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배유미는 대표적인 주말 드라마의 작가이다. <진짜 진짜 좋아해>, <반짝 반짝 빛나는>을 경유하여, 2013년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하 스캔들)>까지 mbc의 내로라하는 주말 드라마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이전 배유미 작가하면, 일찌기 <해피투게더>를 시작으로, <로망스>, <12월의 열대야>까지 독보적인 주중 미니 시리즈의 일가를 이룬 작가이기도 하다. 배유미 작가의 작품은 그 작품이 주중 미니 시리즈이건, 주말 장편 드라마이건, 여타 드라마들과 달리 '배유미'라는 작가의 색깔이 분명하다. 배유미 월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그저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을 하고, 얽히고 섥히는 인간 관계들 속에, 올곧이 추구하는 어떤 독특한 '휴머니티'랄까, 혹은, 인간애의 천착이라고나 할까, 배유미의 작품을 보다보면, 분명 다른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막장과 멜로임에도 어딘가 그 결이 다르다. 아마도, 그것은 그 현란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작가가 욕을 먹으면서도 끈질기게 놓지 않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인간의 모습에 천착함을 놓지 않던 배유미 작가의 작품 세계가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을 계기로, 좀 더 확장된다. 그저 드라마의 배경처럼 등장하던 부와, 그 본질에 대한 시선이 좀 더 날카로워지고, 분석적이어지고 비판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풍요로워졌지만, 오히려 살기 각박해져가는 세상에, 작가 역시 눈을 감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5년 <애인있어요>로 돌아온 배유미월드는 어떨까? <애인있어요>를 통해 배유미 작가는 다시 한번 새로운 시도를 한다. <애인있어요>는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과 <스캔들>의 콜라보레이션한 작품과도 같다. 



'반짝반짝 빛나는' '스캔들'; <애인있어요>
일찌기 친구의 특허권을 빼앗아,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채 악몽으로만 등장하지만 심지어 친구의 목숨과 바꾼, 자신의 영혼을 팔아 천년 제약을 일군 최만석, 그렇게 또 하나의 부도덕한 스캔들로 시작된 기업사는 이제 그 자식대에 와서는, 신약 개발을 둘러싼 시약 실험을 위시하여, 그 부도덕한 스캔들의 사회적 확장판이 되어간다. 그렇게 <스캔들>의 개발 재벌은, 이제 2015년 <애인있어요>의 도 하나의 부도덕한 제약 재벌로 현현된다. 배유미의 작품 속 재벌은, 그저 여느 주말 드라마의 부도덕한 재벌보다 구체적이다. 그들이 부를 일구는 과정은, 기억을 더듬으면 그 누군가가 손에 잡힐 듯, 한국 사회의 '원시적 부의 축재'의 과정을 복기한다. 그런가 하명, 6회 등장하는 최진리의 휠체어 씬은 애교일 정도로, 극중 천년 제약의 신약 개발 과정을 둘러싼 비리는 실제 우리 사회의 그것을 복기한다. 그렇게 현실적 부의 부도덕함을 배경으로, 거기에 얽혀든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풀어내는 방식 역시 <스캔들>의 그것과 흡사하다. 마치 막장 주말 드라마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을 홀리려 작정이라도 한 듯 가장 자극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아이를 건물 붕괴 사고로 잃은 하명근(조재현 분)이 그 일의 주범 장태하(박상민 분)의 아이를 납치하는 사건으로 시작된 <스캔들>처럼, 1회, 자동차 사고로 위장하여 죽음의 위기에 몰린 독고 용기 대신, 도해강이 사고로 기억을 잃게 되고, 그로부터 4년을 거슬러 올라가, 천년 제약의 며느리로, 최진언(지진희 분)의 아내로 살아가는 도해강이 겪는 최진언의 뻑쩍지근한 불륜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최진언의 불륜에 분노하는 도해강이라는 평범한 주말 드라마의 공식을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필연과 우연이 뒤범벅된 인간 군상의 관계가 펼쳐져 있다. 도해강은 바로 그 특허권을 빼앗은 최만호의 친구의 딸이자, 최만호가 가장 미더워하는 회사의 중역이다. 그런가 하면, 도해강의 쌍둥이 동생은 그 천년 제약의 신약 실험 비리를 알리려다 목숨을 잃은 연구원의 약혼자이자, 유복자를 낳을 천년 제약의 직원이자, 내부 고발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은 <애인있어요>의 얼개가 되는 부의 부도덕한 구조와, 인간사의 인연으로, 뒤엉켜있다. 

하지만 배유미 작품 세계의 특징은 그저 얽혀 있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괴범의 아이가 된 부도덕한 재벌의 아들처럼, 피와 인연의 아이러니를 주인공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반짝반짝 빛나는>의 운명이 뒤바뀐 한정원(김현주 분)과 황금란(이유리 분)을 통해 드러난 아이러니한 운명이다. 이제 그 운명은 죽음의 위기를 뒤바뀌게 된 도해강과 황금란, 그리고, 원수의 자식이면서 사랑의 굴레가 씌워진 최진언과 도해강으로 현현한다. 



4년 뒤 반전을 위한 길고 지리한 서론
하지만, 이렇게 필연과 우연, 사회 구조적 부도덕과 인간사의 아이러니로 복잡하게 뒤얽힌 관계 때문일까, 유독 <애인있어요>의 발동이 늦다. 워낙 mbc의 10시 주말 드라마의 아성이 굳건한 탓도 있겠지만, 첫 방 이후 6회에 이르는 3주차에 이르기까지, 드라마 속 인간 관계의 우연과 필연의 깊이를 더해가려 하다보니, 서론이 길단 느낌을 준다. 특히, 앞으로 역전될, 도해강의 운명을 설명하기 위해, 최진언의 불륜에 대한 과정이 너무 상세하다보니, 그것 자체가 인내심을 요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도해강의 피폐함이 깊어질 수록, 4년 후 그녀의 도발이 설득력을 얻겠지만, 그럼에도 최진언의 불륜 과정은 너무 장황하다. 또한, 도해강과 독고 용기 김현주의 1인2역으로 펼쳐져 가는 두 자매의 서사를 탄탄하게 다루려다 보니, 아직은 이렇다할 사건이 없는 독고 용기가 묻히고, 도해강의 불륜이 더 늘어지게 느껴지는 탓도 크다. 

하지만, 이제 그 길고 지리한 서론도 다음 주가 마지막이라 하니, 배유미의 세계을 탐닉하며, 김현주의 연기로 버텨낸 시청자의 인내도 끝이 보인다. 이번에도 부디 시청률에 흔들리지 않고 배유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진득하게 풀어내 주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5. 9. 7. 16:10