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후반, 생의 마지막 생일 파티를 연 줄리언 무어가 분한 테레사 영은 남편에게 묻는다. 삶이 우리를 지나쳐 가는 것일까? 우리가 삶을 지나가는 것일까? 라고. 이 '우문' 은 결국 '주체적'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던 삶이, 어떤 순간 나 자신을 떠도는 방랑자처럼 '객체'화 시켜버릴 때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 그건 죽음일 수도,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과거와 조우하게 된 상황일 수도 있다. 그 누구라도 살면서 종종 자신을 휩쓸어 버리는 삶의 국면에 마주하게 된다. 여기 그렇게 자신이 의도치 않는 삶의 기로에 놓인 두 여성이 있다. 바로 줄리언 무어가 분한 테레사 영과, 미셸 윌리암스가 분한 이자벨 앤더슨 이다. 

 

 

당신이 잊고 있던 과거가 다시 찾아 온다면?
영화를 여는 건 인도에서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자벨 앤더슨이다. 아이들과 여유로운 야외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이자벨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조차 사기 어려울 정도로 자금 부족의 위기 상황을 맞이한다. 그런데 도착한 기쁜 소식과 그렇지 않은 소식, 한 가지는 뉴욕의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을 운영하는 테레사가 거액을 후원하기로 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아원 아이들에게 담뿍 정이, 그 중에서도 자꾸만 그녀의 모성 본능을 일깨우는 한 소년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녀가 직접 뉴욕으로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지원을 받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마침내 테레사를 만난 이자벨, 그런데 어쩐지 자신이 거액을 공여하기로 했음에도 고아원에 관심이 없어보이는 테레사는 생뚱맞게도 이자벨을 자기 딸의 결혼식에 초대한다.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결혼식에서 이자벨은 18살 시절 낳아 입양을 하기로 결정했던 딸과 그 딸의 아빠인 오스카(빌리 크루덥 분)를 만난다. 오래도록 잊고 살았던 딸과, 지우고 싶은 그녀의 과거가 그녀를 찾아왔다. 

2006년 매즈 미켈슨 주연으로 수잔 비에르 감독이 만든 <애프터 웨딩>처럼, <애프터 웨딩 인 뉴욕> 역시 인도에서 복지 사업에 헌신하는 이자벨이 뜻밖에 만나 자신의 과거로 영화를 연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18살 시절, 이자벨은 아이를 낳는 것까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미성숙한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부당하고 생각한 그녀는 당시 남친이었던 오스카와 입양을 결정했다. 그런데, 그녀가 떠난 후 아이를 만나러 간 오스카는 그런 두 사람의 결정을 번복했다. 그리고 아이를 홀로 키우며 테레사를 만나 다복한 가정을 꾸려왔다. 딸인 그레이스는 엄마가 죽은 줄 알고 오늘에 이르렀다. 

영화는 이제는 복지 사업가가 되었지만, 한때는 자식을 버린 이자벨이 뜻밖에 조우하게된 '과거'의 인연,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엄마의 '실존'을 뒤늦게 알아버린 딸 그레이스의 혼란으로 이끌어 간다. 

 

 

'과거'를 불러온 테레사
눈 앞에서 자꾸만 인도의 소년이 어른거리던 이자벨은 자꾸만 인도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테레사는 지원하겠다는 금액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리면서 그녀를 만류한다. 그러면서 한편에서는 자신이 지금까지 키워왔던 미디어 그룹의 매각과 정리를 한다. 왜?

<애프터 웨딩 인 뉴욕>, 그 혼돈의 시작은 테레사가 남몰래 삼키는 알약으로 부터 비롯된다. 야심찬, 그리고 진보적인 사업가로 찬사를 받으며 미디어 그룹을 키워왔던, 그리고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부녀와 가정을 꾸려 이제 8살난 쌍둥이 아들까지 둔 남부러울 것 없는 테레사에게 지나가야 할 삶의 '마지막 문'이 도래한 것이다. 

자신의 과거를 끌어들인 테레사를 찾아온 이자벨에게 테레사는 자신에게 시간이 남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아직 두 쌍둥이 아들이 어리다는 것을. 뒤늦었지만 그녀에게 딸을 돌려주듯이. 테레사는 자신의 아들들을, 그녀가 부재한 가정을 그녀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다. 
 
수잔 비에르 감독의 <애프터 웨딩>이 덴마크의 송강호라 칭해지던 걸출한 매즈 미켈슨의 연기력에 기대어 뒤늦게 자신의 과거를 마주한 한 남자의 회한에 방점을 찍었다면, 그에 반해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은 어쩐지 그 방점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여겨진다. 분명 이야기는 뒤늦게 과거를 마주한 이자벨의 혼란과 갈등이지만, 어쩐지 자꾸 시선이 줄리언 무어가 분한 테레사에게 향한다. 

둘 다 명불허전의 배우이지만, 그럼에도 줄리언 무어와 미셸 윌리암스가 가진 배우로서의 내공의 차이때문일까, 그것도 그렇지만, 과거 남성이 주인공이었던 영화가 지난 시절의 회한에 솔직했던 반면, 진취적인 두 여성을 앞세운 영화는 '여성'으로서의 그들의 ' 멋져야 하는 존재감'에 짖눌렸달까. 지나온 시절에 대한 회한과 후회, 그리고 때로는 이기적이거나 감정적인 지점에들에 대해 그 '바닥'에 다다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건은 절절하고 두 배우의 연기는 훌륭한데 감정의 울림이 깊지 않다. 

 

 

죽음을 마주하게 된 여성 사업가, 아직 어린 두 아들, 그녀가 과거 남편이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 자신이 키우고 있는 큰 딸의 생모를 불러들이기까지의 '고뇌'가 관객은 자꾸만 짚어지는데 영화는 어쩐지 그걸 평면적으로 스쳐간다. 죽고 싶지 않다는 테레사의 절규만으로는 그녀가 홀로 약을 삼켜가며 남편의 과거 여자이자 딸의 생모를 불러오기까지의 복잡한 심사가 다 설명되지 않아 안타깝다.

이자벨은 어떨까? 18살에 포기한 모성, 그리고 이제 고아원의 한 아이에게 유독 모성적 연민을 놓지 못하는 상황, 거기에 뒤늦게 나타난 딸에 대한 애매한 모성의 복잡한 갈래가 차별성을 가지고 드러나지 않는다. 거기에 18살에 딸을 포기했던 여성이 이제 인도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는 복지 사업가에 이르기까지의 회한어린 여정의 깊이 역시 미흡하다. 요가로 마음의 안정을 찾는 복지 사업가라는 여성과 미디어 그룹의 대표인 여성의 미담을 넘어 그들이 드러내는 감정적 여운이 짧다. 멋진 여성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 삶의 여정에 대한 좀 더 진솔한 천착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by meditator 2020. 4. 27. 2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