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4의 예고편은 호쾌하게 책상을 쓸어버리고 거기에 사장 이영애라는 번듯한 명패를 올려놓고 콧대를 치켜세운 영애씨를 내걸었다. 그리고 그 예고편처럼 영애씨는 '이영애 디자인'의 사장이 되었다. 의기투합한 동료 라미란과, 낙원사의 비정규직 두식까지 합세한 이 팀은 흡사 종합상사를 나와 작은 사무실에 모인 오차장의 드림팀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미생> 20회 두바이를 종횡무진하는 오차장과 장그래처럼 희망에 가득찰까? 천만에 말씀, 현실은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이랏사이마세'를 외치다 만난 파혼남을 피하다 식당 바닥에 미끄러져 낙지를 떼어내려 몸부림치는 신세다. 대한민국 청년들의 현실을 제대로 다루었다는 <미생> 보다도 더 현실적인 여전한 '미생' <막대먹은 영애씨>이다. 




'로코'의 구도에 현실을 끼얹다
나이 서른 여덟, 알바를 하러 간 식당에서 당연히 아이들 학원비를 벌러 나온 줄 아는 나이, 하지만 여전히 엄마에게 '시집이나 가 이년아' 소리를 떼지 못하는 영애씨(김현숙 분), 하지만 그녀의 독신 라이프는 낭만적이다. 이제는 '전 사장'이 되었지만, 낙원사 이승준(이승준 분) 사장의 마음을 온통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비록 혼수 문제로 파탄이 난 사이지만, 전 약혼자 산호(김산호 분)는 영애씨에게 아직도 널 잊지 못하고 있다고 카톡을 날리고, 어려운 회사 사정에 선뜻 자기 회사 일감을 가져다 준다. 이 정도면 웬만한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저리 가라할 설정이다. 

어디 영애씨 뿐인가. 낙원사에게 영애씨네 회사로 옮겨 온 두식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번듯한 직업을 가지기 전까진 '사랑' 따윈 쳐다보지도 않겠다던 두식, 하지만 그는 자꾸만 낙원사의 앙숙이었던 현영(조현영 분)과 자꾸 19금모드로 엮인다. 술 김에 키스를 하는가 싶더니, 비록 '별일'은 없었다지만, 이젠 두식의 오피스텔에서 나란히 아침 잠을 깨는 사이가 되었고, 비록 이상형은 아니지만, 이젠 니가 이상형이라 할 사이가 될 즈음이다. 

전 애인과 현재 자신을 스토커처럼 따라붙는 남자, 그리고 우연을 빙자하여 자꾸만 엮이게 되는 청춘 두 남녀, 이 설정만을 놓고 보면, '로맨틱 멜로'의 '클리세' 저리 가라할 전형적인 설정들이다. 그런데, 이 전형적인 설정들도, <막돼먹은 영애씨> 버전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에 가서 한 사업이 성공하면 고백을 하리라던 이승준 사장과 영애씨의 해후는, 사업이 망해 도망다니는 그를 쫓아 한강 주차장으로 온 영애씨와 이루어진다. 두 사람은 '해후'의 눈물을 흘리기는 커녕, 직원들을 망하게 한 주제에 자책하여, 물에 빠져버리는 해프닝으로 막을 내린다. 그 이후, 이승준 사장은 늘 영애씨에게 고백할 타이밍을 잡지만, 그 고백할 타이밍은, 이제 뜻밖에도 김산호라는 존재가 막아선다. 

큰 용기를 내어 레스토랑까지 예약하고 영애씨를 찾아간 이승준 사장, 하지만 그가 목격한 것은 영애와 나란히 나오는 산호이다. 게다가 그의 일까지 맡아서 하게 되었단다. 그 상황에 이승준 사장은 '버럭'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화를 내냐는 영애씨의 더 큰 '버럭' 하지만, 이승준 사장의 고백을 막은 것은 김산호가 아니라, 기실 영애씨의 험란한 사업이다. 



달콤하기 보다 쌉싸름한 현실의 맛, <막돼먹은 영애씨> 
이승준 사장 후임으로 낙원사를 맡은 조덕제 사장의 사내 경쟁 체제에서 밀려 결국 실직을 하게 된 영애씨, 결국 그녀는 자신처럼 떠밀려난 라미란과 함께, 이영애 디자인을 차린다. 그러나, 현실은 <미생>의 오차장처럼 무지개 빛이 아니었다. 두바이를 종화무진하는 대신, 한 건이라도 광고건을 따내기 위해 말도 되지 않는 영업을 뛰어야 했고, 결과는 직원들 월급조차도 주지 못하는 신세이다. 심지어 믿었던 라미란은 대놓고 자신을 배신하고 낙원사로 돌아갔다.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주말 알바라도 뛰려 했지만, 우연히 마주친 김산호 때문에 그 조차도 여의치 않게 된 영애씨, 그런 그녀에게 김산호는 손을 내민 것이다. 파혼남 김산호가 다시 다가오고, 사랑을 이루려 했던 이승준 사장과는 오해가 쌓이고, 영애씨의 현실은, 영애씨의 사랑조차 흔들어 버린다. 산호의 고백 카톡조차, 직원들의 밀린 월급 앞에서 질끈 눈을 감게 만든다. 어디 영애씨 뿐인가. 이영애 디자인에 위기가 찾아오자 두식은 어렵게 마음을 먹었던 현영과의 사랑을 다시 접는다. 

일반적인 드라마들이라면, 제 아무리 어려운 위기가 다가와도,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랑'으로 극복가능해 진다. 위기는, 결국 '사랑'을 이루어 가기 위한, '엑설레이터'였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에 잔뜩 몸을 담은 <막돼먹은 영애씨>는 그 버전이 달라진다. 분명 같은 드라마의 장르인데, 이 드라마에 유독 청춘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사랑'조차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현실의 씁쓸함이다. 이승준 사장과의 설레이는 '썸'도, 그리고 아직도 마음을 접지 못한 산호와의 사랑 앞에서 영애씨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것도 결국 서른 여덟 이영애라는 사람이 맞닦뜨린 현실이다. 아직은 비정규직인 두식 역시 마찬가지다. 뭔가 좀 로맨틱하게, 설레이게, 혹은 좀 재미지게 폼나게 살아볼려 해도, <막돼먹은 영애씨>네 사람들은 늘 현실에 걸려 버둥거린다. 그리고 그 현실은, 끝없는 미생의 길을 끝내고, 이제 대한민국에서 제일 먹고 살기 힘들다는 자영업자의 대열에 합류한 이영애 사장이 되어서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낙원사의 '미생'들 역시 다르지 않다. 결혼을 해도 월세 75만원의 옥탑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지순이나, 정리해고 위기에 몰린 남편 때문에 영애씨를 배신해야 하는 라미란이나, 비겁하고 용렬함을 벗어나지 못하기는 매일반이다. 달콤한듯 하다가, 어느새 쌉살함만은 남기고 흩어지는 그 현실의 참 맛에의 중독, 그게 바로 시즌 14를 이어가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참 맛이다. 
by meditator 2015. 9. 8. 1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