인터리어'의 시작은 '빼기'이다. 자신의 것이라 쌓아두었던, 하지만 결코 쓸 일이 없는 것들을 빼고, 자신의 공간이지만, 남이 살았던 흔적을 하나 둘 지워간다.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도배를 하고, 가벽을 세우고, 분위기에 걸맞은 조명을 설치하면, 끝난다. 간단하지만, 그 과정은 온전히 최소한 이 공간의 명목상의 주인의 땀과 노력을 통해 하나씩 채워져 간다. 이상진씨 집의 멋진 벽화는 알고보니 크레용을 녹인 것이요, 김선아씨 집 현관문은 집 식구들의 낙서로 채워진다. 그저 아파트 베란다에 인조 잔디를 깔고, 탁자를 놓았을 뿐인데 마음을 나눌 공간이 탄생되었다. 


그렇게 하여, 남의 것같던 공간이 비록 월셋집이라도 퇴근 후 돌아와 쉴 수 있는 자신만의 안식처로 탈바꿈했고, 짐에 식구들마저 더부살이하는 것같던 공간은 가족들의 노력과 수고로 이루어진 스윗 홈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그저 돌아오면 설겆이 등 집안일만 남겨진 마음 붙일 곳이 없던 스트레스였던 집은 이제 난생 처음 자신의 꿈을 키울 '집'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공간은 그 누구 딴 사람이 아닌, 자신들의 노력을 통해 이루어낸 곳이라 더 애착을 느끼게 된다. 


셀프 인테리어는 삼포 세대가 스스로 삶의 숨구멍을 만드는 방식이다. 자신의 집을 살 수는 없어도, 비록 빌린 집이라도 잠시 머무는 그곳을 자신의 개성이 숨쉬는 공간을 재탄생시키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삼포 세대의 라이프 스타일, 생존 방식이다. 

by meditator 2015. 9. 22. 15:21

'이혼 연습1'을 통해 배우 이재은과 안무가 이경수 부부의 실감나는 '이혼 롤플레잉'을 다루어 화제가 되었던 <sbs스페셜>은 9월 20일 '이혼 연습' 그 두번째 시리즈를 방영했다. 첫 번째 '이혼 연습'에서 이혼의 당사자가 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다큐는 이제 두번 째 이혼 연습으로 '이혼을 마주한 아이들'을 다룬다.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는 아이들

첫 번째 이혼 연습과 마찬가지로 두번 째 이혼 연습도 '이혼'의 시뮬레이션에 참가할 부부로 시작된다. 벌써 8년전이 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고스란히 한 광고를 통해 전달되며 전 국민의 감동을 자아냈던 전수아 이도엽 부부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렇게 전국민들의 눈시울을 흘렀던 시절이 무색하게 더 이상 손을 잡고 걷지 않는 건 물론, 남편 이도엽이 아내로 부터 이혼 결정을 들을 지로 모른다고 덤덤히 말하는 지경에 이르른 결혼 8년차의 부부, 이들 부부가 '이혼 연습'에 돌입한다. 


'가상 이혼 프로젝트'에 돌입한 전수아 부부는 실제 이혼 과정의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 소송을 준비하던 한 주부, 남편 측의 과실로 인해 자녀 양육에 유리한 위치였지만, 남편과 시어머니는 어느날 친정 어머니와 돌아오던 아이를 납치해서 돌려주지 않은 채 2년이 흘렀다. 법은 '약취 유인'의 판결을 내렸지만, '법'의 처벌은 친권자의 영역에서 그저 '벌금형' 정도로 미약했고, 법적 제재는 더 이상 가해지지 않았다.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하며 놔두었던 아이들의 옷이 작아진 지금, 이제 아이들은 엄마를 낯설게 바라본다. 


법적인 이혼 과정 중 아이들의 '약취 유인'은 생각보다 빈번하다. 그에 대해 법적인 처벌은 취약하고, '약취 유인' 당한 아이들조차, 데려간 과정에서 얻은 심리적 충격, 그리고 이어진 데려간 측의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남겨진 부모를 오해하고, 원망하며, '약취유인'한 부모를 선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이들에게는 지금 자신들에게 잘해주는 현실의 부모가 의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 중 그 누구를 선택한다 해도 아이들에게 남겨진 상처가 덜해지지는 않는다. 


이혼 후 직장 생활을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 아이들이 자신을 잘 따라준다 위안을 삼았지만, 아빠가 없는 시간의 몰래 카메라는 충격을 준다. 엄마의 재혼과 새로운 출산 이후 달라진 아이들, 그 중 큰 아이는 부쩍 폭력적이 되며, 그 화풀이를 동생에게 퍼붓는다. 심리적 분석의 결과, 오랫동안 누적된 분노가 그 아이의 마음 속에 켜켜이 쌓아있다는 것이다.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이, 역설적으로 부모가 이혼했는데도 잘 자랐다는 말에도 분노를 느끼듯이, 부모 중 한 사람이 사라진 가정에서 성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혼 가정 아이들에게는 상처로 남는다. 그렇다고 부모의 사정으로 이미 저질러진 이혼을 아이들에게 마냥 숨길 수도 없다. 또한, 홑부모와 살아가는 생활고의 무게도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으로 남는다. 



이혼의 그림자, 아이들의 무게 

2013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이혼, 2014년 11만 5천5백건으로 소도시 수준의 인구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고, 여전히 OECD이혼율 1위의 자리는 부동이다. 그런 형편에, SBS가 꾸준히 내보내고 있는 <이혼 연습>은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문제인, 그리고 개별화된 문제인 '이혼'을 함께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유의미하다. 


특히 첫 회 이혼 연습이 배우 이재은 부부의 이혼 시뮬레이션을 통해 많은 관심을 받은 바 있어, 그에 이은 <이혼 연습2> 역시 전수아 부부를 가상 이혼 프로젝트에 불러들인다. 하지만, 부부의 문제와 아이들의 문제는 달랐다. <이혼 연습1>의 이재은 부부는 부부 모든 자신들의 문제를 실감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그들의 가상 이혼 프로젝트가 현실만큼 실감나게 다가왔지만, 아이들의 문제에 이르면, 다큐에서 보듯이 전수아 씨가 대역 배우처럼 타인의 이혼 과정에 참여해 실감을 느끼는 이상, 직접 자신들의 아이와 '이혼'을 연습하기엔 너무 무리수였던 것이 드러난다. 


그 이유는 다큐 과정에서도 드러나듯이, 아이들은 그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부모에게 태어났듯이,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도 역시나 자신들의 뜻과 상관없이 상처를 받는 상황이기에, 더구나 어린 전수아 부부의 아이에게 부모들은 '이혼'이란 말 조차 꺼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큐의 마지막 '아이'때문에 이혼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전수아 부부의 멘트 역시 안일해 보인다. 내내 이혼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아이들의 문제를 이렇게 저렇게 다루다가, 마지막에 아이를 생각해서는 이혼할 수 없겠다는 마무리는 어쩐지 이율배반으로까지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OECD이혼율 1위의 현실에서, 아이를 배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이미 '이혼'이라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과정에서, 아이를 생각해 보니 안되겠다는 잔뜩 문제만 벌려 놓은 셈이 된다. 


즉, <이혼 연습> 1이 이혼의 과정을 복기하며 결국 그 과정과 이후의 여파가 생각보다 여의치 않다는 것을 전달하려 했듯이, <이혼 연습>2 역시 마찬가지로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뜻밖에도 아이들이 많은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을 전달하여, 이혼 자체에 대한 고민을 보다 심도깊게 하려는 의도인 것은 알겠지만, 이미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다수의 아이들이 양산되고 있는 상태에서 처방은 어쩐지 눈가리고 아웅하는 느낌인 것이다. 오히려 '이혼 과정'에 상처받는 아이들에 촛점을 맞춘다면, 그 아이들이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미 현실 속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치유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 아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아이들의 상처를 운운하기에 대한민국의 '이혼'은 너무 '기정 사실'인 것이고, 과연 아이들만을 생각하며 연장해 가는 부부의 삶이란 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이혼하는 부부들은 아이들을 외면하는 것이 되는 것인지, 부부를 대상으로 한 <이혼 연습>1과 다르게, 이혼 과정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에게 촛점을 맞춘 <이혼 연습>2는 그 과정에 끼인 아이들만큼이나 딜레마에 빠진 듯 보인다. 

by meditator 2015. 9. 21. 15:40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어셈블리>에 대해 혹자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환타지라며 냉소한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시청자들이 골몰하는 평범한 주인공이 '재벌'을 만나서 사랑을 이루고, '재벌'을 징벌하는 드라마는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 <어셈블리>는 '일장춘몽'과도 같은 환타지였다. 그리고 아침과 주말, 그것도 모자라, 이제 주중 미니 시리즈까지 장악한 '재벌'을 조롱하고 징계하는 드라마들 역시 '환타지'이긴 매일반이다. 하지만 똑같은 '환타지'이지만 서로 다르다. 드라마판을 범람하는 '막장 재벌 드라마들이 현실 삶의 고통을  배설하고 소비하는 것이라면, 비록 4.9%의 시청자들만이 공유한 <어셈블리>의 환타지는 우리가 현실에서 이루어야 하는 것들을 새삼스럽게 '환기'시켜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자각'시켜주는 무뎌진 일상의 '송곳'과도 같은 '환타지'였다. 그래서, 오히려 드라마가 끝난 이후, 마음이 더 묵직해지는, 그렇게 '진짜 정치'를 남기고 9월 17일 <어셈블리>는 20부의 꿈같은 시간을 마무리했다. 



정치 불감증의 현실을 복기하다. 

초반 시선 잡기에 무리수였다는 평가를 받았듯이 <어셈블리>의 첫 장면은 '법'으로 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일군의 노동자들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일군의 노동자들은, 오늘의 우리 사회 이곳 저곳에서 길거리에서 조차 갈 곳이 없어 드라마 속 배달수가 올라갔던 '크레인'처럼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전광판이든 그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고공 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이렇게 자신들의 목소리조차 전하기 힘든 사회적 약자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고 <어셈블리>는 그 서두를 뗀다. 


더 이상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할 곳이 없어 막막했던 해고 노동자 진상필(정재영 분)의 선택이었든, 여당 사무총장 백도현(장현성 분)의 차기 선거를 향한 은밀한 포석이었든, 요행히도 진상필은 동료들의 오해까지 사며 여당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한다. 


그렇게 누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가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어셈블리>는 본격적으로 '어셈블리'에서 국회의원이 할 일들을 점검해 나간다. 즉, 현실의 정치에서 권력의 이합집산으로만 비춰지는 국회, 극중 진상필이 정의내리듯, 편 가르기와 나눠먹기의 '정치공학'을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로 오해하게 하여, 외면하게 만들고, 그 한편에서 끼리끼리 맘껏 해먹는 '정치판'을 여당의 진상, 나아가 '국민 진상' 진상필을 통해 복기해 나간다. 


진상필의 진상 짓을 통해, 시청자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외면했던 '진짜 정치'란, 국회의원 자리는 밀실 공천을 통해 나눠먹기 식으로 준 하사품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를 뽑는 자리라는 것을, 그리고 한 지역구의 국회의원은 그저 지역구의 이익 사업을 따내는 '영업사원'이 아니라, '나라 전체와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국회가 '힘있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법을 만들고 거수기를 하는 곳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자들이 모여, '민의'를 대변하는 곳이라는 것을. 손바닥 뒤집듯 배신과 음모가 판치는 곳이 아니라, 신념을 위해 모인 '동지'들이 있고, 그 '동지'를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정치를 외면한 댓가로 가장 저질스러운 사람들에게 지배당하는 결과를 낳는' 곳이 아니라, 치고 박는 곳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드는 곳'이라는 것을. 아무리 정치를 혐오하고 부정해도 정치가 우리의 인생 전부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셈블리> 공홈 게시판을 끝없이 메운 '명대사'들이 실현될 수도 있는 그곳이 국회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어셈블리>는 현실에서 시작되어서, 가장 현실의 정치를 차근차근 복기해 나가면서, 그리고 현실에서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진짜 정치들을 이야기해가면서 '환타지'가 되어간다. 

드라마 속 한낱 해고 노동자였던 진상필은 결국 '살신성인'으로 자신의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사회가 '쓰레기'라 버린 사회적 패자들을 위한 '배달수법', 두번 째 인생을 위한 법을 성취해 냈다. 19회 장황한 입법의 과정을 겪어내며, 대통령의 거부권까지 '거부'하면서 결국 애초에 자신이 국회에 들어온 목적을 이루어 내었다. 하지만 만약에 현실이었다면 요행히도 국회로 간 해고 노동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을 던지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법을 만들수 있었을까? '법'을 만드는 대신,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이어가는 '재선'을 노리고, 원칙을 지키는 대신, 훗날을 도모한다는 미명하에 세를 규합하려 들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원칙들이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일그러지고, 어긋나버리는 것을 굳이 드라마가 재현하지 않아도, 매일 매일의 정치에서 확인하기에 <어셈블리> 속 '진상 정치', '진짜 정치'는 환타지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타지'가 된 진상필과 그의 동지들이 구현한 '진짜 정치'를 통해, 그간 우리가 정치라 믿었던 것이 '정치 기술자'들의 '정치 공학'이었음을, 국회의 주인은 세금내고, 나라를 지킨 국민들이며, 당연히 국회의원은 그들의 대표자로, 국민들을 위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아프게 일깨워준다. 국회에서 10넌간 잔뼈가 굵은 정현민 작가의 내공으로, 현실 가능한, 그리고 가능해야 할 '환타지'를 낳는다. 



현실로 온 정치, 정도전이 아니라, 진상필

정현민 작가는 정치판의 생로병사를 2014년 사극 <정도전>을 통해 실감나게 풀어낸바 있다. <정도전> 속 정치는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듯, '정치'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정치 기술자가 된, 물고 물리는 약육강식의 싸움판이었다. 그렇게 그 누구보다도 정치판을 '리얼'하게 묘사했던 작가가 현실로 끌어와서 풀어낸 정치로 구현해 낸 것은 정도전이 아니라 진상필이었다. 이상주의적 정치를 풀어내려 했다가, 결국 기술자가 되어버린 슬픈 운명의 사내, 그리고 그 사내를 둘러싼 숱한 정치 공학의 술수 대신, 우직하게 끝까지 원칙을 놓지 않은 '진상필'의 진상 정치를 내세웠다.


아마도, <어셈블리>가 현대판 정도전을 '리얼'하게 그려냈다면, 아마도 <어셈블리>는 정치 게임에 열광하는 숱한 애청자들을 양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세간의 시선을 잡는 정치 게임 대신, 아니 이미 현실의 정치판을 통해 신물나게 경험하고 있는 정치판의 복사 대신, 그런 정치판에서도 누군가 노력하면 가능할 '진짜 정치'를 논한다. 덕분에 누군가는 그것이 생경하다 외면하고, 누군가는 현실성이 없다 거부하고, 또 누군가는 '좌빨'이라며 손가락질 한 덕분에, 6%을 넘지 못한 초라한 성적표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환타지'로서마저도 '정치'에 희망을 걸지 않는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아직은 고사되지 않은 5~6%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포기되지 않는 '진짜 정치'의 희망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서 닮은 정치인을 두고 설왕설래하듯, '리얼'한 정치판을 배경으로, 가장 '리얼하지 않은' 진짜 정치를 이야기 한 덕분에, 시청자들은 <어셈블리>을 보며, 현실 속에서도 가능한 '진짜 정치'를 꿈꾸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진짜 정치를 꿈꾸도록 하는데, '리얼'한 정치판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열연해준 <어셈블리>의 배우진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타지'인 줄 알면서도, 살그머니 진상필의 진상 정치, 진짜 정치를 응원하고, 그래서 놓을 뻔한 현실 정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다시 잡게 만든, 진상필로 '빙의'한 정재영의 열연,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만든 제작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시 정재영의 드라마 속 연기를 기대해 보고 싶지만, 정재영의 진상필 외에 그 누구를 쉬이 떠올릴 수 없도록 만든, 진상필, 정재영의 진정성이, <어셈블리>의 진심을 채웠다. 그리고, 제작진과 배우들의 진심이 더한 드라마 <어셈블리>는 2015년 우리가 잃어버린 '정치'를 잠시나마 돌려주었다.













by meditator 2015. 9. 18. 09:17

언제부터인가 대신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kbs의 <tv, 책을 말하다>에서 <tv, 책을 보다>로 면면히 이어지는 프로그램이 그것이요, <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위시한 팟 캐스트의 여러 책 관련 프로그램들이 그것이다.  처음엔 '책'을 소개해 준다고 하던 취지들이, 어느샌가 바쁜 생활 속에서 진득하게 책을 붙들고 앉아있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정보'로서, 혹은 '힐링'으로 대신 책을 읽어주겠다고 입장이 바뀐 프로그램들이다. <tv, 책을 보다>는 '책 소개 프로그램의 틀을 벗어나 책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 or 책에 대한 색다른 주장을 다룬 강독쇼로 시청자와 공감의 폭을 충분히 넓히고 이해를 공유함으로 인문학적 재미의 확대를 목표로 한다'며 '독서 권장'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고, 9월 15일 첫 선을 보인, tvn의 <비밀 독서단> 역시 책 읽을 시간 없는 시청자들 대신 책을 읽어 주겠노라 당당히 밝힌다. 


이는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실질 문맹률 oecd 꼴찌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한, 자구지책이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시기마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길을 밝혀준' '책'을 포기할 수 없는 문화적 안간힘이기도 하다. 거기에, 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인문학'에는 솔깃한 기이한 '인문학 열풍'의 편승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책을 읽지 않는 문화 속에서 탄생한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에 또 하나의 새 프로그램이 얹혀졌다. tvn의 <비밀 독서단>이 그것이다. 





익숙한 듯 새로운 독서 프로그램

tvn의 <비밀 독서단>은 기존 대신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의 전통을 따라하면서, 그 '교양'적 성격을 조금 더 희석시키고자 노력한, 즉, '예능화'한 책 읽어주기를 시도한 프로그램이다. '예능화'한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이라니, 잊혀진 슬픈 전설인 2013년 3월 종영된 강호동의 <달빛 프린스>가 떠올려진다. 그리고 보면, <달빛 프린스>는 최근 범람하고 있는 '인문학적 열풍'에 혜안이 밝았던 거였다. 단지, 그 혜안의 방향과 코드가 잘못되었을 뿐, 그렇게 첫 단추부터 '근육질 강호동'을 내세워 불협화음을 빚어 실패했던 책읽기의 예능화가 tvn으로 오면 어떻게 달라질까?


새로인 시작한 <비밀 독서단>,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새 프로그램인데 낯설지 않다. 우선은 단원들이 모여 앉은 스튜디오가 이미 tvn에서 선보인 인문학적 토크쇼 <젠틀맨 리그>와 유사하다. 심지어 그 구성도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인기를 끌었던 <킹스맨>을 패러디 한 듯한 젠틀맨들을 등장시켜, 매너 대신, '인문학적 지식'이 사람을 만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젠틀맨리그>처럼, 마치 원탁의 기사들을 연상시키는 중세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튜디오에 비밀 단원들이 모여 각자 준비한 책을 소개하는 방식이 크게 이물감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매너'가 사람을 만들 듯 제대로된 젠틀맨이 되어가고, 비밀의 책을 통해, '기사'가 되어가는 어떤 제식이, '교양'으로서의 격을 만든다. 그렇게 '인문학적 지식'이나, '독서'는 거창한 목적이나, 필수불가결한 효용대신, 거리의 양아치가 젠틀맨이 되어가듯, 멋들어진 삶의 한 방식으로 접근되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이끄는 사람들의 구성도 대동소이하다. 연예인 + 전문가의 적절한 콜라보레이션을 추구한다. <젠틀맨 리그>가 정재형과 장기하라는 실질적 면모와 상관없이 좀 '지적'이어 보이는 mc  두 사람에 인하대 로스쿨 교수 홍승기, 경제 전문가 이진우, 역사 교사인 김준우를 합세시켰다면, <비밀 독서단>은 개그맨 정찬우에, 데프콘, 예지원, 미술에 일가견있는 아나운서 김범수, 기자 신기주, 베스트셀러 저자 조승연을 합류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엎어치든 메치든 결국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은 책을 소개하고, 그 내용을 함께 공유하는 형식을 벗어날 수 없다. 과연 이런 천편일률적일 수 밖에 없는 '책소개'의 형식을 <비밀 독서단>은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책읽기의 진부함을 극복하기 위한 비법은?

이런 진부한 형식에 대한 <비밀 독서단>의 해법은 '책으로 입털기'이다. 한 시간 여의 프로그램 동안 다섯 명의 단원이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하듯이, 책에 대한 소개는 짧고 간결하게, 그리고 마치 요리비법의 '킥'처럼, '생명줄'을 통해, 단 한 줄로 책을 설득하고자 한다. 대신, 그 짧은 소개의 부족분을 채우는 것을, 그 책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출연자들의 입담이다. 


조승연이 소개한 라 로슈프코의 <잠언과 성찰>을 두고 벌인 데프콘, 신기주 기자와의 설전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전문가로서 야심차게 <잠언과 성찰>을 소개했지만, 그런 소개에 아랑곳하지 않고, 데프콘은 책이 너무 어렵다고 논박한다. 그리고 그 논박에 이어, 이런 잠언 식의 책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거나, 생각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신기주 기자의 반박이 뒤따라 조승연 단원을 무색하게 한다. 심지어 이 날의 책으로 뽑힌 신기주 기자가 소개한 발로 쓴, 사례가 풍부한 말콤 글래드웰의 <다윗과 골리앗>과 비교가 되면 <잠언과 성찰>의 자리는 더더욱 협소해 지고 만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그저 교양으로서의 책 소개를 넘어, '책을 가지고 물고 뜯는 재미를 주는 <비밀 기사단>의 묘미이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자신은 읽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그 책을 읽은 양 프로그램에 소개된 책들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이런 책 소개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맛깔나게 혹은 감질나게 소개되는 과정을 통해 결국 내 스스로 읽어보게 만들고 싶은 것이 그 장점이라면, 결국 '남의 말'에 불과한 소개를 듣고, 마치 자신이 읽은 것인양 '만족'하게 되는 단점이 그 반대편에 자리한다. 책을 안읽은 사회에서 그나마 이렇게라도 책을 점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그냥 그렇게 책을 소비하고 말 가능성도 남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5. 9. 17. 16:28

9월 15일 방영된 <미세스 캅> 14회, 최영진(김희애 분) 팀장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한 강태유(손병호 분) 회장은 최영진을 향해 '빈볼'을 던지기로 한다. 그 방법은 바로 한적한 거리에서 폭력배를 동원하여 무차별 폭력을 가하는 것. 하지만, 막상 강태유가 던진 '빈볼'을 강타당한 것은 최영진이 아니라, 신입 팀원 민도영(이다희 분)였다. 


일반적인 드라마였다면 어땠을까? 폭력배에 둘러싸인 민도영, 그녀가 몇 대 맞기도 전에 동료 팀원인 한진우(손호준 분)가 짠~! 하고 등장하여 폭력배들을 무찌르고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민도영을 구해내고 그녀의 사랑도 얻지 않았을까? 하지만, <미세스 캅>은 달랐다. 백마 탄 왕자님은 오지 않았고, 민도영은 폭력배들이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고소를 해야 할 정도로 4;1의 처지에도 민도영에게 얻어터졌다. <미세스 캅>은 민도영인 폭력배 네 명을 상대로 벌이는 고군분투의 액션씬을 장황하게 보여준다. 폭력배에게 배을 걷어차여도, 칼을 들이밀어도 민도영은 쓰러지지 않는다. 도망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동그라져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고, 칼을 휘두르며 다가온 그들에 전혀 주눅들지 않고, 맨 손으로 그들의 팔을 꺽고, 제친다. 결국 무시무시하던 네 명의 폭력배는 길바닥에 나동그라져있고, 민도영은 씩씩거리며 그들을 포박하느라 여념이 없다. 





자기 앞가림 정도는 너끈히 해내는 여성들

민도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친 몸으로 병원을 가라는 동료들의 걱정을 마다하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강태유를 잡고자 펄펄 날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기세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세상에 무서울 것 없는 신입 형사, 일반적으로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젊은 남자 배우가 할 캐릭터가 <미세스 캅>에서는 고스란히 민도영의 몫이 되었다. 그런 민도영을 가라앉히는 건 이제 막 그녀를 향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 한진우도, 다른 남자 동료들도 아니다. 신입의 열혈 기세를 팀장의 노련함으로 감싸며 치밀한 작전을 지시하는 최영진이다. 때로는 다짜고짜 장태유를 찾아가 큰 소리를 치는 최영진이 이때만큼은 팀장의 내공을 자랑한다. 장태유를 방심하게 하고, 그 사이에 수사 과정을 통해 드러난 폭력배들의 심리 불안을 빌미로, 장태유가 배후임을 드러내고야 만다. 


애엄마 형사임에도 '애엄마'의 고충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 있는 <미세스 캅>이 그려내는 여성의 모습은 신선하다. 지금까지 애엄마 형사라고 하면, 일과 육아 그 딜레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여성을 그리는데 치중했다. 하지만, <미세스 캅>은 일하는 여성의 그 딜레마를 전제로 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분명 싱글맘으로서 초등학생인 아이가 엄마의 부재로 인해 '신경질'적이 될 정도로, 겨우 짬이 나서 식구들에게 해주는 게 '인스턴트 짜장면'일 정도로 육아와 가사엔 젬병이지만, 그 딜레마가 그녀의 발목을 잡지는 않는다. 


대신 그녀는 일을 한다. 14회, 딸에게 문제가 생겨서 동료 여경의 경조사에 빠지게 된 최영진, 딸의 친구 아버지가 접근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를 차에 태우느라 벌어진 해프닝에 여동생은 놀란 마음에 지레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그 자리에 간 최영진은 그저 사건의 경과를 보고 받고는 다음 부터는 그러지 마시라 다짐하고 말 뿐이다. 여느 드라마의 엄마들이라면 어땠을까? 대뜸 파출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아이를 붙잡고 울고불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하는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마치 그간 엄마 노릇을 못한 것을 상쇄하기라도 하듯이 그 호들갑의 정도는 더했을 텐데, 최영진은 차분하게 정황을 듣고 충고를 하는 것으로 끝낸다. 이후, 모처럼 모인 최영진과 딸, 그리고 여동생, 아빠가 없어 서운한 딸과, 역시나 아빠가 없어 때론 반항기까지 보냈던 두 사람을 다독이는 최영진의 모습은 말 그대로 '가장'이다. 여기서 보이는 '엄마'이자, '가장'의 모습은, 그간 우리 드라마가 전통적으로 그려왔던 손에 물마를 새 없이 자식들을 진 자리 마른 자리 보살피던 '엄마'로 살아왔던 여성상과는 또 다른, '든든한 울타리'로서의 엄마'이다. 비록 가사 일은 젬병이지만, '일을 통해 자신을 구현하고, 가족들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이 시대에 현실적인 '엄마'로서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식을 살뜰히 보살피지는 않지만, 기껏 해먹이는게 짜장 라면이지만, 가족들의 울타리로 반항해 집을 나선 동생을 때려서라도 집에 들여다 앉히, 그리고 딸이 위험할 때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달려오는 '가장'으로서의 엄마다. 



<미세스 캅>에서 또 한 사람 주목할 캐릭터는 또 다른 여성인 민도영이다. 경찰대 출신의 강력반 초짜, <미세스 캅>은 강력반 팀장 최영진의 활약사이자, 동시에 신참 형사 민도영의 성장기이다. 경찰대 출신의 원리 원칙만 따지던 그녀가 최영진 수하로 들어와 진짜 형사가 되기 위해 겪는 성장통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묘미이다. '깡패' 같아 졌다는 동료 여경의 평가처럼, '깡패' 못지 않게 깡다구를 가지고 사건을 향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그녀의 모습은, <미세스 캅> 속 일하는 여성의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책상 물림이었던 그녀가 경쟁을 넘어 동료를 이해하고, 법 조항을 넘어, 인간을 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로서의 원칙을 성숙시켜 가는 과정은, 그저 소모적 러브 스토리의 주체로서의 여성 캐릭터의 발군의 진화이다. 





그저 남성 캐릭터의 역전? 아니 새로운 발견

극중 최영진은 범죄 수사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형사였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아버지의 길을 걷는, 어디서 많이 보던 설정이다. 단지 기존 드라마에서 아들의 역할을 이젠 딸인 최영진이 대신할 뿐이다. 14회 등장한 강력팀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강력 팀원 조재덕(허정도 분)은 민도영을 앞에 두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예전만 못하지만, 혼자서 신출귀몰하며 폭력배를 때려잡던 최영진 팀장의 무용담을 설파한다. 그런 무용담에 에이 설마 하던 민도영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최영진처럼 혼자서 네 명의 폭력배를 때려 누인다. 그것도 모자라서 파스를 붙인 채 수사 현장을 펄펄 날아 다닌다. 


아버지의 일이었던 형사일이 최영진 대에 와서 여성으로 전화되고, 최영진의 일은 이제 다시 신참 여형사 민도영을 통해 계승되는 이 묘한 직업적 인맥은, 이 시대 여성의 위상과 위계를 드러낸다. 남성의 영역에 자신의 능력을 통해 도전했던 최영진과, 그 일을 일로써 계승하는 후배 민도영의 새로운 '가계도'인 것이다. 그러기에 극중 최영진의 캐릭터와, 민도영의 캐릭터는 그간 범죄 수사 드라마에서 반장 역의 남성 캐릭터와, 신참 형사 남성 캐릭터와 많은 부분 겹친다. 일을 하는 새로운 여성상을 구현하려 하지만, 기존의 여성성의 극복이 그저 '남성화'에 그칠 우려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어찌보면 캐릭터의 딜레마라기 보다는, 남성의 영역에서 자신의 '일'로써 승부를 보아야 했던 여성들의 딜레마일 지도 모른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엄마는 젭병이 되어야 하는, 그저 극중 설정을 넘어, 이 시대 여성들의 현실말이다. 캐릭터의 묘사의 한계가 아니라, 현실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by meditator 2015. 9. 16. 16:00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대머리'란 글자만 봐도 웃음을 터트린다. tv 속 개그맨들의 대머리 분장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주된 웃음 코드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머리'란 한 마디로 '웃음거리'다. 그렇다면 '웃음거리'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살아내야 하는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어떨까? 그 대한민국에서 대머리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9월 14일 <mbc다큐 스페셜>이 다루었다. 


국민건강 보험 공단에 따르면 전국민의 14%, 탈모 인구 1000만 시대이다. 다섯 명 중 한 사람이 '탈모'의 고민을 앓아가고 있는 시대, 하지만, 그 '일상'이 된 '탈모'가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차라리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없는 게 더 나은 '고통'과 '치부'의 상징이 된다. 





뒤집어쓰거나, 이식하거나, 대머리의 삶

<mbc다큐 스페셜>은 이제는 일상이 되어가는 '탈모'의 현상, 하지만 여전히 사회 속 타자로, 그 '다름'으로 인해 손가락질 당하고 고통받는 사회 속 '타자'로서의 '대머리'의 삶을 지켜본다.


그 시작은 '대머리'와 관련된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하여 '대머리' 연예인들의 섭외이다. 하지만, 자타공인 대머리인 연예인들이 막상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 출연에 미온적이거나, 외면을 한다. 결국 또 의탁하게 된 것은, '게이'로 커밍 아웃을 한 홍석천, 그의 말대로, 자신이 게이인 것 다음으로, 자신을 힘들게 한 것이 '대머리'라는 사실인데, 여기서 또 '총대'를 매라는 말이냐는 볼멘 소리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용감한' 홍석천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그렇게 '대머리'인 홍석천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 프로그램, 카메라는 머리숱이 풍성한 한 남자의 일상을 따라간다.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로 들어간 그 남자, 조심스레 머리의 중앙 부분을 들어낸다. 대머리였다! 하지만, 그도 잠깐, 헤어스타일링이 가지런히 된 가발을 벗어놓은 그는, 조금 더 편한 스타일의 다른 가발을 집어든다. 집에서도 '가발'을 쓰는 것이다. 심지어, 들키기 전까지, 그가 가발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아내도, 가족 중 누구도 몰랐었다는 것이다. 대머리가 유전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고민, 하지만, 그것은 '가족'과도 나눌 수 없는 그가 짊어져야 할 '개인'만의 고통이었다. 심지어, 첫 아들 탄생의 반가움마저, 유전적 형질이 계승될까 하는 두려움이 상쇄시키는 무시무시한 고통이다. 





제작진이 만난 대부분의 대머리들은 가발을 사용했다. 그게 아니면 이식을 준비 중이거나, 이식을 했다. 홍석천의 민머리는, 그의 말 그대로, 게이에 이은 또 하나의 커밍 아웃같은 상징처럼 보인다. 왜 대한민국 사회는 대머리로 사는 걸 부끄럽게 만들까?


하지만 대머리가 바다를 건너면 사정은 달라진다. 남성 호르몬의 과잉으로 생겨난 대머리는 서양에서는 '남성성'의 상징이다. 그래서 근육질의 대머리 연예인들이 액션 영화에서 자신들의 민머리를 드러낸 채 한껏 남성성을 뽐낸다. 실제 동양보다도 훨씬 더 많은 수의 대머리들이 있는 서양에서, 대머리가 숨겨야 할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러나, 동양으로 건너오면 달라진다. '관계 지향 사회'인 아시아 중국, 일본, 한국에서, 대머리는, 남과 다른, 특이하고 이상한, 심지어 우스운 그 어떤 것이 된다. 똑같은 사람의 머리가 있고 없는 모습을 본 여성들의 반응이 그랬고, 몰래 카메라로 대머리 가발을 씌운 젊은 남성의 태도의 변화가 그걸 여실히 증명한다. 더구나 세계 남성 화장품 소비 1위인 한국, '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사회에서, '대머리'는 경쟁력이 젬병이다. 한때는 '사장님'같다던 '대머리'가 어떻게든 숨겨야 하는 치부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렇게 '다름'이 '틀림'이 되어가는 '대머리'의 삶을 다큐는 주목한다. 





<mbc 다큐 스페셜-대머리라도 괜찮아>는 그저 '대머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외모 지상주의 사회의 상징적 단면이다. 또한, 나와 다름을 쉽게 '타자화'시키는 '관계 지향 사회'의 잔인한 상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속에 함몰된 사람들은 쉽게 그 '다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아니, '개인'의 짐인 자신의 모습을 홀로 감당하기엔 '사회'의 편견은 깊다. 


하지만, 우리나라 못지 않게 관계 지향적인 일본에서, '대머리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겠다며 노래까지 만들어 부르는 '대머리'클럽은 희망적이다. 홍석천의 자신의 딜레마를 넘어섰을 때 느끼게 되는 카타르시스는 용기를 준다. '대머리'들의 이야기는, 그저 대머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 지향 사회' 속에서 누구나 하나씩 자신의 '다름'으로 인해 고민하는 요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한번씩 생각해 볼만한 지점을 남긴다. 




by meditator 2015. 9. 15. 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