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일 50회로 마무리된 kbs1의 대하사극 <징비록>, 최고 시청률 13.8%(22회), 마지막 회 시청률 12.3%(닐슨 코리아 기준)로 그 전작 <정도전>에 비하여 아쉬운 시청률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저 시청률, 화제성만으로 <징비록>을 이전의 <정도전>의 벽을 넘지 못했다라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 작품이 갑갑한 오늘의 현실에 남긴 시사점은 만만치 않다. 




시청률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실에의 경계
이제 와 하는 말같지만 애초에 <징비록>은 시청률이 높이 나올만한 드라마라 보기는 어려웠다. 이미 대하 사극의 소재로 울궈먹을 대로 울궈 먹은 임진왜란이라는 소재, 제 아무리 <명량>이 인기를 얻었다 해도, 아니, 오히려 영화 <명량>이 인기를 얻어서 더더욱 어쩌면 식상해진 역사적 소재를 대하사극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징비록>은 애초에 그런 태생적 핸디캡을 가진 작품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징비록>이 붐을 일으킬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드라마가 '징비록'이기 때문이다. '징비록'은 '지난 일을 경계하여 후환을 삼간다'는 시경의 문구에서 따온 제목이다. 임진왜란 당시 정치 현장에서 난을 겪은 서해 류성룡이 드라마에서 나왔듯이 정권으로부터 소외된 이후 칩거하며 적어간 전란의 속살이다.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전란의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풍부한 사료와 경험을 밑바탕으로 써내려간 징비록은, 말 그대로 '객관적' 서술에 방점이 찍힌다. 심지어 임진왜란에 대한 저술 중, <선조 실록> 등 실록이나, 중국과 일본의 그 어떤 사료보다도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저술로 인정받고 있는 저술이다. 

가장 정권의 중심에서 임진왜란을 겪었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그 역사의 소용돌이를 집필했다는 의미는, 결국, 징비록의 첫 글자 혼날 징처럼 자신이 몸담은 역사를 혼내고 경계하는 내용일 수 밖에 없다. 드라마의 마지막 회, 선조와 독대한 류성룡은 선조에게 일갈한다. 전쟁이 끝난 이 마당에도 선조는 한 치의 반성도 없이 구구절절 자기 변명만 늘어놓는다고.  바로 이렇게 자신의 주군과 독대한, 어쩌면 그에게 주어진 단 한번의 정치적 구원의 기회를 꾸짖음과 반성에의 독촉으로 마무리한 류성룡의 모습은, 바로 그대로 '징비록'의 입장이요, 드라마 <징비록>의 관점이다. 

드라마 <징비록>이 바라본 임진왜란은 어떤 것이었을까? 임금을 비롯한 정치 관료들은 자기 안위만 생각하고, 그런 지배층에 의해 정치는 이리저리 당파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스스로 국난의 위기로 빠져들어 간다. 심지어 전쟁의 와중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임금은 적이 눈앞에 오자 싸우는 대신 도망치기에 바빴고, 양반들은 적에게 나라를 넘겨줄 지언정 한 명의 군사라도 더 도모하기 위해 공을 세운 노비를 '면천'시켜 주겠다는 자구책에 몸을 던져 반대를 한다. 잠시라도 전쟁이 소강 상태에 빠지기라도 하면, 그 사이에 정권은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다시 움직이고, 임금마저 뜻을 세운 의병들을 불의의 반란을 경계하며 제거하는 등 협잡을 일삼는다. 

이렇게 정권이 계파와 임금의 이해에 따라 춤을 추는데도 7년의 전란을 버텨낸 힘은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지키고자 일어난 강직한 세력과 우국충절의병, 그리고 자신의 땅을 지키고자 떨쳐 일어난 양민과 노비들이다. 지배 집단이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적들과 소통하고자 할 때, 그들은 자신의 땅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심지어 정권에 반하며 국토를 지켜냈다. 하지만, 마지막 회, 도망치는 적군을 한 명이라도 살아보내지 않겠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며 마지막 해전을 벌이던 이순신이 그곳에서 전사하고, 정권 내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기는 전쟁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류성룡마저 전쟁 후 '토사구팽'당하는 것으로, 그 '결사항전'의 의는 꺽이는 것으로 드라마 <징비록>은 끝난다. 

그렇게 드라마 <징비록>은 철저한 징계의 역사를 다룬다. 전쟁의 와중에서 잠깐의 승리보다, 전쟁의 와중에서 조차, 아니 전쟁을 코 앞에 두고, 적군을 코 앞에 두고서도 자기 계파의 이해, 자신의 이해에 따라 춤을 추는 정부 각료, 임금 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 냄으로써 오늘을 경계한다. 더구나 그것들이 현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더더욱 현실감있게, 과거를 오늘에 되살려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최근 미중일 세 나라의 이합집산 속에 외교적 입지가 애매해지는 우리의 처지와 공교롭게도 비교되는 임진왜란 당시 왜와 명 사이에서 무능력한, 하지만 철저히 동아시아 세력 판도에 따라 그 운명이 갈려지는 한반도의 처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냄으로써, 또 다른 현실의 반추를 삼았다. 



드라마 징비록 속에서는 강건한 류성룡이나, 우직한 이순신보다 노회한 선조가 돋보였던 이유이다. 또한 정직하고 강직한 의병장과 같은 인물들은 결국 역사와 정권의 희생양으로 마무리되어 비애를 남긴다. 그렇게 드라마는 쉽게 우리에게 숭앙하고픈 충신 대신,현실에서 쉽게 찾아 볼  역사 속 비겁자를 내세워 현실을 경계한다. 

그렇게 승리과 영광의 역사 대신, 실패와 치욕과, 비굴의 역사, 그럼에도 그 속에서도 잡초처럼 피어나는 끈질긴 힘을 그려내려고 했던 드라마 <징비록>은 애초에 다수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기에는 고집스런 작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정권의 무능, 지배층의 자기 이익만이 우선되는 현 시점에서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현실에의 경계가 두드러졌던 '수작'이라고 보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징비록>의 의의가 짚어져야만 한다. 그저 얄미운 인간 선조가 아니라, 무능한 당파의 권신들이 아니라, 무기력한 조선의 외교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현실의 모습이 다름아님을 징비록은 내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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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8.03 12:37

아버지 선조와 그의 아들인 광해 사이의 불협화음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내용이 아니다. 2015년 2월 종영한 kbs2의수목 드라마 <왕의 얼굴>이 갈등의 주요 축을 아들을 믿지 못하는 선조와, 아버지의 의심으로 인해 고통받는 광해로 삼았고, 새로 시작한 mbc월화 드라마 역시 문제적 인간 광해를 설명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아들에게 양위을 하지 않으려고 갖은 수을 다쓰는 노회한 선조를 등장시켰다. 이렇게 자신의 아들임에도 그 아들을 미덥지 않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정적으로 여기며, 그에게 양위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 선조, 그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이유는, 왕답지 않은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 비해 왕다웠던 아들이라는 '시기'와 '질투'의 인간적 감정을 등장시켰다. 거기에 덧붙여 평생 적통이 아니라는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그래서 역시나 적통이 아닌 광해가 싫었던 '옹졸하고 편협한' 인간 선조를 부각시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도 아닌 아들을 '정적'으로 삼은 아버지 '선조'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으로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이 빈 행간을,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선조'의 캐릭터를 부각시켜 설명한다. 그리고 26회까지 진행된 <징비록>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던 선조와 아들 광해의 갈등, 그 정치적 순간을 포착한다. 그들이 아버지와 아들이었음에도 서로를 정적으로 여길 수 밖에 없었던 그 역사적 이유를 설득한다. 그리고 거기엔 우리나라의 국토를 침탈한 왜의 도발, '임진왜란'이 있다. 


왜란으로 비롯된 아버지와 아들의 파열
1592년 조선의 국토를 침탈한 왜는 거침없는 행군을 거듭한다. 이미 그 이전부터 왜의 침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있었지만, 오랫동안 전쟁을 겪지 않은 '문(文)'의 국가 조선은 외적의 침입에 무력했다. 하루가 다르게 수도인 한양을 향해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오는 왜에 대항하여, 죽을 각오로 싸우자는 유성룡을 비롯한 일부 대신들의 뜻과 달리 무기력한 임금 자신의 안위에 급급한다. 결국 그가 선택한 길을 야반도주하듯 수도 한양을 비우고 도망가는 것. 어가를 향한 백성들의 모욕을 견디며, 그는 북으로 북으로 길을 정하고, 여차하면 중국으로 건너 갈 양으로, 의주에 다다른다. 그렇게, 무주공산이 된 한양, 그리고 결국은 조선, 그 권력의 빈틈을 채운 건, 총알받이처럼 내세운 둘째 왕자로 세자가 된 광해였다.

또 하나의 조정, '분조'를 이끌게 된 광해는 정탁의 간언을 받아들여, 아직 왜적의 손이 닿지 않은 강원도 이천으로 들어가 '아직 조정이 살아있으니, 그대들은 충심을 다해 싸워라, 세자가 앞에 설 것이다'라는 격문을 통해 흩어진 관군과, 지방에서 봉기한 의병들을 규합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버지 선조에게 아들의 전술적 선택이, 항명으로만 비출 뿐이다. 자신은 무기력하게 도망을 가느라 바쁜데, 앞서 싸우겠다는 아들 광해의 행동이, 자신의 안위를 거스르다 못해 위협하는 행동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결국 선조가 내린 결정은, 광해를 겨눈 분조의 모든 신하들을 '파직'하겠다는 결정. 이에 광해는 억울하지만 석고대죄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달랜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일편단심 왕의 편에 섰던 윤두수와 정철 등의 세력까지, 아버지 선조 대신 아들 광해의 분조를 조정으로 심리적 승인을 하는 과정을 격게 된다. 이제 아버지 선조는 사사건건 '광해'의 편을 드는 신하들로 인해 아들에 대한 적개심을 쌓게된다. 오로지 그의 귀를 현혹시키는 건, 비빈의 달콤한 이간질뿐. 



거기에 불을 부은 것은 명이란 존재다. 명나라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을 향하던 조승훈이 왜에 전멸을 당하고, 명은 심유경이라는 후에 '국제 사기꾼'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 인물을 통해 왜와 협상을 하고자 한다. 심유경의 말처럼 왜와 싸워서 이겨 봐야, 바다 건너 왜란 나라를 명의 국토로 만들 수도 없고, 정작 전쟁은 조선의 국토에서 벌어졌는데, 명의 입장에서 굳이 나서서 명의 군사들을 잃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명의 처지 역시 많은 군사들을 동원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명과 왜의 협상 앞에 아버지와 아들의 다른 선택
하지만 단지 세 치 혀만을 가진 심유경에 선조는 납작 엎드린다. 26회에서 보여지듯이, 그가 명의 사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신하들을 물린 채 심유경과 독대를 하고, 그가 할 협상의 내용을 알아보지도 않은 채 전권을 위임한 것이다. 신하들조차도 이젠 자기 보다는 광해의 분조에 더 신뢰를 보내는 상황에서, 무력한 왕 선조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대국 명뿐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선조가 정체도 모를 심유경에게 전권을 위임한 시기는, 이제 조선이 일방적인 왜의 공격을 벗어나 반격을 도모할 여지가 마련된 시기이다. 이순신의 수군이 바다에서 적을 무찌르고, 같은 날 곽재우와 고경명의 부대가 각각 이치고개와 금산에게 왜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힘으로써, 전라도를 지키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곡창 지대 전라도를 수성함은 물론, 적의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에 적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반격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거기에 왜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비격진천뢰'가 완성되어갈 시점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왜의 입장에서는 심유경의 협상 카드를 외면할 이유가 없었다. 한양까지 치고 올라오기까지 왜 역시 병력의 타격이 극심했고, 전라도에서의 패배로 전열은 물로, 무엇보다 부족한 보급을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이 문제가 되는 선조에게 이런 정황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는 그저 조선을 침탈한 왜가 아니라, 그저 이 상황을 얼른 종식시키고, 예전과 같은 왕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나라를 명의 정체모를 사신의 손에 맡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와 달리, 아버지가 명 사신의 말을 듣고 50일간 휴전을 선택했을 때, 아들 광해는 왜적이 손을 놓고 있는 이 때야 말로 반격의 기화라 생각한다. '비격진천뢰'을 앞세워 경주성을 되찾았고, 왜장 우키타 히데이에 일행을 급습했다. 

안그래도 신하들의 충심을 행동을 통해 얻어가고 있는 광해, 그런 광해의 자신의 뜻과 다른 결정에 대해 오직 '권좌'만이 중요한 아버지 선조는 아들을 '정적'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거기엔, 나라를 강국 명의 처분에 맡길 지언정 자신의 권력만 유지되면 되는 왕 선조와, 그런 아버지와 달리 조선을 침탈한 왜적을 물리치고자 했던 전란을 통해 진정한 세자로 거듭한 광해의 서로 다른 선택이 있다. 그리고 그런 선조의 선택은 그저 '찌질이'라 치부할 수 없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자주 만났던 리더의 기시감이 들게 한다.  자신의 안위와, 백성의 안위,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리더, 그들의 다른 길이 '정적'으로서의 선조와, 비극의 주인공 광해를 낳게 된 것이다. 그리고 광해의 비극은 결국 세자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자그만치 7년이라는 길고 긴 전쟁과 많은 인명 손실, 국토의 피폐함을 낳은 역사적 통한을 결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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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5.11 12:16

4월13일 첫 선을 보인 mbc 월화 드라마 <화정>, 50부작의 포문을 연 것은 다름아닌 단 한 회만에 생을 마감한 '선조'(박영규 분)였다. 자신의 아들 중 하나였지만 광해군(차승원 분)이 누군인지 알아보지도 못한 아비, 사랑하는 애첩의 아들 대신 죽어도 될 만만한 존재로 세자를 책봉한 얍삽한 아비,  야반도주를 하다시피 궁을 버리고 떠나는 자신을 대신해 백성을 독려하고, 왜군에 맞서싸우던 자신보다 더 '임금님' 같던 세자를 정적으로 여기던 아비, 그는 명의 고명을 핑계로 16년이나 된 나이가 지긋한 세자 대신, 왕후의 몸에서 난 어린 대군을 세자로 다시 옹립하려 한다. 


이렇게 <화정>은 문제적 인물 광해군을 설명하기위해, 그 보다 더 문제적 인물이었던 아비 선조를 등장시킴으로써, 광해군이 가진 존재론적 고뇌를 단번에 설명해 낸다. 아직도 역사상 정당한 임금으로 대우받지 못한 채 군으로 남겨진 문제적 군주 광해를 설명하기 위해 당시의 정치적 세력의 대력부터, 광해군의 중도적 외교 노선 등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이 첫 회의 서막만으로도, 선조의 편을 들어 어린 세자를 옹립하려 했던 중신들과, 못이기는척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싶어하는 인목대비, 그리고 그 밖의 왕가의 사람들 사이에서, '아비와는 다른 왕'이 되고자 했으나 결국 그럴 수 없었던 광해의 존재론적 한계를 설득해 낸다. 



'사극의 트렌드로서의 '선조'
역사에도 유행이 있던가? 한때는 사극만 했다하면 '정조'가 등장했었다. <화정> 작가인 김이영 작가의 2007년 작품도 정조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산>이었듯이, 여러 사극들이 개혁 군주로서의 정조의 열망을 그려내기에 앞다투었다. 하지만, 이제 개혁의 기치를 올린 정조 대신, 백성을 두고 줄행랑을 친 선조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2015년 종영한 <왕의 얼굴>에서 부터, kbs1tv의 대하사극 <징비록>, 그리고 이제 새로이 시작한 <화정>까지, 실패한 지도자 선조의 모습을 다각도로 그려낸다. 

<화정>이 자신의 아들을 정적으로 여기며 그를 몰아내고자 하자 목숨을 잃은 노회한 아비의 모습으로 선조를 그렸다면, <왕의 얼굴>은 광해를 백성을 생각하는 개혁 군주로 그려내기 위해, 아비 선조를 정통성을 가지지 못한 자신의 컴플렉스에 시달리면서도, 끊임없이 아들을 의심하고 조련하는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가진 인물로 그려낸다. 자신의 부족한 정당성을 '관상'이란 대상에 실어 부족한 자신의 얼굴을 보완해 주는 인물을 찾는데 집착하는 인물, 그래서 자신보다 더 왕의 얼굴을 가진 광해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견제하는 인물로 그려낸다. 

<징비록>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징비록'의 저자 유성룡이지만, 실제 드라마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결정적 인물은 '문제적 인간' 선조이다. 김태우가 분한 선조는, 임금이 될 깜냥이 안되는 인물이, 지도자의 능력을 갖추자 못한 사람이 리더가 됨으로써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그려내는 듯하다. 

왜 선조일까?
백성들을 버리고 평양으로가지 도망간 선조, 그를 원망하는 듯한 일부 중신들의 시선에 선조는 반문한다. 그럼 내가 죽었어야 했냐고. 그리고 그런 시선을 의식한 듯 평양을 배수의 진으로 삼아 왜적들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고자 한다. 군사를 모으고, 자신이 외면한 백성들의 환심을 사고자 손수 백성들에게 장국을 나누어 주는 등 솔선수범 리더의 모습을 보이고자 한다. 하지만, 군령이 혼란을 겪는 시기, 자신이 임명한 군 지도자를 따르지 않는다 하여 그의 통솔을 벗어난 소속 군관의 목을 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그런 선조의 명령이 잘못된 명령이었음을 알게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선조가 명령을 내린 얼마 후, 적들을 보고 도망간 지도자를 벗어나 직접 적과 맞서 싸워 임란 최초의 전승을 거둔 그가, 적들의 수급을 자랑스레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선조는 절규하며 명령을 다시 내리지만 이미 그 시각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 <징비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까지, 그리고, 전란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잘못된 리더쉽을 끊임없이 보이고 있는 선조를 그려낸다. 김태우의 열연으로 형상화되는 선조는, 자기 중심적인 인간, 그리고 리더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 한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를 낱낱이 고발한다. 



그저 드라마일 뿐이라고 할 지 몰라도, 드라마의 트렌드는 귀신같이 사람들의 정서를 복사한다. 정조를 앞다투어 주인공으로 삼던 시기에는, 그래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나라를 '구제해줄' 누군가가 등장할 거란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이 기대했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새삼, 재삼 등장하는 선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을 그려내는 방식은 정신적으로 불안한, 혹은 인간적으로 미흡한 등 다양한 접근이지만, 결국 그것이 어떤 것이든, 한 나라의 리더로서의 그릇을 갖추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귀착한다. 

한 나라의 왕이지만, 백성을 이끌고, 중신들을 다스려야 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인물, 그래서, 자기 마음가는대로, 결국 자기 자신과, 자기가 끌리는 핏줄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모험을 벌이는 인물, 아들 광해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제대로 된 신하들을 중용하지 못하듯이, 제대로된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없고, 애초에 그럴 능력조차 가지지 못한 리더의 자격을 가지지 못한 그래서 실패할 수 없는 리더의 존재를 드라마는 끊임없이 복기한다. <왕의 얼굴>은 개혁 군주가 될 광해를 그리고자 했으나, 실패한 리더 선조의 그림자가 짙었고, <징비록>은 아예 대놓고 임진왜란에 피할 수 없는 책임을 가져야 하는 존재로 선조라는 부실한 리더를 그리는데 골몰한다. 그리고 이제 다시 <화정> 역시 혼돈스런 광해를 그리기 위해 그 아비 선조의 부덕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결국 엎어치던 메치던, 리더가 될 깜냥이 안되는 인물이 리더가 된다면, 그리고 그의 좁은 소견과 안목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면, 그의 대는 물론, 그의 다음 대까지 역사가 어떻게 절단나게 되는가를, 선조는 계속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런 선조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자기 이익와 자기 주변의 이익, 그리고 자기 이해 관계에 맞춘 리더쉽이 한 나라를 어떤 지경으로 끌고가는지는 우리가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을 통해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선조의 미흡한 리더쉽이 낯설지 않은 세상, 그런 세상에서, 리더를 통한 희망 대신, 실패한 리더쉽을 복기하고 있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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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4.15 11:48

동인과 서인, 그리고 다시 노론과 소론 등 조선의 파당사는, 그것이 국멸의 원인이라 칭해진 것처럼 우리가 역사를 통해 심지어 도표로 세세히 그려지며 공부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탕수육 소스를 부어먹는 방식, 소위 '부먹'이나 '찍먹'이냐를 놓고 조선의 파당을 설명하는 우스개가 회자할 정도로 조선의 정치적 파당사는 명확하다. 


하지만, 정작 '왕조 국가'인 조선에서, 그런 파당을 다루는 왕의 자세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런 왕의 자세에 따라 정국이 어떻게 격동에 휘말려 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늘 애매모호하거나, 그저 '무능력'이란 단어로 얼버무리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파당'이 필요 조건이라면, 결국 그 '파당'을 다루는 왕은 그로 인한 제 역사적 결과물의 '충분 조건'이다. 더구나, 일찌기 삼봉 정도전에 의해 유학자들의 이상적 집단 통치 체제로 이상화된 제도 조선이란 나라에서, 군주인 왕과, 신하들인 유학자들의 갈등과 이합집산이야말로 조선의 정치적 격변을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 중 하나였다. 2월 14일 새로 시작된 <징비록>은 바로 이런 조선의 격변,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임진왜란이란 결과물을 선조와 동인, 그리고 서인의 정치적 갈등의 결과물로 그려가고자 한다. 




정치적 정당성이 결여된 군주, 선조

얼마전 종용한 kbs2의 <왕의 얼굴> 역시 <징비록>과 동일한 선조라는 문제적 군주를 다루었다. <왕의 얼굴>이던, 그리고 새로이 시작된 <징비록>이던 모두 중종의 일곱번째 아들 덕흥 대원군의 세째 아들이었던 적통이 아닌 방계 혈통 군주이란 컴플렉스를 다룬다. 어미가 노예라면 실제 아비가 양반이라 해도 양반이 될 수 없는 적서 차별이 엄격했던 조선이란 국가에서, 군주가 적통이 아니라는 의미는 상상 이상의 부담을 지게 한다. 그래서, <왕의 얼굴>에서 선조(김태우 분)는 그것을 '관상', 즉 왕다운 얼굴에 연연하는 모습으로 그려냈었다. 그에 반해, <징비록>은 1회 명으로 부터 '대명회전'을 받아들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기뻐하는 선조의 모습으로 형상화시킨다. 즉, 적통이었던 선대의 왕들도 해내지 못했던 명에 의한 조선 왕조 역사의 훼손을 적통이 아닌 선조가 해냈었다는, 그로 인해 자신의 정통성을 스스로 획득해 내었다는 자부심을 그려내는데 집중을 한다. 그럼으로써 역으로 선조란 인물이 얼마나 적통이 아닌 컴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컴플렉스로 인해 대명회전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준 명에 대해 얼마나 저자세일 수 있는가를 단번에 설득해 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하가 명에 대해 사은사를 거하게 보내자는 주장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자기 중심적인 선조의 면면을 그려낸다. 또한 그런 한편의 주장에 대해, 강직하게 그것은 명이 잘못한 걸 바로 잡으니 사은사 따위는 보낼 필요가 없다는 병조판서 류성룡(김상중 분)의 원칙적 입장과, 그런 모든 것을 어우르면서 명에 대해서는 적당한 사례와, 조선의 명분을 세우는 편의적 입장을 취하는 영의정 이산해(이재용 분)를 드러냄으로써, 전체적으로 실리적 정치 노선을 걷는 '동인'의 성격을 단번에 드러낸다.

그러기에 이런 동인을 정치적 '적'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골몰하는 정권에서 소외된 윤두수(임동진 분), 정철(선동혁 분)이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일 것이 지를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게 만든다.
굳이 구구절절 동인과 서인이 가져온 파당의 역사를 설명하지 않아도, 단 한 건의 정치적 사안을 둘러싼 왕과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신하들의 대립으로, 임진왜란 전 조선의 정치적 정세를 그려낸다. 

그리고 거기에 불을 지핀 것은, 끊임없이 조선에게 국교를 청한 일본이다. 명에 의해 어렵사리 얻은 정통성에 연연하는 왕, 하지만 현실 정치를 담당해야 하기에 실리적 입장을 취하게 되는 동인, 당연히 자신들을 거둘 수 있는 사람은 왕밖에 없기에 왕의 의중에 의탁해야 하기에 무조건 왕의 의견을 따르는 각 정치 세력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는 드라마가 설정한 캐릭터로 인해 손에 잡히듯 명확하게 그려진다. 



16세기 조선에서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16세기 조선의 정치적 상황임에도 2015년 대한민국의 상황이 느껴지는 기시감이다. 
일본의 국교 제의에 왕인 선조는 분노한다. 심지어 국교가 아니라, 그저 그들의 사정을 알아보자는 제의 보차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 명으로 부터 얻은 정당성에 연연하는 그에게, 어렵사리 얻은 결과물을 폄훼하는 그 어떤 조짐조차도 못마땅하다. 그의 말대로 '백성'을 생각하는 왕이 아니라, 그 자신의 정치적 처지에 연연하는 소인배의 모습 그 자체다. 그런 왕에 대해 당시 실질적으로 정치를 담당했던 동인은, 어떻게든 잠재적 위협 요소인 왜와 통교를 통해 그 사정을 알아보고자 하고, 이런 동인에 반대하는 서인은, 왜와의 통교는 말도 안된다며 왕을 돕는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뜻을 달한 정체 세력에 따라, 백성들조차 시시때때로 해안 주변을 침탈하는 왜에 대한 입장을 놓고 양분한다.

어디서 많이 보던 정황이 아닌가? 오랜 국교 단절로 인해 도대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왜, 하지만 수시로 벌어지는 해안 지방의 침탈과 대마도 영주의 언급으로 알 수 있는 그 폭력성, 전쟁에의 조짐. 그렇게 조선을 시시때때로 괴롭히는 정치적 정당성조차 불분명한 왜에 대해 조선의 정치 세력은 의견이 갈린다. 폭력적이고 그 실체를 잘 모르니 그들을 잘 알고 잘 다루기 위해서라도 친해두어야 한다는 입장과, 그렇게 폭력적이고 심지어 조선 백성들을 종종 괴롭히는 세력과는 상종조차도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 극명하게 정치적 포지션에 따라 갈리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풍신수길이란 드라마가 그리듯 폭력적인 하지만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왜의 정권은, 2015년 대한민국의 잠재적 위협인 '북한'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그런 북한에 대해 '햇볕 정책'을 펼치며 그들을 양지로 끌어들이겠다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비롯한 민주당 세력과, 우리를 괴롭히는 북한과는 상종도 못한다며 실질적으로 '단교'에 가까운 조치를 취한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적 정치 집단의 행보가 묘하게도 겹친다. 심지어 대국 명의 심기를 거스릴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조차 익숙하다. 드라마는 16세기 임진왜란 전의 풍전등화와도 같은 조선의 정국을 비추는데,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거기서 자꾸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미 16세기 양분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조선이 선택한 정치적 판단의 결과가 어떤 결과물을 가져왔는지를 알고 있는 21세기의 시청자들은 16세기의 정쟁을 바라보는 입맛이 점점 더 써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역사 드라마의 매력이다. 드라마의 초반 그려내듯이, 피로써 되새김질을 한 <징비록> 임진왜란 7년의 역사는, 그저 16세기의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열강에 의해 둘러싸이고, 늘 함께 하면서도 그 정체를 알길 없는 북한과의 대치가 항시적으로 위협이 되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복기하게 만든다. <징비록>은 그런 역사 드라마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며 서막을 열어간다. 답답하게 전개되어지는 조선의 정황을 보며, 21세기의 교훈을 얻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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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5.02.1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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