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도 종종 등장하는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박사는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의 취미 생활을 '정치'라 정의한다. 나이들어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하는 남자들이 밥 먹고 취미 삼아 허구헌 날 '정치'를 취미로 단물이 다 빠지도록 씹고 또 씹는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일리가 있듯 '종편'이 하루 종일 '정치'를 매개로 각종 프로그램을 돌려도 그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 남성들의 정치다. 아니 남성들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폭스 tv를 본따, 가쉽화한 '정치'는 이제 여성들의 '껌'으로 까지 기능한다. 조만간 tv에서 자취를 감출 강용석이 tvn에서 가쉽성 프로그램 '강용석의 고소한 19'를 진행하다, tv조선의 <강적들>이나, jtbc의 <썰전>에 출연하는 것이 이물감이 없는 이유는, 바로 연예인들의 가쉽이나, 타 프로그램의 정치가 같은 프레임의 틀 안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정치'라고 생각해 왔다. 


독일의 총리였던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 정의했다. 대표적 현대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이미지와 의미의 관계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정치와 예술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tv를 통해 보는 정치는 '혐오주의'를 낳을 만큼 협잡의 장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는 정치는 현실로 들어오면 이합집산과 이전투구의 다른 말로 구현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 침을 뱉고, 그 더러운 침을 뒤집어 쓴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무관심을 혹은 가쉽성 관심을 핑계로 더더욱 그들만의 리그에 충실한다. 

그런데 보좌관 생활 10년 국회에서 뼈가 굵을 대로 굵은 작가 정현민은 그렇게 현실에서 우리가 보는 그것이 '정치'가 아니라고, <어셈블리>의 진상필을 통해 일갈한다. 국민 진상 진상필을 통해 매번 물을 먹은 백도현(장현성 분)에 대해 드디어 청와대 칼을 빼들었다. 스스로 국민당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한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가 선택한 카드는 진상필. 왜 자신처럼 매번 청와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문제적 국회의원에게 사무총장직을 권유하냐고 진상필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 진상필의 의문에, '제갈공명'같은 최인경(송윤아 분)는 이것이 청와대에게는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히든 카드요, 재선을 기약할 수 없는 진상필에게는 정치의 중심에 설 절호의 기회라 역설한다. 일개 국회의원인 당신으로서는 해결하기 힘든 해고 노동자 문제와 같은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그리고 그런 최인경에게 진상필은 한 마디 던진다. '최보는 기술자 같아요. 정치 기술자!'



정치 공학이 아닌 진짜 정치를 말하는 <어셈블리> 
사무총장직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진 국민당 의총, 그 자리에서 백도현은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 그리고 잇달은 국민당 의원들의 성토 발언, 마지막으로 진상필에게 발언권이 주어진다. 진상필은 '제가 사무총장이 된다면'으로 시작된다. 자신이 사무총장이 된다면, 반청계와 친청계로 나뉘어 계파 싸움이나 하는 당신들에게 한 명도 공천을 주지 않겠다고 소리높여 말한다. 그의 발언에 반발하는 동료 국회의원들에게도 거침없다. 당신들, 국회 앞에서 매일 농성을 하는 해고 노동자들이 어느 회사 소속인 줄 알고나 있냐고, 정작 국민들의 대표로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이 계파 싸움에, 차기 공천에 눈이 멀어 있는 동안, 노동자들의 임금은 체불되고, 그 사주는 법의 선처를 받아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벗어나는데, 그 동안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소리 높인다. 그리고 만약에 자신에게 그런 일을 할 권한을 준다면 사무 총장을 당장이라도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 당신들이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편갈라 싸우는 '정치 공학'이라고 일갈한다. 

<어셈블리>의 시청률은 고전중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노라면 그런데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13회 진상필이 한 일은 아내가 돈을 맡긴 바벨 타워 시티 파산에 대해 아내의 돈을 받아주는 대신, 그 문제로 '특검'을 들고 나온 진상필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배달수의 아들을 통해 진상필의 목을 조르려던 백도현 측의 술수가 결국 진상필의 진심에 마음을 돌린 김규환에 의해 무위로 돌아가는 것을 다룬다. 그리고 14회, 백도현의 사무총장 직을 넘겨받은 진상필로  결국 통쾌한 '정치 공학'에 대한 질타로 이어진다. 이렇게 진상필에 의한 '진상'이 아닌 진짜 정치'를 다루는데, 왜 시청률이 낮을 수 밖에 없냐고? 

이쯤에서 <정도전>의 화제성을 되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핵심에는 바로 지금 <어셈블리>에서 노회한 반청계 대표로 등장한 이인임이란 인물이 있었다. 즉, 고려말 노회한 정치가 이인임에 의해 벌어지는 '정치 공학', 마치 삼국지의 각 인물들이 일진일퇴를 하듯, 게임처럼 자신들의 정치 생명과 목숨을 두고 벌이는 롤러코스터같은 그 '정치 드라마'에 사람들은 환호를 보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등장한 결국 이기는 자도 지는 자도 없는 정치허무주의까지. 사람들이 생각한 '민낯'의 정치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물론 <어셈블리>에도 반청계와 친청계를 중심으로 한, 그리고 정치꾼으로 거듭나고 있는 백도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정치 공학의 묘수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진상필에 의해 설파되는 진짜 정치에 대한 '계몽'이 <어셈블리>에는 결정적이다. 바로 이 '계몽적'이고 '교훈적'인 참 정치에 대한 갈파가, 역설적으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어셈블리>에 재미를 덜 느끼게 한다. 진상필의 정치는 분명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그리고 추구해야 할 진짜 정치이지만, 그래서 어쩐지 더 이상적이고, 불가능해 보인다. 현대판 각시탈같은 <용팔이>의 김태현보다도 더. 아내가 피땀흘려 벌어들인 돈 보다도, 국민을 생각해야 하는 국회의원, 입신영달보다도, 재선보다도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을 더 고려해야 하는 진짜 정치, 그게 너무 다가오지 않는 웃픈 현실인 것이다. 김규환이 말하듯, 최인경이 손가락을 치켜세우듯, 진상필은 멋지고, 최고인데, 그가 멋지고, 최고일 수록, 어쩐지 점점 현실에서 멀어져만 가는 듯하니, 역시 현실의 진짜 정치는 '상그릴라'처럼만 느껴지나 보다. 


by meditator 2015. 8. 28. 1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