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에 앞서 밝혀둘 것이 있다. 제목이 '당신의 그 어떤 모습'에, '박사모'가 사랑하는 그 어떤 분(?)의 '분노가 치밀어오르게 만드는' 모습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일단 그 어떤 분의 모습이 '주체'적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몹시도 낮거니와, 그 어떤 모습으로 인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고통'을 받게 만드는 그런 이기적인 모습은 이 리뷰의 주제 의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모습'이란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내려 하는 노력으로, 그 분(하마터먼 평소 하듯이 ㄴ자로 시작할뻔한)과는 전혀 무관하다. 


일찌기 <아엠샘>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거의 '국민 아역'급으로 등장했던 다코타 패닝의 이쁜 동생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던 엘르 패닝, 하지만 어느덧 언니보다 더 자주 작품을 들고 우리나라를 찾는 배우가 되었다. 그녀의 2015년작 <어바웃 레이>는 또 한 편의 '퀴어' 영화처럼 소개된다. 하지만, 성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어바웃 레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가족간의 관용과 이해, 나아가 인간의 포용에 대한 것이다. '가족'이 여전히 절대 선으로 자리잡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레이'의 가족들이 부딪치는 문제를 통해 진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볼 만한 영화인 것이다. 



레즈비언 할머니, 싱글맘 엄마, 성전환 손녀?
영화는 제목처럼 '레이(앨르 패닝 분)'의 문제로 시작한다. 아직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한 16세 소년? 소녀? 레이 혹은 아만다는 헷갈리는 그녀의 이름처럼 혼돈스런 성 정체성을 가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본인 레이는 헷갈리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치마 입기를 부끄러워했고, 지금도 가슴에 브래지어 대신 압박 붕대를 칭칭 감고 다니며 인형 놀이 대신, 카레이서, 우주 비행사를 꿈꿨던 아이는 이제 단호하게 자신의 성을 '남성'으로 선택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직 16살 어릴 적 이름이었던 여성성이 분명한 아만다라는 이름 대신 레이임을 주장하는 이 미성년이 성정체성의 변화를 가지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성전환 요법을 위해 함께 상담을 하러 간 사람들은 엄마 매기(나오미 왓츠 분), 할머니 돌리(수잔 서랜든 분), 그리고 할머니의 연인인 또 한 사람의 여성 프란시스(린다 에몬드 분)였다. 할머니의 연인을 제외한 모녀 삼대는 레이를 위해 기꺼이 상담에 응했지만, 막상 동의에 이르러 갈등을 겪는다. 

평생을 레즈비언의 권리를 위해 싸워왔던 할머니지만 막상 여성에서 남성으로 되려는 레이에게 그냥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되냐며 반문한다. 싱글맘인 엄마 매기는 자신의 성을 당당하게 선택하려는 레이가 자랑스럽다 말하지만, 막상 그 동의가 자신의 몫이 되자, 훗날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지로 모를 레이가 그 책임을 엄마에게 물으면 어쩔까 고뇌한다. 

레이의 성 선택, 그에 대한 어른들의 동의로 비롯된 문제는 영화의 시선을 레이와 가족의 문제에서, 어쩐지 아직도 레이보다도 덜 주체적이어 보이는 싱글맘 매기로 옮긴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다. 싱글맘이지만 엄마 혼자 레이를 만든 건 아닌 터, 또 다른 보호자인 법적인 아버지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레이의 아버지를 찾아나선 매기, 여기서 비로소 <어바웃 레이>의 속살이 드러난다.

어릴 적부터 홀로 자신을 키우는 엄마와 레즈비언인 할머니 사이에서 자라며 삶의 혼돈을 느꼈던 레이는 그 혼돈으로 부터 스스로 내린 삶의 결단이 서둘러 남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단호한 결정을 위해 찾아간 생부, 그러나 거기서 마주한 것은 자신의 보호자라 생각했던 엄마의 쉽게 수용할 수 없는 과거, 그로 인한 자신의 탄생과 외로운 성장이다. 이는 성의 결정에 앞선 레이의 숨겨진 분노를 폭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늘 삶 앞에서 도망치듯 살아온 매기가 어쩔 수 없이 도망치고 싶었던 삶을 직시하게 된다. 

정체성의 변화를 요구하는 딸, 지난 과오를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엄마, 그리고 한때 그 누구보다 전투적이었지만 이젠 그 모든 것에 '잔소리쟁이'나, '참견꾼'이 되어가는 할머니, 이 평범하지 않은 가족 구성원의 사연은 일찌기 다짜고짜 스무 살 넘은 애인을 집에 데려다 놓은 남동생이 등장하는 우리 영화 <가족의 탄생(2006)>이나, 쪽팔리는 가족 구성원의 사연을 다룬 <좋지 아니한가(2007)>와 콩가루 집안의 더 콩가루같은 스토리였던<고령화 가족(2013)>과  유사한 가족 문제이다.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쉽게 용인되어 지지 않는 성과 관계의 문제들을 '가족'이라는 장을 통해 담론화시키는 것이다. 



가족의 이름으로 
그저 남성이냐 여성이냐 선택의 문제가 심각했던 레이네 가족의 문제는 이제 형과 동거하며 그 동생의 아이를 낳게 되어버린 매기의 문제에 이르면 대책이 없어져 버린다. 하지만 그 대책없음을 다시 보면, 여전히 자신을 마주하기 두려웠다는 매기는 그 상황에서도 스스로 자신이 가장 잘한 일은 레이를 낳은 것이라 하듯, 레이를 낳고 레이의 엄마로 성실히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서야 매기와 레이 모녀를 방출(?)하고자 하는 할머니 돌리 역시 그런 매기를 품으며, 이젠 과보호가 되었을 지언정 이 모녀 삼대의 보호자로 든든하게 자리매김해왔던 것이다. 

결국 영화는 '훈훈한 가족' 영화처럼 용서와 화해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 막판의 급격한 화해 모드가 가능한 것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건 엄마로써, 할머니로써 성실했던 그녀들의 삶으로 인해서이다. 그리고 그 '성실'함에는 아만다가 레이가 되어도, 매기가 막장극의 주인공이 되어도 내 손녀와 내 딸로, 그리고 내 엄마와 할머니로써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관계의 성실함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영화는 우리 영화 속 가정의 남보다 못한 아귀 다툼은 없다. 대신 몸부림치고 혼란스러워할 때도 책임지고 부등켜 안는 '가족'이 대신한다. 그것이 싱글맘이든, 레즈비언 부부이건 말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어바웃 레이>는 '가족'으로 대접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레이의 성 정체성으로 인한 퀴어 영화가 아니라, 평생을 레즈비언으로 살아오며 한 가정의 가장으로 당당했던 그래서 사고친 딸도, 이제 레즈비언 대신 남성을 선택하는 손녀조차 수용하는 돌리와 그녀의 연인이 보여준 노년의 모습으로 '퀴어' 영화이고, 딸의 문제를 통해 자신을 직시하고 이제서야 엄마로써, 한 사람으로 당당해지는 매기의 여성 영화이다. 
by meditator 2016. 12. 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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