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드라마 <야왕>이 연일 상승세다. 물론 회에 따른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방영하기만 하면 1등은 '따논 당상'이라는 <마의>와 백중지세에 있는 드라마는 아마도 <야왕>이 처음일 것이다. '대물 야왕전'이라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야왕은 2012년 오랜만에 복귀해 <옥탑방 왕세자>로서 작가의 저력을 확인시켜준 이희명 작가에 의해 새롭게 각색된 드라마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중심에 '악녀' 주다해가 있다.

 

 

대한민국 드라마의 성공 요소 제 1번, 확실한 악녀의 존재

kbs2 의 주말 드라마를 제외하고 인기를 좀 끌었다싶은 드라마치고 '악인 본색'을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은 드라마가 거의 없다. 그나마 mbc의 낯을 살려주는 드라마 <백년의 유산>이 무엇인가? 여러 그럴싸한 장치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고부갈등이요, 거기서 '트러블 메이커'는 바로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무지막지한 시어머니의 존재요, 그녀의 자기 아들 사랑아닌가 말이다. 작년 최고의 시청률 <해를 품은 달>은 물론, 하반기에 꽤 반응이 좋았던 <착한 남자>, 그리고 심지어 케이블 일일 드라마임에도 인기를 끌었던 <노란 복수초> 조차 말도 안되는 악행으로 치달린 악녀가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에서 인기 좀 끌고 싶다 그러면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절대 악녀'이다. 오히려 인기가 좀 있었다 싶은 드라마 중에 그렇지 않은 드라마를 찾는 게 더 쉬울 만큼.

그 옛날 이야기 속 팥쥐 엄마나, 장화 새엄마처럼 드라마 속 여자들은 자신의 욕망에 도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마치 남성은 상식적이며 이성적인데 비해, 여성은 감정적이며 충동적이라는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선입견에 충실히 따라, 드라마 속 여성들은 마치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면 그곳이 어디든 뒹굴고 절규하는 아이처럼, 씩씩거리며 자신의 것을 향해 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드라마 속 남성들의 욕망이 소외받은 존재의 신분 상승을 통하 자기 실현이라든가, 가족의 원한을 갚기 위한 복수라는 이성적 수단인 반면에, 여성들의 욕망은 대부분 빼앗긴 사랑, 빼앗긴 가족 속의 존재 라는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판단에 근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야왕>의 주다해는 꽤 신선한 캐릭터이다. 주다해는 자신을 위해 헌신한 남자 하류를 버리고 성공을 위해 백산이라는 엘리베이터를 거침없이 올라타고, 외려 버려진 남자 '하류'가 그녀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버둥거리니, 이전 드라마의 남녀 관계가 역전이라도 된 듯하다. 하지만 18회까지 온 <야왕>의 주다해가 제법 그럴 듯한 욕망의 화신인가라고 질문을 던져 보면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질 않는다. 그저 그녀는 욕망의 에스컬레이션을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싸이코패스'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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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명 작가의 장기, 악녀 홀릭

그간 이희명 작가의 작품들을 훑어보면,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에는 대부분 '내로라하는' 악녀들이 있었다. 천사의 가면을 쓴 채 엄청난 질투심과 야심을 분출했던 토마토의 디자이너 '윤세라(김지영 분)', 악녀로 인기를 끌어 주연급으로까지 성장한 계기가 되었던 <미스터 Q>의 황주리(송윤아 분), 그리고 최근작으로는 <옥탑방 왕세자>의 홍세나(정유미 분)가 있다. 이들 악녀들은 주인공 못지 않은 '포스'를 내뿜으며 드라마를 지배해 간다. 오죽하면 <옥탑방 왕세자> 당시 '세나의 난'이라고 드라마 시청자들을 뿔나게 할 만큼 <옥탑방 왕세자>를 이끌었던 것이 바로 홍세나의 악행이었다.

악녀의 악행으로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건 매력적이다. 조금이라도 지루해 지는가 싶으면 바로 리모컨으로 손이 가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악행만한 볼거리가 없으니까. 게다가 대부분의 악인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덮기 위해 또 악행을 저지를 수 밖에 없으니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다 보니 정작 주인공들이 이야기의 외곽으로 밀려나가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마치 이번에는 그간 조연으로 밀려나 속시원하게 펼쳐보지 못한 악녀 이야기를 맘껏 해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이희명 작가가 이번에 택한 것은 악녀가 주인공인 <야왕>이다.

그런데 그간 악녀가 이야기를 지배했던 모든 한국 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악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야왕>에서 조차 속시원한 악녀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려지는 것은 그저 수없이 되풀이되는 악행뿐이다. 아이가 죽어도, 그래도 한때 같이 살았던 남자가 죽어도 잠시 눈물을 흘리고 다시 또 사건을 벌이는 주다해를 보며, 그녀가 또 무슨 일을 어떻게 벌일까 궁금해지기는 해도, 굳이 대통령 영부인까지 넘보는 그녀의 욕망을 이해하게 되지는 않는다. 사건은 있되, 그 속에 사람은 없달까.

<야왕>이란 드라마가 끝나고 주다해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욕망의 화신으로 오래 자리 잡을까? 아니 오히려 그보다도 하루의 피로를 피튀기는 게임 한 판으로 날리듯, 주다해의 악행을 보며 던진 욕의 배설로 그저 끝나는 드라마이기가 쉽지 않을까. <해를 품은 달>이나 <착한 남자>를 이제 좋은 드라마로 기억하지 않듯이. 문제는 이런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면 끌수록 되풀이 되는 악행처럼,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문 악행에 의존한 드라마들만 양산된다는 사실이다.

by meditator 2013. 3. 13. 1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