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대지마! 언제까지 어리광만 피울거야!"

마여진 선생님의 마지막 말을 역시나 마여진 선생님다웠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더 이상 그렇게 닦아세우는 선생님에게 상처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여기는 너희 교실이 아니라며 냉정하게 돌아서서 가서 선생님에게 '스승의 은혜'를 눈물을 흘리며 불러준다. 

언제나 그렇듯, <여왕의 교실>의 마지막은 감동적이다. 성큼 커버린 아이들이, 이제는 응석받이가 아닌 아이들이, 냉혹한 선생님의 속내조차 읽어낼 줄 아는 한 마디, 한 마디 감사의 인사를 전할 때 뭉클하게 눈물이 흐른다. 아마도 그 눈물의 의미는, 진실과 진실이 맞닿아 빚어지는 지점에서 자연스레 발산되는 화학작용일 것이다. 


물론 좀 더 따지고 들어가면 <여왕의 교실>의 엔딩이 그리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마여진 선생님의 교실에서 아이들의 변화는 이해가 가지만, 길거리에서 패싸움을 벌이고, 마여진 선생님 대신 들어온 교감 선생님 앞에서 단체로 일어서서 한 명, 한 명이 잘못했습니다를 복창하며,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는 방식처럼, 일사분란하게 무리의 아이들이, 혹은 25명의 아이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전형적인 일본 드라마의 교훈적 결말을 향한 '집단주의' 클리셰를 보는 듯해서 불편했다. 

또한 마여진 선생의 역설적 교육 방식에 의한 아이들의 변화를 감동적으로 그려내려고 했던 의도는 알겠지만, 하루 아침에 아이들이 선생님이 그리워요, 선생님이랑 함께 하고 싶어요 라는 식의 변화는 작위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육 위원의 소신어린 결정처럼, 제 아무리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하더라도, 과연 교육의 현장에서, 마여진 선생과 같은 역설적 교육 방법이 지닌 수단의 비윤리성 역시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다 라고 넘어갈 수 없는 지점 역시 여전히 남는 것이다. 


<여왕의 교실> 고현정, 드디어 웃었다 이미지-1

(사진; mbc)


하지만 그러기에 <여왕의 교실>은 많은 질문을 남긴다. 

우선은 마여진 선생님처럼 해야 겨우 자생적 능력을 가지고 독립적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왜곡된 삶을 살고 있는 오늘날 아이들의 모습이다. 간에 무리가 갈 정도로 자신을 혹사하며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고자 했던 마여진 선생님이라면 왜 아니 정상적인 방법을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들, 호시탐탐 친구들을 왕따나 만들려는 아이들,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로봇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의 상태가 너무 심각하다는 것을, 강력한 충격 요법만이 아이들을 구제할 수 있다는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여왕의 교실>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부모들에게 묻는다. 과연 여러분들은 당신의 자녀가 진정으로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라나기를 원하느냐고?

마여진 선생과 대립적 위치에 있던 부모들이나, 교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어리다'는 것이다.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어른들 말을 들어라. 어른들이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마여진 선생님의 교육에 의해 달라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의 꿈을 찾아나선 아이들은 어른들이 너희를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만들어진 마스터 플랜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글로벌 리더가 되라던 고나리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위한 모금에 앞장서는 전혀 다른 방향의 글로벌 리더가 되었고, 가업을 이어 받아 의사가 되라던 아이는 기자가 되겠다고 한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겠다고 하지만, 이제 아이들을 하려고 하는 공부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막연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위한 공부가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들은 마여진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플랜카드를 들고 교육청을 방문하려고 까지 한다. 


<여왕의 교실>은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 아이, 스스로 자신의 꿈을 찾으려고 하는 아이, 과연 그런 아이를 당신은 진짜 원하시냐고? 혹시 그간 당신이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했던 것들이, 사실은 아이들을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길들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냐고? 어른들이 만든 세계관을 세뇌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냐고? 그리고, 어른들 말을 잘 듣는 그래서 말로는 니가 언제 혼자 헤쳐나갈 수 있니?라면서도, 끝까지 어른들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사는 아이를 원한 것은 아니었냐고? 묻는다. 


이제 교육을 통해 독립적 인간으로 자라난 아이들은, 키우던 장수 풍뎅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주듯, 선생님을 그리워하면서도 선생님과 이별을 받아들일 줄 아는 아이로 자라났다. 과연 내 아이가 그렇게 담담하게 내 품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자신의 꿈을 향해 떠나보낼 수 있는 부모가 될 마음의 각오가 되어 있는지, 아이들이 자신들이 믿는 것을 믿는 독립적 인간이 되어도 되는지, 남겨진 질문이 묵직하다. 







by meditator 2013. 8. 2. 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