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이하의 지능을 가졌거나 감정 폭이 극히 제한적인 사람이 특정 분야에서 경이적인 지적 재능을 보이는 희귀한 증상

 kbs2의 월화 드라마 <굿닥터>의 남자 주인공, 성원 대학 병원의 레지던트로 1년간 임시 고용된 박시온(주원 분)은 서번트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임상 병동 순시 과정에서 김도한 교수의 지시 사항을 고스란히 머리에 입력할 정도로 복사기와 같은 기억력을 가진 천재이지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 하는 사회성 발달에 있어 자폐적 장애를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환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드라마 <굿닥터>는 그런 비정상적인 주인공 박시온을 내세워, '좋은 의사'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KBS월화드라마 굿닥터 - 소아외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력과 사랑. 다시 시작되는 KBS 휴먼 메디컬 드라마!


역설적이다. 

그의 임용 자체가, 그가 역에서 응급 상황 하에서 아이를 살린 해프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듯이, 환자와의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의사라는 직업에, 그것이 불가능한 서번트 증후군 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자체가 도발적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미 2회 만에, 죽은 형과 토끼가 어른이 되게 해주고 싶었다는 레지던트라는 전문 직업임에도 여전히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지닌 박시온을 통해 과연 의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최고의 능력을 자랑하는 김도한(주상욱 분) 교수이지만, 그보다 직급이 높은 과장 고충만(조희봉 분)의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 빠졌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병원의 시스템, 집도의의 말 한 마디에 수술실 밖으로 내팽개쳐지거나, 말 한 마디 못하고 주먹을 맞아야 하는 상명하복의 군대식 서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김도한에게 맞은 박시온을 토닥이며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너의 행동이 어쩌면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고 달래주는 차윤서(문채원 분)의 영혼없는 설득(드라마 속 윤서는 또 하나의 박시온처럼 행동한다)처럼, 이른바 보다 편의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시스템이, 그 운용 여부에 따라 굳어져 버린 관료 체계화 될 수도 있다는, 그리고 이미 그렇게 되고 있지 않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분명, 위태로운  환자의 상태 하나만을 보고, 담당의나, 수술방 예약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다짜고짜 환자를 밀고 들어가는 행위는 혀를 차게 만들 정도로 대책이 없다. 하지만 그의 극단적인 행동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일말의 공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한 두달은 여사로 기다리게 만드는 현재의 대학 병원의 대기 순번 체제에, 겨우 기다리다 의사라고 만나면, 환자와 눈을 마주치기는 커녕, 앞에 있는 차트나 모니터만 들여다 보다, 또 몇 가지의 검사나 하라고 하는 비인격적인 처우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상처받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의료 체계가 가지는 비인간적인 합리성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들이, 말도 안되는 서번트 증후군의 의사의 돌발적인 행위에 공감하게 만드는 전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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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학 드라마에서 병원내의 비인간적인 관료적 의료 체계는 이미 '클리셰((문학·예술 평범한 수법)'처럼 등장하고 있다. 2012년의 화제작이었던 <골든 타임>에서 헌신적인 의사 최인혁을 가로막은 것도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병원의 냉혹한 시스템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브레인>의  의사 이강훈은 그 자신이 그 체계의 수호자에서 희생자로, 그리고 다시 저항자로 거듭나는 히어로로 그려졌었다. 이제, <굿닥터>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어쩌면 김도한 교수의 정의가 가장 냉철하게 정확한, 오로지 인간을 살리겠다는 순수 의지만 가진 서번트 증후군의 박시온을 통해, 지금의 의료 체계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문제 제기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충격적 요법을 통한 문제제기 방식은, 2013년에 들어서 화제작으로 관심을 끈 작품들의 공통적인 경향이기도 하다. 

직장 내 갑을 관계를 사회적 문제로 까지 환기시킨 <직장의 신>의 주인공 미스 김은 그 어떤 정규직도 넘보기 힘든 많은 자격증과 자격증을 뛰어넘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3개월 임시직을 고수한다. 그럼으로써, 이 사회에 뿌리박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갑을 관계를 조롱하고 비판한다. 

최근 종영한 <여왕의 교실>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선생님이, 가장 포악한 독재자가 되어 아이들을 조련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아이들로 하여금 똘똘 뭉쳐 선생님에게 대적하는 힘을 가지려고 하는 자생력을 키우게 만드는 것이다. 남들을 밟고 혹은 남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이기적인 인간형을 양산하는 경쟁 제일 주의의 신자유주의 교육 체계를 비판하기 위해, 가장 선생님답지 않은 선생님을 등장시킨 것이다. 

직장, 학교에 이어, 이번엔 병원이다. 

당신을 담당하는 의사가 서번트 증후군이라면 어떨까요? 라고 질문을 던지면 아마도 백이면 백 다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누구나 의사로서는 무리라고 생각하는 환자를 내세워 의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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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학교, 병원,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그리고 이젠 가장 시스템화되어 기계처럼 잘 돌아가고 있는 제도들이다. 하지만 가장 원활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혹은 합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체계 속에서 '사람'의 존재가 무시되어져 가는 제도들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지금의 우리 사회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존재들이며, 가까이하기엔 너무 거대한 존재들이다.

거기에 드라마들이 질문을 던진다. 마치 골리앗에게 자그마한 바윗돌을 던지며 덤비는 다윗처럼, 

거인을 만나러 가는 다윗을 보고 아마도 동네 사람들은 다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듯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변할 수 없다고, 한 개인이 어찌 해보기엔 무력하다고 느끼는 존재들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선, <여왕의 교실>의 마여진 선생이나, <직장의 신>의 미스김, 그리고 <굿닥터>의 박시온처럼 역설적 인간형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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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08.07 10:00

<직장의 신>이 종영되었다.

마지막회는 소위 말하는 막판 반전없이 예상한대로 흘러갔다. 미스 김은 3개월의 시한이 끝나자 과감히 와이장을 떠나고, 떠나는 그녀를 모든 직원은 아쉬워하고, 물러터져서 사회 생활 어찌할까 싶은 무정한 대리는 주변 사람들을 품은 그 성격 덕에 승승장구 했다. 그리고 여전히 창고 관리직으로 남은 장규직에게 미스 김은 다시 돌아가는 걸로 여운을 남기는 것까지. 굳이 이변이라면 그렇게도 와이장의 한 사람이 되기를 갈망했던 정주리가 스스로 재계약을 거부한 것? 하지만 그것조차도 너무도 간절했기에 오히려 떠나려는 복선이 아닐까 의심을 충분히 둘 수 있는 정도였었다.

 

474,510

(직장의 신 종영 메시지)

 

반전도 없고, 장규직을 미스 김이 구하는 해프닝 외에는 딱히 극적인 결말도 없었음에도 <직장의 신> 마지막은 가슴을 물렁물렁하게 만든다. 장규직의 어머니가 미스 김이 그토록 못잊었던 계약직 선배였다는 설정은 지극히 도식적이었지만, 그 어머니를 불길 속에서 구해내지 못해, 그 어머니 혼자 놔두고 살아남아 오랜 시간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미스 김에게 고해 성사를 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번복할순 없지만, 얼마나마 갚았다는 마을을 들게 한 창고 화재씬은 어설펐지만 따스했다. 더구나, 장규직의 그 마지막 한마디, '당신 잘못이 아니야'는 뭉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전구 운운'하는 정주리의 나레이션은 반갑기 까지 했다. 정주리는 말한다. 그저 '수많은 전구 중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전구가 없으면 불을 밝히지 못한다'고. 그리고 미스 김은 정주리에게 말했다. 정규직이냐 계약직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너 자신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마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팀장이 된 무정한 대리는 예의 그 모습을 하나도 변화시키지 않은 채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한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우리 사회 내의 뿌리깊은 사회적 갑을 관계를 직접적으로 들고 나온 <직장의 신> 결말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체계가 달라졌다는 말은 없고, 그저 각자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빛나는 전구가 되도록 노력하고 산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그 어느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그저 장규직의 희생으로 정주리의, 마케팅 지원부의, 무정한의 기획안의 성공을 거둔 것, 오래도록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미스 김이 장규직의 '너의 죄를 사하노라'와 같은 그 한 마디로 인해, 그의 사랑으로 인해 오랜 상처에서 한 걸음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것 외에는 구조와 조직의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막막한 세상에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상투적이지만 또 여전히 '사람만이 희망이다'란 끈을 붙잡고 다시 살게 만드는 용기를 북돋는 환타지랄까.

 

(학교 2013 마지막 촬영 현장)

 

그런데 <직장의 신>만이 아니었다. 2012년 12월부터 방영된 <학교 2013>의 주제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회 돌아오지 않는 학생을 기다리는 끝나지 않는 종례의 여운은 내내 <학교 2013>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걸 말하는 방식 역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여전히 입시 전쟁 속에서 질식해 가는 아이들, 그리고 그 전쟁에서 튕겨져 나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부대끼기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으려 노력했었다.

<직장의 신>의 현실성이 희화화되어 통쾌함을 주었던 것과 달리, 너무도 그 아픔이 현실적으로 다가와 보기가 저어된다 할 정도로 '모사'에 다가갔던 학교의 모습은 또 학교 시리즈의 답습이냐던 힐문을 닫게 만들었었다.

비록 <직장의 신>이나 <학교 2013>에 비하면 불발탄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013년 2월부터 방영된 <광고 천재 이태백>이 지향하는 '착한 드라마' 역시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게 아니었다.

지방대 출신으로 세계 광고계에서 인정을 받고, 센세이셔널한 공익 광고로 주목을 받은 이제석이란 실존 인물을 밑그림으로 하고 진행된 드라마가 지향한 것도 우리 사회 루저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하는 건강한 문제의식이었다. 단지, 두 드라마와 달리 <광고 천재 이태백>이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 지점, 문제의식은 건강하되, <직장의 신>과 <학교 2013>이 정확히 천착했던 우리 사회 현실에 제대로 가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광고 천재 이태백 마지막 촬영 현장)

 

혹자는 이제 텔레비젼은 디지털 시대의 아나로그처럼 다면화되고 쌍방향이 되어가는 문화 시대에 과거의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중장년층이 쥐고 있는 리모컨의 향배에 좌우되는 시청률에 목매는 공중파의 프로그램들은, 장옥적이 악녀 본색을 드러내자 올라가는 시청률처럼, 시청률 상승을 위한 막장식의 스토리를 쏟아내며 시선끌기에만 몰두하다보니, 건강한 시청층의 이탈을 막을 도리가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경향 속에서, <학교 2013>에서 <직장의 신>의 계보로 이어지는 월화 드라마의 건강한 현실주의는 신선하다. 더구나, 젊은 층 사이의 회자되는 이들 드라마의 이슈성은 시청률로만 다할 수 없는 방송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막장식 궁중비사나, 환타지가 아닌, 텔레비젼을 보고 함께 공감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드라마의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권의 전통이 내내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막장이나 뻔한 러브 스토리가 아닌 개인적 자족이든 환타지든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현실의 이야기를 나누는 드라마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흘러간 매체가 아닌 동시대를 숨쉬며 살아가는 살아있는 매체로 텔레비젼이 생명 연장을 누릴 수 있는 해법이기도 하다.

후속작으로 5년간 절치부심의 칼을 갈았다는 김지우, 박찬홍의 <상어>가 시작된다. 과연 이 드라마도 짧은 시기나마 이어져온 kbs월화 드라마의 전통을 이어갈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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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05.22 09:57

장규직(오지호 분) 팀장은 이미 계약 해지가 결정된 정주리(정유미 분)의 일을 부장님(김흥수 분)께 한번 더 간청하겠다고 하는 무정한 대리(이희준 분)을 말리며 말합니다. '안그래도 고과장님을 회사에 잔존하게 한 것 때문에 부장님이 너를 주목하고 있는데, 정주리씨 일까지 문제를 일으키면 찍힌다'고.

이렇게 무정한 대리처럼 이름과는 다르게 모든 일을 '정'에 이끌려, 무정한 대리식 표현에 따르면 살면서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을 흔히 조직 내에서는 '온정주의자'라고 하지요. 조직 내에서 무능의 상징으로 손가락질 받는 '온정주의'지만, 사회에서 받는 대접은 또 다릅니다. '情(정)'을 광고 캐치프레이드로 내건 모 제과 회사는 중국에서 까지 대박이 났다지요.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걸까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었던' '情(정)도 이젠 말해야 한다며 광고 내용을 바꾸었습니다. 무능력하다며 술 취해 자조를 내뱉던 무정한 대리의 온정주의 덕분에, 그리고 거기에 마음이 울린 미스김 덕분에 모처럼 정이 넘친 회사가 된 <직장의 신>은 시청률이 떨어졌구요. 착한 캔디에서 권력을 향한 악녀로 돌변한 장옥정의 시청률 상승과 대조적이게도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여전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은 情(정)보다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인가 봅니다.

 

(사진; e스타)

 

1위인 <구가의서>의 뒤를 바짝 쫓던 <직장의 신> 시청률이 전회(14%) 대비 0.9% 하락, 13.1%를 기록했습니다(닐슨 코리아). 반면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전회(8%) 대비 1.2% 상승했네요. 그러데 재밌는 건, 지난 주 고과장님의 명예 퇴직 사건이 벌어진 회차에서도 <직장의 신> 시청률은 떨어졌습니다.

시청자들이 생각하기에 현실적으로는 당연히 짤리는 계약직 정유미씨와, 만년 과장 고정도 씨가 동료 직원, 그 중에서도 특히 미스 김의 발군의 노력을 통해, 기사회생하는 미담이 보기 껄끄러웠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비현실적인 신파처럼 다가왔겠죠.

그렇다면 <직장의 신>을 왜 보는 걸까요? 모 정당이 '을'을 위한 정당이라고 당의 슬로건 내걸듯이 갑과 을로 고착화된 사회에서 능력자 을인 미스 김을 통해 통쾌하게 한 방을 먹이는 그 '페이소스'를 즐겼던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마치 샌드백을 대신 두들겨 주듯한 쾌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미스 김이 눈물을 흘리고, 갑과 을의 관계를 넘어 사무실의 사람들이 '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환타지를 넘어 비현실로 다가와 재미가 적어졌겠지요. 그러면서 거침없던 미스 김 대신에, 마치 점이라고 찍고 나타나듯이, '다 부숴버리겠어!'라고 덤비는 장옥정으로 리모컨이 돌아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비정규직의 연명을 부장님과의 유도 대련 한 판으로 해결한다는 설정은 어이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작 진짜로 어이없는 것은 계약직 매니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정주리씨의 계약 해지 사안이지요. 그런데 현실에서 정주리씨와 같은 일을 비일비재하게 겪는 우리의 뇌는, 어느 틈엔가, 정주리씨의 계약 해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유도 한판으로 그녀의 계약 해지가 취소된 일만을 비합리적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원작의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유도 대련 한 판으로 오고갈 만큼 보잘 것 없는 계약직의 생명줄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능하다고 자책함에도 불구하고, 미스 김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한 무정한 대리의 자세입니다. 계약직 정주리 씨가 회사를 떠난다고 할 때 무심하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모든 사무실 사람들이 아쉬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래 저러면 짤려' 라며 정주리의 퇴사를 인정하듯이, 사무실 사람들도 그저 안타까워 할 뿐이었지요. 그렇지만 무언가를 하려고 해서 정주리를 위기에 몰아넣은 무정한은 무언가를 할 수 없었음에도 동아줄을 잡듯 애타게 노력을 했습니다. 그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런 그의 노력이 누군가인, 미스 김의 마음을 돌려놓아, 정주리씨를 회사에 머물게 해주었습니다. 영웅은 꼭 영화관에서 주인공 앞에 적이 나타났을 때만 나타나주는 게 아닙니다. 갑을 컴퍼니 와이장의 영웅 미스 김을 불러온 건 무정한 대리의 '온정주의' 였습니다. 어쩌면 사회를 개혁시키는 과건은 분노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에 개봉할 영화에, 칸 영화제 심사위원 수상작인 <엔젤스 셰어The Angels' Share>가 있습니다. 여기서 엔젤스 셰어란, 위스키를 발효시킬 때 사라지는 1%로, 사회 부적응자 청년 네 명의 좌충우돌 성공 스토리를 통해 사회의 하층 1%를 위해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취지를 빗대어 설명한 것입니다. <직장의 신>의 정주리씨와 고정도 과장의 스토리의 또 다른 우리 사회의 엔젤스 셰어와 같은 이야기 아닐까요? 정에 호소한다. 온정주의다 하지 말고, 무정한 대리처럼, 우리가 조금만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본으로써 마음을 연다면 어쩌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천사의 몫이지만, 노력하면 사람이 만들 수도 있다고, 영화처럼 <직장의 신>도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파라 외면하지 말고, 한번 마음을 열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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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05.14 09:36

요즘 사회면에 날마다 이슈가 되는 기사 중에 **우유와 관련 기사가 있다. 50대 대리점 점주에게 재고를 넘기다 못해 막말까지 해대서 물의를 일으켰다는 내용이다. 점주는 이 대화 내용을 고스란히 녹음을 했고, 인터넷에 올려 대중에 회자가 되면서 **우유 불매 운동에, 본사 압수 수색까지 사건은 확장 일로에 놓여 있다. 그리고 당연히 막말을 한 30대 본사 영업 사원은 해고가 되었다.

여기서 막말을 한 30대 영업 사원은 정말 나쁜 놈이라서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대리점 점주에게 대리점 계약까지 들먹이며 막말을 해댔을까? 단지 그 영업 사원 한 사람의 해고로 불을 끄려던 사건이 본사의 불매 운동으로 퍼져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인식은 그가 그저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왜, 멀쩡한 사람이 위아래도 없는 나쁜 사람이 되었을까? 12회까지 진행된 <직장의 신>을 보고 있노라면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그 본성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가 만들어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직장의 신>이 처음 시작되었을때 이름마저 장규직인 장규직은 천하에 간 쓸개도 없는 전형적인 회사 딸랑이로 그려졌었다. 비정규직들을 '언니'라고 부르며, 니들은 3개월이면 사라지기때문에 이름을 부를 가치조차 없다고 일갈하며, 비정규직인 '미스 김'이 자기 보다 잘 난 것을 못견뎌 하며 폭주하는 마케팅 영업부 팀장 장규직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나쁜 놈'이었다. 반면, 그와 동기이지만,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가족처럼 잘 지내보자고 하고,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덮어주려고 애쓰며, 직원들 하나하나를 감싸안으려는 마케팅 영업 지원부 '무정한 팀장'은 당연히 좋은 놈이었다.

그런데, 선악의 구도가 분명해 보이던 드라마가 중반을 들어서면서 <직장의 신>은 사람들의 선입관과는 조금 다른 변주를 시작한다. 그 싸가지 장규직이 알고보니 대학 시절 아버지의 자살로 인해 집안의 몰락을 겪은 사람이요, 이제 다시는 어머니의 시레기 된장국을 먹지 못해 눈물 흘리는 사연있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 무식한 싸가지였던 장규직의 인간적 면모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심지어 이제는 미스 김을 좋아하는 무정한과 삼각 구도를 이루는 것이 전혀 빈정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직장의 신>은 대표적인 악역처럼 보였던 장규직으로 부터 시작하여, 사무실의 병풍같던 고정도 과장의 역사와, 톰과 제리같던 정규직 구영식과 비정규직 박봉희의 사랑 이야기까지 그저 조직의 일원일뿐인 그들의 사람 냄새를 풀풀 풍기기 시작했다. 다른 드라마 같으면 대사 몇 마디 하며 지나쳐갈 조역들조차 어느 틈에 <직장의 신>에선 사람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 좋아 보이던 무정한 팀장이 한때 전투 경찰로 복무하며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기억을 통해 <직장의 신>은 또 다른 화두를 던진다. 제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그가 속한 조직에 의해 얼마든지 나쁜 사라이 될 수 있다고. 사원 체육 대회에서 박봉희의 임신 사실을 알고 축하는 커녕 윗선에 알려야 한다고 방방 뛰던 장규직, 포장마차에서 왜 일부러 씨름을 져줬냐는 질문에 회사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악역이 필요하다고 애잔하게 말하는 장규직의 모습은, 이제 선의에 의해 정주리를 돋보이려고 기획안을 그녀의 이름을 올렸던, 하지만 그것이 어쩌면 정주리의 생명줄과도 같은 비정규직의 그 자리 마저도 빼앗게 되는 결과를 낳은 무정한의 결단과 겹쳐지면서, 조직적으로 '나쁜 갑'을 조장하는 사회를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예전 어른들의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어디있나? 세상이 나쁜 놈을 만드는거지'라는 그 말씀처럼.

 

일본의 유키지루시 유업이 불매 운동을 통해 파산한 사례가 언급되면서, ** 기업의 불매 운동이 확산되는 것이라던가, 최근 <무한 도전>을 통해 방영된 무한 상사 정준하의 해고가 많은 공감대를 얻어가거나, <직장의 신>이 생각 외로 다수의 공감을 얻으며 선전하는 것처럼, 뿌리깊은'갑을'의 문제가 자조적 회한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해결해 낼 힘을 얻어가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주의 정주리 해고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지, <직장의 신>의 또 다른 화두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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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05.08 10:35

고정도 과장님(김기천 분)은 가끔씩 가다서다 하는 취업 기념으로 회사에서 받은 그의 시계와 같습니다. 아니죠, 오히려 고정도 과장님이란 시계는 과장님의 말씀처럼 고장난 지가 한참된 것이 맞습니다. 디지털 세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에서 왕년의 재래 시장을 종회무진하던 영업왕이던 고과장님이 할 일은 없습니다. 신문을 보거나, 잡담을 늘어놓거나, 코를 골며 낮잠을 자거나, 어찌보면 고과장님에게 닥친 정리해고는 효율성면으로만 보자면 오히려 늦게 찾아온 불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직장의 신>은 그런 고장난 시계 고정도 과장님의 시계를 다시 돌려놓았습니다. 눈물, 콧물 찍어내며 고정도 과장님의 사연에 홀려 보는 것도 잠시, 21세기의 여러분, 진정 당신은 고정도 과장님의 시계를 돌려놓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황갑득 부장(김응수 분)이 마케팅 영업 지원부 직원들을 불러놓고 고과장님의 평가를 물었을 때 미스 김은 '짐짝'같은 분이라고 냉혹하게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컴퓨터와 외국어 능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무실에서 고과장님은 영어 근무 평가서 답안을 구걸해야 할 정도로 무능력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한때는 지하철노선도는 몰라도 재래시장 골목길을 훤히 아는 하루에 몇 건의 거래를 성사시켰던 영업왕이었었죠. 4월 30일, <직장의 신>은 정리 해고 위기에 봉착한 고과장님이 과거 그의 영업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그 위기를 넘기며, 막내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직장에 머무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에피소드가 방영되었습니다.

감동적인 이야기였지만, 고과장님의 복귀는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로 끝내버리기엔, 눈물을 흘리고 말 감동으로 끝내버리기엔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쓸모없어져버린 수기와 스크랩에 의존한 과거의 능력이 정말 쓸모가 있을까요? 그리고 <직장의 신>의 후배 직원들처럼 선배의 28년을 소중하게 감싸안을 만큼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있을까요? 추억은 아름답지만, 그 추억을 흘려버리지 않고 오늘에 되살려 우리의 것으로 품을 만큼 넉넉한 세상인가요?

 

 

재래시장의 골목 골목을 훤히 꿰는 고과장님의 생존은 마치 엄청난 자본을 앞세운 대기업의 무차별적 공격 앞에서 바람 앞의 촛불같은 재래시장의 생존 전쟁을 보는 듯합니다. 도시화의 명목 아래 아파트 건축으로 사라져가는 골목골목이 꼬부라진 오래된 동네를 보는 듯도 하구요. 어쩌면 지금의 흐름, 혹은 앞으로의 발전에는 역행하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더 갚어치있는 그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갈 수 있냐고 드라마는 질문을 하는 듯합니다.

<직장의 신>은 묘한 드라마입니다. 도식적으로 비정규직의 고통을 들이대는 것만 같았는데, 회를 거듭할 수록 '인간'의 이름으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자꾸 자꾸 질문을 던집니다. 능률과 발전이름으로 누군가를 거세시키지 않고,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고 조금씩 물러나 손을 잡고 갈 수 있겠냐고 야곰야곰 또 다른 질문을 던져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보면 다함께 갈 수도 있지 않냐고 살그머니 해답도 던져보기도 합니다. <직장의 신>이 제시하는 해법에 동의하십니까?

 

하지만 답은 간단치 않습니다. 미스 김을 찾아온 무정한 대리에게 한 미스 김의 질문처럼 고과장님이 비정규직의 네 배에 달하는 임금을 받으며 한량처럼 시간을 다시 보내는 동안, 고과장님은 좋은 분이라고 말한 정규리 씨는 몇 번의 해고 위기를 맞을테니까요. 그래도 고과장님은 선배라고, 장기 근속이라고 박수를 받으며 두둑한 퇴직금을 챙길 때, 수많은 미스 김들은 하루 아침에 그저 '통보'만으로 일자리를 잃을 테니까요. 고과장님의 행복을 기뻐하기 위해서는, 미스 김들의 행복도 함께 도모되어야만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요?

기업의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는 법이 조만간 통과된다고 합니다. 그 법의 통과를 다같이 기뻐하며 박수를 치기 위해서는 거리로 내몰려 노숙자까지 되어가는 2,30대의 비정규직 젊은이들의 여건에도 햇빛이 들어와야 하는 겁니다.

고과장님도, 미스 김도, 정주리 씨도 모두 행복해 질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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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05.01 09:08

사극 사이의 현대극은 고전한다는 공식을 깨고 kbs2의 월화 드라마 <직장의 신>은 14.9%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며 상승세다. 그런가 하면 같은 시간대 mbc의 월화 드라마 <구가의서> 역시 15.8%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역대 장희빈치고 시청률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없었던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7.5%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런 결과가 나온데에는 이 시대 직장인들의 고뇌를 적절한 웃음과 함께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진 <직장의 신>이나, 최강치의 개인사와 역사를 절묘하게 버무려낸 <구가의 서>의 빼어난 만듬새에 있겠다. 반면, 아직까지 <장옥정>은 그 무엇을 해도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작년에 만듬새는 허술하다고 욕을 먹었음에도 40%를 넘는 시청률을 보였던 <해를 품은 달>, 그리고 눈에 보이게 그 드라마와 판박이같은 <장옥정> 입장에서는 만듬새를 들먹이는게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배우들의 연기로만 보는 월화 드라마는 어떨까?

 

(사진은 해럴드 경제)

 

폭풍 카리스마 김혜수

중학생 시절 이미 원숙한 분위기로 영화와 사극의 여주인공을 오갔던, 그리고 그로부터 십수년이 흐르도록 늘 최고의 여배우였던 김혜수에게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마는, <장옥정>의 논란을 보면, 김혜수 역시 장옥정이 되어, 논란의 자리에 섰던 시절이 있었음이 떠오른다. 왕의 비빈으로 간택되기엔 지나치게 당당하지 않냐던( 그 안에 왕에 비해 너무 장대하지 않냐는 속내까지) 여론을 뒤로 하고 그때도 김혜수은 장희빈을 궁중의 꽃이 아니라 권력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여성의 모습을 연기로 보여주었었다.

그런가 하면 높은 시청률을 보이진 않았지만 <즐거운 나의 집>에서남편의 외도와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정신적 방황을 겪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불안정한 모습 또한 자연스러웠었다.

그리고 이제 <직장의 신>, 과연 이 드라마의 미스 김이 김혜수가 아니었다면 <직장의 신>이 지금처럼 <직장의 신>다울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매회 시청을 할 때마다 든다. 저 멀리 한 벌로 쫙 빼입은 정장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오는 미스 김의 김혜수를 보는 순간, 아마도 시청자들은 우선 그녀의 기에 눌려 움찔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그녀이기에, 하다못해 사무실 잡무, 커피를 타거나, 스템플러를 찍거나 빼거나 해도, 그녀의 그런 일들이 하찮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남은 시간을 이용해 하는 화장실 청소를 할 때조차 그녀는 당당하다. 김혜수라는 배우의 아우라에서 빚어지는 당당함은 단지 역할 그 자체에서 머무는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일, 하지마 늘 대접받지 못했던 잡무나 허드렛일들이 덕분에 자기 존재감을 얻어가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직장의 신>의 미스 김, 김혜수는 슬랩스틱에 능하다. 일과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는 그녀의 체조는 다른 사람이 하면 물을 뿜었을 우스광스런 모습이요, 그녀가 수당을 받고 임했던 홈쇼핑의 체조 동작이나, 마켓에서의 게장 만들기 호객 행위는 그 어느 개그보다도 개그스러웠다. 하지만, 개그맨 자신이 웃는 순간 개그는 망한다는 속설처럼 '빠마머리~'라고 웃기는 대사를 할 때 조차 무척이나 진지하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며 연기의 걱정없이 편안하게 실려 가면 된다는 믿음이 생긴다.

드세거나 웃기는 것만이 아니다. 진짜 <직장의 신>의 묘미는 매회 어찌보면 비슷한 직장인들의 애환, 혹은 인간적 갈들에 슬며시 반응하는 미스 김, 김혜수의 표정이다. 아주 순간 그녀를 스쳐가는 감정들이, 어마어마한 정주리의 수당을 월급턱이란 결과를 낳고, 빠마머리 장규직 과의 로맨스를 꿈꾸게 만든다. 물론 아직은 여지없이 '더럽다'며 그 손을 치우라는 호락호락하지 않는 그녀이기에, 그 로맨스는 더 간질간질하다.

<직장의 신> 비정규직 미스 김이란 캐릭터는 실상 현실에서 만나보기 힘든 무리수일 수도 있는 누군가의 연기로 인해 충분한 공감을 얻기 힘들 수 있는 캐릭터이지만, 우리 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배우같은 배우, 김혜수가 그 캐릭터에 김혜수를 입힘으로써, 멋진 미스 김으로 되살아 났다.

 

 

캐릭터와 이물감이 없는 배우 이승기, 배수지

<구가의서>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을 논하려면 그들이 등장하기에 앞서 1,2회를 이끌었던 이연희의 연기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연희 하면 2012년 주연으로 등장했던 <유령들>에서 시청자들에게 듣기 평가를 강요했던 배우로 논란이 되었었다. 그런 이연희였는데, 단 1년만에 <구가의서>를 통해 이연희의 재발견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물론 자세히 보다보면 그녀의 높낮이가 없는 단조로운 발성도 여전하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지만, 그것조차도 1,2회에 보여진 월령과의 비련의 사랑에 몰입을 방해할 요소는 아니었었다. 이렇듯, 당대의 발연기라 지적을 받던 연기자 조차, 재발견이란 소리를 듣게 할 만큼 <구가의서>는 환타지 사극으로서의 적절한 스토리와 그걸 업그레이드 시킬만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늘 김은숙 작가와 파트너가 되어 하지만 슬쩍 김은숙이란 작가의 이름에 비해 조명을 덜 받던, 하지만 사실은 김은숙 작가의 중반 이후의 뻔한 스토리를 연출력으로 뒷받침해오던 신우철 피디가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낸 것이다.

이것으로 올 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 이어, <구가의서>의 성공까지, 드라마 스토리텔링의 뻔함을 연출력으로 보완을 넘어 재탄생시킴으로써 어쩌면 이젠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 아니라, 피디 장난이란 새로운 신조어가 탄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구가의서>에서, 주연으로 등장한 이승기와 수지의 연기는 전혀 새롭지 않다. 허허실실 동네 청년같은 이승기는 여전히 이승기처럼 나오고, 건축학 개론에서나 광고에서나 늘 빤히 쳐다보며 상대를 설레게 하던 수지는 여전히 그 수지이다. 하지만 그것이 논란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그들이 연기 아니 그들의 모습과 이물감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리한 드라마의 전략이다. 이승기나, 수지는, 엄밀하게 연기자라기 보다는 그들이 출연한 1박2일 등의 쇼프로와 광고 등을 통해 이미 굳어진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스타'들이다. 그리고 대중들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아직도 싫증내기보다는 그런 모스을 더 보여줄 것을 갈망하고 있는 조건이다. 그런 상황에서 배우로서 모험을 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캐릭터 내에서 변주를 해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더구나 군 입대를 앞둔 이승기의 입장에서는 굳히기 한 판 일 수 있으니.

 

(

(사진은 osen에서)

 

연기는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구미호 외전'을 시작으로 해서, '싸움', '중천' 등 그간 김태희가 선택해온 작품들을 보면 과연 이 배우가 우리나라 최고 학부를 다녔다는 사실을 늘 코에 걸고 다닐만 한가를 의심해 보게 된다. 심지어 '아이리스'조차 이병헌의 연기가 있었으니 그만하게 넘어갔지. 스토리에는 헛점이 많아 보는 사람들이 그냥 접어두고 보게 만든 드라마 였었다. 이렇듯 '마이 프린세스'를 제외하고는 장르에 있어 파격적이거나, <장옥정>처럼 스토리에 있어서 파격적인 것들을 김태희는 선택해 왔다. 그런 파격적인 장르나 해석이 따른 작품을 선택할 때는 그것을 채워 갈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김태희는 역으로 그 파격적인 것이 자신의 부족한 연기력을 덮어주리라 기대했던 것이었을까?

물론 이런 혹평이 김태희 본인에겐 가혹한 것이, 지난 여러 작품을 하면서 김태희 본인의 연기력은 꾸준히 나아져 왔다. 냉정하게, 평행선상에 놓고, <구가의서>의 수지가 낫나? <장옥정>에 김태희가 낫나? 하면 김태희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욕은 김태희가 먹는다. 그것은, <장옥정>은 말 그대로 장옥정, 김태희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앞서 만들어 졌던 역대의 장옥정들은 흐드드한 연기력으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 자리에 올랐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장옥정>을 보면, 김태희는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혹은 지금까지 그녀가 했던 선택들처럼, 패션 디자이너 라던가, 지고지순한 사랑의 화신이라던가와 같은 기존의 것과 다른 새로운 것, 혹은 <해를 품은 달>을 뽑아 놓은 듯한 그럴 듯한 구도로 그녀의 여전히 원톱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기엔 미흡한 연기력이 덮어지리라 믿었던 것이 같아 아쉽다.

아이러니한 것은, <장옥정>에서 김태희의 파트너인 유아인조차 이번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김태희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유아인이나 이승기나 그저 기존에 자신이 해오던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인데, 유아인의 연기가 장옥정에 해는 끼치지는 않지만 도움이 된다고도 말할 수 없는 형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나, <패션왕>의 영걸이나, 영화 <완득이>의 완득이는, 늘 그 사회 속의 마이너한 소수자들이었다. 그리고 유아인은 그런 역할을 하기에 매우 최적화된 연기를 하는 배우이고. 이제 그런 그가 왕이 되어 나타나니, 그 스스로도 왕이 되고자 연기에 힘이 들어가고, 자기 연기 자체를 소화하는 것 조차 버겁다보니, 상대편 김태희의 연기까지는 받쳐줄 형편이 못되는 것이다. 파트너 조차 믿고 갈 수 없는 김태희에겐 불행의 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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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04.24 09:59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때가 되면 꽃봉오리가 맺히고, 나비가 날아들고, 꽃이 피고 이렇게 순리에 따라 흘러가는게 세상인 것 같은데 4월 중순이 되어서도 파카를 뒤집어써야 하는 날씨는 봄이되, 봄을 느낄 수 없게한다. 그런데 날씨만 이상기후가 된 건 아닌 듯하다. 인생의 봄인 젊은이들의 사랑 방식의 징후가 이상하다.

장기 불황을 견디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여행, 진급 등 삶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그 무엇을 거부한 채 그저 '별 일 없이 사'는 것에 만족한다는 외신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나라에도 얼마전 부터 '초식남'이 등장하더니, 이젠 '사랑'조차 부담스러워 외면하는 세대가 되었다고 한다. '사랑'이 싫은 게 아니다. 사랑으로 인해 스펙을 딸 시간조차 빼앗기는, 혹시나 삶의 스케줄이 변경될 지도 모르는 번거로움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연애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아이를 하나 더 낳으라는 시어머니에게 거액을 요구했다는 여자 연예인의 농반진반의 기사처럼, 사랑의 결실 결혼은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엄청난 비용의 결혼 자금을 시작으로, 주택비용, 맞벌이로 인한 스트레스, 육아 부담까지, 끝을 알 수 없는 연옥의 시작이란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고 있으니 우리 시대의 사랑은 그저 마음가는대로 하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그 무엇이 되고 말았다.

 

<직장의 신> 4회 엔딩에 이어 5회를 연 장면, 벚꽃 비가 내리는 가운데 장규직(오지호 분)이 자신도 모르게 그 내리는 꽃비를 보며 미소를 짓는 미스김에게 입을 맞추고 만다. 그 일이 있은 이후 장규직은 그런 자신의 행동을 곱씹으며,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자꾸 신경쓰이는 미스김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그런 장규직의 행동에 대해 미스김은 단호하게 밀어낸다. 심지어, 파리가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간 거 수준이라면서 무시하려고 까지 한다. 혼자 집으로 돌아온 미스김은 뜻모를 표정으로 숙고하지만 곧 장규직의 명함을 휴지통에 집어넣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하고 만다.

이런 미스김의 태도는 후배 정주리등이 시시때때로 '선배님~'하며 다가오는 인간 관계 맺기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과 일관된 흐름이다. 계약직으로서 이 직장에 오래 머물 것이 아니기에, 업무와 관련된 일 이외에 그 이상의 어떤 관계도 거부한다는 취지인 것이다. 거기엔 신참 계약직 사원 정주리가 동료나 혹은 상사와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접근했다가 매번 상처입고 마는 그 계약직의 존재론적 한계에 대한 숙고가 담겨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등장하는 미스김의 과거를 통해, 그런 '트라우마' 혹은 '고찰'이 생겨났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은 스포츠 조선 연예 에서 )

 

드라마 속에서 미스김이 정주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다. 이제 막 피어나는 들풀처럼 여리여리한 정주리는 생긴 그대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을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상사의 호의는 늘 상사의 호의 이상, 이성의 설레임을 불러일으키고,동료의 친절은 '우정'으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녀가 해석하는 세상은 '순수 의지' 그 자체이지만, 막상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오해와 이용뿐이다. 그러기엔 늘 마지막에 크리스마스 트리의 수많은 전구 중 하나를 운운하게 되는 건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그녀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단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어서가 아니다. 부장조차도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그저 을의 하나인 계약직인 그녀의 존재는 마치 신분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던 근세 이전의 신분제 사회처럼 2013년의 새로운 신분제 사회 속 '을'일 뿐이다. 그런 자신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정주리의 천진난만한 행동이 늘 미스김을 찌푸리게 만들고, 그런 미스김이기에, 장규직의 호의 혹은 관심을 가차없이 '파리'취급할 수 있는 것이다.

 

<직장의 신>은 웃기다. 하지만 웃다보니 애닮다. 자신이 누군인지 모른 채 '호의'만을 가지고 다가서다 자꾸 밟히는 앳된 계약직 정주리도 안타깝지만, 쓸 자리가 없어서 러시아어 능력은 적어넣지도 못하는 능력 만땅에, 멘탈은 더 갑인 슈퍼 계약직 미스김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장규직의 순수한 호의조차도 '파리'로 몰아버리는, 혼자서 점심을 먹는 것이 가장 편하게 되어버린 당하고 싶지 않아 갑옷을 둘둘 만 그녀도 자꾸 보다보면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게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닌, 사람 사이의 정도, 사랑조차도 존재에 따라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는 이 시대의 '을'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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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ditator 2013.04.1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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